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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6 회


제 5 장


3


오늘도 어깨가 처져 혼자서 맥없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던 원석은 누군가 뒤에서 찾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리용이 따라오고있었다.

그의 집은 신암동에 있어 자기와는 반대방향인데 웬일일가?

원석이 의아해하자 그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밑을 눈짓했다. 나무밑에는 긴 나무의자가 둘씩이나 놓여있었다.

리용은 제먼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원석이더러 앉으라고 했다.

원석이 점점 더 영문을 몰라하며 그의 옆에 사이를 두고 떨어져앉았다.

리용은 느닷없이 래일 뭘하겠는가고 물었다.

래일은 일요일이였다.

원석은 저도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즈음 그는 주마다 찾아오는 일요일이 죽을만큼이나 싫어졌다. 전에야 어찌 그랬던가. 월요일부터 기다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요일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하루였고 고민과 짜증으로 고통속에 모대겨야 하는 날이였다.

원석은 대답대신 입술만 짓씹었다.

리용은 더 묻지 않고 가방안에서 얄팍한 책 두권을 꺼냈다.

《전자관편람》과 《영사기술원》책이였다.

리용은 그 책들을 원석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정일동무가 구역민청에 가면서 너한테 주라고 했어. 오늘밤에 다 읽고 래일아침 학교로 나오라고 하더라. 영사실에서 만나잔다고 전하라고 했어.》

《영사실에서?!》

원석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그래, 영사실에서. 월요일 오후에 새로 나온 예술영화를 돌려야겠는데 영사기를 좀 뜯어봐야겠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어. 너야 물리에 펄 하지 않니.》

그것은 사실이였다. 학교민청에서는 월요일에 새로 나온 예술영화 《미래를 사랑하라》를 집체적으로 관람하고 감상모임을 조직하기로 계획했다. 한데 영사기술원이 한주일째 병원에 입원중이여서 김정일동지께서 직접 영사기를 돌리시려는것이였다.

리용은 씨무룩이 웃음을 머금었다.

학교가 새로 서면서 영사기도 새것을 받아왔는데 무엇때문에 뜯어봐야 하며 설사 무엇이 잘못되였다고 한들 이 최원석이 무슨 도움을 줄수 있단 말인가? 그이께서야 이미 중학시절에 영사기는 물론 사진기며 록음기며 라지오,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대해서까지 전문수리공들 못지 않게 환히 잘 아신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언제인가 박문규가 탄복하며 들려준 이야기였다.

무더운 여름 어느날 렌즈의 원리에 대해 학습하신 그이께서는 영사기와 촬영기, 사진기와 같은 복합렌즈를 쓰는 기계들에서 그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직접 확인하고싶으시였다.

그날 수업이 끝난 후 도서실로 가신 그이께서는 전문학교용광학교재들과 《전자관편람》, 《영사기술원》과 같은 기술도서들을 빌려다 밤을 밝히며 탐독하시였다. 밤새 리론지식을 폭넓게 체득하신 그이께서는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이여서 영사실로 가시여 영사기를 하나하나 분해하시였다. 대물렌즈며 증폭장치, 소리재생장치 등의 구조와 작용원리를 파고드는 사이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났다.

영사기에 대해서는 완전파악이 되였다고 생각하며 조립을 하셨는데 록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점심식사도 건는채 다시 뜯어 살펴보고 조립했다가는 또 뜯고 하는 사이 어느덧 저녁이 되고 날까지 저물었다. 저녁식사시간도 계속 넘기면서 밤늦게야 끝내 원인을 찾아 완전조립을 끝냈는데 그날밤 그 일을 아신 아버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영화까지 함께 보시였다는것이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원석은 그이의 정열적인 탐구심과 학구열에 얼마나 탄복했던지 모른다.

