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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제 1 장


5


선정화선생은 조용한 교원실에 혼자 앉아있었다.

다른 선생들은 모두 자기들이 담당한 학급으로 갔다.

그도 수업이 끝나자 인차 찾아왔던 학급반장과 초급단체위원장에게 몇가지 과업을 주어 돌려보내고나서 교실로 갔었다. 하지만 교실문앞에 얼마간 서있다가 가만히 돌아섰다.

열정과 흥분에 들뜬 학생들의 랑만적인 분위기를 깨뜨리고싶지 않아서였다.

한식경이나 까딱 않고 못박힌듯이 앉아있던 그는 돌연 어깨를 솟구며 큰숨을 한번 들이그었다. 책상옆에 꺼내놓았던 학급학생들의 학적부를 당겨 펼치였다.

새로 학급을 담당하게 되면서부터 열번도나마 본 학적부였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휑한 학생들의 이름을 한명한명 새겨보았다.

각별히 눈길을 끄는 학생들의 이름을 다시 눈여겨보았다.

홍종팔… 교육성 부상의 아들이여서일가?

학급에서 키가 제일 크고 체격도 좋았다. 약간의 오목눈에 이마를 반쯤 덮은 윤기나는 까만 머리칼은 맵시있게 들리였다.

태여날 때부터 그런것인지 아니면 멋을 부리느라 우정 그렇게 치장을 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때 보아도 매양 어른티를 내려 하면서 웬간한 학생들은 눈아래로 보려는 교만감이 뚜렷했다. 부상인 아버지를 닮느라 부러 그러는지 말도 뜨직뜨직 하면서 《에―》를 곧잘 썼다.

이따금 아버지의 승용차를 몰고 거리를 돌군 하는데 때로는 동무들을 태우고 삼석이요, 력포요 교외에까지 나간다고 했다.

선생이 특히 그에게 눈길이 가는것은 학급편성초기부터 학급반장문제가 상정되여서였다.

홍종팔은 아버지가 대외사업을 맡고 몇년동안 다른 나라에 나가있는기간 끔찍이 애지중지하는 외할머니네 집에 가서 생활하다가 초급반2학년때에야 부모들이 귀국을 하면서 다시 평양으로 왔었다. 부모와 떨어져 도시로 왔다 지방으로 나갔다 하는 과정에 자기 학년보다 나이도 한살 넘겼다. 또다시 평양으로 전학을 온 초기에는 농촌학생처럼 순박해보였지만 차츰 간부집자녀의 우월감에 특세를 부리면서 교만스러워진다는 반영이 제기되였다. 물론 학업성적은 그닥 뒤떨어지지 않았고 일반상식수준도 제노라고 할만큼 높았다.

비록 오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의 우단점을 일정하게 알고있는 선정화선생은 학급에도 학업성적에서나 조직생활, 동무들과의 관계에서 그보다 훨씬 더 능력있고 준비된 학생들이 있지 않느냐고 자기 의향을 명백히 했었다.

딱한것은 권길수교무부장선생이 그 문제는 홍부상의 인간적부탁이라는 암시까지 해온것이였다.

다행히 새로 온 교장선생이 그의 견해를 지지해나선데다 홍종팔학생 본인가정에서도 공부에만 전념하게 해달라는 청이 와서 조용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녀선생의 심중은 여전히 찜찜하였다.

일부 교원들이 교무부장선생과 그 학생의 아버지사이가 보통 가깝지 않은것 같다고 은근한 말로 귀띔을 해준것도 의미가 있는것이 아닌가.

민청초급단체위원장 리용… 보통키에 보통체격과 어울리게 특별한 인상은 없지만 무척 령리하고 똑똑했다. 말을 해도 한마디한마디 찍어내듯이 하군 했는데 정확하고 론리정연했다.

집채만 한 기계를 다루는 아버지와는 달리 생물학에 취미가 있으며 다정다감하고 정서가 풍부한 학생이다.

이상한것은 누구한테든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낮추려 하지 않는 홍종팔학생까지도 그앞에서만은 언행을 조심하려 하면서 은근히 눈치를 보군 하는것이였다.

선생은 리용이 학급에서 함께 공부하시는 김정일동지의 인품과 학풍, 도덕품성을 따라배우기 위해 남모르게 마음을 쓴다는것을 이미전부터 알고있었다.

령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지름길도 빨리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

선생은 얼마쯤 번졌던 학적부를 되돌려 첫장을 다시 펼쳤다.

인쇄활자로 찍어내기라도 한것처럼 정중하게 모신 김정일동지의 존함에 경건히 눈길을 멈추었다.

