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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회


제8장 마지막의병대


2


김정환은 필석이를 흔들었다.

《필석이, 필석아, 정신을 차려라. … 응, 필석아…》

의병들모두가 달라붙어 그를 불렀지만 필석은 기갈든 입술을 우물거릴뿐 정신차릴념을 못했다.

무삼이가 왜놈의 총탄에 복사뼈 절반이 패인 필석이의 발을 붙잡고 눈물을 덤벙덤벙 쏟았다.

필석이의 상처를 보며 김정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상처는 치명적이였다.

발목의 복사뼈가 절반이나 뭉청 없어져 피가 멎지 않고 흘러나오고있었다.

더 생각할새가 없었다. 빨리 필석이부터 구원해야 했다.

김정환은 대오의 로정을 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곁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의병들에게 말했다.

《자, 빨리 들채를 만들고 약우물골의원에게로 가자.》

무삼이가 부랴부랴 나무를 골라 들채를 만들었다. 필석이를 들채우에 눕힌 무삼이가 앞채를 잡았다.

그 다음 약우물골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가시덤불이며 물도랑이며를 모조리 꿰지르면서 곧장 달리고달렸다.

뒤쪽에서는 벌써 여러번이나 사람이 바뀌였지만 무삼이는 약우물골에 이르는 전 로정에서 앞채를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약우물골의원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이슥해서였다.

한밤중에 들어선 의병들을 놀랍게 바라보던 한민은 부상당한 필석이를 보고 팔을 걷고 나섰다.

한동안 필석이의 험상한 상처를 살펴보고난 한민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력력했다.

《총상이 너무도 깊구려.》

무삼이가 한민의 손을 잡았다.

《의원님, 필석이가 죽습니까? 예? 제발 필석이를 살려주십시오.》

무삼이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깊은숨을 들이키고난 한민이 괴로운 어조로 말했다.

《이 총각을 살리자면… 당장 다리를 잘라야겠네.》

《예? 다리를 자른단 말씀이오이까?》

김정환이 너무도 놀라 소리를 지르다싶이 했다.

어느새 사랑채로 나와 가슴을 붙안고 지켜보던 달미의 외마디비명소리가 울렸다.

허나 이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그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민의 침통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혈과 뼈가 절반이나 잘리운 밑부분이 썩으면서 우로 올라올거네. 그러면 이 총각은 끝장이야.》

무삼이가 눈물을 흘리며 한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의원님, 우리 필석이는 꼭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한생 그를 업구 다닐수 있으니 살려만 주시오이다. 필요하면 내 다리라두 잘라 바치겠소이다.》

김정환이 정신을 잃고있는 필석을 부둥켜안았다.

《필석아…》

필석이에게서는 아무러한 대답도 없었다.

창백한 얼굴로 고요히 누워있는 필석을 내려다보는 김정환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필석을 바라보던 김정환은 전령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필석이의 부상을 두고 누구보다 상심해버린 전령감이 공허하리만큼 눈을 크게 뜨고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말을 들었지요? 다리를 잘라야 필석이가 산답니다.》

전령감이 꺽꺽 막히는 흐느낌을 가까스로 누르며 망연하여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럼 잘라야지, 잘라야 하구말구. 어휴, 녀석이 운명도 기구하구나. …》

김정환은 한민을 바라보았다.

《의원님, 어서 필석이를 구원해주십시오.》

한민은 한동안 김정환을 마주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준비를 갖추었다.

한민은 침혈을 찾아 신경을 죽여버렸다.

이어 불에 달군 칼로 살점을 허벼내기 시작하였다.

어렴풋이나마 정신을 차린 필석이가 심한 아픔으로 모지름을 썼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필석이의 신음소리가 의병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듯싶었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광경이였다. 필석이의 다리가 끊어져나가는것을 지켜보는 의병들은 자기가 당하는 아픔처럼 모두 땀투성이가 되여버렸다.

손으로 입을 막은 달미의 얼굴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한민의 긴장한 얼굴에 진땀이 흘렀다.