원석이 여전히 잘 리해가 되지 않아하자 리용은 나무람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정일동문 영사기록음에서 미세한 잡음이 나는데다 상영도중에 필림이 끊어지기도 하는데 꼭 뜯어봐야겠다고 했어. 그 영화가 어떤 영화냐. 우리 청년들이 한생 배워야 할 혁명전통주제의 영화가 아니냐. 그리고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도 있지 않아?》

최원석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김정일동지와 함께 일요일의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것도 조용한 영사실에서 단 둘이 말이다. 이미 알았더라면 자진해서라도 뛰여갈 일이 아닌가!

《알겠어. 그렇게 하겠어.》

최원석은 리용의 손까지 당겨쥐면서 큰소리로 응했다. 뜻밖의 행운이라도 받아안은 기분이였다.

그날밤 그는 밤을 꼬박 밝히다싶이 하며 두권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전자관들의 구조와 작용원리, 영사기부분품들에 대해서는 파악하기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의아해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어머니가 몇번이나 웃방문을 열었던지 모른다. 이튿날 아침에는 아껴오던 팥을 삶아 아들이 좋아하는 팥밥에 고등어반찬을 맛있게 구워주었다.

제가 먼저 일찍 나가느라고 서둘렀지만 최원석이 학교운동장을 꿰질러 영사실에 올라갔을 때는 벌써 김정일동지께서 나오시여 영사기부속들을 다 분해해놓고 차근차근 살펴보시고있는중이였다.

영사기옆 책상우에는 사진기 하나와 휴대용촬영기도 놓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아, 일찍 나오는구나. 일요일인데 천천히 나와도 될걸.》

늦었다는 생각에 어쩔바를 모르던 원석은 더욱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이께서는 기다리기라도 하셨던듯 원석의 손을 다정히 잡아 부속품들가까이에 세우셨다. 굳이 원석을 부르신데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고 따뜻이 물으셨다.

《눈엔 익고 손에는 설다는 말이 있는데 어때? 난 며칠동안을 씨름질해서야 이 기계속을 좀 알수 있었거던.》

원석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직 영사기에 대한 리해가 부족한 자기에게 사전에 신심을 주려고 그러신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원석은 고마움에 젖은 목소리로 부러 좀 뽐이라도 내듯이 부속품들의 명칭과 구조, 작용원리를 설명했다.

《이건 필림감개통인데 이안에 필림을 넣으면 여기 이 필림치차에 의해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풀려나오게 되지. 필림은 필림창앞을 지나가는데 이때 필림의 화면간은 사이쉬기운동장치에 의하여 한간씩 멎었다가 내려가. 이 영사기와 같은 보통영사기에서는 1초동안에 24개의 화면간이 흐르게 되는데 필림의 영상은 필림창앞에 멎는 순간에 빛줄을 받고 영사렌즈를 통하여 영사막에 비쳐지게 되는거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주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최원석은 신바람이 나서 계속 설명했다.

《그리고 이건 영화의 소리를 내기 위한 소리재생장치인데 발성은 필림에 록음되여있는 소리띠에서 비쳐지는 빛줄이 여기 이 광전관에 작용하면서 전기신호로 변하여 증폭기를 통해 고성기로 나가게 되지. 소리를 재생하는데는 광전관을 리용한 광학적방법과 자두를 사용하는 자기식방법이 있어.》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수까지 치시였다.

《괜찮아. 역시 미래의 〈물리학자선생〉이 다르거던. 기계속에 환하단 말이야!》

최원석은 뒤덜미를 쓸며 얼굴을 붉혔다. 솔직하게 진정을 말했다.

《사실이야 정일동무가 준 여기 이 책들에 다 있는게 아니야.》

《그래? 그래도… 책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쉽게 리해하는건 아니거던.》

그이께서는 더욱 의미깊으면서도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셨다.

최원석은 속이 무춤했다. 이즈음의 내 생활을 다 아는게 아닐가?

마음이 조마조마해났다. 실지 사연을 아시고 하나하나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한단 말인가?

했으나 그이께서는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시였다.

얼마간 사이를 두셨다가 이미 자신께서 찾으신 원인을 조용조용 설명하시였다.

