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7 회


제8장 마지막의병대


4


《의병장님네가 이번에 정말 큰일날번 했다우다.》

《마침 그 경찰관이 제때에 나타나주었으니망정이지 하마트면 몇사람은 땅에다 묻을번 했다질 않수. 그리구 그 싸움판에서 왜놈들을 다 잡지 못하고 놓쳐버렸더라면 아마 약우물골의원댁이 무사치 못했을거라구들 하더구만요.》

의병들사이에 오가는 말을 먼발치에서 듣고있는 봉대의 얼굴이 열물을 삼킨듯 찌프러졌다.

의병들은 봉대의 심중은 아랑곳없이 사기들이 나서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경찰과 그의 동료들이 총을 그렇게 잘 쏘더라누만.》

《총알 한발에 왜놈 한놈씩은 영낙없이 저승으로 보낸다구 합데다. …》

봉대는 더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 다가서며 꽥- 소리를 쳤다.

《그만하지 못하겠소? 넨장, 그 경찰나부랭이가 대체 뭐게 우리 일에 끼여든다는거야.》

그의 영문없는 역증에 옆에 선 의병이 어이없는 눈길을 힐끗거리며 퉁을 놓았다.

《그 사람들때문에 우리 의병장님과 무삼이네가 모두 무사했으문 고마운노릇인데 성은 웬거요?》

봉대는 그의 옆구리를 쥐여박았다.

《그따위 경찰관나부랭이가 아니면 의병장님과 무삼이가 왜놈따위들에게 죽을것 같애? 보지도 못한 소릴 함부로 하지 말아. 우리 사람들이 다 잡아놓은 왜놈의 새끼들을 그 자식들이 산제밥에 청메뚜기 뛰여들듯 나타나 갓난애기 눈곱자기만큼 도운걸 엄청나게 불구어 말하는지 누가 안다던? 그리구 혹 진짜 그것들의 도움을 좀 받았다구 해도 난 그놈의 낯짝만 봐도 기름쥐상이여서 고맙기는커녕 구역질이 솟는다.》

봉대가 진짜 구역질을 하듯 오만상을 찡그리는데 그 의병이 다시 대꾸질을 했다.

《나도 그를 봤는데 내 눈으론 암만 봐도 기름쥐처럼은 뵈질 않던데… 오히려 진짜 사내싸게 생겼더군.》

그바람에 여기저기서 키드득거리는 소리들이 괘씸스레 들려왔다.

봉대는 어금이가 쑤시듯이 찌프린 얼굴을 펴지 못했다. 속에서 송진덩이에 불붙듯 가슴이 이글거려 참을수 없었다.

(그 경찰놈이 왔단 말이지. … 근데 뭐 의병장님이 그 자식을 여기에 배속시켰다구? 대체 어떻게 된 감투끈이야?)

방금 덕쇠가 달려와서 강수길이가 여기에 배속되였노라는 소리를 할 때 봉대는 한동안이나 턱이 떨어지기라도 한듯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것들이 왜 여기에 찾아들었단 말인가. 의병장은 왜 하필 경찰관 그 자식을 여기에 배속시켰단 말인가. …

곁에서 쉬쉬하는 소리에 봉대는 미궁속처럼 끌려들어가던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는 의병들의 눈길이 쏠려있는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쪽에서 강수길이가 과묵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를 보는 순간 봉대의 눈에 적의가 번뜩했다.

강수길이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하여 멎어섰다.

그들의 눈길이 한동안 부딪쳐 떨어지지 않았다.

강수길이 먼저 눈길을 떨구며 말했다.

《난 당신의 대원으로 배속되였소.》

봉대는 대번에 말뚝이라도 삼킨것처럼 꼿꼿해졌다.

자기에게 배속됐다는 말이 그에게는 매우 뻔뻔스럽게 들렸던것이다.

《어랍쇼, 한성바닥에서 역적놈의 문지기노릇을 하던 경찰관나으리께서 어이하여 우리 베잠뱅이들의 거적밑으로 드시였소? 행여 여기에 얼굴 밴밴한 기생두 있고 12첩반상을 턱주가리에 받쳐주는 알뜰살뜰한 밥어멈이라도 있는가 하오?》

봉대의 상스러운 야유에 얼굴이 벌개진 수길이 잠시 거친 숨을 톺다가 묵직한 추를 달았다.

