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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제 4 장


5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정 참을수가 없으시였다.

박문규네 집사정을 자초지종 다 알려드린것은 주영화였다.

모란봉에서 박문규를 만나 너무도 뜻밖의 억이 막히는 사연을 알게는 되였지만 류룡철도 절대로 김정일동지께 그 말씀만은 올려서는 안된다는 문규의 말에 공감이 되여 같이 속마음만 앓고있었다는것이였다.

주영화가 눈치를 채 류룡철은 그에게만 절대비밀을 약속하면서 속을 터놓았던것이다.

류룡철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주영화는 마음 꽝 놓으라고 장담은 해보이면서도 당초에 이 일은 저희들끼리 속에 꿍져안고있어서는 안된다고 단호한 생각을 했다.

박문규나 류룡철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되였지만 그 엄청난 일을 자루속에 든 바늘이나 송곳이라고 숨기고있겠는가. 시간문제이지 민청부위원장동무가 영영 모르실수 있는 일은 더우기 아니지 않는가. 그이께서 늘 일깨워주시는것처럼 진정한 동무라면 절대로 그럴수가 없기도 하지만 얼마 안있어 반드시 알게 되실 일이 명백한데 그러면 정일동무의 심정은 또 어떻겠는가 하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우선 장운영부터 조용히 만났다. 박문규의 아버지가 문화성 창작가들의 회의에서 되게 취급됐다면 그의 아버지가 제일 정확히 알수 있을게 아닌가.

주영화는 아연할만큼 또 한번 놀랐다.

박문규의 말이 나오자 장운영의 태도가 너무도 차고 쌀쌀해졌던것이다. 잘코사니야 하고 깨고소해하는감까지 느껴졌다. 진짜 반동작가의 아들로 치부하는건 아니냐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몇마디 더 주고받고서야 그는 장운영도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있다는것을 확인했다.

《실은 울아버지도 속상해한다. 재능은 인정하거던. 그이상 더 집에 와서 얘기한게 없어.》

주영화는 장운영의 그 말을 듣고서야 그가 박문규한테 그렇게 앵도라진것은 얼마전에 있은 민청회의때 문규한테서 호상비판을 모질게 받은 일때문이라는것을 알았다.

김정일동지께서 이미 각 초급단체총회들을 지도하시면서 가르치고 요구하신대로 학습과 조직생활에서 나타난 결함을 놓고는 누구나 다 량심적으로 총화를 하는 회의였고 또 누구나 다 받게 되는 호상비판이였으나 박문규의 호상비판만은 가슴에 딱 맺혀 내려가지 않아하던 장운영이였다. 그도그럴것이 다른 동무들은 어쩌다 공부시간에 지각을 했거나 책을 읽다가 마당청소에 좀 늦게 나간 문제같은것을 놓고 간단간단히 충고했는데 박문규는 피장파장인 결함을 놓고도 교만성이요, 오연성이요, 체병이요 하면서 작중인물의 성격규정이라도 하듯이 여간만 맵짜게 찌르고들지 않았던것이다.

주영화는 회의에서 받은 비판은 비판이고 지금까지 함께 공부하던 동무의 운명문제인데 그렇게까지 생각할게 있느냐고 한마디 나무람을 쓰고싶었지만 가뜩이나 심각한 문제여서 괜히 잘못 건드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게 아닐가싶어 입술을 깨물며 돌아서버렸었다.

주영화한테서 너무도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신 김정일동지께서도 생각이 깊어지시였다. 좋기는 아버님께 직접 말씀올렸으면 좋겠는데 아버님께선 올해농사일로 해서 서해지구에 대한 현지지도길에 계시였다. 서해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면 그길로 다시 동해공업지구로 가실 예정이였으며 지방현지지도를 마친 후에는 또 중요한 회의를 계획하신다고 하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이 직접 장운영의 아버지를 만나기로 하시였다.

장운영을 앞세우고 갈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박문규와 옭맺힌 감정이 아직 풀리지 않은것도 문제이고 그 무슨 인맥관계를 내세우는것 같아 혼자 조용히 찾아가기로 하시였다.

문화성정문앞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마침 안면이 있는 한 일군과 마주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찾아오신 사연을 알자 그 일군은 딱한 표정부터 지었다. 작품에 작가의 의도는 물론 좋지만 일련의 심중한 문제들도 있는것은 사실이라는것이였다.

장초부상의 견해를 물으시니 이제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는 좀 애매한 견해와 립장이라고 하면서 제가 직접 부상의 방에까지 안내해주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무엇인가 피하는게 분명했다.

장초부상도 무척 반가와하기는 하면서도 역시 딱해하는 립장이였다.

의자를 권하며 보온병의 물을 따라준다고 서둘렀지만 저으기 당황해하는 기미까지 느껴지시였다.

