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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제 6 장


4


하루일정이 다 끝나고 교사안이 조용해진 다음에도 퍼그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권길수는 조심스럽게 교장실로 찾아갔다.

예견했던대로 교장은 어지간히 쌀쌀한 표정으로 얼핏 한번 쳐다보기만 했을뿐 자리도 권하지 않았다.

속은 무춤했지만 그는 매일 제방처럼 드나들던 교장실인지라 스스럼없이 제손으로 의자를 당겨놓으며 교장앞에 바투 마주앉았다.

교장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않은채 쓰던 글을 계속 썼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을 발취하는중이였다.

권길수는 자리를 차고일어나 문을 쾅 여닫으며 뛰쳐나가고싶은 생각이 왈칵 일었다. 학교의 같은 책임일군인데 이렇게 무시를 당할수가 있는가. 더우기 오늘은 토요일이여서 한주간의 사업을 놓고 의논해야 할 문제들이 한둘도 아니지 않는가.

이제는 교무부장을 학교사업에서 제외라도 시키겠다는것인가?

하지만 혀를 씹으며 참아야 했다. 아직은 교장과 덧나서 리로울게 없기때문이였다.

그는 매일매사 조심하느라 했지만 어인 일인지 나날이 교장과는 사이가 점점 더 버그러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껏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상급일군들과는 튀여본적이 없었다. 홍준모부상은 물론 교육성의 적지 않은 일군들과 이전 교장들의 총애속에 매양매사 치하를 독차지하다싶이 하군 했었다.

허나 이 교장과는 도무지 통하지가 않았다.

돌이켜보면 상서롭지 않은 둘사이관계가 표면에 로출된것은 지난해 수도건설지원전투때 홍종팔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을 교장과 합의없이 작업동원에서 빼준 일부터였다.

그때 교장은 교육설비와 기자재구입때문에 3~4일간 지방출장중에 있었다. 권길수는 마침이라 여기고 독단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을 결론해버렸으며 저로서는 교장을 얼마든지 납득시킬 준비도 빈틈없이 했었다. 더우기 홍종팔학생이야 직접적상급인 부상의 아들이며 합법적인 진단서까지 제출하지 않았는가.

출장지에서 돌아온 날 장시간의 구체적인 설명을 일체 반박없이 끝까지 다 듣고난 교장은 딱 한마디 말만 했는데 그것은 비수로 찌르는것과도 같은 날카로운것이였다.

《교장이 부재중에 교무부장이 학교사업을 대신하는것은 옳습니다. 난 굳이 이번 일들을 놓고 시야비야하고싶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만 하고싶은것은 내가 이 학교에 와서 지금까지 생활하며 꼭 해주고싶었던것인데 학생들에 대한 교육자의 공정성문제입니다.

고급반 학생들은 중학생들과도 다르지 않습니까. 보고 느끼는것이 어른들 못지 않다는거야 선생도 잘 알겠지요?

그리고 특히 더 신중한것은 웃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지킬것은 반드시 지켜주어야 한다는것입니다. 원칙과 어긋나는 존경심은 오히려 실례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웃사람과의 관계, 누구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인가는 불을 보듯 명백했다. 그렇게 놓고보면 그와의 관계에서 거스름이 일기 시작한것은 그보다 썩 전인 부임초기 홍종팔의 학급반장선발때부터 시작된것이였다.

두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일어서고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천성적으로 그런 담은 없었다.

하긴 퍽 에돌기는 했지만 교장의 말이 모든 사실들을 속속이 다 들여다보고 하는 소리임에야!

속에서는 불이 일었지만 뻐꾹소리 한마디 못한채 얼굴만이 시뻘개서 《고맙습니다. 제 중히 받아들이고 참고를 하겠습니다.》 하며 황황히 물러나왔었다.

