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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회


제 4 장


4


오늘은 토요일이여서 수업은 4시간이였지만 숙제문제들은 여느때보다 배나 더 많은가싶었다. 수학과목이 특히 더했다. 모임의 개념에 대한 문제는 참고서들을 보지 않고서는 깊이있게 설명할수 없도록 묘하게 착상을 하여 내주었다.

룡철에게는 마침 경일호한테서 빌려온 수학참고서 한권이 있었다.

그는 해당한 페지를 펼쳐놓고 제꺽 옮겨베끼기 시작했다.

《현대수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다. 모임을 생각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일정한 범위의 대상이 그 모임에 속하는가 속하지 않는가를 밝힐수 있어야 한다. 실례로 한 삼각형의 변들, 10보다 큰 자연수들은 모임을 이루지만 막연히 큰 수들이 모인것이라고 하면 모임이라고 볼수 없다.》

거기까지는 쉽게 리해가 되였지만 《유한개의 원소》이니 《유한모임》이니 《무한모임》이니 하면서 여러 기호들을 써가며 풀이를 해놓은 내용들은 베껴내려갈수록 알쑹달쑹하면서 점점 더 아리숭하였다. 이런 세계에 나날이 더 재미를 붙이면서 미칠듯이 빠져들어가는 경일호가 신기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숙제문제를 다 풀고나니 흐뭇해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책들을 거두고나자 문득 박문규생각이 났다. 확실히 이즈음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였다. 말수가 적어지고 잘 웃지도 않았다. 분명 무슨 시름이 생긴것 같은데 좀처럼 입은 열지 않았다. 혹시 나처럼 자기의 희망에서 무슨 동요가 생겨서는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차 고개를 저었다. 실상 자기는 기어코 작가가 되겠다는 운명적인 결심은 아니였지만 문규는 확고하게 달랐던것이다.

사실 류룡철에게는 문학보다도 음악적재능이 더 있었다. 한데 문규와 가까이 지내서인지 문학이 더 좋아보이고 그만큼 마음도 더 쏠렸었다. 문규의 본을 따서 시도 지어보고 소설도 써봤지만 어느 하나 씨원히 되는것이 없었다.

박문규가 학교의 문학 및 연극소조에 같이 들자고 몇번이나 권고했으나 선뜻 결심하지 못하는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그 깨달음으로 해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학소조의 그 엄엄한 문턱을 넘어설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아버지한테서 다시 음악을 배우려 했으나 왜서인지 거기에도 썩 마음이 붙지 않았다. 모르겠다, 아직 앞길이 구만리같다는데 이왕이면 좀더 두고 생각해보자 하는것이 최근 그의 결심이였다.

더우기 자기가 이제 희망을 바꾼다는것은 문규와 헤여지는것 같고 남달리 지켜오던 우정을 배반하기라도 하는것 같아 졸업할 때까지는 그냥 두고보자는 생각이였다. 그렇게 결심하니 생활은 더욱 례사로워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한데 문규얼굴에 갑자기 짙어가는 그늘은 무엇때문이란 말인가?

오늘 아침에는 김정일동지께서도 무슨 일인지 모르느냐고 물으시였었다.

그는 좀 당황하여 고개만 저었다.

첫 수업이 끝나자바람으로 다짜고짜 박문규를 교실밖으로 끌고나가 어디 말짼것은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으나 그는 그저 씨무룩 웃으면서 《아니, 내가 뭐 어쨌다구 그러니.》했다.

류룡철은 김정일동지께서 제일 친한 동무이면서도 왜 모르느냐고 나무람하시는것 같아 마음속으로 죄감을 느꼈었다. 혹시 그도 40일간 수도건설에 참가하는 일때문에 그러는건 아닐가?

얼마전 그 소식이 전해지자부터 학생들속에서는 각이한 반응들이 일어나고있었다. 당장 무슨 장거라도 치를듯 팔을 걷어올리며 흥분하는 동무들이 있는가 하면 얼굴이 굳어지며 입을 항 벌리는 축들도 있었다. 절대로 표현은 안하면서도 걱정이 까매있는것이 헨둥한 녀학생들도 한둘이 아니였다.

