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3 장
4
박문규는 달리기라도 하듯이 만수대언덕길을 내리걸었다.
인민학교시절부터
지금도 얼굴 화끈하게 하는것은 너무도 철없이
한낮의 뙤약볕이 살을 지지는것 같은 어느해 여름 점심시간무렵이였다.
그날도 류룡철을 비롯하여 몇몇 동무들과 함께
문득 정문쪽을 살피시던
정문안으로 아버지원수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서서히 들어오고있었던것이다. 후에 알았지만 지방의 현지지도길에 오르셨던
아이들은 너무 급하여 분수안에서 나오지도 못한채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들은
《다시는 그러지 말자. 잘못은 나한테 있어. 너희들이 너무 더워하길래… 잠간이면 되리라고만 생각했댔거던. 아버님껜 내가 말씀드리겠어.》
아버님께 말씀드리시겠다니 아이들은 더 큰 걱정이 눈빛마다에 실렸다.
사실말이지 모든 잘못이야 저희들이 저지르지 않았는가.
《너무 걱정말아, 너희들도 보지 않았니.
그래도 모두들 고개를 들지 못하자
《너희들도 참, 내 맘도 좀 알아주려마. 너희들 이렇게 돌아가면 나도 그렇지만 너희들 마음이 편하겠니? 계속 걱정스러워서… 참, 나한테 새로 나온 그림책이 있어. 간첩잡는 이야기책인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끝내
잎이 한창 피기 시작하는 정원수들속에 묻힌
가슴이 더욱 세차게 울렁거렸던것이다.
한것은 오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가 될 희망이 확고한 그는 중학시절부터 문학소조에 망라되여 문학공부를 직심스럽게 했는데 처음에는 시창작에 열성이다가 고급반에 올라오면서 소설에로 돌변하였다.
리유는 간단했다.
한달동안 창작한 습작품들중에 괜찮게 되였다고 생각되는 서정시 몇편을 골라 아버지에게 보였더니 아버지는 예상외로 무척 기특해하면서 장시간에 걸쳐 문학담을 나누어주었다. 특히 가슴에 젖어드는것은 아버지의 문학수업과 스스로의 높은 요구성이였다.
애젊은 청년시절에 문학을 지향하기 시작했건만 일제식민지하의 어둠속에서는 그 꿈을 알아줄 사람조차 없었다. 서울에 뛰여들어 고학을 하는 과정에 몇명의 카프작가들을 알게 되였지만 일제놈들의 탄압으로 그들과의 련계도 끊어지고 순수 자습의 오솔길을 톺아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해방이 되여서야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펼수 있었다.
평양으로 달려온 그는 문화선전국의 주요창작지도기관에 등용되여 조직지도사업을 하면서도 시와 극작품창작에 몰두하였다.
새 문화건설에 대한
잠마저 잘수 없이 흥분한것은 북조선 각 도인민위원회, 정당, 사회단체 선전원, 문화인, 예술인대회에 직접 참가하여
그는 그때까지의 자기의 창작 그자체를 전면부정하였다.
순수 문학의 진창속에서 용약 뛰쳐나와 혁명적인 문학, 철두철미 우리 당을 위한 문학,
그는 그때까지 품들여 준비했던 자기의 개인시집원고를 단호히 불태워버렸다. 그 불타는 열정으로
그런데 뜻밖의 비난을 받았다. 이것도 시라고 내놓았느냐, 서정시의 본도나 알고 시를 썼느냐는 등 별의별 험담과 모욕이 다 쏟아졌다. 어느 출판사에서도 원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민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우리 문학은 반드시
아버지의 이 일을 어떻게 되여
《너도 잊지 말아야 할것은 아버지한테 무슨 뛰여난 재간이 있어서가 절대 아니라는거다. 우리
결코 헐치 않았던 자기의 문학수업과정을 추억하고난 아버지는 어딘가 좀 추연한 기색이더니 이어 진중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훌륭한 시를 쓰려거든 우선 소설공부를 많이 하거라.
박문규는 눈이 번쩍 뜨이는것 같았다.
소설! 나한테서 소설가로서의 전망이 더 느껴진단 말이지!
사실 시보다는 소설책을 읽기가 더 재미있고 좋았던 그였다.