속에 맺혀 내려가지 않아 다음날로 당장 홍준모부상을 찾아가 억울함을 하소하였다. 제 천성대로 일부 사실들은 엄청나게 과장을 하면서 더는 함께 일할수 없으니 저를 이미 약속한대로 성으로 소환하거나 다른 학교로 옮겨달라, 정 그렇게 못할 사정이면 교장을 바꾸어달라고 했었다. 교장을 소환하면 이번에는 영낙없이 자기가 교장자리에 올라앉을수 있다는 자신심에서였다.

아들문제를 크게 걸고들었다는 말에 가뜩이나 울기가 뻗쳤던 홍준모는 용케도 자신을 누르면서 아주 태연하게 알겠노라고 하며 일체 다른 생각말고 돌아가 교장과는 절대로 더 엇서지 말고 본신사업에서 실적을 올리라고 등까지 두드려주었다. 눈물이 날만큼 고맙기도 했지만 보다 깊이 깨달은것은 사람은 저렇게 참을줄도 알고 때로는 속과 다르게 웃을줄도 알아야 한다는것이였다.

생활의 좌우명과도 같은 그 깨달음이 있어 그는 오늘도 입안에서는 쓴물이 돌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띄우며 주간사업중에 제기된 문제들을 여느때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진중하게 보고하는것이였다.

교장은 여전히 얼굴을 들지 않았는데 달라졌다면 수령님의 로작을 발취하던 학습장을 밀어놓고 사업수첩을 펼친것이였다.

드문드문 몇줄씩 적긴 했지만 여전히 표정변화는 없었다.

(제길할, 꽁하다구야.)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곱게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굽히고나서 서둘러 방을 나섰다.

복도에 나오니 숨이 활 열리면서 살것 같았다.

(에―이.)

괜히 또 한번 교장실에 대고 눈먼밸질을 하고나서 그는 휭하니 물러나 자기 방으로 걱석걱석 걸어갔다.

그런데 금시 방문을 열려던 손이 주춤 굳어졌다. 뜻밖에도 현관문쪽벽모서리를 돌아 홍종팔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타났던것이다.

무슨 일인지 주위를 한번 휘둘러본 그는 인사도 없이 스적스적 다가오더니 밑도끝도없이 마치도 무슨 비밀련락이라도 하듯이 《우리 아버지가 래일 10시경에 낚시터로 나오랍니다.》 하고 한마디 던지고는 옆을 쑥 지나가버렸다.

(젠장!)

다른 학생이라면 그 자리에 불러세우고 례절법을 톡톡히 상기시켰으련만 역시 참는수밖에 없었다.

낚시터란 그가 홍부상과 때때로 만나 함께 고기잡이의 즐거움을 나누군 하는 쑥섬맞은켠 대동강과 보통강합수목이였다.

사실 그들의 친분은 해를 넘겨오는 그 낚시터에서 더 굳어졌다고도 할수 있었다.

권길수는 원래 낚시질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는데 홍준모를 따라다니면서 재간이 늘었고 더우기는 중히 의논할 일이 제기되면 제편에서 먼저 부상을 유혹하게까지 됐었다. 낚시질에 보통 미치지 않는 홍준모는 권길수의 제기중에 낚시질하자는 말을 제일 반갑게 받아들이군 했는데 그런 날이면 권길수는 점심식사도 무척 품을 들여 준비하군 했었다.

하고보면 그들의 낚시질은 고기잡이로서의 하루 즐거운 휴식인 동시에 둘만이 나누어야 하는 중요한 사업토의공간이기도 하였다.

권길수는 예감적으로 홍부상의 낚시질초청이 단순한 휴식을 의미하는것이 아님을 직감하였다.

밤을 새우다싶이 하면서 낚시질준비와 함께 안해를 추겨 점심밥도 특별히 잘 준비하도록 하였다.

