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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제 3 장


2


주영화는 여느날보다 일찍 학교로 나갔다. 오늘아침 교실당번이였던것이다.

같이 당번을 서게 되여있는 성효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전날 당번들이 청소를 잘해서 교실은 별로 손댈것이 없었으나 책상걸레질도 하고 칠판지우개도 다시 깨끗하게 털어다놓았다.

기분이 상쾌해진 그가 책상과 의자들의 줄까지 똑바로 하나하나 맞춰나가는데 교실뒤문이 소리없이 열리면서 김정일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언제나와 같이 환한 존안에 반가움을 함뿍 담으시고 주영화보다 먼저 아침인사말을 보내시였다.

《빨리 왔구만. 나도 오늘 좀 일찍 오느라고 했는데 늦었는걸!》

제편에서 먼저 인사를 받은 주영화는 당황해서 몸둘바를 몰랐지만 한편 아침일찍 제일먼저 그이를 만난 기쁨에 붕 뜨는 기분이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책상우에 책보를 놓고 다시 뒤문쪽으로 가시였다. 방금 들어온 문밖으로 나가시더니 인차 무엇인가 큰 보자기에 싼것을 들고 들어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환하게 웃음만 담으시고 아버지원수님의 초상화가 모셔진 교실앞 제일 가까운 창문으로 가시였다.

그다음 보자기를 풀고 고운 꽃화분 하나를 정히 창턱에 올려놓으시였다.

정신이 펄쩍 들게 싱싱하고 힘차보이는 푸른 잎새들사이로 튼튼한 꽃대 하나가 쭉 뻗었는데 아래부분에 눈부시게 하얀 두세송이의 꽃송이가 피여있었다. 그우로 또 금시 퐁퐁 소리를 내며 터질듯 한 꽃망울들이 종종 맺혀있었다.

불시에 교실안이 환해지면서 가슴뭉클하게 하는 향기가 꽉 차는것 같았다.

김정일동지께서 기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은방울꽃이야. 새벽에 보니 꽃이 피지 않았겠어!》

주영화는 코언저리가 찡해났다.

그러니 학급동무들이 다같이 보게 하려고 아침일찍 손수 들고오시였구나!

어쩐지 자기가 당번서는 날을 기다렸다가 내오신것만 같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토록 화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다가 혼자말씀처럼 나직이 이으시였다.

《우리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던 꽃이야.》

주영화는 눈굽이 화끈 달치였다.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던 꽃!

아직은 어머니의 품을 떠나보지 못한 주영화였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열렬하고 변함이 없는것이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들이 바치는 정이라는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날이 더 목메이게 체감하고있는 그였다.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그 귀중한 정을 너무도 어리신 나이에 너무도 일찌기 잃으신 김정일동지!

그 사랑, 그 정이 그리도 그리워 그이께서는 그토록 불같은 정으로 동무들을 뜨겁게 대해주는것이 아닐가?

그 정을 그리며 자신께서는 물론 학급동무들모두가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 어머님의 절절한 당부를 지켜가자고 꽃화분을 내오신 한량없는 사랑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등뒤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유, 한발 늦었네.》

성효정이 얼굴이 빨개서 교실로 들어섰다.

스스럼없이 반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는 그에게 김정일동지께서도 밝은 미소로 답례를 하시였다.

성효정은 늦은 봉창이라도 하려는듯 교실안을 둘러보다가 마침 빈 물바께쯔를 발견하자 재빠르게 들고 수도칸으로 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런 효정의 뒤로 따뜻한 미소를 보내시고나서 주영화옆에 가까이 다가오며 다정히 물으시였다.

《요즘도 원석의 집에 자주 가보군 하니?》

주영화는 의아쩍어하며 눈길을 떨구었다. 물으시는 뜻을 몰라 잠시 쭈밋거리였다.

사실 그는 원석이네 집에 들려본지가 퍼그나 오랬다.

그도그럴것이 아버지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밭관개의 시범단위, 본보기단위를 꾸릴 구상을 펼치시며 현지지도하신 신천군 새날협동조합에 몇달째 나가있었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중구역살림집건설장과 모란봉청년공원건설장 지원사업으로 하루도 집에 붙어있을 사이가 없어 집안살림은 거의 그가 맡아하다싶이 했던것이다.

한데 그이의 물으심은 무슨 뜻일가?!

잠시 주영화를 지켜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좀 걱정스러운 어조로 이으시였다.

《원석이 어제도 오후 첫시간에 까딱까딱 조는가 하면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말고 한참씩 창문밖을 내다보군 하더구나.》

주영화는 놀랐다.