좋아. 소설가가 되자. 아버지도 힘들어했다는 그 소설문학의 고지우에 이 아들이 올라설테다!
그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해준것은 지난해 가을 교실에서 천성이냐 노력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론쟁이 붙었던 날
그날밤부터 그는 미친듯이 소설책들을 읽었다.
둬달가량 정신없이 열독을 하고나니 무엇이든 써보고싶은 충격에 잠을 못 잤다.
마침 남조선청년학생들의 리승만괴뢰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소식이 끝없이 전해지고있었다. 그는 이미 인상깊게 읽었던 어느 한 소설을 모방하여 돈밖에 모르는 중소기업가의 아들이 집안에만 묻혀있다가 친한 동무의 영향을 받아 투쟁의 길에 나서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는 단편소설을 제꺽 써냈다.
흥분한 그는 먼저 제일 친한 동무이며 같이 문학을 하자고 약조를 한 사이인 룡철에게 보였다.
룡철은 앉은자리에서 쭉 내리읽더니 세계적인 걸작이라도 나온듯이 극구찬양하였다. 너무 찬양하니 진실성이 없어보였다. 하면서도 마음은 둥 떴는데 한것은 《네 작품까지 보고나니 난 아무래도 작가는 못될것 같구나.》 하고 무척 부러움을 감추지 못해하는 룡철의 말까지 들어서였다.
한편 그 말은 자기는 문학에 점점 더
그 말뜻에 진심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당초에 결심했던대로 음악부문으로 나가야 할것 같다는 의미인데 그것이 여간 서운하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 보기에도 룡철이한테는 작가적재능은 크게 보이지 않아 더 만류하지도 않았었다.
어떻게 할가 망설이던중
속이 좀 저렸지만 한편 매를 맞아도 큰 매를 맞으라고 했는데 대담하게 한번 찾아가볼가 하는 어벌 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몇번을 바재이다가 하여튼 그 어방에라도 한번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일요일 아침 원고를 붙안고 푸른 물결 설레이는 대동강반으로 나갔다.
울렁울렁 뛰는 가슴을 안고 대동문앞까지 갔지만 더이상 걷지는 못했다. 대동문가까이에 유난스럽게 우뚝 솟아보이는 3층 화강석돌집이 눈뿌리를 지졌던것이다. 작가동맹청사였다.
그가 그 청사에 처음으로 찾아갔던것은 4년전의 따뜻한 어느 봄날이였다.
선생의 권고를 고맙게 받으신
그때
아름다운 교실
언제나 재미나는 교실
앞에는
환하게 모셔져있지요
오늘 아침도 기쁜 마음으로
우리 교실에 들어서니
언제든지 반가운듯이
우리 보고 공부 잘하라고…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봄바람에 실버들 푸르렀네
우렁찬 건설의 노래와 함께
… … …
아동문학작품창작에서 아직 순수 동심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과의 투쟁이 계속되고있던 때에 인민학교의 나어린 학생이 그런 놀라운 작품을 써왔다는 소식은 아동문학작가들은 물론 아동문학잡지 편집일군들도 무척 흥분시켰었다.
그 흥분과 찬탄을 직접 목격한 박문규여서 시공부에 와짝 더 열성을 냈던것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그 흥분이 되살아나 마음은 걷잡지 못하게 청사안으로 달렸지만 어쩐지 두발만은 땅우에 얼어붙기라도 한듯 좀처럼 떼지질 않았다. 쿵당쿵당 널뛰듯 하는 가슴은 지어 이름못할 두려움까지 몰아왔다.
박문규는 종시 자동차 한대나 겨우 지나다닐수 있는 넓지도 않은 길을 건너서지도 못한채 돌아서고말았다.
말라드는 입술을 감빨면서 한걸음 걷고는 돌아보고 두걸음 걷고는 또다시 멈춰서고 하면서 얼마쯤 걷던 그는 그만 웬 사람과 맞부딪쳤다.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던 박문규는 다음순간 저도모르게 반가움을 터쳤다.
《아,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뒤쪽을 자꾸 돌아보며 마주 걸어오는 학생에게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있던 그 사람은 더우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박문규는 또 한번 꾸벅 인사를 하며 다가섰다.
