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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제 5 장


5


어느덧 대동강에는 얼음이 다 풀리고 푸른 물이 출렁이였다. 한해 좀 남짓한 기간에 건설공사를 완전히 끝낸 련광정과 대동강다리사이의 넓은 강반에는 버들가지들이 실실이 푸르러 봄빛이 완연하였다.

일요일의 한낮이라 새로 꾸려진 수도 평양의 대동강유원지는 휴식객들로 한벌 덮였다.

누구나 구슬땀 흘리며 쌓아올린 석축우에 일매지게 포장을 한 강반을 거닐며 로동의 보람과 생의 희열을 한껏 느끼는듯싶었다.

화창한 봄날의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듯 한 강물우에 꽃잎마냥 떠도는 아롱다롱한 꽃배―색칠을 새로 곱게 한 뽀트들은 물론 그우에 올라 행복에 들떠 웃고 떠드는 청춘남녀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환희로운가.

련광정과 대동문사이의 아름드리 백양나무밑 긴 나무의자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남녀 두 학생청년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오래간만에 단 둘이 만난 장운영과 홍종팔이였다.

홍종팔이 오늘 일요일 오전 10시에 이곳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해왔던것이다.

어제 오후는 장운영으로 하여금 은근히 기다려지던 날이였다.

한것은 며칠전부터 인민반장어머니가 토요일 오후 4시부터 동사무소에서 공민증을 수여하는 모임이 있으니 늦지 말고 꼭 참가하라는 기별을 몇차례나 해왔기때문이였다.

공민증! 나도 이제는 당당한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였다. 더우기 가슴을 한껏 설레이게 한것은 이제부터는 국가적인 선거에도 참가하게 되겠구나 하는 긍지감이였다.

몸가짐을 더 의젓하게 하고 말도 될수록 적게 하려 했다.

학급동무들이 의아해서 수군수군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만이 인차 알아차리신 모양 의미있는 미소를 보내주군 하셨었다. 그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군 했다.

지정된 시간에 동사무소로 가니 넓지 않은 마당안은 사람들로 꽉 찼었다. 태반이 애어린 로동청년들과 대학생들이였고 저같은 고급반 학생은 많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와야 할 곳에 서둘러 오기라도 한것 같은 일종의 위압감에 눌려 마당 한구석으로 피해가려는데 멋쟁이청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장운영은 입을 항 벌리며 마주보았다. 머리칼에 향기로운 기름을 발라 멋있게 빗어넘기고 어른들처럼 제낀형의 양복을 입은데다가 희한한 넥타이까지 맨 홍종팔이였던것이다.

지난해 돌발적으로 다른 학급으로 넘어간 이후로는 별로 가까이 상종해본적이 없는 그였다.

수수한 옷차림을 한 로동청년들과 대학생들이 일제히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장운영은 얼굴이 화끈하면서 당황해졌다. 한학교 학생이 행사장에서 만나는것자체야 무슨 별스런 일이랴만 중학교 녀학생이나 다를바없는 자기의 옷차림때문이였다.

가뜩이나 위축감이 크던 그는 당장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치고싶은 심정이였다. 다행히 인민반이 달라 동사무소일군이 마당으로 나와서 인민반순서대로 줄을 세워 서로 떨어졌길래 망정이지 장운영은 공민증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도망이라도 쳤을런지 몰랐다.

파란색표지의 공민증을 받아들었지만 처음과 같은 그런 긍지와 자부심은 느끼지 못했다.

빨리 사람들속에서 피하고싶었을뿐이였다.

서둘러 동사무소마당을 벗어나려는데 먼저 공민증을 받아가지고 나왔던 홍종팔이 정문밖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급히 사라지고만싶었던 장운영은 어지간히 긴장해졌다. 홍종팔의 얼굴표정과 눈빛에서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끼게 하였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그는 더욱 뚜렷하게 측은하고 동정심까지 어린 눈길로 장운영을 마주보면서 이전의 본태대로 완력적인 어조로 말했다.

