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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5 회


제 5 장


2


대한목에 들어선 겨울날씨는 무척도 변덕이 심했다. 당장 봄아씨가 왕림하는가싶게 얼음버캐가 한벌 덮였던 골목길들을 질쩍질쩍 녹이는가 하면 웬일인가싶게 눈가루를 날리고 광풍을 휘몰아오면서 하루밤새에 다시 온 거리를 땅땅 얼구어놓기도 하였다.

오늘밤에는 무슨 노염이라도 들었는지 더욱 기승스러웠다.

해떨어지기 전부터 찌뿌둥하던 하늘에는 자정이 가까와오는데도 별빛 하나없이 캄캄한데 모란봉을 휩쓸며 넘어오는 북풍이 어찌도 사나운지 온 평양의 거리가 어디론가 훌 날려가버릴듯싶었다.

대동강에서는 깊은 밤중에는 물론 한낮에도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섬찍하게 할만큼 쩡쩡 울렸다. 건설장의 기중기들에는 엄한 작업중지령이 내렸고 자동차들의 래왕도 뜨음해졌다.

바람세가 너무 사나와선지 최원석의 어머니는 종시 잠을 못 들고 일어나 전등불을 켰다. 그리고는 웃목에 누운 아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최원석은 눈을 꼭 감은채 까딱 안했다. 숨소리만 고르롭게 낼뿐이다.

어머니는 기척을 낼세라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들이 깊은 잠에 든것 같지만 저보다도 더 정신이 말똥말똥하다는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던것이다.

옆집에서 기와장이라도 날려 떨어지는지 우지끈 짱 하고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이즈음 꼭 닫겨져있는 웃방 장지문을 일별했다.

끼때마다 밥상을 다 차려놓고 내려오너라, 내려오너라 목이 아프게 불러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어하던 아들의 그 무슨 제작실, 이를테면 《연구실》이였다. 날에날마다 온 정신을 다 빨아들이듯싶이하던 저 장지문이 왜 열릴줄을 모를가? 항차 지금이야 하루종일 박혀있어도 될 겨울방학이 아닌가.

정녕 밥시간이 지나는줄도 모르고 책속에 묻혀 정신이 없을제, 때로는 한밤을 꼬박 밝히고 훤하게 동터오는 새벽을 맞을제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하여 가슴뿌듯한 긍지와 함께 그 아들의 곁에서 같이 밤샘을 하지 못하고 얼마간의 쪽잠에나마 제 혼자 들었던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어머니였다.

아들이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고 그 또한 제 친자식 못지 않게 관심이 큰 영화의 아버지도 뭐라고 탄복을 하며 치하했던가.

《원석인 이제 꼭 훌륭한 과학자가 될겁니다. 이제 보라니까요. 아버지가 비행기를 타고 평양의 상공을 날았다면 원석인 틀림없이 저 달나라, 별나라까지 씽씽 날겁니다.

그런 시대가 꼭 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좀 힘이 들어도 저애들을 잘 키웁시다. 후회가 없게요.》

눈물이 찔끔 솟게 하던 말이였다.

한데 도대체 무슨 영문일가?

더우기 온 나라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신년사를 받들고 제1차 5개년계획을 기어코 올해중으로 끝내자고 산악같이 일떠서고있는 때에 이 무슨 변고일고.

어머니는 억척의 바위돌이라도 떠밀어내는듯 한 힘든 소리로 나직하게 아들을 불렀다.

《얘 원석아, 좀 일어나 앉으렴.》

원석은 진짜 깊은 잠에 든듯 옴짝을 안했다. 숨소리를 고르롭게 내려고 하니 가슴이 더 높이 들썩이였다. 그래서 부러 잠내를 피우며 뜨직이 한마디 했다.

《어머니, 어서 자자요.》

그러자 어머니는 저으기 단호해졌다.

《어디 잠을 자게 됐냐? 옆에서 자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는데… 하나 물어보자. 너 혹시 영화와 무슨 일이 있은건 아니냐? 요사이 왜 통 발길이 끊어졌냐?》

원석은 흠칫했다. 이건 또 무슨 벼락같은 말인가?

