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4 회


제6장 고국의 령혼으로 될지언정


7


아호비령산줄기의 서북쪽에 위치한 황계치고개를 넘으며 두남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자기가 지나온 길을 따라 달려오는 왜놈들의 몰골이 그러한 예감을 자아내게 했다.

방금 명재가 살던 마을에 들렸던 일이 께름했다.

그때 명재가 집뒤에 있는 어느 바위밑에 연적을 묻어놓았다며 그려준 략도를 가지고 찾아다니던 두남은 의병대에 들어가기 전 여기에 은신해있을 때 몇번 본적이 있는 조부자의 아들놈과 마주치게 되였다.

그놈이 눈길을 마주치자 황황히 어디론가 달려가는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속에 맺혔다.

돌망골에 살림을 편 명재는 바로 그 작자가 연적소릴 듣고 너무 캐여묻길래 땅에 감추어놓았노라고 했던것이다. 가슴이 느닷없이 쿵쿵 뛰였다.

두남은 고개마루에 서서 왜놈들의 거동을 살폈다.

두남은 점점 긴장해졌다.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왜놈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왜서인지 꼭 자기를 바라고 달려오는 놈들인것 같은 생각이 갈마들었다. 혹시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어이 확인을 해야 마음을 놓을수가 있었다.

두남은 왜놈들이 굽인돌이를 따라오며 사라진 틈을 타서 얼른 기슭에서 몇걸음 떨어져있는 어느 한 나무를 향해 허리를 낮추고 다가갔다. 그리고는 급히 나무밑둥을 파제끼고 연적을 묻어버렸다.

흔적이 나지 않도록 꼼꼼히 살펴보고난 두남은 다시 허리를 굽히고 행길에 나서서 뒤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몇걸음 옮기다가 굽이길에서 왜놈들이 나타나자 골짜기아래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나다를가 왜놈들은 그를 따라 기를 쓰고 달려왔다.

뒤에서 총소리까지 몰방으로 터졌다.

두남이는 자기가 가던 방향과 반대쪽방향으로 달렸다.

산을 몇개나 넘고 골짜기를 몇개나 지났는지 몰랐다. 두남은 점점 기진해지기 시작했다.

한성의 고관댁에서 오래동안 살아오며 평지길에만 익숙되여온 두남은 아직까지 험한 산길이 발에 설었던것이다.

두남은 맥이 점점 빠져가고있었지만 왜놈들의 수는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만 갔다.

주변수비대놈들이 모두 떨쳐나 합세하였는지 여기저기서 왜놈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그를 따랐다.

두남은 끝내 봉화산일대의 어느 한 산마루에서 왜놈들에게 포위되여 붙잡히고말았다.

두남이는 왜놈들에게 끌려 평산수비대장 오까노모의 앞에 서게 되였다.

두남이를 끌고 온 일본군소위가 오까노모에게 보고했다.

오까노모는 두남이가 붙잡히게 된 동기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가 참정대신이였던 한규설의 집에서 창두로 있었으며 어떤 연고로 하여 황제의 연적을 몸에 품고 평산땅으로 내려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까노모는 자못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 다음 그가 다시 그 황제의 연적을 몸에 품고 어디론가 가는걸 붙들게 되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약간 미간을 쪼프렸다.

소위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나서 오까노모가 물었다.

《그 물건은 어디 있는가?》

두남은 그놈을 외면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일본군소위가 나서더니 오까노모에게 대답했다.

《중좌님, 저놈이 황제의 연적을 어느 땅속에 파묻은것 같습니다.》

오까노모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두남이를 노려보다가 점잖게 말했다.

《그 연적을 어디에 묻었는가?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난 당장 너를 죽여버리라고 명령하겠다.》

하지만 두남은 오까노모를 향해 코웃음을 날리고는 또다시 머리를 돌려 외면해버렸다.

오까노모의 얼굴에 서서히 독기가 어렸다.

