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8 회


제7장 먹장구름이 밀려오다


4


김정환은 앞에 꿇어앉은 명재를 공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방금전 평산의병대에 두사람의 죽음이 동시에 전해졌다.

하나는 왜놈들에게 불타죽은 두남이의 최후에 대한 소식이였고 다른 하나는 지남이를 구원하고 숨진 득진이에 대한 소식이였다.

두사람의 최후에 대한 소식을 받은 김정환은 의병들이 돌망골에 달려가 명재를 끌어다 앞에 앉혀놓은 이 시각도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절통함에 잠겨있었던것이다.

그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명재는 아예 모든것을 망각한듯 했다.

명재의 뒤에서 의병들이 김정환의병장의 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들은 명재를 용서할수가 없었다.

두남이가 그때문에 죽었으니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들의 슬픔을 메꿀수는 없었다.

거기에다가 그처럼 무던하고 진실하던 득진이를 왜놈들에게 잃은 슬픔까지 합쳐져 의병들의 분노는 더욱 무섭게 불타고있었다.

김정환은 자기의 령을 기다리는 의병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모두들 돌아가오.》

의병들이 김정환을 어리둥절하여 바라보다가 그의 침통스런 모습앞에서 더 다른 내색을 못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김정환은 여전히 가슴이 저려들었다.

그처럼 진실하고 성실했던 두사람의 모습이 차례로 되새겨졌다.

득진이… 그리도 말없이 수걱수걱 자기 할 일을 빠짐없이 찾아하던 순박하고 고지식한 사람이였다.

두남이 역시 의병초기부터 왜놈들을 족치는 싸움에서 언제나 용감했고 의리를 중히 여길줄 아는 성품을 간직한 평산의병대의 기둥들중의 한사람이였다.

허나 그들은 지금 없다.

이제는 그처럼 믿음직하고 정이 가던 두사람을 다시는 볼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져와 견딜수가 없었다.

두남이의 죽음이 의병들에게 전해진것은 그가 왜놈들에게 화형을 당한지 한달이 지난 바로 저녁녘이였다.

왜놈들은 두남이를 화형장에 끌어내여 일본군에 반항하는 조선백성의 기개란것이 죽음앞에서 어떻게 꺾이우는가를 보여주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백성들에게 민족의 정신은 불속에서도 절대로 타지 않는다는 진리밖에 안겨준것이 없었다.

그것은 왜놈들에게 참으로 무서운것이였다.

그리하여 왜놈들은 화형장으로 끌어냈던 마을백성들을 모두 학살해버리고 그것을 불문에 붙이기 위하여 별의별 수단을 다하였다.

그와 함께 한규설을 엄격히 감시하면서 그 말이 절대 새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왜놈들의 죄행은 그 무엇으로써도 감출수가 없었다.

왜놈들이 그처럼 악랄하게 두남이의 죽음을 감추어보려고 했지만 그 일은 어느새 린근백성들에게 알려지게 되였고 그들을 무서운 복수심으로 충만되게 하였다.

린근마을백성들은 화형장에 찾아가 조선민족의 기개를 지켜 장하게 죽은 이름모를 의병의 더운 피가 스민 나무재를 모아다가 엄숙히 제를 지내였다.

그 일이 마을들에 퍼지면서 엊저녁에는 서흥군청의 버들이가 알게 되였고 그가 두남이의 희생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인 전말을 알아내여 적은 서신이 바리산에 도착했던것이다.

금방 득진이의 죽음을 두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하던 의병들에게 두남이의 장한 죽음까지 알려져 그들의 분노는 하늘에 닿았다.

의병들은 두남이의 죽음이 황제의 연적에 대한 비밀을 발설한 명재때문이라며 돌망골로 달려가 그를 끌어왔던것이다.

의병들은 두남이를 죽게 한 장본인인 명재를 기어이 처단함으로써 민족적지조와 기개가 없이 얼떨떨하게 살아가는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하여 명재는 의병들의 손에 덜미를 잡혀 김정환의병장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였던것이다.

김정환은 격분한 의병들을 돌려보내고나서 두남이와 득진이의 죽음으로 하여 비분이 서린 눈길을 다시 명재에게 던졌다.

