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8 회


제 2 장


1


오전내껏 내리던 가을비는 점심녘에 이르러서야 즘즉해지기 시작하더니 한시간도 채 안되여 언제였던가싶게 하늘이 말짱 개였다.

구름 한점없이 창창 맑은 하늘중천에 모란봉으로부터 문수봉너머로 희한하게도 쌍무지개가 황홀하게 비꼈다.

최원석은 최승대의 란간에 바투 붙어서서 쌍무지개아래로 펼쳐진 동평양일대를 부감하고있었다.

일요일에 비까지 내리는지라 오전한겻 집안에 박혀 물리공부에 열중했던 그였다. 국립도서관에서 빌려온 류체력학과 관련한 부피 두터운 참고서들을 파헤치는중이였다.

그는 이즈음 가슴이 터질듯이 물리학에 더 흥분되였다.

개학의 첫날 수업후 나라의 인재문제를 놓고 뜻밖에 열렬한 론쟁의 파도에 휘감겨들어 가뜩이나 들떴던차인데 며칠전에는 또 쏘련에서 첫 인공지구위성이 성과적으로 발사되였다는 경이적인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우주점령의 첫 포성으로 되는 인공지구위성발사!

그 소식을 들은 그는 흥분된 심정으로 국립도서관을 찾아갔었다.

도서관은 집에서 2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고 이미전에 도서대출원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였었다.

그는 언제 찾아가도 친절하고 싹싹하기 이를데없는 상냥한 도서대출원어머니가 의아해할만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류체력학, 특히 나비에―스톡스방정식과 관련된 도서들을 도서관에 있는대로 대출받았다. 아직은 널리 보급되기 전이여서 희귀하다고도 할수 있는 책들이였다.

그가 그 도서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것은 평양에 와서도 썩 후부터였다.

19세기 세계의 수학거장들의 이름과 함께 수학력사를 빛나게 장식한 나비에와 스톡스… 그들의 이름과 더불어 나비에―스톡스방정식이 나오자 많은 학자들이 그 방정식에 대한 연구와 함께 류체운동이 안고있는 비밀의 문을 열어제끼기 위하여 골을 싸매고 달라붙었다. 세계의 권위있는 학자들의 이름이 그 과학분야의 력사에 당당히 새겨졌다.

물론 보다 많이는 수학과 관련한 과학분야였다.

하지만 수학과 동떨어진 물리학을 생각할수 있겠는가.

최원석의 가슴을 더욱 설레이게 한것은 그 방정식의 기초라고 할수있는 류체력학적운동에 대한 고찰이였다.

콜롬부스의 새 대륙발견마냥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파헤쳐볼 과학탐구의 충격적흥분은 폭발적이였으나 아직 최원석의 지식수준으로써는 너무도 벅차고 막연하다고도 할수 있는 미궁과도 같은 세계였다. 그래서 낯이나 얼마간 익히듯 하고는 먼 미래의 일로 밀어놓았댔는데 바로 그 나비에―스톡스방정식에 대한 꾸준하고 정열적인 연구성과는 드디여 이 지구를 쾅 들었다놓지 않았는가.

지구밖의 다른 천체에로의 돌진!

최원석은 마치도 어물어물하는 사이 자기의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남한테 떼우고 억울하게 밀리우기라도 한 심정이였다. 그래서 골을 싸매다싶이 하며 먼 미래로 밀어놓았던 참고도서들을 다시 찾아안고 집에 오자 밤을 새다싶이 탐독을 하댔는데 차츰 이름할수없이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기분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홍종팔과 장운영의 얼굴들이 참고도서들에 새겨지면서 글줄들을 자꾸 흐려놓았던것이다.

사실 그가 평양제1중학교 고급반에 입학하면서 제일 고맙게 여기고 그래서 또 그만큼 가까이 지내고싶은 동무를 꼽는다면 주영화 다음으로는 홍종팔과 장운영이라 여겼었다.

한데 차츰 날이 흐르면서 그는 어쩐지 저같은것은 도저히 그들곁에 가까이 붙어설수 없을것 같은 위압감을 느끼였다.

항시 동무들을 내려다보는듯 한 교만스러운 그들의 자세부터가 그랬는데 더우기 경계심을 가지고 매사 조심하게 되는것은 내각과 성의 어지간한 간부집자녀들끼리 더 잘 어울려 다니군 하는것이였다.