얼마동안 쓰지 않고 창고에 넣어두었던 자전거를 꺼내여 깨끗이 손질해 타고 약속된 시간을 기다려 낚시터로 가니 벌써 길옆의 반반한 잔디밭에 파란색의 낯익은 승용차가 비켜서있었다. 사람이 없는걸 보면 홍부상은 이미 운전사와 함께 물가에 나가앉은 모양이였다.

아닌게아니라 홍준모는 합수목아래쪽의 창포와 갈숲이 우거진 조용한 강녘에 두대의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있었다. 언제인가 유럽방문 때 사왔다는 농민모처럼 전이 넓은 해가림모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조그마한 쪽의자를 깔고앉은 자세는 배포유한 사람의 여유작작한 태도를 그대로 느끼게 했다.

성실한 운전사가 미끼통이며 조리며 고기를 담을 그물주머니를 적당한 자리들에 놓아주느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다가 권길수가 나타나자 눈치있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상동지.》

권길수는 홍준모의 등뒤였지만 허리를 깊이 꺾으며 인사를 했다.

홍준모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받았다.

《어서 와 앉소. 잔고기성화가 너무 진하구만.》

《날씨가 따뜻해지지 않았습니까.》

권길수는 물의 흐름상태부터 살펴보았다. 멀리 릉라도와 양각도를 에돌아 유유히 흘러내리는 대동강물은 그대로 한웅큼 퍼마시고싶을만큼 맑았다. 바로 그 맑은 물과 보통강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합쳐지는 물목이여서 여러종의 물고기들이 더 많이 모여든다던가.

정작 물가에 나서긴 했으나 권길수는 방금 홍부상이 잔고기성화가 너무하다는 말부터 들어서인지 예전처럼 성수가 나지 않았다.

보다는 부상이 오늘 무슨 일로 각별히 불러냈을가 하는 그 조바심때문이였다.

자리를 정하는척 하면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건너 쑥섬도 그렇고 아래쪽 강물속에 비껴드는 만경봉도 아카시아와 밤꽃이 한창이였다. 이런 날에는 아직은 잘 물리지 않는 물고기낚시질보다는 모란봉이나 릉라도같은데로 꽃구경을 갔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준모가 속을 들여다보았던지 핀잔조로 한마디 던졌다.

《왜, 흥이 안나오?》

권길수는 황황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늦어지는것 같아서 자전거를 냅다 몰아왔더니 숨이 좀 차서…》

《내 미처 그 생각을 못했거던. 오는 길에 집에 들려 같이 차를 타고왔으면 좋았을걸. 평천에 들려 일볼 생각만 앞세우다나니 이거 미안하게 됐소.》

《아, 무슨 말씀을… 제가 아무러면 부상동지의 차를 감히…》

《가만.》

홍준모는 갑자기 급한 소리를 치며 낚시대를 힘차게 잡아챘다.

깜부기가 물속으로 쑥 끌려들어갔던것이다.

물면에서 무엇인가 번쩍 하더니 낚시끝에 새끼손가락만 한 종개 한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올라왔다.

《에―에―》

홍준모는 혀를 차며 종개를 떼내여 풀숲에 휙 집어던졌다.

권길수는 더우기 사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상의 기분을 덧건드려놓을것 같아 재빨리 가방을 열고 정성들여 마련한 낚시도구함을 그의 옆에 꺼내놓았다. 각종 크기의 낚시들은 물론 형형색색의 깜부기와 연추들을 맵시있게 만들어 차곡차곡 넣어둔 낚시도구함이였다. 지금 홍준모가 쓰고있는 낚시들도 태반은 그 낚시도구함에서 보충한것이였다. 여느때같으면 우정이라도 《어, 이거 더 많아졌구만.》 하고 치하를 했으련만 홍준모는 얼핏 눈길만 한번 주고는 덤덤히 미끼만 갈아끼웠다.

권길수는 부러 홍준모와 퍼그나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그 역시 두대의 대낙을 물속에 던졌다.

까짓것 잡히려면 잡히고 말테면 말라지.

