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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제7장 먹장구름이 밀려오다



6


《계시우?》

밖에서 찾는 소리에 지남이가 문을 열고 나섰다.

문앞에 웃마을 사냥군로인이 서있었다.

《마침 있었구만.》

지남은 여기 말등바위가 유명한 새골로 이사온 이후 사냥을 오가는 길에 산토끼나 꿩을 비롯한 짐승들을 한두마리씩 떨구어주군 하던 로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난 아직 식전인데 벌써 산에 오르셨댔군요.》

로인은 토방돌에 걸터앉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다리쉼을 좀 하고 가야 할가부네. 오늘은 허탕이니 맥이 풀리누만. …》

지남은 행전이 이슬에 푹 젖어있었지만 빈손인 로인을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섯대를 물려가며 이 고장에서 살아온다는 로인은 주변산 어디라 할것없이 산토끼나 맹수들이 다니는 길은 물론이고 어느 나무밑에 다람쥐굴이 몇개라는것까지도 환히 꿰들고있어 빈탕이란 없노라고 자처하는 소문난 사냥군이였다.

지남이가 의아한 눈길을 떼지 못하자 로인은 주머니에서 대통을 꺼내들고 부시를 쳐대며 덤덤히 말했다.

《그 왜놈의 종자들이 이 새벽부터 어찌 부산을 피우는지 산에 오르질 못했네. 그래 여기서 좀 기다리다가 그놈들이 돌아간 다음에 올라가봐야 할가부네.》

대통에 불을 단 로인은 담배연기를 길게 한모금 들이키고나서 입을 쩝 다셨다.

《하필이면 그놈들이 금방 올코를 놓은 그 산에서 어물댈건 뭔가? 죽일놈의 종자들!》

지남은 가슴을 후둑 치는 예감이 있어 다급히 물었다.

《대체 어느 산입니까?》

《지남산일세.》

지남은 저도 모르게 앉은자리를 차며 벌떡 일어났다.

로인이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임자 왜 그러나?》

지남은 로인의 물음에 대답할 경황도 없었다.

귀전에서는 그저 윙윙거리며 지남산이라는 말마디들이 맴돌고있었다.

지남산에는 엊그제 왜놈들의 《토벌》책동에 대처하기 위한 김정환의병장의 책략에 따라 한정만의 의병들이 들어왔다.

바로 어제 저녁에 그곳에 도착한 의병 몇명이 찾아와 김정환의병장이 보내는 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물품들을 꺼내놓으며 한정만이 인차 한번 찾아오겠단다는 문안을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하루밤이 지난 이른새벽에 그곳을 포위한 왜놈들의 소식을 알게 된것이다.

지남은 자기를 의아해서 바라보는 로인에게 구체적인 전말을 물었다.

로인은 지남의 이상스런 표정에서 그 어떤 불길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듯 대통을 때려 불을 끄고 자세한 내용을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간밤에 놓아둔 옹노를 돌아보러 지남산으로 오르려는데 풀덤불이나 나무뒤에 숨은 숱한 왜놈들이 그 산을 노리고있기에 그냥 돌아섰다는것이다.

로인의 말을 들은 지남은 눈앞이 아뜩해났다.

한정만이네가 포위에 든것이 틀림이 없었다.

사냥군로인의 말을 들어보면 왜놈들이 은밀하게 행동하는것이 분명했다. 간특한 왜놈들이 의병들의 눈에 띄우지 않고 가까이 접근한 다음 불의에 공격을 들이댄다면…

지남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부엌문을 열고 나와 로인과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스러운 눈길로 지남이의 눈치를 살피던 려은이가 그의 팔에 매여달렸다.

《이보세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거긴 왜놈들이 포위를 했다는데…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당신이 없으면 난 못살아요.》

지남은 사랑하는 안해를 정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려은이, 당신 아버님의 원쑤이고 나라의 원쑤인 왜놈들에게 우리 의병들이 죽게 됐는데 그냥 앉아있으라오? 난 죽지 않아. 려은이를 두고 내가 왜 죽겠어. 난 려은이와 함께 백년을 이 땅에서 살고 저승에 가서도 함께 살테요.》

려은이의 눈에서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그러는 려은이의 손을 꼭 잡으며 지남은 롱을 하듯 말했다.

《내 그들에게 왜놈들에게 포위당한 상황만 알려주고는 제꺽 돌아서겠소. 너무 걱정마오. 그 산의 이름이 바로 지남산이라는걸 잊었소? 자기와 이름자가 신통히도 같은 내 생사에 무관할수가 있겠는가 말이요?… 아마 지남산신령님이 이 지남이를 돌봐줄거요. 허허.》

지남이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가 천반우에 감추어두었던 권총을 찾아 품속에 찌르고 나와 마당밖으로 나섰다.