《나쁜 놈. 야, 저놈을 취조실에 끌고 가 맛을 보여주라.》

《하잇!》

병졸들이 두남이를 잡아끌고 밖으로 사라졌다.

오까노모는 악이 오른 눈길로 그쪽을 노려보다가 제김에 맥을 풀고말았다.

저깐놈… 취조실에 끌려가 몽둥이찜질 몇대면 당장에 그 자리를 토설해버리고야말 무지렁이같은 종놈에게 신경을 도사릴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오까노모는 자기가 스스로 가소로와났는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나서 곧 소위를 찾았다.

문가에 소위가 나타났다.

《소위, 즉시 개성에 내려와있는 제국의 황실박물관 총장각하에게 가서 조선황제의 기물을 하나 찾아냈다고 통고하라.》

소위가 얼친 상을 지었다.

《중좌님, 그걸 아직 찾질 못했는데…》

오까노모가 거만스러운 눈으로 소위를 찌를듯 바라보며 씨벌이였다.

《저런 천한 종놈에게 그래 그까짓 토설 하나 받아낼것 같지 못한가? 군이라면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목숨과 바꿀상싶은가?》

오까노모의 역설이 미타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에 일리는 있는지라 소위는 차렷자세를 취해보이고나서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오까노모는 자기가 조선민족의 애국정신이 어떤것인가를 너무도 몰랐다는것을 이때까지도 다는 알수가 없었다.

그날 밤도 퍽 깊어 소위의 련락을 받은 즉시 개성을 떠나 한번도 쉬지 않고 내처 달려 평산땅에 이른 박물관 총장이 오까노모의 방에 나타났을 때까지도 왜놈들은 별의별 악착한 고문을 다 들이대였지만 두남이의 입을 열지 못했던것이다.

총장은 오까노모에게 로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조선황제의 연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만사를 제치고 불원천리 달려온 총장의 불만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진땀을 솟게 하는 위협으로 변해갔다.

《오까노모중좌, 그걸 찾지 못하면 지금 군부안에서 론의되는 당신의 승급에 대해 다시 합의하도록 각서를 제기할테요. 그리구 일은 그걸루 끝나지 않는다는것을 명심하고 최선을 다하시오.》

오까노모는 괜히 입빠르게 행동한 자기자신이 원망스러울뿐이였다.

그는 련 이틀씩이나 죽은자의 입도 열게 한다는 자기의 취조실에 늘어붙어 두남이에게서 연적의 행처를 알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다 썼다.

허나 두남이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악이 받쳐 전전긍긍하고있는 오까노모에게 총장이 마지막수를 내놓았다.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 저 조선백성을 죽음의 문턱에 세워놓고 시골로 내려온 한규설을 대면시키자는것이였다.

오까노모는 즉시 한규설을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오까노모는 자기의 명예를 심히 훼손시킨 조선백성을 최후의 죽음우에 올려세워 절개고 뭐고 산산쪼각이 나도록 하리라 앙심을 품었다.

이번 기회에 한규설을 비롯한 조선사람들의 반항심이 죽음앞에서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겠다고 속다짐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 ×


화형장으로 주변마을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 끌려나왔다.

총칼을 든 왜놈병졸들이 사람들을 가로막고 스산한 공포를 안겨주고있었다.

박물관 총장이 나타나자 두남이가 끌려나왔다.

왜놈들이 마른 장작을 가득 쌓은 단우에 두남이를 비끄러매놓았다.

장작우에 석유를 뿌리고난 왜놈들이 저만치 물러났다.

오까노모가 두남이앞에 나섰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황제의 연적을 어디에 감추었는가?》

모진 고문으로 찢겨지고 터져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두남이의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오까노모가 그에게 말을 이었다.

《너에게 연적은 소용이 없을거다. 그걸 고스란히 내놓아라. 그러면 너에게 한성에 큰집을 마련해주고 많은 재산을 주겠다. 녀종과 남자하인들도 주고 그리구 경작할 땅을 달라는대로 다 주겠다.》

두남이는 오까노모를 가소롭게 바라보며 꾸짖듯 말했다.

