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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 회


제7장 먹장구름이 밀려오다


9


리달삼이와 박태영의 눈길이 강수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수길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듯 줄곧 어둠속만 주시하였다.

눈에서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꽉 쥐여진 그의 손아귀에서는 경찰관의 모자가 우그러들었다.

일제는 지금에 이르러 일반경찰권까지 빼앗음으로써 조선의 경찰권을 송두리채 탈취하였다.

왜놈들은 이미 1907년 7월 《정미7조약》과 함께 맺은 비밀각서에서 일본놈관리의 직접적통제밑에 들어갈 재판소와 감옥의 수를 비롯한 여러가지 항목들을 규정해놓음으로써 나라의 사법권들을 거의다 틀어쥐다싶이 하고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법 및 행형권(형벌집행권)의 일부는 형식적으로나마 나라의 수중에 남아있었다.

허나 깨진 둥지에 성한 알이 어디 있으랴.

이미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나라가 형식적으로나마 남아있던 그 허울마저도 끝까지 지켜낼수 없었다.

왜놈들은 1909년 7월에 사법경찰권을 빼앗고 그로부터 한해가 지나 경찰권을 강압적으로 빼앗음으로써 그나마 남아있던 빈껍질까지도 말끔히 걷어버리고말았던것이다.

그로 하여 강수길은 아버지앞에 다진 맹약을 지키기 위해 방패막이로 리용하던 경찰관의 허울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와 함께 왜놈들이 조작한 데라우찌암살미수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에게 수상쩍은 인물이라는 딱지가 붙어 감시의 눈초리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였다.

정말이지 터무니없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조선의 애국지사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일본놈들의 총독부에 뛰여들어가 데라우찌를 비롯한 왜놈들을 한놈이라도 쏴갈기고 생을 마무리하고싶었다.

틀어쥐고있는 권총손잡이에 땀이 질벅하게 내배였다.

왜놈, 쪽발이새끼들, 죽일놈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나온 생이 돌이켜졌다.

혁신파의 한 성원이였던 아버지의 엄한 훈계를 받고 어릴 때부터 수년세월 국토의 방방곡곡을 헤매이며 조선의 정통무술을 련마한 그였다. 《무예도보통지》를 익혔고 택견의 오묘한 리치를 넋을 바쳐 온몸으로 터득하였다. 왜놈을 누르자면 왜놈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한 아버지의 엄한 당부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류학을 하였다.

왜놈들에 의하여 《을사5조약》이 날조되였을 때에는 귀국을 하여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세우는데 목숨을 바칠 비장한 각오를 품고 권총 두자루를 량쪽옆구리에 찔러넣은채 산속에 들어가 탄환을 한가마니나 써가며 사격술을 익혔다.

그후 조선군대에 들어가 나라를 지켜볼 결심을 품은 어느날 밤 강수길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수길은 몇해만에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앉게 되였다.

몇해만에 보게 되는 아버지의 얼굴은 침통했다. 억세게 성장한 아들을 이윽토록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던 아버지가 무겁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날 따라오너라.》

수길은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사인교도 마다한 아버지가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나섰다.

하인들이 뒤를 따랐지만 아버지는 그들을 모두 물리쳐버렸다.

새벽이 가까와오는 길거리에는 아버지와 수길이 단 두사람뿐이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도 못 내였다.

어려서부터 황실의 안녕을 지키기 위하여 집을 비우고 살아온 아버지는 수길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어렵고도 위엄스런 존재였다.

수길은 머리를 수굿하고 아버지의 뒤를 따르기만 했다.

집문앞을 나선 아버지는 고종황제가 있는 궁성에 이를 때까지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저 어둠을 헤치고 걷기만 했다.

궁성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아버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또다시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수길은 기괴한 정적속에 점점 가빠지는듯 한 숨소리마저 죄송스러워 숨을 죽이느라 모지름을 쓰며 아버지의 거동만을 살폈다.

아들의 그러한 심정을 전혀 생각지도 않는듯 아버지는 하염없이 궁성을 우러렀다.

아버지는 한동안이 지난 뒤에야 천천히 수길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길은 이때 자기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귀에 맺혀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아버지가 수길을 향하여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길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자기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은 아버지앞에 펄썩 주저앉으며 웨치듯 소리쳤다.

《아버님, 이게 무슨 일이오이까? 저의 불충불효가 아버님을 노엽혔다면 이놈의 종아리를 꺾어주시오이다. …》

너무도 뜻밖의 행동에 경악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드디여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황제페하께서 왜놈들에게 욕을 당하신다. 네가 황제페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겠다.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를 없애버려라.》

수길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맥맥히 흐르는 원한과 분노를 느낀 수길은 더이상 무엇을 가릴새가 없었다.