려은이와 사냥군로인이 마당가에 서서 지남이를 바래웠다.

그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산으로 들어선 지남은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지남이가 지남산기슭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산을 겹겹이 둘러싼 왜놈들이 포위망을 좁히고있었다.

산탁우에서 의병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오락가락하는것이 눈에 보였다.

지남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도 늦었던것이다. 려은이가 있는 집쪽을 바라보았다.

려은이, 미안하오. 왜놈들이 의병들을 노리는걸 보고는 어쩔수가 없구만. 내 당신에게 다짐은 했지만 여기서 그냥 돌아서면 당신은 평생 나를 원망할거요. …

지남은 총을 꺼내 왜놈들을 조준하였다.

땅-

지남의 총구에서 고요한 정적을 깨치며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산쪽으로 정신을 팔고있던 왜놈들중 맨 마지막에 섰던 놈이 비명을 지르며 너부러졌다.

의병들을 노리고 조심조심 산우로 기여오르던 왜놈들은 난데없이 뒤에서 울린 총소리에 기절초풍하였다. 왜놈들의 총구가 모두 지남이가 있는쪽으로 향했다.

요란한 총소리들이 골안을 꽉 메우며 울리기 시작하였다.

산마루에서 총소리를 들은 한정만은 말할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는 알수가 없었지만 고요한 아침에 울린 총소리는 이곳 의병들의 생사에 큰 위험이 생겼다는것을 예고하고있었다.

한정만은 급히 의병들에게 싸움준비를 갖추라고 소리치고는 산아래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벼랑턱으로 달려갔다.

밑을 내려다본 순간에야 한정만은 모든것을 깨달을수가 있었다.

산이 통채로 포위속에 들었던것이다. 아마 조금만 더 지체했어도 지남산에 전개된 의병들전원이 왜놈들의 벼락같은 공격에 총 한방 쏴보지 못하고 전멸되였을것이다. 정말이지 이른아침에 울린 한방의 총소리가 수많은 의병들의 생명을 지켜준것이나 다름없었다.

왜놈들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자기들을 위험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뛰여든것이 분명했다.

한정만은 급히 의병들을 빼돌리기 시작하였다.

골짜기쪽에서 총소리가 몰방으로 계속 울리고있었다.

한정만은 대오의 지휘를 신군선에게 맡기였다.

그리고나서 몇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골짜기로 달려가려 하였다.

신군선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한두령, 그곳으로 다시 뛰여드는건 섶지고 불속에 뛰여드는것이나 같소.》

《알고있네. 그러나 우리 숱한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원한 사람을 왜놈들속에 내쳐두구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구만. 자네가 의병들을 이끌고 먼저 룡두산으로 옮겨가 거점을 정하라구. 내 저 사람을 구원하구 인차 따라갈테니.》

한정만은 몇사람의 의병들을 이끌고 총소리가 요란스러운 골짜기로 달렸다.

골짜기에서는 숱한 왜놈들을 상대로 아직은 누구인지 알수 없는 구원자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었다.

한정만은 왜놈들을 향하여 총을 갈기며 그 사람쪽으로 뛰여갔다.

그의 앞에 이르러서야 한정만은 그가 다름아닌 지남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한정만은 놀랐다. 그리고 격분했다.

김정환의병장의 신신당부를 받고 자기들이 지켜주리라던 그가 도리여 자기들을 위하여 사지판에 뛰여든것이다.

한정만은 지남이와 등을 맞대고 왜놈들을 향하여 몰사격을 퍼부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여길 뛰여들었소? 엉, 죽자구 환장을 했는가?》

한정만은 성이 독같이 올라 연방 욕설을 퍼부었다.

지남이 왜놈들을 향하여 연방 사격을 가하며 웨치듯 말했다.

《한형, 강수길이가 인사를 전해달랍디다.》

한정만이 흠칫했다.

그리고는 지남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누구라구?》

지남이가 벌씬 웃어보였다.

《강수길이말이요. 벌써 잊었소? 자길 구해준 은인인데 그럼 못써요.》

한정만이 굳어진듯 지남을 바라보기만 했다.

《빨리 쏘시오. 왜놈들이…》

지남이가 왜놈들에게 총탄을 련속 날렸다.

한정만도 인차 자기를 수습하고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다.

함께 떨어진 의병들이 한정만이와 지남이를 둘러싸고 소리쳤다.

《한두령, 왜놈들이 너무 많수다.》

한정만은 자기들을 포위하려고 점점 간격을 좁히는 왜놈들을 둘러보았다.

조금만 더 어물거리다가는 포위망에서 벗어날수 없을것이다.