《너희네 일본땅을 통채로 내놓는대도 연적과 바꾸지는 않겠다. 그리고 네놈과 너희네 족속들이 내 하인이 되겠다고 해도 연적을 내놓지는 않겠다. 나라의 재보가 네놈들의 손에 절대로 더럽히게 하지는 않겠으니 헛수고를 하지 말라.》

오까노모가 두남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공연히 객기를 부리지 말아. 그래 그따위 크지도 않은 물건 하나때문에 불에 타죽겠는가?》

그러나 두남은 흔연히 웃으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이 쪽발이놈들아, 네놈들에게 우리 나라가 도륙을 당하고 민족의 슬기가 무참히 짓밟히고있는것을 살점이 물어뜯기우는듯 한 아픔으로 느끼는 나다. 하물며 내 손으로 네놈들에게 우리 민족의 재보를 안겨줄상싶으냐? 이놈들아, 똑똑히 알아둬라. 조선사람은 죽으면 죽을지언정 왜적에게 순순히 굽어들지를 않는다. 몸이 불타 재가 될지언정 이 기질만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오까노모가 마지막참을성을 발휘하는듯 크지 않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래 그 연적이 황제가 쓰던 기물이 분명한데 그걸 땅속에 묻어버리고말겠는가? 네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그것은 더는 보물로 될수 없다. 그래도 말을 안할텐가?》

두남이 껄껄 웃었다.

《그래도 우리 나라 땅에 있을테지. 나라의 국보가 차라리 내 나라의 땅속에서 한줌 진토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들의 더러운 손아귀에 들게 하지는 않겠다.》

잠시 두남이를 노려보며 씨근덕거리던 오까노모가 졸개들을 향해 야멸차게 소리쳤다.

《야, 남작각하를 모셔와라.》

사람들을 헤가르며 한규설이가 나타났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천천히 두남이를 향해 다가오는 한규설의 두 눈섭이 푸들푸들 떨렸다.

한규설이 두남이앞에 이르렀다.

두남을 바라보는 한규설의 두눈에 눈물이 그들먹이 고이였다.

《두남아…》

한규설을 알아본 두남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한껏 어렸다.

《나으리, 그간 락향길에 무고하셨나이까? 두남이 나으리께 문안드리옵니다.》

《오냐, 난 별고없느니라.》

늙은 대신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고 목소리는 흐느낌에 젖어 몹시 떨리고있었다.

《두남아, 내가 너를 죽게 하는구나. … 그걸 내놔라. 그게 아무리 귀하다한들 한갖 물건일진대 사람의 목숨보다는 중하지 않느니라. …》

두남이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나으리, 그러지 마소이다. 난 나라의 자그마한 재부라도 지켜내고 죽으니 한이 없소이다. 왜놈들에게 절대로 굽히지 않는 송죽같은 절개를 지닌 대신나으리께서 소인으로 하여 저 쪽발이놈들에게 약해지지 마시오이다. 그럼 소인은 마음편히 가겠나이다.》

《얘야, 차라리 내가 죽자꾸나. …》

늙은 대신의 눈가에서 눈물이 마를줄 몰랐다. 그는 총장과 오까노모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섭게 부릅뜬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튕기는듯 했다.

그는 놈들을 향해 노성을 터뜨렸다.

《이놈들아, 그건 우리 황제페하의 기물이거늘 내가 네놈들이 훔쳐낸 나라의 국보를 되찾아 저애에게 준것인데 네놈들이 무슨 명분으로 그것을 빼앗겠다고 하며 사람을 이렇게 죽이려 하느냐? 이놈들아-》

오까노모가 한규설에게 다가왔다.

《남작각하, 진정하십시오.》

한규설이 턱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닥쳐라, 내가 무슨 남작이란 말이냐? 난 네놈들의 작위를 절대로 가지지 않는다. 옛적에 이 나라의 박제상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이 땅의 한 생명으로서 내 나라의 개나 돼지로 불리울지언정 너희 나라 작위로는 절대로 불리우지 않으련다.》

오까노모는 사나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만치 떨어져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던 총장이 다가왔다.