명재는 의연히 모든것을 망각한듯 망연하여 머리를 수그린채 꿇고앉아 의병들의 분풀이를 기다리는듯 했다.

잠시 명재를 바라보던 김정환은 슬픔으로 꽉 메인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시오.》

명재는 여전히 망연한 눈길로 의병장을 바라보았다.

《의병들이 두남이를 잃은 슬픔이 하도 커서 욕을 보였으니 너무 곡진하게 생각마시오. 내가 대신 사죄를 하오. 그러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보오.》

명재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의병장님, 그런 말씀 마소이다. 두남이는 이놈때문에 죽었소이다. 이놈이 두남이를 죽인 장본인이란 말이오이다. 어서, 어서 이놈을 죽여주사이다. 흑흑.》

김정환은 뿌옇게 흐려지는 눈으로 명재를 바라보며 머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두남이는… 왜놈들이 죽였소. 사람을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을… 불태워죽였소.》

김정환의 목소리는 격분으로 몹시 떨렸다.

그의 말을 듣는 명재의 두눈에 무서운것이 번뜩했다.

《의병장님, 두남이의 복수를… 제가 하게 해주시오이다.》

김정환은 명재에게 눈길을 박았다.

명재의 얼굴에 력력히 어려있는 진정을 읽은 김정환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그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럼 두남이의 복수를 위해 우리 일을 한가지 도와야겠소.》

명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령이라도 해내고야말려는 의지가 력력하게 내배여있었다.

김정환은 그를 바라보며 선뜻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금 두남이의 복수를 위해서도 그리고 평산의병대의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도 평산지구 일진회 회장이였으며 지금은 왜놈들의 헌병보조원이 된 맹영달이를 비롯한 민족의 반역자들을 끌어내여 없애버려야 한다는 결심을 품고있었다.

그러나 그놈들을 끌어내기 위하여서는 세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그 작전의 적임자는 바로 자기의 앞에 있는 명재였다. 한것은 명재가 바로 이전에 일진회 회원이였으며 맹영달이나 그의 졸개들과도 깊은 련계를 맺었던 사람인것이다.

그러나 김정환은 쉽게 말을 뗄수가 없었다.

명재가 이전에 일진회 회원이였다고는 하지만 한동안이나 집을 떠나 없어졌댔으니 교활한 왜놈들이 선뜻 믿지 않을수 있었던것이다.

왜놈들의 의심을 사서 명재가 잡히는 날에는 의병대에 실로 큰 위험이 조성될수 있었다. 그것은 명재가 돌망골과 의병들의 거점인 바리산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김정환은 명재를 다시 바라보았다.

명재는 의병장의 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 눈길을 마주보는 김정환은 드디여 결심했다.

두남이의 죽음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으로 불타는 명재의 눈빛에서 김정환은 그가 의병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던것이다.

김정환은 명재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조용하나 저력있게 말했다.

《이제 곧 지구수비대를 찾아가시오. 민족반역자들인 맹영달이와 그 졸개들을 끌어내야겠소.》

명재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듯 김정환을 바라보기만 했다.

실로 그에게는 김정환의병장의 령이 천만뜻밖이였다. 명재도 자기가 왜놈들에게 붙들리게 되면 평산의병대에 어떤 위험이 조성될수도 있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명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김정환에게 물었다.

《내가 혹시 왜놈들에게 붙들리면… 나를 믿소이까?》

김정환은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난 나와 우리 의병들을 믿소.》

김정환은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우린 의리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 어떤 위기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꼭 구원할것이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말이요. 하지만 의리를 저버릴 땐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없애버리오. 말뜻을 알겠소?》

그가 눈물을 덤벙덤벙 쏟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물기에 푹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두남이를 형제처럼 생각했소이다. 그런 두남이를 내가 죽인것이나 다름이 없수다. 내가 조부자의 아들놈에게 연적소리를 했지요. 그리구 난 그놈들에게 속아서 일진회라는델 들었댔소이다. 그런 너절한 이놈을 의병장님이 믿어주시니… 정말 고맙소이다. 흑!》

김정환이 억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조용하게 말했다.