최원석이 그것을 처음으로 감촉하기 시작한것은 학급에 전학을 온지 한주일이 되는 첫 일요일부터였다.

그날 최원석은 어머니와 함께 주영화네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약속되여있었다. 자기 집을 아버지심정에서 늘 관심해주는 주영화 아버지의 생일날이여서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더 정을 고이며 기다렸던것이다. 한데 토요일저녁 원석은 홍종팔로부터 뜻밖의 청을 받았다.

한해의 여름도 다 가는데 릉라도에 나가 미역도 감으며 하루를 마음껏 즐기자는것이였다.

《원석동무가 우리 학급에 온것을 축하해서예요. 즐거운 야유회! 준비는 우리가 다해요!》

장운영도 손을 잡아끌다싶이 했다.

그 야유회는 홍종팔이 발기한것이였다. 일요일하루를 장운영과 둘이서 마음껏 즐기자고 한것이였는데 뜻밖에도 운영이 기어코 원석을 끌어들이면서 그와 같이 가지 않으면 자기도 그만두겠노라고 단호히 돌아섰던것이였다.

홍종팔은 입이 쓰거울만큼 후회가 컸다. 사실 그가 최원석의 전학문제를 자기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달라붙어 아버지를 든장질한것은 장운영의 부탁에서였다. 한데 무슨 바람에 취해서인지 그는 그저 원석이 생각밖에 없는듯싶었다.

홍종팔이 옳게 보았다. 장운영은 진정으로 최원석을 친근하게 대했다. 주영화와 한고향동무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그의 아버지가 평양하늘을 지켜싸우다 용감하게 전사한 공화국영웅이기때문이였다. 최원석의 첫날 첫인상부터가 순박하고 솔직하고 무엇인가 분명 큰뜻을 가슴에 품고있다는것을 느끼게 했기때문이기도 하였다. 물리학에 남다른 취미가 있으며 미래의 우주점령에 뜻을 둔 그 꿈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가.

량손에 떡을 쥔 격이였지만 원석은 또 그대로 딱했다.

며칠전부터 주영화의 어머니와 함께 이마를 맞대다싶이 하며 일요일하루 가족휴식을 준비해온 어머니도 한숨을 내쉬였다.

주영화는 새침해지기까지 했다.

《에이 훼방군들같은거… 딱 같은 날 그럴건 뭐야!》

옛 수고가 있으니 저로서도 무작정 막을수는 없었던것이다.

고맙게도 주영화의 어머니가 딱한 매듭을 풀어주었다.

《됐다, 부모팔아 동무산다는 말이 있지 않냐. 우리야 한집안이나 같은거구. 우리 원석이 좋은 동무 많이 사귀면 영화 아버지한테도 기쁜일이지. 아침에 얼른 와서 인사나 차리구 뛰여가려무나.》

약속대로 장운영과 홍종팔은 야유회준비를 놀랄만큼 잘했다. 큰 려행용가방이 터질만큼 팽팽했던것이다.

계획은 홍종팔이 릉라도로 건너가는 나루터까지는 아버지의 승용차를 타고가기로 운전사와 약속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원산농업대학으로 출장을 떠나 퍼그나 먼 시내길을 걸어서 가야 했다.

최원석은 야유회를 가는데 빈손인것부터가 미안하여 제 먼저 가방을 둘러멨다. 무엇을 다져넣었는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아이, 혼자선 힘들어요. 같이 맞들자요.》

장운영이 기어코 원석의 어깨에서 멜끈을 벗겨 마주 들었다.

원석은 홍종팔의 눈길이 얼핏 발끝으로 떨어지는것을 보았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고마운 마음에 들떠 진심으로 제 혼자 가방을 메고가겠다고 장운영의 손을 밀어냈다.

장운영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였다.

벌써 몇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던 홍종팔이 저으기 불쾌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여여, 떠나기 전에 해 다 지우겠다. 뭘 그렇게 무겁다고 그래!》

그는 장운영의 손에서 멜끈을 잡아챘다.

장운영은 그래주기를 기다렸던듯 상글상글 웃으며 물러섰다.

장운영은 즐거워했으나 홍종팔은 여전히 뚜한 인상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시내길에서 그것도 마음이 별로 맞지않는 걸음이다보니 가방이 이리저리 흔들려 걷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최원석이 꾀를 썼다.