생각만이 뒤숭숭해서 물건너 밭갈이가 한창인 두루도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낚시대가 후들쩍 뛰는감을 느끼였다. 본능적으로 잡아채니 이게 웬일인가. 낚시대를 부러뜨릴듯이 휘우며 끌려올라오는것은 신바닥만 한 붕어였다.

《어어, 놓치겠소.》

어느새 띄여보았던지 홍준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더 급한 소리를 쳤다.

어망결인듯 한마리를 잡아 정신이 핑 돌지경인데 두번째 낚시대의 깜부기가 또 급하게 누웠다섰다했다. 이번에도 손바닥만 한 붕어가 해빛에 번쩍했는데 권길수가 어떻게나 힘껏 잡아챘던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풀숲에 떨어져 푸들쩍거렸다.

주변의 물고기들이 그곳에 다 모여들었는지 권길수의 낚시대깜부기는 미처 손쓸새없을 정도로 련속 숨박곡질을 했다. 10분도 되나마나했는데 큼직큼직한 붕어 네댓마리와 쏘가리 한마리가 자루처럼 긴 고기그물속에 들어갔다. 별로 흥이 나지 않아 시무룩했던 권길수의 입에서는 언제였던가싶게 아이들처럼 《또 한마리 잡았다!》, 《이크, 또!》하는 환성이 터져나왔다.

그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홍준모는 제 낚시대는 감감히 잊어버린듯 량허리에 손을 얹고 일어서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권길수는 그제서야 펄쩍 정신을 차리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안스레 말했다.

《아, 이거 부상동지.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십시오.》

그는 아수했지만 주섬주섬 자기 낚시대를 거두었다.

《아아, 이제 나한테두 고기떼가 오겠지 뭐.》

홍준모는 사양하는척 했지만 그 억양은 몹시도 탐나하는게 분명했다.

이왕 말을 뗀 일이라 권길수는 속에서 무엇인가 째지는것 같은 아픔을 참으며 깨끗이 자리를 냈다.

홍준모는 못 이기는척 하면서 스적스적 권길수의 자리로 옮겨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얼굴이 뜨끔했던지 혼자소리처럼 한마디 했다.

《거참 이상한 일이거던, 요기 와서 딱 뻗치기를 했는가? 어제밤 누가 여기 나와 덧미끼라도 뿌려놓았던건 아닐가?》

권길수의 얼굴에 웃음이 픽 어렸다. 하더니 인차 손으로 입을 가리며 초를 쳤다.

《그사이 물흐름새가 달라졌을수 있지 않습니까. 옹근 한해겨울을 났는데.》

얼결에 한 말이였지만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준모도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지, 그럴수도 있겠소.… 뭘 하고있소? 당신도 여기 가까이 와앉소.》

두사람의 낚시대가 경쟁적으로 오르내렸다.

그렇게 한시간정도 시간이 흘렀다.

어찌나 신바람이 났던지 권길수는 부상이 왜 불렀을가 조마조마하던 생각도 다 날려버렸다.

모여들었던 고기를 다 건져내기라도 했던지 점심때가 다가오면서부터는 다시 잔고기들만 시끄럽게 굴었다.

그쯤하면 어획고가 괜찮아 그들은 낚시대를 물우에 그냥 드리워놓은채 강변의 풀밭에 야외식사를 차렸다.

권길수가 성의껏 준비한데다 홍준모도 간단치 않게 마련해가지고나와 점심식사는 무척 푸짐했다.

얼굴이 불깃불깃해진 홍준모는 여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보기좋게 아래로 처진 배를 두손으로 슬슬 어루쓸며 《어 좋군. 역시 자연은 좋아!》했다.

그 말이 무슨 신호이기라도 한듯 운전사가 이번에도 눈치있게 점심자리를 거두었다.

하늘에는 해볕이 자글거리고 강물은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고 만경봉을 넘어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에는 진한 꽃향기가 실려 가슴이 뭉클뭉클했다.