숨막히는 정적속에 뼈를 깎는 소리와 필석이의 신음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드디여 한민이 필석이의 다리를 잘라냈다.

의병들이 끊어진 필석이의 다리를 보며 눈물을 머금었다.

달미의 흐느낌소리가 애절하게 울렸다.

한민이 필석이에게서 물러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는 손을 씻기 시작했다.

한동안 필석이의 끊어진 다리를 쓸어만지며 눈물을 흘리던 김정환이 의원에게로 다가섰다.

《의원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한민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젊은이가 용케 견디여냈으니 다행이요. 이젠 새살이 돋아나고 상처도 아물거요.》

그 말을 듣는 모두의 얼굴들에 안도의 빛이 어리였다.

목숨은 건지였으니 불행중 다행이였다.

침상에 누워있는 필석의 땀젖은 얼굴에도 평온한 기운이 어려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한민이가 김정환에게 눈길을 돌리며 근심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금방 다리를 자른 병자를 데리고 이제 어떻게 험한 길을 가겠소.》

김정환은 조용히 웃어보였다.

《의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살았는데야 그쯤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필석이를 잘 돌보면 그만입니다.》

《아무쪼록 조심들 하시오.》

《고맙습니다.》

한민을 마주보는 김정환의 얼굴에는 방금전까지 필석이의 부상으로 하여 쌓였던 모든 시름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린듯싶었다.

그러던 김정환의 눈길이 어느 한곳에서 굳어져버렸다.

다른 의병들도 몹시 긴장해졌다.

동구밖쪽에서부터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아직 첫닭이 홰를 치기도 전인데 개들이 저리도 기승스럽게 짖어대는데는 그 까닭이 있을것이다.

그 까닭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의병장, 개짖는 소리가 심상치 않구만.》

전령감의 근심스러운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마을의 로인 하나가 황겁히 뛰여들어왔다.

《동구밖에 왜놈군대가 나타났수다.》

김정환은 아연하였다. 어떻게 돼서 왜놈들이 이곳에 나타날수 있는가?

이 순간 김정환에게는 구치산에서부터 벌어진 일들을 놓고보면 꼭 왜놈들의 계략에 말려든듯 한감이 들었다.

물론 김정환은 버들이를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버들이의 련락을 받고 행하는 몇차례의 접전이 심상치를 않았다.

급한 고비를 넘기고 그것을 기어이 확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김정환이 의병들쪽으로 머리를 획 돌리며 다급히 웨쳤다.

《자, 빨리 산으로!》

《알겠소이다. 덕쇠야! 들채를 잡아라.》

덕쇠가 들채를 잡아들자 무삼이는 서둘러 필석을 둘쳐업었다.

의병들이 싸움태세를 갖추며 밖으로 뛰여나갔다.

마지막으로 집문을 나서며 김정환이 한민의 손을 잡고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의원님, 우릴 치료해주었다는걸 놈들이 알면 욕을 보실수 있으니…》

《우리 걱정은 말고 자네들이나 주의하게.》

《의원님, 우리 의병들은 의원님을 잊지 않을겁니다. 조심하십시오.》

김정환이 의병들의 뒤를 따라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한민은 붉어지는 눈굽을 훔쳤다.

달미가 그들이 나간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밖에서 의병들의 화승총소리가 먼저 울렸다.

아마도 자기들이 화를 입을가보아 의병들이 왜놈들을 먼저 따돌리는것이라는것을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의병들의 총소리에 뒤이어 왜놈들이 쏘아대는 신식보총소리들이 자지러지게 울려왔다.

여기에 맞받아 울리는 화승총소리들이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총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 ×


새벽안개가 자욱한 수림속을 헤치며 의병들이 달렸다.

뒤에서 그들을 향하여 총소리들이 몰방으로 터졌다.