《아동문학분과위원회
《아.》
선생은 그제야 생각난듯 두팔을 벌리며 반가와하였다.
《오, 그때 찾아왔던 학생들… 이거 반갑구만. 내 글을 쓰다가 왜 그런지 대동강에 나가 머리를 좀 쉬우고싶길래 나왔댔는데 이렇게 반가운 손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보군.》
그닥 늙지는 않았지만 인정많은 할아버지들처럼 무던하면서도 말마디마다에 롱담기를 담는 선생은 먼저
그사이 또 어떤 작품을 쓰시였느냐, 학교에서는 지금 어떤 좋은 일들을 하느냐 등 아동문학작가답게 학교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앞세우며 묻고나서야 선생은 비로소 생각난듯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물었다.
박문규는 얼마간 주저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자기의 첫 창작품을 내놓았다.
《오, 학생은 소설을 쓰댔구만. 좋지, 아주 좋아!》
선생이 첫마디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자 박문규는 입이 헤벌쭉해졌다.
《가만, 이거 이렇게 길가에 서서야 되겠나. 저기로 가자구.》
강바람에 가지들이 설레이는 아름드리 버드나무밑에 푸른색의 긴 나무의자가 놓여있었다.
먼저 의자에 앉은 선생은 진중하게 학습장에 쓴 소설을 읽었다.
버드나무숲의 설레임과 더불어 드넓은 대동강의 푸른 물결도 바다처럼 출렁이였다. 대동강다리를 넘어 두세마리의 갈매기가 날아들며 끼륵거렸다. 철썩 철써덕 강기슭을 치는 물결과 어울려 우우 설레이는 버들숲마냥 박문규의 가슴도 걷잡을수 없이 설레였다. 뒤이어 가슴이 조여들면서 입술이 말라들었다.
선생의 얼굴만 보고서는 잘됐다는것인지 안됐다는것인지 도대체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이윽하여 선생은 학습장을 덮으며 제사 큰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한동안 눈을 꾹 감고있다가 불현듯 박문규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며 씨원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구만!》
선생은 고개까지 크게 끄덕여주면서 치하를 했다.
《우선 문장이 좋소. 글을 쓰려면 뭐니뭐니해두 문장이 좋아야 해.
작가는 문장가라고 하지 않소. 내용도 좋구. 이야기줄거리도 명백하오. 용케 썼어.》
박문규는 붕 떠오르는것 같았다. 성공이구나! 그러니 룡철이가 정확히 보았단 말인가?
소설을 쓰기가 힘들어 자기는 아직 한편도 쓰지 못했다고 하던 아버지의 말과 함께 《난 아무래도 작가가 될수 없을것 같아.》 하던 룡철의 말이 북채처럼 가슴을 쾅쾅 울렸다.
4년전
한데 《그런데 말이요.》 하는 선생의 다음말에 가슴이 덜컥했다.
선생은 소설이란
마음을 붕 띄우던 흥분은 싸늘하게 잦아들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구름처럼 떠올랐던 마음이 돌연 실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듯 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자 선생은 다시금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신심이 어린 말을 했다.
《일없어, 확실히 소설적재능이 확고해.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말이 있지 않나. 원인은 뭔가. 하자는 이야기도 명백하고 소설의 줄거리도 그만하면 잘 세웠지만 주인공의 성격과 생활을 잘 모르고 쓴데 있소. 남조선학생소년들의 생활과 투쟁말이요.》
박문규는 인차 깨도가 되였다.
체험! 그렇지. 작가적인 체험, 그래서 아버지도 줄창 현지에 나가살며 글을 쓰지 않는가.
선생은 더욱 친절한 태도로 소설공부를 착실하게 더 잘할수 있는 방도와 묘리를 가르쳐주었다.
《가장 쉽고 빠른 길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생활을 쓰는거요. 인물성격도 자기가 제일 잘 아는 사람, 원형에서 찾는것이구. 다시말해서 학생과 늘 함께 공부하며 생활하는 동무들한테서 소설감을 찾는것이다 그 말이요.
