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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7장 먹장구름이 밀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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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산의 의병장지휘처에서 김정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버들이의 말을 듣고있었다.

김정환이 의병대를 이끌고 바리산으로 돌아온지 이틀째 되는 날인 이날 중낮에 버들이가 갑자기 찾아들었다.

서흥군수를 통하여 평산의병대에 대한 왜놈들의 《토벌》계획을 내탐하였는데 박주룡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수가 없어 자기가 길을 떠났던것이다.

버들은 자기가 들은 왜놈들의 《토벌》계획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했다.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놈의 각서를 가지고 평산일대에 내려온 일본군 제2사단장이란 놈이 무력을 동원하여 평산의병대를 소멸하려 한다는 내용이였다.

버들의 말을 들으며 김정환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소식은 김정환에게 있어서 그리 놀라운것이 아니였다.

어느때든 왜놈들이 이렇게 나오리라는것을 타산하고있었다.

소위 의병소멸의 상투적인 수법인것이다.

이미전에 왜놈들의 이러한 집중《토벌》에 의하여 경상북도 안동부 녕해군(오늘의 영양군)의 일월산의병대가 종말을 고하였다.

그때 왜놈들이 근 한달동안 일월산지구에 동원시킨 병력이 보병 제1련대 3대대병력과 일본헌병, 경찰무력이였다.

그에 비하면 평산의병대소멸을 위하여 동원된 병력수가 몇배로 많은셈이였다.

왜놈들은 필시 지금 평산과 해주일대에서 맹활약하는 평산의병대를 빠른 시일안에 제거한 다음 곡산의병대에 대한 《토벌》을 벌리는 식으로 이 땅에 남아있는 의병대를 완전히 소멸할 타산을 했을것이다.

어떻게 하나 왜놈들의 집중《토벌》작전을 물거품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자면…

생각에 잠겼던 김정환은 펄쩍 정신이 들었다.

자기를 유심히 지켜보는 버들의 눈길을 비로소 느꼈던것이다.

김정환은 버들이에게 느슨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참, 고맙소. 무어라고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내가 아가씨를 보기는 처음이지만 알기는 이미 오래되였으니 우린 오랜 구면지기나 다름없소.》

버들은 조용히 웃었다.

무뚝뚝한 의병장이 왜놈《토벌》소식에 혹시 가슴을 조이고있지 않는가 하였는데 배포유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김정환의 굵직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먼길에 피로했겠는데 저 야장간의 전로인을 찾아가면 좋은 방이 있으니 좀 쉬였다가 떠나시오.》

버들은 입가에 웃음을 담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저… 박주룡아저씨네 집이 어느 마을에 있는지 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거기에 들려보고는 그냥 돌아서겠습니다.》

김정환은 흔연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긴 여기까지 왔다가 박주룡을 못 만나고 그냥 돌아가면 몹시 서운할것이다.

《잠간만, 그럼 내 덕쇠를 얼른 불러오겠소.》

버들이가 밖으로 나가려는 김정환을 만류하였다.

《그만두시와요. 어딘지 알으켜만 주시면 제 혼자 가볼가 합니다.》

김정환은 좀 미타한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골짜기가 깊은 곳이라 찾기가 헐치 않겠는데…》

하지만 버들이의 고집스러운 웃음을 보고는 돌망골로 가는 길을 하나하나 알려주는것으로 그치고야말았다.

버들은 김정환에게 후일 급히 알릴것이 있으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떠난 다음 김정환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방금전 생각에 옴해버렸다.

왜놈들이 병력을 크게 증가하여 이 일대에 대한 수색을 벌린다면 의병대는 여기를 다시 떠야 했다.

그렇지 않고 이곳에 더 있다가는 주변마을들이 피해를 입을수 있고 의병대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는것이다. 또한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 바리산거점을 잃으면 안되였다. 골짜기도 깊고 인적도 드물고 거기다가 지세가 묘한 여기를 절대로 잃지 않는것이 평산의병대에는 사활적인 문제인것이다.

하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것인가.

한정만이 지휘처로 조용히 들어섰다.

