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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회


제8장 마지막의병대


3


강수길은 나이는 젊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듯 몹시도 과묵한 표정이였다.

지금도 자기의 말을 듣고 놀라운 눈길을 던지는 김정환을 외면한채로 어디인가를 줄곧 응시하고있었다.

김정환은 수길의 이야기를 놀라움속에 들었다.

이 경찰관이 일본군사령관놈을 격살하기 위해 비밀리에 동료들을 규합하고 활동해온 자객이라는것이 놀라왔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였다.

왜놈들이 수많은 무력을 들이밀고 나라를 통채로 먹으려고 날뛸 때 황제와 그를 둘러싼 많은 대신들이 왜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보려고 별의별 눈물겨운 구걸과 제딴의 의거들을 단행하였다.

그러한 막연한 의거들은 왜놈들이 《을사5조약》을 날조하자 더욱 고조되였다.

일제의 강도적요구로 가득찬 《을사5조약》날조에서 나라의 숨통을 제일 조이게 한것이 음흉한 염소도적을 련상시키는 늙은 이또가 아니라 바로 하세가와가 지휘하는 일본군무력이였다.

그때 황제 고종이 강도적인 《을사5조약》날조에 조인하는것을 완강히 반대하자 이또의 사촉을 받은 하세가와는 자기가 거느린 일본군 보병, 기병, 포병, 헌병들로써 황궁일대를 비롯한 한성시내에 삼엄한 군사적폭압망을 늘여 황실과 정부를 위협하였다.

이리하여 황제의 의사에는 관계없이 망국의 수치는 이루어지고말았다.

나라의 수치를 느낀 여러 대신들은 점점 로골화되는 위협에서 벗어나는것과 함께 《충의심》을 발휘하여 무력을 등대고 황제를 압박한 일본군의 무력을 거머쥔 하세가와를 비롯한 악명높은 《정한론》의 집행자들을 비밀리에 처단하기 위한 제나름의 비밀활동을 벌리였던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세울수 있었던가.

김정환은 수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이 자객으로서 그럼 왜 하세가와를 쏘지 못했소. 혹시 기회를 만나지 못했소?》

수길이는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 쏘지 못했지요. 헤그에서 리준선생이 배를 가른것을 구실로 왜놈들은 황제페하를 강제퇴위시켰고 나중에는 무력으로 나라를 통채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왜놈들이 조작한 데라우찌암살미수사건을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는것처럼 지금 우리 민족은 왜놈들의 칼도마우에 올라있습니다. 왜놈들은 그 데라우찌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해서 조선사람 수백명을 체포하였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의병대들에 대한 탄압에 리용하려고 꾀하고있습니다. 왜놈들은 적수공권의 우리 민족을 향하여 칼을 높이 쳐들고 내려칠 기회만을 기다립니다. 민족의 존엄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해도 믿고 의지할 기둥이 있어야 함을 나는 나의 총구앞에 놓인 하세가와를 놓고 절통하게 느끼였습니다. … 내가 그것도 없이 이제 또 하세가와나 그 어떤 권력을 쥐고있는 왜놈을 격살해야 나라의 군력이 없는 한 왜놈들이 마음껏 민족을 란도질할 구실만을 줄뿐입니다. 나는 나 일개인과 하세가와란 왜놈 한놈으로 인하여 민족이 또다시 수난의 진창에 나딩굴게 되는것을 원치 않았을따름입니다.》

수길의 눈에 진득한 눈물이 흘렀다.

《난 내 목숨이 아까와 쏘지 못한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일본놈들은 그 어느 놈이나 할것없이 모두가 나라의 원쑤이고 백성들의 극악한 원쑤입니다. 그러니 하세가와 한놈을 죽이고 죽느니 더 많은 왜놈들을 료정내고 죽고싶습니다. 황제의 분풀이가 아니라 백성들의 원한을 다소나마 풀어주고 죽겠단 말입니다.》

김정환은 수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민족의 원쑤인 왜놈들과 사생결단하자고 나선 그 길에서 비록 부친앞에서 다진 맹약을 지키지는 못했으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의 원한, 백성들의 원한을 조금이나마 가시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도 조선민족의 한 성원인것이다.

김정환은 잠시 수길을 바라보다가 거의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심정은 알만 하오. 그러나 이런걸 생각해보았소? 지금 나라의 곳곳에 일어났던 의병대가 전부 사라져버렸소. 그러한 상황에서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 평산의병대가 얼마나 더 견딜것 같소?》

수길은 김정환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의 가슴속을 모진 아픔으로 헤집는 가장 큰 상처였다.

신식무장에 대포까지 든 왜놈들에 비하여 지금 남은 얼마 안되는 의병대는 수적으로나 무장에 있어서 대비조차 할수도 없지 않은가.

불과 이삼년전까지만 해도 전국도처에서 들고일어났던 의병투쟁이 모두 사멸해버리고 이제 남은 의병이란 여기 김정환의 평산의병대와 채응언이 이끈 곡산의병대가 전부라고 할수 있었다.