《공민이 된 기념으로 어디든 좀 가지 않겠어? 대동강에든 모란봉에든, 사진도 한장 찍고.》

그의 말대로 일생의 기념으로 얼마든지 사진같은것도 남길수 있겠지만 장운영은 그의 그 심상치 않은 눈길부터가 싫었다.

하면서도 이제는 어른인데 어른답게 처신을 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어 나직하면서도 침착하게 거절하였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집에서 어머니가 기다리고있어요.》

홍종팔이 그것이 거짓말이라는것을 모를리 없었다. 그러자 그는 대뜸 조소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더 완강히 압력적인 투로 나왔다.

《시간이 없다면 할수 없지. 하긴 어머니한테 공민증을 보이고싶기도 할것이구. 하지만 보다 먼저 알아야 할 일도 있지 않을가?》

마지막말은 위협기까지 풍기였다.

장운영은 의아해서 마주보기만 했다.

홍종팔은 우쭐하듯이 고개를 건듯 들며 거만스럽게 이었다.

《잘 생각해보구 결심해. 난 전적으로 운영일 생각해서 그러는거야. 이전의 정을 봐서. 오늘은 시간이 없다니까 더 권하지 않겠는데 하다면 래일 오전 10시 련광정앞에서 만나자. 물론 래일도 시간이 없다면 할수 없는 일이구. 자, 그럼 안녕!》

홍종팔은 손을 척 들어보이고나서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장운영은 찌르는듯 한 모욕감으로 눈물이 쏙 났다. 하면서도 홍종팔의 그 례사롭지 않은 언행에는 가슴이 조여듬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는 홍종팔의 그 거만하고 조소적인 언행이 무엇때문이였던가를 저녁도 퍽 늦어서야 알게 되였다.

문학예술부문에서 지난해의 창작정형총화가 있었는데 아버지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였던것이였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가, 예술인들앞에서 하신 연설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낡은 사상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릴데 대하여》를 접하고 강한 사상투쟁을 벌리였었다. 창작기관들에 잠재해있던 사대주의, 교조주의, 수정주의, 가족주의 등 적지 않은 문제들이 폭로비판되고 과오가 엄중한 창작가들과 일군들이 대렬에서 떨어져나갔다.

아래단위들에서의 창작총화는 새해 설을 맞으면서 일시 중단되였다가 다시 시작되였는데 기본은 성기관의 지도일군들에 대한 사상관점과 사업작풍문제에 대한 비판이였다.

부상인 장운영의 아버지 장초라고 례외로 될수 없었다.

엄중히 거론된것은 벅찬 시대의 요구에 맞게 일을 대담하게 전개하지 못하고 웃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맹종맹동한것과 특히 외국문학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지어 수정주의적경향까지 발로시켰다는것이였다. 사업과 창작지도에서 주대가 약한 문제는 자기가 직접 담당한 창작기관의 재능있는 작가 박문규의 아버지문제를 편협하게 처리한것으로 하여 더욱 심각해졌다.

당에 충실하고 위대한 수령님께 충실한 작가들을 작가대렬에서 하나하나 떼내려고 음으로양으로 책동한자들의 음모를 옳게 가려보지 못하고 맹종맹동한 문제는 개별적일군들에 대한 환상과 아부굴종적인 행위로까지 락인되여 심각하게 비판되였다.

낯이 컴컴하여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저녁밥도 들지 못했다.

온 식구가 다 숟가락도 들지 못한채 밥상에서 물러나앉았지만 아버지는 너무도 큰 죄책으로 해서인지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장운영도 밤새 잠을 못 잤다. 공화국의 공민이 되여 한껏 부풀어올랐던 기쁨과 긍지가 단 몇시간도 안돼서 그렇듯 가차없이 된서리를 맞을줄은 몰랐다. 죄책감으로 모대기는 아버지앞에 꼬치꼬치 사연을 물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어머니를 통해 겨우 몇마디를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왈칵 무너지는것 같았다.