최원석이한테서 나타난 그 모든것을 자기는 왜 전혀 몰랐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가?)

그때 복도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학급동무들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다른 학급의 나들문도 분주히 여닫기였다.

얼마후 주영화는 복도쪽에 귀를 강구었다.

첫 수업시간이 가까와오고 학급동무들도 다 제자리에 앉았는데 유독 최원석의 자리만이 비여있었던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첫 수업은 물리시간이였다.

드디여 수업시작종이 울리고 물리교원이 교실에 들어와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최원석은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주영화는 자기 이름을 부를 때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몰랐다.

최원석의 이름은 출석부 마감부분에 있었다.

《최원석.》

선생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주영화는 한숨을 푹 내쉬였다.

《최원석학생.》 하고 다시 부를 때는 입술을 꼭 씹었다.

한데 그때였다. 교실뒤에서 《예, 최원석 지각 아닙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원석이 숨을 헐썩이면서 교실에 들어섰던것이다.

와하… 웃음이 터졌다. 선생도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있었다.

최원석이 물리에 각별한 취미가 있어서인지 선생은 탓하지 않고 서글서글 웃으면서 어서 자리에 들어가앉으라고 하였다.

최원석은 홍종팔이 야지랑스러운 눈빛을 던지며 입을 삐죽거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보란듯이 성큼성큼 자기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주영화는 여전히 의아한 눈길로 최원석을 주시했다.

서둘러 자기 자리에 가앉은 최원석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비로소 주영화를 쳐다보았다. 눈길이 마주치자 얼핏 웃어보였는데 어쩐지 그 웃음에는 어색하고 미안스러워하는 빛이 실렸다.

선생은 인차 강의를 시작했다. 회리현상에 대한 설명이였다.

《회리는 회리운동 또는 포텐샬흐름과 동일한 개념으로 쓰입니다.

류체속에서 어떤 가상적인 축을 중심으로 빨리 도는 류체부분 즉 류체알갱이들이 저마다 돌면서 자리를 바꾸는 운동입니다. 례하면 룡권현상이나 다리아래서 흔히 볼수 있는 강물의 회리흐름, 바위를 감돌아흐르는 소용돌이흐름같은것을 들수 있습니다.》

선생은 교탁우에 놓았던 걸그림을 칠판 한옆에 걸어놓고 백묵으로 칠판에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이와 같이 회리는 회전축두리를 강체의 회전법칙대로 도는 부분과 나머지회전부분으로 되여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는것처럼 여기 이 나머지회전부분에서는 회전축으로부터 멀리 있는 류체알갱이일수록 회전속도가 작아서 가장 먼곳의 알갱이는 령에 가까운 회전속도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끈기힘, 쓸림힘과 관계됩니다.…》

선생은 다른 교원들에 비하여 필기보다도 설명을 더 깊이있게 많이 하군 했다. 그것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흥미와 호기심을 안고 정신을 바짝 집중시키게 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일부 지루감을 느끼게도 했다.

선생은 오늘도 과정안의 제목과 기본체계, 그에 따르는 중심내용만 간단간단히 필기시켜주고는 설명을 더 열정적으로 해나갔다.

《따라서 류체속을 운동하는 물체, 잠수함같은것 말이요. 그 물체를 류선형화한다는것은 물체, 잠수함뒤에 생기는 회리의 크기와 수를 가장 작게 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회리는 또한 물체에 작용하는 뜰힘도 좌우지합니다. 례하면 비행기두리에 생기는 회리들은 그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것입니다.

회리현상은 이외에도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리용되고있는데 내연기관이나 각종 로들에 달린 앞불칸에서는 미분탄이나 액체연료들을 잘 섞어서 태우기 위하여 공기흐름 또는 연료공기혼합흐름을 합리화하고 있으며 또한 일부 가속기들에서 초음파작용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그속의 흐름을 회리화하고있습니다.》

선생의 설명에 홀딱 정신이 팔렸던 주영화는 회리현상이 인민경제 여러 분야에서 정말 많이도 쓰이는 효과적인것이구나 하고 감탄하며 은연중 최원석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그는 저도모르게 입이 반쯤 벌어졌다. 누구보다도 두눈이 초롱초롱해서 들을줄 알았던 원석이 꺼떡꺼떡 졸고있었던것이다.

쏘련에서 첫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도 흥분했던 그였다. 그날로 국립도서관으로 달려가 응용수학과 막흐름현상에 대한 참고서들을 한아름이나 되게 빌려안고 돌아왔던 그가 다른 내용도 아니고 회리현상에 대한 강의를 어떻게 저렇게 대할수 있는가? 이미 그 지식을 다 터득하기라도 해서일가? 아니, 먼저 학습을 했더라도 어떻게 저럴수가 있어?