《똑똑히 듣소. 지금이야말로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제정신을 가지고 바로 살아야 할 때요. 모르고 저지른 죄일지라도 민족을 등진것일 때에는 마땅한 천벌을 받기마련이요. 당신이 자기를 개심하고 두남이의 복수를 하겠다니 나도 기쁘기 그지없소. 우리 같이 두남이의 복수를 기어이 하기요.》

《알겠소이다, 의병장님!》

김정환은 명재가 눈물을 거두기를 기다리고있다가 그에게 이제 할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왜놈들에게 평산의병대의 후방물자가 학봉산 자연동굴에 숨겨져있다고 말하시오. 왜놈들이 학봉산일대를 잘 알수 없는지라 틀림없이 영달이와 그 졸개들을 길잡이로 세울것이요. 내 말뜻을 알겠소?》

《알겠소이다. 내 꼭 분부대로 하겠소이다.》

김정환은 명재에게 당부했다.

《왜놈들이 쉽게 속아넘어가지는 않을것이요. 더구나 학봉산에 갔던 놈들이 소멸당하면 당신에게 무서운 피해가 돌아올거요. 만일에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왜놈들에게 방괴산에 있는 최순지네의 거점을 대주시오. 영달이네들이 없어지면 왜놈들은 틀림없이 당신을 길잡이로 세울거요. 그때 부디 몸을 주의해주오. 그리고 꼭 기회를 놓치지 마오.》

자기를 위해주는 의병장의 말에 명재는 눈굽이 붉어졌다.

잠시 김정환의병장을 바라보던 명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구원할 생각은 마시오이다. 대신 왜놈을 하나라도 더 잡아주시우다.》

명재가 눈물이 질벅한 얼굴을 뻑 문지르고나서 밖으로 나갔다.

명재가 나간쪽을 한동안 바라보던 김정환은 여전히 갈마드는 두남이와 득진이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금 가슴이 쓰려와 자리에 앉아 긴숨을 톺아올렸다.

김정환이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있는데 봉대가 뛰여들어왔다.

급한 기색을 보니 무슨 일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김정환은 눈굽을 축축하게 적시는 물기를 문지르고나서 봉대에게 묻는듯 한 시선을 던졌다.

《의병장님, 신당마을에 어떤 놈팽이가 나라를 독립하기 위해 군자금을 모으러 왔다고 하며 돌아치는것을 우리가 붙잡아 여기 가까운 곳으로 끌어왔습니다.》

김정환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뭐라구? 군자금을 모연한다구?… 그게 어떤 놈이냐?》

《그건 아직 문초하질 않았는데 어쨌든 우리 관내에서 군자금을 모연한다는 놈이 왜놈의 앞잡이가 아니면 뭐겠수. 그래서…》

김정환은 서둘러 문가로 향했다.

《어서 가보자.》

봉대가 부리나케 김정환의 뒤를 따랐다.

봉대네가 끌어다놓았다는 곳으로 향하는 김정환은 격해지는 마음을 금할수가 없었다.

어떤 놈이 이 지역에 와서 군자금의 명목으로 백성들을 털어낸단 말인가. 평산의병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바로 이곳에서… 아직 평산의병대가 조직된지 네해가 지났어도 백성들에게서 군자금을 걷어들인 일이 없지 않는가. 그런데 어떤 놈이…

김정환은 봉대가 가리키는 어느 한 막사로 제잡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막사안에서는 마침 점심참인지라 끌어온 사람을 지키는 몇명의 의병들이 한참 점심을 먹고있었다.

봉대네에게 끌려온 그 사람은 한쪽켠에 떨어져 앉아 목젖을 불뚝거리며 정신없이 그들을 바라보고있었는데 척 보매에도 매우 배가 고픈 기색이였다.

김정환은 조용히 그 사람을 일별하다가 탁자우에 무드기 쌓아놓은 각종 패물이며 백동화들을 바라보았다.

봉대가 김정환의 눈길이 닿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이 재령일대에서 거두어들인 군자금이노라고 조용히 귀띔해주었다.

김정환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봉대에게 일렀다.

《우선 저 사람에게 먹을걸 좀 가져다줘라.》

봉대는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는가 하여 의아하게 김정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정환의 진중한 눈길과 마주치자 더 말을 못하고 할수없이 달려가 밥과 국을 가져다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자, 먹소.》

봉대가 눈을 빨며 던져주다싶이 한 밥그릇을 받아든 그 사람이 히쭉 웃었다.

