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 회


제 1 장


3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주영화는 거의 반시간이 지나서야 조용히 나타났다. 어른들이 입는것과 비슷한 하얀 옥양목반팔샤쯔에 람색 멜끈치마를 단정하게 입었다.

함치르르한 머리채를 쌍태로 땋고 유난스럽게도 탄탄해보이는 가슴에 맵시있게 싼 책보를 안은 모양이 쌍태대신 약간의 파마머리만 했어도 틀림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숙성한 처녀로 보이기 십상이였다.

체격이 좋은 어머니를 닮아서 열다섯살 같은 나이건만 최원석보다 오히려 키가 더 커보이고 보름달처럼 둥실한 얼굴에 눈이며 코며 입 등이 다 큼직큼직한게 원석에게 비하면 손우누이의 인상이였다.

하긴 같은 해에 태여났지만 생일부터가 두달이나 앞선터여서 고향산골의 어린시절에도 매양 누이구실을 해오던 주영화였다.

평양에 이사를 온 날 누구보다 기뻐하면서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집안팎청소를 왁왁 해대는 그를 감동스럽게 지켜보던 어머니가 마음 흐뭇해하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저애가 벌써 저렇게 자랐느냐고 탄복하면서 꽃으로 치면 함박꽃이나 다리아 같다고 치하를 했댔는데 원석은 나날이 더 그 비유가 신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얼굴생김새와 체격에 어울리게 그는 열가지 생각끝에 한마디를 한다는 말을 들을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무게가 있었다.

사람들이 겨우 어길만큼 배좁은 단층마을골목길로 눈길을 착 내리깔고 걸어오던 주영화는 활짝 열어놓은 대문앞에 이르러 주춤 멈춰섰다.

원석은 저도모르게 성큼 마주 걸어나가며 반기였다.

《에, 이제 와?!》

반갑고 고맙다는 말이 나무람같기도 했다.

주영화는 얼굴을 살짝 붉히였다.

전에는 전혀 그런적이 없었다.

정주 산골마을에서마냥 아무때든지 스스럼없이 뛰여들던 마당이였고 《어머니, 나 물!》 하면서 꺼림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문도 제마음대로 열군 하던 집이였다.

주영화는 그에는 아랑곳 않고 앞치마에 손을 씻으며 달려나오는 원석의 어머니한테 깍듯이 아침인사를 했다.

《어머니, 밤새 안녕하셨어요?》

《오, 편안하구말구.… 원, 이런 고마울데라구야. 다 큰앤데 제발로 못 찾아가겠냐만 학교길안내까지 해주니 우리 원석이 정말 오늘일을 일생 잊지 않을게다.》

원석이 주영화네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는것은 확실했지만 개학전날인 어제저녁녘까지도 학교에 정식 통지가 오지 않아 가슴을 조마조마조이던 어머니였다.

《참 어머니두, 안내는 무슨 안내예요. 원석동무와 같이 첫 등교를 하라는건 울아버지와 엄마의 당부예요.》

원석은 울타리너머로 고개를 돌리며 씩 웃었다.

(체, 내가 무슨 철부지라고 그런 당부를 해!)

말을 돌리려면 좀 그럴듯한 말로 돌릴것이지 유치원시절에나 통할 말을 한다는 생각에 입술까지 삐죽 내밀었다.

말은 어머니한테 하지만 눈길은 온통 원석이한테 가있는 영화가 그것을 못 알아볼리 없었다.

귀뿌리까지 꽈리빛이 된 주영화는 일순 좀 새침해졌다.

어머니가 제꺽 눈치를 채고 아들대신 사과를 하듯이 영화의 옷자락이며 치마멜빵을 새삼스레 손다듬해주면서 치하를 했다.

《넌 앞으로 이름난 화학자가 되겠다지? 거 뭐라던가?… 꾸린(큐리)가 하는 유명한 녀자과학자처럼… 말을 들으니 지금 나라에선 과학자, 기술자들을 금싸래기처럼 여긴다더구나. 나라사정이 어렵지만 다른 나라들에 류학도 보내구… 그래서 난 우리 원석이가 물리학을 열심히 배우겠다는걸 기특히 여긴다. 글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참…》

어머니는 무척 기쁘고 긍지스러워하였다.

