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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4


최원석에게는 해빛밝은 창문쪽 중간자리가 차례졌다. 옆에는 그와 키가 엇비슷한 리용이라는 학생이 앉았다.

학급민청초급단체위원장인 리용의 아버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쑥대가 무성했던 평천벌에 나가시여 몸소 터전을 잡아주신 평양전선공장(당시)의 직장장이라고 했다.

책상은 모두 석줄이였는데 가운데줄을 사이두고 그 건너쪽 줄에 녀학생들이 앉았다.

주영화는 중간을 좀 지난 뒤쪽켠 책상에 성효정과 같이 앉았다.

홍종팔 못지 않게 키가 제일 큰축인 류룡철은 원석이 앉은줄 맨 뒤에 앉았고 그옆에는 새로 임명된 학급반장 진호삼이 앉았다.

진호삼도 류룡철 못지 않게 키가 크고 언행이 준수하여 초급반에서부터 선생들의 치하를 많이 받았었다.

그가 학급반장으로 발표되였을 때 교원들은 물론 많은 학생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믿음을 주었는데 그것은 홍종팔이 학급반장으로 되는게 아니냐 하던 일종의 우려에서 벗어난때문이기도 했다.

류룡철, 진호삼과 키겨루기라도 하듯 가운데줄 맨 뒤에는 홍종팔이 앉았고 학교의 어지간한 녀선생들과 삭갈리기라도 할만큼 숙성하고 얼굴이 환한 장운영 역시 녀학생들의 맨 뒤쪽에 오가는 통로를 사이두고 홍종팔과 나란히 앉았다.

김정일동지의 자리는 교실 중간보다 좀 앞쪽에 정해져있었다.

그이의 앞에는 수학실력이 뛰여나다고 하는 평양고무공장 작업반장의 아들 경일호라는 학생이 앉았고 뒤에는 박문규가 앉았는데 원석은 그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첫날 수업은 4시간이였다.

원석은 그 4시간수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새 학교에서의 첫날 수업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저도모르게 자꾸 홍종팔과 장운영한테로 눈길이 가군 했기때문이였다.

정말이지 산골내기인 자기를 이 학교에서 공부하게 힘써준 그 고마움을 일생인들 잊겠는가. 더우기 친근감이 느껴지는것은 주영화로부터 그들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선뜻 옆에 가까이 다가서기도 어려울만큼 상당한 수준의 학생들로 생각했었는데 정작 만나고보니 이전 중학교학생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것이였다. 그 학교에도 전쟁이나 또 불가피한 가정사정들로 하여 자기 학년에서 공부 못한 나이가 썩 많은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였던것이다.

마음속으로는 목이 메이게 감사했지만 어떻게 표현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바재이기만 하다가 두시간수업이 끝난 다음의 휴식시간에도 학급동무들 태반이 교실밖으로 나간 후에야 무척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가 《고마워.》 하고 한마디 했을뿐이였다.

자못 긴장되기도 했는데 한것은 수업시간은 물론 휴식시간에도 김정일동지께서 자기를 자주 지켜보시는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자연히 그이께로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일체 말씀이 없으시였다.

휴식시간에도 옆의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간단히 한두마디씩 물으셨을뿐 조용히 책만 읽으시였다. 대체로 전시간에 배운 과목들이거나 다음시간에 배워야 할 교과서였는데 어떤 때는 부피두툼한 참고서같은것을 꺼내 펼치기도 하시였다.

더우기 수업시간에는 시선 한번 다른데 돌리시는것을 보지 못했다. 각별히 눈길을 끄는것은 교원들의 설명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학습장에 기록하시는것이였다. 다른 학생들보다 두세배의 분량을 적으시는듯싶었다.

교원이 수업도중 질문을 하면서 답변할수 있는 학생은 손을 들라고 하면 다른 학생들과 같이 조용히 손을 들군 하시였다.

4시간수업이 끝나자 그이께서는 학급반장 진호삼과 초급단체위원장 리용에게 가만가만 몇마디 하시고는 인차 학교민청실로 가시였다.

학교민청위원장은 민청사업을 전임으로 하는 교원이 맡아하게 되였는데 새 학년도가 시작되면서 전 위원장선생이 시민청으로 승급되여 간 후 아직 다른 선생이 내려오지 않아 민청부위원장이신 김정일동지께서 대신하고계셨던것이다.

리용과 진호삼도 둘이 함께 담임선생한테로 갔다.

개학 첫날이여서 론의할 문제들이 적지 않은 모양인지 퍼그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학급학생들은 복습도 하고 옆의 동무들과 소곤소곤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주영화도 옆에 바싹 붙어앉은 성효정과 무슨 말인지 다정스럽게 속살거리고있었는데 도간도간 입을 가리우며 웃기도 하고 옆구리를 가볍게 치기도 하였다.