《고맙소, 꼬박 두끼를 내처 굶었더니…》

그리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무드기 퍼담은 보리밥 한보시기와 시래기로 끓인 토장국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그는 빈그릇을 내밀며 미안스럽게 말했다.

《어, 이제야 살것 같군. 잘 먹었소. 이 지방의 시래기장국이 정말 맛이 좋구만.》

정신없이 밥을 먹는 그를 밉살스럽게 바라보던 봉대가 퉁을 놓았다.

《별소릴 다 듣겠군. 토장에 끓인 시래기맛이야 아무데서건 다 맛이 같지.》

그 사람이 껄껄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김정환은 그제서야 그리로 다가갔다.

어딘가 모르게 위엄이 있는 허우대가 큰 사람이 자기를 주시하며 다가서자 그 사람은 입가에 떠도는 웃음기를 거두며 마주 바라보았다.

김정환은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30대를 채 넘기지 못한듯 한 젊은 사람이였는데 얼굴에 피로가 어리고 로상에서 배를 곯아서인지 입술에 조갈이 들었으나 눈빛이 매우 리지적이고 온화했다.

김정환은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마주앉았다.

《난 평산의병대 의병장이요. 당신이 재령일대에서 군자금을 걷는다는데 대체 뉘시오?》

김정환의 말에 그의 얼굴에 화기가 어리더니 불쑥 두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김정환의병장님이시군요.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김정환의병장님이 싸움을 정말 잘한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장수산싸움에서 숱한 왜놈들을 소멸해버린 소식이 연해주와 만주일판에까지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

김정환은 그의 손을 외면하며 찌를듯 바라보았다.

《내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오.》

김정환의 무표정하고 엄한 눈빛을 받은 그는 민망스러워진 자기의 손을 어찌할바를 모르며 잠시 멋적은 표정을 짓더니 이어 자세를 바로하고 말했다.

《제 이름은 안명근이라고 합니다. 삼화부(오늘의 남포시 룡강군) 삼흥학교에 있었습니다.》

김정환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어렸다.

《안명근? 삼흥학교? 그럼 그대가 안중근렬사의 4촌동생인 그 안명근이란 말이요?》

안명근이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김정환은 저도 모르게 방금전 자기가 외면해버렸던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언제인가 리진룡을 통하여 안중근의 4촌동생인 이 안명근에 대하여 상세히 들은바 있는 김정환이였다.

삼화부에 있는 삼흥학교는 안중근이 대중속에 반일애국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세운 학교이다. 안중근이 여기에서 서우학회의 회원이 된 다음 삼화지회를 내오고 활동할 때부터 4촌동생인 안명근은 삼흥학교에서 형님과 뜻을 같이하여 동분서주하였다.

안중근이 이또를 격살하고 왜놈들에게 체포되여 처형당한 다음 안명근이 아라사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김정환은 그가 4촌형님의 뒤를 이어 어디에 가서도 왜놈들과 싸우고있을것이라고 생각은 하고있었던것이다.

안중근의 장거에 대한 탄복이 이렇듯 4촌형제인 안명근이조차도 류별난 눈으로 보게 하는지도 몰랐다.

방금전에도 김정환은 많은 군자금을 몸에 지니고도 굶주림을 당하는 그의 정상을 보면서 이 사람은 필시 큰뜻을 지닌 사람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여왔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안중근렬사의 동생이라는것을 안 지금에 와서는 역시 피줄은 속일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때렸다.

그들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명근은 안중근이 할빈역에서 이또를 쏘아눕히고 왜놈들에게 교수형당한 다음 그의 필생의 지조를 이어가기 위하여 여러모로 노력을 하였다. 그 과정에 뜻이 통하는 애국지사들과 련계를 맺고 그들과 함께 간도지방에 무관학교를 세울것을 결심하였다. 그 무관학교를 세우는데 많은 자금이 필요되였다. 그리하여 안명근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은 무관학교설립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국도처에 지역들을 분담하여 이렇게 모연을 떠나게 되였다고 했다.

김정환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 역시 동감이 갔던것이다.

나라가 왜놈들에게 먹히운것이 바로 군력이 없었기때문이다.