그는 어쩔수없이 느럭느럭 일어나앉았다. 그리고는 어머니이상의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껏 어머니를 속였거나 거짓말같은것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그였다. 원석은 아직 누구한테도 내비친적이 없는 마음속 번민을 그대로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고급반에 올라온 첫해 가을 쏘련에서 인류사상 최초의 인공지구위성을 성과적으로 띄웠다는 소식을 듣고 미칠듯이 흥분하여 모란봉으로 달려올라갔던것처럼 이즈음 그의 꿈과 리상은 미래의 우주세계로 끝없이 날아올랐었다. 시간만 있으면 국립도서관의 열람실로 달려갔고 집웃방도 하나의 서가처럼 꾸렸었다.

하지만 그는 책속에 묻히면 묻힐수록, 더우기 아직은 허망하다고도 할수 있는 우주세계의 환상속에 빠져들수록 자기가 그 어떤 번민에 모대기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게 된것은 지난해 수도건설의 벅찬 지원전투에 참가해서였다.

물론 우주세계도 희망찼다. 하지만 공업의 력사가 너무도 짧은 우리 나라는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인것을 목마르게 기대하고있었다.

눈앞에서 쑥쑥 키돋움하는 고층살림집도 시작은 든든한 기초이며 그 기초로부터 1층이 일어서고 다음층들이 올라가는것이다.

너무도 단순한 그 리치를 깨우쳐준것은 부재생산의 기술지도를 담당하고있던 건설대학(당시)의 박사선생이였다.

그 선생도 대학생들과 함께 수도건설에 동원되여 야외극장건설과 학생들의 부재생산에 대한 기술지도를 맡았었는데 어느날 작업휴식시간에 학생들과 어울려 의의있는 담화를 했던것이다.

학생들의 희망과 꿈에 대해 무척 호기심을 가지던 선생은 물리학에 목표를 건 최원석에게 특히 각별한 관심을 두는듯싶었다.

《좋구만. 물리학이 중요하오. 특히 전기문제, 인공지구위성도 그렇고 로케트도 그렇고 약전계통의 발전이 없이는 불가능하거던. 사회주의를 빨리 건설하려고 해도 전기가 급선무요. 참, 레닌이 뭐라고 했습니까. 사회주의에 전기화를 더하면 공산주의가 된다고 하지 않았소.… 이름이 원석이라고 했던가? 최원석? 좋구만.》

선생은 거듭 반복하여 치하하고나서 각별히 깊은 의미를 담아 강조하였다.

《천리길도 첫걸음으로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 학생도 잘 알겠지만 꿈과 리상이 곧 현실은 아니거던. 우주공학도 현실적으로 나라의 공업적토대가 튼튼해야 자기 궤도에 올라서게 되는거요!… 우선 공부부터 잘하라구.》

그날부터 원석은 물리학의 넓은 범주에서 한걸음 좁혀들어가 전기공학부문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꿈속에서도 훨훨 날아오르던 우주세계로부터 땅우로 내려앉아 어딘가 좀 서운한감은 있었지만 《땅》우는 그것대로 또 성수가 났다.

차츰 가슴을 두근두근 울리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해동안 잘 준비해가지고 다음해 여름방학때쯤에는 고향의 학교주변에 꼬마수력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멋들어지게 세워놓을수 없을가 하는 생각이였다.

좋기는 새로 일떠선 새 교사에 멋지게 세웠으면 좋겠으나 도시 한복판이라 적중한 물원천도 없었고 풍력발전소를 세울만 한 자리도 씨원칠 않았다.

정주군의 옛 고향학교에는 바로 옆으로 사철 마를줄 모르는 개울이 흘렀고 경사가 급한 학교뒤산은 바람세 또한 좋았다.

모교의 스승들과 학생들도 그렇겠지만 고향마을어른들은 또 얼마나 희한해하겠는가. 평양학생으로서의 위신은 또 어떠할텐가.

조용한 서재로 꾸려졌던 집 웃방은 차츰 그 무슨 목공실이나 기계공장의 작업장처럼 변했다. 각종 규격의 코일선이며 철판, 자석, 베아링을 비롯한 수십가지의 자재들을 구입하는데만도 몇달이 걸렸다. 건설장이며 기계공장이며 자동차수리소, 곳곳의 자전거수리소와 시계방에까지 안 찾아다닌 곳이 없었다.