참말이지 자기가 김정일동지께서 공부하시는 학급을 맡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우선 교원경력이 너무도 짧았다.

학교에는 수십년의 교원경력을 자랑하는 경험풍부한 교원들은 물론 다과목실력이 뛰여난 교원도 한둘이 아니였다.

새 학년도를 시작하면서 구역당에서 내려왔던 한 일군이 믿음어린 표정으로 마주앉아 하던 말이 생각났다.

《선생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됩니다. 우리도 신중하게 론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것은 선생의 진취적이고 열렬한 학구심입니다. 대학시절부터 간직해온 변함없는 깨끗한 교육자적인 량심과 헌신성, 이후 학급담임으로서 보여준 참신한 사업경험은 반드시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 신임과 믿음의 말은 오히려 며칠밤이나 더 잠을 못 자게 하였다. 자못 가슴이 설레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산같은 걱정이 더 량어깨우에 실렸기때문이였다.

교원을 왜 선생이라고 하는가. 모르는것을 배워주고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려세워주기때문이 아니겠는가. 한데 내가 무엇을 배워올리고 무엇을 이끌어드린단 말인가.

김정일동지앞에 선생이 특히 더 탄복한것은 지난해에 있은 강연회에서였다. 그날 평양제1중학교에서는 당 제3차대회에서 제시한 인민경제발전 5개년계획전망에 대한 강연회가 있었다.

연사는 말이 청산류수인데다 유모아의 능수여서 어디서나 인기를 끄는것으로 어지간히 알려진 학교교장이였다.

이미 몇곳의 기관, 단체들에 출연하여 소문을 내기도 했지만 보다는 얼마전에 당 제3차대회에서 제시한 인민경제발전 5개년계획전망에 대한 강연인것으로 하여 학교학생들은 물론 교원들까지 강당이 터질만큼 꽉 들어차게 참가하였다.

교무부장 권길수선생이 학교정문앞에다 어느날 어디서 누가 무슨 내용으로 강연을 하게 된다는 선전글을 대문짝처럼 써서 내붙이면서 사전조직사업을 요란스레 하였기때문이기도 하였다.

당대회소식을 아직은 신문이나 방송, 항간에 돌아가는 풍문으로만 이러저러하게 들어오던터라 선정화선생도 커다란 기대와 호기심을 앞세우며 학급학생들의 뒤쪽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속에 한창 류행이던 유난스럽게도 깃이 넓은 새 양복에 아롱다롱한 문양의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기름칠까지 반들반들하게 한 연사는 일분도 드티지 않고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연탁에 나섰다. 강당이 터질만큼 꽉 들어찬데 벌써 흥분이 끓었던지 그는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고 청강자들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침묵으로 청중을 한껏 긴장시키고나서야 그는 비로소 두손으로 연탁모서리를 힘있게 짚으며 첫말을 뗐다.

《여러분!》

강당안이 가볍게 설레였다. 항시 《학생동무들!》하는 말에 익숙이 되였던 학생들은 《여러분!》 하는 귀설은 말이 튀여나오자 한결같이 숨을 죽였다. 강연의 중대성과 무게를 느꼈던것이다.

연사는 잔파도마냥 설레이는 강당안에 더 힘찬 바람을 일구려는듯 돌연히 머리우로 한손을 높이 쳐들었다.

《여러분, 나는 우선 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바쳐주는 학생여러분들한테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강연을 위하여 여러명의 간부동지들은 물론 당대회에 참가하였던 대표동지들도 직접 찾아가 만나보았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이렇게 나로서는 성의있는 제강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두툼한 원고뭉치를 들어 강당의 좌우로 흔들어보이며 바로 그 성의있는 준비로 하여 이미 다른 곳의 청강자들한테 적지 않은 환영을 받았다고 하고나서 계속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다른 청강자들앞에서처럼 이 제강을 졸졸 읽는식으로는 강연을 하지 않겠습니다. 새것에 민감하며 진취성이 강한, 더우기는 신성한 교정에서 매일같이 수업을 받고있는 학생여러분인것만큼 나 역시 교원들이 수업을 하는것처럼 비록 밭은 사람이지만 나의 지식,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솔직하게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자고 합니다.