《영화는 화학, 우리 원석인 물리… 너의 아버지가 말했지? 화학과 물리는 친척간이나 같다구. 촌수로 따지면 4촌간쯤 된다고 하던 말이 더 마음에 들더라니까. 원, 그것 참!》

어머니는 다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원석에게 당부했다.

《아무튼 공불 힘껏 해라. 어제 저녁 라지오를 들으니 황해제철소랑 강선제강소에서랑두 기술자들이 무척 수고들 한다고 하더라. 그래, 나라가 빨리 발전하려면 과학자, 기술자들이 많아야지. 새로운것을 자꾸 만들어서 사람들이 일을 헐하게 할수 있게 하는 재간둥이들 말이다.… 당에서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불사르라는 구호를 왜 내놓았겠느냐.》

《호호호.》

영화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나서 놀란체 했다.

《어머닌 당정책을 뜨르르 아시네. 정말 대단해요!》

《원, 무슨 말을. 그저 라지오에서 들은 소리다.》

《그게 당정책해설이구… 당정책학습이란 말이예요.》

어머니가 손을 내젓는 바람에 마당안에는 또 한바탕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얼마간 그렇게 웃고나서 주영화가 얌전한 태를 지으며 정겹게 말했다.

《어머니, 그럼 우린 떠나겠습니다.》

《오, 어서 그래라.》

어머니는 연방 손을 저으며 대문밖으로 따라나왔다.

주영화가 앞서고 원석은 그의 뒤를 스적스적 따라걸었다.

골목길을 다 빠져 큰길에 나올 때까지 그들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아침해가 동평양상공에 높이 떠올라 거리는 유난히도 밝고 청신했다.

원석이네처럼 새 학년도 개학날을 맞은 남녀학생들로 하여 거리는 더욱 이채롭게 흥성거렸다.

하긴 온 나라는 지금 지난해까지 계획했던 3개년인민경제계획을 성과적으로 끝낸데 이어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제1차 5개년계획 첫해과업수행의 마지막돌격전에로 과감히 들어서고있었다.

길옆의 전주대에 높이 올라앉은 한아름이 넘을 은빛확성기에서 동평양지구 살림집건설장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조립식건설성과소식을 왕왕 전하고있었다. 이어 새 학년도 개학을 맞이한 온 나라 학생들을 축하하는 축하방송과 함께 《소년단행진곡》의 노래소리가 꽝꽝 울려나왔다.

최원석도 자연 기분이 들떴다. 그 기분을 더욱 바람태우련듯 큰길옆의 대형선전화 하나가 눈앞으로 확 안겨들었다.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

지난해 12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선제강소를 찾으신 이후 그곳 로동계급들이 천리마운동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다는 소식은 최원석도 매일같이 듣고있었다.

선전화옆에는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 쿵쿵 울려주는 구호판이 세워져있었다.

《증산하고 절약하여 5개년계획을 기한전에 넘쳐 완수하자!》

원석은 주영화를 슬쩍 살펴보았다.

대형선전화를 가까이 하는 그의 발걸음도 떠지는게 헨둥했다.

알릴듯말듯 어깨가 치솟았다. 방금전 어머니가 라지오에서 들었다고하며 하던 말이 되새겨졌다.

(기술자들의 수고!… 나라가 빨리 발전하려면 과학자, 기술자들이 많아야 한다!)

과학과 기술!

그것은 곧 공부가 해결한다.

배우고 배우고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자!

이제는 평양의 고급반 학생으로까지 됐는데 머리가 터지도록 힘껏 공부해보자!

언제인가 고향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할 때 읍거리에 나갔다가 얼굴뜨끔하게 당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어머니의 약을 구해놓았으니 빨리 가져가라는 군인민병원의사인 이모의 전갈을 받고 30리길을 걸어 읍거리에 들어섰던 원석은 마침 앞에서 걸어가고있는 자기 키만 한 남학생한테로 급히 다가가며 물었다.

《말 좀 묻자마. 여기 군병원이 어디에 있니?》

학생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더니 어딘가 놀라는 기색으로 원석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왜서인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면서도 어느 길로 어떻게 가라고 길만은 친절하게 대주었다.

원석은 아무 생각도 없이 《고마워.》 하고 인사까지 깍듯이 차리고 돌아섰다.

한데 원석이 둬걸음 걸었을 때 학생은 어른처럼 엄한 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가만, 너 어느 학교 학생이냐?》

원석은 의아해서 어느 학교 학생이라고 어름어름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학생은 더욱 엄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찍어던지듯이 책망했다.