하다면 문규도 그런 고민에 빠졌다는것인가?

아니, 절대로 그럴수 없어. 그는 그렇게 나약한 동무가 아니야.

가만, 정일동무에게서 작품에 대해 받은 의견의 수정방도가 잘 떠오르지 않아 그러는건 아닐가?

그에도 도리질을 했다. 작품창작과 관련된 문제라면 주영화나 최원석이한테는 몰라도 이 류룡철에게만은 우정 찾아와서라도 속을 터놓을 그라고 믿었다. 작품초고가 떨어졌을 때 제일먼저 보여준것도 이 류룡철이 아니였던가.

더우기 정일동무에게서 의견을 받고와서는 당장 세계적인 력작이라도 내놓을것처럼 얼마나 흥분했댔던가.

하다면 정말이지 무슨 일일가?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데가 없자 그의 생각은 차츰차츰 아니아니하면서도 자꾸 수도건설작업동원문제에로 기울어졌다.

정말 그도 그 일때문일가? 만약 그렇다면 문제가 다르지 않는가.

류룡철은 벌컥 화라도 내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기어코 그의 속을 파헤쳐낼테다.

그는 김정일동지께서도 걱정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우기 옆에서 방관하고있을수가 없었다.

박문규한테는 특히 더 관심이 크신 그이가 아닌가.

하루해는 멀리 룡악산너머 대동군쪽으로 기울어져가고있었다.

저녁무렵에 들어서서인지 거리로는 자동차들이 더 분주히 오가고 걸음길에도 사람들의 래왕이 번거로웠다. 유난스럽게 눈에 뜨이는것은 벽체블로크들을 산더미처럼 실은 대형운반차들이였다. 오늘 아침 라지오방송으로 크게 소개했던 건설소식이 종로네거리길교차점의 전주대에 높이 매단 확성기에서 다시금 꽝꽝 울려나왔다.

《조립식건설에로 전면적으로 넘어간 수도건설자들은 올해에 들어와서만도 수십건의 창의고안과 합리화안을 받아들였으며 조립식속도를 높이기 위한 고속도조립운동을 널리 조직전개하였습니다.

그들은 72명으로 조직된 새로운 형태의 종합작업반을 내오고 조립과 완성을 전문화하면서도 그것을 병행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해나감으로써 하루동안에 부재조립량을 최고 360여개로 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기중기 한대가 하루 8세대의 살림집을 조립완공하는 기적을 창조하였습니다.》

문득 조립식건설문제를 놓고 홍종팔앞에 격정을 터쳤던 일이 생각났다. 참으로 예상밖의 일이였고 류룡철로서는 더우기 잊을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한것은 당의 경제건설의 기본로선과는 너무도 다르게 강연을 한 연사앞에 본의아니게 박수를 쳤던 그 실수를 처음으로 실천으로 씻어보인 거사와도 같이 장한 일로 여겨졌기때문이였다.

그 담과 배심이 어떻게 마련되였던가.

대동강호안공사장에서도 북적북적 끓고있었다. 각양각색의 기발들이 나붓기는 가운데 혁신자들을 소개하는 방송소리가 꽝꽝 울리고 호각소리들이 길게 또는 짧게 강반의 열뜬 대기를 흔들었다.

건설의 열기에 자못 기분이 붕 들떠오른 룡철은 어느새 장대재와 만수대어간 숲기슭의 단층마을에 들어섰는지 몰랐다.

나무판자울타리와 벽돌담장, 돌기와며 양철지붕… 형형색색의 크고작은 살림집들사이로 숨가쁘게 빠진 골목길을 따라 얼마쯤 걸어들어가니 재등중턱의 소나무와 느티나무, 상수리나무들이 듬성듬성한 좀 외진 곳에 솟을대문이 유표한 박문규네 집이 나졌다.

예감이 이상해지면서 전에없이 조용하게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가 묵직한 널판자대문에는 큼직한 자물쇠가 채워져있었다.