《큰 결함은 아니야. 아직 기계가 새것이여서 일부 부속품들사이에 기계적마찰이 있기때문인것 같아. 간단히 연마를 좀 하고 기름을 다시 주면 될거야.》

그이께서는 이미 준비했던 얇고 보드라운 연마종이와 샘물처럼 맑은 기름병을 꺼내놓으시였다. 결함의 원인을 다 짐작하고계셨던게 분명했다.

자신께서는 연마종이로 해당한 부속품들을 깐깐히 살펴보며 연마를 하시고 최원석은 기름걸레를 들게 하시였다.

여전히 최원석이 가슴을 조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영사기에는 35메터영사기와 16메터영사기들이 많이 쓰이지만 특수한 형식으로 70메터전경영화용영사기와 8메터가정용영사기도 있다는 등 영사기의 종류와 영화촬영방법에 이어 영화촬영기에 대해서도 설명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해박한 설명에 정신이 홀딱 팔린 최원석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영사기를 다 조립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가까와오고있었다.

최원석이 기름묻은 손을 씻으며 아쉽지만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려는 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 한옆에 놓여있던 휴대용촬영기를 당겨다놓으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손을 댔던김에 이 촬영기도 한번 뜯어보자.》

최원석은 입을 반쯤 벌렸다가 물었다.

《그것도 말 잘 안 들어?》

그이께서는 고개를 저으셨다.

최원석은 제사 촬영기를 당겨들며 물었다.

《아주 새것이구나!》

《그래, 새것이야. 쏘련에 갔던 사람이 강계아저씨… 최현동지한테 기념품으로 구해다준것이였는데 내가 영사기를 뜯어놓고 온종일 씨름질했다는걸 알구 갖다주었어. 실컷 뜯어보구 맞춰보구 하라면서 말이야. 언제든지 뜯어보려고 했댔는데 오늘 네가 좋은 일을 한 값이라치구 함께 뜯어보자. 그리고 이 사진기도.》

최원석이 김정일동지와 함께 그 귀중한 촬영기는 물론 그이께서 애용하시던 사진기까지 다 뜯어보고 다시 조립했을 때는 점심시간도 훨씬 지난 오후 3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오히려 미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저녁때까지라도 함께 있고싶은데 난 이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그이께서는 오늘중으로 세계적인 농업발전추세와 동향자료들을 종합정리하여 아버님께 드리실 계획이였다.

아버님께서 래일 새해영농준비정형료해와 그 대책을 위하여 또다시 황해남북도내 협동조합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떠나시는것이다.

그이께서는 영사실을 깨끗이 다 정리한 후 헤여지기에 앞서 원석의 손을 잡으며 저으기 진중하게 말씀하시였다.

《원석이, 우리 할아버님께선 사람은 뜻을 멀리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대. 〈지원〉… 인생길에는 굽인돌이도 있고 낭떠러지도 있다고 하지 않아? 우린 아직 그 인생길의 초입에 있는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년시절이 아니거던.》

원석은 얼굴이 화끈했다. 분명 다 알고있구나 하는 짐작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그이께서 전날 주영화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들으시였으며 하여 마침 학교의 영사기를 한번 뜯어봐야겠다고 계획했던 기회에 부러 리용에게 부탁하여 그를 영사실로 부른 사연은 물론 그날의 그 일이 앞으로의 그의 인생길에 어떤 주추돌이 되고 억척의 지주로 되겠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더우기 그와 함께 영사기와 촬영기를 뜯어보시는 과정에 김정일동지께서 그에게 주신 정이 얼마나 뜨거운것이였으며 그 정속에 그이께서 또 얼마나 큰일을 포착하시였는지에 대해서도 알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언제인가 김정일동지께서 박문규의 문학작품을 지도해주신것처럼 오늘은 또 저를 그렇게 일깨워주고 도와주시는구나 하는 고마움에 목이 메여올랐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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