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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2 장


3


교실안은 물속처럼 조용하였다. 사각사각 글쓰는 소리만이 긴장감을 더한층 자아냈다. 세계사과목시험을 치는중이였다.

하루의 마지막수업이였다. 자기 담당과목에 대한 책임성과 요구성이 높은 세계사선생은 이따금씩 이렇게 수업을 끝내고서는 학습내용을 어느 정도 리해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간단한 문제를 제시하고 시험을 받군 하였다.

오늘은 쏘련에서 사회주의혁명승리의 날은 11월 7일인데 왜 10월혁명이라고 하는가 하는 상식적인 문제를 냈다.

문제를 내면서 선생은 김정일동지께 의미있는 눈길을 보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첫 순간 좀 의아하게 생각하셨으나 인차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며칠전 과외시간에 있은 일이 생각나셨던것이다.

그날 하루공부를 마치고 교실청소까지 끝냈을 때는 몇명밖에 남지 않았었다. 제마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먼저 책가방을 들고 나가려던 류룡철이 교실뒤벽에 새로 내붙인 벽보판앞에서 어물거리더니 히물떡거리기 잘하는 제 성미대로 쏘련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것은 분명 11월달인데 왜 10월혁명이라고 하는가, 벽보에 오자를 낸게 아니냐고 하였다. 류룡철의 말이라면 무작정 반박하려 들군 하는 홍종팔이 제꺽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내뱉았다.

《그거야 음력으로 10월이여서 그런거겠지.》

누구인가가 제꺽 아는체를 했다.

《맞아, 음력!》

《그렇잖구!》

홍종팔은 더욱 으시댔다. 그러자 영민한 박문규가 어느새 책가방속에서 손바닥만 한 년력을 꺼내들고 양력과 음력날자를 계산해보고나서 제꺽 류룡철의 편을 들었다.

《어디 맞니? 음력으로 계산하면 7일이 아니라 19일이야.》

홍종팔은 달아오른 얼굴에 두눈까지 치뜨며 고집했다.

《그거야 올해 년력이 아니냐. 당시 년력을 봐야 해!》

또 한바탕 옥신각신이 일어날판이였다.

조용히 책보를 들고 교실에서 나가려던 김정일동지께서 돌아서시였다. 환하게 미소를 담으시는 그이의 존안에는 언제나와 같이 따스한 인정이 흐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잠시 따뜻한 미소와 영채어린 시선으로 동무들을 둘러보고나서 가까운 책상우에 책보를 놓고 의자에 앉으며 말씀하시였다.

《그건 유럽사람들이 구력으로 부른거야.》

모두들 의아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더욱 밝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쏘련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한 날은 우리가 지금 쓰는 양력으로는 1917년 11월 7일이 옳아. 한데 그때 유럽사람들은 구력을 썼거던. 구력으로는 10월 25일이였어.》

《구력?!》

모두들 김정일동지옆으로 모여섰다.

그이께서는 더욱 따뜻한 음성으로 차근차근 설명하시였다.

음력은 달이 지구주위를 한바퀴도는 시간, 다시말해서 한달을 기준으로 만든 력서이고 양력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한바퀴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1년을 기준으로 하여 만든 력서다.

양력에는 구력과 신력이 있다. 구력을 일명 《율리우스력》이라고 하고 신력은 《그레고리력》이라고도 한다.

유럽에서는 10세기전까지 율리우스력서를 써왔다. 그런데 이 력서에는 1년의 길이가 365.25일 즉 365일 6시간이였다. 지구가 실지 태양주위를 도는 시간은 365.2422일, 정확히 365일 5시간 48분 46초다. 그러니 율리우스력서에서는 1년의 길이가 11분 14초나 길어졌다는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고 책보를 푸시였다.

학습장사이에 련습지로 쓰려고 끼워두었던 하얀 종이장과 연필을 찾아들고 또박또박 수자까지 적어나가며 설명을 계속하시였다.

