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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 회


제7장 먹장구름이 밀려오다


8


명재는 셈세기를 하였다.

하나, 둘, 셋…

입술을 사려물고 몸에 사정없이 떨어지는 매질을 또박또박 새겼다.

이젠 말해볼가? 아니야… 조금만 더 참자, 그래야 왜놈들이 믿지…

김정환의병장은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위험한 싸움을 하려고 하지만 내가 잘만 하면 의병대를 크게 도울수 있다.

그럴 기회를 만들지 못할바엔 차라리 죽겠다. 의병들이 왜놈새끼들을 한개 소대씩이나 료정내는데 이바지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계부길이와 옥칠이를 앞세우고 학봉산에 갔던 일본군 삼십여놈이 한놈도 살아남지 못했다는것을 오까노모의 악의에 찬 말속에서 알게 된 명재는 너무도 속이 후련해 난생처음으로 크게 소리내여 웃기까지 하였다.

역적 맹영달이를 끌어내지 못한것이 아쉽지만은 그놈이 자기 졸개들인 계부길이와 옥칠이의 개죽음을 두고 염통이 졸아들었겠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학봉산에서 한개 소대를 잃은 왜놈들이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명재가 각오한바였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환의병장과 의병들이 사지판에 나서게는 절대로 하지 않을테다. …

지금껏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나무는 굽어도 불길은 곧바르다고 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 죽는것만이라도 옳바르게 할수 있다면 그 생은 참된것이 아니겠는가.

명재는 자기때문에 죽은 두남이를 생각했다.

두남아- 내 기어이 너처럼 죽으련다! 떳떳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명재는 입술을 사려물었다. 그의 앞에서 독이 잔뜩 올라 서있는 오까노모가 소리쳤다.

《대라. 분명 그것은 평산의병대의 책략이다. 어떻게 네놈이 의병대와 작당하여 그런 계책을 꾸미게 되였는지 대라. … 평산의병대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앙?》

또다시 불꼬챙이가 몸을 지졌다.

사려문 그의 이발사이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드디여 때가 되였다.

명재는 천천히 머리를 떨구며 온몸의 기력을 모아 토설했다.

《평산의병대는 방괴산에 있다. …》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오까노모는 악이 올랐다.

사람값에도 들지 않는 비천한 백성놈이 감히 대일본군중좌인 이 오까노모를 뭘로 아는거야? 뭐, 의병대가 방괴산에 있다구? 또다시 네따위 무지렁이에게 속히우면 이 오까노모는 대일본제국의 장교가 아니다. …

하지만 오까노모는 명재의 단 한마디의 토설을 두고 다시금 생각을 굴리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이 과연 또다시 자기를 진구렁텅이에 몰아넣으려는 평산의병대의 책략이겠는가?

오까노모는 머리를 저었다.

그럴수는 없다. 이자 금방 이 무지렁이백성놈이 내뱉은 말은 불꼬챙이에 꿰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으며 얼결에 내뱉은 말이 아닌가.

이것이 계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대개가 농민들로 이루어지고 의병장도 농사군이였다니 이들이 그런 묘한 계책을 꾸며낼수가 없지 않는가. 그리고 일진회원이였던 이 명재라는자가 처음에는 자기들을 얼려넘겼을수는 있으나 고문으로 온몸이 짓이겨진 지금에 와서도 평산의병대의 책략대로 움직인다고는 더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오까노모는 명재가 정신을 잃으면서 혀아래소리로 흘려놓은 지명을 속으로 외워보았다.

방괴산이라… 괴물을 막는 산이란 말이지… 어쩐지 이름이 재수가 없구나. 하지만 바로 그 산에서 의병들을 괴멸해치우면 산이름이 고쳐질지 어이 알랴. …

오까노모는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명재가 정신을 차리자 오까노모는 그앞에 승자연한 기색으로 나섰다.

《방괴산에 의병대가 있다는게 사실인가?》

명재는 쓰거운 눈길을 날렸다.

