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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회


제8장 마지막의병대


9


밖에서 봉대의 꺽꺽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달삼이는 아예 실신한듯 멍청히 먼 하늘만 바라보고있었다.

《수길이, 태영이… 그 왜놈들이 자네들의 시신마저 그렇게 불태워버렸으니 봉분도 만들 길이 없구나. 아-》

목이 꽉 쉬여버린 달삼이의 그 목소리를 듣는 김정환의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는듯 했다.

수길이와 태영이가 왜놈들에게 잘못된 날부터 리달삼과 봉대는 너무도 비통하여 산마루에 뛰여올라가 서로 붙어잡고 목청껏 소리치며 울고 또 울었다.

그날부터 이틀이 지났지만 리달삼과 봉대는 아직까지 밥도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꺽꺽 흐느끼기만 했다.

강수길과 박태영의 죽음은 평산의병대를 비애속에 잠그어놓았다.

의병장 김정환도 의병들에게 바리산의 의병막사를 불사르고 돌망골사람들의 이주를 도와주라는 령을 내린 후였지만 강수길과 박태영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손에 일손이 잡히지 않아 그냥 의병장지휘막에 앉아만 있었다.

강수길을 잃은 슬픔이 그의 가슴속을 끝없이 아프게 하였다.

높은 대가집 아들로 태여났지만 어려서부터 청운의 뜻을 품고 나라를 위하여 뛰여다닌 강수길의 의거를 생각하면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애석했다. 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의병대에 뛰여들 때에야 누군들 살아남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으나 이렇게 정작 그들을 먼저 잃고보니 그 비통함과 애석함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문밖에서 조용히 인기척이 울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섰다.

김정환은 눈굽을 적시는 뜨거운것을 문지를념도 못하고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장서방이 들어와 의병장의 슬픔을 깨뜨리는것이 못내 미안한듯 한 표정으로 머뭇거리고있었다.

김정환은 그에게 묻는듯 한 시선을 던졌다.

장서방이 조용히 말했다.

《의병장님, 막사들을 모조리 없애고 거점을 옮길 준비를 끝냈소이다.》

김정환은 억한 목소리를 낼가 저어하듯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 응대했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이제는 이곳이 더이상 의병거점으로 될수가 없었다.

왜놈들이 이제는 돌망골이 의병대의 거점이였다는것을 알고있으니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밀려들것이였다.

그러니 평산의병대는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야 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김정환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날이 정세는 불리하게 번져지고있었다.

의병투쟁의 불씨는 점점 사그라져가고있었다.

불쑥 홍로인의 말이 생각났다.

《이젠 평산의병대 하나만 남았네. 여기까지 총소리가 끊어지면 백성들이 맥을 잃고마네. …》

나라를 더이상 위할수 없는 자기의 무능함이 원망스러웠다.

혹시 리진룡을 따라갔어야 하지 않았을가.

김정환은 머리를 저었다. 그 길에 나라를 구원할 특별한 방책이 있다면 왜 따라나서지 않았겠는가. 거기엔 류린석도총재가 있을뿐이다.

마을마다 의병들을 조직하여 자기 마을에 있는 왜놈들을 쳐부시는것으로써 나라를 구원할수 있다고 믿은 그의 론거는 나라를 구원할 방책이 아니였던것이다.

실로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들고일어난 의병들의 수는 이 땅을 짓밟은 왜놈들보다 많았고 민족을 지키려는 정신과 기개도 헤아릴수 없이 높았다. 이 힘을 합쳤더라면 이 땅에 조심히 발을 들이민 왜놈들은 벌써 제 소굴로 쫓겨갔을것이다.

백주에 황후를 죽이고 나라의 재보를 략탈하고 민족을 란도질하는 왜놈들과의 싸움에 합세하지 않을 조선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라는 의연히 왜놈들의 칼도마우에 올라있다. 왜놈들은 날로 포악해지고 의병들은 거의나 다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그런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의기를 잃지 않고 평산의병대와 쌍기둥을 이루어 왜놈들과의 싸움을 힘차게 벌려오던 곡산의병대의 종말은 김정환에게 더욱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백년산을 거점으로 하여 황해도의 곡산과 수안일대와 평안남도 성천, 양덕지방과 강원도 이천, 안변 등 넓은 지역에서 부단히 이동하며 투쟁을 벌리던 채응언의병대는 왜놈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기면서 전과를 확대하여나갔었다.

그러나 왜놈들의 악랄한 《토벌》책동으로 의병대오가 줄어들고 나날이 기력이 쇠잔하여갔다.

왜놈들은 선암에 수많은 수비대와 경찰, 헌병들을 집결시켜 곡산의병대에 대한 《토벌》계획을 벌리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채응언은 30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선암에 대한 습격전을 대담하게 진행하였다.

새벽에 진행된 이 기습전에서 많은 왜놈들을 살상하고 많은 무기들을 로획하였지만 의병장인 채응언이 치명상을 입게 되였다.

의병장이 치명상을 입은 후 곡산의병대는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말았다.