《아버님, 제 기어이 그놈을 없애버리겠소이다.》

수길의 결심을 느낀 아버지는 다시한번 굳건한 의지가 력력히 슴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황실의 안녕과 나라의 존위를 극악하게 위협하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를 처단하기 전에는 집문턱을 넘지 말거라.》

이날 수길은 굳은 맹약이 담겨진 혈서를 쓰고나서야 아버지를 일으켜세울수가 있었다.

부친앞에서 다진 맹약으로 하여 수길은 집을 눈앞에 두고도 집을 떠난 몸이 되였다.

하숙집에서 제손으로 때식을 끓여먹으며 리달삼과 박태영, 송림이와 결의형제를 뭇고 아버지앞에서 다진 맹약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거의 50여명이나 되는 악질적인 왜놈들을 저격하였고 그의 드센 손아귀에 숨통이 끊긴 왜놈과 앞잡이들의 수가 부지기수였다. 그후 의형제들과 같이 리완용의 집을 불태우거나 매국역적들을 처형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나갔다.

하지만 아버지앞에서 맹약한 왜놈, 나라의 극악한 원쑤인 조선주둔 일제침략군 사령관인 하세가와놈만은 끝내 결딴내지 못하였다.

어느날 강수길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게 되였다.

리완용의 집에 내각의 각료들과 그 왜놈이 모여든다는 정보를 쥐였던것이다.

수길은 의형제들인 리달삼, 박태영, 송림이와 함께 리완용의 집을 습격하여 모조리 황천객을 만들자고 계획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나라의 역적들을 처단하기 위하여 동료들을 규합하여 거사를 치르기로 하였다.

송림이가 화약을 가지고 리완용이의 집근처에서 기다리도록 하고나서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떠났으나 그들은 계획을 실현할수가 없었다.

바로 그들이 리완용의 집으로 향하던 그때 골목길에서 한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들어온 김정환을 비롯한 의병들을 만났던것이다.

그때 수길은 자기들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으나 행여 의병들에 의해서 시국이 변천되는가싶어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보았다.

그러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수길은 맥을 잃고말았다.

그러한 그에게 또다시 무서운 타격이 날아들었다.

부친이 운명직전에 이르렀다는 전갈을 받았던것이다.

수길은 집으로 달려갔다. 대문가에서 하인들이 울면서 그의 길을 막았다.

《무슨 일이냐? 날 왜 집에 들여놓질 않느냐?》

늙수그레한 하인이 눈물을 쏟으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련님, 대감님의 분부이옵니다. 맹약을 지키기 전에는 대감님의 유해를 받들지 말라고 하셨소이다. … 흑-》

수길은 절통하게 몸부림쳤다.

수길은 대문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아버님, 불효자 수길이 기어이 아버님과 나라의 한을 풀어드리겠소이다.》

그리고는 오열을 삼키며 돌아섰다.

또다시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어느날 수길에게 드디여 절호의 기회가 차례졌다.

우연히 수길은 통감부 뒤마당에서 하세가와를 보게 되였던것이다.

하세가와가 통감부에서 열린 일본거두들의 회의에 뒤이어 잠시 여가시간에 뒤마당을 거닐고있었던것이다.

누구도 모르게 없애버리고 감쪽같이 탈출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강수길은 권총을 뽑아들고 하세가와를 겨누었다.

그러나 수길은 쏠수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문뜩 황제의 강제퇴위의 《구실》을 준 리준의 헤그밀사사건의 참변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하세가와저격이 또한 그 어떤 민족수난을 빚어낼 구실로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수 있겠는가. 하세가와라는 왜놈 하나때문에 나라가 통채로 수난의 칼부림을 당하고 민족이 더욱 커다란 치욕을 당하게 된다면 어찌 부친에게 효도를 했다고 말할수 있으며 이를 애국적장거라고 할수 있으랴.

권총을 틀어쥔 강수길의 손이 몹시 떨렸다.

그러는 사이에 하세가와가 마당에서 사라졌다.

수길은 기회를 잃었다.

그날 수길은 부친에게 다진 맹약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끝없이 몸부림쳤다.

수길은 강심을 먹었다.

다음번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

기회는 또 있을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세가와를 죽여버리면서도 왜놈들이 그로 하여 나라를 란도질할 구실을 절대로 주지 않으리라.