《너의 학교에서는 상급학교 학생들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말하라고 교양하던?… 난 고급중학교 학생이야!》

원석은 그때에야 모닥불을 들쓴것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여 어떻게 그앞에서 도망치듯 했던지 몰랐다.

그때부터 원석은 읍거리에 나갈 때마다 드문히 마주치게 되군 하는 고급중학교 학생들을 매양 어른처럼, 때로는 그이상으로 까지 여기군 했었다.

그처럼 높이 보이군 하던 고급중학교 학생, 그것도 정주산골이 아니라 온 나라가 부러워하는 평양의 고급반학생이 된것이 참말이지 꿈만같이 여겨지는 그였다.

(그래, 이제부턴 어른처럼 행동해야 해, 어른구실을 해야지!)

가슴이 벅차올라 큰숨을 한껏 내불었다.

주영화가 의아하여 쳐다보았다.

그러자 원석은 쑥스러워하며 왕청같은 말을 뱉았다.

《〈원숭이〉한테서 편지왔어. 우리 마을에서도 이젠 한집도 빠짐없이 다 협동조합에 들었대.》

《원숭이》란 고향마을의 주영화네 바로 옆집에 살던 소꿉친구인데 원숭이처럼 나무잡이를 잘해서 붙은 별명이였다.

그 나무타는 솜씨에 가을철이면 영화네 집 아래목에도 정주지방특산이라고 하는 왕밤알들이 몇바가지씩 펴놓아지군 했었다.

《응, 나한테도 왔…어.》

영화는 전에없이 말끝을 어물어물 더듬어삼켰다.

얼핏 원석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의 귀뿌리가 또 빨개졌다.

영화는 수집은듯 얌전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도그럴것이 그는 또 그대로 남모르게 바재이는것이 있었다.

며칠전부터 이제는 원석은 물론 학급의 남동무들한테 꼭꼭 언어례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야 언니와도 같은 나이인 장운영이처럼 위신도 있어지리라 여겼다. 남에 대한 대접이 곧 자기가 받는 대접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랬습니다.》, 《옳아요.》 하고 입속으로 외워보군 했다.

제 입안의 제 혀끝을 놀리는 말인데도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어색하고 거북해서 괜히 가슴이 쿵당거리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좀전 원석의 집에 갔을 때도 그랬다.

실은 새벽일찍 일어나 학교갈 준비를 할 때도 그랬고 밥을 먹으면서도 원석을 만나 해야 할 첫말을 몇번이나 외우고 또 외웠었다.

《빨리 가자요.》

《등교준비 다 됐습니까?》

(아니, 아니야. 너무 어색해. 《어서 가자요.》가 훨씬 나아.)

집을 나서서도 걸음걸음 외웠다.

했으나 정작 원석의 집앞에 이르러 눈앞에 그와 마주치자 입이 딱 굳어졌다. 심장만이 터질듯이 쾅당거려 끝내 원석은 마주 보지도 못한채 그의 어머니한테만 인사말을 옮기였다.

《어머니, 밤새 안녕하셨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굴이 뜨끔했다.

그는 입술을 꼭 감쳐물었다가 이내 뒤말을 이었다.

《협동조합명칭을 〈광명〉이라고 고쳤대…요. 밝은 앞날이라는 뜻에서… 말이예…요.》

그리고는 원석을 살짝 일별했는데 그 얼굴이 또 딸기빛으로 새빨개졌다. 그때까지 의아했던 최원석은 고개를 들며 《하!》 하고 이름할수 없는 소리를 내불었다.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오늘 아침 그가 왜 그렇게 전에없이 별나게 놀았으며 더우기는 마지막말끝을 마무리하기를 그렇게도 힘들어하면서 입안에서 우물우물 얼버무리군 했던지를 깨달았던것이다.

저도모르게 가슴이 후두둑 뛰면서 어깨가 들썩 들리였다.

그는 《하!》 하고 또 한번 속바람을 내불었다.

어른대접을 받게 된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어린 감정의 폭발이였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던지 짐짓 고개를 기웃거렸다.

하다면 이제부터는 나도 《옙》을 써야 하는가?

원석은 인츰 도리를 저었다.