장초부상은 얼마간 그렇게 서름서름해하다가 이윽하여 자기자리에 가앉더니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총체적으로 낡고 구태의연한 극작술에 대담하게 도전한 작품이였는데 그런 작품인 경우 대체로 그렇듯이 거부적인 반격이 말이 아니였소. 초당적인 발언도 없지 않았습니다.》

부상은 공식석상에서처럼 말을 떼다가 지나치게 딱딱해진다는것을 깨달은 모양 고개를 한번 젓고나서 부드럽게 억양을 바꾸었다.

《작가에게 다시 잘 수정해보는것이 어떤가 하고 이를테면 작가한테 시간을 좀 주어보자는 의견도 제기됐는데 허참… 글쎄 날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가 찾은 중요한 교훈은 첫째도 둘째도 수령님의 문예사상, 당의 문예방침으로 철저히 무장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런 상태에서는 백날을 책상머리에 앉아 뜯어고친다고 해도 당에서 바라고 인민들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완성할수 없다는거였소. 5개년계획수행으로 들끓고있는 벅찬 현실속에 들어가 우선 로동계급의 투쟁정신, 혁명정신을 배워야 하겠다는거였지.… 본인으로서 자책을 크게 느끼니 그렇지 진짜 그러기야 하랴 했는데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게 아니겠소. 아침차로 벌써 떠났더란 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도 놀라 물으시였다.

《떠났단 말입니까? 어데로 말입니까?》

장초부상은 손을 한번 내저으며 한숨까지 가볍게 내쉬고나서 말을 이었다.

《그날 저녁녘에 전화를 걸어왔더구만. 락원쪽으로 갔는데 그곳 기계공장에 자리를 잡았다는거요. 퇴거수속을 비롯해서 필요한 수속은 안해가 다 해가지고 뒤따라올테니 걱정말라는거였지. 부인도 다음날로 수속을 다 해가지고 뒤따라갔다고 하오.… 내가 잘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재능과 열성만을 지내 내세워주었댔거던.… 하지만 우린 믿습니다. 그는 꼭 훌륭한 작품을 완성해가지고 올겁니다. 훌륭한 작가가 돼서 말이요!》

장초부상은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앞을 몇걸음 거닐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결 마음이 놓이시였다.

박문규 아버지의 그 대담하고 혁신적인 창작태도와 작가적립장, 자세에 공감이 가시였던것이다. 벅찬 현실속에 들어가 로동계급의 혁명정신부터 배우겠다는 립장과 자세가 얼마나 옳은것인가. 그것은 아버님께서 우리의 문학예술인들에게 시종 바라시는 기대였으며 당의 요구였다.

아버님께서는 해방직후에 있은 북조선 각 도인민위원회, 정당, 사회단체 선전원, 문화인, 예술인대회에서도 첫째과업으로 그 문제를 제기하시였고 전쟁이 한창이던 때 작가, 예술가들을 만나시여 하신 담화에서도 작가들이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대와 후방인민들의 영웅적인 투쟁모습을 잘 형상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은 바로 그들이 생활에서 유리되고 급속히 전진하는 현실에서 뒤떨어지고있기때문이라고 얼마나 간곡하고 절절하게 가르치시였던가.

장초부상은 김정일동지께서 얼마간 마음을 놓으시는걸 알고서야 자기가 앉았던 의자의 등받이에 손을 얹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아직 그 집 아들은 떠나지 않았다고 하던데…》

김정일동지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자책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예, 실은 저도 감감 모르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찾아온것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지 않소. 음…》

장초부상은 의미있게 의자등받이를 한번 가볍게 치고나서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내 우리 운영이한테 싫은 소리를 좀 했소. 제 어머니한테 들으니 그 집 아들한테서 비판받은걸 삭이지 못해한다더구만. 물에 빠진 사람 꼭대기 누르는것처럼 고약한건 없다고 했소.》

《그건 지나친 말씀입니다.》

《아니, 우리 그애가 덩치는 커두 아직 철이 없소. 외동딸이라고 너무 어자어자하며 키워서 코대가 좀 높아. 뭐 홍부상네 아들과도 쩍하면 충돌이라고 하더구만.》

그때 똑똑똑 하고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여러건의 문건을 든 녀성일군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장초부상은 다짜고짜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좀 있다가 오오. 중요한 담화중이요.》

하지만 녀성일군은 저으기 딱한 표정을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장운영에 대해 생각되는 점들을 좀 이야기해주고싶었지만 그만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녀성일군이 무슨 일인가 몹시 급해하는것 같기도 한데다 장초부상의 학부형으로서의 책임과 자녀교양에 대한 관심이 그만하면 괜찮다는 믿음이 가시였던것이다.

《좋은 말씀 해주어 고맙습니다. 운영동무는 걱정마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 막으시였지만 장초부상은 그냥 청사정문까지 따라나오며 바래주었다.