《교대교대 혼자서 메고가자. 내가 먼저 멜게.》

교대로 메고가자는것은 물론 인사치레의 말이였다.

장운영이 자기도 메겠다고 자꾸 조르고 그때마다 홍종팔도 따라나섰지만 최원석은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목적지까지 가방은 최원석이 혼자 메고갔고 홍종팔과 장운영은 그의 앞에서 무슨 이야기들인지 다정히 나누며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원석은 도덕적으로 봐도 자기는 응당 그래야 하는것이라 여겼었다.

멋한감이 들기 시작한것은 아름드리 시원한 버드나무밑에 휴식장소를 정한 다음 공원길을 거닐면서부터였다.

홍종팔은 시종 장운영과 함께 걸으면서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큰소리로 웃기도 했는데 최원석은 괜히 그뒤로 싱겁게 따라다니는 격이 되고말았다. 장운영이 미안해나서 최원석의 곁으로 오면 홍종팔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다시 떼내가군 했다.

별로 말주변이 없는 최원석은 그것도 다행으로 여기였다.

잔물결이 해볕에 반짝이는 대동강물에 뛰여들어 상쾌하게 미역을 감을 때도 그랬고 축복의 꽃보라인양 빨간 잠자리떼가 머리우에서 춤추며 노니는 풀밭에 모여앉아 점심식사를 할 때에도 그랬다.

원석은 차츰 더 자기가 꾸어온 보리자루격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그는 비로소 그 자리는 자기가 섞일 자리가 아니며 한갖 심부름군이나 같은셈이라는 불쾌감에 기분이 싹 잡쳐버렸다.

일요일의 그 불쾌감은 점점 더 큰 기대가 꺾이운듯 한 실망감으로 번져졌는데 어제 또다시 예상밖의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

류체력학의 세계에 흥분하여 한주일분의 열람도서들을 네댓권이나 대출받아가지고 도서관을 나서던 그는 난데없이 도서관앞을 지나가던 연청색의 승용차가 제옆으로 다가오면서 소리없이 멈춰서는 바람에 의아해졌다.

차문이 열리면서 홍종팔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아, 우리 〈물리학자선생〉이 또 도서관에 오셨댔구만!》

어디엔가 갔다오는 차를 만났는지 홍종팔이 또 운전대를 잡았다. 그의 옆에는 마음무던한 운전사가 앉았고 뒤좌석에서는 장운영이 상글상글 웃으면서 내다보고있었다.

첫 순간 최원석은 릉라도에서의 불쾌감부터 살아나 주춤했으나 그래도 옛 도움이 있어 소리없이 웃음을 짓는것으로 답례를 표했다.

장운영이 스스럼없이 차문을 열어주며 불렀다.

《원석동무, 집에 가는 길이겠지요? 어서 타요.》

차를 타라는 소리에 최원석은 펄쩍 물러섰다.

《아니아니, 내가 어떻게… 난 걸어가겠어.》

홍종팔과 장운영의 눈길이 이상스럽게 마주쳤다.

상대가 어디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은 눈보다 먼저 감각으로 더 정확하게 느끼는 때가 있다.최원석이 더우기 주저하는데 홍종팔이 어딘가 내리누르는듯 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는데 차값 내랄가봐 그래? 어서 타란데!》

장운영이 손까지 내밀어 잡아끄는통에 최원석은 어쩔수없이 차안에 끌려들어갔다.차안에 올라앉긴 했지만 일요일의 그날처럼 절대로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은것같아 안절부절하는데 홍종팔이 능란한 솜씨로 차를 몰아가면서 장운영에게 슬쩍 한마디 했다.

《초중때 생각나? 하루 열두가지 꿈꾼다고 하던 때 말이야.》

그는 마치도 중학시절이 아득히 흘러가기라도 한듯이 말했다.

장운영은 대답대신 얼른 최원석을 살펴보았다. 그 눈에 몹시 당황하고 딱해하는 빛이 실렸다.

최원석도 얼굴이 화끈했다.

(이건 나의 희망에 대한 로골적인 우롱이며 모욕이 아닌가! 하다면 개학의 첫날 오후 학급동무들앞에서 열을 올려 한 말은 무엇인가.