《각하, 당신의 남작작위거절을 나도 알고있습니다만 그건 조선국민스스로가 우리 〈천황〉페하의 적자로 된 지금에 와서 무궁한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천황〉의 은총에 대한 무지한 도전일뿐입니다. 그리구 저자가 가지고있는 조선황제의 기물도 우리 〈천황〉페하께 조달되는것이 마땅합니다. 저는 우리 일본황실박물관 총장으로서 그것을 〈천황〉의 궁전으로 가져가야 하겠소이다. 당신이 이젠 대신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협력하여 마땅히 국책을 받들어야 할줄 아오이다.》

《이놈! 닥치지 못할고. 우리스스로가 네놈들 〈천황〉의 적자가 되였다구? 이놈들아, 간혹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듯 뻔뻔스러운 수작질로 속일수 있어도 명색이 일개 나라의 대신이였던 나에게까지야 어찌 그런 황당한 수작을 붙일수 있단 말이냐? 그래 네놈들이 〈을사5조약〉을 날조해내지 않았단 말이냐? 네놈들이 리완용이나 송병준이 같은 몇놈의 역신들과 작당을 하여 〈정미7조약〉도 날조하였고 우리 황제페하를 강제퇴위시키지 않았단 말이냐? 그래 네놈들이 〈한일합병〉이란 터무니없는것을 날조해내지 않았단 말이냐? 아- 이놈들아, 리완용이나 송병준이 그리구 리용구와 같은 짐승만도 못한 추물 몇놈이 어떻게 2천만의 배달민족을 대변한다더냐. … 나라를 강도질한 네놈들의 죄행을 2천만 배달민족은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거다.》

총장놈이 심한 모욕감에 얼굴이 시뻘개지였다.

총장은 눈에 사나운 살기를 띠고 씹어뱉듯 말했다.

《그만하시오. 당신의 그 발언은 우리 제국에 대한 불만으로서 우리 일본의 정책가들에게 그대로 전달될것이요. 아마 그러면 당신에게 좋은 일은 없을것이요. 지금은 우선 황제의 연적을 내놓으시오.》

《난 못 내놓겠다. 이놈들아, 내가 그것을 감추었으니 저애는 놓아주고 나를 불태워라.》

오까노모가 씹어뱉듯 소리쳤다.

《좋소. 그럼 저자가 불속에서도 뻗쳐내면 나도 어쩔수 없다고 보오. 야, 불을 지펴라.》

마른 장작더미에 불이 달렸다. 불길은 순식간에 치솟았다.

《두남아, 내가, 내가 너를 죽이는구나. 어이구, 두남아-》

한규설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불길이 치솟는 장작더미에 뛰여들듯 달려들었다.

왜놈병졸들이 늙은이를 가로막고 총탁으로 떠박질렀다.

그것을 보는 두남이의 두눈이 분노로 하여 무섭게 이글거렸다.

《나리님, 왜놈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소이다. 난 왜놈들에게 당당히 항거한 나으리의 기개가 더없이 자랑스러웠소이다.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보게 해주시오이다.》

한규설이 주먹을 후들후들 떨며 두남이를 바라보았다.

《두남아…》

그의 절통한 부름소리가 무섭게 앙다물린 입술사이로 새여나왔다.

모여선 사람들속에서 왜놈들에 대한 절규가 터져나왔다.

바빠맞은 병졸들이 총을 란사하였다.

십여명의 무고한 백성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두남이의 웨침소리가 울렸다.

《야, 이 왜놈들아… 네놈들은 천추만대에 복수를 면치 못할것이다.》

두남이의 웨침이 골짜기를 따라 울려퍼졌다.

골짜기에 모여왔던 사람들이 왜놈들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왜놈들은 그들을 향하여 무자비한 사격을 들이댔다.

화형터는 순간에 피의 란무장으로 변하고말았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