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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제 1 장


2


최원석은 반시간전부터 마당에 나와 서성거리고있었다.

열다섯살나이로서는 키가 약간 작은 편이지만 대신 어깨가 딱 바라지고 청동조각상처럼 체격이 딴딴해서 어지간히 조련찮은 인상이였다.

(왜 이리 꾸물거리는거야?)

그는 하얗게 회칠을 새로 한 나무판자울타리너머로 경상동쪽을 바라보았다.

초조한 마음에 불질을 하듯 종로네거리에서 뻐스와 화물차, 승용차들이 어서 길을 내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그칠줄 모른다.

설겆이를 끝낸 어머니가 허리에 행주치마를 두른채 호미를 찾아들고 나와 남새밭머리에 앉았다.

남새밭이래야 대문에서 토방마루로 들어오는 길량옆으로 손바닥만큼씩 하게 마당을 일군 터밭이였다.

다른 집들에서는 꽃밭도 만들고 과일나무도 심었지만 원석의 어머니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온 다음날로 제손으로 금을 긋고 곡괭이질을 해가며 이악스럽게 밭을 일구었다.

이른 봄철이면 시금치와 부루, 쑥갓, 도마도와 오이 같은 남새를 심고 그 한벌농사가 끝나면 김장용무우와 배추를 심었다.

어머니와 아들 두 식구는 실컷 먹고도 남아 옆집들에 한아름씩 나누어주군 하였는데 그 재미에 어머니는 해마다 남새농사를 더 부지런히 짓군 하는것이였다.

원래 원석이네는 평안북도 정주군(당시)에서 살았다.

정주군에서도 읍거리에서 퍼그나 떨어진 깊숙한 산골농촌마을이 고향이였다.

심장병이 심한 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다가 2년전에 아버지의 옛 사단장의 도움으로 평양으로 이사를 왔었다.

원석의 아버지는 해방전까지 고향인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었었다. 공부는 못했지만 머리가 총명한데다 날파람이 있어 정주일판에서는 손꼽히는 씨름군이였고 걸음발이 빨라 황천왕동이라는 별호로도 불리웠었다.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정주읍은 물론 선천, 룡천, 평양 등 안 가는데 없이 나돌아다녔는데 신의주에서 리활이라는 소문난 비행사를 만나 홀딱 반해버렸다.

리활의 인줄로 평양학원 항공과에서 공부를 한 아버지는 전쟁시기 비행부대 련대장으로 싸우다가 중화상공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도 적의 비행기를 육탄으로 들이받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여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었다.

벌써 푸른 잎들이 퍼그나 퍼지기 시작한 배추밭고랑을 얼마쯤 타고나가던 어머니는 허리가 아픈듯 몸을 일으키면서 담너머 큰길을 살피였다.

원석의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비꼈다.

(어머니도 참!)

그는 괜히 짜증을 내는척 했다.

《에이, 다 큰 처녀가 이렇게 느려 뭣에 쓰겠어.》

그러자 어머니가 펄쩍 나무람을 썼다.

《무슨 소리냐, 다른 집들에선 아직도 식전인데.》

그들 어머니와 아들은 지금 오늘부터 고급반의 한학년 한학급에서 같이 공부하게 될 주영화를 기다리고있었다.

주영화는 원석이와 한고향 동무인데 원석이네보다 썩 전인 정전직후에 아버지가 내각으로 소환되여 평양으로 이사왔었다. 집도 시내에서는 퍼그나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 있는 2칸짜리 기와집이였다.

산골마을태생이긴 했지만 원석의 아버지와 달리 영화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향학열이 무척 높았다고 한다.

째지게 가난한 농사군집자식이였으나 그는 이를 사려물고 공부하여 당시 서해북부지구에서 소문이 났댔다는 오산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였다. 거기서 지금 문화성 부상인 장초와 사귀였었다.