어디 갔을가? 아버지는 물론 중앙녀맹에 다니는 어머니도 아직 퇴근을 안했겠지만 문규야 제 혼자 갈데가 있겠는가.

얼마간 떨어진 벽돌집앞에서 쌍태머리 귀여운 처녀애 셋이 재미나게 줄넘기놀이를 하고있었다. 문규오빠를 보지 못했는가고 물으니 퍽 전에 어디론가 나가는걸 보았다고 했다. 책을 들고 가더냐고 물으니 세 처녀애가 다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서울바닥에서 누구찾기라더니 에―)

류룡철은 손을 홰홰 내저으며 돌아섰다. 맹랑한감도 없지 않아 들어왔던 골목길을 맥없이 터벅터벅 걸어나오던 그는 이렇게 나왔던 길에 이제 자기들이 일하게 될 작업장 아니, 《전투장》에 한번 가보고싶은 충격이 일었다.

작업동원을 앞두고 로동성과 평양시인민위원회 해당 부서 일군과 련계를 가진 민청위원장선생이 학교학생들전원은 모란봉기슭의 경상골 넓은 부지에서 살림집건설용벽체블로크를 위주로 하는 부재생산작업을 하게 되니 그에 상응한 작업준비를 사전에 잘해야겠다고 각 학급 민청초급단체들에 알렸던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 류룡철은 부재생산이란 후방에서 싸우는것이나 같은데 하필이면 그런 대상을 맡을게 뭔가, 같은 값이면 조립식건설로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래우는 주택건설장에 나가자고 주먹을 내흔들며 선동을 했었다.

조용히 미소를 짓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나직하게 이르시였다.

《물론 룡철동무의 말로 보면 부재생산은 후방부문이나 같다고도 할수 있어. 하지만 생각들 해봐. 살림집건설에서 부재생산은 전쟁에서 탄알이나 수류탄, 대포와 땅크생산과 같다고 할수 있는데 그게 없이 아무리 용맹한 전사들이라고 한들 싸움을 제대로 할수 있겠어?》

룡철은 그 말씀을 듣고서야 자기가 또 얼마나 덜렁거리며 희떱게 놀아댔는가를 깨달으면서 목덜미를 쓸었다.

경상골어구에 들어서니 거기서도 현장방송이 건설소식을 왕왕 전하고있었다.

《한 작업반에서는 교대당 182개의 부재를 조립하는 기적적인 기록이 창조되고 작업능률을 5~6배로 높이는 집단적혁신이 일어났습니다. 부재 한개를 조립하는데 10분이상 걸리던것이 2~3분으로 단축되고 기중기 한대가 한꺼번에 3~4개의 부재를 달아올리는 새 방법이 창조되였으며 미장공 한사람이 한 세대의 살림집미장을 하루에 다 끝내는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빠앙― 하고 울리는 경적소리에 깜짝 놀란 룡철은 후닥닥 길옆으로 비켜섰다. 골재를 산더미처럼 실은 자동차 두대가 한창 건설중인 야외극장건설장으로 들어갔다.

2만여명을 수용하게 된다는 야외극장이였다.

멀리서도 첫눈에 뜨이는것은 수풀처럼 올리세운 나무버팀목들이였다. 모란봉과 키돋움이라도 할듯이 하늘로 치솟는 그 버팀목들우에서는 붉은 기발들이 불길처럼 나붓기고있었다.

전후 인차 개건복구된 웅건한 모란봉극장이 내려다보고있는 저 골안에 이제 650여개의 물구멍을 가진 희한한 분수를 비롯한 각종 유희시설들과 봉사건물들이 일떠섬으로써 인민들 특히 청년들과 아동들이 행복을 마음껏 누릴 공원이 건설된다고 한다.

어찌 공원뿐인가.

대동강에는 대동강다리와 같은 큰 다리가 또 하나 건설되고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대극장을 비롯해서 10여개의 대기념비적건축물들이 일떠서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바로 그 력사적인 건설투쟁에 우리의 적은 힘이나마 바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류룡철은 다시금 가슴이 쿵쿵 뛰면서 설레였다.

