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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 2 장


2


마지막수업이 끝나가자 장운영은 손이 자꾸 책상안의 가방에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우리 나라 력사명인들의 자료는 물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인들에 대한 자료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여있는 목침같은 책이 들어있었던것이다. 전문가들도 쉽게 얻어볼수 없는 귀한 책을 아버지가 빌려온것이여서 대출날자가 한주일안으로 제한되여있었다.

오늘 수업후에는 제발 다른 사업이 조직되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그 심정을 알아서인지 공부가 끝나면 매일 그러는것처럼 그날 과업을 받기 위하여 담임선생한테 갔던 학급반장 진호삼이 전에없이 빨리 돌아왔다. 일과총화도 간단히 했고 교실청소와 운동장담당구역청소도 학급모두가 달라붙어 제꺽 해치우게 조직했다.

운영이 호삼에게 각별히 따뜻하게 고마움의 눈인사를 보내고 교실을 나서려는데 공부가 끝날무렵부터 웬일인지 뜻있는 눈길로 자주 쳐다보군 하던 홍종팔이 옆으로 다가오며 슬쩍 물었다.

《오늘 뭘하겠어?》

장운영은 아무 생각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공부하지요 뭐, 난 요즘 정말 바빠요.》

《음, 누구한테나 시간이야 금처럼 귀중하지. 물론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는가 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는 눈까지 한번 끔쩍 감아보이고나서 싱긋 웃으며 제 먼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무엇인가 의미있는 말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운영은 바쁜 생각만 앞세우면서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면 매양 먼저 듣군 하던 라지오방송음악도 듣지 않은채 창가림까지 꼼꼼히 내리드리우고 책상에 마주앉았다.

반시간쯤 지났는데 밖에서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빵빵 울렸다.

흥미진진한 력사의 세계에 빠져 처음에는 스쳐보냈던 경적소리가 집요하다고 할만큼 그냥 울렸다. 아버지의 차소리는 아닌데다 아직 퇴근할 시간도 아니여서 짜증이 났다.

종시 참지 못하고 창문을 활짝 열던 그는 눈이 황 커졌다. 홍종팔이 차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을 했던것이다.

《왜 그래요?》

운영이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홍종팔은 개의치 않고 더욱 흥이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어서 내려오란데. 좋은 곳에 가보지 않겠어? 대성산에!》

(대성산?!)

홍종팔은 그냥 차에서는 내리지도 않은채 대성산에 가서 유명한 력사유적들을 돌아볼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마음이 확 당겼다. 력사유적이란 말도 그렇지만 승용차를 타고 대성산에까지 갈수 있는 기회가 쉽게 차례질텐가.

하면서도 성큼 나서게는 되지 않았다.

며칠전 도서관에서 나오는 최원석을 태우고 돌아오던 때의 일과 함께 그보다 앞선 날 릉라도로 야유회를 갔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홍종팔이 점점 더 왜 그럴가 하는 생각으로 놀랍기도 했었다.

릉라도에 갔다온 날 그는 최원석과 헤여지자바람으로 오늘 왜 그랬는가, 축하한다고 데리고갔었는데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얼굴이 뜨끔뜨끔한걸 겨우 참았다고 되게 나무람을 했었다.

도서관앞에서 원석이를 만났던 날도 그랬다.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뛰여다니는 동무한테 어쩌면 면전에서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할수 있느냐고 성까지 냈었다.

홍종팔은 오히려 제편에서 놀라고 의아해했다.

그건 롱담인데 다 자란 청년들이 롱담도 못하고 또 그쯤한 롱말도 리해하지 못한다면 너무 옹졸하지 않느냐고 했다.

개운치는 않았지만 듣고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는것 같아 입을 봉하고 넘어갔었다. 하면서도 어지간히 각성은 했는데 홍종팔이 나날이 더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는 쓸데없이 그 승용차에 올라앉지 말아야겠다고 자각했다.

더우기는 류룡철에게 괜히 트집을 잡아 무슨 일이든 비틀고 꼬군 하는것이 어떤 상서롭지 못한 일이 터질것같아 아니아니했다.

