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어느덧 1957년의 여름방학도 다 끝나가는 8월 28일 새벽이였다.
동이 터서 사위는 훤했지만 아침해가 솟으려면 아직 퍼그나 시간이 있었다.
새벽일찍 일어나시는 아버님을 따라 5시면 영낙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시는
푸른 숲이 무성한 정원은 물론 평양의 거리도 별로 더 조용한가싶었다.
온 하루 환희와 열기로 끓던 어제의 일들이 떠오르시였던것이다.
어제는 우리 나라에서 두번째로 진행된 력사적인
정원수들사이사이로 내다보이는 만수대와 장대재기슭에 띠염띠염 널려져있는, 아직은 전쟁의 상처를 채 가시지 못한 단층살림집들의 지붕우에서는 어제 띄웠던 공화국기들이 그대로 날리고있었다.
새벽일찍 밖으로 나오신
어제밤에도 늦게야 불이 꺼졌댔는데 벌써 불빛이 환했다.
어제도 아버님께서는 밤이 퍽 깊어서야 댁으로 돌아오시였다.
비취색야외등빛이 대낮처럼 밝히는 댁마당에 들어서신 아버님의 존안은 기쁨과 함께 흥분이 어려 환하시였다.
수수한 갈음옷을 입으신
《정일아, 난 오늘 천만금이 생긴것보다 더 큰 힘과 신심을 얻었다. 힘과 신심을!》
《나도 오늘 공민의 한사람으로서 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남포쪽으로 나갔댔구나. 큰길가까운 한 선거장에서 춤판이 벌어졌는데 너무 흥겹기에 그냥 지나갈수가 없어서 차를 세우지 않았겠냐.
춤추던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며 달려왔는데 글쎄 한 할머니가 나를 찬찬히 여겨보다가 하는 말이 〈수상님! 얼굴이 많이 축간것 같은데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종파놈들이 인민생활이 어찌구어찌구 떠들어도 이제는 다 잘살게 되였으니 일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기지 종파놈들이 이기겠습니까? 념려마십시오. 우리는
얼마나 불같은 정, 진심의 정이 넘치는 인민의 목소리인가!
잘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얼핏
그러자 그 할머니도 증조할머님처럼 느껴지면서 가슴이 후더워나시였다.
《아버님께서는 전쟁의 그 어려운 날 락원기계제작소 한 녀당원의 말을 들으시고도 그렇게 큰 힘을 얻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싸워 이기기만 하면 복구건설은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고, 일제놈들이 그렇게 마사놓고 간것도 2~3년동안에 복구해가지고 잘살았는데 전쟁이 끝나면 또 복구해가지고 잘살수 있으니 너무 근심하시지 말라고 했다는 그 말을 전 잊을수가 없습니다. 장산리녀당원이 했다는 말도 그렇고.》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 인민은 참으로 훌륭한 인민이고 훌륭한 스승이다. 그래서 난 이민위천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는거다. 그리구… 그런 인민을 위해서 혁명을 더 잘하고 사회주의도 더 빛나게 건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종파들을 철저히 없애고!》
《아버님께선 이미 지난해 력사적인 당 제3차대회에서 사회주의를 더 빨리 건설하여 인민들이 잘살게 할 중요한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셨고 또 당중앙위원회 8월전원회의에서 종파놈들에게 단호한 철추를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강계아저씨(최현)랑
《음, 그래… 그래!》
올해에 들어와 더욱 놀랍게 성장하는
경제와 문화, 군사는 물론 중대한 정치문제까지도 의견을 나누고싶어지시군 하는
뜨거운 믿음과 만족감이 실린
저으기 흥분된, 하면서도 침착한 음성으로 말씀드리시였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기뻐하시는 오늘 제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오던 생각을 하나 말씀올리겠습니다.
아버님께선 방금전에도 훌륭한 인민을 위해 혁명을 더 잘하고 사회주의도 더 빛나게 건설해야겠다고 하셨는데 저도 아버님을 따라배워 꼭 우리 혁명, 조선혁명을 책임지는
이건 어제오늘사이 다진 결심이 아닙니다. 제가 첫걸음마를 뗄 때부터 하신 어머님의 당부이며 마지막유언이 아닙니까.》
《고맙소!》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하지만 더 힘주어 반복하시였다.
《고맙소!》
가슴속에서 불보다 뜨거운것이 왈칵 터져나오셨던것이다.