지남이와 의병들의 총탄에 왜놈들이 무리로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왜놈들은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왜놈들의 총탄이 그들을 향하여 우박치듯 날아들었다.

두명의 의병들이 왜놈들의 총탄에 맞고 절명하였다.

한정만의 곁에서 사격을 하던 지남이가 갑자기 비칠하더니 잡관목을 그러안으며 쓰러졌다. 가슴부위에서 뿜어져나오는 피가 순식간에 바닥을 질벅하게 적셨다.

지남이가 쓰러지자 한정만은 눈앞이 아뜩하였다.

머리속에는 오직 지남이를 구원해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만이 꽉 들어찼다.

한정만은 왜놈들을 향해 사격을 하는 의병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여기서 빠지라.》

한정만은 지남이를 둘쳐업고 산우로 달렸다.

의병들이 그의 뒤를 따르며 엄호를 하였다.

산우에 이르렀을 때는 두명의 의병을 또 잃었을 때였다.

한정만은 지남이를 내려놓고 흔들었다.

지남이가 눈을 떴다. 지남은 여전히 피가 콸콸 뿜어져나오는 가슴을 괴롭게 부여잡으며 한정만에게 말했다.

《꼭 빠져나가시우. 이제 강수길이가 한형을 찾아올거요. 그는 한형을 형제로 생각하고있소.》

지남이는 정신을 잃었다.

한정만은 분노로 불이 펄펄 이는듯 한 눈길로 아득바득 게바라올라오는 왜놈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왜놈들은 너무도 수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접전을 하다가는 모두가 잘못되고말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했다.

한정만은 남은 세명의 의병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 사람을 꼭 살려야 하네. 기어이 여길 빠져나가라구.》

의병들이 말릴 사이도 없었다.

한정만은 왜놈들을 맞받아 달려나갔다.


× ×


려은이는 골짜기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째서 가슴이 자꾸 활랑거리는지 알수가 없었다.

일손이라도 잡아볼가 했지만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려은이는 일손을 밀어버리고 집앞에 나와 동구쪽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와서 지남은 그에게 있어서 마음의 기둥이고 세상의 전부였다.

지남이가 없이는 한시도 살수 없을것만 같았다.

려은은 지남이가 달려간 지남산쪽을 향하여 그가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빌었다.

그의 눈앞에는 지남이를 만나 진실하고 뜨거운 정을 나누던 모든 순간들이 방불히 되살아 펼쳐졌다. 이제 다시 태여난다고 해도 그렇게 진정어린 사랑, 아낌없는 정을 눈물겹도록 깡그리 쏟아부어주는 사내를 두번다시 만날것 같지 않았다. 참으로 지남이가 려은에게 기울인 사랑과 정은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정을 대신할만치 뜨겁고 강렬했다.

그가 자기에게 바친 그 모든 진정에 비해볼 때 려은은 지남이를 위해 기울인 마음이 너무도 적었다.

지남이를 기다려 속에 재가 앉는 이 시각 려은의 가슴속에는 이제부터라도 그를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쏟아부으리라 마음을 고이 간직하게 됨을 어쩔수가 없었다.

골짜기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서너명의 사람들이 한데 뭉쳐 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그들을 여겨보는 려은이의 가슴은 까닭모를 불안으로 후두둑 뛰였다.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세명의 사람들이 한사람을 업고 달려오고있었다.

그들을 주시하던 려은이는 비명을 질렀다.

분명 업힌 사람이 지남이였던것이다.

려은이는 신발이 벗겨지는줄도 모르고 마주 달려나갔다.

려은이가 달려오자 의병들이 지남이를 풀밭에 내려놓았다.

지남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있었다. 려은이는 무작정 지남이를 부둥켜안았다.

《정신차려요. 이러면 안돼요. 정신을…》

려은이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지남이의 얼굴에 비비며 계속 소리쳐 그를 불렀다.

지남이가 눈을 떴다.

려은이를 알아본 지남이의 눈에 안도의 빛이 어리였다.

지남이는 힘겹게 손을 올려 려은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려고 애를 썼다. 허나 그것은 마음뿐이고 벌써 지남이의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남은 들어올리던 손에 맥을 놓으며 려은이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안해를 정겹게 바라보던 지남이의 눈가에 웃음이 비끼더니 조용한 목소리가 힘겹게 울렸다.

《려은이, 내 한가지 용서를 빌것이 있소.》

려은이가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꽉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있어요. 다 알고있어요. 당신이 바로 송림이… 흑, 한성에 소문난 그 〈난봉군〉이라는걸 다 알아요.》

지남의 두눈에 놀라운 빛이 어렸다.

려은이는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말했다.