제 생각에도 제일 죄스러운것은 박문규네 집문제였다.

문규가 이 일을 안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다른 작가들은 몰라도 문규아버지만이라도 왜 배심있게 옹호해나서지 못했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좋은 시들을 썼다고 높이 평가해주신 그런 꿈같은 믿음을 받았던 시인,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시 《조선의 어머니》를 들으시며 그토록 감동하였다고 하신 그 믿음만으로도 얼마든지 당당하게 보증을 하고 막아나설수가 있었던 아버지가 아닌가.

막지는 못하고 오히려 나쁜 놈들의 음모에 편승을 해서 우유부단하여 옳은 말 한마디 못했다니 이 얼마나 큰 죄인가.

박문규가 떠나던 날 평양역에서 휘뿌려지는 비발을 다 맞으며 바래주시던 김정일동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프게 떠올랐다. 우산도 없이 옷이 다 젖도록 비발속에 서계시였으니 문규동무를 떠나보내는 그이의 가슴인들 오죽 하셨겠는가.

오죽 놀랍고 믿어지지가 않았으면 학생으로서 성기관에까지 찾아가셨댔겠는가. 그때도 아버지의 립장은 어떠했으며 기껏 했다는 말이 무슨 말이였던가!…

비록 큰것은 아니지만 아껴오던 만년필과 수첩이나마 박문규한테 주어보낸 일이 다행스럽기도 하였다. 그 만년필로 공부를 하고 작품도 쓸가? 그 수첩에 쓴 《우정에 대한 생각》을 보면서는 무엇을 생각하군 할가? 그날 평양역으로 나갔던 일이 정말 다행이였으며 주저주저하는 자기를 단연코 역전으로 나가도록 타일러주고 이끌어주신 김정일동지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참말이지 저마저 얼굴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말그대로 온 가족이 뭐가 되였겠는가. 하긴 그때 뭐라고 하셨던가. 박문규도 그렇지만 이 장운영이도 일생 앙치처럼 가슴에 깔려있을것이 아니냐고 하신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념두에 두셨던것이 아니였을가!

김정일동지에 대한 그 고마움과 박문규는 물론 그의 아버지에 대한 미안감, 후회와 더불어 너무도 상반되게 불쑥불쑥 눈뿌리를 찌르는것은 동사무소마당에서 만났던 홍종팔의 얼굴이였다.

그는 무엇인가 깊이 알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그가 알고있다면 틀림없이 저의 아버지를 통했을것이다. 그 거만하고 조소적인 언행은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든 아버지문제를 당장 더 구체적으로 아는 길은 그를 만나는것이여서 운영은 약속한 시간에 련광정앞으로 조용히 나왔던것이다.…

사람들이 앞으로 지나가고 다가오면서 자꾸 쳐다보아 장운영은 좀처럼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빨리 아버지문제를 묻고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칠 않아서 속만 자글자글 끓었다. 이전의 옛정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장운영은 홍종팔을 중학시절부터 환상적이리만큼 높이 보아왔었다. 름름한 체격에 위신있는 몸가짐, 유식한 말마디, 무엇인가 학급전체를 꾹 누르는듯 한 위엄! 때때로 장운영 저까지도 업신여기고 내려다 보는듯 한 교만이 느껴지군 했지만 그는 그것을 오히려 녀학생들은 감히 견줄수도 없는 대장부다운 장점으로 여기였었다. 그래서 그와 가까이 지내는것을 항시 자랑으로 여겼으며 동무들앞에서도 별로 주저하거나 꺼림을 몰랐다. 좀 조심을 했다면 아직은 학생인것만큼 학생으로서 우정의 한계이상 더 넘지를 말아야 한다는 녀학생으로서의 본능과 자각으로 인한 경계심이였다.

한데 환상적이리만큼 절대적인것으로 믿었던 그것이 끝내는 담벽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졌으니 한것은 조립식건설문제를 놓고 류룡철과 뜻밖의 충돌을 일으킨데 이어 특히는 지난해 봄 온 학교 학생들이 수도건설지원전투를 벌릴 때부터였다.