에― 나는 우선 우리 나라의 지정학적 및 력사발전의 특수성에 대해서 특별히 상기시키고저 합니다.》

그는 그때까지 머리우에 높이 들고있던 원고를 탕― 소리가 나게 연탁우에 뒤집어엎어놓으면서 목소리를 높이였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있는바 우리 나라는 주변의 대국들사이에 숨막히리만큼, 압박을 느낄만큼 불편스럽게 끼워져있습니다. 사방 네면중에 세면이나 바다로 둘러싸여있어서 어디로 씨원스레 나갈데도 없습니다. 그나마 땅의 면적은 겨우 22만평방키로메터, 인구도 많지 못합니다.

력사발전의 오솔길을 거슬러올라가보면 또 어떤가. 남들의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날 때 우리 조상님들―수염을 한발씩 날리는 량반님네들은 갓쓰고 하늘소잔등에 올라앉아 음풍영월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만유인력법칙이요, 증기기관차요 하더니 유럽의 과학과 산업발전력사를 우리 나라 농민들의 호미와 보습, 거리대들에 대비하고나서 제사 흥분하여 연탁에서 물러나 교단우를 왔다갔다 하며 열을 올렸다.

《땅덩어리가 작고 힘도 약하다보니 력대적으로 침략만 받아왔소.

40년간이나 일제의 식민지로 억압받고 짓밟혀오다가 겨우 일어설가했는데 또다시 3년간의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직접 체험한바 파괴될대로 파괴됐소. 오죽하면 100년안에는 일어나지 못할것이라고 했겠는가. 도시는 재더미만 남았고 농민들의 생활은 령락될대로 령락됐소. 남들은 빠다도 먹기 싫어 안 먹는데 우리 사람들은 된장, 간장도 부족한 형편이란 말이요.》

그는 두주먹으로 제 가슴을 쾅쾅 두드리고나서 기름을 발라 한오리도 흘러내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춰올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홱 들어 제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실망할것은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지 않는가.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은금이 가득찬 나라, 에?―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에?》

그는 류창하게 노래까지 한곡조 뽑고나서 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과 수산자원이 풍부한것만큼 광석이나 낙지, 과일 같은것을 외국에 많이 팔아 기계를 사다쓰는것이 나라의 잠재력을 옳게 동원하여 인류의 리상사회라고 하는 사회주의를 빨리 건설하는 길이며 경제의 수익성을 높이고 특히는 령락될대로 령락된 인민들의 생활을 시급히 높이는 길이라고 하면서 돌연 한손을 들어 나들문밖을 향해 무엇인가 힘껏 내던지는 시늉을 하였다.

《자, 받소. 우리 나라의 유명한 사과요!》

청강생들이 한순간 의아해서 문밖을 내다보자 연사는 이번에는 반대켠의 창문을 가리키며 또 《자, 받소. 우리 나라 동해에서 펄펄 뛰는 가재미와 청어요!》 했다.

학생들은 싱글싱글 웃음을 머금었다. 말뜻에 공감해서라기보다 연사의 연기가 재미있어서였다.

맨 앞줄에 앉아있던 권길수교무부장은 투덕투덕 박수까지 쳤다.

그에 힘을 얻은듯 연사는 창문과 나들문을 이쪽, 저쪽 번갈아 가리키며 더 우습강스레 연기를 했다.

《그 나라에 대고 〈옛다, 받아라!〉하면 〈좋소!〉하고 선반, 볼반 등 각종 기계들을 차판으로 실어 들여보내주고 또 쏘련에 대고 〈옛다, 받아라. 까레이스끼의 유명한 야불로크다.〉하면 역시 〈하라쇼!〉 하고 꼼바인, 자동차, 비행기, 땅크를 달라는대로 다 보내줄거란 말이요. 얼마나 좋습니까?》

권길수가 또 박수를 쳤다. 그옆에 앉아있던 몇명의 학생들도 선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뒤따랐다.

선정화선생의 옆에 가까이 앉았던 류룡철도 얼결에 손벽을 한두번 가볍게 치는것이 보였다. 허나 그는 손바닥을 마주댄채 인차 굳어지고말았다.

김정일동지와 시선이 마주쳤던것이다.

선정화선생은 입술을 꼭 짓물며 눈길을 내리깔았다.

당대회에서 밝힌 5개년인민경제계획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강연을 한다고 했는데 저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5개년계획이 전탕 우리것을 다 팔아서 남의 나라것을 사들여오자는 계획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잘못된 견해다. 나라의 공업을 빨리 발전시켜 선진국들의 대렬에 확고히 들어서게 하자는것은 우리 당이 일관하게 내세우고있는 중대과업이 아닌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우리 나라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이다. 이번 당대회에서도 그러하였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직 전쟁이 한창인 때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도 그 문제를 얼마나 명백히 밝히셨는가.