왜놈들쪽으로 사격을 가하며 다급히 웨치는 김정환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무삼이, 빨리 뒤로 빠지라. 긴양지산쪽으로 방향을 잡아라.》

필석이를 업은 무삼이가 나무들사이의 가랑잎을 마구 걷어차며 달렸다.

김정환과 의병들이 그를 엄호하며 뒤를 따랐다.

왜놈들은 기를 쓰고 따라왔다.

골짜기우로 정신없이 달리던 무삼이가 중턱에서 돌부리에 걸려 필석이를 업은채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얼른 몸을 일으킨 무삼이는 필석이가 상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나서 왜놈들을 향하여 사격을 들이댔다.

왜놈들이 쏘아대는 총알들이 그의 주변에 날아들었다.

무삼이는 필석을 몸으로 막고 왜놈들을 향하여 맞받아 사격했다.

김정환이와 의병들이 나무나 바위뒤에 자리를 잡고 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는 왜놈들을 제지시켰다.

골안에서 요란한 총소리들이 그냥 울렸다.

김정환은 재빨리 형세를 판단해보았다.

이대로 그냥 왜놈들을 달고 달리다가는 큰 피해를 입을수 있었다.

김정환은 골짜기의 지형을 둘러보았다.

의병들은 골짜기중턱에 있고 왜놈들은 아직 골짜기바닥에 있었다.

김정환은 의병들에게 소리쳤다.

《물러서지 말라. 여기서 왜놈들을 막으라.》

김정환은 커다란 진대나무뒤에 자리를 잡고 왜놈들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박주룡과 전령감이 무삼이와 조금 떨어진 아래쪽의 바위뒤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의병들도 산개되여 왜놈들에게 사격을 들이댔다.

왜놈들은 의병들의 총에 맞아 련속 너부러지면서도 악을 쓰고 기여올랐다.

형세가 점점 의병들에게 불리해졌다.

수적으로 많은 왜놈들이 련속 총질을 해대며 나무나 바위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한치한치 가까이하고있었다.

의병들은 한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왜놈들을 향해 총탄을 날렸다.

필석이도 쑤셔나는 상처의 아픔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속에서도 입술을 사려물고 왜놈들에게 총을 쏘려고 무진 애를 다 쓰고있었다.

무삼이는 그러는 필석이에게 왼심을 쓰며 그에게 왜놈들의 총탄이 덜 미치도록 자리를 옮겨가면서 사격을 들이댔다.

어느 한 바위뒤에 필석이를 옮긴 무삼은 왜놈병졸들을 지휘하는 장교놈을 향하여 사격했다.

련속 두발이나 쏘았는데도 장교놈은 여전히 살아서 병졸들을 내몰고있었다.

《에익, 개같은 놈.》

화가 나서 그놈을 노려보며 다시 철알을 재우던 무삼이는 난데없이 뒤쪽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무삼이는 뒤쪽으로 총부리를 홱 돌렸다.

뒤쪽 멀지 않은 나무뒤에서 줄무늬양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무삼이를 향해 신식권총을 겨눈 상태였다.

무삼이는 뚝 굳어졌다.

자기를 향해 겨누어진 권총에서 금시 총알이 튀여나오는듯 한 환각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찰나에 그 총의 주인인 양복쟁이가 무삼이에게 눈을 부라리며 급하게 손을 휘저어댔다.

엎드리라는 뜻인듯싶었다.

그의 손시늉에 따라 땅바닥에 납작하니 엎드리자마자 총소리가 울렸다.

무삼이가 머리를 들고 밑을 내려다보니 방금까지 자기의 총구앞에서 밉살스럽게 들까불던 왜놈장교가 네활개를 쭉 펴고 금시 꺼꾸러지는 판이였다.

제법인걸. 총쏘는 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무삼이의 입이 버그러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의병들의 좌우켠에서 신식무장을 량손에 하나씩 갈라든 두명의 사나이들이 더 나타나 놈들에게 총탄을 퍼붓고있었는데 그들 역시 사격솜씨가 귀신같았다.

의병들과 낯모를 사람들이 합세하여 골안에 몰려든 적들을 향해 맹사격전이 벌어졌다.