아무리 자연경치가 좋아도 침묵은 인간의 마음을 긴장시키기마련이다.

권길수는 왜 불렀을가? 하는 사라졌던 조바심이 다시 덮쳐들었다.

이윽고 홍준모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학교소조조직이 잘되오?》

권길수는 입술을 꼭 오무리였다. 예견 안했던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 문제야 성에서도 너무 잘 알고있는 문제가 아닌가.

분명 보다 큰 문제를 던질 차비인데 그러고보면 소조조직문제는 대화의 통로를 열기 위해 변죽을 치는게 아니겠는가.

선듯 짐작이 가지 않아 권길수는 책임적인 대답을 고르는척 하다가 죄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성의 의도대로 잘 집행하지 못했습니다.》

홍준모는 의아한 투로 물었다.

《성의 의도라니? 그건 무슨 말이요?》

권길수는 어리둥절하였다.

무슨 말이라니, 이건 또 무슨 아닌보살인가?!

등골에 닭의 살같은것이 쫙 돋는것 같았다.

그는 이런 때일수록 선을 명백히 세워야겠기에 용기를 냈다.

《거 가능한 몇개 소조만을 먼저 시범적으로 조직하라는…》

홍준모가 펄쩍 뛰기라도 하듯 권길수의 말을 잘라버렸다.

《여보, 성에서 언제 그런 지시를 주었소?》

《저, 글쎄 정식 지시문같은건 내려보내지 않았지만 경험적으로 먼저 해보는것이 좋겠다는 의도야 명백히…》

《챠 이거 사람잡겠구만. 아니, 그거야 개별적으로 의견을 표한것이지 그게 성의 지시요?… 성의 의도라면 성의 지시라는 말과 같지 않소. 동무네한텐 정말 주의해야겠구만, 왜? 당신도 교장을 닮아가는게 아니요?》

홍준모의 말은 마디마디가 찌르는것처럼 날카로와졌다. 그는 사전에 단단히 못이라도 박듯이 정색해서 말을 이었다.

《여보, 이제라도 똑똑히 듣소. 모든 학생들을 다 다방면적으로 준비된 혁명인재로 키우자는것은 일관된 당의 요구요. 가능한 모든 소조를 다 조직하고 광범한 학생들을 망라시켜야 한다는 교장선생의 주장이야 백번 옳은게 아니요?… 내 그래서 우리 종팔이부터 앞장서라고 했소. 우리 그애가 자동차소조에 들었겠지?》

《예, 걸써 이름만은…》

권길수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어름어름 말끝을 얼버무렸다. 머리가 팽이처럼 돈다고 은근히 자부하던 그였지만 홍준모의 속내는 도무지 료량을 할수가 없었던것이다.

아무리 권한이 하늘에 뻗쳤다고 해도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이렇게까지 손바닥뒤집듯 할수가 있는가.

숨이 꺽 막히는중에도 한가닥 실마리만은 용케도 찾아쥐였다.

홍종팔학생이 자동차소조에 걸써 이름을 붙여놓은것은 이 아버지의 권고로 해서라는것과 무슨 일로인지는 모르나 오늘의 이 단독담화의 초점은 권길수 자기 문제가 아니라 교장문제라는 짐작이였다.

그러자 그는 어지간히 가슴이 열리면서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하면서도 일체 내색은 말아야 한다는 자각에 입술을 더 꼭 다물었다.

그의 짐작은 옳았다.

홍준모는 이즈음 교장을 생각하면 젖먹은 밸까지 울컥하는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참하고 순박한것 같지만 밥대신 원칙만을 먹고 사는지 도무지 용수가 없어서 아무리 침질을 해도 들어먹지를 않았다.

권길수가 앓아도 되게 앓을만 했다.

지난해 수도건설동원때의 일만 봐도 그렇지 않는가.