나라에서 똑똑한 무관학교 하나 가진것이 없기에 군력을 자래울수 없었으며 종당에는 나라가 왜놈들에게 이런 국치를 당한것이 아니겠는가. …

김정환은 매우 감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가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소?》

안명근은 조용히 웃었다.

《지금 해외로 나간 지사들이 평산의병대의 투쟁에 큰 힘을 얻고있습니다. 나라의 많은 지역들에서 일어번졌던 의병대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속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왜놈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리는 평산의병대를 모두가 도와나서는것이 마땅한데 도리여 도움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하지만 김정환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을 위한 무관학교는 정말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희망인것이다.

김정환이 의병대를 이끌면서 가장 비통하게 절감하는것이 바로 군사를 아는 인재가 없는것이고 자기 역시 군사를 모르는 바로 그것이였다.

자기를 비롯하여 의병들 태반이 농사를 짓다가 나라가 섬오랑캐놈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는데 격분하여 떨쳐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싸움은 적개심이나 애국심 하나만으로 하는것이 아님을 의병장의 중임을 맡으면서 더욱 절감하게 된 그였다. 그러한 실태는 여기 평산의병대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였다.

지금까지 도처에 일어났던 의병대들의 실태를 놓고보아도 많은 의병장들중 군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싶이 하지 않았는가. 그저 식자나 조금 있는 유생들이 일자무식인 농민들과 포수들을 규합하여 신식총으로 무장한 왜놈들의 정규무력과 힘겨운 싸움을 벌려왔던것이다.

그러니 쓸모있는 군사가를 키워내는 학교가 있다면 옳은 전법으로 군사를 이끌어 왜놈들과의 싸움을 한결 통쾌하게 벌려나갈수 있을것이였다.

김정환은 평산의병대의 명의로 나라의 무관학교설립을 도와나설것을 결심했다.

김정환은 안명근의 손을 꼭 잡았다.

《이보오, 우리 평산의병대가 지금 적개심 하나만을 가지고 싸우고있는데 왜놈들의 정규무력에 비하면 빙산일각에 지나지 않소. 우리가 이제 얼마를 더 견디여내겠는지 의병장인 나도 알수가 없소.》

김정환은 잠시 말을 끊었다. 속에서 격한 울분 같은것이 불끈 치밀어올라 말을 이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슴에 사무치는 울분이기 전에 민족이 겪고있는 가슴아픈 현실인것이다.

원쑤 왜놈들과 사생결단하려는 의지를 지닌 이 땅의 수많은 마음들을 옳게 이끌어 용기를 주고 신심을 더해줄수 있는 지탱점이 없는 절통함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댄 두 사나이의 가슴을 아프도록 헤집어놓았다. 유생들이 엷은 팔목으로 휘갈겨쓴 왜적격멸의 기치아래 모여들었던 의병들이 쪽발이놈들에게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 그들이 죽으면서도 가슴속에 안고 간 절통함이 바로 죽음도 서럽지 않을 존엄이 없는것이고 이끌어줄 장수가 없는 그 아픔이 아니겠는가.

김정환은 그 아픈 상처가 다시금 파헤쳐질가 저어하듯 한동안이나 깊은숨을 내쉬고나서 말했다.

《우리에게 왜놈들을 치고 뺏은 자금과 물자들이 좀 있는데 그것을 전부 내주겠소. 그러니 나라를 위한 무관학교를 꼭 세워주오.》

안명근의 눈에 물기가 고이였다.

김정환의병장의 가슴에 맺힌 울분을 그라고 어찌 모를수가 있으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수는 있으나 왜놈들에게 무참히 도륙당하는 나라를 구원할 힘이 없음을 뼈아프게 질책하고있는 사나이의 아픔이며 몸부림인것이다.

그럴수록 이 소박하고 진실한 사나이에게 머리가 숙어지였다.

안명근은 김정환의 손을 마주 꽉 잡고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의병장님.》

잠시후 안명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군자금도 어느 정도 마련을 했으니 빨리 평양에 가서 모연한 군자금을 가지고 곧 간도지방으로 떠나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명근은 평산의병대가 왜놈들과의 혈투를 벌리는 속에서도 아낌없이 내준 군자금을 일생 잊지 않겠노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김정환은 그를 멀리 바래워주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