이런 결심을 품고 다시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는 때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하세가와가 군사참의관의 탈바꿈을 하고 본국으로 소환되였던것이다.

하세가와가 가버리고 대신 오꾸보 하루노란자가 일본군사령관으로 틀고앉은 현실은 실로 수길을 아연케 했다.

하세가와 요시미찌놈이 《을사5조약》과 조선군대해산과 같은 민족의 수난을 무력으로 조장한 장본인이라는데로부터 오는 죄책감은 민족앞에 죄를 지었다는 자격지심으로 가슴을 끓이게 하였다.

하세가와를 기어이 료정내여 부친과의 맹약을 지키는것은 물론 매국역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목숨도 기꺼이 바친 애국의 령혼들앞에 어찌 얼굴을 들수가 있단 말인가.

일본군사령관놈을 없애버린다고 해서 망국의 치욕이 가셔지겠느냐고 하면서 세상을 등진 송림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날껏 벌려온 모든 고행이 한갖 부질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고 생각하니 지나온 나날이 너무도 허무했다.

하세가와에 대한 암살이 수포로 돌아가고 영영 기회를 놓쳐버린 그 허무감으로 하여 강수길은 한강가에 섰다.

부친앞에서 다진 맹약을 지키지 못했으니 더는 살아있을 명분이 없었다.

총구로 이마를 겨눈 그 순간 박태영이와 달삼이가 그를 막았다.

나라의 원쑤들이 이 땅에 살판치는데 민영환이나 박성환참령 같은 우국지사로 죽겠는가며 그를 절규했다.

죽어도 당당하게 죽자. 죽음은 아무때건 택할수 있는것이다. 어떤 죽음을 택하는가 하는것이 바로 사나이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자살은 사무라이들이나 하는 객기이다. 죽어도 왜놈과 싸우다 한놈의 왜놈이라도 없애버리고 죽는것이 마땅하다. …

자기의 용렬한 결심을 두고 역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애국지사들의 앞에 죄송스러웠다. 자기들의 《거사》가 나라를 구원하지 못한다는것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세상을 등진 송림이앞에도 부끄러웠다.

강수길은 죽기를 잠시 미루었다.

그리고 나라의 원쑤인 왜놈들을 가차없이 처단하기 위하여 매일 밤 어둠짙은 골목을 은밀히 헤매이였다.

어느때건 나라의 극악한 원쑤들중 큼직한 원쑤놈을 결딴내려는 불덩어리같은 결심이 더욱 불타오르던 그들의 앞길에 이번에는 왜놈들의 조작에 의하여 일어난 데라우찌암살미수사건이라는 장벽이 막아서게 되였다.

이때부터 수길이와 그의 동료들은 가슴조이는 하루하루를 지나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와서는 그들의 행적을 눈치챈 왜놈경찰들이 그들을 잡기 위하여 눈에 쌍심지를 켜달고 골목들을 싸돌아다녔다.

이제는 더이상 그들이 여기 한성에 몸을 담고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그러면 이제는 과연 어찌해야 하는가?…

수길은 머리를 들었다. 리달삼이와 박태영이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을 마주 바라보며 수길은 말했다.

《이젠 우리의 일을 마무리할 때가 되였소. 여기 한성에서 뒤일을 마무리하고는 모두 의병대로 가기요. …》

수길의 말에 동료들이 선뜻 대답을 못했다.

이제 남은 의병대란 평산의병대뿐이였던것이다.

한참이나 침묵이 흘러간 뒤에 달삼이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근데 거기에 입심이 좁쌀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꽤 배겨낼것 같나?》

수길은 그를 바라보았다.

《달삼형, 우리가 그까짓 자존심을 생각할 때요? 왜놈들과 싸우면 그만이 아니요?》

달삼이와 박태영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수길을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수길은 잠시 그들을 외면하고 어느곳인가를 응시하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껏 너무도 세상을 모르고 살아왔소. 나라가 망하고 우리들모두가 망국노의 신세에 이르고보니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 아니라 백성의 나라였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치오. 둘러보오. 임금을 둘러싸고있던 간신들에 의하여 나라는 망하였지만 백성들은 절대로 왜놈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며 목숨을 내대고 싸우고있소. 우리가 황제의 앙갚음을 해주지 못한 신하는 될지언정 백성들의 애국심을 외면하는 청맹과니는 될수 없지 않소.》

달삼이와 박태영의 두눈에 눈물이 고였다.

잠시후 달삼이가 수길의 손을 꽉 잡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생각이 짧았네. 자네 말대로 하자구.》

그들 셋은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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