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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3 장


1


홍종팔은 만수대둔덕의 울창한 나무숲속을 성이 나서 왔다갔다 거닐고있었다.

머리우에서는 종달새와 어치, 티티새, 찌르레기들이 우짖고 또 한해 겨울을 이겨낸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대지의 푸근푸근한 땅겉면에서는 온갖 생명체들이 기지개를 한껏 켜며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였다.

홍종팔이 가슴을 풍구질이라도 하듯이 풀떡이며 씨엉씨엉 거니는 발밑의 노란 잔디밭에서도 야들야들한 새 잔디잎들이 겨끔내기로 자태를 드러내고있었다.

얼굴이 불통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그의 발밑에서는 금시 바깥세상바람을 쏘이기 시작한 새파란 잔디잎들이 사정없이 짓뭉개졌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 않고 이 나무, 저 나무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더는 참을수가 없어 꽉 부르쥔 주먹으로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밑둥을 힘껏 들이쳤다.

기둥감같은 나무가 깜짝 놀라 부르르 떠는가싶었다.

하긴 이제는 열일곱살 혈기왕성한 청년의 주먹이 아닌가.

그는 지금 류룡철을 기다리고있었다.

(이 자식이 비겁하게 겁을 먹은게 아니야?)

침을 퉤 내뱉으며 나무숲아래 서문동쪽을 살펴보았다. 나타만 나면 당장 달려들어 면상을 보기 좋게 후려갈기던지 어깨잡이 한판으로 허궁들어 멨다꽂아놓고 두발로 속이 후련하게 냅다 밟아라도 놓고싶었다.

그가 그렇게 성이 독같이 오른것은 오늘 점심시간에 벌어진 일로 해서였다.

지금 평양에서는 1958년을 건설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오는 해로 선포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7천세대분의 건설자금과 자재로 2만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기 위한 혁신창조의 불바람이 세차게 일고있었다.

그 기적적인 창조와 혁신의 불길속에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래우는것은 건설에서 조립식방법의 대담한 도입이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경험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었는데 올해 봄철에 들어서면서는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14분이면 살림집 한세대가 일떠선다는것이였다.

류룡철이 일요일에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빌려가지고 중구역 경림동과 동평양지구의 살림집건설장에 나가 직접 시간을 재여보았다고 했지만 원체가 너들거리기 잘하고 희떱게 놀아대는 성미인지라 적지 않은 동무들이 씁쓸히 웃어넘기였다.

진심이 짓밟히기라도 하는 느낌에 류룡철은 속이 욱 치받치는데 마침 박문규가 나서면서 너희들은 방송도 안 듣고 신문도 보지 않는가, 지금 신문과 방송에 미처 그 소식을 싣지 못할 형편이라는데 고급반학생이라면 사회생활에도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비호해나섰다.

주영화도 어지간히 흥분된 어조로 장운영을 바라보며 이것은 력사적견지에서도 놓치지 말고 꼭 고찰해볼만 한 일이 아니냐고 슬쩍 그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이즈음 눈에 뜨이게 더 가까와지는 그들이였다.

순간 홍종팔은 속이 부그그 괴여올랐다.

지난 가을 학교주변의 기념식수가 있은 다음부터 더더욱 류룡철이네한테 반감이 생기군 하는 그였다.

한것은 그날을 계기로 민청회의에서 집단의 원칙적단합에 관심이 적으며 특히 쓸데없는 자존심과 교만성으로 하여 동무들과의 관계를 순편치 않게 한다는 문제로 얼굴 뜨끔하게 비판을 받았기때문이였다.

물론 그는 그것이 리용이 주동적으로 문제를 제기한것으로서 류룡철이나 박문규가 민청조직에 상정시켰다고는 믿지 않았다. 또 회의에서 지적되고 비판된 문제들이 잘못되였거나 전혀 접수하지 못할 문제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단지 제기된 문제의 태반이 룡철이네와 관계된다는 그 사실 하나로 하여 자존심이 깎이고 지어 억울한감까지 느껴졌다.