얼굴이 해쓱해지면서 온몸의 피가 굳어지기라도 하는듯싶었다.

다른 곳도 아닌 학생들앞이기때문이였다.

방금전에 연사가 말한것처럼 진취성이 강하고 새것에 민감한, 더우기는 바야흐로 사춘기에 들어서고있는 청년학생들이 아닌가.

얼핏 학생들속에 띠염띠염 섞여앉아있는 교원들을 살펴보았다.

태반이 같은 생각인 모양 심각한 표정들로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나이가 많고 교원경력이 오랜 교원들이 특히 더했다.

그는 저도모르게 두손으로 제 무릎을 꽉 거머쥐였다. 펄쩍 일어나서 무엇인가 한마디라도 웨치고싶은 충격에서였다.

허나 좀처럼 의자에서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사가 자기와는 부모와 자식과도 같은 엄청난 나이차이를 가진데다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할수 있는 사회적경력과 학식, 직급의 높이로 해서였다. 여러날동안 제강을 품들여 준비했을뿐아니라 더우기는 당대회에 참가했던 높은 간부들도 직접 만났댔다고 하지 않는가.

가슴속에서 불덩이같은것이 끓어번졌으나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졌다.

그는 설렁거리던 강당안이 갑자기 잦아들기라도 하는듯 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때까지 신중함은 물론 격노까지 어린 표정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우뚝 일어나셨던것이다.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서신 그이께서는 앞의자의 등받이가녁을 두손으로 꽉 잡으시였다.

이어 쩌렁쩌렁한 음성이 장내를 울리였다.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영문을 몰라 눈이 둥그래진 연사는 두눈만 데룩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불이 펄펄 이는 시선을 연사에게서 떼지 않으신채 침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옛다, 받아라!〉 했다가 〈싫소!〉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연사는 아연하여 입만 반쯤 벌리고 허둥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더욱더 정통을 찌르고드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것은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이라고 하셨습니다. 중공업을 발전시키자면 무엇보다도 기계가 많아야 할게 아닙니까.

한데 우리자체로 기계를 만들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전부 사다가 쓴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다시 말해주었으면 합니다.》

강당안은 폭풍이라도 맞은것처럼 설레였다.

연사의 류창한 언변과 우습강스러운 그럴듯한 연기에 유혹되여 웃음을 터뜨리던 학생들도 비로소 정신을 펄쩍 차렸던것이다.

선정화선생은 저도모르게 의자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댔다.

불시에 창문들이 활짝 열리면서 이른새벽의 숲공기와도 같은 시원한 바람이 왈칵 불어드는것 같았다.

당황해서 중언부언하는 연사의 변명이 어렴풋이 들렸다.

언제 당대회에 참가했던 간부들까지 만나보면서 강연준비를 품들여 했노라 으시되였던가싶게 우에서 받아온 제강을 그대로 전달하다보니 그렇게 되였는데 더 연구해보겠노라고 어물어물하고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황황히 퇴장해버렸다.

연사가 퇴장한 후 학생들도 하나둘 일어났지만 선정화선생은 그린듯이 자리에 그냥 앉아있었다. 너무도 놀라운 탄복, 격동에 이어 얼굴 뜨끔뜨끔하게 하는 자책과 죄책감에서였다.

너는 선생이 아니냐. 선생으로서 연사가 분명 당의 로선과 정책에 맞지 않게 잡소리를 친다는것을 알면서도 왜서 뻐꾹소리 한마디 못했더냐 하는 질책이였다.

얼핏 류룡철학생이 생각났다. 태반의 학생들이 자리를 비웠지만 그도 얼굴을 푹 숙인채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선생은 갑자기 울음같은것이 울컥 치미는것 같았다.

그 심정을 알았던지 류룡철이 먼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선생은 류룡철이 밖으로 나간 다음에도 얼마간을 더 지체하다가 일어섰다.

문밖을 나서던 그는 다시금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푸른 잎을 한창 왕성하게 피우기 시작하는 아름드리비슬나무밑에 방금 강연회장에서 나오던 학생들이 가득 모여서있었는데 그가운데서 김정일동지께서 열정적으로 해설을 하고계셨던것이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최근에도 여러차례 우리 나라가 제발로 걸어나가자면 무엇보다도 공업을 빨리 발전시켜야 하며 그러자면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힘으로 기계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강연회에서 말한것처럼 우리 나라의 원료를 다 내다 팔아서 기계를 사온다고 하자.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나라에는 금은보화를 다 파먹은 페갱들만 남게 되고 우리 인민은 언제 가도 남에게 손을 내밀면서 비럭질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것이다. 결국 연사의 말은 우리 나라를 큰 나라들의 등에 업혀사는 뒤떨어진 나라로 만들려고 한 종파놈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이 있어도 오직 원수님께서 하라시는대로만 해야 하며 우리의 힘으로 기계도 만들고 큰 공장들도 세워서 남부럽지 않게 잘살수 있는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린 바로 그 사회의 주인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우리의 찬란한 미래, 그 희망찬 미래의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서로 돕고 이끌면서 열심히 공부하며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누구인가 박수를 쳤다. 박수갈채가 일었다.