이제는 승패가 완전히 역전된것이 확연했다.

그바람에 기분이 둥 떠오른 무삼은 왜놈들을 향하여 총알을 련속 날렸다. 옆으로 다가온 줄무늬양복쟁이가 혀를 낄낄 갈겼다.

《아유, 이 우둔한 친구야… 총알이 무슨 도토리알같애서 그렇게 망탕 쏴버려? 아깝지두 않아? 두발씩이나 쏘구서두 왜놈이 살아서 펄떡펄떡 뛰게 하는게 무슨 의병대야.》

무삼이의 얼굴이 대번에 구운 가재빛이 되여버렸다.

망신이다. 낯도 코도 모를 사람에게 이런 창피를 당하다니…

그런데 대체 이건 어디서 굴러온 녀석이야. 우쭐렁거리기는 꼭 개잡은 로친네같구나. 자기는 신식총을 들었으니 그렇지 나처럼 화승총을 들었더라면 이처럼 쫄랑거리지 못했을걸. 그런데도 뭐 우둔하다구? 망탕 쏘았다구?…

무삼이는 화가 나서 방금전에 자기를 도와준 고마운 생각 같은건 훌 잊어버리고 맞받아 눈을 부라리며 화승대를 내들어보이였다.

《이따위걸 보면서도 그래? 차라리 활을 잡았으면 저놈들의 모가지를 한두름은 꿰였겠다. 호랑이가 몽둥이로 짐승을 때려잡는걸 봤어? 이발이라면 몰라라…》

그 소리에 양복쟁이가 픽 코웃음을 쳤다.

《쳇, 굿 못하는 무당이 장구타발한다더니…》

《뭘? 무당?》

무삼이가 약이 올라 얼굴빛이 시퍼래졌지만 양복쟁이는 그것이 오히려 깨고소한듯 계속 시까슬렀다.

《주제에 속은 살아서 호랑이래. 그럼 달려나가서 호랑이처럼 왜놈새끼들을 물어메쳐보지 뭐. 눈먼 호랑이처럼 앉아서 따웅따웅- 큰소리만 치지 말고.》

양복쟁이는 무슨 말을 할듯 입을 벌리는 무삼이가 보란듯이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왜놈 한놈을 제꺽 쏘아눕혀놓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때까지 씩씩거리며 자기를 쏘아보는 무삼이에게 씩 웃어보이고나서 얼굴을 돌리던 양복쟁이의 눈길이 이번에는 앞으로 조금 내려가있는 바위뒤잔등에 닿았다.

적들의 몰사격에 몸을 움츠리고 머리를 못 드는 전령감의 뒤모습이 걸려들었던것이다.

양복쟁이는 그 모양에 기가 막혀 또다시 혀를 낄낄 갈겼다.

《체체체, 저건 또 무슨 놈의 호랑이야?》

양복쟁이는 그쪽으로 재빨리 기여가 전령감의 옆에 바싹 붙으며 어깨를 툭 건드렸다.

머리를 드는 전령감을 향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던 양복쟁이의 입이 뚝 굳어졌다.

그리고는 한동안이나 전령감의 턱수염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벌씬 웃으며 물었다.

《그 턱수염 참 멋지군요. 올해 년세를 얼마나 잡수셨나요?》

《륙십을 넘긴 후엔 나이를 안 셌네.》

양복쟁이의 입이 딱 벌어졌다.

총알이 그들옆을 스쳐지나 땅에 푹푹 박혔다.

얼결에 머리를 숙이는 속에서도 양복쟁이의 입은 제 할 일을 계속했다.

《털빠진 호랑이로군.》

《뭐?》

눈살이 꼿꼿해서 머리를 쳐들고 일어날듯 한 전령감의 어깨를 양복쟁이가 꾹 눌러앉혔다.

