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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제 4 장


3


올해는 별스럽게 우수절기도 닿기 전에 비가 내렸다. 내려도 여름철장마비마냥 억수로 내렸다. 그렇게 아직 채 녹지도 않은 얼음덩이의 대지를 두들겨패놓고나서는 한숨쉬는듯 며칠동안 바람도 별로 불지 않고 잠잠해있더니 청명무렵에 들어서면서 또 서너차례나 비구름을 몰아왔다. 거무칙칙하던 구름이 풀리면서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지더니 어느새 안개비로 변해 질금질금 내렸다. 그런 날 저녁이면 드넓은 대동강으로는 채 녹지 못한 눈덩이들과 살림집건설장의 벽체블로크장보다도 더 큰 얼음장들이 와와 소리를 치며 밀려내렸다.

그렇듯 계절할아버지가 철의 순서를 바꿔놓은것은 아닐가싶을만큼 변덕을 부리고나서는 비로소 자기 불찰을 깨닫기라도 한 모양 땅땅 말라드는 가물을 몰아왔다.

주변의 협동조합들에서는 물론 농사일을 전혀 해보지 못한 시내사람들도 천리마를 타고 달려야 할 해인데 씨붙임부터가 야단이 아닌가고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였다.

다행히도 창창 맑은 하늘로 삼각형으로 떼를 지은 두루미떼가 밤에 낮을 이으며 소연스럽게 날으더니 점심녘부터 먼 하늘에서 꾸르릉꾸르릉 봄우뢰가 울기 시작하였다.

하루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무렵부터는 비발이 퍼그나 굵어졌다. 맨몸그대로는 집으로 갈수가 없어 태반의 학생들은 교실이나 교사현관안에 몰켜서서 이제나저제나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데 중앙의 농업부문 지도일군자녀들은 환성이라도 올리듯이 기뻐했다.

한 남학생이 책가방을 멘채로 대줄기처럼 쏟아지는 비발을 뚫고 운동장 한복판으로 뛰여나가 《오, 고마운 하늘이여, 감사하나이다!》 하며 두팔을 버쩍 쳐들어올렸다.

그러자 두 녀학생이 춤이라도 출듯이 비속으로 뛰여들었다.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현관안에서 서성거리던 남녀학생들이 승벽내기로 운동장으로 쏟아져나갔다. 그 바람에 교실안에서 창문을 열고 주저주저하던 학생들까지도 와 밀려나왔다.

비는 저녁에 이어 밤새도록 내렸다. 그러고도 아직 봉창을 못했는지 누구나 기다려온 일요일 아침녘까지도 멎지 않았다.

홍종팔의 집 지붕기와골에도 산골도랑물같은 비물이 밀려내려 양철처마를 두드리면서 토방머리에로 쏟아져내렸다.

종로거리쪽으로 약간 경사를 준 마당으로도 지붕과 집오래에서 몰켜내린 황토물이 강물처럼 범람하며 흘러내렸다.

여느날같으면 이미 학교에 나가 첫 수업을 받을 시간이였지만 홍종팔은 아직 침대우의 푹신한 이불속에서 눈을 꾹 감고있었다. 꽈르릉거리는 우뢰소리와 창문에 번쩍번쩍 부딪치는 번개불은 물론 솨솨 뒤설레이는 비바람소리에 예전보다 일찍 잠을 깬 그였다.

《밥은 먹고 더 자렴.》 했던 어머니도 더이상 얼굴을 들여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부엌에서 그냥 달그락거린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승용차로 퇴근을 하는 아버지이기에 걱정할바는 없었지만 어제 저녁 담당한 부서의 어느 지도원생일에 초대를 받고 간다는 전화를 받은 다음 아직 아무런 련락도 없어 어지간히 속을 조이는 어머니이다.

젊어서부터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는 애주가로 소문이 나서 나날이 더 안심을 못하는 어머니였다.