찾아올 때보다는 퍼그나 걸음이 가벼웠으나 박문규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시였다. 생활은 어디까지나 생활이 아닌가. 아버지, 어머니가 다 지방으로 떠나갔다면 그는 지금 어떻게 하고있다는것인가?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자는가?

보다 섭섭한것은 그 엄청난 일을 감추고있은것이였다.

지금껏 한두해도 아니고 인민학교때부터 수년간이나 함께 뛰놀고 자라면서 공부했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되셨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서운함만은 참을수가 없어 이튿날 그이께서는 하루수업이 끝나자 민청실에서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을 뒤로 미루고 박문규는 물론 류룡철까지 만수대둔덕밑의 조용한 숲속공지로 부르시였다.

철부지 유치원시절부터 봄날이면 술래잡기, 여름이면 군사놀이, 가을이면 열매따기와 잠자리잡기… 별의별 놀음을 다하며 뼈를 굳히고 정을 키우며 자란 추억깊은 곳이였다.

때로는 찢어진 팔소매나 바지가랭이를 보며 걱정도 했고 피흐르는 무릎을 서로 붙안고 입김으로 호호 불어주며 웃기도 하던 정다운 요람!

김정일동지께서 왜서 굳이 이곳을 찾으셨는지 그 의도를 너무도 뜨겁게 가슴에 새긴 두 동무는 시종 고개를 떨군채 입술만 짓물고있었다.

치미는 격정을 누르며 잔디밭우를 그냥 거니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이윽고 박문규앞에 멈춰서며 나직이 물으시였다.

《그사이 집에 혼자 있었니?》

겹쌓이던 걱정과 서분함을 한마디로 응축하신 물음이였다.

박문규는 입을 열지 못한채 고개만 저었다.

류룡철이 대신 알려드렸다.

《모란봉구역 삼촌네 집에 가있었어. 실은 아버지랑 같이 떠나야 했는데 정일동무에게 알리지도 못한데다가 다문 며칠이라도 함께 더 있고싶어서 부모님들의 승낙을 받았던거야.》

김정일동지께서는 명치우로 불뭉치같은것이 치미는것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말이 막히여 박문규를 쳐다보기만 하시였다.

(다문 며칠만이라도 함께 더 있고싶어서 떨어졌단 말이지.)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외우시였다. 그 말 한마디면 박문규는 물론 류룡철의 심정까지도 너무도 잘 알수 있지 않는가. 오죽했으면 무조건 응당 부축해나서야 할 아들이 다른 길도 아닌 가슴아픈 부모님들과 함께 걸어야 할 그 걸음에서 단 며칠이나마 떨어질 결심을 했겠는가.

와락 붙안고싶었지만 그이께서는 고개를 저으셨다. 류룡철이나 주영화, 다른 동무들처럼 여린 정이나 나누며 동정이나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드시였던것이다. 할머님께서 팔도구에 계실 때 눈보라 세찬 압록강의 국경을 방금 건너서신 아버님을 하루밤만이라도 따뜻한 품에 안고있고싶지 않으셔서 그날 저녁으로 눈보라속을 헤쳐야 하는 림강으로 떠내보내시였겠는가.

그이께서는 부러 나무람을 하는듯 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난 내가 진정으로 너희들의 동무, 동지였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두 동무는 펄쩍 뛰였다.

《아니, 정일동무!》

정일동무, 무슨 그런…》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일축하셨다.

《가만, 내 말을 들어. 생각들 해봐. 문규, 넌 너의 그 속상한 일을 룡철이한텐 솔직히 다 얘길 했지? 룡철인 또 영화동무한테 알렸구.》

룡철이가 황황히 다가섰다.

《아, 그거야…》

《들으란데, 물론 너희들의 심정은 리해돼. 하지만 영화동무의 말처럼 그 일을 내가 영영 모를수 있겠니? 문규, 룡철이.… 어디 그에 대해서 대답해봐.》

그들은 대답이 막혀 몸만 궁싯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간 사이를 두었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실망하게 된건 뭔가. 너희들이 날 위한다고는 하면서 아직도 나를 몰라준다는거야. 이 김정일 뭐 귀를 막고 다니기라도 한다는거냐? 지난날 이 숲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함께 자란건 뭐냐. 그땐 그때구 지금은 다르다는거니? 앞으로 나이가 들면 더 달라진다는거겠구?》

박문규의 입에서 울음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정일동무, 내가 그만, 내가 일체 말을 내지 못하게 했어.》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약간 저으시였다. 무슨 말씀인가 이으려고 하다가 조용히 돌아서시였다. 두손을 허리에 올려짚으며 둔덕아래 경상골쪽을 내려다보시였다. 어차피 문규는 부모님들을 따라 보내야겠구나, 수도건설장에서 진짜 진지한 현실체험을 하게 되였다고 누구보다 좋아하던 그였는데, 그를 실속있게 더 잘 도와주어 작품도 훌륭하게 완성시키자고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현실체험생각이 드니 마음이 얼마간 편안해지시였다. 제스스로 로동계급속에 들어간 아버지를 따라가는게 아닌가.