류룡철과 박문규가 말한것처럼 그렇게 한번 멋을 부렸다는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것은 열기에 들떴던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류룡철이 입을 비쭉거리며 던진 말이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에 아연해진 최원석은 당장 차를 세우고 불단지처럼 달아오르는 차안에서 뛰쳐내리고싶었는데 어느 사이 승용차는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어구에 멎어섰다.

그는 어떻게 차에서 내렸고 무슨 말로 헤여졌는지 몰랐다.…

날이 궂힌데다 홍종팔과의 일로 하여 점점 더 기분이 나빠진 최원석은 오늘도 책상앞에서 모지름을 쓰다싶이 하고있었는데 낮때가 되여오면서 마침 비가 멎더니 하늘이 활짝 개였다.

비개인 평양의 황홀한 가을하늘은 뜻밖의 일로 마음이 뒤숭숭해난 그를 못 견디게 모란봉으로 유혹하였다. 하긴 하늘중천으로 눈부시게 뻗어오른 두줄기의 류다른 쌍무지개가 미래의 우주세계를 꿈꾸는 랑만적인 최원석의 심장을 고스란히 잠재우고있을텐가!

어디선가 청아한 단소소리와 같은 꾀꼬리울음소리가 들렸다.

란간밑에 펼쳐진 단풍이 울긋불긋한 각양각종의 무성한 나무숲우로 두마리의 금빛꾀꼬리가 재주라도 부리듯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청류벽아래 대동강물을 거슬러 릉라도 버들숲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마치도 아득한 꿈의 세계를 안고 가슴벅차하는 최원석에게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당장은 발밑부터 잘 살피라고 일깨워주기라도 하는듯싶었다. 아무리 황홀한 무지개를 찾아 제일 높은 루각인 최승대까지 달려 올라왔어도 모란봉에 뿌리를 박은 하늘아래 산봉우리들중의 하나가 아닐텐가.

고마운 꾀꼬리!

최원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멀리 북녘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밑 어느곳에 고향마을이 있었다. 고향의 앞내가 버들숲에서도 꾀꼬리가 울었고 비멎은 날이면 무지개가 곱게 서군 하였다.

저 무지개는 어디서 나타났을가? 마을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옛말로 들려준것처럼 저 무지개를 타고 하늘끝으로 올라가면 정말 신선의 나라라는 희한한 세계가 있을가? 그 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가? 거기서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있을가?

천도라는 복숭아가 무르익고 숨막히게 향기그윽한 아름드리계수나무밑에서 부지런한 토끼가 열성스레 절구질을 한다는 그 황홀경의 세계에 한껏 취해드느라면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했던듯이 영낙없이 또 그 황금빛꾀꼬리가 떼지어 날아들면서 청높이 우짖군 했다. 그것은 정녕 철부지 산골소년 최원석에게 있어서 깊은 밤 잠나라속에서도 가슴터지게 그려보군 하던 황홀한 세상, 기어코 날아올라가 보고싶은 꿈의 세계였다.…

정각밑에서 난데없이 인기척이 났다.

판돌을 편안하게 깔아놓은 소나무숲속의 오솔길에 뜻밖에도 두사람이 나란히 서서 원석을 지켜보고있었다.

주영화와 그의 아버지였다.

영화가 키돋움하여 발뒤축을 들면서 아버지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원석을 눈짓하며 무엇이라 열성스레 소곤거렸다.

아버지도 기특해하는 눈매로 원석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할 말을 다 했던듯 성미활달한 주영화가 빠른 걸음으로 먼저 오솔길을 치달아올라갔다. 그는 그때까지도 쌍무지개 찬연한 하늘의 세계에 온통 넋을 팔고있는 원석을 놀래울가 저어하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원석동무.》

원석은 두눈을 크게 뜨며 입을 쩍 벌렸다. 정말 하늘신선이 하강이라도 한듯 어리벙벙해있다가 한여름의 함박꽃마냥 환한 얼굴이 틀림없는 옛 고향동무 주영화임을 알자 반가움을 확 터쳤다.

《아니, 너 영화구나! 어떻게 여길?…》

원석은 영화를 향해 성큼성큼 마주 걸어내려갔다.

영화는 아버지를 눈짓하며 제 성미대로 쾌활하게 대답했다.