학부형쪽에서 제기하지 않아도 직속 부상의 자녀문제를 응당 자기편에서 먼저 생각을 하고 사전대책을 세워주었더라면 이 부상이 눈감고 모른척 하겠는가. 오는 정 가는 정!… 한데 오히려 교무부장을 문제시했다니 이것이야 교무부장이 아니라 이 홍준모에게 대고 하는 로골적인 삿대질이 아닌가. 어디 보자, 당신도 사람일진대 잘못하는게 없겠는가.

돌이켜보면 그한테 그런 감정이 깔리기 시작한것은 새 학교에 부임되여간지 며칠 되지도 않은 교장이 아들 종팔의 학급반장선출문제를 물망에 올렸을 때부터였다.

사실 고급반에 올라가는 아들을 다른 학급으로 옮긴데는 그 기대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그 엎음갚음이라고 할가.… 아들의 권위와 위신을 위해 아니할 일이였지만 다른 학교에서 입학시험을 친 최원석이란 학생을 종팔의 청대로 그네학교로 조동시켜주는 조치까지 취해주었었다. 한데 학급반장은커녕 이래저래 말썽만 일으키다가 종시는 다시 다른 학급으로 또 돌려앉히지 않으면 안되였었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그는 그 모든 불미스러운 일은 다 교장때문인것 같은 생각이 나날이 더해갔다.

걸려만 들면 용서치 않으리라 이를 사려물다싶이 했다.

권길수에게 교장의 사업정형에 대해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과업도 주어보았다. 했으나 진짜 무슨 사람이 그런지 좀처럼 시비거리가 잡히질 않았다. 권길수의 입을 통해 이것이다 하고 잡아채서 뒤조사를 해보면 다 당과 국가의 교육정책집행문제로서 자칫하다가는 오히려 꺼꾸로 걸려들수 있는 일들이였다.

생각할수록 나날이 입안에서 신물이 돌던 때에 무릎을 탁 칠 일이 생겼다. 모든 학교들에서 학생과외소조조직운영과 관련하여 모범적인 학교를 하나 내세워 평양시적인 방식상학을 조직하라는 성의 과업이 홍준모에게 맡겨졌던것이다. 먼저 시적인 방식상학을 해보고 그 성과를 확대하여 다음단계로는 전국적인 참관을 조직하자는것이였다.

그는 환성이라도 올리듯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남산고중을 찍었다.

그에 대해서는 교육상은 물론 모두가 옳다고 지지하였다. 시적으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응당 내세워야 할 학교이기도 한데다 문학 및 연극소조를 비롯하여 이미 몇개의 연구소조를 조직운영해본 경험이 있다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은 과외소조조직문제를 놓고 그 학교에서 당초부터 교원들사이에 의견들이 잘 맞지 않는다는데 대해서는 몰랐다.

학교자체로 조직하는 일을 놓고도 의가 맞지 않아하는데 시적인 방식상학이라고 하면 교장은 더 펄쩍 뛸것이 틀림없었다.

더우기 개교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신설학교인 지금형편에서 그의 주장대로 모든 학생들을 다 망라하는 과외소조조직과 운영이 과연 가능할텐가. 그것도 전국적인 참관학교수준에까지 올려세워야 할테니말이다.

설사 교장이 부득이 자기 주장을 철회한다고 해도 시적인 방식상학의 높은 요구를 집행하자면 무엇이든 걸려들것이 있을것이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교장직에서 떼버리든가 다른 학교로 조동을 시키리라 결심했다.

한다하는 대외사업경력에다 성에서는 서뿔리 건드릴수 없는 권위있는 일군이라 자부하는 그는 자기의 그 결심이 어떤 후과를 초래할런지에 대해서는 감감 생각조차 못했었다.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결심한 그는 우선 권길수부터 잘 닥달하여 내세워야겠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좀 찜찜한것은 권길수의 바람따라 돛을 다는듯 한 그의 인생관이였다. 아니, 때로는 경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성미였다. 오죽하면 《로밤》이라는 꼬리까지 붙어다니겠는가. 아차 잘못하여 그의 입이 한번 실수를 하면 불꼬치가 아니라 불덩어리가 되려 자기의 정수리로 날아들수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얼마든지 그의 집에 들려 승용차를 같이 타고 올수 있었지만 평천에 볼 일이 있었다는 구실로 제 혼자 먼저 낚시터로 나왔던것이다.