《이 11분 14초를 400년동안 합하면 3일이라는 날이 나온다는거야. 력서를 정확히 만들려면 400년의 력서길이에서 3일을 덜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겠어. 결국 그 11분 14초의 오차로 하여 16세기 후반기에는 춘분날이 3월 21일이 아니라 3월 11일로 되였다는거지. 한데 문제는 이것이 당시 그리스도교가 지배적이던 유럽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였다는데 있어. 왜냐하면 부활제의 날이 춘분날에 의하여 결정되기때문이였어.》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그이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무들을 다정히 둘러보고나서 계속 이으시였다.

부활제란 예수교에서 이른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봄철에 하는 의식을 말한다. 로마카톨릭교회에서는 춘분후 만월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제날로 정하고 부활제당일에는 여러가지 행사들을 크게 하군 한다. 그런데 춘분날이 3월 21일이 아니라 3월 11일에 오게 되였기때문에 당시 로마법왕 그레고리13세는 력서개혁을 추진시켜 1582년 10월 4일부터 날자를 10일 앞당기게 하였다. 다시말하여 그해 10월 4일은 목요일이였는데 그 다음날인 금요일은 10월 5일이 아니라 10월 15일로 하도록 특령을 발표하였다. 이 새로운 력서를 법왕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이라고 하거나 신력이라고 하였다. 한데 당시 뒤떨어졌던 쏘련은 계속 구력을 써왔고 신력은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 다음 1918년 1월 31일에야 받아들이게 되였다. 그래서 쏘련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 날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신력으로 11월 7일이지만 당시 쏘련에서 쓰던 구력으로는 10월 25일이였고 이로부터 10월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였으며 신력을 쓰게 된 11월 7일을 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한 날로 기념하는것이다.…

학급학생들은 숨소리마저 죽인듯싶었다. 김정일동지의 다면박식하면서도 깊은 지식의 세계도 그렇지만 자신의 그 지식을 하나라도 더 동무들에게 알려주고 친절하게 깨우쳐주시려는 그 따뜻하고도 열정적인 진정에 후더움이 북받쳐올라서였다.

정이란 결코 말로써만 표현되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홍종팔은 얼굴이 벌개서 고개를 돌렸다. 일반상식은 저이상 없다는 우월감에 무작정 룡철이를 눌러버리려고 한 부끄러움에서였다.

해설을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던 학생들이 활짝 열어놓았던 교실뒤쪽의 나들문앞에 교장선생과 담임선생을 비롯하여 몇명의 교원들이 서있는것을 알아보았던것이다. 교실정돈상태를 돌아보던 모양인데 그들속에는 세계사선생도 함께 서있었다.…

력사선생이 왜 그 문제를 오늘의 시험문제로 냈는지를 이미 리해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중심내용만을 요점적으로 간단간단히 적어놓고나서 교실안을 둘러보시였다.

류룡철과 박문규, 홍종팔 등 며칠전 그이의 해설을 들은 동무들은 신바람이 나서 입술까지 감빨아가며 냅다 써나가는데 적지 않은 학생들이 머리를 기웃거리거나 옆의 동무들과 부지런히 속살거리기만 하였다. 예전같으면 《조용하시오.》 하고 엄하게 단속했겠으나 선생은 마음껏 토론도 해보란듯 모른척 하였다. 이따금 김정일동지께로 시선을 돌리군 하였다. 여느날에는 제일먼저 시험지를 내고 조용히 교실에서 나가군 하시였는데 오늘은 누구보다 먼저 써놓고도 일어나려 하지 않으셨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선생이 시험문제를 낼 때부터 생각이 많으시였다.

오늘 력사시간에 배운것은 쏘련에 대한 내용이 기본이 아니였다.