다행히 부상인데다 나이도 들어가니 술상앞에서 퍽 점잖아졌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도를 넘겨 운전사의 부축을 받아오는가 하면 차가 없을 때에는 어머니가 직접 가서 데려오기도 했다. 그러니 명절날이나 어느 집 대사가 있어 초청을 받은 날이면 어머니는 물론 홍종팔까지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기 일쑤였다.

홍종팔은 기지개를 한껏 켜고나서 일어날가 하다가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는 짜증이라도 내듯 모로 홱 돌아누우며 머리까지 이불을 당겨썼다.

쫘르륵쫘르륵 쏟아지는 락수물소리도 창문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비발소리도 짜장 귀찮게 들렸던것이다.

이즈음은 무슨 일에든 신경이 서고 마음이 자꾸 불안해나는 그였다.

매일 등교는 했지만 교실에 들어가기부터가 싫었다.

동무들앞에 마주서기는 물론 자리에 앉아도 남의 의자에 앉은것처럼 불편스러웠다. 류룡철의 때없이 쏟아놓는 우스개소리에도 괜히 얼굴이 찡그러지고 초급단체위원장이나 학급반장이 교탁에 나설 때는 까닭없이 긴장해지군 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놀랍다고 하시였지만 저로서도 저자신이 초급단체총회에서까지 집중비판의 대상으로 된것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자기가 정말이지 그렇게까지 락후해졌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그는 리용과 장운영으로부터 이러저러한 기회들에 어쩌구저쩌구 불만스러운 지적을 받군 했지만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었다. 동생들의 어린 사고라는 식으로 쓰겁게 여겨진 때가 적지 않았었다. 때로는 내가 지나친게 아니냐 하는 자책이 들어 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안한것도 아니였다. 더우기 선정화선생의 지적까지 받았을 때에는 꼭 고치겠다는 결의도 성근하게 다지군 했었다. 하지만 결의뿐이지 실지 고치게는 되지 않았다. 무슨 죽을 죄를 졌다고 어깨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겠는가. 류룡철이 더 너들거리고 박문규네가 헤벌쭉해지라고 고개를 숙여? 홍종팔이 그렇게 뼈대가 흐물거리진 않아! 하는 자존심에 여봐라! 하는듯이 머리를 더 꼿꼿이 세울 때도 있었다.

그 밸이 곤두서 초급단체총회에서도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서있긴 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던지 모른다. 정말이지 정신이 어리뻥뻥해질 정도였다.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다. 법기관에 넘기자는 말까지 튀여나왔을 때는 겁이라기보다 밸이 불어나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서 총회가 끝난 다음 교무부장선생을 만나자고까지 했었다.

그렇듯 격동적인 심정이였으니 김정일동지께서 옆으로 다가오시였을 때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 민청실로 부르심에 더우기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그이의 성미를 너무도 잘 알아서였다.

총회에서는 많은 학생들앞이라 체면도 보아주었겠지만 이제 단 둘이 마주서면 무슨 《폭탄》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여겼었다. 조립식건설문제도 그렇지만 류룡철을 두들겨팰 작정을 했던 사실까지 다 드러났으니 동무들간에 우정을 제일 귀중히 여기시는 부위원장동무여서 가만두자고 할리 만무했다.

그렇게 속이 조마조마했던 그였다. 헌데 김정일동지께서 전혀 다른 기색없이 옛정그대로 《홍대장》이라 불러주며 왜 그렇게 어깨가 처졌느냐고 하시는 그 말씀 한마디에 눈물부터 핑 어렸다. 부끄럽기에 앞서 죄스러워 낯을 들수 없었다. 민청위원회에서 비판할 준비를 잘하라는 말조차도 한마디 없이 그저 인간적인 관계로 정이 흐르는 말씀을 허물없이 친절하게 터치심에 점점 더 목이 메여올랐다. 하면서도 장운영의 이름과 더불어 간부집자녀들이 모든 면에서 더 모범이 되여야 부모들의 사회적권위도 설게 아니냐고 한 지적은 초급단체총회에서 받은 비판보다 더 흠칠흠칠 가슴에 파고들었다.