자연히 아침시간에 지각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오후학교생활에 빠지는 일까지 생겼다. 그것은 어차피 학급반장 주영화의 마음을 쓰게 하였고 하루생활 또는 주간사업총화때면 부득이 그의 이름을 올리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어쩔수없이 그의 이름을 지적하게 될 때마다 주영화는 몹시 속상해하고 안타까와하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것을 아량있게 대하면서 너그러운 태를 짓군 하였다. 아직은 비밀이지만 이제 성과가 공개되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좋아할 동무는 영화라고 믿었던것이다.

허나 꿈은 깨여지고 거듭되는 실패의 쓴맛만 보게 되였다.

책상우에서 만든 실험적인 발전기를 몇차례 맞추고 뜯어보고 했으나 반디불같은 전기불은커녕 회전자 그자체가 움직일념도 하지 않았던것이다.

가뜩이나 비밀에 붙였던 일인데다 설사 공개를 한다해도 기껏 동정은 받을수 있겠지만 새로 선 학교의 실정에서 무슨 도움을 받을수 있단 말인가?

나라에서 많은 교구비품들을 보내주긴 했지만 부족한것이 얼마나 많은가. 학과목선생들이 수업시간에 가지고 들어오는 걸그림들중에는 밤늦게까지 자기들의 손으로 직접 그린것도 있다지 않는가.

실험적으로 만든 풍력발전기 하나에도 그렇게 많은 자재와 품이 들었는데 항차 과학의 종합체라고도 할수 있는 인공지구위성은 물론이고 자그마한 실험용로케트를 하나 만들자면 또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꿈과 리상, 현실!

바로 그래서 대학선생이 그처럼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점점 더 입맛까지 잃을 정도였다.

주영화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여 새삼스럽게 눈여겨 살폈는데 학급반장사업에 밀리워서인지 그도 그처럼 열정적으로 외우군 하던 화학의 전망과 미래세계에 대한 말이 영 사라지다싶이 되는가 보았다.

희망의 방향타를 돌리기라도 했는가?

그러자 또다시 새로운 깨달음이 가슴을 쿵 울렸다.

학급만 보아도 경일호가 수학에 뜻을 두고 주영화가 화학을 지망한것외 리용과 성효정이 생물학에 취미를 가졌을뿐 기타 다른 자연과학부문과 공학부문같은 인민경제의 중요부문, 과학분야에 뜻을 둔 학생들은 많지 못했던것이다.

농업부문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하는가 보았다.

태반이 박문규나 류룡철이처럼 문학이요, 음악이요, 력사요 하는 문학예술부문이나 사회과학이며 기껏 생물학을 희망한다는 성효정이나 리용도 아직은 말뿐이지 그 진속은 정확히 가늠할수가 없었다.

홍종팔처럼 《높은 간부》를 꿈꾸는 학생도 한둘이 아니였다.

하다면 나도 대담하게 방향전환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열일곱살!

더는 어물어물할 사이가 없다는 생각이 조급성을 몰아왔다.

인간의 한생에 제일 머리가 좋아질 때가 열일곱살을 전후한 시기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제가 살고있는 땅에다 발을 붙이고 현실성있는 꿈을 키워 인생의 빠른 성공을 이룩하자면 이제라도 희망을 바꾸는것이 현명한 처사로 되지 않을가? 하다면 어느 밭에 뛰여들어야 할가?

정녕 환희의 산상봉을 향해 날개가 돋쳐 톺아오르다가 무성한 숲속에서 방향을 잃은 때처럼 무척 당황해지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제일 몸에 닿는것은 농산인것 같기도 하였다. 옛 고향생활이 그렇지 않는가. 집앞에만 나서도 논과 밭이였고 학교로 오가는 길도 봄철이면 갖가지 꽃이 만발하여 향기 풍기고 가을이면 알알이 무르익은 열매가 가지 부러지게 주렁진 과원이였다.

무릉도원같은 그속에서 세계의 이름있는 식물학자들처럼 새 품종의 과일을 연구하고 새로운 벼종자, 강냉이종자를 연구함이 더 빛나는 일이 아닐가?

그런 생각에 마음이 흔들리고 들떠오르게 되면 그는 모든것을 다 활 집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싶어지기도 하였다. 박문규도 아버지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았는가. 정일동무도 좋은 체험을 하고 꼭 훌륭한 작품을 쓰게 될것이라고 믿어주었지!