영화는 고개를 저었다. 설사 알고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최원석이 절대로 그럴수가 없다는 믿음에서였다.

(분명 일이 생겼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업 첫시간부터 저럴수가 있어?)

자연히 김정일동지께로 눈길이 갔다.

그이께서도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계시였다. 안타까움이 어린 표정이시였다.

요즘도 원석이네 집에 자주 들려보군 하느냐고 물으시던 음성이 가슴을 찔렀다. 눈굽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무슨 동무야, 함께 자란 고향동무가 맞아?)

김정일동지를 우러르는 눈길이 뿌잇하게 흐려지면서 점점 더 얼굴이 달아올랐다.

문득 무더운 여름 어느날에 있은 일이 떠올랐다.

그날 아침 교실안은 류달리 반가움으로 흥성거렸다. 며칠동안 류행성감기로 되게 앓는다던 최동무가 나왔던것이였다.

《일없니?》

《다 나았니?》

《혼났겠구나.》

저저마다 최동무를 둘러싸고 반가와도 하고 걱정도 했다.

좀 뒤늦게 교실에 들어서던 학급반장도 그의 손을 잡으며 반가와하다가 문득 김정일동지에 대한 말을 해주었다.

《어제 분단위원장동무가 너한테 얼음과자를 사다주자고 했댔는데 날이 너무 더워 그렇게 못했어. 분단위원장동무가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몰라. 넌 그걸 알아야 해.》

그런데 최동무의 대답은 학급반장은 물론 학급동무들모두를 의아케했다.

《알아, 그걸 왜 모르겠어. 바로 그 얼음과자를 먹고 열이 뚝 떨어지고 입맛까지 돌아섰는데!》

두눈을 크게 뜨고있던 학급반장이 무슨 꿈같은 이야기냐는듯이 물었다.

《너 무슨 말을 하는거냐? 길거리에서 다 녹아버린 얼음과자를 네가 어떻게 먹었다는거야? 정말 꿈을 꾼게 아니야?》

그러자 이번엔 오히려 최동무가 눈을 슴벅이며 말했다.

《녹긴 왜 녹아, 보온통에 하나 가득 담아가지고 왔는데 전혀 녹지 않았댔어. 얼마나 시원했는지 몰라, 이발이 막 시렸어!》

《보온통?!》

학급반장은 그제야 제이마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전날에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그날 공부가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학급반장에게 최동무가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지 여러날인데 한번 찾아가보자고 하시였다.

학급반장은 자기도 가보고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전염성이 강한 류행성감기이기때문에 그 집 부모들도 면회를 오지 말라고 하여 가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모들이야 우릴 생각해서 그랬겠는데 그렇다고해서 앓는 동무를 외면하면 되겠느냐고 좀 나무라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집에 가보니 최동무는 병이 어지간히 숙어들기는 했지만 아직 자리를 털고일어날 형편은 못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꺼림없이 최동무의 곁에 바투앉아 이마도 짚어보고 무슨 약을 먹었는가 알아도 보시면서 우선 열부터 떨구어야 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친형제간처럼, 어른들처럼 너무도 다심하고 친절하심에 감동된 최동무의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하면서도 그이의 건강이 념려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학급반장에게 어서 빨리 모시고 떠나달라고 자꾸 눈짓을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학교소식과 분단소식도 알려주고 몸단련에 필요한 건강상식도 해설해주시면서 퍼그나 오래 앉아계시다가야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학급반장은 돌아오면서 아무래도 안심치 않아 일없겠는가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두 참 별걱정을 다하는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의미있게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얼마간 아무 말씀없이 걸으시던 그이께서는 나직이 이으시였다.

《우리 어머님께서 말이야, 빨찌산때 도천리라는데서 지하혁명활동을 하신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마을에서 지주놈이 실컷 부려먹던 나어린 부엌데기소녀가 열병에 걸렸다고 인가없는 험한 산중의 다 낡은 초막에 내다버린 일이 있었다더구나.… 그때 열병이라면 열에 아홉은 죽는 병이구 옆에서 숨소리만 들어도 옮는다고 했다는 무서운 병이였지. 마을사람들은 주먹을 쥐고 지주놈을 미워했고 또 나어린 소녀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감히 돌봐줄 생각을 못했대.

그 사연을 아신 어머님께서는 지체없이 초막으로 달려가 소녀의 곁에서 침식까지 같이하면서 병구완을 하시였어.