김정환에게서 긴박한 정세를 들은 한정만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보병 16개 중대에 기병이 2개 중대라… 거기다가 수비대와 헌병, 경찰력량이 총동원되면 병력수가 엄청나겠는데 이번 싸움이 헐치 않겠는데요. 의병장님의 결심을 말해주시오.》

한정만의 물음에 김정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다시 넓은 지역으로 이동해야겠소. 왜놈들의 력량을 분산하고 우리가 주동적으로 때려야겠소. 그리구 채응언의병장과도 련계를 취해 그쪽에서도 련발적으로 싸움을 일으키도록 하여 왜놈들이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소. 보다 먼저는 왜놈들의 〈토벌〉을 당할수 있는 외진 곳들에 사람들을 띄워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록 하는거요.》

한정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소. 그럼 나도 의병들을 이끌고 나가서 본때있게 해보겠소. 어서 령을 주시오.》

김정환은 한정만에게 령을 내렸다.

《이미 방괴산쪽에는 최순지네를 내보냈으니 자넨 지남산방향으로 나가게.》

한정만은 당장 달려나갈 자세를 취했다.

김정환은 그러는 한정만의 손을 꽉 잡고 당부했다.

《이번 왜놈들의 〈토벌〉작전에서 우리 의병대가 기어이 건재해야 하오. 그러자면 낮에는 깊은 산중에 있다가 밤에만 움직여 작은 싸움들을 벌리되 절대로 승산이 없거나 필요없는 싸움을 벌려서는 안되오. 왜놈들의 대병력이 오래동안 〈토벌〉작전을 지속시키지는 못할것이니 력량을 보존하는것이 우리에겐 이번 싸움에서 승전하는것으로 되오.》

《의병장의 뜻을 알겠소. 내 그 뜻대로 움직이리다.》

한정만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가 나간 다음에도 김정환은 어째선지 불안스러웠다.

그 불안이 어디서 오는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혹시 려은이네가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것이나 아닌지. …

그렇다. 버들이가 이번 왜놈들의 《토벌》지역으로 점찍은 지명들중에는 재령지방의 여러곳이 있었다. 그때 김정환은 왜놈들의 의심을 충분히 자아낼수 있는 창골의 려은이네 집을 먼저 생각했던것이다.

필시 왜놈들이 그 일대에 대한 수색을 벌린다면 외딴 골짜기에 있는 려은이네가 무사할리 만무하였다.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했다.

김정환은 급히 득진을 불렀다.

《지남산일대에 집을 지어놓으라고 한건 어찌되였소?》

김정환은 득진이가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김정환은 이미전에 너무도 한적한 골안에 외롭게 사는 려은이네 정상을 차마 보고만 있을수가 없어 한정만이네가 자리잡게 될 지남산 가까운 곳에 그들이 살 집 한채를 마련해놓으라는 령을 득진에게 주었던것이다.

《다 지어놓았소이다.》

득진의 대답을 들은 김정환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들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소. 몇사람을 붙여줄테니 그 일을 좀 맡아주오.》

《알겠소이다.》

득진의 공손한 대답을 들은 김정환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미안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거 또다시 힘든 걸음을 시켜서 미안하오.》

득진은 그러는 의병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그건 내게 당치않은 말이우다.》

김정환은 이상한 눈길로 득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을 받은 득진이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인사는 오히려 내가 해야 도리에 맞소이다. 사실 그네들은 내가 마땅히 돌보아야 하오이다.》

김정환은 놀랍게 그를 바라보았다.


× ×


버들이는 돌망골어구에 들어서면서 골짜기안탁의 깊은 곳에 띄염띄염 보이는 초가마가리들중에 어느것이 박주룡의 집인지를 알수가 없어 한동안이나 서성거렸다.

마을입구에 흘러가는 가느다란 실개울가에서 녀인 몇명이 빨래를 하고있었다.

버들은 그리로 다가갔다.

비단옷을 입은 우아하게 생긴 녀인의 자태가 동구에 나타나자 빨래하던 녀인들이 일손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이 산골에서 보기 드문 녀인의 행색과 산골녀인들과는 대비도 되지 않을 새뽀얀 살결을 가진 예쁘장한 자태를 보고 의아함을 금할수 없었다.

《저 녀잔 누굴가?》

《정말 희한스럽게도 생겼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구만.》

《그러게 말이예요. 차림새를 보면 기생 같은데…》

《저게 혹시 진짜 기생이 아닐가? 박서방과 뭐사뭐사한다던…》

버들이가 개울 건너편에서 가까이 다가서자 녀인들이 쉬쉬하며 입들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버들이가 개울가에 이르러 건너편 녀인들을 향해 나붓이 절을 하며 물었다.

《저 여기 박주룡아저씨네 집이 어딘가요?》

녀인들의 눈길이 함께 앉아 빨래를 하던 박씨마누라에게로 쏠렸다.

