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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제7장 먹장구름이 밀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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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몇개 넘어가면 만나게 되는 분지골마을의 대장쟁이에게 도끼를 벼려오겠다며 나갔던 지남이가 급히 달려들어오는 바람에 려은이는 와뜰 놀랐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온통 얼굴이 창백해진 지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웬 일이세요?》

그는 당반우에서 총을 찾아쥐며 려은이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려은이, 빨리 짐을 꾸리오. 간단히.》

려은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왜놈들이 분지골을 몽땅 재더미로 만들었소. 의병들의 거점을 없앤다면서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집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고있소. 지금 한무리의 왜놈들이 이리로 오고있소. 자, 빨리.》

려은이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는 속에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다른건 또 장만할수 있으니 꼭 요긴한것만 꾸리오.》

려은이가 부랴부랴 대충 짐을 꾸려가지고 마당가로 나서는데 십여명이나 되는 왜놈들의 무리가 벌써 집앞을 가까이하고있었다.

려은이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왜놈들을 보고 낯색이 하얗게 질려 어쩔줄 몰라했다.

《야, 서라.》

왜놈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지남이가 왜놈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뜻밖에 총탄이 날아가자 살기등등하여 달려오던 왜놈들이 나무뒤에 숨고 바위밑에 엎드리느라 부산을 피워댔다.

지남이는 재빨리 려은이의 손에서 짐을 받아 둘러메고나서 그를 산으로 이끌었다.

왜놈들이 그들을 따랐다.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져왔다. 총탄이 귀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남은 려은이를 끌고 정신없이 달렸다.

산중턱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려은이가 쓰러질듯 비칠거렸다.

총질을 해대며 점점 사이를 좁히는 왜놈들을 돌아보면서 지남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속이 빠질빠질 타들었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지남이가 려은이를 어느 으슥한 바위뒤에 숨겨두었다.

그리고는 당부했다.

《머리를 들지 마오. 여기서 나오면 절대로 안돼. 알겠지?》

려은이가 무엇이라고 말할 사이도 없었다.

지남은 놈들에게 사격을 들이대며 다른쪽으로 달려갔다.

지남이의 총탄에 두놈의 왜놈이 너부러졌다.

지남은 호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내 재빨리 장탄하고나서 왜놈들을 향해 사격을 들이댔다.

상대가 한사람이라는것을 안 왜놈들은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지남은 왜놈들이 려은이가 숨어있는 바위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못하도록 련속 사격을 가했다. 려은이가 있는 바위쪽으로 제일 가깝게 있던 왜놈 두놈이 또 지남의 총탄에 황천길을 갔다.

려은이에게 위험이 사라지게 되자 지남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던것이다.

그러던 지남은 정신이 펄쩍 들었다. 자기 가까이에서 왜놈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던것이다.

려은이에게 정신이 쏠려있다나니 어느새 이놈이 자기 가까이로 다가서는것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것이다.

지남은 얼결에 그쪽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철커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놈을 겨눈 총구에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탄알이 떨어졌던것이다.

대가리를 땅에 틀어박았던 왜놈이 벌떡 일어나 총구로 그를 겨누었다.

금시 그놈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였다.

지남은 눈앞이 아뜩했다.

이렇게 죽고마는가? 려은이에게 아직 말해주지 못한것이 있는데…

지남은 눈을 꾹 감았다.

순간 무슨 아귀센 손이 그를 번개같이 나꾸어채는감을 느꼈고 그 다음은 온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때를 같이하여 울린 총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했다. 두방의 총소리였다.

산비탈에 두서너고패를 딩굴고나서야 지남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번쩍 떴다.

자기가 금방 서있던 그 자리에 누군가 서있었다.

그를 여겨보던 지남은 두눈을 흡떴다. 숨이 꺽 막혔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득진이였다.

그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는가?

저쪽에서 왜놈들과 맞총질하는 다른 의병들의 총소리가 울려왔지만 지남은 득진이에게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득진이의 총구에서 화약연기가 흰 김을 말아올리고있었다.

지남은 방금전에 총으로 자기를 겨누었던 왜놈쪽을 바라보았다.

두눈을 한껏 흡뜨고 굳어진듯 서있던 왜놈이 밑둥잘린 고목처럼 쾅 하고 자빠졌다. 그 다음은 득진이가 천천히 가슴을 부여잡으며 옆으로 서서히 기울어졌다.

뒤쪽에서 다른 의병들이 왜놈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모조리 따라가며 총탄을 퍼붓고있었지만 지남은 돌아볼 경황도 없었다.

지남은 정신없이 득진이에게로 기여갔다.

득진에게로 다가간 지남이 그를 부둥켜안았다.

총탄에 맞은 가슴에서 피가 꿀럭꿀럭 솟구치고있었다.

숨이 턱턱 막혀 눈을 흡뜬 득진이가 지남이를 보자 부들거리는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더듬었다. 흰 명주천에 정히 싼것이 나타났다.

《약초웨다. 이게 속탈에 좋다니… 꼭 써보시유. 그리구 우리가 있던 지남산에서 멀지 않은 천마산일대에 있는 새골이라는 골짜기에 말등바위가 있는데 그곳에 집 한채를 지어놓았으니 그리로 옮겨가시우. … 우리 의병대가 그곳과 멀지 않은 지남산일판에 오게 됐으니 서로 의지가 될거우다. …》

지남은 목이 꽉 메여올랐다.

득진이가 입술을 감빨았다. 물을 찾는것이였다.

지남은 안타까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려은이가 달려왔다. 그에게 득진이를 맡기고 집이 있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내려갔다.

집앞에까지 딩굴고 엎어지며 달려내려간 지남은 조금전에 려은이가 새로 길어다놓은 물을 동이채로 안고 다시 되돌아달렸다.

그의 눈앞에는 오직 득진이의 얼굴밖에 떠오르는것이 없었다.

제발… 제발 무사했으면…

지남은 덜덜 떨리는 입술로 득진이의 이름을 부르고부르며 그가 있는 곳으로 달리고달렸다.

득진이와 려은이가 있는 곳에 이른 그는 걸음을 뚝 멈추었다.

려은이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울려왔던것이다.

지남이는 심장이 뚝 멎는듯싶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옮기며 물동이를 안고 비칠비칠 그리로 다가갔다.

려은이의 무릎에서 득진이가 숨을 거둔채 먼 하늘을 바라보고있었다.

지남의 손에서 물동이가 떨어져내렸다. 그 다음 지남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남이의 피타는 웨침소리가 골안을 울렸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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