그는 돌발적이라 할만큼인 홍종팔의 위병치료작전은 명백히 수도건설동원에서의 회피로서 아버지의 등을 믿고 하는 부끄러운 현실도피행위라고 확신하였다.

자기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승용차를 타고 외할머니의 집으로 떠나는 날 아침 집앞에 차를 세운 운전사가 경적을 울렸지만 모르는체 하고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너무 지꿎게 굴기에 어머니를 내보내여 지금 집안에 없다고 적당히 《량해》를 구해 떠나가게 했었다.

홍종팔이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떠날 때부터 그렇게 쓸쓸하고 지어 서글프기까지 해서였던지 홍종팔은 정작 외할머니네 집에 가긴 했지만 그는 또 그대로 마음이 가볍지 못했었다. 가뜩이나 쇠비린내와 류황냄새같은것을 느끼게 하던 약수였던지라 점점 더 역해져서 처음 며칠간만 약수터에 다니고는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외할머니가 입맛을 돋구고 몸보신을 시킨다며 하루가 멀다하게 닭곰을 만든다, 토끼곰을 한다 분주탕을 피웠지만 몸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살이 빠지는것 같았다. 나날이 더 야속스럽게 덮쳐드는 고독감에 미칠것만 같았다. 그 고독감은 비로소 후회의 파도를 몰아오기 시작하였다. 제일 큰 후회는 초급단체총회에서 예상밖의 된《폭격》을 당했던 일이였다. 그때 그저 《잘못했습니다.》하고 성근하게 접수를 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겠는가. 제가 생각해보건대도 그날의 그 뻣뻣한 태도는 오만무례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만큼 잘못된것이였다.

더우기 후회가 큰것은 그 회의가 끝난 후 김정일동지와 만난 이후의 일이였다. 옛정 그대로의 친절하고 다정스럽고 너무도 허물없는 담화여서였던지 그는 진짜 눈물을 머금으며 고마움을 느꼈고 그이를 위해서라도 더이상 말밥에 오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했으나 마음뿐이였지 실지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았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될것 같았으면 교장선생은 물론 선정화선생과 리용이 몇차례나 만나 따뜻이 안타까운 말로 일러주고 충고도 주군 했을 때 이미 고쳐지지 않았겠는가.

때로는 저도모르게 입술을 깨물게 되던 그 아픈 후회와 고독의 40여일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그는 학급도 옮긴것만큼 이제부터는 정말 어깨를 낮추고 모범이 되리라 결심하였었다. 그러면 누구보다 기뻐함은 민청부위원장동무일것이며 그것은 또한 그이앞에서의 말없는 진정한 반성이며 속죄로 될것이라 믿었다.

우선 장운영과의 관계부터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서는 그것이 제일 빠르고 쉬운 길이라고 여겼다.

한데 가까스로 쌓고쌓았던 그 탑은 학교마당에 들어서는 첫 순간 왈카닥 무너지고말았다. 눈에 띄우는 학생들마다가 얼굴색이 검실검실한데다 체격들도 몰라보게 튼튼하고 그쯘해졌는데 희여멀쑥한 자기의 얼굴색부터가 도저히 어울릴것 같지 못했던것이다. 마주치는 눈길들마다가 어디서 이런 멍청이가 나타났어 하고 쓴외 보듯 하는것 같아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교무부장선생을 비롯하여 몇명의 학급동무들이 반가와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외교하는것처럼 느껴지면서 예전같질 않아보였다.

공교롭게도 복도에서 류룡철과 성효정, 주영화와 지나쳤는데 분명 눈길은 마주쳤댔건만 본체도 않고 꼿꼿해서 지나가버렸다.

죄감에 앞서 모욕감이 왈칵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저것들한테 고개를 숙여?》 하는 반발심에 머리끝까지 피발이 곤두서게 하였다.