아무리 해도 자기는 그럴것 같지 못했다. 아니, 그러고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한집안식솔과도 같이 지내던 정은 물론 고향마을에서의 정다웠던 그 모든 생활의 추억들이 순간에 다 감쪽같이 사라지기라도 할것 같아서였다.

종로거리쪽 큰길은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로 더욱 붐비였다.

시원하게 여름옷차림을 한 젊은 부부가 서너살쯤 되여보이는 총각애의 량손을 나란히 잡고 다정스럽게 마주 걸어오고있었다.

행복스러운 녀인이 꽃같은 웃음을 날리며 애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너무 늦지 말아요. 이제 그 나이에 대학에라도 가겠어요?》

그 말에 애아버지는 호함진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기 선전화를 좀 보오. 모두들 천리마를 타자고 하지 않소. 천리마는 이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면서 윽윽 힘내기만 해선 못 타!》

《글쎄 천리마도 몸이 건강해야 더 잘 탈게 아니예요.》

《당신도 참, 내 몇번이나 말했소. 지금은 일이 힘들어 병나는게 아니라 무식하고 몰라서 더 크게 앓는 세월이라구!… 그렇지? 우리 귀염둥아, 아버진 꼭 천리마를 타고 저 하늘을 훨훨 날아야겠다!》

애아버지는 돌연 아들애를 공중 쳐들고 빙그르르 맴을 돌았다.

아들애가 캐드득거리고 녀인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안 보는것 같았지만 주영화도 눈과 귀를 모아 그네들을 살폈다.

무식해서 더 크게 앓을수 있는 세월!

쿵― 하고 가슴에 마치는것이 있었다.

그들과 헤여지자 주영화는 사색에라도 잠긴듯 또다시 잠자코 걸었다.

얼마쯤 그렇게 걷다가 이제는 아주 자신있는 어조로 물었다.

《저, 원석동문 고급반을 졸업하면 김일성종합대학으로 가겠지요? 물리학부로!》

원석을 면바로 마주보며 물었는데 그 눈에는 이름할수 없는 절절한 빛이 어려있었다.

사실 그가 화학에 열렬한 희망을 두게 된것은 원석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물리에 남다른 취미를 가진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버지도 자주 타이르군 하지 않았는가. 큰 집을 지으려면 우선 기초부터 잘 다져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인생의 목표를 잘 정하고 그 기초를 걸음걸음 잘 다져나가는 사람만이 성공할수 있다고!

그런 의미로 보면 원석이가 참 똑똑하다고 여러번 치하를 했었다.

원석은 영화의 뜻밖의 질문에 잠시 얼떠름해있다가 싱긋 웃으며 부러 반말로 대답했다.

《그거야 동무도 같지 뭐. 동무도 화학학부로 가야 할게 아니야.》

주영화는 활짝 웃었다.

(어쩜 내 마음을 그렇게 알아줄가!… 그래, 화학학부. 우린 대학에도 같이 가게 될거야, 꼭!)

주영화는 고급반에로의 첫 등교길이 마치도 룡남산마루에 높이 솟은 김일성종합대학 정문길로 향하는듯 환희롭기도 한데다 저는 《옙》을 썼지만 원석은 변함없이 예전의 말투를 그냥 써주는것이 오히려 눈물이 날만큼 고맙고 좋았다.

그러자 그때부터는 무엇인가 자꾸 말을 하고싶어졌다.

예전 고향마을의 향기그윽한 숲속길에서마냥 한껏 달음박질을 쳐보고도싶고 손잡고 씩씩하게 걸으며 《아름다운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 하고 목청껏 노래라도 부르고싶었다.

허나 입술을 꼭 감쳐물었다. 이제는 옹근나이로 열다섯살하고도 여덟달, 고향마을 할머니들의 말이 옛적의 그 나이면 시집을 가서 집안살림을 도맡아 해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맙게도 최원석은 그 심정도 제꺽 알아주는가 보았다.

씨물씨물 웃으면서 주영화의 옆에 가까이 붙어서며 제 먼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우리 학급에 그… 교육성 부상의 아들도 같이 공부한다는게 정말이야? 홍종팔.》

《응. 우리 학급에 왔다니까.》

《그가 운영의 말이라면 그렇게 옴짝 못해?》

《글쎄, 다들 그렇다고 해. 만나보면 알겠지만 우리와는 썩 달라.》

무슨 말인가 더 하려던 영화는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버지는 물론 그들한테 원석의 문제를 절절하게 부탁은 하면서도 잘 믿어지지가 않았던 일이 꿈같이 성사되여 다시금 최원석과 같이 공부를 하게 되였다는 기쁨에 대학공부도 함께 할수 있으리라는 기쁨까지 겹쳐 그만에야 옛적대로 반말이 튀여나갔던것이다.