《가만있으라구요. 싸움을 어떻게 하는지 내 대주겠으니… 이발없는 호랑이가 짐승을 물어메치자면 꾀가 있어야 해요. 이제 내 하는걸 보라구요.》

마뜩지 않아 얼굴을 찌프리는 전령감의 표정이 재미있다는듯 또다시 벌씬 웃고난 양복쟁이가 넙죽한 돌멩이 하나를 골라잡았다. 그리고 방금 전령감이 부시를 쳐서 불을 달려던 화승총의 불심지를 뽑아내였다. 그 심지를 돌멩이에 재빨리 비끄러맨 양복쟁이는 그 한끝에 제꺽 불을 달았다. 심지에서 불꽃이 맹렬히 타번지는 돌멩이를 전령감앞에 내밀었다.

《자요.》

《이건 어쩌라노?》

영문을 몰라하는 전령감에게 양복쟁이는 속상한 시늉을 했다.

《던지라구요.》

《어디로…》

《아, 어디긴 어디겠소, 왜놈들한테지. 자, 힘껏 던지라요. 어서!》

양복쟁이를 바라보며 눈을 디룩거리던 전령감이 돌멩이를 아래로 냅다 집어던졌다.

심지에서 불꽃이 튀는 돌멩이가 날아가자 왜놈들은 폭탄인줄 알았던지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대가리들을 틀어박느라 소동을 벌렸다.

《자, 이젠 날 따랏!》

양복쟁이가 사격이 끊긴 틈을 리용하여 전령감의 팔을 나꾸어채며 재빨리 앞으로 기여나가 왜놈들의 측면에 있는 떨기나무뒤에 몸을 숨겼다.

적들이 돌멩이를 폭탄으로 착각했음을 깨닫고 몸을 일으켜 사격자세를 취하는 순간 떨기나무뒤에서 벌떡 솟구친 양복쟁이가 권총을 잡은 량팔을 휘둘러댔다.

불시에 측면사격을 받고 대여섯놈의 왜놈들이 순식간에 뻐드러졌다.

다른 놈들의 총구가 양복쟁이에게로 향했다.

양복쟁이는 날래게 나무뒤로 몸을 사렸다.

총알이 우박치듯 날아들어 양복쟁이가 몸을 감춘 나무를 벌둥지처럼 만들어버렸다.

왜놈들의 총구가 양복쟁이에게 쏠리는 순간에 의병들과 낯선 사람 두명이 합세하여 몰사격을 퍼부었다.

잠시후 골짜기에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금방까지도 요란한 총소리들이 콩볶듯 하던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고요한 정적이였다.

그 정적속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던 양복쟁이가 전령감에게 눈을 끔벅하며 소곤거렸다.

《싸움은 이렇게 해요, 알았어요?》

전령감이 그를 노려보며 따지고들듯 물었다.

《좀전에 뭐랬어? 무슨 털이 빠졌다구?》

양복쟁이가 픽 웃었다.

《하- 이 령감님, 귀는 꽤나 밝수다레. 호랑이가 늙으면 털부터 빠진댔수다.》

전령감이 무슨 말을 더 할듯 했으나 양복쟁이가 그의 시선을 골짜기쪽으로 이끌었다.

《자, 됐수다. 이젠 저길 가보라요. 어서요.》

그 권고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전령감이 껠끔한 눈길로 아래를 살폈다.

방금전까지 당장에 버르장머리를 가르칠듯 눈을 가로 떴던 전령감이였지만 금시 왜놈들이 살아서 펄떡거리던 골짜기로 내려가라는 말에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일없을가?》

《젠장, 떨긴. 그럼 내가 가라요? 총도 제대로 쏠줄 모르는 령감님을 믿고 내가 나가볼수야 없지 않나요. 그리구 나야 아직 령감님의 절반도 못살았는데 조심하는게 옳지요. 안 그래요? 아니, 왜 뚫어지게 보기만 하시우. 내가 뒤를 봐줄테니 어서 가보란데…》

전령감은 마지못해 앞으로 엉금엉금 기여가며 두볼을 씰룩거렸다.