남학생들의 세계는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실 홍종팔과 류룡철의 사이에는 특별히 이렇다하게 충돌이 일어난적도 없었다. 있다면 류룡철이 좀 싱겁게 너들거리면서 롱담을 세게 하군 하는것인데 그에 대해 홍종팔이 비웃는 태도를 보이군 하는것뿐이였다.

초급반에서는 학급이 달라 그저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지내왔는데 고급반에 올라와 한학급이 되면서부터는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때까지 있었다.

학급반장사업을 맡게 되리라던 소문이 꺾이여서인지 진호삼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터뜨릴 때가 적지 않았다.

장운영은 분명 그는 아직 새 학급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있으며 그래서 동무들과의 관계가 더 순편치 못해진다는것을 알았다.

홍종팔이 저이상 없는듯이 우쭐대긴 하지만 마음은 편안치 못해하며 그 안정을 장운영자기한테 의지하여 찾으려 한다는것도 알아차렸다.

그러자 내심 긴장해지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오늘도 오후에 무엇을 하겠는가 물었을 때 분명 의미가 있는 물음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집에서 공부를 하겠노라고 좋게 밀어버리는 식으로 대답을 했던것이다.

하지만 홍종팔이 승용차까지 몰고와 대성산으로 가자고 할줄은 몰랐다.

호기심이 바짝 생겼다.

(마지막이야! 하긴 거절하는것도 례의에 어긋나는것이지 뭐.)

그는 스스로 변호를 하면서 제꺽 외출복을 갈아입었다.

장운영은 홍종팔이 만족스러워 싱글싱글 웃으면서 자기옆에 앉으라고 친절히 앞좌석의 차문을 열어줄 때에야 주춤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일없겠어요? 먼데까지 가서.》

홍종팔은 고개를 끄떡하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뭘 처음 타는것처럼 그래?… 아버진 출장갔어. 청진쪽으로. 운전사가 같이 가자는걸 집에 가라고 했어. 오늘이 그의 생일이거던.》

장운영도 상글 웃어보였다. 홍종팔이 운전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운데다 중학시절부터 아버지의 승용차운전사한테 운전기술을 착실히 배웠으니 대성산에도 얼마든지 무사히 갔다올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승용차가 집앞을 퍼그나 벗어났을 때 홍종팔이 예전처럼 늘 으시대는 어조로 한마디 했다.

《호삼이 그 친구도 남자다운데가 있어!》

오늘 일과를 빨리 끝낸것은 사전에 자기가 학급반장한테 조용히 부탁을 하였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장운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랬댔구만요, 고마워요.》

사죄의 말까지 하고싶었으나 입을 꼭 감쳐물었다.

승용차는 모란봉언덕에 이어 가루개를 미끄러지듯 내려서자 김일성종합대학앞도로로 꺾어들었다.

하루공부가 끝난 오후시간이여서 대학의 구내길은 물론 정문앞길에도 대학생들이 꽉 찼다.

앞좌석 운전대옆에 앉은 장운영은 탄복해하는 눈길로 량손을 운전대에 올려놓고 솜씨있게 차를 몰아가는 홍종팔을 바라보았다. 홍종팔은 그 눈길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가면서 자세도 름름하게 취해졌다.

능란하게 경적도 빵빵 울렸다.

건늠길을 건너가려던 남녀대학생들이 차길옆에 멈춰서며 승용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연도환영이라도 받는듯 싶었다.

장운영은 미안한감이 들었지만 종팔은 오히려 키를 솟구면서 더욱 으시대는 자세였다. 하긴 그럴법도 했다. 아직 나이가 채 차지 않아서이지 고중만 졸업했다면 그도 당당한 대학생이 아니겠는가.

장운영의 얼굴에서 그의 속생각을 다 읽기라도 한듯 홍종팔은 더욱 으시대며 차를 운전했다.

빨리 졸업만 해라. 그때면 승용차를 몰면서 보란듯이 저 정문길로 들어갈테다.

그는 장운영의 진짜속마음은 아랑곳없이 변속기를 슬쩍 당겨 기세좋게 나가던 차의 속도를 1단으로 죽이였다.