원석은 아직 깊이 사귄 동무가 없어서 마지막시간에 배웠던 물리교과서를 펼치였다. 이렇다할 목적은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려고 한 일이라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뒤동무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책가방안에서 어제 저녁부터 보기 시작한 흥미있는 물리응용문제집을 꺼내 조심스레 펼치였다. 옆에 앉았던 리용이 담임선생한테 가서 없는것이 마침이기도 하였다.

생각같아서는 장운영의 곁으로 다가가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차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으나 여러 학생들이 보는 앞이라 참는수밖에 없었다.

응용문제집을 펼쳐놓긴 했지만 어제 저녁까지는 그렇게도 재미있던 책이 도무지 머리에 안겨오지 않았다. 마음이 더더욱 부풀면서 이름할수없이 설레였던것이다. 수업시간에는 공부에 열중하여 그렇게까지는 몰랐는데 정작 하루수업을 끝내고나니 비할바없이 모든것이 꿈같이만 느껴지면서 아직도 현실이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시금 고개를 들어 김정일동지께서 앉으셨던 책상을 바라보았다. 앉아계셨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그이의 모습이 눈앞에 안겨드는듯싶었다. 다른 학생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수수한 학생복을 단정히 입으신 모습이였다.

너무도 수수한 옷차림에 원석은 저도모르게 몇번이나 학급동무들을 둘러보았었다.

실상 눈에 뜨이는 이채로운 차림새가 없는것은 아니였다.

홍종팔만 보아도 일부 사회청년들속에서 류행인 수입제의 진회색 캬바진바지에 반짝반짝 약칠까지 한 가죽구두를 신었다.

그와 류사한 옷차림새의 학생이 그외에도 또 있었다.

원석을 더욱 놀라게 한것은 김정일동지께서 수업이 끝나자 민청실로 가시기 위해 조용히 싸놓으신 푸른색의 책보와 신고있는 신발이였다. 이미 신으시던 흰색운동화를 깨끗이 빨아 신고계셨던것이다.

이름할수 없는 친근감이 확 치밀어올랐다.

하긴 담임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교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누구보다 반기며 정차게 바라보시던 그이의 안광이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느껴졌던가.

원석은 갑자기 교실안이 물속처럼 조용해져서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눈길이 뒤쪽으로 쏠리고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류룡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퍼그나 숭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음음― 마른기침을 톺고있었다.

이윽하여 그는 두주먹을 가슴앞으로 들어올리며 격동된 목소리로 시랑송을 시작했다.


나는 해방된 조선의 청년이다

생명도 귀중하다

찬란한 래일의 희망도 귀중하다

그러나 나의 생명, 나의 희망, 나의 행복―

그것은 조국의 운명보다 귀중치 않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박수가 터졌다. 성수들이 난 박수였다.

무슨 계기로 류룡철이 갑자기 공화국영웅 리수복의 시를 랑송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원석은 속이 찌르르했다.

문학소조가 얼마나 위신있는지 모른다고 하던 영화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던것이다.

《멋있다!》

《룡철이 최고야, 최고!》

《여여, 미래의 작가, 시인선생!》

교실이 떠나갈듯이 왁작했다.

또 한수 읊으라고 저마다 소리쳤다.

사기가 올라 어깨를 으쓱거리던 류룡철은 떠들썩하는 동무들한테 손을 척 흔들어보이더니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박문규를 지명했다.

《동지들, 고맙습니다. 아주 고맙습니다. 하지만 인간생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례의범절이 있지 않습니까. 이 〈문학제자〉는 나의 존경하는 〈스승〉인 박문규선생한테 다음차례를 넘깁니다.》

또 와― 하는 환성과 함께 박수사태가 일었다.

들썩들썩 일어나는 학생도 있었다.

《좋아좋아.》

《여 룡철이, 괜찮은데!》

《문규, 거 있잖아. 동무가 제일 좋아하는 시.》

좀 서슴는듯싶던 박문규도 인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가 들썩하도록 큰숨을 들이키고나서 문득 최원석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원석은 그것이 학급에 새로 나타난 자기에 대한 본능적인 일종의 경계심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약간 끄덕여보였다.

박문규는 힘이라도 얻은듯 싱긋 웃어보이고나서 책상들사이로 성큼 나서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어 그의 입에서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구절이 터져나왔다.


철호 무덤을 판다

소나무밑에 영남의 무덤을…

파다가는 한숨 쉬고

한숨 쉬고는 또 파고…

어찌 이곳에 그를 묻을줄 알았으리―

그 생을 즐기던 소년을

이 나라의 강물인양 그 맑은 마음을

그 조국애에 끓던 심장을!