물론 수십여개 나라의 약 20억인구가 말려들어 5 500여만명이 희생됐고 9 000여만명이나 부상을 당했다고 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으로서 쏘련군대와 인민의 반파쑈투쟁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문제는 세계사선생도 그렇지만 학교의 일부 교원들속에서 쏘련이라고 하면 무작정 숭배하려고 하는 경향이였다.

로어과목선생만 봐도 로어시간도 아닌 수업후나 휴식시간 복도에서 만나면 로어로 말하여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할 때가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오히려 대단한 긍지와 자랑처럼 여기고있었다.

하긴 그런 현상은 학교안에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교육부문에서는 쏘련의 《교육뽀예마》라는 책이 그 무슨 학생교육교양의 교본처럼 나도는가 하면 문학예술부문에서도 쏘련문학, 쏘련음악, 쏘련미술을 고창하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박문규와 류룡철을 비롯한 문학 및 연극소조원들속에서도 쩍하면 《슈제트》요, 《그라이막스》요 하는 말을 곧잘 쓰면서 으시대군 하지 않는가.

건설부문에서는 더욱 우심하였다.

지난 6월말에 있은 일만 봐도 그랬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리쪼이는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평양시민들의 살림집건설지구인 동평양오수간선공사장을 찾으시였다.

공사장에서는 1 600여명의 건설자들이 1.8키로메터의 긴 구간에 늘어서서 8메터깊이로 땅을 파고있었다. 너무 깊어서 3단, 4으로 파내려가는데 바닥에서 지하수가 솟아나기때문에 죽탕같은 흙을 퍼올리느라 여간 힘들어하지 않았다.

수령님께서는 억이 막히시였다.

현장기술지도일군이란 사람에게 왜 이렇게 깊이 파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사람은 아무 꺼림없이 우에서 그렇게 하라고 설계가 비준되여 내려왔으며 쏘련책에도 그렇게 씌여져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격정을 누르시면서 쏘련에서는 씨비리지방을 표준으로 하기때문에 그렇게 깊이 파지만 우리 평양땅은 기껏해야 1메터, 제일 춥다고 하는 중강진에서도 1.5메터밖에 얼지 않는다고, 그러니 이 오수간선은 극상해서 3메터정도 파면 충분하지 않겠는가고 일깨워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날 김정일동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신 후 신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난 오늘 사대주의와 교조주의가 사람들을 얼마나 머저리로 만드는가를 또 한번 새삼스럽게 느꼈다. 오수간선공사장뿐이 아니구나. 건설부문의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표준벽체두께를 우리 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도록 〈결정서〉를 내려보내는가 하면 학교를 건설하면서 교사앞에 좋은 공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산탁을 깎아내면서 덮어놓고 교사뒤에 운동장을 닦으라고 내리먹이고있거던.… 언제인가는 또 지방의 어느 공장에 가보니 로동자들의 살림집들은 거의 모두 공장주변에 있어서 아침저녁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데 공장안에다 돈을 굉장히 많이 들여 출퇴근용자전거보관고를 짓고있더란 말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세를 정중히 하며 말씀올리시였다.

《우리 학교의 음악선생님은 재간도 있고 음악실력도 높은데 피아노앞에 앉으면 슈벨트의 〈들장미〉나 챠이꼽스끼의 피아노곡 〈계절의 노래〉 같은것만 타군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번은 동무들과 함께 음악실에 들어갔다가 우리 나라 노래 〈산으로 바다로 가자〉를 타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곡을 타자 학생들은 저마다 흥이 나서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도 가슴이 벅차하면서 같이 불렀는데 피아노를 두번씩이나 반복해 탔습니다.

노래를 다 부르고났을 때 제가 제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정말 우리 나라의 훌륭한 명곡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훌륭한 명곡들이 많다. 오늘 선생님이 타는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나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우리 나라의 자연은 유럽의 자연에 비할수없이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옛날 다른 나라의 한 시인이 조선의 금강산을 한번 다녀갔으면 죽어도 원이 없다고 하였겠는가 했더니 가책을 크게 느꼈습니다.》

《옳다. 잘했다.》

수령님께서는 무척 기쁘고 미더운 시선을 아드님에게 보내시고나서 좀 높은 어조로 이으시였다.