웬일인가 놀라기라도 한듯 흠칫했던 승용차는 비로소 주인의 기분을 알아차린양 멎을듯말듯 더 늦장을 부리면서 천천히 대학생들앞을 지나갔다.

웬 높은 간부가 탄 승용차려니 했던 대학생들이 차가 자기들앞에 이르자 놀람을 터치며 저들끼리 뭐라고 수군수군했다.

장운영은 급해나서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차창밑으로 허리를 굽혔다. 어떻게 대학생들앞을 지났는지 몰랐다. 대학생들을 얼마간 지나와서야 그는 고개를 들며 나무람을 쓰듯이 물었다.

《뭐예요? 왜 속도 죽였어?》

종팔은 이미 예견이라도 했던듯 고개도 돌리지 않으면서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많이 건너다니는 번잡한 건늠길을 지날 땐 차속도를 죽이게 돼있어. 이건 교통규정이야!》

홍종팔의 속을 빤히 짐작했건만 운영은 그가 교통규정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허나 기분은 여전히 그닥 나쁘지 않았다.

승용차는 어느 사이 유난스럽게 간판을 크게 내건 미산종합상점앞을 지나 합장강근방에 이르렀다.

곧추 뻗은 골목길좌우로도 각양각색의 단층집들이 촘촘히 들어앉았지만 왼켠 청룡산밑까지의 미산동주택지구에는 더우기 전후에 급하게 지은 집들이 숨막힐 지경으로 꽉 들어찼다.

그와 대조를 이루듯이 대동강을 향해 우불구불 굽이쳐간 합장강제방뚝을 사이두고 동쪽켠은 림흥벌의 이미 가을을 끝낸 논밭들이요, 서북켠 룡성쪽으로는 아직도 군데군데 벼가을이 한창인 논벌이 아득히 펼쳐졌다.

번창한 시내중심구역에서 살던 그들은 벌써 고적의 먼 력사의 세계를 향해 그 문어구에라도 들어선듯 한감을 느끼였다.

대동강으로부터 림흥벌을 거슬러 불어오는 강바람마저도 그 무슨 매캐하고 쌉쌀한 내내를 머금은듯싶었다.

승용차가 합장다리를 넘어서자 그 주위는 그야말로 인간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지기라도 한듯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수 없었다. 강동쪽으로 뻗은 퍼그나 넓은 차길을 경계로 나무숲이 울창한 주작봉맞은켠 밑으로는 소나무와 참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들이 듬성듬성한 속에 쑥대들이 유난스러운 잡초밭들로 우거졌다.

아직은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불모의 땅이나 같았다.

홍종팔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장운영은 그 불모의 쑥대밭에 더 관심이 끌리는 모양 앉은자리에서 몸까지 들썩들썩했다.

홍종팔은 저도모르게 흐뭇이 미소를 지었다. 고적의 색채가 완연한 자연풍경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지만 장운영이 벌써부터 들썩해하는데는 저도 자못 마음이 들떴던것이다.

그가 장운영에게 각별히 관심이 가기 시작한것은 초급반 2학년때 지방의 외할머니네 집에서 살다가 다시 평양으로 오면서부터였다. 첫 관심은 그의 아버지가 저의 아버지와 같은 부상이라는 관념에서 시작되였다. 학급에서는 물론 학교적으로도 부상자녀가 몇이나 되는가.

한데다 나이도 다른 학생들보다 한살씩 우가 아닌가.

더우기 그의 눈길을 끄는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여가는 숙성한 처녀로서의 우아한 그의 모습이였다. 싱싱하면서도 환한 얼굴모색도 그렇지만 말이 없고 의젓하게 느껴지는 자태는 또 얼마나 눈길가게 하군 하는가.

홍종팔은 지금까지 집안에서 자기가 마음먹어 해내지 못한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그는 홍씨가문에서는 말그대로 금이야 옥이야 하는 4대외독자였다.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그가 요구하고 바라는것이라면 한밤중에 온 거리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다줄듯 싶었다. 외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훨씬 더했다.

철없던 인민학교시절 1학년때 있은 일이였다.