《난 오늘부터 여기 평산의병대원이요. 그러니 의병규률대로 동료끼리 모욕하는 언사는 삼가하오.》

《뭐야? 오늘부터 의병이라구? 동료라구? 이거야말로 초상 상제가 맨발로 달려나와 웃을노릇이로다. 경찰나으리와 베잠뱅이가 동료라… 하하…》

턱을 하늘로 쳐들고 웃던 봉대가 그 웃음을 뚝 끊어버리고는 다시 수길을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마디마디 그루를 박으며 씹어뱉듯 말했다.

《평산의병대가 한성의 술집간판같애? 술판에 끼우면 경찰관도 주정군으로 불리울지는 몰라도 의병대에 들어와 경찰놈이 감히 의병으로 불리울수 있으리라는 개꿈은 꾸지도 말아라. …》

수길의 눈길이 번뜩했다. 봉대가 사납게 그를 마주 바라보며 거친 숨을 톺았다.

옆에서 의병들이 숨을 죽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수길이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다시 눈길을 떨구고말았다.

그를 한동안 쏘아보던 봉대는 덕쇠에게 사납게 령을 내렸다.

《당장 모두 집합해라. 훈련을 해야겠다.》

덕쇠가 눈을 크게 뜨며 어리둥절했다.

《이제 곧 탁영대의 왜놈들을 쳐야 하지 않소? 그런데 훈련이라는건…》

《무슨 말이 많아? 집합하라면 집합해라.》

《알…갔소. 집합!》

열댓명의 의병들이 주섬주섬 정렬해섰다. 봉대가 대렬과 동떨어져 서있는 수길이를 쏘아보았다.

봉대의 눈길을 마주보던 수길이가 깊은숨을 내불고나서 대오의 맨끝에 서있는 덕쇠의 곁에 가섰다. 그가 위치를 차지하자마자 봉대가 소리쳤다.

《좌향 좌!》

의병들이 왼쪽으로 돌아섰다.

《무릎을 높이 들고 앞으로 진!》

대오가 앞으로 터벌터벌 행진해갔다.

《우향 우!》

봉대의 고함소리에 대오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몇번 같은 동작을 반복시킨 봉대가 다시 소리쳤다.

《앞릉선에 전개한 왜놈들을 향해 포복!》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봉대가 눈을 부릅떴다.

《못 들었어? 모두 엎드렷!》

의병들이 머밋거리다가 봉대에게 머리를 돌렸다.

《앞이 온통 진탕인데…》

봉대가 푸르딩딩해서 소리를 쳤다.

《군령을 허수히 대하겠는가? 엎드렷!》

모두가 볼이 부어 툴툴거리면서도 어쩔수없이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앞을 향해 기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길이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선채로였다.

《이건 뭔가? 왜 그냥 서있는가?》

수길이가 지그시 딴 곳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앞을 가리켰다.

《이렇게 나가면 앞릉선에 있는 왜놈들에게 전멸되고마오.》

《왜놈? 왜놈이 어디 있어?》

《방금 앞릉선에 왜놈들이 있으니 포복하라지 않았소?》

갑자기 말문이 막힌 봉대가 앞으로 기여나가던 의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들쪽을 바라보며 키득거리자 험악한 기상을 지었다.

《누굴 훈시하자는거야? 무명이불속에서만 뭉개던 도련님이니 이런 진탕으로 기여다니기 싫다는거지?》

수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봉대가 그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여기에 당신네 경찰관주재소의 련무장 같은걸 펼쳐놓길 바라는가? 왜놈과 쌈하겠다구 결심먹구 찾아왔으면 당장 내 구령대루 훈련을 하시오.》

수길이가 더는 참을수 없는지 날카로운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여보시오, 나는 총탄을 가마니로 없애며 사격을 익힌 사람이요. 그리고 18반무예에도 정통하였으니 굳이 이런 훈련을 안한다고 달라질것이 없소. 더구나 당신이 요구하는 이런 동작들은 우리 의병대의 실정에는 타당치 않소. 지금 우리의 장비는 왜놈들에 비하여 한심하기 그지없소. 그런데 앞릉선에 왜놈이 산개했다고 하면서 무작정 엎드려 가라고 하는건 병법에도 전혀 타당치 않는…》

《닥쳐라! 어디다 대구 감히 흰소리를 쳐? 병법은 뭐가 말라죽은 병법이야? 당장 엎드리지 않으면 네놈을 총살할테다.》

봉대의 손에서 화승대가 겨누어졌다.

수길이가 그를 태연자약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어느새 권총갑에 닿은것을 보는 다른 의병들은 숨길을 딱 멈추었다.

수길이가 여유작작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이보게 친구, 총부리는 함부로 내대는게 아니요. 그리구 총쏘기루 해서야 날 당해내지 못해. 그 총을 당장 치우지 않으면 가만 놔두질 않겠소.》

《뭐야?》

화승대의 총구에서 당장 탄환이 나올듯 했다.