학생네 학교에도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와 개성적인 성격의 동무들이 많겠지?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와 성격들을 연구해서 그리면 그게 소설이구 문학이란 말이요. 문학작품은 우선 진실해야 하는데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얘기는 아무리 재간있게 쓴다구 해도 진실해질수가 없는거요.》
박문규는 고개를 버쩍 들었다.
옳다. 우리 학급에만도 얼마나 극적인 이야기, 개성이 뚜렷한 학생들이 많은가. 나의 가장 친한 동무 류룡철은 물론 주영화와 최원석, 수학수재 경일호, 홍종팔과 장운영, 선생님들만 보아도 선정화선생님과 교장선생님, 칼칼하고 엄격한 교무부장선생과 세계사선생…
박문규는 작가선생과 헤여져 돌아온 그날부터 신심이 북받쳐 새 소설창작에 달라붙었다.
작가선생의 말대로 저와 제일 가까울뿐더러 제일 잘 아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리니 쉽기도 하거니와 속도도 빨랐다.
며칠동안에 제꺽 끝내고 읽어보았다. 우선 인물성격들이 독특하고 생동한데다 예술작품의 생명이라고 하는 진실성에 있어서 나무랄데가 없어보였다.
제목은 《나래치는 희망》이였고 주인공은 류룡철과 주영화, 최원석, 홍종팔과 미래의 력사학자 장운영, 세계적인 수학자 경일호를 원형으로 하는 이를테면 다주인공형식의 소설이였다.
그가 흐뭇해서 작가선생을 다시 찾아가려고 할 때 어떻게 아시였는지
박문규는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무척 고마운 마음으로 서슴없이 소설작품을
× ×
박문규를 기다리고계시는것이였다.
동무들을 댁으로 초청하실 때면 매양 그렇게 정문 가까운 곳에 나와 기다리다가 반겨맞아주군 하시는
《문규!》
정문가까이에 이른 문규를 띠여보신
《정일동무!》
박문규도 반가운 기색으로
《땀을 흘렸구나.》
박문규는 그제서야 자기가 달리다싶이 언덕길을 넘어왔다는것을 느끼며 급히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아아, 됐어됐어. 난 조금만 걸어두 이렇게 땀이 나거던!》
그 말에
《그래?… 하긴 땀날 철도 됐지 뭐.》
박문규는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래간만에 찾아와서인지 봄철을 맞은 정원은 더욱 활기차보였다.
푸른 잎새를 펼친 잣나무와 종비나무들사이에 포기포기 피여난 진달래가 특히 유난스러웠다.
더우기 눈길을 끄는것은 저택앞의 자름자름한 각목바자를 둘러친 터밭이였다.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한 여러 모양의 두둑들과 이랑을 지었는데 그 가녁마다 손바닥만 한 하얀 표식판을 세웠다.
부루, 시금치, 쑥갓, 강냉이… 각종 남새와 밭작물의 품종과 심은 날자를 기록한것이였다.
문득 어느해인가 몹시 가무는 철에 손수 물을 길어다주며 하시던
《올해에도 아버님께서 직접 씨를 뿌리신 남새들이야. 아버님께선 밥먹으며 사는 사람은 농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매해 좋은 종자를 구해다가 이렇게 심고 연구도 하셔. 참, 우리
실은 우리 집 농사는 어머님께서 먼저 시작하시였어. 도마도, 오이, 참외… 안 심은것이 없었지.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님께서 계속하시였는데… 아버님께서 현지지도를 떠나시면 내가 맡아하군 해.》
농사일을 직접 해보니 배우는것도 많다고 하시였다.
첫눈에 뜨인것은 전보다 곱절은 더 많아진 책장의 책들이였다.
《인류사회발전사》, 《변증법적유물론》, 《국가와 혁명》, 《임금로동과 자본》, 《잉여가치학설사》 등 여러권의 리론도서들과 새로 나온 수학, 물리, 화학, 기계공학참고서들이 꽂혀있었다. 낯익은 피아노우에는 크고작은 음악책들과 오선지들이 쌓여있었다.
책상우에도 여러권의 책들이 쌓여있었는데 이채로운것은
탁자밑에도 각종 도서들이 꽉 차있었는데 주로 영화문학작품과 소설, 문학잡지와 신문들이였다. 《전쟁과 평화》, 《고난의 길》, 《괴멸》, 《오쎌로》와 같은 번역작품들도 있었다.