지금은 비록 헤여지는 아픔도 있지만 그런 훌륭한 아버지의 곁에서 배우는 작가수업의 길은 더 빠를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이께서는 힘을 주고 신심을 주고 희망을 확신시켜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부득이 헤여져야 하는 조건에서 결코 서운한 감정에만 사로잡혀있어서는 안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생활이란 복잡다단하다는 말 있잖아. 우리도 이제 그 생활의 바다에 용약 뛰여들게 되는거구. 어떻게 하루같고 하나같겠어. 또 우리가 내내 지금처럼 한학교, 한학급에서 공부하겠어? 멀지 않아 학교를 졸업하게 될거구 졸업을 하면 제각기 자기 희망대로 갈길을 따라 헤여져야 하는건 자명하지 않아.

문제는 뭔가. 오늘의 우정, 동지적사랑과 믿음이 변하지 않는게 아니겠어? 그러자면 뭔가? 서로의 믿음이야. 무슨 일에 부닥치든 어느곳에 가있든… 그런데 문규, 룡철이, 너희들은 내가 가슴아파할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그처럼 참기 힘든 고민을 숨기고있었거던. 이게 과연 자기 동지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냐? 앞으로 이보다 더 큰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이 없겠어? 그럴 때는 어쩔테냐 말이다. 난 이게 섭섭하다는거다. 정말 섭섭하구나.》

그이께서는 가슴속에서 격랑같은것이 출렁하는감을 느끼시였다.

멀지 않아 어차피 맞이하게 될 졸업이라는 생각과 함께 무엇인가 왈카닥 고패쳐서였다.

금시 손을 저으며 환희와 랑만에 넘쳐 조국의 방방곡곡으로 떠나갈 동무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시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서운한 감정이 따라설가?

아니, 결코 그렇지만은 아닐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계속 자신의 섭섭함만을 터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문규와 룡철에게 바친 정이야 좀 적은것이였던가!

그이께서는 마디마디 힘을 주어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에 대해선 더 말하지 말자. 오늘 내가 꼭 하고싶은 말은 뭔가. 우린 어딜 가나 아버지원수님의 품에 안겨있다는거다. 내 나라, 내 조국의 품에! 이것만 잊지 않으면 돼. 전날 웅변모임에서도 열렬히 토론들 했지만 우리의 꿈과 리상, 희망이 뭐냐? 미래의 주인, 내 나라의 주인이 되여 모두가 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훌륭한 일들을 하자는것이였지? 그러자면 첫째도 둘째도 아버지원수님을 진심으로 잘 받들어모시고 무슨 일을 하든 원수님께서 가르치시는대로만 할줄 아는거야. 우리의 우정도 그 길에서만이 영원히 더 굳게 다져질수 있는거구.

소설을 한편 써도 그렇고 시를 한편 지어도 그것만 명심하면 돼. 문규, 난 너의 아버지도 꼭 그렇게 사시리라고 믿는다. 꼭!》

《됐어, 정일동무!》

박문규가 목이 꽉 메여 격정을 터쳤다.

《알겠어, 정일동무. 정말 고마워. 난 어디 가든 우리가 사랑하는 귀중한 조국은 아버지원수님의 품이라고 한 정일동무의 시를 절대 잊지 않겠어. 이 심장으로 맹세해.》

박문규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였다.

박문규를 마주보는 그이의 안광에서도 물기가 번뜩이였다.

박문규는 폭발처럼 솟구치는 고마움과 감격, 믿음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가슴만 들먹이였다. 그러다 다짜고짜 류룡철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으며 흥분을 터쳤다.

《룡철이, 우리 정일동무앞에서 노래 하나 부르자.》

《노래?!》

류룡철이 의아하여 되물었다.

《응, 노래. 거 있지 않니, 요전날 네가 모란봉에 올라오면서 부르던 노래.》

《오, 〈조국의 품〉… 정일동무가 지은거!》

《그래, 정일동무가 지은 노래!》

류룡철은 그제서야 박문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저도 제꺽 그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어깨겯고 부르는 두 동무의 노래소리가 해빛 찬란히 쏟아지는 숲속으로 조용조용 울려퍼졌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인가요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갠가요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셨다.

여섯해전 전쟁의 불구름속에서 지으신 노래, 멀리 현지지도길에 계시는 아버님이 그립고 어머님이 그리워 철따라, 절기따라 모란봉의 자태가 변모될 때마다 부르군 하시던 노래, 그 노래가 그렇듯 가슴을 울리며 목이 메이게 할줄은 모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박문규옆에 다가서며 같이 노래를 부르시였다.


바다우에 둥실 솟는 아침핸가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인가요

해빛처럼 밝고밝은 조국의 품은

아버지장군님 품이랍니다


박문규의 눈에서는 더욱 뜨겁고 굵은 눈물이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 ×


계절할아버지가 정신착란이라도 일으켰댔는지 점심녘에 접어들면서 진눈까비를 한바탕 내리부었다.