새 민청위원장선생이 부임되여온지 얼마 안있어 받게 된 첫 비판이기도 했지만 더우기 참을수 없는것은 장운영이까지 확연히 자기를 경원시하면서 자꾸만 멀어지려고 하는 느낌이였다.

오늘 주영화가 력사적견지요 뭐요 하며 그를 저들의 주장에 끌어들이려 한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힘들게 기회를 마련해서 승용차에 태워 대성산구경까지 시켜줬는데 그렇듯 남다르게 바치는 진정과 우정을 배반할수 있는가?

때로는 장운영이 설마 그러랴 하고 아량있게 여겼지만 어쨌든 마음속에 서운한 그늘이 지면서 까닭모르게 불안스러워지는가 하면 황량한 들판에 혼자 외롭게 나선것처럼 허전해지기도 하고 마가을의 비소리를 들을 때마냥 쓸쓸해진적도 있었다.

그렇듯 나날이 더해지는 섭섭함과 불쾌감, 고립무원한듯 한 허전함으로 하여 속이 요글요글하던 참이라 그는 제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반박의 말을 한마디 던졌다.

《글쎄 물론 조립식건설방법이 속도야 빠를수 있지. 문제는 그 질이라고 봐. 더우기 살림집은 거기서 살게 될 주민들의 생명안전과 직접 관계되는 심중한 문제야. 14분동안에 한세대씩 세워서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경우 그 안전성을 담보할수 있대?》

《지진?!》

최원석이 놀라기라도 한듯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이어 그 눈길을 류룡철과 박문규한테로 돌렸다.

홍종팔은 얼굴이 화끈했다. 아직 산골때도 다 벗지 못한 주제에 룡철이네를 싸고돌려는것이 혐오스럽도록 쓰겁고 아니꼬왔던것이다.

(너 역시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야!)

한마디 콱 모욕이라도 주려는데 몇명의 학생들이 종팔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수군했다.

그러자 종팔은 보란듯이 목을 쑥 빼들며 룡철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 말은 그의 견해이기에 앞서 언제인가 집에 찾아왔던 건설성의 한 책임일군이 아버지와 술상에 마주앉아 하는 소리를 귀동냥해서 들은것으로서 그로서는 어지간히 배짱이 있었던것이였다.

한데 그 말에 벼락이 떨어질줄이야!

류룡철이 주먹이라도 휘두를듯이 자리를 차며 벌떡 일어났다.

《뭐야? 너 다시 말해봐!》

기상이 너무도 험악해서 종팔은 물론 학급동무들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류룡철은 진짜 주먹을 내두르며 격분을 터쳤다.

《너 어디서 그따위 반동말 들었어? 말해봐!》

와뜰 놀란 홍종팔도 자리에서 튕겨나며 맞받아 웨쳤다.

《뭐 뭐, 반동?!… 야, 너 말 다했니?》

《다했다. 뭐? 건설의 질이 어쩌구 어쨌어? 그게 작년에 다 숙청처벌된 종파분자들이 줴쳐댔다는 소리와 같구같지 않아? 너 정일동무 말 못 들었어?》

모두의 눈길이 김정일동지의 자리로 쏠렸다. 그이께서는 아직 교실에 들어오지 않으시였다.

뜻밖에 터져나온 종파라는 말에 교실안은 굳어지는듯싶었다. 긴장해서 출입문밖을 살피는 학생도 있었다.

류룡철은 진짜 반동이라도 잡아낸듯 펄펄 뛰였다.

《야, 정일동무도 말했지? 아버지원수님께서 건설에서 조립식을 반대하는건 나쁜 놈들이 우리가 사회주의를 빨리 건설하지 못하게 하려고 음으로양으로 책동하는짓이라고 교시하시였다고 한 말말이야. 어떤 놈은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밤사이에 쑥쑥 올라가는 조립식살림집들을 바라보면서 〈저놈의 집이 콱 무너져야 할텐데.〉 하고 배를 앓군 했다던데 방금 네가 한 말이 그런 놈들이 날마다 배가 쏴서 했다는 말과 같지 않아?… 뭐가 달라?》

박문규가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고개를 힘있게 끄덕여주었다.