《며칠전 너의 학교에 나갔던 홍명희부수상이 그 말을 하더라. 그 녀선생이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너의 그 진정어린 깨우쳐줌에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더구나. 학생이 선생을 그렇게 울리는 일이 쉽지 않지! 인간은 본질에 있어서 아름다운게 아니겠냐. 그 아름다움중에 제일 아름다운것을 꼽으라면 나는 정이라고 하고싶다. 숭고하고 깨끗하면서도 불같이 뜨거운 인간의 정… 그것이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령님께서는 잠시 사이를 두셨다가 이어 혼자말씀인듯 나직이 이으시였다.

《지금 문학예술부문에서도 사대주의와 교조주의가 적지 않아. 한데 더 큰 문제는… 어른들은 강한 사상투쟁을 벌려 바로잡아나간다 치고 너희들, 자라나는 새 세대들한테 영향이 미치는것이구나. 백지에 한번 잘못 든 물감은 씻어내기가 몇갑절 더 힘든 법이 아니냐.》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똘스또이요, 숄로호브요 하면서 곧잘 외우군하는 장운영과 홍종팔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학급의 얌전데기로 사랑을 받는 성효정의 곱살한 얼굴도 떠오르시였다. 우리 나라에도 인기를 끌수 있는 리로운 새들이 많은데 먼 남극지방의 펭긴새를 연구하여 생물소조에서 한번 크게 치하를 받으려고 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시였다. 걱정이 크신 아버님의 심정은 리해되였지만 아직은 그 심원한 세계에 만족을 드릴 말씀이 선듯 생각나지 않으셨던것이다. 명백한것은 방금 어른들은 강한 사상투쟁을 벌려서라도 극복해나가겠는데 너희들 자라나는 새 세대들한테 미치고있는 영향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였다.

(정, 진심을 바치는 인간의 정으로는 못해낼 일이 없다!

나는 이 말씀을 나의 모든 생활과 민청사업에, 학습뿐아니라 동무들과의 우정의 기준, 기초로 삼고 모든 정을 다 바치겠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밤 자신의 일기장에 아버님의 그 말씀을 특별히 큰 글체로 힘있게 새겨넣으시였다.…

홍종팔이 시험문제를 다 쓴 모양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가슴을 쭉 펴면서 기지개라도 켤듯이 량쪽팔을 어깨우에로 반쯤 들어올렸다.

이어 교실안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으시대는 눈길로 교실안을 휘둘러보던 그의 눈길이 장운영에게 멎었다.

장운영도 다 쓴 모양 조용히 자기의 시험지를 들여다보고있었다. 홍종팔의 눈길을 느끼면서도 모른체 하는게 분명했다.

이윽하여 그는 여전히 눈길을 착 내리깐채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홍종팔은 부러 늦장을 부리듯 그가 교실에서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천천히 교탁으로 나갔다.

그들을 지켜보기라도 했던듯 류룡철이 의자소리를 삑 내며 일어섰고 뒤따라 박문규도 서두르듯이 따라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핏 선생의 얼굴을 일별하시였다. 승벽을 다투듯 자신있게 시험지를 내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기특해하는 표정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존안을 흐리시였다. 실력이 높아 시험지를 경쟁적으로 빨리 내는 일이야 탓할바 있겠는가. 문제는 무엇에 흥분을 하고 무엇에 만족을 느끼는가 하는것이였다.

아버님께서 어른들은 강한 사상교양과 사상투쟁으로 바로잡고 극복해나가겠는데 그 영향이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미치는것이 문제라고 하시던 말씀이 다시금 되새겨지시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이름할수 없는 무거운 중압감이 가슴에 마치는것을 느끼시였다.