대동강의 새 다리는 어디에 놓고 대극장은 어느곳에 일떠세우게 될가?

룡철은 불현듯 온몸에 힘이 쭉 뻗치면서 경쟁심이 솟구쳤다.

소대별, 분대별, 때로는 개인별경쟁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본때를 보일테다. 비록 일상적인 공부에서는 좀 뒤졌지만 건설로동에서는 자신심이 만만했다.

특히 항시 나이재세를 하며 으시대는 홍종팔을 기어코 앞설 마음이 부글부글했다.

(이 룡철에 대한 인상과 관점부터 활 뒤엎어놓아야겠어.)

올망졸망한 게딱지같은 한칸 살림집까지 두간두간 섞여있는 골안어구를 지나서 낡고 때묻은 옛 흔적에 도전을 하듯 와글와글 끓어번지는 야외극장건설장을 한참이나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섰던 류룡철은 내친김에 모란봉구경까지 하고싶어 청류벽으로 올리뻗은 오솔길에 들어섰다.

청류정을 지나 전금문에 나서니 발밑으로 깎아내린듯 한 아찔한 절벽밑으로 푸른 물결 출렁이며 대동강물이 유유히 흘러내리고있었다. 강물건너 릉라도 버들숲은 봄물이 한껏 올라 싱싱 푸르렀다. 또 그너머 동평양일대와 멀리 미림벌까지는 연한 우유빛연무속에 아지랑이가 눈뿌리 시그럽게 굼닐었다. 그런가 하면 문수봉너머 아득한 하늘밑의 상원과 중화, 강동쪽의 련련한 산발들이 수도 평양을 웅건히 지켜선 억센 성벽마냥 가슴을 들레이게 한다.

남쪽으로 돌아서면 기중기들이 경쟁적으로 긴팔을 휘젓는 중구역일판의 건설바다요, 서쪽으로 나서면 석양이 불타는 봉화산을 중심으로 서평양의 전경이 아득히 펼쳐졌다. 예로부터 한송이의 화려한 모란꽃과 같다고 하는 모란봉 제일강산!

누구인가 황홀경의 높은 경지를 이룬 곳이라고 했다던 말이 새삼스레 새겨졌다.

바로 이래서 김정일동지께서 이 모란봉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귀히 여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방된 조국땅에 개선하신 후 어머님과 함께 봄이면 봄을 맞아 나무를 심었고 가을이면 가을풍경에 마음끌려 손잡고 오르군 하셨다던 금수산 제일봉.

전금문을 나서서 을밀대쪽으로 그냥 오르느라니 띠오리처럼 좁은 오솔길 량옆으로 아름드리 소나무와 잣나무, 종비, 분비나무들이 울창한 밀림속마냥 꽉 들어찼다. 솔새, 방울새, 딱따구리들이 이 나무 저 나무가지를 넘나들며 온갖 재롱을 다 부리고 납작납작한 판돌을 깐 오솔길앞으로는 길안내를 맡기라도 한듯 청서며 다람쥐, 산비둘기들이 부지런히 뛰여다녔다.

룡철은 저도모르게 김정일동지께서 전쟁의 추억에 잠기실 때면 자주 부르군 하시던 노래를 가만가만 부르기 시작하였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인가요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갠가요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입니다


댁의 정원에서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부르기도 했고 만수대의 푸른 숲에 올라 신바람나게 군사놀이를 하고나서 융단처럼 포근한 금잔디밭에 드러누워 가없이 높고 창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합쳐 부르기도 했었다.


진달래꽃 방긋 웃는 새봄인가요

종달새가 지저귀는 하늘인가요

봄날처럼 따사로운 조국의 품은

나를 안아 키워준 어머닙니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지라 노래소리는 점점 높아져 무성한 숲속에 울리였다. 노래박자에 씩씩하게 걸음을 맞추며 활개쳐 걷느라니 그 가사에 직접 곡을 붙이느라 몇시간씩 피아노앞에 앉아있군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정말이지 얼마나 멋진 훌륭한 노래인가. 동무들은 물론 선생님들과 최현, 류경수, 최광, 림춘추, 내각 제1부수상 김일동지를 비롯한 항일혁명투사동지들도 얼마나 탄복을 했던가.