《우리도 무지개를 좀 타보려고 왔지 뭐. 오룡차를 불러타구 훨훨 날아보려구. 원석동물 따라서…》

이어 롱말이 지나쳤음을 깨달은 모양 좀 정색해서 이었다.

《아버지가 무리하셔서 우정 사무실에서 끌어냈어. 일요일인데도 아침일찍 출근을 하셨댔거던. 이를테면 스트레스해소, 피로회복!》

영화 아버지가 다가오자 그들은 더욱 신이 나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각으로 올라갔다.

살림집건설이 한창인 동평양일대와 멀리 북동쪽의 대성산, 서평양일대를 천천히 부감하고났을 때 영화 아버지가 최원석의 앞으로 다가서며 뜻있는 어조로 물었다.

《너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정주땅에 가셨다는 소식 들었냐?》

《예?!》

최원석은 금시초문이라 입만 반쯤 벌렸다.

영화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이미 알고있었던듯 고개만 살짝 끄덕여보였다.

원석은 다시금 어린시절 늘 그려보군 하던 황홀경의 꿈의 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듯싶었다.

아버지원수님께서 정주땅으로 가시다니. 협동조합이 다 무어졌다는것을 아시고 우리 마을로 찾아가신것은 아닐가?

가슴이 너무 쿵당거려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

그의 그러한 심정을 알아차린듯 영화 아버지가 알릴듯말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령님께서 우리 정주군의 과수농장을 현지지도하셨단다.》

최원석은 또 한번 불김같은것을 들이켰다.

과수농장이라면 그의 고향마을에서 그닥 멀지도 않은 곳이였다.

그 희한한 소식을 듣자고 어수선한 마음도 깨끗이 가시며 여기 무지개가 황홀한 모란봉으로 올라온건 아닐가? 아니, 바로 그 꿈같은 일을 알리고저 영화가 아버지의 손을 끌며 저를 찾아온것은 아닐가?

어쩌면 이들은 나날이 더 목메이게 고맙게만 생각될가!

영화의 아버지는 더욱 뜨거운 음성으로 의미심장하게 이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고장에 오시기 전에 구성고등기계전문학교를 먼저 찾으셨다는구나. 마침 그 학교에서 전문학교 제1기 졸업생들의 졸업식이 있었다는거다.》

영화 아버지도 가슴이 벅차오른듯 뒤짐을 지고 정각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름드리 원기둥사이를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고나서 문득 걸음을 멈추며 뜻밖의 말을 던졌다.

《참, 너희들 개학식날 학급에서 인재에 대한 론쟁이 있었다지?》

그는 말은 원석에게 하면서 눈길은 딸에게로 돌렸다.

영화는 살짝 웃는것으로 옳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원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그날에 홍종팔로 하여 기분이 나빠졌고 그래서 모란봉으로 올라오지 않았던가. 하다면 주영화도 아버지와 함께 그 생각을 하며 여기로 왔단 말인가?

허나 이제는 가슴이 활 열리는데다 환희로운 고향소식까지 들어서인지 그런 게적지근한 생각은 싹 가셔졌다. 대신 인재에 대한 옳바른 리해도 아버지원수님의 혁명사상, 사람을 기본으로 하여 해야 한다고 하던 김정일동지의 음성과 함께 신심과 랑만에 들떠 흥분을 감추지 못해하던 선정화선생의 말이 귀가에 쟁쟁했다.

영화 아버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었다.

《우리 영화한테서 그 말을 듣고 나도 생각되는바가 컸다. 그래서 우리 부서사람들한테 얘길했더니 모두들 탄복을 하더라.

사실말이지 나라의 당면한 복구건설문제를 놓고 걱정들은 너나없이 크면서도 전망적인 인재문제는 우리 내각성원들도 그렇게 현실적인 중대문제로 리해하지 못했댔거던.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쁘신 걸음에 새로 내온 전문학교의 첫 졸업생들이 나오는 학교부터 찾아주신 뜻을 너희들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러자면 뭐니뭐니해도 우선 공부를 잘해야 해.

너희 담임선생도 얘길했다지? 매 학생 한사람한사람이 다 훌륭한 인재들이 돼서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큰 몫을 하나씩 맡아나서면 우리 나라는 더욱 부강번영할것이라고 말이다.》

《그건 정일동무가 먼저 한 말이예요.》

주영화가 서둘러 대답하며 한발 나섰다.