박씨마누라가 버들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빨래하던 옷가지들과 빨래방치를 집어던지고 절버덕절버덕 개울창을 걷어차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집은 왜 찾아다니우? 거기가 서흥군청에 매여 기생질을 한다는 그 버들이요?》

영문도 모르게 당하는 랭대에 버들이는 의아해진 눈길로 박씨마누라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닌 누구시나요?》

박씨마누라가 드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성을 높였다.

《내가 바루 그 쥐포수같이 빠닥빠닥 마른 박주룡이의 정실부인이다.》

박씨마누라의 행악을 구경하려고 따라나선 마을녀인들이 그것이 우스워 키드득 웃음보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박씨댁은 이년이 자기 령감을 꼬드긴 기생년이라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어 더욱 행악을 부렸다.

《기생이 아무리 남의 서방을 꼬여내는게 업이래두 어찌 녀자의 탈을 쓰고 그렇게 뻔뻔할수가 있소? 여기까지 찾아다니면서…》

박씨마누라가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문득 굳어졌다.

박씨마누라를 바라보는 버들의 눈가에 사르르 맑은것이 고이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버들이가 다가와 박씨마누라의 갈퀴진 손을 조용히 잡았다.

박씨마누라는 어안이 벙벙해지였다.

그를 보며 버들이가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에게 친오빠가 한분 있었어요. 앓는 어머니대신에 어린 나를 내내 업고 다니면서 산에서 다래 한알을 따도 자기 입에 넣지 않고 나에게 주었어요. 어느 겨울날 내가 앓을 때는 며칠밤을 꼬박 밝히며 내 이마에 찬물수건을 갈아주었고 병이 나았을 땐 몸보신을 시키겠다면서 이틀동안이나 눈이 강산처럼 쌓인 산을 헤매며 산토끼를 잡아왔어요. 내가 앓는 어머니를 구완할 돈을 받고 기생으로 끌려갈 때 오빠는 멀리멀리 따라나오며 울면서 말했어요. 〈옥별아, 내가 널 보러 갈게. …〉 흑-》

버들이는 한동안 목이 메여 흐르는 눈물만 훔치다가 가까스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오빠는 오지 못했어요. 의병대를 도와나섰다가 어머니와 함께 왜놈들에게 불타… 죽었어요. 그때부터 난 밤에 꿈속에서 내내 오빠를 보았어요. 그런데 박주룡아저씨를 본 다음부턴 그 오빠가 꿈에 나타나질 않아요. 왜냐하면 박주룡아저씨가 꼭 내 오빠처럼 생겼거든요. 난 왜서인지 박주룡아저씨가 꼭 그 오빠처럼 생각돼요. 그러니 아주머닌 나의 형님이예요. 제 절을 받아주세요.》

버들이가 흐느껴울며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박씨마누라는 돌미륵처럼 굳어졌다.

이런 녀자의 가슴속에 그런 응어리가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는 버들이를 여겨보았다.

보면 볼수록 곱게 생긴 녀자였다. 같은 녀자들도 시샘이 나게 아름답고 생신하게 생긴 녀자였다.

하지만 자기 령감이야 어디 난데가 있는가?

산골 어디서나 볼수 있는 막돌처럼 흔하디흔한 령감을, 주머니를 뒤집어털어도 먼지밖에 나는것이 없는 가난뱅이농사군을 친오빠처럼 생각해준 버들이에게 고맙다고 귀를 잡고 절은 하지 못할망정 그런 행악을 부렸으니 이게 바로 천벌을 받을짓이 아닌가?

박씨마누라는 조용히 눈굽을 닦는 버들이를 눈물이 그렁해서 바라보았다.

《내가 본래 이런 미련둥이라네. 괜한노릇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령감한테 생억지를 썼지. 어디 우리 령감이 남의 눈에 들게 남자싼데가 한군데라도 있을텐가.》

그리고는 버들이를 그러안았다.

《우리 령감을 친오래비로 생각해주었다니 참 고맙네. 혈붙이 하나 없다는데 우리 서로 의지하구 형제로 지내자구.》

박씨마누라는 개울물을 와락와락 걷어차며 건너와 비비다만 빨래감을 걷어가지고 다시 버들이에게로 건너갔다.

《아니, 빨랠 하다말구 어딜 가나?》

분이 할멈이 뒤에서 소리쳤지만 박씨마누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들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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