온밤 잠을 못 잤다. 끝내는 신경성위경련의 발작으로 소동을 일으키고 병원에 실려가 입원까지 하게 되였다.

다른 환자들은 빨리 퇴원을 시켜달라고 의사들을 못살게 굴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다. 학교에 갈 일이 걱정이였던것이다.

퇴원을 하자마자 또 학교민청위원회에서 비판모임을 열자고 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 은근히 가슴을 옥죄였던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잊어버리기라도 했던지 다행히도 그에 대해서는 누구도 상기시키지 않았다. 모두들 예나 다름없이 대해주었다. 리용이며 진호삼을 비롯한 초급위원들은 오히려 더 따뜻이 대해주려는것이 알렸다.

그는 그것이 또한 신경을 쓰게 했다. 자연 어색해지고 남의 눈치를 보게 하였다.

한가닥 마음의 의지는 장운영에게로 갔으나 야속스럽게도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기도 체면을 지키느라고 해서인지 동무들이 보는 앞에서는 전날과 다름없이 천연스러운것 같았지만 어쩌다 둘이 마주칠 때면 눈길부터 착 내리깔면서 얼마나 쌀쌀해지군 하는지 몰랐다.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도 변할수 있는가 놀랄 지경이였다.

어제의 일만 보아도 그랬다.

우산이 없는 학생들은 저마다 집에서 누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교실이나 학교현관안에서 서성거리는데 예견대로 아버지의 승용차가 현관문앞에 바싹 들어와섰다. 알리지 않았어도 아버지의 운전사가 눈치있게 차를 몰고왔던것이다.

홍종팔은 서둘러 장운영부터 찾았다.

성효정이며 주영화를 비롯하여 운영이와 같이 있던 녀학생들이 응당한 일처럼 여기며 그의 등을 밀었다.

하지만 장운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너희들과 같이 가겠어. 그리고 너희들도 알아둬. 언제인가 정일동무의 행동을 봤지? 오늘처럼 비오는 날 부관아저씨가 승용차를 가지고왔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정일동무는 뭐 차를 타고 가면 좋은줄 몰라서 그대로 돌려보냈겠니.》

그는 홍종팔은 두번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표표히 교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종팔은 모닥불이라도 들쓰는것 같았다. 실망감에 앞서 너무도 아픈 모욕감을 느끼였다.

(이거야말로 나한테 망신가마리를 들씌우는것이 아닌가.)

그는 어떻게 승용차에 뛰여올랐는지 몰랐다. 숱한 학생들이 보는 앞이라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얼굴부터 숨겨야 했던것이였다.

비록 비 한방울 맞지 않고 집에 돌아왔지만 홍종팔은 여전히 심기가 풀리지 않았다. 아니아니하던 학급에 대한 정이 완전히 싹 날아가버렸다. 장운영을 따라 그의 학급으로 옮긴것부터가 후회되였다. 이제라도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시내 어디에든 다른 학교로 옮겨가고싶었다.

그 생각, 그 감정에 와짝 더 불을 단것은 내각결정이였다.

며칠전 내각에서는 해주―하성간 넓은철길부설공사를 적극 추진시킬데 대한 결정과 함께 대학생들과 전문학교, 고급중학교학생들을 40여일정도 수도건설에 동원시킬데 대한 결정을 내려보냈었다.

그런데 자기 학교는 례외로 하는것이 어떤가 하는 론의가 교육성에서 있었으나 교장선생은 물론 학교민청에서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다고 완강히 제기했다고 했다.

학교는 북적북적 끓었다. 수업후마다 학교민청실에서는 매일같이 민청위원들의 모임이 진행되였다. 군대처럼 학교학생전체를 중대로 하고 소대와 분대를 편성한다고 했다.