《뉘 집 아들놈인지 무던히도 쨀쨀이로군.》

《뭐? 쨀쨀이? 아니, 저 령감님이…》

양복쟁이는 앞으로 기여가는 전령감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고말았다.

저쪽에서 의병들이 몸을 일으키고 골짜기를 주시하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골짜기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왜놈들의 시체만 보일뿐 여전히 조용했다.

전령감이 왜놈들의 주검을 겅둥겅둥 건너뛰며 한바퀴 돌아보고는 의병들을 향해 손을 휘젓고 무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의병들이 그곳으로 달려내려가 왜놈들의 무기들을 전부 모아가지고 올라왔다.

김정환이와 무삼이는 필석이의 상처에서 붕대부터 갈아대기 시작했다.

김정환은 필석이의 상처를 살펴보고 붕대를 감는것을 꼼꼼히 거들어주고나서야 자기들을 도와나선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렸다.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자기를 주시하고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린 김정환은 한순간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자기를 바라보는 세사람, 그들중 한사람은 강수길이라고 부르는 경찰관이 아닌가? 게다가 저 양복쟁이는 한성에서 자기의 뒤를 따랐던 《왕자님》이 분명한데…

김정환은 놀라움과 의혹이 짙은 눈길을 그들에게서 떼지 않았다.

한동안 선자리에서 마주 바라보기만 하던 경찰관 강수길이 심드렁한 눈길을 아래로 떨군채 다가왔다.

《우린 당신들을 찾아가던 길입니다. 마침 여기서 당신들을 만나게 되였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움을 역전시켜준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 할지 난감해진 김정환이 자기자신에게 화가 난듯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 우릴 만나자는 목적이 무엇이요?》

《우린 평산의병대와 함께 왜놈들과 싸우자고 찾아왔습니다.》

놀라운 제의에 김정환은 한동안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전령감이 그들쪽으로 다가와 귀띔했다.

《의병장, 빨리 이곳을 떠야지 않겠나?》

김정환은 머리를 끄덕이며 의병들을 돌아보았다.

《자, 이젠 떠나기요. 필석이를 들채에 태우시오.》

의병들이 들채를 펴고 필석이를 그우에 눕혔다.

무삼이가 서둘러 앞채를 잡았다.

의병들 몇명이 뒤채를 잡자 대오가 떠났다.

김정환의 승낙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대의사도 없었는지라 강수길과 그의 동료들은 뒤를 따랐다.

김정환은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째서 의병대에 나타났는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강수길이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을 만나던 때가 다시금 방불하게 떠올랐다.

어쨌든 지금은 자기들을 도와준 공을 생각해서라도 배척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지금은 데리고 가야 했다.

구체적인 전말은 돌아가서 알아보기로 작정했다.

문득 앞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김정환은 허리춤에 매달린 대검을 잡으며 그쪽을 긴장하게 주시했다.

뒤따르던 의병들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재빨리 싸움태세를 갖추었다.

김정환의 앞쪽 얼마쯤 떨어진 곳으로 어떤 사람이 잡관목을 마구 헤치며 나타났다.

의병들의 총구가 모두 그리로 향했다.

잡관목을 헤치며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이른새벽에 집을 떠나온 약우물골의원집 딸 달미였다.

산을 가로질러 급히 달려온듯 그의 온몸은 물주머니였다.

그를 보는 순간 김정환은 속이 덜컥했다.

혹시 의원집이 왜놈들에게 무슨 화를?…

김정환은 달미의 앞으로 급히 다가섰다.

《어떻게 된 일이요? 집에 무슨 일이 생겼소?》

달미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입술만 감빨았다.

그의 표정에서 김정환은 자기가 금방 예상했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는것을 느꼈다.

그런 느낌이 생기자 달미가 나타난것이 더욱 의아스러웠다.

김정환이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말을 해야 알지?》

달미의 나지막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이를 모셔가겠사와요.》

김정환이 영문을 알수 없어 뒤를 둘러보다가 다시 물었다.