최원석은 또 씩 웃었다. 영화의 말투에는 아랑곳없이 그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영화한테서 홍종팔과 장운영이 자기의 전학을 위해 아버지들을 아침저녁으로 못살게 굴었다는 고마운 말은 목메이게 들었지만 아직 직접 만나보지는 못한 그였다.

(어떤 동무들일가?… 어떻게 인사를 차려야 할가?)

정말이지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영화도 방싯이 따라웃었다.

그도 최원석이 이제 그들과 어떻게 상봉을 할가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던것이다. 그러고나니 마음은 더욱 편안하고 말도 자연스러워졌다.

원석이 오늘부터 함께 공부하게 될 학급동무들에 대해 알고싶어 그렇게 변죽을 친다는것을 깨닫자 자기의 불찰같기도 하여 소곤소곤 인물소개를 시작했다.

《어제도 말했지만 종팔동무와 운영동문 열여섯살이예요. 키도 크고 아주 멋쟁이들이예요. 종팔동문 학급반장을 시키려고 하는것을 본인이 거절했다는 말도 있어요. 공부만 직심스레 하겠다고 했다는거예요. 사실 학급반장으로서는 좀 약하긴 해요.》

원석은 종팔의 학급반장문제는 여하간에 학급학생들모두가 공부에 보통 결심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긴장해졌다.

한편 호기심이 나서 조심스레 물었다.

《참, 우리 학급모두 초급반에서 함께 공부한 학생들인가?》

《아니, 한 여라문명은 종팔동무처럼 그리구 동… 동무처럼…》

영화는 동무라는 말을 좀 더듬었다. 지금껏 다른 남학생들한테는 자연스럽게 써오던 말이였으나 최원석앞에서는 어딘가 좀 멋한감이 들었던것이다.

그는 입술을 살짝 감빨고나서 상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무처럼 다른 학교에서도 왔어요. 고급반에 올라오면서 학급수를 더 늘이고 학급인원을 전반적으로 재조절, 재편성했거든요.》

영화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만수동쪽에서 남녀 세 학생이 나타났던것이다.

최원석처럼 체격이 단단하고 다부져보이는 남학생과 늘씬하게 키가 쭉 빠진데 어울리게 기름을 바른것처럼 윤기나는 머리칼을 옆으로 슬쩍 빗어넘긴 친구 그리고 탄탄하게 땋아내린 쌍태끝을 빨간 리봉천오리로 댕기처럼 곱게 묶은 녀학생이였다.

녀학생이 먼저 영화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저었다. 그러는 녀학생을 보는 순간 원석은 입을 반쯤 벌렸다.

콤파스로 뺑 돌려 그은것처럼 동글한 얼굴이 신통히도 깜찍하고 귀여운 인형모상이였는데 손을 저으며 반기는 자태가 얼마나 진지하고 열렬했던지 목이 꺽 메일 정도였다.

두 남학생들도 머리우로 손을 들어 흔들며 반가와했다. 그리고는 인차 돌아서서 저희들끼리 다정스레 걸어갔다.

원석은 영화가 혼자였다면 틀림없이 그들이 기다렸다가 즐겁게 함께 걸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영화가 동무들의 호감을 사고있으며 관계가 좋으리라는 믿음에 마음이 훈훈해져 한마디 던졌다.

《이제 보니 영화, 너 괜찮은데!》

《뭐가?》

《오, 그저 그렇단 말이야.》

《호호호. 너두 참.》

영화는 저도 같이 《너》라고 부르며 싫지 않게 눈을 빨았다.

원석의 말뜻을 못 알아차릴리 없는 그였던것이다. 더욱 기분이 좋아 끊어졌던 말을 다시 이었다.