무역성 어느 간부집아들이 번쩍번쩍하게 장식을 요란스럽게 한 장난감장검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것을 부러워한다는것을 안 아버지가 외국출장중인 부서성원에게 긴급전화를 하여 꼭같은 장검을 하나 구해다주었었다. 했건만 종팔은 기어코 그 아이의 장검을 가지고싶다고 떼질을 썼다. 그래서 그 사정을 안 그 집 부모들이 종시 저의 집 아들의 장검과 바꾸어주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 부모들은 이제는 학생이 된 아들을 응당 잘 타이르고 일깨워주어야 했으나 오히려 사내다운 배짱과 내밀성으로 치하하고 자랑까지 하면서 긍지스러워했었다.

그 사랑과 애정의 터밭에서 꺼리는것없이 자란 홍종팔은 집안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자기 생각만이 제일이고 일단 자기가 마음먹으면 그대로만 하려고 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였으며 차츰 남들을 깔보면서 으시대는데 습관되였다.

그 습관은 비록 학급은 달라도 자기는 응당 장운영과 가까이 지내야하며 더우기는 같은 부상의 자녀들로서 응당 그래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무슨 일에서든 장운영의 편을 들고 그를 위해 마음을 쓰려 했다.

고급반학생이 된 첫날 수업후 천성이냐 노력이냐 하는 문제로 론쟁이 격렬해졌을 때도 그랬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야 한다는 장운영의 주장에 류룡철이며 박문규들이 겨끔내기로 일어나 까박을 붙이기 시작하자 그는 그들의 론박을 론리적으로 분석해볼 생각은 하지조차 않고 무작정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바보》니, 《천치》니, 《수재》니 하고 주먹까지 내두르면서 열을 올렸던것이다.

마침 김정일동지께서 환하게 웃으며 교실에 들어서시였길래 말이지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한데 서운하고 지어 섭섭하기까지 한것은 장운영의 태도였다.

저는 그렇게 남모르는 왼심을 써주는데 고맙다는 기미조차 전혀 없는것이다. 예나 다름없이 평범한 눈길이였고 얼굴표정과 목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더우기 요사이 기분이 나쁜것은 자기를 대함에 있어서 무엇인가 조심하며 지어 경계까지 하는 그의 눈빛과 얼굴표정이였다. 마치도 배부른 흥정격으로 자기의 우정을 우롱하기라도 하는것 같아 화가 나고 제편에서 싹 돌아서고말가 하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었다.

그 충격파를 제일먼저 몰아온것은 뜻밖에도 최원석이였다.

릉라도에서의 휴식날도 그랬지만 특히 국립도서관앞에서의 일은 저로서도 예상밖이였다.

사실 그날 그는 최원석을 집에까지 태워다줄 생각은 없었다.

최원석을 먼저 알아본것도 그였지만 못 본척 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뒤에 앉았던 장운영이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던것이다.

이왕이면 제가 먼저 손을 내미는것이 장운영앞에서 어깨가 올라가는 일이라는 생각에 비로소 알아본듯이 하며 제잡담 최원석의 곁에 차를 바투 세우고 차문도 제가 먼저 열었다.

그런데 최원석이 정작 차에 오르자 흥겹던 기분이 싹 다 잡쳐졌었다.

불청객도 보통불청객이 아닌데다 더욱 참을수 없는것은 이미 릉라도에서의 일로 하여 생겼던 장운영과의 불미스러운 마찰의 감정이 별스레 왈칵했던것이다. 한데다 더욱 쓴물이 올라오게 한것은 그가 한아름이나 안고있는 두툼한 책들을 보면서 장운영이 무척 탄복을 하는 모습이였다.

속에서 욱 치받치는것이 있어 저도모르게 롱말삼아 한마디 던져봤는데 장운영이 본인당자보다도 더 격분해할줄은 정말 뜻밖이였다.

하여 그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특별히 오늘 대성산유적유물고찰《행사》를 준비했던것이다.…

합장다리를 넘어선 승용차는 강동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얼마쯤 더 달리다가 대성산골안으로 들어가는 토사길로 꺾어들었다.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울퉁불퉁한 산골길이나 같았다.

이마에 땀이 날만큼 힘겹게 운전대를 돌려가던 홍종팔은 종시 소문봉기슭까지는 채 가지 못하고 아름드리 늙은 아카시아나무밑에 승용차를 멈춰세웠다.