그건 뭐 할대로 해보라지만 딱 싫어나는것은 학급별 즉 소대별로 치렬하게 벌린다는 경쟁조직이였다. 하루이틀 바람이나 쏘이는 격으로 나가본다면 몰라도 건설자들과 같이 경쟁적으로 온종일 일을 한다는것이 보통일일텐가! 그것도 40여일동안이나!

더우기 주저되는것은 교육성 부상의 아들이 건설장에서 해종일 뙤약볕을 받으면서 세멘트가루, 벽돌가루를 뒤집어쓰며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였다. 그속에서 40일동안이나 류룡철이며 최원석 등 매양 오륙이 근질근질해 못 견디는 친구들과 경쟁을 한다는것은 까무라칠만큼이나 기가 막히는 일이였다.

이즈음 학급규률은 또 얼마나 째여져가는가.

더우기 나는 병원에서 방금 퇴원을 한 위병환자가 아닌가.

생각만 해도 또 위가 띠끔띠끔 아파나는것 같았다.

(에―이!)

그는 누구에게라없이 또 신경질을 부리며 이불을 들쓴채 반대켠으로 삑 돌아누웠다.

대문밖에서 귀에 익은 승용차경적소리가 두번 길게 울렸다.

아버지가 돌아온것이다.

어머니가 분주스레 우산을 펴들며 마중을 나갔다. 비가 더 세게 내렸던것이다.

남의 집에서 밤을 샜지만 아버지는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였다.

《밤새 보고싶지 않았소?》 하고 어머니한테 전에없는 롱까지 했다.

《참, 당신두.》

이때까지의 걱정과 불안, 이름할수 없던 서운함까지도 그 롱말 한마디에 다 풀린듯 어머니의 목소리도 무척 상냥했다.

《우리 도련님은 뭘하고계시나?》

아버지가 토방우에서 젖은 신발을 털며 하는 말이였다.

이즈음 뜻밖에도 예상치 못했던 위탈로 병원생활까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들의 신체가 나날이 더 름름해지고 얼굴도 훤해짐에 때로는 동료들앞에서도 그런 롱을 자랑스레 번지군 하는 아버지였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에게 아침밥은 먹고 온다고 이르고난 아버지가 곧바로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허, 아직도 자시는가?》

어머니가 사이문을 열고 뒤따라 들어오며 눈을 끔벅해보였다.

《왜?》

어머니는 손가락을 펴서 입에 가져다댔다. 일요일인데 실컷 자게 내버려두라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열었던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어머니가 나직이 물었다.

《여보, 저애네 학생들을 작업동원내보낸다는게 정말이예요?》

《내각결정이라지 않소.》

《그야 대학생들이지 저애들이 무슨 일을 한다구. 아직 철없는 애들인데.》

《락후한 소리, 전쟁이 일어나면 적의 화구를 막을 영웅감들은 저런 젊은이들이란걸 몰라? 리수복이도 저 비슷한 나이였단 말이요.》

그 말에 대답이 막혔던지 어머니는 잠잠했다.

아버지는 본의아니게 좀 윽박지른감이 들었던지 어지간히 쓰다듬는 어조로 말했다.

《그 학교는 수령님의 자제분도 공부하고 하여 제외시키라고 지시를 했는데 교장부터가 받아물질 않는구만. 내 그래서 어제 권길수 그 량반을 되게 좀 다불렀소. 교무부장말이요. 새 교장이 온 다음부터는 무골충이 된것 같다니. 학생의 기본임무야 공부가 아닌가. 일은 학교공부를 다한 다음에두 죽도록 해야 하는거구.》

홍준모는 무릎앞에 바투 앉은 사람이 교장이나 교무부장이기라도 한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도 그야 두말할바냐고 제꺽 맞장구를 쳤다.