더우기 참을수 없는것은 장운영이였다.

그래도 그만이야 하는 기대감으로 휴식시간마다 그의 교실쪽으로 자꾸 눈길이 가군 했는데 두시간수업이 끝난 휴식시간에야 교실밖으로 나오던 그의 눈빛이 얼마나 차고 쌀쌀했던지 입이 쩍 벌어졌었다.

힘겹게 눌러앉혔던 자존심은 오히려 더 참을수 없는 반발과 오연으로 폭발하였다. 환자로서 병치료를 갔댔는데 뭐가 어쨌단 말이냐 하며 배를 내밀기까지 했다.

이튿날부터는 의아할 정도로 웃고 떠들고 롱담을 던지면서 허세를 부렸다. 특히는 제편에서 보란듯이 장운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가 보는 앞에서 저의 학급 녀동무들과 우스개판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 속에 한해가 흘러갔고 그러는 사이 이제는 언제 알았던가싶을 정도로 사이가 아주 버그러졌는데 장운영은 마치도 홍종팔과 마주치군 할 때마다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낯설은 남학생을 대하는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면서도 인간의 정은 참으로 료량을 할수없이 이상스러운것이라는것을 서로가 느끼고있었다. 서로가 매양 등을 지고 돌아섰음은 분명하건만 서로의 촉감은 항시 호상간에 쏠리고있는것은 물론 눈길을 피하면서도 매사건건이 서로 놓치는 일이 없었던것이다.

남자의 너그러움에서였던지 홍종팔의 편에서 먼저 동토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40일동안의 회피문제도 장운영의 지성과 자존심으로는 실망도 할수 있고 오해도 할수 있었을것이라고 아량있게 생각하였다. 경일호와 같은 꼬맹이는 물론 성효정과 같은 애리애리한 녀학생들도 40일동안이나 힘겨운 로동을 이겨냈는데 전교적으로도 한다하는 남학생이 도주병이 된것이나 같았으니 누구보다 정의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장운영으로서는 충분히 그럴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장운영과의 우정을 다시 회복하고싶었다.

그런데 예상밖의 일이 생기였다.

아버지로부터 장운영의 아버지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것 같다는 뜻밖의 소식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십중팔구 박문규의 아버지처럼 지방으로 나가게 될것이라고 했다.

그 예측이 점점 기정사실로 느껴지자 그는 남자답게 위안도 하고 무엇이든 위해주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은 응당한 인간적도의라고도 여겨졌었다.

박문규가 평양을 떠날 때 어떻게 했던가.

장운영도 박문규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떠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차 그는 녀자가 아닌가.

한데 마음은 그렇건만 좀처럼 통하지가 않았다. 받아들여야 할 당자의 태도가 여전히 팽팽했던것이였다. 정작 련광정앞으로 불러내고 조용한 나무밑을 찾아 나란히 앉긴 했지만 여전히 쌀쌀하고 도고하면서도 바싹 경계하는 태도에 그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입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장운영은 저의 아버지문제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는것이 분명한데 아직은 명백히 결정도 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입에 올린단 말인가.

낯이 설기라도 한것처럼 랭정랭담하고 얼음덩이처럼 찬 장운영의 태도에 괜히 욱해서 대동강가로 불러낸 일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단 마주 대한 일이니 무슨 말이든 해야 할게 아닌가.

겨우 한다는 말이 지난날에 대한 인사치레의 속죄였다.

《그동안 나 욕많이 했지?》

동문서답격인 그 말은 장운영의 신경을 몹시 자극하였다. 하여 내색을 않고 얌전히 침묵만 지켰다.

홍종팔은 한숨을 가볍게 내불고나서 혼자소리처럼 이었다.