룡성벌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환영의 꽃보라인양 노랗게 물든 아카시아잎이 우수수 흩어져내렸다.

도중에 멈춰섰건만 장운영은 환희에 넘쳐 차안에서 냉큼 뛰여내리더니 《야!》 하고 탄성을 터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발동을 끄고 천천히 뒤따라 내리는 홍종팔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어렸다.

눈에 보이는것은 주작봉과 소문봉, 국사봉을 비롯한 소나무숲 우거진 산봉우리들과 산기슭을 꽉 채우며 펼쳐진 잡관목이며 쑥대들이 키높이 자란 풀밭이였다.

어디선가 끽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여라문마리의 꿩떼가 날아올랐다. 그것이 무슨 신호이기라도 한듯 까치들이 깍깍거리더니 어치떼가 화답을 하고 딱따구리들이 나무통을 세차게 두드려댔다.

《어마!》

장운영이 갑자기 놀란 소리를 쳤다.

웬 손님들이냐는듯 얼마 멀지 않은 풀숲의 자그마한 실개천건너에서 송아지만 한 노루 두마리가 주둥이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질겅질겅 씹으며 의아히 쳐다보고있었던것이다.

《쳐!》

홍종팔이 급히 운영의 앞을 막아서며 발을 굴렀다.

그러자 노루들은 후닥닥 놀라 무성한 숲속으로 빳빳이 달아나버렸다.

홍종팔은 운영을 생각해서 그랬건만 그는 오히려 나무람을 썼다.

《에이, 왜 그랬어?》

홍종팔이 좀 시무룩해하는 기색이자 장운영은 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말머리를 돌렸다.

《여기가 지금은 무인지경같지만 먼 옛날엔 피어린 싸움터, 무술련마장 그리고 굉장한 사냥터였던지 몰라.》

그는 제사 앞장에서 풀숲을 헤치기 시작하였다.

종팔은 이왕이면 소문봉이나 국사봉의 높은 산등성이로 올라가봤으면 했으나 어쩌는수없이 운영의 뒤를 따랐다. 실개천을 건너뛰여 얼마쯤 걸어가니 집채만큼 덩실하게 솟은 무덤이 나타났다. 누가 손질을 했는지 주변의 풀들만은 깨끗이 베여 반반했다.

무덤은 그 하나뿐이 아니였다. 곳곳에 널려져있었는데 안학동쪽으로 끝이 안 날듯싶었다.

장운영이 무덤들을 둘러보며 설명했다.

《이 무덤들은 고구려시기것들이예요. 당시 무덤은 흙으로 쌓은것도 있고 돌각담처럼 만든것도 있다고 했어. 대성산부근 고구려고분들은 봉토 즉 흙무덤이 기본이야요.》

운영의 설명을 들으며 몇개의 무덤을 돌아보던 종팔은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가만, 저게 뭐야?》

몇걸음앞에 또 하나의 무덤이 있었는데 한옆이 움푹 패이고 안쪽으로 굴입구처럼 구멍이 펑 뚫러져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이 와짝 동해서 그리로 달려갔다.

무덤안은 깊지 않아서 밖에서도 휑하니 들여다보였다. 량쪽과 끝에 벽체같은 돌을 세우고 천정에도 큰 판돌을 얹은 다음 산더미처럼 흙을 덮은 무덤이였다.

허리만 약간 굽히면 서서도 얼마든지 들어가볼수 있었다.

허나 정작 무덤입구앞에 이르자 운영은 주춤주춤 망설이였다.

이때 홍종팔이 싱긋 웃으며 아는체를 했다.

《저안에 벽화가 있는게 아니야? 유물도 있구…》

그러더니 제 먼저 앞장에 섰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도 역시 넓은 판돌이였는데 방금 보드라운 비자루로 쓸어낸것처럼 깨끗했다.

장운영이 돌벽을 손으로 쓸어보며 설명했다.