온 도시가 깜짝 놀라는 소리에 비로소 제바로 정신을 차린듯 눈발을 거두더니 창대같은 소나기를 쏟아부어 거리거리, 골목골목들에 덮였던 눈판을 깨끗이 녹여버렸다.

창문에 좌르르 들씌워지군 하던 비발은 차츰차츰 가늘어지더니 안개발과도 같은 실비로 변했다. 꽈르릉, 꽈르릉 뢰성을 울리며 일이라도 낼듯싶던 하늘이 이번에는 그 무슨 체면을 차리려는지 검은 구름장들을 왕왕 몰아왔다. 모란봉을 넘어 대성산상공으로 물밀듯이 밀려가다가 맥이 빠졌는지 이따금 굼실굼실 굼니는 구름장사이로 파랗게 창이 나면서 금빛해살이 눈부시게 쏟아져내렸다. 하면서도 비발만은 그치지 않았다.

장운영은 텅 빈 교실에 댕그라니 혼자 앉아있었다. 해가 나면서도 비발이 그냥 뿌려지는것처럼 마음이 하냥 번거로왔다.

오늘 학급전원은 평양역으로 나가기로 했었다. 박문규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지방으로 전학을 가게 된것이다.

원래는 류룡철이며 최원석, 주영화를 비롯한 몇몇 가까이 지내던 동무들끼리 나가 바래줄 작정이였는데 그것을 아신 김정일동지께서 리용을 찾아 학급전체동무들이 다 나가 힘을 주고 고무도 해주면서 떠나보내는것이 어떤가고 조용히 의견을 주시였던것이다. 리용이 옳다고 적극적으로 찬동해나서자 동무들은 저저마다 추억에 남을 기념품들도 준비하자고 들썩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기뻐하시며 좋다고 긍정해주시자 동무들은 즉석에서 《우야!》소리를 지르며 집들로 헤쳐져갔다. 한시간내로 평양역앞 공원에 모이기로 했던것이다.

장운영은 대뜸 지금껏 쓰지 않고 보관해두고있던 고급만년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역성에 있는 아버지의 친구가 외국에 갔다오면서 가져다준 기념품이였다.

결심까지는 그렇게 했으나 정작 역으로 나가자니 닁큼 발걸음이 떼여지질 않았다. 며칠전 민청회의때 박문규한테서 비판을 받은 일로 해서였다. 사실말이지 그는 아직 억울하고 지어 괘씸하기까지 한 감정이 없지 않았다.

(뭐 교만? 오연? 체병?!)

참말이지 그날 그는 속이 왈칵 뒤집히면서 온몸에 화토불이라도 뒤집어쓰는것 같았었다. 며칠동안은 교실은 물론 학교운동장에도 얼굴 내밀기가 부끄러웠고 그만큼 박문규가 괘씸하고 미워났다.

글쎄 다른 동무라면 또 모른다.

문화성산하 창작기관에 있는 작가의 아들이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학급에 문학예술부문의 자녀가 많기라도 한가. 저건 분명히 홍종팔을 비롯해서 그와 가까이 지내던 동무들에 대한 지난날에 품었던 감정의 폭발이라고 생각하니 더우기 참을수가 없었다.

남자가 옹졸하고 시시하게 아직도 그 감정을 품고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을 그리는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서… 졸렬하다. 정말이지 치졸한 행위야! 하고 생각하니 이전에 좋게 보았던 인상마저도 싹 다 사라지고 마주보기조차 싫어졌다.

한데 며칠 안있어 그의 아버지문제가 되게 제기된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잘코사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박문규가 얼굴이 컴컴해서 나타났을 때는 진짜 《오연》히 고개를 잔뜩 쳐들고 멸시의 눈길까지 보냈었다.

박문규라고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제편에서 자꾸 피하려 하군 했던것이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자기 편에서 더 미안해났다. 그러던차 예상밖에도 지방《추방》으로까지 문제가 심각해진다는것을 알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도 그것이 부상인 아버지의 처사이기라도 한것같은, 더우기는 자기 역시 치졸한 개인복수심에 빠졌댔다는 죄감으로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서기가 베차지군 했다.

그런데 정작 리별의 날이 다닥치자 생각이 여간 많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물에 빠진 사람 꼭대기 누르는것처럼 고약하고 악한짓은 없다는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는 진짜 잠도 제대로 안왔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졸렬한 인간이 됐을가?!)

더우기 김정일동지께서 박문규문제로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만나시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디로 도망이라도 치고싶은 심정이였다. 지금도 자책속에 미안한감을 누를수 없었지만 한편 배웅의 길에 나서자니 선듯 동무들과 같이 나설 용기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자기의 《오연》을 알고도 남는 박문규인데 평양을 떠나는 그 아픈 출발의 지점에 내가 얼굴을 내민다면 자기는 물론 그렇지 않지만 기차에 몸을 싣는 그로서야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이야말로 그한테 두번다시 아픔과 모욕을 들씌우는 죄가 아닐가.