《이거 우리 문규동무가 왜 이렇게 점잖아지셨는가? 영 딴사람처럼… 어르신님이 다되셨다는건가?》
그러시고는 그의 무릎까지 가볍게 쳐주시였다.
사실
물론 그들도 이제는 교실에서 의자우에 반대로 올라앉아 말타기놀음을 하거나 복도에서 뛰여다니며 따라잡기를 하던 철부지들이 아니였다. 하루밤 자고나면 이전과 다르게 점잔을 빼면서 저저마다 어른티를 내려고 하는 그들이고 보면 말투며 행동거지마다에서 제나름의
물론
참말이지 샘물같은 정, 봄볕같은 정, 보석같은 정으로만 꽉 찼던 시절이였다.
정!
어린시절의 그 정과 어른세계에서의 정이 다르기라도 한것인가.
박문규의 단편소설까지 읽고나자 그 정의 파도가 격파처럼 더욱 뜨겁게 북받쳐오르는것을 느끼시였다.
물론 작품의견은 교실에서도 줄수 있었고 교재원이나 강바람 시원한 대동강반에 나가서도 줄수 있었다. 하지만
박문규는
그는 몸을 궁싯하면서 다시금 방안을 둘러보고나서 솔직하게 말했다.
《실은 정일동무의 학구열에 위압이 된것 같아. 나날이 더 놀랍기만 하거던!》
《이 친구 그 사이 어디 가서 사람을 올리띄우는 재간까지 배웠는가? 새삼스럽게… 이 정일인 어제도 오늘도 그
박문규는 고개를 숙였다. 단편소설 한편을 써놓고 마치도 아버지처럼 작가가 다되기라도 한것 같은 자부심에 들떠올랐던 일이 부끄러웠던것이다. 혹시 나도 종팔이처럼 되여가는건 아닐가?
이제 어떤 평가를 내릴가? 실망을 느끼시진 않았을가?
박문규가 아버지한테 부탁하여 얻어낸 원고지에 품들여 또박또박 필사를 한 단편소설이였다.
붉은색으로 《좋다.》 하고 활달하게 써놓으신 글발이 나타났다.
그 글자를 보는 순간 박문규는 숨이 콱 막히는것 같았다.
몇장뒤에도 또 같은 글발이 씌여졌다. 더 큰 글자인데 감탄표까지 두개씩이나 쳐놓으시였다. 푸른색연필로 《?》를 친 곳도 있었고 검은색으로 《생각해볼것.》 하고 써놓은 곳도 있었다.
원고를 다 번지고나신
정작 말씀을 하시려니
작품분석이 미흡해서는 아니시였다.
잠도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시였다.
달도 밝고 별들도 유난히 밝은 봄밤이였다.
정말이지 그의 앞날은 얼마나 밝고 희망차고 환희로운가!
어찌 박문규뿐이겠는가. 물리학의 최원석과 화학분야의 주영화며 리용, 경일호와 장운영의 앞날은 또 얼마나 창창한가!
언제인가 안타까움을 담아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나시였다.
《전쟁도 이겨냈고 사회주의적개조도 끝냈는데… 인재가 부족하구나. 너희들세대가 빨리 한몫씩 단단히 맡아주어야겠다!》
어머님께서 하시던 절절한 당부도 새겨지시였다.
《아버님께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걱정하시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난 너를 믿는다, 믿구말구!》
가슴이 벅차오르시였다.
(그래. 아버님의 말씀, 어머님의 당부… 그것은 나만이 아닌 우리 세대모두에 대한 믿음이며 기대이시다. 사랑하는 나의 동무들, 우리모두의 앞날에 대한 확신이시다. 하다면 그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고 위해주어야 할가?)
박문규는 물론 모든 동무들을 다 찾아 어깨겯고 발맞추어 온 세상이 보란듯이 평양의 거리거리를 한껏 걸어라도 보고싶으시였다.