《이 무덤안엔 없지만 문헌에는 여기 대성산무덤떼들에도 〈개마총〉과 〈사신총〉을 비롯한 벽화무덤들이 있다고 했어요. 사람과 동물을 비롯해서 당시의 생활풍습을 보여주는 그림들과 기타 여러가지의 문양들을 그린 벽화들 말이예요. 고구려시기연구에서 아주 학술적의의가 크다고 했어요.》

무덤밖에 나와서도 홍종팔은 새삼스럽게 장운영을 쳐다보았다.

그가 력사를 희망한다는것은 알고있었으나 그 지식이 그렇게 해박할줄은 몰랐던것이다. 력사와 지리, 음악과 미술 등 일반상식공부는 저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게 하느라 했었지만 그의 해박한 력사지식에 대하여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놀람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장운영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대성산의 력사를 해설했다.

《이 대성산이 유명해진것은 427년에 고구려가 수도를 국내성으로부터 여기 평양으로 옮겨온 때부터라고 해요. 그때 저기 저 산봉우리들, 소문봉과 국사봉, 장수봉을 비롯한 큰 산들을 련결하는 성을 쌓았는데 그 길이가 7천메터가 넘는다고 했어요. 20여채의 다락과 성문을 짓고 또한 성안에는 170개나 되는 못과 물주머니…》

장운영은 그만 말을 뚝 끊었다. 실망의 기색이 어린 얼굴이 활딱 붉어지기까지 했다. 홍종팔이 어디서 집어들었는지 모를 가느다란 회초리로 무덤옆의 연약한 강아지풀대를 툭툭 치고있었던것이다.

장운영의 말이 끊어져서야 홍종팔은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였다.

자기의 실책을 사과라도 하듯 들고있던 회초리를 풀밭 멀리로 힘껏 내던지며 물었다.

《운영인 력사가 정말 그렇게도 재미있어?》

장운영은 대답대신 눈길을 착 내리깔았다. 저도모르게 부풀었던 흥분이 찬물을 들쓴것처럼 싸늘하게 식어졌던것이다.

아무말없이 안학궁터쪽으로 얼마쯤 더 걸어나가다가 얼핏 저녁해를 바라보았다. 산중의 날은 빨리 저문다는 말이 맞는가 보았다.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만도 대낮같았는데 이글이글 타던 해님은 어느 사이 봉화산마루로 기울어져가고있었다.

장운영은 활달하게 가지를 펼친 떡갈나무밑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이젠 돌아가자요. 해떨어지겠어.》

그는 제 먼저 돌아서며 저으기 따뜻하게 이었다.

《오늘 정말 고마와!》

모든것을 리해하고 용서한다는 뜻이였다.

홍종팔의 얼굴이 드디여 확 밝아졌다. 그의 입에서 저로서도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고맙긴, 별나게. 나야 항상 그랬던건데.》

《알아. 다 알아요.》

장운영은 방실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성격상약점은 있어도 그의 마음은 진심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결함없는 사람이 있다던가.

홍종팔도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벙실 마주 웃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더냐싶게 숲속길을 즐겁게 헤쳐나갔다.

실개천앞에 이르자 홍종팔이 먼저 기분좋게 훌쩍 뛰여건넜다. 그리고는 주춤거리는 장운영에게 손을 쑥 내밀었다. 운영은 서슴없이 그의 손을 꼭 마주잡고 힘들지 않게 실개천을 건너뛰였다.

장운영은 제 먼저 승용차의 뒤좌석에 올라앉았다. 올 때에는 앞좌석의 운전대옆에 앉았지만 돌아갈 때에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홍종팔이 어떻게 생각할가 걱정이 없은것은 아니였는데 좀전의 일때문인지 그도 아주 대범해진 모양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홍종팔이 운전대앞에 올라앉자 장운영이 좀 정색해서 물었다.

《종팔동무, 나 언제부터 묻고싶었던거 하나 물으라요?》

홍종팔은 굳어지기라도 한듯 까딱 안했다. 얼마쯤 그러고있다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긴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뭔데?… 어서.》

이번엔 장운영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참이나 그러고있다가 조심스럽게 침묵을 깼다.

《저… 종팔동문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어요?》

무슨 말을 하려나 긴장했던 종팔은 어이가 없는듯 고개를 젖히며 하― 하고 김빠진 소리를 냈다. 이어 운영을 향해 삑 돌아앉으며 되물었다.