언제 다정스럽게 마주앉아 즐거운 식사를 나누었던가싶게 권길수를 한대 후려치고난 홍준모는 저으기 정색하여 말했다.

《이것보오 권선생. 학교에 경사가 차례졌소. 학생과외소조조직운영과 관련한 시적인 방식상학을 준비해야겠소.》

《예?… 시적인?!…》

《그래, 1단계로 시적인 방식상학을 하고 이어 전국이 다 와서 배워가도록 하기로 했단 말이요. 늦어도 3~4개월동안에.》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지금형편에서 그게…》

권길수는 입만 쩍쩍 벌렸다.

홍준모는 모른척 하고 더 공식적인 어투로 말을 이었다.

《성에서도 신중히 론의하고 결정한거요. 이번 기회에 그 학교 교원들 특히 책임일군들의 실력을 검증받게 된다는걸 명심하는게 좋소.》

권길수의 낯은 점점 더 흙빛으로 변했다. 그 모색이 너무 참혹하게 보였던지 홍준모는 조였던 끈을 얼마간 풀어주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건 없구. 권선생이야 어디까지나 교무부장이 아니요. 책임질 사람이야 따로 있겠지.… 거 아직도 경험적이냐 대중적이냐… 입씨름이 계속되고있소?》

《예, 교장선생의 고집이 어찌나 완강한지… 전국적인 참관이라면 결국 전국적인 방식상학이나 같은데 문제는 더욱 심중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는 명백히 성에서 결론을 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여보, 선생은 언제 가면 우에 의존하는 버릇을 고치겠소? 성에서 그런 문제까지 이래라저래라 해야겠는가. 내 아까도 말했지만 교장의 주장이야 백번 옳은게 아니요. 옳은 문제를 가지고 항차 교무부장이란 사람이 자꾸 다툴 필요가 있소? 교장이 하자는대로 해보란 말이요.》

홍준모는 저도모르게 한쪽눈을 찡긋해보였다. 얼굴에는 조소의 빛이 얼핏 비꼈다.

눈치빠른 《로밤》이 그것을 놓칠리 없었다.

《예―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권길수의 얼굴에 비로소 구름이 가시여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너무할것 같아 제꺽 두무릎을 꿇고앉으며 허리를 갑삭 수그렸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상동지. 전 그저 성에서 하라는대로만 하겠습니다. 계속 잘 도와주십시오. 고맙습니다 부상동지.》

홍준모는 만족하여 점잔을 뺐다. 누가 붙였는지 《로밤》이란 별명이 신통해.… 하고 생각하면서 한마디 더 단단히 못을 박았다.

《내 재삼 하는 말인데 교장과 자꾸 충돌하지 말라구. 교무부장이 교장과 자꾸 다투어 리로울게 있는가. 학교사업은 또 뭐가 되구.》

《아, 글쎄 이젠 다 알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낚시질… 참뜻이 깊습니다. 내 정말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홍준모는 벌레라도 들어갔는지 손가락으로 귀를 우비였다. 이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젠 돌아가기오. 자전걸 가지고 나왔으니 차를 같이 타고 가지는 못하겠구만.》

《아, 원 같이 타다니요. 기분도 좋은 날인데 나 혼자 천천히 뒤따라 가겠습니다.》

권길수는 자기가 잡은 물고기와 함께 품들여 장만했던 낚시도구함을 통채로 승용차의 짐틀안에 넣어주었다.

먼저 승용차에 올라앉은 홍준모는 못본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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