지금도 그 심정이 북받치신
《이름있는 작가의 아들이 확실히 달라. 진짜 어느 소설가가 쓴 작품을 읽는가싶었거던!》
《아 이거, 정일동무도 사람을 올리띄우는구나 뭐.》
박문규는 속에서 후두둑 치는것이 있었지만 저도모르게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우선 좋은 점은 인물들의 성격이 생신하고 개성적인것이야. 류철이… 룡철이를 원형으로 한것 같은데 방불해. 조영아와 황종복이도 주영화와 홍종팔을 원형으로 해서 형상한 모양인데 비슷해. 작가선생님이 일깨워줬다는대로 자기가 제일 잘 아는 동무들을 원형으로 했으니까 진실해질수밖에 있어?
웃음나는데도 있고 눈물나는 장면도 있어. 진짜 괜찮아.》
《그렇게 칭찬만 하지 말구 비판을 많이 해줘. 정일동무도 그러지 않았어. 사람은 비판속에서 발전한다구 말이야. 사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전번 민청회의에서 부위원장동무가 한 토론 정말 좋았어. 모두들 생각 많이 하고있어. 비판도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어머니의 꾸지람이란 없다.… 이건 정말이지 문학적이구 철학적이라구 봐.》
《동무들이 정말 그렇게들 생각해?》
박문규는 어깨까지 으쓱 추며 성수를 냈다.
《그렇찮으문, 종팔이도 뉘우침이 큰것 같더라니.》
《종팔동무도 정말 그럴가?》
《글쎄 그렇다니까. 그 친구 요사이 어깨가 처진게 알리지 않아? 병원에 입원까지 했댔으니 말이야. 위병도 위병이지만 정신치료도 좀 받았겠지 뭐.》
박문규는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방금 홍종팔이 뉘우침이 큰것같다고 제입으로 말해놓고서도 마지막말은 아주 불미스럽게 번지였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다를가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시였다.
민청실에서 홍종팔과 단 둘이 조용히 마주앉았던 일이 삼삼하시였다.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뜻을 알겠노라고 하며 눈굽을 적시던 모습이였다. 진짜 뉘우침이 커서였을가? 그래서 병원에서도 그렇게 미안스러워했을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난 누구보다도 정일동무에게서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의견을 받을수 있다고 믿어.》
《고맙다.》
박문규는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면서 작가선생의 의견을 받고 쓴 작품이기에 아직 소조원들한테는 보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본인이 내 의견부터 꼭 듣고싶다면 한두가지 소견을 말하겠는데… 문학작품이란 그 사명과 임무, 목적자체가 사람들을 교양하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희망을 황홀하고 높이 그린것은 물론 탓할바 없지만 그 리상과 목표를 어떻게 실현하겠는가 하는데서는 생각할바가 좀 있다고 봐. 한마디로 모두 책상앞에 앉아서 희망이요 리상이요 하면서 희한한 꿈이나 꾸고있는 격인데 희망과 리상이 결코 꿈으로 끝나서는 안되지 않아. 사회주의 새 사회건설을 위하여 부글부글 끓고있는 천리마시대의
박문규는 한방망이 얻어맞은 때처럼 어벙벙한 눈길로
어둡게 흐려지는 얼굴에 실망의 빛이 실렸다.
(너무 아프게 찔렀는가?)
방금전에 기탄없는 솔직한 의견을 듣고싶노라고 하던 그의 말이 생각나시였다. 작가선생의 의견을 받고 쓴 작품이기에 문학소조원들한테는 보이지 않았다고 어름어름 대답하던 모습도 떠오르시였다.
(겸손성과 우월감!… 량립될수 없지. 하다면…)
작가선생한테서 받은 의견은 사실상 작품에 대한 전면부정의 의견이였는데 이제 또 아픈 의견을 받으면 아주 주저앉아 포기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감도 드시였다.
환자의 아픔만을 생각한다면 그게 무슨 진정한 의사이겠는가.
오늘 박문규를 굳이 댁으로 부르신것자체가 무엇때문이였던가.
《그리고 이건 큰 문제는 아닌데 원형의 이름과 작중인물의 이름을 너무 비슷하게 한건 여러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봐. 전형화의 원칙에도 맞지 않구.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실례된다고 생각해.》
박문규의 흐려졌던 얼굴이 이번에는 활딱 붉어졌다.