《저 키큰 동무말이예요, 류룡철이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해방전부터 유명한 작곡가예요. 계몽기가요도 많이 쓰고 해방후는 물론 특히 전쟁시기에도 훌륭한 곡을 많이 지어서 아버지원수님의 높은 치하를 받았대요.》

《그래? 그럼 저 친구 음악은 뚝 뗐겠구나?》

《아니, 저 동문 작가가 되여볼가 한다는 말이 있어요.》

《작가?!》

《응, 그옆에 동무 있잖아요. 박문규라고 하는데 그 동무 아버지가 시도 잘 쓰고 희곡도 잘 쓰는 작가거든요. 저 동무들은 형제처럼 딱 붙어다니는데 아마 희망도 동무따라 강남간다는 식인가 봐요. 열렬한 우정이라 할가…》

《그럼 저 박문규란 친구도 작가를 희망한다는거요?》

희한하기도 한김에 최원석의 입에서도 《옙》이 튀여나왔다.

주영화는 웃음을 발씬 머금으며 계속했다.

《문규동문 초급반에서부터 문학소조원인데 룡철동무한테도 같이 소조에 들자고 한대요. 우리 학교 문학 및 연극소조에.》

《문학 및 연극소조?》

《응, 참 우리 학교에 문학소조가 있는데 위신있어요. 재담이랑 단막극이랑 연극대본도 써서 공연해요.

소조활동에는 김정일민청부위원장동무도 자주 참가하군 하는데 연극 〈패전장군의 말로〉나 〈보천보의 홰불〉은 부위원장동무가 직접 창작지도해서 완성한 작품들이예요. 지난해에는 풍자극 〈《북진》처방〉을 또 창작공연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몰라요.…

소조원들을 아주 엄선해서 받아들이기때문에 룡철동문 아직 소조원이 되진 못했지만 이제 고급반에서는 들게 될거예요.》

최원석은 더욱 놀라와 물었다.

정일동무가 작품도 써?》

주영화는 더욱 자랑스레 이었다.

정일동문 연극대본뿐아니라 시도 쓰고 노래도 짓는데… 피아노는 또 얼마나 잘 타는지 몰라요.》

최원석은 그 소리에 우뚝 걸음을 멈췄다. 너무도 희한한 생각에 한참이나 주영화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펀뜻 떠오르는것이 있어 물었다.

《학교에 문학소조말고 다른 소조들도 있어?》

주영화는 그저 들뜬 기분으로 대답했다.

《생물소조와 음악소조가 있어요.》

그러자 최원석이 일순 실망어린 어조로 물었다.

《화학소조는 없어?》

주영화가 화학을 열렬히 희망하기에 묻는 말이였으나 실지는 자기의 희망인 물리소조는 없는가 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느닷없이 등교길에 앞서 어머니가 하던 말과 함께 방금전 길가에서 만났던 어린애 아버지가 환희에 들떠 하던 말이 귀전에 울렸다.

주영화는 뒤늦게야 원석의 내심을 알아차리고 좀 미안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 화학과목담당선생님은 앞으로 화학소조도 조직해야겠다고 하셨어요. 참, 그땐 물리소조도 조직할거예요.》

주영화는 화학이나 물리소조가 조직되지 못한것이 자기 잘못이기라도 한것처럼 화학과 물리소조를 운영하려면 각종 실험기구와 설비들부터 마련해야겠는데 아직은 나라사정이 어려운 때가 아니냐고 안타까운 설명을 했다.

최원석은 기쁘고 즐거운 날 아침 괜히 주영화의 기분을 상하게 할것같아 제사 아는체를 하며 제꺽 말머리를 돌렸다.

《오, 그러면 저 녀동무도 문학소조원 아니요? 박문규랑 룡철이랑 같이 다니는걸 보니 말이야?》

《호호호.》

주영화는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고나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것 같진 않아요.… 동물학에 취미가 있다던지… 그도 고급반에 올라오면서 우리 학급에 왔는데 룡철동무네 집과 가까운데서 살아요. 그래서인지 노래 특히 예술영화라면 오금을 못 펼 정도로 빡 한다는거예요.》

《예술영화?… 그럼 배우밭에두 한다릴 건네짚었다는거겠구나 뭐. 집안에 누구 배우라도 있는게지?》

주영화는 또 소리를 내여 웃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저 동무 아버진 의사이고 어머닌 방직공이야요.》

그다음 그들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도그럴것이 학교와 학급의 실정을 대체로 알게 된 원석은 누구보다도 이제부터 한학급에서 함께 공부하게 된다는 김정일동지에 대해 무척 많은것을 묻고싶었는데 무슨 말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주저되였던것이다.