《발악하지 말라. 네놈들은 조선사람들을 이기지 못해. 절대로…》

오까노모는 또다시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흥, 제정신으로 돌아오니 아닌보살해보겠다는건가.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네놈은 이미 방괴산에 있는 의병대의 비밀을 우리에게 털어놓았으니까… 내 네놈을 이 자리에서 당장 사지를 찢어죽이고싶지만 지금은 참겠다. 이 나라에서 마지막까지 발악하고있는 평산의병대가 우리 일본군에게 어떻게 녹아나는지 보여주겠다.》

오까노모는 뒤에 서있는 졸개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을 길잡이로 세우고 방괴산을 쓸어버리라.》

《하잇!》

왜놈들이 달려들어 명재를 끌어냈다.


× ×


김정환은 명재와의 약조대로 방괴산에서 멀지 않은 삼태기골에 진을 쳤다.

그는 명재를 의심치 않았다. 명재도 역시 나라가 왜놈들의 칼날아래 란도질을 당하는것을 절대로 외면할수 없는 조선사람인것이다.

바로 그래서 김정환은 명재를 위하여 의병거점 하나를 내놓을 결심을 했던것이다.

하지만 오까노모가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겠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정환은 명재에게 방괴산의병거점을 알려준 다음에도 왜놈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주시하였던것이다.

그런데 버들이에게서 지구수비대의 출동령을 받은 서흥군청의 왜놈들이 방괴산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련락이 왔다.

김정환은 무릎을 쳤다. 명재가 끝내 지조를 지키고 자기와의 약조대로 왜놈들을 끌어냈던것이다. 만약 명재가 왜놈들에게 굽어들었다면 수비대놈들은 방괴산쪽이 아니라 바리산으로 향해야 했다.

김정환은 조선사람의 절개를 지킨 명재를 꼭 구원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는 의병들이 진을 친 삼태기골로 왜놈들을 끌어들일 때 명재에 대한 구출방안을 구체적으로 타산하고 무삼이와 기봉대를 불렀다.

그들이 헐떡거리며 달려오자 김정환은 왜놈들이 나타나게 될 골짜기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은 골짜기아래 먼저 내려가 숨어있다가 싸움이 시작되면 지체하지 말고 명재를 구출해내야겠다. 명재는 기어이 구출되여야 한다. 알겠느냐?》

무삼이와 기봉대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마시오이다. 우리가 명재의 머리칼 한오리 상하지 않게 고스란히 업어내오겠으니…》

그들을 바라보는 김정환의 눈가에 미더움이 한껏 어리였다. 언제나 어려운 일, 힘든 일, 위험한 일을 도맡아나서는 그들이여서 누구보다도 아껴주고싶었다. 그러나 조선사람의 민족적기개를 꿋꿋이 지켜낸 명재를 잃을수 없기에 이번에도 위험한 일을 그들에게 맡기게 되는것이다.

김정환은 그들의 손을 꼭 잡아쥐며 간곡하게 일렀다.

《그게 헐치 않은 일이니 조심해야겠다. 몸을 허투루 내대지는 말거라. …》

무삼이와 기봉대에게 다시한번 격려의 눈길을 보내고나서 몸을 돌리던 김정환은 그 자리에 우뚝 멎어섰다.

네댓명의 의병들이 그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던것이다.

《웬 일이요?》

김정환의 의아스런 물음에 그들중 한사람이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있었다.

《의병장님, 명재를… 명재를 저희들이 구원하겠소이다.》

김정환은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전번날 두남이가 왜놈들에게 불타죽은 소식이 전해졌을 때 돌망골에 달려가 명재를 끌어왔던 그 의병들이였다.

그 의병이 다시 절절하게 말했다.

《우리 네사람은 그에게 죄를 지었소이다. 두남이의 죽음을 놓고 우리보다 더 가슴아파했을 사람에게 그런 행패질을 했으니… 의병장님, 저희들이 명재를 꼭 구원하게 해주시오이다. …》

김정환의 가슴에는 뜨거운것이 어렸다.