한해전 2월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가 진행되였을 때의 일들이 생각나셨던것이다.


× ×


2월의 봄날이였다.

아버님과 동생, 많은 동무들의 축하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에없이 기분이 좋으시였다.

아버님께서 조국해방의 큰뜻을 품고 압록강을 건느셨던 나이에 이르렀다는 긍지감과 함께 멀지 않아 중학교를 졸업하게 될것이라는 기쁨에서였다.

한데 그처럼 아연할 일이 생길줄이야.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응접실에 가져다놓은 신문들과 통신자료들부터 펼치시였다. 매일매일 신문과 통신자료들을 빠짐없이 읽고 중요내용들을 아버님께 알려드리는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그이이시였다.

그날의 통신자료에는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소식이 집중편집되였었다. 쓰딸린이 서거한 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대회여서 세계의 눈길이 집중되고있었던것이다.

통신자료들을 읽어나가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놀라시였다.

당 제1비서 흐루쑈브가 외국당대표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저희 대표들만 모스크바시당회의실에 따로 모여놓고 비밀보고라는것을 하였다는 자료가 실린것이였다. 무려 7시간에 걸치는 장문의 보고는 첫 말마디부터 《개인미신》을 반대한다는 미명하에 쓰딸린을 악랄하게 헐뜯는 내용으로 일관되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루쑈브의 보고는 명백히 혁명의 수령을 헐뜯고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의 령도를 거부하는 추악한 배신행위라는것을 꿰뚫어보시였다.

빨리 아버님께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셨지만 인차 자중하셨다. 천리혜안으로 먼 앞날까지도 내다보시는 아버님이시니 이미 더 구체적으로 알고계시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버님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가. 아니, 얼마나 실망이 크실가.

초조한 마음은 줄곧 아버님한테로만 달리시였다.

그날밤 수령님께서는 여느날보다 퍽 늦어서야 댁으로 돌아오시였다.

예견하셨던대로 존안이 밝지 못하셨다.

차에서 내리셨건만 곧추 집안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비취색의 야외등빛이 조용히 흐르고있는 정원길을 걸으시였다.

아직은 잎이 피지 않은, 하지만 바야흐로 움을 틔우려고 잎눈꽃눈들을 힘차게 부풀리고있는 복숭아며 살구, 추리나무들을 살피기도 하시고 온 겨울 땅땅 얼어드는 추위에도 끄떡없이 거연히 솟아 설레이며 푸르청청 절개를 지켜낸 소나무와 잣나무, 종비나무앞에 멈춰서기도 하시였다.

아버님을 기다려 창문앞을 떠나지 못하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밖으로 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기척을 낼세라 수령님의 뒤를 따르시였다.

천갈래만갈래 가닥가닥을 헤쳐가시는 아버님의 사색을 깨뜨릴가 걱정되여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이윽고 아버님께서 활달하게 가지를 펼친 섬잣나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물으시였다.

정일이냐?》

《네, 아버님.》

《왜 아직 자지 않느냐. 밤이 퍽 깊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이 꽉 메이시였다. 미처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는데 수령님께서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아드님을 마주보시는 그이의 시선과 존안에는 급변하는 세계적인 정세를 놓고 같이 우려하며 무거운 심정을 나누려는 자제분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불같이 뜨거운 정이 흘러넘치였다.

수령님께서는 굳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고 배심있게 이으셨다.

《너무 걱정할건 없다. 혁명의 길은 준엄하다고 하지 않냐. 력사발전과정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도 생길수 있고. 우리가 이런 사태를 한두번만 겪었냐. 40년대초만도 그렇지… 41년도 일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올리시였다.

《한데 아버님, 전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선대수령을 그렇게 헐뜯을수가 있습니까?