류룡철이며 주영화, 장운영의 이름과 비슷하게 달아놓고는 마치도 그들을 위해 장한 일이라도 해놓은것처럼 속으로 은근히 자랑스럽게까지 여겼던 그였다.
전형화의 원칙, 창작의 초보도 모르면서 어느 밭에서 헤맸던가 하는 자책에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보다 중요한건 뭔가? 필자가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하는거야. 말하려는 기본문제, 문학적주제말이야.… 물론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그 개개인물들로서는 인상깊게 형상되였고 문체론적의미에서도 좋은 점들이 많아. 하지만 그 인물들이 하나의 문제점,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해결에 얽혀들어오지 못하고 뿔뿔이거던. 결국 우리 학급에서 벌어졌던 생활과 사건들을 방불하게 그려놓기는 했는데 청년들의 희망문제인지 동지적사랑문제인지 명백하지 않다는거야.
생활적바탕과 사건조직, 얽음새도 그만하면 괜찮은데 그 밑바탕에 관통되는 정서적흐름, 일관된 감정선이 약하거던. 특히 절정장면에서… 민청초급단체총회장면을 절정으로 설정하고 인물호상간에 축적되여오던 감정들을 폭발시키려고 한것이 극적인것만은 사실인데 그 장면에서 필자의 주장을 명백하게 터치지 못했다는거야. 기본사상감정을 말이야!》
탁자앞을 몇걸음 거니시던
이어 조용히 의자에 앉으며 건반우에 손을 얹으시였다.
박문규는 의아해졌다.
아직 작품에 대한 해부학적분석이 끝나지 않은것이 분명한데 피아노와 마주앉으신 뜻은 무엇일가?
이윽고
《
박문규는 의아한 눈길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음악을 남달리 사랑하며 좋아하시는
한데 지금
정말 기뻐서인가? 아니면 너무도 어이없는 실망감에서일가?
그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있는데 《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력사에
다음소절부터는 선률과 함께 부드럽고도 절절한 음조로 나직나직 노래를 부르시였다.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
박문규는 자기도 이름할수 없는 흥분과 긴장감에 휩싸여 입술을 감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때? 생각되는게 없어?》
하지만 답변을 듣자고 물은것은 아니여서
《얼마나 절절하고 격동적이야.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불같은 존경과 흠모심, 내 나라, 내 조국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 정말이지 가슴이 벅차지고 목이 메이지 않아? 창작가들의 주장도 명백하고. 난 처음 이 노래들이 나왔을 때 며칠동안이나 그냥 풍금으로 타고 노래로도 불렀댔다. 우리 어머님이랑 같이. 어머님께서도 눈물을 머금군 하시였어.… 난 문학예술작품은 이렇게 되여야 한다고 봐! 소설작품이라고 다르겠어?》
잠시 해빛밝은 창문앞에 서계시던
《내가 그사이 내나름으로 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동무의 작품은 소재로 보나 전반적인 인물관계나 이야기의 얽음새조직으로 보나 명백히 우정문제, 혁명적동지애를 핵으로 박는게 어떨가 하는거야.》
《우정문제?!》
《그래, 우정!》
《물론 우리 청년들의 희망문제도 중요하지. 난 그 희망문제자체를 부정하는건 아니야. 문제는 그 희망문제를 놓고서도 많은 문학적이야기를 뽑을수 있다는거야. 결국 동무의 작품에서 희망문제는 아직은 소재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수 있어. 이를테면 건설부문에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였던 조립식건설을 반영한 소설이라고 할 때 누구는 그 건설공법을 주장하는데 어떤 인물은 반대했다, 그러다 회의에서 되게 비판을 받았다 하는 식이란 말이지.… 아, 이거 내가 미래의 문학대가앞에 감히 실례되는 말을 하는것 같구만!》
박문규는 펄쩍 뛰듯이
《아니아니, 정일동무. 무슨 그런 말을… 어서 계속해줘. 확 안겨오는게 있어!》
《그래? 그렇다면 좀더 얘길할가?》
《가령 종복이가 풍력발전기를 만들다 주저앉은 장면에서 영순이가 비판만 하는것으로 그쳤는데… 과학원에 있는 영순의 삼촌이나 오빠같은 인물을 하나 더 설정하고 진심으로 도와주도록 생활을 펼칠수 있지 않을가? 그렇게 해서 종복의 오해도 뜨겁게 풀리게 하고.》
《좋아!》
박문규는 손바닥그루를 콱 박으며 환성을 터쳤다.