사람이 한때 발을 잘못 짚어 허튼 길도 걸을수 있는것이다. 그로 하여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 외로움으로 몸부림칠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빨리 깨닫고 바른길을 걸을 때 이처럼 어제날에는 자기를 배척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혈육처럼, 목숨처럼 남게 된다는것이 명재를 위하려는 의병들의 마음을 통하여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것이다.

김정환은 무삼이와 기봉대를 잠시 돌아보고나서 앞에 꿇어앉은 의병들에게 령을 내렸다.

《무삼이와 봉대를 도와 기어이 명재를 구원하라.》

《알겠소이다.》

의병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무삼이와 봉대의 뒤를 따라 밑으로 달려내려갔다.

그들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난 김정환은 한결 개운해지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의병들이 진을 친 곳으로 향했다.

왜놈들은 정오가 지나서야 삼태기골에 나타났다.

왜놈들의 앞에 온통 피자박이 된 명재가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왜놈들에게 떠밀려 비칠거리며 한발자욱, 두발자욱 걸음을 옮기는 명재를 바라보는 의병들의 가슴속에 피가 끓어올랐다.

두남이가 왜놈들에게 무참하게 불타죽은 소식이 전해졌을 때 돌망골로 달려가 토방돌에 앉아 먼 하늘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있는 명재의 멱을 틀어쥐고 땅바닥으로 질질 끌어 의병장앞에 세워놓았던 네명의 의병들의 심정이 더하였다.

왜놈들의 무리가 골짜기중심에 이르렀을 때 김정환의병장의 사격구령이 내렸다. 순식간에 골짜기 량켠에서 화약튀는 소리가 골안을 꽉 메웠다. 명재의 뒤를 따르던 왜놈들이 첫 타격에 무리로 녹아났다.

왜놈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바위돌과 나무뒤에 엎드려 의병들을 향하여 올리사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명재는 우박치듯 총탄이 날아드는 좌우골짜기를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고있었다.

자기들이 명재에게 속히웠다는것을 그때야 알아차린 왜놈들쪽에서 명재에게 총탄이 날아들었다.

그 총탄에 스쳤는지 명재가 몸을 휘청거리다가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명재에게 총탄이 날아드는 순간 가까이에 매복했던 네명의 의병들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왜놈들의 총탄이 윙윙 귀전을 스쳤지만 무작정 명재가 있는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명재는 왼팔을 질벅하게 적시는 상처에는 아랑곳않고 자기에게로 달려오는 무삼이와 기봉대 그리고 다른 네명의 의병들을 보고는 목청껏 웨쳤다.

《오지 말라. 오지… 말라. … 이 미련한 사람들아, 나 하날 살리겠다구 모두 죽을 잡도리냐? 흑-》

자기를 구원하려고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의병들을 바라보는 명재의 눈이 뿌옇게 흐려들더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골짜기우에서 김정환의병장의 돌격구령소리가 들려왔다.

골짜기를 메우며 달려내려오는 의병들의 성난 기상에 왜놈들은 기절초풍하였다.

총소리, 고함소리, 비명소리… 아비규환이 골짜기를 꽉 메웠다.

왜놈들에게 총탄을 날리며 명재에게 이른 무삼이와 봉대가 그를 둘쳐업고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왜놈들이 그들을 향하여 몰사격을 퍼부었다.

네명의 의병들이 명재를 업은 무삼이와 봉대를 장벽처럼 막고 엄호하였다.

그 기회에 왜놈들의 사격권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무삼이와 봉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네명의 의병은 꿋꿋이 서서 왜놈들을 향해 총탄을 날리고있었다. 그들의 온몸은 무수한 총탄에 맞아 온통 피덩어리였다.

그들은 혼신의 힘을 모아 마지막총탄들을 날리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봉대와 무삼이는 피눈물을 뿌리며 그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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