조직성원들이 깜짝 놀라 달려와서 어쩌자고 그러느냐고, 살릴 가망도 없는 아이 하나때문에 열병에 감염이라도 된다면 어머님의 생명은 어떻게 하며 또 사령부에서 준 임무는 어떻게 수행하시겠는가고 걱정하면서 어서 마을로 내려가자고 막 사정을 했다지 않아. 어머님은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어.

〈걱정말고 돌아들 가세요. 자기 목숨이 두렵다고 불쌍한 아이 하나 살려내지 못한다면 나라는 어떻게 찾고 도탄에 빠진 인민은 어떻게 구원해내겠어요? 인민을 살리자고 혁명의 길에 나섰고 싸움의 길에 내댄 목숨인데 두려울게 뭐 있겠나요!〉

우리 어머님은 끝내 그 소녀를 구원해냈고 불같이 뜨거운 그 정으로 마을사람들을 이끌어 혁명조직들을 더욱 강화해나가시였다고 하셨어.》

마침 길거리는 조용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쯤 사색깊은 걸음을 옮기시다가 더욱 진중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그 정으로 보면 우리 아버님께서도 같으시였어. 아버님께서 초기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때 길림에서 있은 일이였는데… 길림시안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상영도중에 갑자기 불이 일어났댔다는거야. 새로 나온 영화인지라 관람자들이 초만원을 이루었는데 세찬 불길과 함께 연기가 영화관을 삼켜버리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저마다 먼저 뛰여나가겠다고 유리창을 깬다 출입문을 부신다 아우성이였대.

그런데 일대 수라장으로 변한 영화관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채 불길속에 갇혀버린 두 소년이 있었다는거야.

어린 소년들이 절망과 공포에 질려 째지는듯 한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구원을 청했으나 누구도 귀조차 기울이지 않았대.

모두가 사색이 되여 무작정 밖으로만 밀려나오고있을 때 그 사람들을 헤치면서 불길속으로 뛰여들어가는 한 청년이 있었다는구나. 그분이 바로 아버지원수님이시였어!… 이 이야기도 우리 어머님께서 들려주신거다.》

어느 학교 녀학생들인지 《옥이야!》, 《오!》, 《빨리 와!》, 《응, 같이 가.》 하고 서로 다정히 찾고부르며 정답게 앞서가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정겨운 미소를 보내시다가 다시금 침착하게 이으시였다.

《언제인가 〈강계아저씨〉, 최현동지말이다. 항일혁명투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가 사령관동지를 처음 만나뵈왔을 때 대뜸 반하게 된건 물론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혁명로선에 격동된데도 있지만 장군님의 그 인품과 인격, 인정에 확 끌렸던것이라고 한적이 있었다.

사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대원들과 인민들, 아동단원들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고 사랑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어. 마안산에서 다 죽게 되였던 아동단원들을 품에 안아 소년중대까지 무으신 이야기며 〈민생단〉혐의자들의 문서보따리를 깡그리 불태워버린 이야기를 들을 땐 나도 눈물이 났댔어. 그날 림춘추동지도 뜨겁게 말하더구나. 자기도 그랬지만 누구나 수령님을 만나뵈오면 우선 그 인간적인 정에 확 끌리게 된다고 말이야. 저이상 없는듯이 코대를 높이던 사람들도 인차 무릎을 꿇군 했다고.…

난 그날 투사아저씨들의 그 말을 새기면서 사람은 우선 인정이 뜨거워야 한다는걸 더 깊이 깨달았어. 인정이 없는 사람은 큰일을 못해. 아무런 일도… 이건 또 하나의 진리라고 봐!》

학급반장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떠졌다. 잘못 생각했던 자책에서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김정일동지께서 어떻게 되여 동무들을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시게 됐는가 하는 목메이는 깨도에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가까운 곳에 청량음료매대가 있었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매대앞으로 가시였다.

날이 무더워 얼음과자를 사시려는구나 하고 생각한 학급반장은 얼른 자기 주머니의 돈부터 꺼내들었다.

한데 자신의 돈으로 사겠다고 밀막으시리라는 생각에 좀 덤비면서 앞으로 나서던 학급반장은 내심 고개를 기웃했다. 자신께서 가지고있는 얼마 안되는 돈을 꺼내드시였던 김정일동지께서 마침이라는듯 학급반장의 돈까지 받아가지고 여러개의 얼음과자를 사시였던것이다.

아무리 더운 날이래도 둘이서 그 얼음과자를 다 먹으랴 하고 의아해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이걸 최동무한테 갖다주자. 아직 열이 안 떨어졌는데…》

학급반장은 얼굴이 활딱 붉어졌다.