《내 희망이 뭐냐 하는 말이겠지?》

운영은 고개를 끄떡했다. 진지한 눈빛이 그를 꼭 붙잡았다.

종팔은 그에는 개의치 않는듯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명백히 말해서 내 희망과 리상은 간부야!》

《간부?》

《그래. 간부.》

홍종팔은 그래서 이번 고급반에 올라가면서 학급을 바꾸는 기회에 아버지가 학급반장사업을 하게 했으면 어떻겠는가 하는 의향을 가졌댔다는 말까지 튀여나오는것을 다행스럽게도 꾹 눌러 삼켰다.

장운영은 입을 반쯤 벌렸다가 더 파고들듯이 물었다.

《간부라면 무슨… 어떤 부문의…》

홍종팔은 운전대우에 량손을 얹으며 큰숨을 들이쉬고나서 저으기 진중하게 이었다.

《글쎄, 꼭 찍어 어느 부문이라고까지는 아직… 하지만 난 아버지를 믿어. 우리 아버지도 늘 외우지. 지금은 헛눈팔지 말고 공부를 잘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구. 다방면적인 지식!… 학생의 기본임무는 공부라는 말 있잖아? 우선 공불 잘해가지구 대학에 가는게 급선무라고 봐. 김일성종합대학에.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아버지가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리. 하긴 그때 가면 나한테도 뭐든지 선이 서겠지 뭐! 내각이든 어느 성이든…》

이어 장운영한테로 다시 삑 돌아앉으며 열을 올리듯 말했다.

《지금 화학이니 물리니 문학이니들 하는데 물론 탓할거야 없지. 나 역시 문학이요, 생물이요 했던 때가 있지 않아. 하긴 그래서 우리때를 하루밤에 열두가지 꿈을 꾸는 시절이라고 하는 말도 있구. 현실과 리상이란 말 괜히 나왔겠어? 이런 의미에선 운영이도 례외가 아니라고 봐. 더우기 너야 녀성이 아니냐.》

그것은 그의 솔직한 말이였다. 그는 마치 선험자이기라도 한듯 어깨까지 쑥 솟구면서 계속하였다.

《물론 내가 동무의 력사를 전공하려는 희망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야. 요는 생활에서 중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거야.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는 말 있잖아.》

장운영은 너무도 놀라 두눈만 치떴다.

입빠른 축들처럼 속을 해발딱하게 내비치지는 않아도 홍종팔이 누구보다 꿈과 리상이 고상하고 황홀하리라 믿었댔기때문이였다.

한데 아직도 아버지, 어머니들의 손에 매달려다니며 부모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유치원이나 인민학교시절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누가 뭐라든 자기 배심, 제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던 사내다운 배짱은 어데 갔단 말인가? 하고보면 며칠전 차안에서 최원석에게 던진 말도 결코 롱말이 아니지 않은가. 미래의 우주점령을 희망하는 최원석은 물론 박문규며 주영화, 리용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저도모르게 핀잔투로 한마디 했다.

《호박순 돌아앉기란 말 있잖나요.》

제나름대로 번뜩 떠올린 말이였다.

홍종팔은 씩 웃었다. 아주 얕보는 눈길로 장운영을 마주보다가 고개를 한번 젓고나서 다시 운전대앞에 돌아앉으며 외웠다.

《한발 잘못 내짚어 일생 후회한다는 말도 있어요!》

그는 발동을 부르릉 걸었다. 그리고는 못이라도 박듯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명백히 하건대 난 현실주의적이란거야!》

승용차는 껑충 뛰기라도 하듯 앞으로 씽 나갔다. 하지만 길이 너무 사나와 올 때보다도 더 힘겹게 아릉아릉 용을 쓰기 시작하였다.

홍종팔은 있는 힘을 다하다싶이 운전대를 잡아돌렸고 장운영은 차가 들추는대로 몸을 내맡기지 않으려고 입술을 사려물면서 두팔을 한껏 벌려 량쪽차문의 손잡이를 틀어쥐였다.

장운영은 후덥게 느껴졌던 홍종팔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이 서서히 식어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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