강연회날이 생각났던것이다. 순간의 실책을 놓고 얼마나 아프게 가슴을 치며 자기반성을 했던가!

홍종팔은 낯이 시꺼멓게 죽었다.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처럼 어마어마한 말을 옮겼던가 하는 후회뿐이였다.

이미 쏟아놓은 물이라 다시 주어담을수도 없지 않는가.

이 말이 선생님들한테 알려지고 교장선생님이나 민청위원장선생이 그런 말을 어디서 언제 누구한테서 들었는가 따지고들면 어떻게 할가 하는 걱정에 눈앞이 아찔했다.

정말이지 이 불똥이 아버지한테로 튀는 경우 아버지는 또 어떻게 될가 하고 생각할수록 룡철이를 다시는 그런 입질을 못하게 혀를 쭉 빼물도록 두들겨패놓고만싶었다.

오후 두시간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다.

속에서는 불덩이같은것이 끓었지만 일이 더 크게 번져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혀를 씹으며 참았다.

용케도 다른 내색을 않고 하루생활총화까지 한 다음 각자가 집으로 돌아갈 때 류룡철의 옆으로 다가서며 누구도 듣지 못하게 귀속말로 단호히 일렀다.

《만수대둔덕 군사놀이하던데서 좀 만나자. 제일 큰 상수리나무밑에서. 비겁하게 물러설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그는 정말이지 그 말을 하면서 그의 귀퉁이라도 한대 답새기지 않은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는 저도모르게 이쪽저쪽 주먹을 손바닥으로 꾹꾹 감싸문지르며 나무숲사이로 트인 둔덕아래 오솔길을 살폈다.

생각이 복잡했다.

그한테는 지금 두가닥갈래의 생각이 엇섞여 뒤넘치고있었다.

하나는 류룡철을 만나 누구도 보지도 듣지도 않는 조용한 곳에서 잘못을 빌고 용서를 받는것이요, 다른 하나는 완력으로 다시는 그따위 뾰족한 입질을 하지 못하게 자물쇠를 든든히 채워놓는것이였다.

첫 안은 소문도 안 내고 모든것을 무난히 넘길수 있는 반면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여서 도무지 타협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류룡철은 물론 박문규와 최원석이는 어떻게 나올것이며 그 소문이 퍼지게 되면 온 학교 학생들앞에서도 그렇고 더우기 장운영앞에서는 무슨 꼴이 되겠는가.

(그래, 사내는 사내다와야 하는거야.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결투라는것도 한다잖아.)

기다리는 류룡철은 그로부터도 얼마쯤 더 있다가야 제 성미대로 느릿느릿 나타났다.

너무도 태연한 그의 자태를 일별하자 홍종팔은 그만 속이 주춤해졌다. 순간적으로 류룡철이 지난해 여름방학때부터 집마당구석에 모래자루를 매달아놓고 권투훈련을 하는가 하면 시체육구락부에 다니는 옆집형님한테서 유술과 레스링의 기초훈련을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던것이 생각난것이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역시 이미 쏟아놓은 물이였다.

그러자 그때부터는 오히려 제편에서 더 속이 떨렸는데 그것을 벌써 눈치채기라도 한듯 류룡철은 피가 솟구치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아주 태연자약하고 자신만만하게 마주 걸어올라왔다.

홍종팔은 그만 온 얼굴이, 온몸이 불길로 확확 타번지는것 같았다.

그것이 참을수 없는 증오인지 모욕감인지는 그자신도 몰랐다.

다시금 터져라고 입술을 짓물었는데 량옆으로 부르쥔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류룡철의 눈길이 얼핏 그의 주먹을 훑었다. 그러자 그는 버릇대로 씩 웃었는데 어처구니가 없어 하는것 같기도 하고 로골적으로 비웃는것 같기도 했다.