지금까지 무슨 말씀을 들었던가? 무엇에 목이 메였던가? 그런데도 제 갈증을 달랠 생각부터 먼저 했단 말인가?!

그는 너무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있다가 변명처럼 한마디했다.

《글쎄… 그러면 좋겠는데… 이제 그 집에까지 가느라면 다 녹아버리지 않을가?》

김정일동지께서도 일순 딱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러나 이내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하여튼 가보자!》

학급반장은 잘못이라도 씻으련듯 제꺽 응해나섰다.

《좋아, 가보자. 힘껏 뛰여가자.》

학급반장은 물론 김정일동지의 온몸도 땀으로 화락하니 젖었다.

있는 힘껏 달렸으나 최동무네 집이 바라보이는 골목어구에까지 갔을 때는 손에 들고있던 얼음과자는 다 녹아내리고 줌안에는 야속스럽게도 빈 나무꼬치만이 쥐여져있었다.

학급반장은 너무 딱해서 입만 다셨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무척 아쉬워하시였다. 빈 나무꼬치를 들여다보시다가 혼자 말씀처럼 외우시였다.

《할수 없구나, 미안하게 됐다.》

그 말씀에 학급반장은 펄쩍 뛰였다.

《아니, 무슨 말을… 오히려 내가…》

자기때문에 얼음과자가 다 녹기라도 한것 같은 심정이기도 했었다.

《됐어, 돌아가자.》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발길을 돌리시였다.

그런데 분명 최동무네 집앞에까지 갔다가 꼭같이 함께 돌아왔는데 시원한 얼음과자를 먹고 열이 뚝 떨어졌다는것은 무슨 말인가?!…

동무들과 함께 학급반장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박문규가 손벽을 딱 치며 감탄을 터쳤다.

《일은 명백하구나 뭐. 정일동무가 너와 헤여진 후 댁에 가서 보온통을 가지고나와 얼음과자를 다시 사가지고 갔댔구나!》

교실안은 뜨거운 격정으로 설레였다.

격정의 설레임속에 들떠오른 그들은 그때 교실뒤에 조용히 들어와 미소를 짓고계시는 김정일동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다.…

주영화는 언제 수업이 끝났는지도 몰랐다.

휴식종이 울리고 수업을 끝내겠다는 선생님의 말과 함께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설 때에야 정신을 펄쩍 차렸다.

최원석도 황황히 자리를 차듯 하며 일어섰다.

주영화는 김정일동지께로 눈길이 갔다.

그이께서 무엇인가 뜻있게 마주보시는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오늘수업이 끝나면 만사를 제쳐놓고 최원석의 집부터 찾아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 ×


하루일과가 끝나기 바쁘게 최원석의 집으로 향한 주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데가 없었다.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고생하댔는데 병원에 입원을 한건 아닐가?

혹시 원석의 어머니도 사회적지원사업이 바빠서?…

공장, 기업소는 물론 동, 인민반들에서도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건설에 이바지하자고 떨쳐나서는 때가 아닌가.

하물며 공화국영웅의 안해로서야!

아니,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누구보다 어머니가 먼저 알아보았을것이고 제일처럼 기뻐서 자랑을 했을게 아닌가.

더우기 리해할수 없는것은 만약 가정생활에서나 개체생활에서 그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얼굴에 그늘이 지든지 말이 없어지든지 무슨 변화가 생겼을텐데 그런 티는 전혀 찾아볼수가 없는 최원석이였다.

변화라면 오히려 더 명랑하고 유쾌해하고 락천적인것이였다.

문득 김정일동지께서 사연을 다 아시고있는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급반시절 최동무네 집 병문안을 가시였던것처럼 먼저 가정방문까지 다 하고 슬며시 지적을 해주신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에 주춤 멎어서기까지 했다.

다시금 동무들을 위해 바치시는 그이의 진정에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그런데 난 뭐야?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초조해나기도 했다.

급한 걸음으로 달리다싶이 하여 최원석의 집앞에 이른 그는 예나 다름없이 집주인은 찾지도 않고 대문을 열며 마당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순간 그는 눈이 확 커졌다.

어느때 와서 보아도 티검불 하나 없이 깨끗하던 마당이 언제 비자루질을 했던가싶게 종이장이며 나무잎 등 각종 오물들로 너저분했던것이다.

겨울난 터밭은 절반가량 삽으로 뚜져놓고는 일하던 그대로 삽을 꾹 박아놓은채로였고 부엌문앞의 수동뽐프수도칸에는 커다란 버치에 묵은 빨래감들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주영화는 한순간 집을 헛갈려 들어왔는가 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최원석이 방문을 열며 반가이 마주 나왔다.