《옳다. 정일동무의 말이 옳다!》

《우리의 미래!》

《주인으로서의 책임, 멋있어!》

학생들의 흥분에 호응하시듯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먹을 들어 힘있게 흔드시였다.

그이를 경건히 우러르는 선정화선생의 눈앞에는 또 한분의 모습이 우렷이 솟아올랐다.

근 30년전 길림의 강연회장에서 우리 민족의 렬등성과 외세의존론을 역설하던 한 민족주의운동거두의 궤변을 한장의 쪽지글로 단호히 눌러버리고 우리 힘으로 조국광복을 이룩해야 한다고 호소하신 10대의 어리신 나이의 위대한 수령님 모습이였다.

저도모르게 김정일동지가까이로 걸음을 옮기던 녀선생은 한쪽에서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서있는 남학생옆에 멈춰섰다.

류룡철이였다.

선생은 다시금 치밀어오르는 자책과 함께 새로운 흥분으로 그의 어깨우에 힘있게 손을 얹었다.…

선정화선생은 학적부를 펴놓은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넓은 운동장에서는 하루공부를 끝낸 학생들이 벌써 축구시합을 하느라 법석이였다. 고급반학생들은 롱구장에서 떠들썩했고 초급반의 낮은학년 녀학생들은 줄넘기를 하느라 귀염성스럽게 깡충깡충 뛰였다. 운동장가녁으로 주런이 줄맞춰세운 철봉대와 평행봉들에도 남녀학생들이 매달려 제마끔의 재주들을 부리느라 승벽이였다.

눈길은 바다처럼 설레이는 운동장의 학생들한테 주었지만 선생의 사색은 또다시 김정일동지께로 달리였다.

그이의 옛 담임교원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던것이다.

11살 어리신 나이에, 그것도 아직은 생사판가리의 전쟁이 한창인 때에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를 내오셨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받으셨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고서라고 했었다.

그가 김정일동지에 대하여 알기 시작하면서 나날이 더 충격이 큰것은 누구한테도 비할바없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충정이였다.

가렬한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서 전승의 앞날을 확고히 내다보시면서 제국주의자들과의 싸움을 령활무쌍히 지휘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지으신 가사 《조국의 품》은 물론 전선에 계시는 아버지원수님께 보내신 가슴 절절히 울려주는 편지와 가사 《축복의 노래》!

언제인가 김정일동지의 초청을 받고 그이의 댁으로 갔던 날 뜨거운 격정속에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그이의 옛 담임교원이 말해주던 편지내용이 삼삼히 떠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을 개인으로가 아니라 인민의 수령으로 보시고 수령님의 건강을 조선인민의 행복과 결부시키며 아버님의 안녕을 바라시는 간절한 축원의 마음이 글줄마다에 뜨겁게 어려있는 편지!

눈굽이 화끈 달아올랐다. 진정 한자한자의 글줄마다에 얼마나 뜨거운 충정의 세계, 수령에 대한 신뢰심이 담겨져있는가!

더불어 목이 꽉 메이게 하는것이 자자구구 맥맥히 흐르고있었으니 그것은 드넓은 바다와도 같은 인간의 정, 불같이 뜨거운 인정의 세계였다.

정말이지 내가 그이께 무엇을 더 보태드릴수 있단 말인가.

가슴이 부풀고 설레일수록 교실안을 유난히 환하게 하던 그이의 모습이 더욱더 우렷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 어디에 계실가? 지난해 강연회날처럼 학생들앞에서 또 중요한 해설을 하고계시지 않을가?)

류룡철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뒤이어 박문규와 주영화, 경일호며 성효정, 장운영, 홍종팔 등 나날이 더 어른스러워지는 모습들이 눈앞을 꽉 채웠다.

선정화선생은 급히 창문앞에서 물러났다. 서둘러 학적부를 거두고 교원실을 나섰다. 호기심많던 학생시절마냥 교실을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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