《옳지요 뭐. 배우는것두 다 때가 있는것인데 배울 나이엔 죽자하구 기껏 배워야 하지 않나요.》

홍준모는 한숨을 내쉬였다.

《원, 그렇게두 깡그리 다 파괴해버리다니. 5개년계획을 어떻게든 수행하자니 별수가 있소?》

부모들의 말을 귀담아듣고있던 홍종팔은 펄쩍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어머니, 아버지의 립장이 저렇다면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지난해 다른 학교에 입학시험을 쳤던 최원석을 전화 한통화로 제꺽 우리 학교에 옮겨놓지 않았는가.

(옳다. 아버지에게 다른 학급으로 옮겨달래자. 당장!)

일이 잘되면 작업동원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을수 있었다. 다른 학급에는 부상의 자녀가 없었던것이다.

홍종팔은 가슴이 후둑후둑 뛰면서 얼굴까지 확 달아올랐다.

그는 서두르듯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었다.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흠칫 놀랐다. 안할 말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한것처럼 당황한 기색들이였다.

아버지가 먼저 례사롭게 물었다.

《너 자지 않댔냐?》

어머니도 덩달아 물었다.

《배고프지 않니?》

홍종팔은 언제 그런 물음에 대답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는 아버지앞에 덜썩 마주앉으며 다짜고짜 들이댔다.

《아버지, 나 다른 학급으로 옮겨줘요. 빨리!》

《옮겨?!》

아닌밤중에 웬 홍두깨같은 소리냐는듯 아버지도 어머니도 퀭해서 아들을 뜯어보았다.

홍종팔은 그사이 남모르게 혼자서 속을 앓던 고민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털어놓고나니 속이 다 시원해지는것 같았다.

마침 문밖에서는 비가 멎고 하늘이 훤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 생길 징조만 같아 더 확고한 결심을 담아 말끝을 명백하게 마무리였다.

《사실은 어디든 다른 학교로 전학을 했으면 했는데 오늘 아버지의 말이랑 들으면서…》

어머니가 채 듣지도 않고 큰일이 난것처럼 펄쩍 막았다.

《무슨 소릴 하는거냐. 다른 학교로 가다니!》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뒤틀고앉은 아버지의 얼굴에 자못 신중한 표정이 어렸다.

바깥하늘은 활짝 개여가는데 집안에는 그냥 먹장구름이 덮이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입술을 감빨며 아버지의 얼굴만 살폈다.

홍종팔도 가슴을 조였다. 별안간 눈앞이 휘 도는듯싶더니 머리속에서 뗑 하고 둔중한 종소리같은것이 울렸다.

이윽고 아버지가 고개를 두세번 끄덕였다.

아들을 보는 눈빛이 찌르는듯 했다. 무엇인가 파헤집고 기어코 끄집어낼듯 한 날카로운 눈길이였다.

아버지는 실망이 어린 음조로 물었다.

《내 이 말은 하지 말자고 했댔는데 한가지 물어보자. 너 민청회의에서 비판을 받군 한다며?》

《…》

《부상의 자녀들끼리 묻어다니며 우쭐렁거리구 남들을 깔본다는것두 사실이냐?》

《…》

《내 너의 학교 교무부장선생도 만나보고 민청위원장이랑 담임교원의 견해도 들어봤다. 끼리끼리란건 또 뭐냐? 쪼꼬만것들이!》

쪼꼬만것들이란 말에는 홍종팔도 참지 못했다.

《그건 다 룡철이 그 자식때문이예요. 아무데서나 너들거리며 혀바닥 질질거리는…》

《맙시사, 저러니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할수밖에!》

《여보.》

어머니가 아들을 당겨안기라도 할듯 종팔의 널직하게 퍼진 어깨우에 손을 얹으며 께끼였다.