《왔어? 왜 그러구 서있어?》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말이였건만 덜퉁스럽기 그지없었다.

주영화도 탓하지는 않았으나 자기 역시 퉁명스럽게 핀잔의 말을 한마디 던졌다.

《음, 이게 뭐야요. 이사가려는 집처럼!》

《오, 그거?… 요사이 내 좀 바빠서…》

최원석은 뒤머리를 썩썩 긁었다.

《음―》

주영화는 부러 더 입술을 비쭉하고나서 제잡담 부엌문을 열었다.

녀성의 본능에서였다.

예측한대로 부엌안은 더 억이 막힐 지경이였다.

몇번이나 석탄불을 죽였다 살렸는지 부엌바닥은 온통 석탄가루범벅이였고 가마뚜껑에는 먼지가 뽀얗게 있었다.

가시물버치에는 몇끼를 먹고난 빈 식기들이 그득 담겨져있었다.

주영화는 부엌안에 들어서며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니병 더 하시나?》

《병?》

최원석은 그건 무슨 말이냐는듯 눈을 치떴다.

주영화도 의아해서 마주보며 물었다.

《그럼 입원하신게 아니예요?》

최원석은 그제서야 말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었다.

《어머닌 고향에 갔어, 댓새전에. 이모네 딸 결혼식이 있어서. 청명날이 끼워서 할아버지묘랑 조상들의 묘도 돌아보고 온댔어. 떠날 때 걱정하는걸 내가 걱정 꽝 놓구 갔다오라구 했지 뭐. 쌀이랑 다 있는데 내 손으로 끓여야 못 먹겠어?》

《오, 그랬댔구나.》

주영화는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비록 수업시간에 졸고 지각을 하는 일까지 있긴 했어도 제 혼자 며칠동안을 자체로 생활했다는것이 용해보이기도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이런 사정을 알고 친절히 귀띔을 해주신것 같아 고마움이 들었다.

동무도 참, 사정이 그렇다면 좀 도와달라고 할게지… 하는 생각에 부러 또 한마디 핀잔투로 이었다.

《그래두 이게 뭐야요. 설겆이랑 청소야 제대로 하구 살아야지.》

《시간이 어디 있어?》

《시간? 피― 그건 다 구실이구 변명이야요. 녀자들은 뭐 시간이 따로 있어서 아침저녁 밥을 짓고 빨래도 하나? 그런 사고라면 남자들을 다 게으름뱅이라고 해야 해.》

《뭐뭐 게으름뱅이?!》

《됐어요, 됐어. 어서 가서 책이나 읽어요. 시간을 아끼는 〈물리학자선생님〉!》

주영화는 사이문너머로 보이는, 책상우에 쌓인 책무지를 눈으로 가리키며 찬장옆에 걸어놓은 하얀 행주치마를 벗겨들었다.

물바께쯔의 맑은 물을 가시물버치에 쏟아붓고나서 걸싸게 빈식기들을 씻어냈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니한테서 부엌일을 착실히 배운 주영화의 일솜씨는 빠르고 섬세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딸자식을 키워 남의 집에 시집을 보내려면 밥짓는 방법, 옷손질하는 재간, 시부모와 시켠사람들한테 지켜야 할 례의범절은 꼭 배워주어야 한다는것을 법도처럼 여기면서 영화를 어릴 때부터 엄하게 닥달질했다.

주영화의 시까스르는 비양조에 시뜻해서 책상앞으로 물러가긴 했지만 최원석은 머리속에 글줄들이 들어갈리 만무했다. 책을 읽을 생각보다도 덜퉁한 자기의 생활반영에 얼굴이 뜨끔뜨끔해서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갔던 그였다.

부엌설겆이에 이어 바닥청소까지 말끔히 끝낸 주영화는 앞치마차림 그대로 수도칸으로 나앉아 빨래를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한걸 알면 정일동무도 기뻐하겠지 하는 생각에 더욱 성수가 났다. 무슨 일이든 동무를 도와주었다는것을 알면 그리도 기뻐하는 그이이시였다.

최원석도 더는 피해앉아만 있을수가 없어 비자루를 찾아들고 마당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집안팎이 한결 깨끗하고 환해지자 기분이 둥 떴다. 하긴 영화와 함께 하는 일이 아닌가. 집안살림을 되는대로 해온것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당 구석구석까지 빠짐없이 다 손질하고나서는 두손을 썩썩 비비며 터밭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마저 손질하겠다고 하는것을 걱정말라고, 어른이 다된 아들이 있는데 별걱정 다한다고 큰소리를 치며 등을 떠밀어보냈던 원석이였다.