《솔직히 난 그 학급에 그냥 있을수 없었어. 자존심이 허락치 않은것도 사실이지만 특히는 정일동무가 공부하는 학급에 그냥 있다는게 죄스럽기도 했던거야. 그 학급이 어떤 학급이야?… 이 측면은 운영동무도 충분히 리해해주리라고 믿었어. 다른 사람들은 설사 몰라준다고 해도 말이야.》

장운영은 얼핏 그의 얼굴을 일별했다. 진짜 그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얼마간의 긍정도 되였다. 했으나 인차 고개를 저었다. 실지 그랬다면 왜서 대담하게 고칠 생각을 못했는가?

장운영은 입술을 꼭 옥물면서 더욱 새침했다. 속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했으나 무엇인가 또 얼리우고 속히우는것 같았던것이였다.

서로 팔을 끼고 부축을 하며 대동문쪽으로 걸어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좀 놀라는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장운영은 얼굴이 활딱 붉어지면서 숨이 컥 막혔다. 후닥닥 일어나 달아나고싶었지만 가까스로 진정을 하며 무릎우에 올려놓은 손가락만 꼭꼭 주물렀다.

그는 홍종팔이 무슨 말인가 또 번지려는것을 나직이 밀막았다.

《한데 먼저 알아야 할것이 있다고 한건 무슨 말이예요?》

홍종팔은 급소라도 찔리운듯 당황해했다. 얼굴이 벌개서 어름어름 했다.

《그 그건 뭐… 아니 뭐 운영동무가 몰라서 그래? 실은 나도 걱정돼서 그래. 우리 아버지랑 다!》

장운영은 저로서도 이상스럽게 침착해졌다. 하여 놀라울만큼 례사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고마워요. 한데 걱정된다는건 뭐예요?》

홍종팔은 흠칫하며 장운영을 면바로 쳐다보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가 하는 빛이였다. 그는 얼결에 왕청같은 거짓말을 한마디 했다.

《거 문규 있잖아, 편지가 왔는데 몹시 힘들어하는것 같애. 하긴 스스로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평양하구 같겠어?》

장운영은 눈앞이 아찔하면서 머리우에서 무엇인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홍종팔이 분명 거짓말을 한다는걸 알았던것이다. 박문규가 홍종팔에게 편지를 쓸수도 없거니와 설사 썼다고 해도 절대로 힘들다고 나약한 소리를 할 동무는 아니라는 확신에서였다.

더우기는 김정일동지께서 전해준 소식이 있지 않는가.

언제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주 기뻐하시면서 박문규한테서 받은 편지를 학급동무들한테 읽어준 일이 있었다.

새로 간 학교에도 좋은 동무들이 많고 훌륭한 교원들도 있고 고마운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렇고 자기도…

김일성원수님께서 이끄시는 우리 나라는 어디 가나 한집안, 한가정이라는것을 나날이 더 뜨겁게 느낀다고, 그래서 자기는 김정일동지께서 지으신 노래 《조국의 품》을 더 자주 부르면서 동무들한테도 배워준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운 이야기들을 많이 썼던가.

그는 홍종팔의 말은 틀림없이 아버지문제도 박문규의 아버지문제처럼 될수 있다고 그네 집일을 빗대여 암시하는것이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한순간 눈앞은 아찔했지만 인차 마음은 진정되였다. 어제밤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통 잠이 들수 없을제 무슨 생각인들 안했고 어떤 각오인들 다지지 않았으랴.

여하튼 누구보다 먼저 알고 걱정을 앞세워주는 홍종팔이 고맙게도 여겨졌다. 어느 정도 진심인가 하는것은 더 두고보아야 할 일이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현 시점에서 무엇인가 지난날의 일들을 반성하고 일종의 량해도 구하려 하는것만은 믿어주어야 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는 바위돌에라도 짓눌리우는것 같던 가슴이 어지간히 들리우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도 이제껏 하지 못했던 말, 해주고싶었던 말을 하고싶었다.