별안간 뒤에서 벽력소리가 울렸다.

《이건 뭐냐? 총을 당장 거두지 못할가.》

돌아보니 의병장 김정환이가 서서 그들쪽을 무섭게 노려보고있었다.

봉대가 수길이에게 눈을 희번득이고는 의병장에게로 달려갔다.

자식! 의병장에게 고발하여 네놈을 군률로 처리해버릴테다. …

봉대는 김정환의 앞에 이르러 차렷자세를 하고 말했다.

《의병장님, 우린 지금 훈련중인데 새로 온 저 경찰… 아니, 대원이 불복합니…》

김정환의 입에서 터져나온 노성이 봉대의 말허리를 뚝 잘라버렸다.

《어째서 대원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가? 탁영대를 치라는 령은 집행하지 않고 갑자기 무슨 훈련인가? 여기가 무슨 개인분풀이를 하는 곳인줄 알아? 어디다 총을 내대는가? 당장 그 총을 내놔라.》

봉대는 뚝 굳어졌다.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나 하여 의병장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분명 자기를 책망하고있지 않는가.

봉대는 두눈을 퀭하게 뜨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녀석을 당장 군률로 다스릴테다. 저 사람이 어떤이인줄 네 아느냐?》

봉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제 편역을 들줄 알았는데 도리여 자기를 군률로 징계하겠단다.

봉대에게는 의병장의 행동이 천만뜻밖으로 생각되였다.

한성의 그날 밤을 벌써 잊어버렸단 말인가? 한성의 국수집앞에서 당한 일을 그래 잊었단 말인가?

수길이 그들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김정환을 향하여 공손히 말했다.

《의병장님, 제 잘못이 큽니다.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위신을 깎는짓을 했으니…》

한동안 봉대를 노려보던 김정환이 수길에게로 돌아섰다.

수길의 심드렁한 표정을 미안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와 함께 가기요. 여긴 그대가 있을 곳이 못되는가보오.》

수길이 머리를 흔들었다.

《저에게 마음을 써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그러나 전 여기에 그냥 있겠습니다.》

김정환은 수길의 깊은 속생각에 저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그럴수록 봉대의 처사가 더욱 괘씸스러웠다.

방금 김정환은 자기가 보낸 수길이네들이 의병들과 어떻게 친숙해지는가 보고싶어 한바퀴 돌았다.

먼저 리달삼이가 간 무삼이네쪽에 들렸다.

무삼이는 김정환을 만나자마자 입이 터진 팥자루가 되여 말했다.

《저런 보배덩이가 어디서 왔수? 총을 얼마나 잘 쏘는지 정말 귀신같수다. 게다가 말은 또 얼마나 재간있게 하는지… 하하하, 자기가 뭐 왕자님이라나요. 왕자님이든 부처님이든 하여간 우리가 살통이 났어요.》

김정환은 기분이 좋았다.

거의 모두가 농민출신이여서 언제 손에 총을 잡아보았겠는가? 이들을 거느린 무삼이만 놓고보아도 그랬다. 그가 사냥군이였노라고 자처를 하지만 총보다도 손에 활이 더 익은터이라 싸움에선 힘내기부터 하려들었던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들에게 병법에도 능하고 싸움도 잘하는 《왕자님》이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박태영이 간 박주룡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주룡이가 박씨집안에도 대단한 인물이 있노라며 어찌나 성수를 올리는지 김정환은 그의 우스개소리에 한동안 웃음집을 터쳐놓고야 물러날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수길을 맞이한 기봉대네도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왔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줄이야. …

자기가 그만 강수길이에 대한 봉대의 적의심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봉대의 심정은 알만 했다.

탄약때문에 한성에 갔다가 돌아오며 자기의 주리를 틀겠다던 그 경찰관을 그냥 내버려두고 온것이 속에 맺힌다면서 끙끙거리던 봉대이고보면 그럴만도 한 일이였다.

자기 역시 수길이에 대해 몰랐을 때는 그와 같은 적의심을 가지고있지 않았는가. …

김정환은 수길의 부탁도 있는지라 이 자리에서는 그에 대하여 까밝힐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회를 봐가며 봉대에게만은 이야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말해줄수 없는것이 그로서도 안타까왔다.

김정환은 봉대에게 다시한번 이런 일이 벌어질 때는 군률이 용서치 않을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엄포를 놓는것으로 그치고말았다.

그리고나서 봉대를 외면하고 발길을 돌렸다.

김정환이 멀어져가자 봉대는 입을 벌리고 바라보기만 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