어머니가 박아놓은대로 있던 삽자루를 잡자 진짜어른처럼 힘이 용솟음쳐 겨울난 땅을 푹푹 파서 뒤엎어나갔다.

영화가 그 모습을 보고 상글상글 웃음을 날리였다.

그 웃음발은 원석으로 하여금 집채같은 바위돌이라도 닁큼 뽑아낼것같은 힘이 더욱 북받치게 했다.

손바닥만 한 터밭을 뚜지는것은 원석에게 너무도 헐한 일이였다.

대여섯줄의 이랑까지 보기 좋게 지어놓았을 때도 주영화는 아직 빨래를 다 끝내지 못했다.

원석이 별로 땀을 흘리지 않았건만 그가 터밭에서 나오자 영화는 기다리기라도 했던듯이 냉큼 일어나 빨래줄에 걸려있던 세면수건을 벗겨 내밀었다.

원석은 히죽이 웃으면서 스스럼없이 받아 얼굴을 문질렀다.

흐뭇해진 마음을 안고 토방에 걸터앉아 빨래하는 주영화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것을 느낀 주영화는 더욱 다소곳한 자세로 부지런히 방치질을 했다.

고마움이 북받친 최원석은 무엇이든지 다 솔직해지고싶었다.

무슨 말이든 하고싶었으나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괜히 목덜미를 문지르다가 불쑥 흘리듯이 한마디 했다.

《난 열번 죽었다 패두 안되겠어.》

주영화는 무슨 말인가 하여 고개만 살짝 돌렸다.

최원석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문규가 얘기하는데 말이야. 정일동무가 인민학교때부터 집에서뿐아니라 내각사무국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는데… 야, 난 처음 거짓말인가 했댔어. 글쎄 정일동무가 그 도서실에 3만부정도의 도서와 잡지들이 있는데 그 책을 다 보자면 얼마나 걸려야 하는가고 도서실성원들한테 물었다나. 한 도서원이 세계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다는 유럽의 소문난 학자가 40년동안에 겨우 2천권의 책을 보았다는 력사자료가 있다고 하면서 자기네 도서실의 책을 다 보자면 일생을 바쳐도 모자랄것이라고 했다는거야. 그러자 정일동무는 그 도서실의 책을 꼭 다 보겠다고 했다는데…》

주영화가 방치질을 멈추며 물었다.

《그럼 정일동무가 지금도 거기 가서 책을 읽는다는거예요?》

최원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했다.

《사실이란데… 문규의 말이 언제인가 자기도 함께 갔던적이 있는데 도서실사람들은 정일동무에게 아예 서고를 통채로 내맡겼다는거야. 정일동문 자기가 보는 책은 꼭꼭 도서대출대장에 적어놓군 하는데… 도서원들의 말이 그 대출대장이자 그대로 자기네 도서실의 도서목록과 같다고 하더라는거야.

아버지원수님의 로작들과 맑스의 〈자본론〉, 〈레닌선집〉을 비롯해서 선행고전가들의 저서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우리 나라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발행된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동식물사전,… 심지어 닭기르기와 음식만드는데 이르기까지 없는 제목이 없더래.》

《그랬댔구나.》

주영화는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김정일동지의 그 놀라운 지식과 다면박식!…

하면서도 주영화는 놀라움과 의혹만은 감추지 못했다.

《한데… 어느 시간에 그렇게 많은 책을 계속 읽을가?!》

최원석은 제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야. 정일동무의 책상우 유리밑에 어떤 글이 끼워져있는지 알아? 〈정열, 그것은 위대한 창조의 원천이다.〉, 문규가 직접 보았다는거야.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자고 했는데… 에, 에―》

최원석은 손사래를 치고나서 솔직하게 실토했다.

정일동무만큼은 못해도 매일 500페지쯤은 해보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어림도 없어. 300페지도 힘들어. 정일동무 책읽는 방법은 명백히 우리하군 다른것 같애. 참 생각나? 지난해 천성이냐 노력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던 일 말이야.》

《응, 생각나요. 이제 보니 그때 정일동무가 한 말이 다 그런 뜻에서였어요. 리승기선생과 계응상선생의 그 학구열에 대해서 한 말이랑 다…》

주영화는 새삼스럽게 집안팎을 둘러보았다. 마당 한번 쓸지 못하고 독서열에 들떠있었을 최원석이 리해됐던것이다.