그는 한동안 사색의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나 역시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였어요. 용서를 빌어요. 이렇게 만난 기회에 꼭 하고싶은 말은… 물론 피치 못할 사정도 있었겠지만 학급을 옮긴건 정말이지 잘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감스러운 탈선이라고 할가… 방금 종팔동무도 말한것처럼 우리 학급이 어떤 학급이예요? 인간은 항시 자기를 비춰볼 거울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장운영은 그만 말을 뚝 끊었다. 무슨 기대인가를 안고 귀솔곳이 듣는것 같던 홍종팔이 고개를 홱 들어 운영을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찌르는것 같았던것이였다.

장운영의 눈빛도 다시금 싸늘해졌다. 차거운 눈빛들이 챙소리라도 낼듯이 마주쳤다가 인차 엇갈렸다.

일단 운을 뗀지라 장운영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글쎄 달진 않겠지만 끝까지 들어줘요. 종팔동무도 옆에서 늘 보고있겠지만 우리 학급동무들이 얼마나 몰라보게 달라지고있어요? 주영화, 리용, 성효정, 경일호… 매일, 매 시각 정일동무를 따라배우기때문이 아니겠어요.

내 경우만 봐도 그래요. 사실말이지 한해전까지만도 내가 어떻게 체신머리없이 놀았어요. 저이상 없는것처럼 우쭐해서 동무들을 깔보기까지 하면서… 난 그걸 영화동무와 가까이 지내면서 더 똑똑히 알게 되였어요.… 미안해요. 글쎄 내 말을 막지 말아요.…》

장운영은 두손을 펴서 내들어보이며 어지간히 모를 세웠다.

《난 늦게나마 우리와 그들사이엔 명백히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는걸 깨달았어요. 뭔가? 우정에서의 진실, 진정!… 우정이란 곧 사랑이며 진정한 동지적사랑은 자기를 바치는것이 아닐가요? 자기위주로 생각하면서 요구만 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 깨끗한 우정이라고 할수 없다고 생각해요.》

홍종팔의 얼굴이 험상스레 이지러졌다. 그러더니 팩 성을 냈다.

《뭐?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럼 내가 내 생각만 했다는거야? 이건 정말…》

장운영도 표표해졌다.

정말 자기를 몰라서인가? 하긴 모를수도 있다. 동무들이 자기들의 관계를 뭐 어쩌는것처럼 어처구니없이 보고있을 때도 그래, 승용차를 태워줄 때도 그래, 항시 자기는 모든것을 운영을 위해 그런다고 하군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이 진짜 진심으로 나를 위한것이였던가?

그는 역겨움이 치밀었지만 더욱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글쎄 그렇게 성을 내지 말고 마저 들어줘요. 종팔동무도 문규동무가 떠나는걸 동무들이 어떻게 바래주었는지 봤지요? 정일동무랑… 부위원장동문 지금 또 원석동무때문에 무척 마음쓰고있어요. 물론 이것도 영화동무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종팔동무, 이것이 진짜 진정한 우정이고 깨끗하고 뜨거운 동지적사랑이 아니겠어요? 난 룡철동무가 좀 싱겁게 놀긴 해도 어떻게 돼서 동무들이 다 좋아하는지, 더우기는 정일동무와도 그렇게 친근한지를 지금에야 알게 됐어요. 어때요? 우리한텐 분명 그게 부족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장운영은 오늘의 일도 그렇지 않느냐는 말까지 튀여나오는것을 힘주어 꾹 누르면서 마지막진정을 터쳤다.

《인생길은 굽이굽이 천만굽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요. 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종팔동무가 자신을 대담하게 반성하고…》

《반성?!》

홍종팔의 입에서 돌연 차돌같은것이 튀여나왔다. 그 《차돌》은 정확히 장운영의 면상을 후려쳤다.

장운영은 갑자기 서리발같은것이 콱 들씌워지는것 같으면서 등골이 오싹했다.

산악같은 눈더미에 눌리운듯 한 침묵이 흘렀다.