교실안은 차츰 숭엄한 정적속에 잠겼다.

학습장을 펴놓고 부지런히 숙제문제를 풀던 학생들도 고개를 들고 박문규한테로 눈길을 모았다.

오직 수학의 세계밖에 모른다는 맨 앞줄의 키가 작은 고추알 경일호도 만년필을 꼭 쥔채 까딱 움직일줄을 몰랐다.

자감상태에 푹 빠진 박문규의 목소리가 금시 울음이라도 터칠듯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목소리는 우뢰라도 몰아올듯 한 격정으로 폭발하였다.


어느 고개 어느 골짜기에

어느 나무 어느 돌밑에

이름도 없이 그들이 묻히였노?

이 나라의 초부들이여

부디 삼가 나무를 버이라―

우리 선렬의 령을

그 나무 고이 지키는지 어이 알리

부디 삼가 길옆에 놓인 돌 차지 말라―

우리 선렬의 해골이

그 돌밑에 잠들었는지 어이 알리!


모두가 고개를 숙이였다. 입술을 꽉 짓물며 눈굽을 적시는 녀학생들도 있었다.

최원석도 눈굽이 뜨끔해났다.

시의 랑송이 끝났으나 모두들 너무 격동되여 박수칠념도 못했다.

성효정은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어내기까지 하였다. 역시 감정이 풍부하고 감각이 예민했다.

교실안에 휘감기는 무거운 공기를 몰아내련듯 히물떡거리기 잘하는 류룡철이 또 자리에서 일어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자, 동무들.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포된지가 언제인데 이 〈기량발표회무대〉를 남자들만 차지해서야 되겠습니까. 다음차례는 우리 학급의 아름답고 재간 많고 똑똑한 녀동무들한테로 넘깁니다.》

류룡철이 두손을 활짝 펴서 녀학생들을 정중히 가리켰는데 그 손끝은 성효정쪽으로 향했다.

《어마나, 난 몰라!》

성효정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부러 줄난 태를 부렸다. 그러면서도 우습강스럽게 한눈을 찡긋거리면서 그냥 히물떡거리는 류룡철에게 싫지 않게 눈까지 빨았다. 예술영화 《정찰병》에 나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민군정찰병을 놈들의 추격에서 구원해주는 고마운 남녘땅어머니의 역은 물론 어느 한 외국영화에서 적들에게 체포되여 악착스러운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무참히 희생되는 녀주인공의 최후장면을 아주 방불하게 연기하는 그였다.

류룡철이 왜 더 너들거리며 성효정을 지명했고 효정은 또 그대로 룡철이와 눈맞춤까지 해가며 부러 태가락을 부리는지 제꺽 알아차린 학급동무들은 일시에 와 일어나면서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합쳤다.

《빨리빨리.》

《나오시오.》

《빨리빨리.》

《나오시오.》

아침이슬을 함뿍 머금은 채송화마냥 청신하고 아름다운 성효정의 얼굴이 흥분으로 새빨개졌다.

오늘이야말로 기가 딱 막히는 연기로 동무들을 한껏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것이다.

한데 그가 금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찰나에 일은 뜻밖으로 번져졌다. 녀학생들의 맨 뒤줄에 앉아있던 장운영이 먼저 조용히 일어났던것이다.

놀랍고도 의아한 지어 희한해하기도 하는 눈길들이 일제히 그한테로 쏠렸다. 좀해서는 이런 《무대》에 성큼 나서지 않고 늘 점잔을 빼군 하였기때문이였다.

그는 어딘가 심각해보이는 표정을 짓고나서 방금전에 눈맞춤을 하며 동무들을 웃긴 류룡철과 성효정을 깔끔한 눈매로 내려다보았다. 이어 그 눈길은 통로를 사이두고 옆에 앉은 홍종팔에게로 돌려졌다. 홍종팔이 의미있게 고개를 슬쩍 끄덕여주었다.

명랑한 웃음으로 들썩하던 교실안은 모든것이 가뭇없이 잦아들기라도 하는듯 잠잠해졌다.

최원석은 불시에 가늠할수 없는 랭기를 느끼면서 의아한 눈길로 교실안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장운영은 아랑곳없이 최원석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 눈빛이 어찌나 의미심장했던지 원석은 당황할 정도였다.

불시에 온 학급의 시선이 저한테로 쏠리는것 같아 얼굴이 확 달았다.

장운영은 또 한번 홍종팔과 의미심장한 눈맞춤을 하고나서 저으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남동무들이 좋은 시들을 읊어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뜻깊은 오늘 동무들앞에서 새삼스럽게 말하고싶은것은 우리는 이제는 소년단시절도 멀리 떠나왔으며 철부지들도 아니라는것입니다.