평산의병대와 더불어 이 땅에 남은 마지막의병대오였던 곡산의병대는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어느날엔가는 채응언이가 이끈 곡산의병대와 함께 왜놈들을 본때있게 족쳐보리라 결심했던 김정환이로서는 그들의 종말이 참으로 가슴아팠다.

채응언과의 협동을 주동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어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김정환의 마음속에 어느때인가는 의지할 기둥이라고 믿었던, 그래서 마음을 든든하게 하여주던 채응언의 곡산의병대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놈들에게 짓밟힌 이 나라에 평산의병대는 그야말로 마지막의병대였다.

평산의병대까지 없어지면 나라를 찾자고 울리는 총소리는 멎어버리게 된다.

김정환은 이름할수 없는 중압감을 느끼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평산의병대를 보존하여 이 땅에서 총소리가 멎지 않게 해야 했다.

그러자면 평산의병대가 어느 한 고정된 지역을 벗어나 더 넓은 지역으로 분산되여 활동하면서 왜놈들과의 싸움을 벌려야 했다.

김정환은 대오를 다시 일곱명, 여덟명정도로 무어주어 분산활동을 벌리리라 타산하였다.

지금 당장은 그 작은 대오들이 돌망골사람들을 한집씩 맡아가지고 안전한 곳으로 나가 자리들을 잡고 안착을 시키는것이 급선무였다.

돌망골사람들을 이주시키지 못하면 이제 인차 들이닥칠 왜놈들의《토벌》에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것이였다.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한 때라 빨리 사람들이 살 곳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김정환은 이미 조를 무어준 의병들이 변복을 하고 나가서 매 집들을 마련하는것을 도와주고 돌아오도록 하였다. 그와 함께 새봄이 오면 씨를 묻을수 있는 화전까지 일구어주고 오도록 하였다.

김정환은 이제 더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더이상 할 일이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있다면 이제 남은 일은 돌망골사람들과 작별을 하는것뿐이였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여지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속이 바위덩어리가 들어찬듯 무직스러웠다.

허나 어이하랴. 돌망골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의병대를 위해서도 그들과 리별을 해야 하는것이다.

김정환은 돌망골사람들과의 가슴이 미여지는 작별의 시각이 한순간이라도 더디게 하고싶은 심정으로 하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김정환은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기봉대가 홍로인을 부축하고 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봉대에게 의탁했던 팔을 뽑고나서 김정환의 앞으로 다가오는 홍로인의 얼굴에는 의병들과 헤여지는 마당이여서인지 구름이 꽉 덮여있는듯 했다.

잠시 의병장을 바라보던 홍로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의병장, 우리도 의병대와 함께 왜놈들과 싸우다 죽겠네.》

김정환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러리라고 생각을 해오던터인것이다.

몇년동안 의병들을 성심성의로 도와나서며 왜놈치는 싸움에 자기들도 한몫한다며 그토록 사는 긍지를 느꼈던 그들이 어찌 선뜻 의병대와 헤여질수 있으랴. …

홍로인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왔다.

《이 마을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동학당란때부터 시작하여 왜놈들에게 큰 상처를 입고 모여왔던 사람들일세. 세월을 등지고 나라가 어찌되든 왜놈꼴을 안 보고 살겠다면서 여기 산속으로 모여왔었지. 하지만 의병들을 섬기면서부터 그들모두의 생각이 달라졌네. 나라를 찾는 싸움에 조선백성이라면 모두가 떨쳐나서야 한다는걸 말일세. 그러니 우리도 이제부터 의병들을 따라다니며 왜놈들과 싸우다 함께 죽겠네.》

김정환은 로인의 말을 들으며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좌상님, 죽기는 왜 죽겠습니까? 우리 조선민족이 그렇게 순순히 죽을수가 있습니까? 어떻게든 살아야 합니다. 기어이 살아서 다시 들고일어나야 합니다.》

잠시 말을 끊었던 김정환은 홍로인의 손을 꼭 잡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나라의 의병불길이 사그라져가고있습니다. 왜놈들은 더욱 포악해지고있구요. 때를 당하여 의병대와 돌망골백성들이 헤여지는것입니다. 하지만 나라에… 백성들을 옳게 이끌어 왜적을 쳐부실 기운이 서리면 우리 다시 모여 함께 왜놈들을 쳐부십시다.》

홍로인의 눈가에 눈물이 핑 어렸다.

그도 여기로 오면서 자기의 제의가 갓난애의 응석과도 같이 어리석은것이라는것을 모르지는 않았었다. 의병대가 아녀자들과 늙은이, 아이들까지 있는 돌망골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싸움을 한단 말인가. 그거야말로 의병들에게 무거운 짐이 아닐수 없다는걸 어이 모를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의병들과 헤여지게 되는것이 너무도 속에 걸려 이렇게 쓸데없는 투정을 하게 된것이다.

홍로인은 김정환의 손을 마주잡으며 눈물이 질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의병장, 내 의병장말대로 하겠네. 부디 조심하라구.》

김정환은 눈시울이 후더워지는 속에서도 밝게 웃어보이며 홍로인에게 큰절을 하였다.