그는 돌연히 더 힘있게 방치질을 해댔다.

김정일동지를 따라배우려고 남모르게 열성을 내는 최원석이 미더웁고 돋보이기까지 했다.

담너머 국립연극극장앞을 꿰질러나가는 도로로 사람들이 밀려왔다.

연극 《리순신장군》 낮공연이 끝난 모양이였다.

태반이 늙은이들과 학생들이였다.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네댓명의 녀학생들속에서 장운영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요즘 공연하는 옛 전설극도 다섯번은 더 보았다는 그였다. 다른 녀학생들은 허리를 꺾으며 웃기도 하고 어깨팍을 쥐여박기도 하면서 유쾌하게 떠들어댔지만 장운영은 제 본태대로 의젓하게 조용히 걸었다.

그들이 집앞을 썩 지나갔을 때 최원석이 나직이 물었다.

《저 운영동무하고 종팔이사이가 점점 더 이상해지지 않아?》

영화는 못 들은척 얼마간 사이를 두었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운영동무가 속상해해요. 전 다른 생각 안하는데 종팔동문 마치도 제 동생대하듯 한다는거야요. 부모들관계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다구… 전번날 룡철동무와 종팔동무가 저기… 만수대숲속에서 싸울번 했던 날 있잖아요. 운영동무가 좀 좋지 않게 말해줬다나 봐요.》

《뭐랬게?》

《괜히 트집잡을내기들 하다나니까 쓸데없는 말까지 하게 되지 않았냐구 말이예요.》

최원석이 성을 왈칵 내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쓸데없는 말? 그게 어디 쓸데없다는 말로 때릴거야? 룡철의 말이 백번 옳지 뭐야. 반동소리!… 정일동무도 초급단체위원장한테 단단히 일렀다고 하지 않아. 조립식건설은 철저히 우리 식의 주체적인 건설방법이라구. 아버지원수님께서 당과 국가의 중요회의들에서 여러차례 교시하시였다고! 그러구보면 운영동무한테두 문제가 있는것 같애. 그 동무 요새 영화 너와 자꾸 가까와지려 하는것 같은데… 진심으로 친한다면 그야 물론 좋은 일이지, 하지만 동무도 주의해!》

《안할 걱정!… 나도 다 들었어요. 정일동무가 그 문제를 초급단체위원모임에서 심중히 토의하도록 했다는 말도. 한데 종팔동무 정말 문제야. 자체반성을 성실하게 할 대신에 더 뻣뻣해지구. 제편에서 오히려 룡철동무에게 싸움을 걸어온것도 그래서지 뭐. 아버지가 부상이면 단가? 교무부장선생님 믿고 그런다는데… 그래서 교장선생님이랑 우리 선생님과의 관계도 점점 더 좋지 않아진다는거야요.

운영인 아버지들을 생각해서라도 정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거야요. 어제도 막 울상이 되였댔어요.》

그때 널대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우편통신원어머니가 들어섰다.

《웬 새각시가 와서 빨래를 하는가 했더니 19인민반에서 사는 녀학생이구만.》

성미가 서글서글한 통신원어머니는 뜰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롱말부터 던졌다.

《아이참, 어머니두.》

주영화는 얼굴을 발깃하게 붉히며 인사를 했다.

통신원어머니는 마당안을 둘러보며 더우기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구, 이거 어머니맞을 준비를 다해놨구만. 좋아하겠다.… 자, 받아라. 어머니가 보내는 전보다. 오늘 저녁차로 온다는구나.》

《오늘 저녁차로요?!》

최원석은 껑충 뛰다싶이 하며 전보를 받아들었다.

통신원어머니가 돌아서나가자 주영화가 물묻은 손을 앞치마에 씻으며 다가섰다.

《정말 오늘 저녁이예요?》

《정말이야. 자, 봐.》

저녁차가 도착할 시간은 아직 한시간 남짓하였다.

그들은 서둘러 젖은 옷가지들을 빨래줄에 널어놓고 평양역으로 향했다.

최원석의 어머니라면 응당 같이 마중해야 하는것처럼 스스럼없이 따라나서는 주영화였다.

그들은 다정히 평양역으로 향하는 자기들을 장대재 오솔길 풀숲에서 장운영이 부러운 눈길로 보고있는줄은 몰랐다.

연극 《리순신장군》은 이미 두번씩이나 보아서 별로 다시 보고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마음이 뒤숭숭하고 산란하여 극장으로 갔던 그였는데 동무들과 헤여진 다음에도 여전히 속이 개운치 않아 혼자서 조용히 나무숲속으로 올라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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