수령은 곧 조국이며 민족의 운명이 아닙니까. 더우기 쓰딸린은 레닌의 충직한 후계자, 계승자인것은 더 말할것없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쌓은 공로만도 어딥니까. 흐루쑈브가 뭐길래 감히…》

그이께서는 너무 격분하여 말씀의 끝을 채 마무리지 못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사이를 두며 아드님을 지켜보시였다.

탄복됨이 커서만이 아니시였다. 아드님이 결코 리해되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아드님의 말을 더 듣고싶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간 격정을 누르고나서 계속하시였다.

《명백히 이건 비렬한 배신입니다. 〈개인미신〉을 떠들지만 본질은 수령의 업적과 권위, 더 엄중하게는 수령의 령도를 거부말살하고 종당에는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는 추악한 음모라고 생각합니다.》

《음, 정치적야심가들의 비렬하고 너절한 배신행위가 옳아.》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버님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말씀올리시였다.

《아버님, 이제 흐루쑈브의 지휘봉을 따르는 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우려됩니다. 선대수령의 업적을 거세말살하려는 대국의 압력이 이번 당대회에서의 망동, 망언으로 끝나지는 않을게 아닙니까.》

그이의 예측은 정확했다.

당대회가 있은 직후인 3월초 쓰딸린서거 3돐에 즈음하여 쏘련에서는 그에 대한 일체 행사가 중지되였으며 그로 하여 쓰딸린의 고향인 그루지야에서는 인민들과 민병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련이어 4월과 5월에는 뽈스까와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서 당과 정부의 적지 않은 고위급지도자들이 《쓰딸린주의자》로 락인받고 강직제거되였는가 하면 10월에는 마쟈르의 수도 부다뻬슈뜨에서 반혁명폭동까지 일어나는 사변이 발생하였다.

대국의 압력은 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에만 뻗친것이 아니였다.

그해 4월에 진행된 우리 당 제3차대회에 참가한 쏘련대표단 단장 브레쥬네브는 주제넘게도 우리 당대회의 보고내용을 시비하면서 저들의 《개인미신》론을 주입시키려고 거만하게 획책하다가 수령님의 반격을 받았다. 그때 좋은 기회라도 만난듯이 대국주의자들과 합세하여 뒤에서 쏠라닥거리던 최창익, 박창옥 등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적발, 징벌하지 않았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어떤 일이 터졌을런지 모르지 않았는가!…


× ×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에없이 동무들이 시험지를 다 내고 나간 다음 제일 마감무렵에야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고개를 기웃하는 선생앞에 정중히 시험지를 바치고 교실에서 나가시였다.

교실밖 복도의 창문앞에서는 류룡철과 박문규를 중심으로 하고 또 다른쪽에서는 홍종팔을 중심으로 하여 학급동무들이 모여서서 왁작 떠들어대고들 있었다. 구력이요, 신력이요, 율리우스력이요 하는 류룡철의 목소리가 특히 높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정스레 미소를 보내고나서 방해가 될세라 천천히 민청실로 향하시였다.

다시금 어른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사대주의, 교조주의적경향이 자라나는 새 세대들한테 영향을 미치게 되는것이 더 큰 문제로 된다고 걱정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되새겨지셨다.

《사대주의와 교조주의!》

민청실앞에 다 이르신 그이께서 문득 외우시였다.

(옳다,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우리는 이젠 피끓는 청춘, 민청원들이다. 사회주의10월혁명기념일의 유래나 다른 나라의 력사와 음악같은 상식도 물론 알아야 한다. 보다 중요한것은 무엇인가? 류룡철, 박문규, 주영화… 그들모두를 위해 이 김정일 아끼는것도 주저할것도 없어야 한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류룡철과 박문규, 주영화와 장운영도 그렇지만 더욱 뚜렷이 눈앞을 채우는것은 홍종팔이였다.

(홍종팔… 부상의 외아들이란 말이지!)

그이의 존안에는 저으기 단호한 빛이 어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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