《험한 세월에 돌망골사람들이 흩어져도 서로 잊지 말고 의지해 살도록 좌상님께서 잘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구 모진 세상에서도 앓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십시오.》

홍로인은 김정환을 잡아일으키며 끝내 흐느낌소리를 내고야말았다.

《알- 겠네. 내 의병장의 말을- 명심하겠네. 흑.》

몇걸음 떨어져 서있는 봉대도 눈물이 글썽하여 연방 흐느낌소리를 내고있었다.

다시 문이 열리며 또 누군가가 들어섰다.

김정환이 돌아보니 솔매의 아버지인 달범이가 들어서고있었다.

달범을 본 봉대는 갑자기 눈길을 어디에 건사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지금껏 어느 외통길에서 만나도 말 한마디 건네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쏴보기만 하던 달범이고보면 봉대가 그럴만도 한노릇이였다.

그러는 봉대를 일별하고난 달범은 김정환과 홍로인곁으로 다가와 섰다.

김정환은 묻는듯 한 시선으로 달범을 바라보았다.

달범이 그를 마주보며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의병장어른, 나도 다른 곳으로 옮기겠수다. 우리가 따라나서야 의병들에게 짐이나 됐지 뭘 도울게 있겠소.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화전이라도 착실히 뚜져 나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량식이라도 대줄려우. …》

김정환이 얼굴에 환한 기색을 지으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솔매 아버님,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는 김정환을 한동안 바라보던 달범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솔매를 여기에 떨구겠네. …》

김정환은 의아해졌다. 그들쪽을 곁눈질하던 봉대도 의아스레 두눈을 흡떴다.

김정환은 달범의 속내를 알수가 없는지라 잠시 어쩔줄 모르다가 머리를 저었다.

《그건 안됩니다. 처녀의 몸으로 어떻게 의병들을 따라다닌다고 그럽니까?》

하지만 달범은 이미 마음을 먹고 온터이라 쉽사리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그의 목소리는 절절하게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애가 총질은 못하겠지만 의병들의 때식이야 제법으로 끓이겠지요. 그러니 그애를 받아주시우.》

김정환은 말을 못했다.

안된다고 다시 말하기에는 달범의 말이 너무도 곡진했던것이다. 달범은 말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김정환을 외면한채 봉대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 봉대, 그새 날 많이 원망했지? 내 임자와 우리 솔매의 사이를 모르는바가 아닐세. 하지만 자네가 의병일에 전념을 하지 않을가봐 내 그새 모질게 대했는데 과히 나삐 생각지 말게나.》

달범은 어안이 벙벙하여 바라보고있는 봉대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그리고는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솔매를 임자에게 맡기겠네. 부디 우리 솔매와 일생 헤여지지 말라구.》

봉대가 오열을 삼키며 달범의 앞에 엎드렸다.

《아버님-》

그들을 바라보는 김정환과 홍로인의 눈물어린 얼굴에 웃음이 피여올랐다.

이 순간 김정환은 자기들이 돌망골사람들과 헤여지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랬다. 돌망골사람들은 그 어디에 가있건 항상 의병들과 마음과 뜻을 같이할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혈맥으로 이어진 우리 백성들의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인것이다.

돌망골사람들이 떠났다.

그들이 떠날 때 김정환이 조를 무어준 의병들이 따라서려 했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그들을 떼버렸다.

의병이 왜놈들과 싸워야지 무슨 잔걱정을 하겠느냐는것이 그들의 마음이였다.

돌망골사람들의 그 진정에 김정환도 더 어쩌지 못했다. 돌망골사람들과 의병들의 눈물겨운 작별이 시작되였다.

모두가 울었다. 바래주는 의병들도 울고 떠나는 돌망골사람들도 울고…

그들이 떠난 다음 김정환과 의병들은 헐어버린 바리산의 막사자리에서 놀라운것을 보게 되였다.

거기에 영문모를 식량가마니들이 쌓여있었던것이다.

식량가마니우에 홍로인의 필적으로 된 서신 한장이 놓여있었다.

서신을 펼쳐들고 들여다보는 김정환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김정환은 두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념도 못하고 영문모를 낟알가마니와 자기를 의아스럽게 지켜보는 의병들을 향하여 갈리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서신을 읽었다.

《왜놈격멸의 웅지를 지니고 죽기를 두렵다 하지 않고 싸우는 평산의병장이하 의병 여러분네들, 백의민족이 당하는 수치는 나의 수치이고 나라가 겪는 아픔은 나의 아픔으로 아는 돌망골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은 량곡을 의병 여러분에게 드리나이다. 부디 왜놈들과의 혈전에서 승전만을 이룩하소서.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소서. …》

김정환은 더 읽지 못했다.

목이 꽉 메여 목소리대신 흐느낌소리만이 흘러나왔던것이다.

의병들의 흐느낌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나왔다.

김정환과 의병들은 눈물이 쏟아져 뿌연 눈길로 돌망골사람들이 떠나간 먼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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