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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회


제8장 마지막의병대


5


탁영대로 가면서도 봉대는 도무지 속이 내려가지 않았다.

한성에서 그렇게 원쑤치부를 하던 경찰나부랭이를 의병장이 왜 한사코 감싸려드는지 알수가 없었다.

저놈때문에 의병대가 쓴맛을 당한것이 한두번인가.

서흥주막에서는 리용구를 없애치우지 못하도록 방해를 놀았고 한성에서는 또 얼마나 젖먹던 밸까지 솟구치도록 하였는가? 그것도 두번씩이나…

봉대의 뇌리에는 수길이와 마주치던 일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피가 꺼꾸로 솟을노릇인데 이제는 한처마아래서 한가마밥을 먹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치도 무슨 도깨비의 장난처럼 생각되였다.

봉대는 맨뒤에서 머리를 수굿하고 따라오는 수길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쓴입을 다셨다. 이때 덕쇠가 헉헉거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와 볼부은 소리를 냈다.

《염청어 지지는 냄새가 나요.》

봉대가 펄쩍 놀라 눈을 지릅뜨고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어디서?》

《목구멍에서요. 좀 쉬고 가자요. 이러단 싸움도 붙기 전에 맥을 다 뽑고…》

봉대는 어이없는 눈길로 덕쇠를 힐책하고나서 다른 의병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땀투성이가 되여 헉헉거리고있었다.

그제야 자기가 수길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에 옴하여 내처 50여리를 숨 한번 돌리지 않고 달음쳐왔음을 깨달은 봉대는 머리를 끄덕이며 의병들에게 말했다.

《좀 다리쉼을 하고 가자구.》

의병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맨 마지막에 수길이가 바위돌우에 걸터앉는것을 본 봉대는 또다시 이마살을 찌프리며 입을 다시고나서 골짜기쪽으로 내려갔다.

골짜기에 작은 실개울이 흐르고있었다.

개울가에 엎드려 푸륵거리며 얼굴에 물을 끼얹고난 봉대는 거기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봉대의 생각은 다시 의병장에게로 돌아갔다.

의병장이 어째서 수길이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을가.

하긴 의병장은 도량이 넓은 사내다. 전번에 두남이를 죽게 한 명재란 사람을 자기 같으면 당초에 명줄을 끊어버렸을것이다.

하지만 의병장은 그를 용서하고 죄를 씻을 기회를 주었다.

그로 하여 평산의병대는 두번이나 크게 왜놈들을 칠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길의 경우는 그와 다르지 않은가.

그는 경찰관이였다. 역적놈의 문지기노릇을 하던자이다.

이런자까지 의병대에 선뜻 받아들이는 의병장의 처사가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는다. 의병장은 그릇이 커서 그렇고 이 기봉대는 속통이 나무옹이구멍 같아서 그렇겠는가. 지금까지 속이 좁은 사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이 기봉대가 아닌가. 정말 알수 없는노릇이다. 이번 싸움이나 치르고는 돌아가서 의병장의 뜻이 무엇인지 빠개리라. …

봉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움씰했다.

뒤골에 무엇인가 선뜩한것이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누가 쓸데없이 롱지거리야?… 화가 치밀어올라 죽을 지경인데…

봉대는 성난 표정을 짓고 머리를 돌리려고 했다.

이때 귀에 선 목소리가 조용히 날아들었다.

《꼼짝말앗! 움직이면 대갈통이 벌통이 된다.》

선뜩한 쇠붙이 서너개가 겨끔내기로 봉대의 뒤통수에 닿았다. 뒤를 돌아볼수 없었지만 자기의 머리에 닿은것이 왜놈들의 총구라는것을 대번에 알수 있었다.

봉대는 눈길을 떨구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흘러가는 개울물에 왜놈들의 그림자가 비꼈다.

젠장, 일이 재미없게 되였는데…

또다시 위협적인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일어섯!》

봉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뒤머리를 겨눈 총구들중 하나가 목덜미를 훑으며 아래로 미끄러져내리더니 잔등을 꾹 찔렀다.

《돌아섯!》

봉대는 왜놈들이 있는쪽으로 몸을 돌렸다.

왜놈들이 한눈에 보였다.

자기에게 총구를 들이댄 네놈을 내놓고도 산탁으로 은밀히 오르는 왜놈들의 수가 대충 눈짐작으로 쳐도 서른은 넘어보였다.

봉대의 이마에 진땀이 빠질빠질 내돋았다.

왜놈들이 봉대의 잔등을 총구로 밀었다.

그를 방패로 내세우고 의병들에게로 조용히 접근하려는 심산이였다.

왜놈들은 의병들이 낌새를 채지 못하게 하려고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있었다.

봉대가 조금만 소리를 내도 당장에 온몸이 채구멍이 될 판이였다.

하지만 봉대는 자기가 조금도 지체할수 없다는것을 느꼈다.

불과 몇발자국아래에서 엄청난 위험이 다가오는줄도 모르는 의병들이 지금 네활개를 쭉 펴고 여기저기 드러누워 땀을 들이고있는것이다.

죽어도 의병들을 구원해야 했다.