《아, 이때껏 아무 일없던 앤데 당신 왜 갑자기 그래요? 큰죄라도 저지른것처럼.》

《하긴 나도 그렇게 알았댔지. 헌데 두루 듣고보니 내 낯이 다 뜨끈뜨끈하더라니.》

어머니가 마침이란듯 한무릎 다가앉았다.

《여보, 애 결심도 그런데 이애 말대로 옮겨주자요. 실은 나도 좀 뛰뛰한 소릴 듣긴 했댔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애가 축잡히지 않겠나요. 같은 학교인데 이쪽 반이면 어떻구 저쪽 반이면 어때요 뭐. 그저 맘 편히 공부나 직심스레 하면 되는거지. 당신도 자주 말하지 않았나요. 이담에 큰 간부가 되려면 다문박식한 실력가가 되여야 한다구.》

《음, 참참.》

홍종팔은 가슴이 후두둑했다. 눈을 번쩍 뜨며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태도가 저쯤이면 반승낙은 됐다는게 아닌가.

어머니가 그 기회를 놓치기라도 할가보아서 바싹 더 다가붙었다.

《여보, 일은 마침인가봐요. 화가 복!》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듯 아버지가 뜨아한 눈길을 어머니한테 돌렸다.

종팔이도 의아해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살짝 웃음까지 머금으며 속살거리듯 말했다.

《작업동원나가는 기회에 제꺽 옮기자요. 그럼 얼마든지 빠질수도 있잖나요. 아직은 이 학급도 저 학급도 아닌데… 사실말이지 애야 병원에서 방금 퇴원을 하지 않았나요. 위탈은 젊은 나이에 뚝 떼주지 않으면 일생 고생한다고 했는데… 그동안은 외할머니한테 보내자요.

마침 외할머니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좋은 약수터도 있지 않아요. 병치료도 하고 공부도 하고… 40일동안 〈도〉를 닦으면 학과실력도 썩 앞설수 있지요 뭐.》

어머니는 안 그렇냐는듯 눈을 흘기며 제사 자신있게 아들의 어깨를 톡 치기까지 했다.

종팔은 히쭉 웃음을 머금었다.

《음―》

아버지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환성이라도 올릴듯 좋아하며 한수 더 떴다.

《참, 아주 떳떳하게 진단서도 내자요. 진단서는 내가 떼요.》

아버지는 허허허… 하고 어깨까지 들썩하며 웃었다. 어이가 없어하는것 같기도 하고 빈틈없는 솜씨에 탄복해하는것 같기도 했다.

먹장구름에 꽉 짓눌리우는것 같던 방안이 어느결에 다시 환해지는듯싶었다.

어머니가 또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자 아버지는 제꺽 한손을 들어막으며 좀전에 들고 들어왔던 큼직한 가죽가방을 당겨다 뚜껑을 열었다.

하얀 종이에 정히 싼 꾸레미 하나를 꺼내 펼쳤다. 눈부시게 희한한 문양의 양단천이불감 하나와 녀자치마저고리 한벌감이 나왔다.

어머니가 대뜸 탄성을 올리는데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어제 그 량반말이요. 알고보니 실은 제 아들문제때문에 찾았더구만. 올해 졸업반이라나. 종합대학에 보내야겠다구.》

어머니가 좀 불안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도와주마고 했지 뭐. 제 성의 일군자녀인데 응당하지 않아.》

어머니는 또 고운 웃음을 살짝 머금었다. 그러면서도 샐쭉한 투로 한마디 던졌다.

《제 아들걱정을 그 절반만큼이라도 좀 해요.》

과장된 요구인지라 홍준모는 부러 정색을 했다.

《난 교육성 부상이요. 국가간부.》

《예예, 국가간부구말구요!》

어머니도 웃고 아버지도 웃었다.

사실 홍준모는 어제오늘사이 아들문제로 어지간히 골이 아팠다. 어제 오전 아들의 학교에 나갔다와서였다.