홍종팔은 제가 왕해서 류룡철을 누구도 보지 않는 외진 숲속으로 불러내긴 했지만 이 《전쟁》 역시 자기가 진 《싸움》이라는 직감에 당황해났다.

허나 그는 아직 그것이 무엇때문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특히 정신력에서의 패전이라는것은 더우기 알수가 없었다.

류룡철은 부러 씨물씨물 롱말을 던졌다.

《이거 오래간만에 올라오니 숲이 몰라보게 무성한것 같구나. 정일동무의 묘한 작전으로 널 생포해왔던 일이 생각나?》

유치원과 인민학교시절의 일이였다.

홍종팔은 얼굴이 타다못해 재빛으로 변했다. 눈에서는 불줄기가 그냥 쏟아져나가는것 같았다.

류룡철이 씨물씨물 웃으며 롱담을 하는것 같았지만 그 롱말밑에 깔린 뜻은 얼마나 고약한가.

류룡철의 눈빛도 여간 날카롭지 않았다.

결국 둘사이에는 말없는 눈싸움이 붙은셈이였다.

눈싸움도 보통 격렬한 싸움이 아니라고 했던가?

과장된것인지는 모르나 정전담판장에서 량측간에 눈싸움이 몇시간동안이나 계속됐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눈싸움에서는 속대가 약한측이 먼저 물러앉기마련이다. 속대란 역시 신념과 의지, 배짱이며 그 기초는 정신력이다.

홍종팔의 눈빛이 종시 먼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면서도 자존심만은 홍두깨처럼 치밀어 분별을 잃었다.

하여 저도모르게 가슴우에로 두주먹을 쑥 들어올리며 와락 덤벼들 기세를 보였다.

허나 정작 달려들지는 못했다. 난데없이 아래쪽에서 급하게 웨치는 새된 소리가 울려왔던것이다.

《그만둬요. 싸우지 말아요!》

장운영이 풀숲의 오솔길로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올라왔다. 그뒤로 박문규와 최원석, 주영화가 헉헉 가쁜숨을 몰아쉬며 따라올라왔다.

홍종팔은 물론 류룡철도 의아하여 동무들을 바라보았다.

먼저 올라온 장운영이 무작정 둘사이에 끼여들며 질책했다.

《이게 뭐예요. 부끄럽지 않아요?》

홍종팔과 류룡철은 그저 어안이 벙벙해서 동무들을 둘러보기만 했다. 홍종팔이 누구도 모르게 류룡철을 숲속으로 불러내느라고 했지만 장운영이 어느새 눈치를 채고 제꺽 주영화한테 알렸다는것을 어이 알수 있겠는가.

류룡철이 여유작작해서 너들댔다.

《하, 이거 흥을 다 깨는걸. 너희들도 군사놀이생각이 난거야?》

《피―》

장운영이 어이없어 입을 삐쭉했다.

류룡철은 아랑곳없이 손까지 홱 내리그으며 홍종팔에게 우습강스럽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여, 그만하자. 어른구실을 해야지!》

류룡철이 제 먼저 씽 돌아서며 박문규에게 말했다.

《우린 가자. 너희들은 괜히…》

박문규와 최원석도 으시대듯 류룡철의 뒤를 따랐다.

주영화만은 같은 녀동무인 장운영이 걱정스러워 주춤주춤했으나 깨닫는바가 있어 인차 남동무들의 뒤를 따랐다. 그까지 뒤따라 내려오자 류룡철은 마침 생각난듯이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여, 대동문영화관에서 멋진 영화를 돌린대. 쏘련예술영화.》

그의 동무들은 쏘련예술영화라는 말에 빙긋빙긋 웃었다.

영화관앞에 내붙인 대문짝만 한 영화광고판밑에 《학생들에게는 관람표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글자들을 박아넣은데 대해서는 굳이 상기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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