오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가.

정녕 가야 하면서도 가기 힘든, 갈수가 없는 걸음이였다.

(정말 어쩌면 좋아, 에이, 이 옹졸한 장운영이!)

입술을 옥무느라니 눈물까지 핑 어렸다.

문득 교실 뒤문이 가만히 열렸다.

얼결에 뒤를 돌아다보던 장운영은 불에라도 덴듯이 펄쩍 일어났다.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들어서시였던것이다.

장운영은 황급히 눈물부터 씻었다. 얼굴이 화끈 탔다.

점점 더 몸둘바를 몰라했다. 무슨 일에서든 동무들의 마음부터 속속들이 알아보군 하시는 그이이시였기때문이였다. 오늘도 자기를 찬찬히 다 지켜보시였으며 그래서 부러 교실을 떠나지 못하는 자기를 찾아오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아니나다를가 그이께서는 잠시 장운영을 지켜보시다가 가까운 곳의 책상앞에 앉으며 나직하면서도 직판 찌르듯이 물으시였다.

《아직도 문규동무의 비판이 내려가지 않니?》

《아니, 저…》

장운영은 왜서인지 또 눈물이 왈칵했다.

무작정 솔직해지고싶었다.

《저… 사실 며칠전까지만도 문규동무가 막 미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문제가 제기된 때부턴 동정심이 가구… 우리 아버지때문에 그렇게 된것 같은 미안한감도 들었어요.》

장운영은 분명히 평양역으로 나가야 하지만 나가기가 주저되던 감정까지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그의 말이 끝났지만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였다.

얼마간을 그렇게 침묵하시다가 조용히 외우시였다.

《그러니 동정심에 용서를 한다는거겠소?》

운영은 무엇인가 왈칵 무너지는것 같았다. 너무 당황하여 눈길 둘곳을 찾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러는 운영을 놓칠세라 지켜보시고나서 부드럽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난 운영동무가 교양도 있고 생각도 깊이 한다고 봤어. 그런데 최근 문규동무와의 문제를 놓고는 생각이 좀 많아지더란 말이요. 우선 운영동무가 문규동무에 대한 파악을 정확히 하는것 같지 않아. 내가 알건대 문규동무는 가식을 모르는 솔직한 성미라는거야. 그는 비록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말은 정확히 해. 물론 그날 문규의 비판에서 좀 모나는 표현들이 있은것은 사실이요. 하지만 무엇을 리해해야 하는가? 그는 문학공부를 심도있게 한다는거야. 현상보다도 본질을 파헤치려는데 습관됐거던. 그런데 운영동문 그것을 다른 감정으로 리해했다는거요. 초급단체위원장동무의 견해도 들어봤는데 그도 명백히 운영동무가 괜한 선입견을 가지고 오해한다고 하더구만.》

장운영은 얼굴이 해쓱해지는감을 느꼈다.

(선입견?… 오해?!… 하다면 진짜 오해를 한건 내가 아닌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계속하시였다.

《난 운영동무가 동정심에서 용서를 하게 된다는 말이 좋게 들리지 않는구만. 만약 진짜 그렇다면 문규동무는 그 용서를 절대로 접수하지 않을거야. 동무들의 진심을 동정같은것으로 대치할수는 없어.》

장운영은 더는 듣고만 있을수가 없었다.

뜻밖에 생긴 기회여서 더 많은 말씀을 듣고싶었지만 그이께서도 빨리 역으로 나가야 하시지 않는가.

그는 제사 조급하여 씨원스럽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위원장동무. 내가 잘못했어요. 모든걸 다… 인차 역으로 나가겠습니다. 솔직하게 반성하고 진심으로 바래주겠어요.》

《그래?》

그이께서는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쾌활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렇다고 뭐 역에서 새삼스럽게 속죄를 하라는건 아니요. 실은 운영동무가 역으로 나가는 그자체가 진실한 반성이지. 이젠 됐어.… 운영동무, 사실말이지 운영동무가 빠진다면 어떻게 되겠어? 문규도 그렇지만 운영동무도 오래도록 앙치처럼 속에 깔고있을게 아니야? 일생토록이라도 말이지.》

장운영은 속이 뭉클했다.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동무들은 이미 다 헤쳐들갔건만 바쁜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주는구나.)

그는 저도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진정을 터쳤다.

《고맙습니다, 부위원장동무. 오늘을 일생 잊지 않겠어요.》

날개가 돋쳐 교실을 나선 그는 동무들한테 뒤질세라 곧바로 집으로 줄달음쳤다.