《누굴?》

달미가 무삼이쪽을 힐끗 바라보며 또다시 나직한 목소리를 냈다.

《저이를…》

김정환이 뜨아해서 달미가 가리킨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무삼이가 퀭해진 눈으로 서있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감투끈인가? 달미가 무삼이를?

김정환의 의문어린 눈길을 받은 무삼이가 슬며시 필석이에게로 그의 시선을 이끌어갔다. 그때야 달미의 말뜻을 알아차린 정환은 놀랐다.

그럼 달미가 필석이때문에 여기로 달려왔단 말인가. 어째서?

달미는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조용하게 말했다.

《저이는 이젠 의병생활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과 서로 의논하고 제가 끝까지 돌보기로 하였습니다.》

김정환은 달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처녀가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험한 산속을 내처 달려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였다.

정말 얼굴처럼 고운 마음씨를 지닌 처녀였다.

김정환은 목이 메여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삼이와 의병들이 필석이가 누워있는 들채를 달미의 앞에 내려놓았다.

달미는 빨갛게 익은 얼굴을 다소곳이 숙였다.

그를 바라보는 의병들의 눈가에 감동의 빛이 력력히 어렸다.

하지만 필석이는 달미를 외면한채로 먼 하늘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필석이의 마음은 달미의 진정에 대한 고마움으로 하여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의 품안에는 아직 임자를 찾지 못한 가락지가 있지 않는가? 아버지의 당부가 어린 가락지가 있는 한 그는 절대로 달미의 뜨거운 진정을 받을수가 없었다.

필석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조용조용 울렸다.

《정말 고맙소. 그러나 난 그렇게 할수 없는 몸이니 생각을 고쳐주오. 내 마음을 거기도 알지 않소.》

필석이의 말에 달미의 얼굴에는 락심한듯 한 표정이 어렸다.

그러나 잠시후 달미는 필석의 옆에 앉으며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하오면 의병대의 짐이 되지 않겠나요.》

필석이는 고집스레 머리를 흔들었다.

《차라리 외딴 곳에 집을 짓고 홀로 살지언정 의병대의 짐이 되지는 않을테요. 그러니…》

달미가 그의 야속한 말에 눈길을 떨구었다.

김정환과 의병들은 더욱 안타까와났다.

세상에 달미와 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배필을 어디 가서 다시 만날수 있단 말인가. 더우기 이젠 성성한 몸도 아닌 필석이에게 있어서 달미는 그야말로 하늘이 보내준 귀인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김정환이나 의병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안타까움이 소용돌이쳤지만 필석이의 가락지에 깃든 눈물겨운 사연을 알고있는 그들은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였다.

의병들이 달미의 진정이 무시되는 광경을 차마 볼수가 없어 머리들을 떨구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지금껏 그들을 지켜보던 무삼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필석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필석이, 어서 의원집으로 가게나. …》

무삼이의 모습은 지금껏 보아오던 모습이 아니였고 목소리도 곡진하게 들리였다.

모두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리였다.

그는 마치도 친동생을 대하듯 필석이를 꼭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자네 부친이 원주 아리골의 엿장수 전탁송이라지?》

필석이는 무삼이를 바라보았다.

무삼이가 눈물이 푹 배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나의 작은아버님이기도 하다네.》

무삼이는 자기의 품속을 더듬었다.

그의 손에 천오래기에 정히 싼 무엇인가가 묻어나왔다.

무삼이는 그것을 필석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잠시 무삼이를 바라보던 필석이가 그것을 풀었다.

다음순간 필석이의 눈은 놀라움으로 굳어졌다.

무삼이의 품에서 나온것은 구리가락지였다. 지금도 자기의 목에 살점처럼 매여달린 가락지와 꼭같이 생긴 그 가락지를 보는 순간에야 필석은 모든것을 깨달았다. 주막집에서부터 시작된 그와의 연분이 한순간에 되새겨졌다.