아버지도 《안다.》 하듯이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더욱 헌헌한 기분으로 이었다.

《너희들을 볼 때마다 난 나날이 더 기쁘다. 우리 영화는 화학, 원석이는 물리!… 얼마나 중요한 과학분야들이냐. 모든 학문이 다 호상련관속에 있지만 화학과 물리는 특히 더 밀접한 련관속에 발전하는게 아니냐. 화학과 물리, 화학을 떠난 물리도 그렇지만 물리를 떠난 화학의 성공도 안될 말이지. 안그렇냐?》

《야 어쩜, 울아버지 제일이야!》

주영화가 돌연 철부지녀학생마냥 아버지의 팔을 붙안으며 발까지 동동 굴렀다.

원석은 저도모르게 히죽이 웃었다.

영화의 아버지는 제 딸보다 원석에게 더 미더운 눈길을 보내고나서 어지간히 진중하게 못을 박았다.

《어련하랴만 탕개를 늦춰선 안된다. 순탄하지 않는 길이란 없다는말 있잖냐. 난 말이다. 리승기선생의 한생에도 탄복하지만 계응상선생의 탐구정신앞에서는 눈물이 더 나군 한다.

하긴 그들뿐이 아니지. 세상 어느 과학자가 안온한 방에 편안히 앉아 성공의 열매를 딴 례가 있냐.

우리 영화가 숭배하다싶이 하는 큐리부인도 그렇지 않냐. 바께쯔에 담긴 물이 떵떵 얼어드는 실험실에서 밤새껏 화학실험을 하다가 잠시나마 눈을 붙이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는 몸이 너무 얼어들어 덮고 자려는 이불우에 책상을 엎어 올려놓군 했다는 자료도 있더구나.

말그대로 견인불발의 의지의 인간들이거던. 한데 말이다, 난 그 과학자부인이 생각날 때면 그의 남편 역시 돋보이게 되더라. 정말 쉽지않은 남편이였구 쉽지 않은 과학자부부가 아니였겠냐. 하긴 그래서 인류과학의 력사에 더 인상깊게 새겨졌는지도 모르지. 한마디로 과학도 인간이 하는건데… 인간호상간에 서로 돕고 믿고 진심으로 이끌어주는게 중요하다는거다. 정 말이다. 진심의 정!》

아버지는 웬일인지 영화를 슬쩍 한번 곁눈질하고는 고개를 건듯 들며 정각의 천정을 둘러보는척 했다.

영화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손으로 볼을 감싸며 《어마!》 소리를 가볍게 흘렸다. 그리고는 급한 눈길을 원석에게로 돌렸다.

원석은 덤덤했다. 그저 의아한 눈길로 영화를 마주볼뿐이였다.

그러자 영화는 급히 돌아서면서 바다처럼 설레이는 릉라도의 버들숲을 바라보는척 했다.

《허허허…》

영화 아버지는 고개를 젖힌채 쾌활하게 웃었다.

이윽하여 그들은 현무문앞을 지나 합각지붕을 얹고 웅건히 솟은 을밀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름드리소나무와 참나무, 아카시아나무들이 울창한 숲속의 오솔길을 타며 층층높은 돌계단을 톺아 둔덕에 오르니 앞이 확 트이면서 중구역일대의 본평양거리가 한눈에 안겨들었다.

을밀대앞의 운동장처럼 넓은 공지에서는 남녀로소가 한데 어울려 도는 춤판이 한창이였다. 일요일휴식의 흥취에 한껏 들뜬 사람들이 넘쳐나서인지 흥겨운 춤판은 두군데로 나누어 펼쳐졌는데 한쪽에서는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도는 《흘라리》춤판이요, 다른쪽에서는 반주없이 저마다 노래를 부르며 돌아가는 《돈돌라리》판이였다.

춤판옆에는 구경군들이 어깨성을 쌓았다.

너나없이 어깨들을 들썩거리며 손벽을 쳤다.

대성산과 청룡산, 봉화산… 온 평양일대의 새들도 다 모여든듯 주변의 무성한 나무숲에서는 까치며 어치, 청더구리, 비둘기, 참새, 박새, 솔새들이 제마끔 울어댄다. 울긋불긋 치장을 요란스럽게 한 장끼들까지 께끼여 깩깩 청을 돋구었다. 어디서 날아들었던지 장마비뒤끝에 보군 하던 빨간 고추잠자리떼가 춤판우를 뒤덮었다.