내각결정을 받았지만 평양제1중학교만은 제외시키려고 한데는 생각되는바가 있어서였다. 수령님 자제분의 존함을 내들었지만 한편 아들때문이기도 하였다. 위병으로 먹을것도 제대로 못 먹고 한생 고생하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40일동안의 건설로동이란 말이 쉽지 어른들한테도 간단치 않은 중로동일텐데 번번이 소화가 안된다고 낯을 찡그리군 하는 녀석이 제대로 배겨내기나 하겠는가. 수령님 자제분을 그 힘든 로동에 참가시킨다는것도 나라의 전반교육사업을 맡아보는 책임일군으로서는 아주 죄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후날, 후세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물론 자제분자신께서 직접 발기하고 제기하셨다는것은 그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자신께서 하신 일이고 옆에 사람들 특히 책임일군들의 경우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상을 비롯해서 성의 몇몇 일군들에게 비춰보았더니 모두들 옳은 생각이라고 지지해나섰다. 그래서 아무 꺼림없이 교장을 전화통앞에 불러세웠댔는데 두번세번 허리를 꺾으며 절이라도 할줄 알았던 그는 깜짝 놀랄만큼 단마디로 거절해나섰다. 나라의 결정인것만큼 저희 학교라고 빠져서는 안되며 설사 자기가 그렇게 결심한다고 해도 학교민청조직에서 절대로 접수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이였다.

해설도 해보고 목소리까지 높여봤지만 요지부동이였다.

홍준모는 자존심마저 상하여 직접 학교로 나갔었다.

교장은 구태여 만날 필요도 없어 직판 교무부장 권길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어떻게 침을 맞았는지 예전에는 물속으로 소금가마니를 끌라고 해도 《예, 예.》할것 같던 권길수였건만 이 일에만은 맹물에 숭늉타놓은 격이였다. 화가 나서 본래부터 그렇게 무골충이였던가고 저로서도 얼굴 뜨끔하게 모욕을 주었다. 그래도 학교는 물론 구역관내 교원들속에서 성격이 칼날같다고 하던 권길수였지만 그답지 않게 오리주둥이처럼 입술만 삐죽 내밀면서 어물어물했다.

분명 케가 틀린 일인데 옛정을 봐서도 내가 너무했구나 하는 미안감에 낯색을 풀며 학교교육사업실태를 료해하는척 화제를 돌렸더니 이번에도 무엇인가를 감싸안고 살살 에돌면서 속을 활 헤쳐놓지 못하는 기색이였다. 원칙적인 대를 세울 때는 예리한 창날같지만 아래웃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서는 소설 《림꺽정》에 나오는 서림의 낯을 찜쪄먹을것이라는 말까지도 듣는 권길수인지라 홍준모는 일순 속이 무춤해졌다. 이 사람이 내앞에서 저럴 때에는 필시 나와 관련되는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가 아닐가 하는 예감에서였다.

그는 어지간히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교무부장선생, 당신 혹시 나한테 무슨 말하기 힘든 문제가 생긴게 아니요?》

권길수는 고개를 갑삭 하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작은 눈을 살짝 치떠보이더니 또다시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였다.

홍준모는 입술마저 감빨며 다가앉았다.

《자 이런, 정말 권선생답지 않게 왜 그러오? 내 뺨이라도 칠 일이면 서슴없이 치구려. 우리 사이가 언제 이랬소?》

홍준모가 그럴수록 권길수는 더더욱 죽을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 상동지의…》

그는 또 눈을 살짝 치떴다. 홍준모를 부를 때면 항시 《부》발음은 될수록 낮게 부르고 대신《상》자를 큰소리로 부르군 하는 그였다.

그는 더욱 죄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이었다.

《댁의 아드님문제가 지금 좀 심중하게 여론이 나돌고있습니다. 전적으로 제 잘못이 큽니다. 뭐라고 죄를 빌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믿고 맡기다싶이 하셨는데 정말이지 면목이 없습니다.》

권길수에게 아들을 전적으로 맡겼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일정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였던 홍준모로서는 속이 더 바짝 타들었다.