그러니 그때 그 산당집에서부터 맺어진 기막힌 사연을 무삼이가 지금껏 고이 안고있은것이 아닌가.

가락지에 깃든 사연을 덕쇠를 통해 들은 때부터 자기를 위하여 그토록 모든것을 다하던 무삼이의 그 진정이 사무치게 안겨들었다.

그런것도 모르고 지금껏 오해를 하면서 랭대까지 하였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짓이였던가.

필석이는 눈물범벅이가 된 눈길을 그에게 던졌다.

무삼이는 가쁜숨을 내쉬고나서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전에는 정말 미안하게 되였네. 내가 원래 덜퉁한 놈이라 물건건사를 바로하지 못한다네. 그때 내가 떠난 다음 주막집 울밑에서 얻었다는 가락지가 내것이였어. 그때 벌써 가락지가 바뀌였으니 일은 바로된셈이지.》

필석이의 눈에서 눈물이 덤벙덤벙 쏟아져내렸다.

무삼이는 눈물이 쏟아지는 얼굴에 여전히 웃음을 짓느라 애를 썼다.

《속았거던. 임자 같은 반편을 얼굴 예쁘장한 랑자로 그려보면서 이날껏 찾아다녔으니… 그러나 이젠 자네와 난 형제간일세. 부디 달미와 행복하라구. 내 언제나 동생의 힘이 되여 지켜주겠네. 항상 내가 곁에 있다구 생각하라구.》

필석이가 왈칵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형님!》

《동생!》

필석이와 무삼이는 와락 한덩어리가 되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의병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바로 이 순간에 그들의 사연많은 가락지를 류다른 눈물속에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아닌 의병장 김정환이였다.

김정환이 꺽꺽 흐느끼는 그들에게 다가가 두개의 가락지를 받아들었다.

송진속에 세개의 솔잎이 들어간 가락지를 든 손이 몹시도 떨렸다.

바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머리를 얹을 때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가락지를 알아보았던것이다.

어려서 눈에 익혀온 가락지를 십여년이 지난 오늘에야 마주하게 된 김정환의 가슴은 세차게 들먹이였다.

그러니 영달이란 놈을 때려놓고 달아났을 때 맹부자의 행패질에 의해 다 죽을번 했던 부모들을 살려준 은인들이 바로 무삼이와 전필석이의 아버지들이였더란 말인가. 정말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은인들의 아들들을 곁에 두고도 여직 찾지 못하다니…

아마도 언제인가 필석이에게서 주막집에서 있은 일에 대하여 들을 때 격하지만 않았어도 그 부모들의 래력까지 구체적으로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무삼이가 연약한 필석이의 가락지를 빼앗으려 했다는 말에 분격하여 주막집에서 있은 일을 내놓고는 더이상 듣지 못했던것이다.

김정환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무삼이와 필석이를 바라보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너희들이였구나. 바로 너희들이 나의 부모님들을 구원해준 은인들의 아들들이였구나.》

김정환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더욱 놀란것은 무삼이와 필석이였다.

그러니 그때 산당집에서 자기의 아버지들이 구원해준 사람들이 바로 김정환의병장의 부모들이였단 말인가.

그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바라보는 김정환의 가슴에 얼굴들을 묻었다.

더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사심없이 도와준 그 인정과 그것을 못 잊어 지금껏 가슴에 고이 간직한 뜨거운 정이 후대들에 이르러 비로소 합쳐진것이다.

그들의 상봉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한껏 깨끗하게 정화시켜주었다.

의병들도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지켜보았고 의병대에 새로 나타난 강수길과 그의 동료들도 감동깊은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후 의병 둘이가 필석이를 눕힌 담가채를 잡고 달미를 따라 약우물골로 향해 떠났다.

그들을 바래우는 김정환이와 의병들의 얼굴에 시름없는 웃음이 한껏 비껴있었다.

비록 왜놈들에게 다리는 잃었지만 이제부터 필석이는 달미가 있어 행복하리라. 그리고 무삼이가 있어 마음 또한 든든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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