얼마간 동떨어진 경상골쪽으로 흘러내린 청류벽우의 둔덕길에 네댓명 간부풍의 사람들이 춤판의 흥취에는 무관한듯 무엇인가 무척 심각한 얼굴들로 모여서있었다. 긴 종이말이를 든 사람도 있고 두툼한 책을 옆에 낀 사람도 있었다.

그중 키가 훤칠하고 름름한 기풍이 안겨오는 사람이 한창 건설중인 동평양일대의 살림집건설장쪽을 가리키며 무엇이라 설명을 했다. 그옆에 서있던 뚱뚱한 사람이 두손을 홰홰 내저었다.

영화 아버지의 얼굴에도 한순간 신중한 빛이 어리였다.

아무래도 휴식을 단념해야겠다는듯 미안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 내각사람들이다. 설계가들도 있구.… 수령님께서 지난해에 이어 며칠전에도 또 동평양지구 살림집건설장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면서 조립식건설방법을 대담하게 빨리 도입할데 대한 과업을 주셨는데 그 집행에서 아직 신중한 문제들이 제기된다고 하더라. 어디서나 기술신비주의, 보수주의, 소극성이 문제구나.》

그는 너희들끼리 더 놀다가 집으로 내려가라고 이르고는 급한 걸음으로 일군들한테로 다가갔다.

영화와 원석은 나란히 서서 말없이 아버지를 눈바램하였다.

그처럼 흥겹게 느껴지던 춤판도 귀메이게 지저귀던 뭇새들의 청고운 울음소리도 더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방금전 《어디서나 기술신비주의, 보수주의, 소극성이 문제구나.》 하며 안타까와하던 영화 아버지의 말만이 귀전에 울렸다. 그 말은 이어 개학 첫날 열정을 담아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말씀으로 바뀌였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당면해서는 자동차, 뜨락또르, 굴착기 같은것을 꽝꽝 만들어내야겠는데… 사람들의 열의는 하늘에 닿았는데 과학과 기술이 약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하셨어.》

그 말씀을 듣고 흥분하여 하던 선정화선생의 말도 생각났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다시말해서 과학과 기술을 모르고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는 시대가 눈앞에 박두했으며 동무들은 바로 그 시대의 주인으로 등장하게 될것입니다. 이 문제해결에서 관건이라 할수 있는것은 두말할바없이 실지 쓸모있는 산지식을 소유하여야 할 교육입니다.》

고개를 버쩍 들었다.

그렇다. 실지 쓸모있는 산지식을 소유하여야 할 교육!

무슨 뜻이겠는가. 역시 배움이다. 공부!… 하긴 그것은 학생의 기본임무, 기본혁명과업이라고 하지 않는가.

열심히 배우고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가슴터지게 들이쉬였던 큰숨을 씨원스럽게 후― 내쉬였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있던 주영화가 눈을 살짝 치뜨며 물었다.

《뭘 생각해요?》

《응? 오, 생각은 무슨…》

《피―》

영화는 눈을 곱게 빨며 반쯤 돌아섰다.

원석은 그가 결코 진짜 성을 내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미안한감이 들어 얼결에 뚱딴지같은 말을 한마디 하였다.

《오, 실은 말이야.》

그는 을밀대앞의 아름드리소나무를 눈짓하며 천연스레 말했다.

《저기 청서 한마리가 올라가기에…》

영화는 입술을 살짝 내물며 제꺽 말끝을 잘랐다.

《청서?… 으응, 난 또 다람쥐라구.》

《다람쥐?!》

이번엔 원석이가 입을 항 벌렸다가 제풀에 고개를 젖히며 하하하 소리를 내여 웃었다.

영화도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곱게 웃었다.

원석은 즐겁게 웃으면서도 내심의 결심만은 더욱 굳게 다졌다.

학과학습, 무조건 학과실력 제1인자가 될테다.

학습제일주의!

허나 그는 그 결심이 선정화선생의 말뜻은 물론 김정일동지의 말씀의 진의도와는 너무도 엄청나게 빗나가게 되리라고 그때로서는 전혀 생각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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