풀죽도 제대로 못 먹는 집자식이라 영화의 아버지는 농업발전에 희망을 걸었고 어지간히 벌이가 괜찮게 되는 정미소집아들이였던 장초는 리광수와 향토시인 김소월을 무작정 숭배하면서 유명한 작가가 될 꿈을 꾸었다고 했다.

학급은 서로 달랐으나 그들 사이는 일생 잊지 못하는 우정으로 남달리 가까왔는데 한것은 주영화의 아버지 학급에 장초가 미친듯이 반한 녀학생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장초는 애인과의 사랑의 다리를 주영화 아버지를 통하여 아름답게 채색하군 하였고 영화 아버지는 또 그대로 두 벗들사이에서 《방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맡아주었다.

해방전 카프작가들의 영향도 일정하게 받아 얼마동안 감옥살이도 한 장초는 나라가 해방되자 문학예술부문에 뛰여들어 문화건설에서 주목되는 인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쏘련(당시)류학을 거쳐 문화성 부상의 중요한 직책에까지 올랐다. 그러자 그는 옛 우정을 잊지 않고 주영화의 아버지가 내각으로 올라오는데 팔걷고 나섰었다.

예상밖으로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올라온 주영화에게 더욱 놀라운 꿈같은 일이 생겼다.

장초의 딸 장운영이 다니는 평양제1중학교에 전학을 했는데 그 학급에 어버이수령님의 자제분인 김정일동지께서 공부하고 계셨던것이다.

가슴 알찌근한것은 퍽 뒤늦게 평양행을 한 원석이가 다른 학교에 전학했으며 그곳에서 고급반입학시험도 친것이다.

주영화는 며칠동안 남모르게 가슴을 앓았다.

그러던중 펀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중학기간 내내 한책상에서 공부한 장운영의 아버지 장초가 교육성 부상 홍준모와 아주 허물없는 사이라는 생각이였다.

더우기 신심이 있는것은 아버지들이 같은 부상이여서인지 장운영과 홍준모의 아들 홍종팔이 사이도 무척 가깝다는것이였다. 부모들이 외국류학과 대외사업으로 다년간 다른 나라에 나가 생활하다나니 그들은 그 과정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재학기간 공간이 나게 되였다. 그래서 주영화나 다른 동무들보다 나이가 한살씩 우였는데 그런것으로 하여 같은 학년에서도 《어른》대접을 받았다.

물론 장운영은 주영화와 한학급이였지만 홍종팔은 학급이 달랐다. 한데 고급반에 올라오면서 홍종팔이 주영화네 학급으로 오게 된다는 말이 수군수군 돌기 시작했다. 주영화네 학급을 새로 담당하게 되는 선정화담임교원이 실력이 높은데다 홍종팔이 장운영과 한반에서 공부하고싶어 저의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이미 교무부장 권길수선생과 합의가 되였다는 말도 비밀이 아니였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권길수선생이 그가 고급반에 올라가면 학급반장을 시키려 한다는 말까지 나돌아 교원, 학생들속에서는 한동안 홍종팔에게 관심의 눈길이 모아졌었다.

사정 여하간에 일은 마침이라고 생각한 주영화는 곧 홍종팔의 아버지인 교육성 부상 홍준모를 초점으로 맹렬한 작전을 폈다.

우선 아버지를 통하여 옛 동창생이며 문학예술사업담당 부상인 장초를 아침저녁으로 든장질하게 하는 한편 장운영의 팔을 붙잡고 열렬한 우정을 호소하였다.

주영화에게 있어서는 일생일대의 중한 일이라고도 할만큼 바라는 희망과 호소였지만 일은 홍준모부상의 말 한마디로 너무도 쉽게 제꺽 해결되였다.

최원석이 입학시험은 다른 학교에서 쳤지만 입학을 한 조건에서 전학의 방법으로 주영화네 학교로 옮길것이며 그것도 주영화와 한반에서 공부시키라는 전화가 내려왔던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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