날마다 밤마다 점점 더 속에서 불이 이는것 같은 그 고민과 번뇌는 올해 아버지원수님의 신년사를 접하고나서 더욱 커졌었다. 온 나라가 5개년계획을 올해안으로 앞당겨 끝내자고 부글부글하는 력사의 해에 열일곱살의 이 최원석은 뜻밖의 고민속에 방황하고있지 않는가. 이 원석이도 그런 고민에 빠지리라는것을 언제한번 생각이나 했댔던가.

아, 꿈과 현실, 리상과 실천?!…

아들의 속타는 번뇌를 끝까지 다 듣고난 어머니는 주먹으로 가슴을 몇번 두드리였다.

이 에미가 지금까지 청맹과니였구나. 아들의 그런 고민도 모르고 어른처럼 나날이 성숙되여간다고 기뻐만 했으니 어이하면 좋단 말인가.

한숨을 내쉬고나서 도움이라도 바라듯 조심스레 물었다.

《영화가 알고있느냐?》

《고거 안타깨비같은거.》

《뭐?!》

최원석의 본의아닌 푸념에 어머니는 펄쩍 놀랐다.

《아니 너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게구나. 싸우기라도 했냐?》

원석은 씨무룩이 웃었다.

내가 정말 왜 이럴가? 영화와 싸우다니! 아니, 다 큰 처녀한테 《고거》란 또 무슨 욕될 말인가.

《어머니두 참, 우리가 뭐… 아직 영화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채서 울려놓군 하던 유치원때인가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마음속 서운함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 그거…》

다시금 《고거》라는 말이 튀여나올세라 조심하듯 말을 이었다.

《사람의 마음같은건 통 들여다볼줄 모르거던. 맹꽁이같이.》

《너 점점 못하는 소리 없구나. 맹꽁이라면 숱한 총각학생들이 있는데 굳이 그애를 골라 학급반장을 시켰겠냐?

나도 다 들었다. 칭찬이 자자하더구나. 정말이지 난 내 친딸의 칭찬처럼 기쁘더라. 남자라고 괜히 우뚤거리지 말구 말 잘 들어라. 난 너한테 그만한 누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군 하더라. 하긴 같은 해에 났어두 달수로 보면 그애가 너보단 우이지.》

원석은 진짜 성을 내는체 했다.

《기껏 한달 앞선거요? 어머니부터 그런 관점이니까 고… 그게 더 웃사람인체 해요. 기분상하게.》

《이녀석이 정말 오늘밤 볼기를 좀 맞아야 할가보구나.》

어머니는 대뜸 비자루꽁댕이라도 찾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비록 고집을 부리는것처럼은 하지만 아들의 그 푸념에서 영화와의 관계에서는 별다름이 없다는것을 알아차린 어머니라는것을 알자 최원석은 부러 펄쩍 놀라 피하는척 방구석쪽으로 물러나앉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한시름 놓인 목소리로 타일렀다.

《나야 어쨌든 녀인이니 세상사에는 너희 남정네만 못할수도 있을게다. 정 속타는 일이랑 있으면 영화 아버지와도 잘 의논해보려무나. 네 아버지와 다름없는 고마운이가 아니냐. 그리구 어련하겠지만 네가 수령님 자제분과 함께 공부한다는걸 자나깨나 잊지 말아라. 영화가 그런 학급의 학급반장이라는것도 말이다.》

원석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얼마나 깊은 뜻과 정이 담긴 타이름인가.

뭐 녀자이기때문에 세상사를 잘 모른다구? 세상사란 무엇인가. 그 세상사에 대해 말한다면 어머니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더 환하게 아는이가 누구이며 그것을 가장 진실하고 가장 따뜻하게 일러줄줄 아는이는 또 누구이겠는가.

원석은 자세를 바로하며 정중히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용서하세요.》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받았다.

《원 녀석두, 그만해라.》

《그래요, 어머니. 이젠 자자요.》

원석은 제먼저 이불을 끄당겨덮으며 잠자리에 들썩 드러누웠다.

어머니가 날이 밝으면 만사 제쳐놓고 주영화부터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는줄은 생각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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