눈치빠른 영화도 원석의 그 심정을 재빠르게 포착했지만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초급반에서부터 김정일동지와 몇년동안을 함께 공부해오긴 했으나 한두마디로야 어떻게 다 알려줄수 있겠는가.

첫 등교의 날이라 모두 자기 교실들부터 찾아갔는지 학교운동장은 퍼그나 조용하였다.

주영화는 원석을 교장실로 안내하였다.

교장실에는 교장선생과 함께 교무부장 권길수선생도 있었다. 개학날이여서인지 두 선생이 다 깨끗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정히 맸다.

두리두리한 얼굴에 눈빛이 부드러운 교장선생은 인정이 있고 무던해보였다. 다년간 시당에서 교육사업을 맡아보다가 상급당의 조치로 며칠전에 이 학교 교장으로 왔었다.

교장선생에 비하면 교무부장선생은 퍽 엄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였다. 체격부터가 강마르고 체소했다. 일생 웃음이라고는 지어볼것 같지 않을만큼 얼굴표정은 물론 눈빛이 차게 느껴졌는데 그것을 가리우기라도 하련듯 작을사한 두눈에는 어딘가 억지스러운듯 한 잘 어울리지 않는 웃음기가 담겨져있었다.

최원석을 보자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교장선생보다도 그가 더 반가와했다.

《오, 홍부상동지가 특별히 부탁하던 학생이구만. 아버지가 평양하늘을 지켜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공화국영웅이라지? 잘 도와주라고 홍부상동지가 몇번이나 강조했는지 몰라!》

마지막말은 교장선생이 들으라는지 력점을 박으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장선생도 이미 알고있었던듯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원석은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 얼굴 한번 본적은 없지만 홍종팔의 아버지 홍부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보다 고마운 사람은 주영화의 아버지였다. 장운영의 아버지인 장초부상에게 오죽 간절히 부탁을 했으면 홍부상이 학교선생들한테까지 그렇게 직접 당부를 했겠는가.

교장선생이 송수화기를 들고 누구인가를 찾았다.

곧 까만 치마에 눈부시게 하얀 저고리를 입은 녀선생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교장선생보다 먼저 교무부장선생이 앞에 나섰다.

《선정화선생, 홍부상동지가 각별히 부탁하던 학생이요. 그 공화국영웅의 아들!》

최원석은 굽석 인사부터 했다. 담임선생님이구나 하는 반가움에서였다. 녀선생도 활짝 웃으며 반가와했다.

교무부장선생이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선생은 참 복이 있소. 부럽거던. 홍부상동지도 선생에 대해 많은걸 묻더란 말이요.》

최원석은 얼핏 교장선생을 살폈다. 직급상 명백히 웃사람인 교장선생이 앉아있는데 교무부장선생이 너무 나서는게 아니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교장선생이 이 학교에 온지 며칠 안되여서일가? 더우기 내심 좀 멋한것은 교무부장선생이 말끝마다 홍부상, 홍부상 하는것이였다.

최원석은 조심스레 옆에 서있는 주영화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모든 일이 제가 바라던대로 되여서인지 그는 그저 만족하게 웃는 얼굴이였다.

이윽고 교장선생이 자기 직책을 깨달은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녀선생에게 침착하고 무게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정화선생, 인차 수업이 시작되겠는데 어서 교실로 데리고 가서 수업준비를 시키십시오.》

녀선생이 자기 집 맏딸과 같은 정도의 아래사람이건만 교장선생은 깍듯이 존경어를 썼다.

최원석과 주영화는 약속이라도 했던듯 꼭같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선정화선생을 따라 교장실에서 나왔다.

수업시작전이라 교사안은 꺼질듯이 조용하였다.

담임선생과 주영화의 뒤를 따라 걷는 최원석은 걷잡지 못하게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였다.

오늘 등교길에서 만났던 류룡철과 박문규, 성효정이라는 녀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위해 그처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홍종팔과 장운영은 어떻게 생겼을가? 학교적으로도 눈에 뜨이는 멋쟁이라지!

그러던 그는 은연중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김정일동지생각에서였다.

내가 정말 그 학급에서 공부하게 된단 말인가?!

어떻게 나들문이 열리고 교실안에 들어섰는지 몰랐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