인생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각자 스스로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인간생활, 그 생활의 세계는 우리가 미처 상상도 할수없이 복잡다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록 잘 읽지는 못하지만 소설의 한 장면을 랑독하려고 합니다.》

정말 수업시간에 설명하는 녀선생처럼 점잖고 위신이 있었다.

그는 아주 여유있게 책가방속에서 두툼한 소설책 한권을 꺼내 쳐들었다. 외국장편소설 《안나 까레니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정작 책까지 펼쳐드니 좀 주저되기라도한 모양 다시금 교실안을 살펴보았다. 입술을 꼭 감쳐물면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남학생들처럼 큰숨을 내불고나서 저로서도 놀랄만큼의 큰소리로 읽기 시작하였다.

《행복한 가정은 어디나 서로 어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나름으로 불행하다.

오불론스끼네 집안은 온통 뒤죽박죽이였다. 남편이 전에 그들의 집에 가정교사로 있던 프랑스녀자와 관계가 있은것을 알게 된 안해는 더는 남편과 한집에서 같이 살수 없노라고 그에게 선포하였다. 이러한 상태는 벌써 사흘째나 계속되고있어 당사자들인 그들부부는 물론이고 가족이나 하인들까지도 모두 거북한 심정에 휩싸여있었다.》

차분한 정적속에 하나같이 숨죽이며 귀를 기울이였다. 《안해》요, 《남편》이요 하는 표현부터가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것이다.

잘 읽지 못한다고 했지만 장운영의 랑독은 어느 방송원의 목소리가 아닐가싶을만큼 류창하고 랑랑했다. 그는 여유작작하게 학급동무들을 슬쩍슬쩍 곁눈질로 살펴보기까지 하면서 더욱 진지하게 감정을 잡아 읽어나갔다.

《안해는 방에 들어박힌채 나오지 않았고 남편은 사흘째나 집을 비웠다.

아이들은 버릇이 사나와져서 온 집안을 뛰여돌아다녔다. 가정교사인 영국녀자는 가사를 맡아보는 녀관리원과 다투고나서 자기 동무에게 새 일자리를 구해달라는 편지를 써보냈다.》

격동적인 시랑송과는 달리 소설랑독은 인차 지루감이 생겼는지 소곤소곤하는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운영인 저 소설을 통채로 통달하다싶이 했어.》

《쏘련소설이 아니냐. 아버지부터가 쏘련문학숭배자라고 하던데…》

《나쁠것도 없지 뭐. 사회주의사실주의문학… 고리끼도 쏘련작가가 아니니. 너도 〈해연의 노래〉 읽었지? 〈어머니〉랑?》

최원석은 책상우의 한곳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무엇인가 가량할수 없는것이 량어깨를 내리누르는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던것이다.

박문규나 류룡철의 문학실력도 그렇고 학급동무들의 학과실력은 물론 사회와 인간생활에 대한 인식과 견해, 일반적수준이 저로서는 감히 따라설수 없으리만큼 아득히 높아보였다.

더우기 리수복영웅의 시를 그렇게 멋지게 랑송한 류룡철이 아직 문학 및 연극소조에 들지 못했다던 주영화의 말은 일종의 위압감까지 몰아왔다.

한편 가늠할수 없는 불안감이 저녁연기처럼 스며들기도 했다.

도고하면서도 위압적인 장운영의 자태와 홍종팔과의 눈맞춤에 이어 저를 바라보던 그 의미심장한 눈길로 해서였다.

하다면 시랑송전에 경계의 빛으로 얼핏 자기를 살펴보던 박문규의 시선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펀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새 학년도를 맞아 새로이 학급을 편성했으니 저저마다 자기의 재기를 한번 시위해보이려는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오락회가 단순히 자기들의 장기를 보여 학급동무들을 즐겁고 유쾌하게 해주자는것만일가?

그렇게 생각하자 최원석은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서 무엇인가 철써덕 무너지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홍종팔과 장운영, 류룡철과 박문규, 성효정… 이들사이에는 명백히 보이지 않는 언덕, 장벽 같은것이 가로놓여있었다.

물론 그가 다니던 산골학교의 일부 학생들속에서도 마을과 마을간에 가끔씩 나타나던 현상이였으나 최원석으로서는 전혀 예상밖의 일이였다.

그는 비로소 박문규의 그 경계심어린 눈빛이 분명 자기가 장운영과 홍종팔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 학교에 오게 되였기때문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는 본의아니게 어느쪽에든 치우치지도 말고 오르지도 말아야 할 두 언덕사이에 끼운듯 한 불안과 긴장감으로 하여 저도 모르게 한숨을 호―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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