아버님께서 주시는 다함없는 믿음은 물론 어머님과
《고맙다. 고맙다, 정일아!》
《아버님!》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잠자리에 드셨댔는데 인차 다시 일어나 한밤을 꼬박 밝히신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셨던것이다.
댁주위를 다 돌고나신
《어머님!》
고급반학생이 된 모습을 어머님께서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시였을가.
인민학교(당시), 초급반을 넘어 어언간에 가슴벅차게 하는 고급반학생!
마음은 어느 사이 어머님묘소로 달리셨다. 기쁨과 슬픔이 생길 때면 기쁨과 아픔을 안고 찾아가군 하시는 어머님의 묘소였다.
어서 떠나라 재촉하듯 아직 잠을 채 깨지 못한 종로거리를 꿰질러 넘어오는 시내의 첫 출근뻐스가 경적을 가볍게 울렸다.
《어디 보자. 네가 이젠 고급반 학생이란 말이지!》
어머님의 음성이 귀전에 울리는듯싶으셨다.
《예, 어머님.》
《저도 이젠 어린시절을 넘어섰습니다. 〈아동〉이 아닙니다!》
《그렇지. 민청원이 아니냐. 학교민청부위원장이지.》
《어머님께서 가르치신대로 내 나라, 우리 조선을 위하여 힘껏 배우겠습니다. 아버님을 따라 아버님께서 구상하시는 부강조국, 온 세상이 부러워할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아버님께서 구상하시는 부강조국! 온 세상이 부러워할 인민의 나라!… 믿는다, 믿구말구.… 그래, 등교준비는 다 했냐?》
《황순희어머니랑 명화어머니랑
《그래, 그래야 한다. 아버님의 그 뜻을 깊이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어머님.》
서문거리에 촘촘히 들어앉은 단층마을의 살림집 창문들에서도 불빛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골목길어구의 야외공동수도가에 물길러 나온 녀인들의 모습이 유난스러웠다.
《어머님, 전 어제밤 아버님께 빨리 대학공부를 하고싶다고 말씀올렸습니다.
《조선혁명을 책임지는 주인이 되겠다고 했단 말이지.… 잘했다. 꼭 그래야 한다. 그러자면 아버님의 뜻,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아버님께서 무엇을 생각하시고 무엇을 걱정하고계시는지부터 알아야 해. 그리고 아버님께서 시련에 찬 우리 혁명을 무슨 힘으로 어떻게 줄기차게 이끌어오시였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 참, 너의 그 말을 들으니 지난해 네 생일날에 찾아와 조용조용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누나. 아버님께서 열네살나시던 해에 압록강을 건느며 부르셨다던 〈압록강의 노래〉말이다.…》
한해전 아침에 있은 일이였다.
례년보다 생각이 더 많으신
열네살!
자기 나라를 알기 위해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셨던 아버님께서는 그 나이에 이르러 다시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지 않으셨던가.
이제는 어엿한 민청원이며 몇년후에는 고급반과정도 마치게 될
부푸는 희망과 설레이는 가슴 진정할바 없는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 …
종로거리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장대재에 이르니 푸른 물결 출렁이는 대동강이 한눈에 안겨드시였다.
둔덕우에 다 오르시여 숨을 한껏 들이쉬신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목적… 내 목적!)
방금전 어머님과 나누신 마음속의 대화가 다시 울려왔다.
(아버님의 뜻과 마음… 아버님께서 생각하고 걱정하시는 문제!)
옳다.
이제부터는 더 힘껏, 더 적극적으로 아버님을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한껏 들레이시였다.
하다면 지금 아버님께서 제일 걱정하고계시는 문제는 무엇일가?
아버님께서 시련에 찬 우리 혁명을 무슨 힘으로 어떻게 줄기차게 이끌어오셨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고도 하셨지?
무슨 힘으로 어떻게?!…
어디선가 울려오는 려명의 종소리에 가슴이 쿵 울리셨다.
다시금 마음속으로 외우시였다.
(무슨 힘으로 어떻게?!…)
어느 사이 대동강너머 아아히 펼쳐진 문수벌의 동녘하늘에 아침노을이 붉게 피였다. 드넓은 대동강을 사이두고 선명히 드러나는 거리거리의 모습과 더불어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그 모습은 점점 더 평양의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