《그날… 득진아저씨가 잘못되기 전에 다… 말해주었어요. 지남이란 당신의 어머님이 불러준 아명이라는걸… 난 당신을 알아요. 흑.》

지남이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의 눈앞에 려은이와 더불어 죽어서도 잊지 못할 또 한사람의 얼굴, 득진이의 모습이 사무쳐왔다.

려은이네 집에 불행이 생겼을 때 위험한 길이였지만 말없이 따라나섰고 려은이를 빼낸 다음에는 그밤으로 먼먼길을 달려와 이틀밤을 꼬박 밝히며 창골에 아늑한 집을 지어놓아준 득진이였다.

그들이 창골에 이른 다음날 량식과 고등어를 비롯한 부식물을 지게에 지고 창골고개너머에 찾아왔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말하던 득진의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했다.

《이 험한 산속에서 어찌 살겠소. 도련님, 주변에 항상 내가 있다구 생각하옵소.》

득진이의 그러한 마음은 그가 강수길이를 비롯한 의형제들과 생사를 걸고 나라의 원쑤들을 결딴내기 위한 위험한 길을 걷기 시작한 때부터 뜨겁게 달아오른것이 아니였던가. 정말이지 이날이때껏 알게 모르게 자기를 위해준 득진이의 그 진정을 생각하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어떻게 잊을수가 있으랴. …

지남은 려은의 손을 꼭 쥐고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려은이, 부탁이요. 해마다 추석이 오면 그의 묘소를 돌봐주오. … 어릴적에 어머니를 여읜 나를 이날까지 진정으로 위해주고 보살펴준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에 당신을 내놓고 그 아저씨뿐이요. 그런분에게 난 한번도 갚음을 못했구려. … 그날 밤 우리 집 헛간에서 그 아저씨가 려은이에게 한 상스러운 말은 내가 시킨것이였소. 그 말을 하고 아저씬 잘못되기 전까지 가슴앓이를 했소. 아마 그 아저씬 내가 진짜 난봉군이였다면 그런 말을 죽어도 외우지 않았을거요. … 그러니 너무 고깝게 생각말아주오. …》

지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려은이가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은채 지남이는 려은이의 손을 잡았다.

《내가 없이도 꿋꿋이 살아가오. … 당신과 함께… 한생을 살고…싶었…소. 왜놈들… 왜놈들이 있는 한… 작은 보금자리도 지켜낼수 없구려. …》

려은이의 손을 잡았던 지남이의 손이 맥을 잃고 스르르 떨어져나갔다.

지남이의 두눈이 먼 하늘을 향하여 굳어져있었다.

려은이는 온몸의 기력이 깡그리 달아나버린듯 정신이 혼미해졌다.

자기를 위해 깡그리 정을 주고 생의 희망을 주던 이 세상 제일 귀중한 사람이 자기의 곁을 영원히 떠나가고있었던것이다.

려은이는 식어가는 남편의 시신에 꼭 안기듯 쓰러졌다.

려은이의 눈물이 남편의 평온한 얼굴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날 저녁 려은이는 태여나 길지 않은 인생길에 두번째로 서슬그릇과 마주하였다.

이 순간도 려은이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려은이의 하늘이 무너졌다. 눈앞에서는 오직 지남이의 인정깊은 얼굴만이 삼삼했다.

그날 밤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서슬사발과 마주한 그밤에 뛰여든 《괴한》들…

그때 초불너머에서 울리던 득진아저씨의 말이 얼마나 무섭게 들렸던가.

득진아저씨가 평생 처음으로 그런 말을 하고 달포나 가슴앓이를 했다는 그 말이 다시금 되새겨지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지남은 그렇게 그에게로 왔다. 밤중에 자기 집 헛간에 구멍을 내고 그에게로 왔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였는가. 얼마나 자기를 위했으면 대처의 덩실한 기와집도 버린채 이 심심산골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기를 마다하지 않고 이날껏 자기를 고이 지켜왔겠는가.

득진의 림종을 지키던 그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 지남이의 과거와 가슴뜨거운 진정, 그래서 더더욱 믿음이 가고 의지가 되였던 사람이다.

언제인가는 지남이와 함께 즐겁게 추억하고싶었던 그 일들이 이제는 가슴속에 쓰라린 회오를 불러왔다.

이젠 그가 없으니 하늘이 무너진것이다. 더는 이 땅에서 살고싶은 미련도 없었다. 그의 곁으로, 오직 자기만을 그토록 뜨겁게 위해주던 지남이의 곁으로 그는 못견디게 가고싶었다.

려은이는 서슬그릇을 들었다.

서슬그릇을 입가에 가져가는 순간 려은이는 가벼운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아-

배안에서, 려은이의 배속에서 그가 남기고 간 새 생명이 태동하고있었다.

려은이는 목놓아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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