김일성원수님께서는 또 얼마나 기뻐하시였는지 모른다.

언제인가 자신께서 만약 음악가가 된다면 일생 아버님과 어머님에 대한 노래만 짓고싶다고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정말 음악가가 된다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리라 생각됐다.

작가가 되고싶다고 하시던 일도 생각났다.

동시 《우리 교실》!

그 또한 얼마나 사람들을 놀래웠던가.

어찌 음악과 문학뿐인가. 정치와 경제, 군사와 수학, 물리, 화학, 력사… 책상의 유리밑에 써넣었던 지식과 열정, 창조에 대한 표어가 눈앞에 떠올랐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천성을 물론 무시할수 없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견인불발의 의지, 진지한 노력이라고 하시던 주장도 생각났다.

얼마나 높고 넓은 세계, 또 얼마나 불같은 열정인가!

류룡철은 걸음을 뚝 멈춰세웠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났던것이다.

꽃망울이 통통 여물어가는 아름아름 무성한 두봉화포기들사이의 해묵은 잔디밭에서 사람그림자 하나가 얼씬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류룡철은 입을 항 벌렸다. 량쪽손을 목덜미에 깍지껴 대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드러누운 사람은 분명 박문규였던것이다.

노래소리에 대뜸 룡철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났다가 무엇인가 켕겨 다시 활 드러누워버린 모양이였다.

도대체 영문을 알수가 없어 룡철은 한참이나 조각상마냥 서있다가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보매 역시 소설작품수정때문에 고심하는것은 아님이 헨둥했다.

류룡철은 의아스럽기보다 나무람부터 앞서서 퉁명스레 물었다.

《이건 뭐냐? 왜 혼자 여기와 있어, 멍청이처럼?》

하지만 문규는 일어날념도 않고 두눈만 꽉 감았다.

룡철은 화가 욱 동하는걸 누르면서 아프게 찔렀다.

정일동무랑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그 소리에 박문규는 놀라기라도 한듯 펄쩍 일어나앉았다.

무엇이라 왝 고아대면서 와락 덤벼들기라도 할듯이 불이 펄펄 이는 눈길로 룡철을 쏘아보더니 제풀에 기가 죽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지금까지 전혀 본적이 없는 박문규의 모습이였다. 일이 생겼어도 보통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룡철은 자못 긴장되였다.

그는 한동안이나 더 말을 못하고있다가 박문규의 곁에 다정히 붙어앉으며 따뜻이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하려무나. 무슨 죽을 일이라도 생겼기에 너답지않게 그러니? 정일동무가 늘 말하지 않아. 기쁨도 슬픔도 진정으로 함께 나누는게 참다운 동무라고. 아무리 큰 걱정거리라도 여럿이 함께 나누면 풀릴지 알겠어?》

박문규는 또 반발이라도 하듯 고개를 버쩍 들었다. 그리고는 진짜 성을 내듯이 울분같은것을 터쳤다.

《여럿이 풀어?… 체, 그렇게 풀릴 일이면 좋게?》

《아니, 너?!》

류룡철이 오히려 굳어졌다.

박문규는 그제서야 자기 불찰을 깨달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나서 무척 미안스럽게 말했다.

《이거 안됐다. 너무 속이 타고 앞이 캄캄해서 그만…》

류룡철은 조급해서 다우쳐물었다.

《글쎄 무슨 일인지 말을 하란데.》

박문규의 두눈에 물기가 핑 고였다. 그는 두 손등으로 그것을 꾹꾹 문질러 씻고나서 힘겹게 끌어내듯이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말어. 우리 아버지 지금 반동작가로 몰리우고있어.》

《뭘?》

《희곡작품을 한편 썼는데 첫째로는 그것이 어디 예술작품인가, 정치선전화지 하는것이고 보다 엄중한것은 종교를 선전하고 적들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게 하는 철두철미 반동작품이라는거야. 아버진 며칠동안 회의에서 죽신하게 비판받고 창작실에서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고있어. 본인은 물론 가족이 다 어느 깊은 산골로 추방될것이라는 말도 있대.》

《뭐뭐 추방?!》

박문규는 또 어깨가 들썩하도록 큰숨을 쉬고나서 더욱 김빠진 소리를 했다.