이제 세발자국만에 몸을 돌려 자기에게 총구를 들이댄 놈들을 덮쳐야 했다. 그러면 자기는 왜놈들의 총알을 피할수 없겠지만 총소리를 들은 의병들은 구원될것이다.

아- 억울하구나. 이렇게 맹랑하게 죽다니…

봉대는 입술을 악물었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세발자국… 이젠 죽자!

봉대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문득 앞에 있는 떨기나무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얼씬했다.

봉대는 그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시 형체가 얼씬하는 순간 봉대는 가슴이 후두둑 떨렸다.

자기쪽으로 접근하는 그림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강수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던것이다.

봉대는 가슴을 조이며 왜놈들의 눈길을 끌려고 비칠거렸다.

《조용하랏, 죽인다.》

왜놈들이 기겁을 하여 총구로 봉대를 꾹꾹 찔렀다.

왜놈들이 봉대에게 정신이 팔린 이 순간에 강수길이가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가까이에 있는 두놈이 강수길이의 발길질에 보기 좋게 넘어졌다.

이어 다음 놈의 대가리가 주먹에 얻어맞고 눈깔을 뒤집으며 자빠지는 동시에 마지막놈이 그의 휘돌려차기에 돌짝에 개구리찍히는 소리를 내며 뻐드러졌다.

봉대는 넋을 잃고 그의 싸움을 바라보기만 했다.

팔과 다리를 얼마나 번개같이 휘둘렀는지 그야말로 눈깜빡할 사이보다도 더 짧은 순간에 봉대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네명의 왜놈들을 제껴버렸던것이다. 타격이 얼마나 정확하고 힘이 있었는지 어느 놈 하나 신음소리조차 내지르지를 못했다.

봉대의 입이 쫙 버그러졌다.

원, 세상에! 이렇게 날랜 사람도 있구나!

《뭘 해? 빨리 가자구.》

강수길이 버럭 소릴 질러서야 봉대는 펄쩍 정신을 차렸다.

산탁에 정신이 팔려 조심히 기여오르던 왜놈들이 그들을 향해 총질을 시작했다.

수길이가 바위뒤에 날아가 엎어지는듯싶더니 어느결에 댓발이나 떨어진 나무뒤에서 불쑥 솟아나며 맞받아 불질을 시작했다.

한방에 어김없이 한놈이 황천객이 되였다. 아무리 풀덤불이나 바위뒤에 숨은 놈이라고 할지라도 몸뚱이나 대갈통의 어느 한 끄트머리라도 드러나면 강수길의 총탄은 영낙없이 꿰찌르고야말았다.

봉대의 입에서 또다시 감탄이 터졌다.

히야! 정말 귀신같은 사격솜씨로구나. 저렇게 총을 잘 쏘는 사람은 난생처음인걸.

또다시 수길의 성난 목소리가 버럭 울렸다.

《뭘 해? 머릴 들고 죽은 놈은 왜 멍청히 쳐다보는가? 엎드리라.》

수길이가 봉대를 나꾸어챘다.

총알들이 봉대가 섰던 자리에서 흔들거리는 나무가지들의 중둥이를 모조리 분질러놓았다.

총소리를 들은 의병들이 싸움태세를 갖추고 달려내려왔다.

그들이 달려내려왔을 때는 벌써 강수길의 총탄에 거의 모든 왜놈들이 숨통을 끊기우고 몇놈 안되는 놈들만이 기겁하여 눈먼총질을 해대고있었다.

의병들이 마지막놈들을 식전에 닭잡듯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왜놈들을 모조리 소멸해버린 봉대와 의병들은 더 지체하다가는 다른 수비대놈들의 추격에 걸려들수 있다는 생각으로 즉시 자리를 떴다.

그들은 그달음으로 달리고달려 탁영대의 왜놈수비대를 들이치고 날 저물기 전에 도평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봉대는 강수길을 불러냈다.

강수길을 뒤에 달고 조용한 곳에 이르자 봉대는 품에 찔러넣고 온 대두병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나온 싯누런 놋잔에 대두병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그 잔을 수길에게 내밀었다.

《나를 용서하게. 내 멋없이 우둘렁거렸는데 당장 의병장에게 말해서 당신이 우리를 지휘하게 하겠소.》

수길이가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난 그저 왜놈들과 싸우면 만족하오.》

그러고나서 봉대가 내민 술잔을 바라보던 수길이가 잔을 잡았다.

《난 이날껏 술을 배우지 못했소. 그러나 이 잔만은 내가 받겠소.》

수길은 봉대가 부어준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빈 술잔을 내주며 수길은 말했다.

《자네가 나를 심히 질책하고 박대하였지만 난 고깝게 생각지 않네. 왜냐하면 그건 이 수길이란 인간이 받은 질책이 아니라 역적놈의 가병질을 한 경찰관이 받은 질책이기때문일세. 그런 적의심이 없다면야 그게 어디 조선사람인가?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구.》

봉대는 수길이의 손을 꽉 잡았다.

《자넨 참 좋은 사람이구만!》

《그저 조선사람이지.》

그들은 마주보며 시원하게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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