권길수는 점점 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학급학생들앞에서 조립식건설이 뭐 어쨌다고 시비를 하다가 되게 말썽을 일으켰던 문제며 쓸데없는 우월감과 교만성으로 해서 민청회의에서 두세차례나 비판을 받은 문제에 이어 녀학생 장운영과 《련애》를 하는것 같다는 여론까지 나돌고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민청위원장과 담임선생은 물론 교장선생까지 만나서 담화를 했습니다. 위축될가봐 걱정입니다. 그 나이에 한번 잘못 길을 들면 영 이지러질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구… 〈련애〉라는 말은 당치도 않는 억측이라고 봅니다.》

홍준모는 더이상 들을수가 없었다.

물론 그도 아들이 《련애》를 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도 장초부상의 딸과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알고있었다. 같은 부상의 자녀들로서 좀 이채로운 사춘기의 우정일수는 있어도 그것이 결코 일생일대를 결정하는 사랑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직은 그 진정한 세계를 알수도 없는 철부지들이 아닌가.

하지만 조립식건설문제를 놓고 뭐 어쨌다는 말에는 신경이 여간 곤두서지 않았다.

제가 뭘 안다고 조립식건설방법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해, 중뿔나게! 뭐 우월감? 교만성?…

낯이 너무 화끈거려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그는 어떻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는지도 몰랐다. 위축될가봐 걱정이라던 말이 심상칠 않았다.

최근에도 불량생자료들이 적지 않게 성으로 올라왔다.

3년간의 전쟁후과는 인민생활과 인민경제 각 분야는 물론 교육사업에도 막대했던것이다.

당장은 이렇다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인민학교나 초급반 낮은 시기처럼 욕설을 퍼부어댈수도 없었다. 손찌검같은것은 더우기 하면 안되였다. 너무 화가 나서 주먹을 쳐들었더니 팔목을 떡 걷어잡고 《아버지, 후회하지 않겠어요?》 하는 아들에게 오히려 진땀을 뺐다고 말하더라는 학부형도 있었다지 않는가. 아들녀석의 그 위협적인 말도 놀랍거니와 아버지의 팔목을 거머쥔 아들녀석의 집게같은 팔힘에는 겁까지 왈칵 나더라나!

생각같아서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으면 좋겠지만 부상의 아들로서 그것은 더우기 아니할 일이였다.

이래저래 가슴만 답답하여 안해한테 줄 뜻밖의 좋은 옷감까지 마련해가지고 돌아오면서도 여전히 속이 찜찜했댔는데 안해가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안을 내놓는게 아닌가.…

한바탕 즐겁게 웃고난 홍준모는 아들의 무릎을 가볍게 치면서 말은 안해에게 했다.

《여보, 날도 활짝 개이는데 오후엔 가족산보를 나가기요. 오래간만에. 내 학생들 건설동원조직사업때문에 성에 나갔다와야겠으니 그사이 뭘 좀 준비해놓지.》

어머니는 손벽을 짝 쳤다. 아들의 어깨를 꼭 당겨안으며 기뻐 어쩔바를 몰라했다.

《아유 얘, 이게 얼마만이냐. 너의 아버지!》

그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송수화기를 당겨들었다. 운전사를 찾아 부상동지가 급히 성으로 나가야 하니 빨리 와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만족하여 웃고있었다.

홍종팔도 소리없이 웃음을 담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간부댁녀인들은 저렇게 눈썰미가 빨라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하면서도 그 순간 그는 저도모르게 두손을 배우에 얹었다. 무슨 까닭인지 병원에서 퇴원을 한 이후에는 여적 아무렇지도 않던 위가 무엇으로 찌르기라도 하는것처럼 자주 띠끔띠끔하는것 같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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