트렁크속에 깊숙이 보관해두었던 고급만년필을 찾아들고 뚜껑을 여니 윤기 반짝이는 새노란 금촉에 눈이 부셨다. 티 한점 없는 그 금빛에 불속에서도 타지 않는다는 금과 같이 변함없을 우정이 비낀듯싶었다.

(문규동무, 날 용서해줘요.)

진심으로 용서를 빌려니 아직 무엇인가 부족한것 같았다. 아무리 귀히 여겼던것일지라도 만년필 하나만으로는 자기의 마음을 다 전할것같지 못했던것이다.

옳지! 하는 생각에 그는 서둘러 책장문을 열었다.

역시 앞으로 대학에 가면 쓰려고 했던 양가죽을 씌운 까맣고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두툼한 수첩 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하얀 모조지에 파르스름한 색갈의 줄을 정히 친 수첩장을 정차게 펼쳐보았다.

그대로만 주기에는 좀 멋한감이 들었다.

장운영은 책상앞에 단정히 마주앉았다. 아주 뜻있는 글을 새겨주고 싶었다.

행복? 건강? 미래?… 아니, 아니야.

그는 안타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펀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우정?!

그렇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그 이상 훌륭한 기념글은 없어!

장운영은 흥분하여 힘차게 필을 달렸다.


설사 그것이 크든작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나의 동무들을 나는 사랑한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의리의 동지

언제나 진실하고 뜨거워

남이 자기로 되는 그 세계던가


친근한 나의 동무여

지금쯤 무엇을 생각하고있느냐

믿음을 떠난 우정이란 없거니

그것을 버린 오늘의 일을

가슴아프게 뉘우치는가


만일 순간의 그 어떤 딱한 사정

리유며 조건이며를 용납한다면

인정에 져 번번이 두둔한다면

그것이 무슨 우정이랴

그늘속에 자라는건 곰팡이뿐이더라


오, 나의 충고를 넓게 받아다오

너는 결코 버릴수 없는 나

손잡고 세상끝이라도 가야 할

너는 귀중한 우리의 너


동무여, 참다운 우정이란 무엇이랴

가슴에 따로 둔 심장이 없는

비록 몸은 낱낱으로 되였어도

심장은 하나인 우리들의 넋이 아니랴


그렇다, 우리들의 넋이다, 우정은

조국을 떠나 가치없고

집단을 위해서만 의미가 있는

성스러운 위업에 향한 충실성

그것으로 맺어지는 우리들의 넋이다


믿어다오 나의 우정은

생사운명 같이할

하나의 신념우에 피는 꽃

내 삶의 전부와도 같은것이여라


(김정일)


장운영은 두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터질것처럼 들레였다. 지난해 봄 어느날 김정일동지의 댁으로 갔던 박문규가 그이께서 일기장에 쓰신 시를 읽어주며 의견을 물으실 때 너무도 뜨겁고 감동되여 즉석에서 그대로 암송하여가지고 돌아와 동무들앞에서 랑독했던 시였다.

그 시의 세계에 매혹된 학급동무들은 물론 다른 학급학생들도 출판물에 발표된 이름있는 시인들의 시이상으로 암송하여 오락회때나 우정에 대한 론의가 있을 때면 적중한 시련들을 읊는것으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군 하였다.

하고보면 이런 때야말로 그 시이상 훌륭한 기념글이 없을것이였다.

더군다나 그 시는 박문규자신이 직접 동무들한테 선전보급을 했을뿐아니라 김정일동지께서 오늘의 문규와 자기 관계를 미리 내다보시고 지은 시라고도 할만큼 저들의 심정을 사실그대로 진실하고 생동하게 다 반영하지 않았는가.

장운영은 비로소 박문규앞에 깨끗이 속죄를 한 밝은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섰다.

박문규가 타고 떠나야 할 기차의 출발시간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부리나케 걸어 역전공원에 이르니 학급동무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와있었다.

누구는 비옷을 입었고 어떤 동무들은 우산을 썼다. 야속스럽게도 실비는 멎지 않고 한본새로 그냥 휘뿌려지고있었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수수한 보통의 우산을 쓰고계셨다.

장운영이 나타나자 그이께서는 누구보다 반가와하시였다. 이때껏 운영을 기다리고계셨던듯 품에서 자그마한 사진기를 꺼내드시였다.

《자, 이젠 다 모였으니 우리 사진을 한장 찍자.》

동무들은 와― 환성을 올리며 좋아들 했다.

아름드리나무밑에 나란히 놓은 두개의 긴의자를 중심으로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서 와짝 떠들었다.

박문규를 의자가운데 끌어다 앉히고 한쪽에는 류룡철, 다른쪽에는 한 공간을 내놓고 리용과 진호삼이 앉았다. 빈 공간은 김정일동지 자리였다.

주영화와 최원석, 성효정은 박문규의 뒤쪽에 바싹 붙어섰다. 장운영이 좀 주밋주밋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른 그의 팔을 끌어 동무들이 자신을 앉히려 했던 빈자리로 데려가시였다.