김정환은 점점 심각해지는 강수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난 우리 의병대를 이끈 순간부터 항상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사오. 그래도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할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류린석도총재님과 리진룡이가 바로 이 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들어가버린 그때부터 나의 가슴속엔 오직 절통한 마음만이 끓고있단 말이요. 보시오. 우리 의병들은 한사람한사람이 모두가 왜놈들을 때려내쫓고 나라를 구원할 기개를 지닌 사람들이요.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을 누가 옳게 이끌어나갈수 있겠소.》

잠시 격해지는 마음을 다잡는듯 큰숨을 들이키고난 김정환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한테도 백여명의 평산의병대를 끝까지 이끌 힘이 없소. 있다면 오직 목숨이 붙어있는 한 왜놈들과 사생결단할 의지뿐이요. 하기에 나와 평산의병대는 마지막까지 왜놈들과 싸우다 죽는것으로써 망국노의 운명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나라를 짓밟은 왜놈들을 쳐부시는 싸움에서는 어떠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민족의 기개를 왜놈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자는것이요.》

강수길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찌를듯 한 눈길로 김정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역시 평산의병대가 시국을 바꿔놓을수 있으리라고 믿고 찾아온건 아닙니다. 단지 왜놈들과 힘껏 싸우고있는 의병들이 부러웠을뿐이고 그래서 의병대와 함께 왜놈들을 마음껏 료정내다 죽고싶어 이렇게 찾아왔을뿐입니다.》

김정환은 수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진정이 맥맥히 흐르고있었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속에서 강수길이란 사람의 됨됨을 알게 되였고 그로 하여 김정환은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되였다.

이 사람의 몸에도 역시 왜놈을 끝없이 증오하고 나라를 위하는 조선민족의 피가 력력히 흐르고있었던것이다.

김정환에게 사람의 진가를 가늠하는데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더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알게 된 고익재의 딸 려은이를 지켜준 일과 한성에서 달삼이가 자기를 따르게 하여 뒤를 보아준 사실을 알게 된 김정환은 진심으로 감사의 정을 품게 되였다.

김정환은 수길이와 그의 동료들의 모습에서 지남이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이들이 지남이와 사생동거를 맺고 나라를 위해 위험한 길을 걸어온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민족이 잊지 못해하는 장한 아들인 리재명과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이여서 더욱 믿음이 갔다.

김정환은 그와 이야기를 마감지으면서 속에 걸리는것이 있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의병생활이 몸에 붙겠는지 그게 난감한 문제구만.》

수길이는 시무룩이 웃었다.

《날 량반집 비단이불속에서 호강한 호부자집자식으로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나라의 원쑤들과 사생결단하기 위하여 철이 들기 전부터 깊은 산중에 들어가 무예를 련마했고 그 과정에 풍찬로숙에 익숙되였습니다. 쪽발이들을 압도하려면 쪽발이들을 잘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엄한 당부로 일본에 건너가 류학을 하면서 별의별 마음고생을 다 겪어보았습니다. 난 그 무슨 호강을 하자고 여길 찾아온것은 아니니 오히려 그런 왼심이 부담스러울뿐입니다. 그저 왜놈들과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기만 하면 그만이고 죽을 때 조금이나마 비통해해줄 사람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잠시 말을 끊고 김정환을 바라보던 강수길이가 다시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 의병들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발설하지 말아주십시오. 일본군사령관놈을 없애버리지 못한 내가 민망스러워 그럽니다.》

김정환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지내보면 지내볼수록 속이 깊고 뜻이 큰 사나이였다.

김정환은 그를 봉대가 이끄는 대오에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봉대네가 농민들이 태반이여서 호미나 괭이를 다루라면 제법이여도 총다루는데서는 문외한들이였던것이다.

그런 사람들만 골라 자기에게 맡겼다고 봉대의 볼이 이만저만 부어있지 않았는데 강수길이가 가게 되면 아마 그들의 눈을 틔워주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이였다.

김정환은 곧 덕쇠를 불렀다.

《이 사람을 봉대가 있는 곳으로 모셔가거라. 그리고 너도 그곳에 남아 이번 탁영대를 치는 싸움에 참가하거라.》

덕쇠가 너무 좋아 껑충 뛰였다.

지금껏 자기도 싸움에 참가시켜달라고 매일같이 떼를 쓰던 덕쇠였다.

그래서 김정환은 그를 한번 싸움에 참가시켜 속풀이를 시켜주려고 벼르던 참이였던것이다. 마침 싸움을 할줄 아는 수길이가 있는 곳에서 싸움을 하면 그의 속이 한결 풀릴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조처를 하게 되였다.

덕쇠가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것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을 짓던 김정환은 수길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애를 따라가보시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나에게 말해주오.》

수길이가 김정환에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고맙습니다.》

덕쇠의 뒤를 따라 몇걸음 옮기던 강수길이 문득 멎어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던 그가 김정환에게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츰 기회를 봐서 한형과 송림이… 아니, 지남이가 묻힌 곳을 한번 찾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지남이의 딸애가 태여났다는데 그애를 꼭 봐야 우리의 마음이 편할것 같습니다.》

김정환은 수길을 마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나서 이곳으로 오는 과정에 김정환을 통하여 지남이의 희생을 듣고 몸부림치며 오열을 쏟던 강수길과 그의 동료들인 박태영, 리달삼의 정상이 다시금 안겨들었다.

남다른 정, 가슴저미는 사연을 안고있는 그들로서는 한정만과 지남이를 찾아보는것이 마땅했다.

살아서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면 아마도 만사람을 눈물속에 웃게 하였으리라.

허나 지금은 수길이와 그의 동료들인 리달삼, 박태영의 가슴을 미여지게 하는 쓸쓸하고 억장이 끓는 쓰린 아픔의 눈물만이 한정만과 지남의 봉분우에 쏟아질것을 생각하니 정환의 가슴이 못견디게 저려들었다.

김정환은 말을 못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금시 붉어지는 눈시울을 손으로 문지르고나서 덕쇠에게 조용히 눈짓했다.

덕쇠가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수길이를 밖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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