운영은 그 침묵이 어딘가 이상스러워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홍종팔은 아연해서 당황하기까지 하는 장운영은 보지도 않은채 두팔을 날개처럼 활짝 펴서 긴의자의 등받이 웃가녁에 얹고 한쪽다리는 다른 다리우에 건둥 올려붙였다. 그리고는 올려놓은 다리를 건들건들 흔들면서 야지랑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언제인가 운영〈녀사〉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지요? 인간 개개는 자기의 인생력사를 창조하고 그 인간 개개의 력사가 인류의 장구한 력사로 된다… 맞습니까?》

장운영은 얼굴이 해쓱해졌다.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돌발적으로 달라지는 말투도 그렇지만 이런 도전적이며 폭발적인 모욕도 있단 말인가.

(안되겠구나. 내가 어리석었어! 정말 어리석었어!)

홍종팔은 쾌재라도 부르듯 고개를 건듯 들며 두눈을 감았다.

한쪽무릎우의 다리만이 더 거만스럽게 거들거들했다.

장운영은 얼굴은 물론 온몸 전체가 불덩이로 타는것 같았다.

그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입술을 짓문채 고개를 잔뜩 젖히고있는 홍종팔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저 얼굴이 지금까지 그렇게 환상적이리만큼 높이 보이던것이였단 말인가. 욱하고 치미는것과 함께 침이라도 뱉고싶은 분격이 치솟았다.

장운영은 총알처럼 내쏘았다.

《그래요. 인간 개개가 걷는 길은 서로 다를수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은 내가 선택하고 내 힘으로 개척할거예요. 동무가 오늘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우리 아버지문제를 놓고 무엇을 우려하는지도 짐작이 가는데… 명백히 말해요. 난 그 누구의 동정도 인정도 바라지 않아요. 난 일시적이나마 문규동무를 오해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를 존경해요. 하긴 정일동무가 그렇게도 사랑하며 믿는 동무인데 달리 될수 있겠어요!》

홍종팔은 들은체만체 다리만 세차게 흔들었다.

실은 그도 무척 놀랐다. 당황하기도 했다. 장운영의 비수같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총알처럼 심신에 박혔던것이다. 보다 놀라운것은 그의 어른다운 정신적성장이였다. 이제라도 《옳아, 나도 잘못했어!》 하는 진심의 목소리를 한마디만이라도 터친다면 장운영으로서도 얼마나 고마와하겠는가. 했건만 그의 자존심은 오히려 더 고집스러이 허세와 거만의 뿔을 세웠던것이다.

장운영은 도고히 돌아섰다.

몇걸음 떼다가 멈춰선 그는 다시 홱 돌아서서 또박또박 찍어던졌다.

《나도 공민증을 받은 공민으로서 한마디만 더 하자요. 동무가 학급을 옮긴건 명백히 우리 학급에 대한 배반, 귀중한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예요. 리유여하간에 동무는 자기가 40일동안이나 학교를 떠나있은 일을 일생 후회하게 될거예요. 동무가 참답게 반성을 할수 있다면 말예요. 동무도 우리 학교에서 그 기치를 누가 들었는지 모르지 않을테지요? 그걸 잊는다면 동무는 훌륭한 간부는커녕 일생 인간답게 살지 못할거예요!》

장운영은 다시 돌아서자바람으로 힘있게 발걸음을 내짚었다. 갑자기 눈앞이 뽀얘졌다. 왜서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눈물을 씻으려 하지 않았다. 입술만 더 아프게 깨물면서 보다 꼿꼿이 앞으로 힘차게 내걸었다.


× ×


그 시각 문화성회의실에서는 며칠동안에 걸쳐 진행한 총화모임을 결속하고있었다.

장초부상은 현직에서 해임되여 성산하 어느 한 창작기관의 책임일군으로 내려가 사업하게 되였다.

박문규의 아버지가 소속되여 창작하던 곳이였다.

상급당의 조치를 무척 고맙게 받아들인 그의 얼굴에 세상에 새로 태여난 사람처럼 새로운 결의가 충만되여있었다.

그 결의중의 하나가 박문규의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잘 도와주어 다시금 창작가의 대렬에 당당히 내세워주어야겠다는것임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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