《그리고 같이 문학공부를 하자고 약속했던 류철이가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조영아가 마치도 배반이라도 당한것처럼 결별을 선언하는데 극성을 조성하려고 한것은 리해되지만 생활적진실성은 없다고 봐. 류철이 음악에 소질이 있다면 응당 지지해주고 떠밀어주어야지 뭐. 지금의 소설에서 조영아는 완전한 리기주의자라고도 할수 있어. 우정이 리기심으로 될수는 없지 않아? 조영아는 오히려 자기 잘못을 깨닫고 더 진심으로, 더욱 뜨겁고도 열렬하게 류철을 고무해주고 지지해주는 인물로 그리는것이 좋을것 같아.》
《좋아좋아, 멋있어! 그렇게 되면 희망과 리상문제도 지금처럼 둥 뜨지 않고 인물들의 진실한 감정속에 푹 잠겨들게 되겠구나. 동지적우정, 문학적인 이야기로!… 야,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박문규는 너무 흥분하여 그냥 손바닥그루를 탁탁 박으며 방안을 왔다갔다 했다.
《가만,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가 있어. 뭔가 하면… 인물들의 성격적기초 즉 그 우정의 기초에 무엇이 놓여져야 하겠는가 하는거야. 일반적으로 우정이라고 하면
《여기에 눈물겨운 이야기가 있어. 며칠동안이나 굶으며 강행군을 한 유격대원들이 마지막비상미를 다 털어낸것이 겨우 한홉의 미시가루였는데… 대원들은 송구한 마음으로 그 미시가루를
최현동지랑
《그 유격대원들, 빨찌산대원들이 해방된 조국땅에서도 아버지장군님을 받들어 새 조국건설에 한몸 다 바쳤고 3년간의 힘겨운 조국해방전쟁도 이겨냈어. 오늘도 역시 한마음 변함없이 나라의 방방곡곡 중요한 전구마다에서 오직 아버지원수님만을 받들며 영원히 따르려는 충정의 일념으로 살고있어. 일생을!… 김일, 최현, 림춘추, 오진우, 오백룡동지들… 참, 문규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과의 투쟁을 알고있지?…
박문규는 불김같은것을 헉 들이켰다.
창문가에 이르신
박문규는 저도모르게 몇걸음 따라걷다가 우뚝 멈춰섰다.
앞으로 영원히 변치 말아야 할 우정! 참다운 진정의 우정!
우리의 우정도 그렇게 되여야 한다. 영원히, 영원히 변치 말아야 할 참다운 우정으로!…
바로 그것을 일깨워주자고 하시였구나.
그래서
박문규는 고개를 버쩍 들었다. 그리고
돌연 그 하늘이 황홀한 노을빛으로 물드는것 같았다.
순간 가슴속에서 쾅 울리는것이 있었다.
머리속으로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이였다.
(정의 세계, 정의 노을!)
소설의 제목이였다.
그렇다. 소설의 제목을 《정의 노을》로 달자!
그러자 그는 전혀 뜻밖의 일을 당한것처럼 세찬 격랑의 파도에 파묻히였다.
자기 작품의 주인공으로
너무도 예상밖의 흥분에 그는 이윽토록 봄하늘가를 바라보시며
《난 문규를 믿어, 훌륭한 작가가 될거야.… 조기천, 리찬, 리기영, 김옥성, 리면상… 모두 훌륭한 창작가들이지. 우린 문학예술부문에서 꼭 그들의 뒤를 이어야 해! 우리 세대의 숭고한 의무는 물론
박문규는 여전히 자기의 작품세계에 푹 잠겨 가슴을 끓이고있었다.
(정의 노을! 옳다. 아버지원수님의 시대,
앞으로도 난 꼭 그런 작품들을 쓸테다. 정일동무의 그 불같은 정의 세계, 바다같은 인정의 세계를 퍼내고 또 퍼낼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