장운영이 펄쩍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부러 큰소리로 이르셨다.

《시간없는데 내가 하자는대로 빨리 찍자. 먼저 내가 한장 찍고 그 다음 운영동무가 나와서 제꺽 또 한장 찍으면 될게 아니야.》

말씀의 뜻이 너무도 깊고 명백하여 장운영도 그대로 따랐다.

김정일동지의 그 깊은 사려에 장운영은 그이 보시는 앞에서 어린시절처럼 박문규의 손이라도 다정히 붙잡고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사진을 찍으시자 장운영은 제꺽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대로 제가 앉았던 자리에 그이를 앉히고는 정중하게 사진기를 받아들고 나섰다.

박문규를 다정히 붙안기라도 하실듯 바싹 붙어앉아 환하게 웃음지으시는 그이를 렌즈의 중심에 모시느라니 갑자기 눈앞이 뽀얗게 흐려지면서 목안에서 뜨거운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었다.

(아, 내 다 자라 어른이 된 먼 앞날 오늘을 추억하게 된다면 무엇부터 떠오르게 될가!)

역사지붕우의 확성기에서 북행렬차를 타실 손님들에게 차표를 찍어드리겠으니 잊어버리는 손짐이 없이 빨리 출구로 나가라는 소리가 구내를 울렸다.

《여 운영동무, 뭘해. 빨리 찍지 않구?》

《왜 그래? 빨리 찰칵!》

운영은 그제서야 정신을 번쩍 차리며 누르개를 살짝 눌렀다. 그리고는 제풀에 안심치 않아 다급히 소리쳤다.

《가만. 한장 더, 만약을 생각해서.》

와― 흩어지려던 동무들이 운영의 그 뜻을 제꺽 알아차리고 더욱 정중하게 자세들을 바로잡았다.

사진을 찍고나자 동무들은 자기들이 마련한 기념품들을 박문규에게 안겨주었다. 학습장과 만년필, 장편소설과 시집들, 체육복과 내의류들이였다.

주영화가 문규를 대신하여 그것들을 넘겨받아서 그의 배낭과 트렁크안에 차곡차곡 넣어주었다.

장운영은 제 본태대로 한옆에 떨어져서 동무들이 다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맞은켠에 서시여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시였다.

이윽고 장운영의 차례가 되였다.

동무들이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장운영은 아주 태연하고 례사롭게 박문규앞으로 다가서며 하얀 봉투에 넣은 자기의 기념품을 넘겨주었다.

《좋은 소설 기다리겠어.》

그는 얼굴이 활딱 붉어졌다. 《기다리겠어요.》라고 해야 할 말을 《기다리겠어.》로 했던것이다. 아차, 했지만 어쩐지 실수나 실례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심정이 제꺽 통했던지 박문규도 같은 어조로 쾌활하게 대답했다.

《응, 고마워!》

김정일동지께서 박수를 치셨다.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일시에 박수소나기가 쏟아졌다. 류룡철이 머리우로 손을 높이 들어 박수소리를 더 힘차게 내며 흥분을 터쳤다.

《좋아, 좋아!》

옆에 동무들도 버쩍 맞장구를 쳤다.

《운영이, 문규!》

《운영이 제일!》

《우리 동무 만세!》

동무들의 뜨거운 고무는 역사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학급동무들모두가 떠나려는 렬차의 승강대앞에까지 따라나갔던것이다.

안내원들이 호각을 홱홱 불며 물러서라고 몇차례나 재촉하고 신호수가 푸른 기발을 힘차게 흔들었지만 박문규는 좀처럼 동무들과 떨어질줄을 몰랐다. 아니, 동무들이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렬차가 마지막기적소리를 울리며 차체를 흠칫 떨었을 때에야 박문규는 가까스로 승강대에 올라섰다. 동무들은 승벽내기로 앞서거니뒤서거니 렬차를 따라 밀려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몇걸음 따라걸으시다가 멈춰서며 한손을 높이 들어 흔드시였다. 동무들모두를 앞세우셨던것이다.

박문규가 금시 뛰여내리기라도 할듯이 승강대발판끝에까지 바싹 나서며 마주 손을 저었다.

정일동무, 잘 있어. 내 걱정말아.… 동무들, 모두 잘 있어!》

김정일동지께서는 동무들의 뒤에 서시여 멀어져가는 문규의 모습을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고계시였다.

쓰고계시던 우산도 걷으시였다. 휘뿌려지는 실비를 그대로 다 맞으시였다. 우산까지 내리우신 그이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가는 문규의 눈앞에 더욱 우렷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자기의 한가슴에도 뜨겁게 새겨안은 장운영은 목이 꽉 메여 심장의 목소리로 웨쳤다.

김정일동무는 인정의 화신, 우정의 귀감… 내 한생 그 정 안고 살리!》

야속스러운 비발은 그때까지도 그냥 그이의 옷을 적시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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