《온 학교가 지금 수도건설에 참가한다고 들썩들썩하는데… 너랑 정일동무랑 체험도 하면서 본때있게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에― 먼길 갈 하늘소는 뭣부터 다르다더니 난 당초에 안되는가 봐.》

《무슨 소릴 해. 아버진 아버지구 넌 너지 뭐.》

기껏 위안의 말을 한다는것이 그 말이였지만 류룡철은 저자신도 궁냥이 딱 막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저의 집에서 당한 일처럼 아뜩하고 딱하기만 하였다.

방금 문규자신이 말한것처럼 아무리 열명, 백명이 모인다고한들 통나무나 바위돌을 활 들어 내뜨리는것처럼 할 일인가.

류룡철은 동무의 그 아픈 마음을 모르고 나무랍게까지 생각했던 일이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잔등이라도 어루쓸어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어머닌 어떻니?》

《어머니도 집에 들어오며말며 해. 우의 간부들이 어머니직장에다두 압을 넣는가봐.》

류룡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딱해본적은 없었던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어른들, 더군다나 중앙의 높은 간부들이 비판을 하고 결정하는 일이 아닌가.

언뜻 며칠전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한테서 겉옷과 가방을 받아들 때 지나가는 말처럼 《문규가 요사이 학교에 잘 나오더냐?》 하고 한마디 묻던 일이 생각났다. 하고보면 일은 그때 벌써 엄중하게 터졌댔다는게 아닌가. 내가 왜 아버지의 그 말을 새겨듣지 못했을가.

에― 덜렁광이 이 류룡철! 정말이지 문규를 도와줄 무슨 방법이 없을가?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박문규의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야, 됐다. 빨리 가자.》

박문규는 류룡철에게 팔목을 잡히운채 의아해서 물었다.

《어딜?》

《어딘 어디야, 정일동무한테지. 빨리 가서 사실대로 다 말하구 방도를 의논해보자.》

《뭘?… 안돼.》

류룡철에게 끌려 엉거주춤 일어서던 박문규는 큰일이 난듯 제손을 쑥 빼며 다시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러며 입술을 꽉 짓물었다.

류룡철은 그건 또 무슨 말이냐고 두눈을 크게 떴다.

박문규는 제사 고개를 저으며 울음을 터치듯이 말했다.

《아버진 이 일을 원수님께서 아시면 어쩔가 하고 그걸 더 죄스러워 하고계신다. 룡철이, 너도 알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큰 신임을 받았댔니. 그 생각을 하면 아버진 대동강에라두 콱 빠져죽고싶다는거야. 그리구… 나부터두 지금은 말할수가 없어. 이제 정일동무가 알게 될걸 생각하면… 에이.》

류룡철이도 그만 맥이 빠져 박문규옆에 주저앉았다. 십분 리해되는 일이였다. 해방직후 숱한 사람들이 헐뜯고 시비질을 하고 어느 출판사에서도 받아물려고 하지 않는 시집을 특별한 관심속에 출판하도록 하는 하늘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신 아버지원수님이 아니신가.

한데 그런 신임과 은정을 받아온 문규의 아버지가 정말 반동작가란 말인가? 아니, 반동작품을 썼다는 말이 사실일가?

정말 이 일을 알게 되면 정일동무는 또 얼마나 가슴아파할텐가.

어느새 아득해보이는 룡악산너머로 저녁해가 뚝 떨어졌다.

건설의 동음 벅찬 평양의 거리거리는 물론 봄의 양기를 안고 환희로 한껏 부풀며 우쩍우쩍 움트던 모란봉의 나무숲도 어스름의 장막속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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