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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36 회


제10장 사슴페여 전하라


2


다음날.

김학철중대장은 오래간만에 아동단병실에 나타났다. 그의 뒤를 따라 로동복에 모자를 쓴 사람이 따랐다. 눈섭이 검고 눈에서 영채가 도는데 보통키에 몸집은 가는축이였으나 무척 강단이 있고 날쌔보였다.

김학철중대장은 부엌문을 열고 박복덕식모가 있는것을 알아보자 얼굴에 웃음을 담고 큰소리로 알렸다.

《복덕아주머니, 누가 왔는가 보오.》

박복덕은 가시물에 그릇을 씻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어찌나 놀랐던지 손에 들고있던 놋바리를 부엌바닥에 툴렁 떨구었다. 놋바리는 부엌구석까지 대굴대굴 굴러갔다.

《에구머니!》

박복덕은 너무도 강한 충격에 풀썩 주저앉았다. 얼굴을 싸쥔 그의 어깨가 풍랑 만난 배처럼 들먹거렸다.

김학철중대장을 따라왔던 사람도 눈가에 물기를 가득 담고 박복덕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란희 엄마, 그새 고생이 얼마나 많았겠소?》

박복덕은 벌떡 일어나더니 그 사람의 두손을 으스러지게 움켜잡았다.

《언제 형무소에서 나왔나요?》

그리고는 격정에 떠는 어깨를 그의 가슴에 바투 다가댔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던 란희 아버지였다.

《란희는 어데 있소?》

김학철중대장의 물음에 박복덕은 눈물에 푹 배인 어조로 대꾸했다.

《방에 있겠지요.》

김학철중대장은 사이문을 열고 방에 대고 소리쳤다.

《란희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너의 아버지가 왔다. 지금 부엌에 있다.》

대바람 란희는 앙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부엌으로 나는듯이 달려내려갔다.

《아버지!》

목터지게 부르짖은 란희는 부엌토방에서 아버지의 어깨팍에 훌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목을 휘여잡고 《아버지! 아버지!》하고 눈물에 젖어 련거퍼 불러대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딸을 어깨팍에서 내리더니 와락 부둥켜안았다.

《란희야! 란희야, 그새 엄마하구 고생이 많았지?》

격동에 휩싸인 란희였건만 아버지가 엄마소리를 하자 작은 손가락을 아버지의 앞에 곧추 세워보였다. 그 말을 하면 안된다는 뜻이였다.

아버지는 딸을 더 힘껏 껴안으며 웃어보였다.

《이젠 그게 비밀이 아니다. 나는 이미 알고 왔다.》

김학철중대장이 병실에 들어서서 분단원들에게 알렸다.

《동무들은 이제껏 박복덕아주머니의 딸이 란희라는걸 몰랐지요? 지금 그 아버지가 여기에 오셨소.》

아이들은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뗑해져서 눈만 슴벅거렸다.

그들은 박복덕아지미와 란희가 남남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모녀간이였다니…

기송동지는 머리를 어디에 가볍게 얻어맞은듯싶었다.

림태호는 머리속이 어리어리해졌다.

김학철중대장은 눈을 슴벅이며 말을 이었다.

《동무들은 모두 부모없는 고아들이 아니냐. 그래서 박복덕아주머니는 여기 식모로 오면서 딸보고 남남처럼 지내자고 약속했소. 동무들이 모녀간이 함께 지내는걸 보고 부모생각을 더 하게 될것 같아서… 이게 얼마나 눈물겨운 일이요?! 이건 우리 혁명이 낳은 또 하나의 전설이요.》

애들은 모두 눈두덩이 불깃해졌다.

김학철중대장과 란희 아버지, 란희네 모녀는 아이들이 내주는 따뜻한 아래목에 앉았다.

애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어나 박복덕아주머니와 란희의 손을 먼저 잡으려고 헤덤벼쳤다.

《박복덕아주머니!》

《란희야!》

《아주머니, 고마워요!》

《란희야, 고맙다!》

박복덕아주머니와 란희는 얼굴을 싸쥐고 울었다. 남남으로 지내자는 약속을 지키는 길이 남모르는 눈물의 나날이기도 했기때문이였다.

아버지옆에 찰떡처럼 붙어앉아 두손을 꼭잡은 란희는 갑자기 새별눈을 반짝이였다.

《아버지, 어떻게 형무소에서 빠져나왔나요?》

그걸 무척 알고싶었다. 그는 아버지가 형무소에서 그냥 고생하거나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이들도 눈에 호기심의 광채를 띠였다. 그들도 그걸 알고싶어 좀이 쑤셨다.

김학철중대장이 옆에서 북을 돋궈주었다.

《소대장동무, 말해주오. 애들은 아슬아슬한 이야기라면 오금을 못펴지 않소.》

이리하여 란희 아버지는 빙긋이 웃음지으며 입을 열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며 뼈만 남은 란희 아버지는 두 동지와 함께 함흥형무소로 이송되게 되였다.

셋은 기차에 올랐다. 호송병 두놈이 목갑총을 메고 지켜앉았다. 그러니 렬차의 마주한 두 의자는 호송병과 《죄수》들이 다 차지했다.

렬차에 숱한 사람들이 들어앉았는데 그들의 눈길은 자주 《죄수》들에게로 쏠렸다.

밤이 깊어갔다. 《죄수》 셋은 모두 혁명투쟁을 하다가 잡힌 투사들이였다. 그들은 기차에 오를 때 기회를 봐서 호송병들을 족치고 도망치자는것을 눈짓으로 약속했다.

밤이 깊어가자 호송병 한놈이 하품을 하더니 어깨에 메고있던 물통을 들어 물을 마셨다. 목말라 견딜수 없는 란희 아버지는 한참 바재이다가 말을 뗐다.

《물을 좀…》

그러자 호송병놈이 꽥 소리를 질렀다.

《빨갱이도 물을 마셔? 없어!》

그리고는 물통마개를 닫고 어깨에 도로 메는것이였다.

《빨갱이》라는 말이 렬차안에 잔 파문을 일으키며 퍼졌다.

드디여 두 호송병은 자주 턱방아를 찧었다. 이때를 놓칠수 없다고 여긴 《죄수》들은 란희 아버지의 신호에 따라 벌떡 일어나며 팔목을 묶은 수갑으로 두놈을 내리조겼다. 그러나 뼈만 남은 세사람의 타격이 그닥 클수 없었다.

호송병 둘이 벌떡 일어나더니 《무슨 지랄이야?》 하고 고함지르며 목갑총의 싸창을 꺼내들려 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야구방망이가 네다섯개 다가들더니 호송병놈들의 골통을 까는것이였다. 놈들은 피를 쏟으며 목이 푹 꺾이였다.

란희 아버지랑 쳐다보니 야구방망이의 임자는 중학생들이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들을 얼핏 보았었다. 어디에 야구시합을 갔다오는 모양이였다.

중학생들은 호송병들의 호주머니를 들추더니 수갑열쇠를 꺼내여 세사람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여러분들은 혁명가들이 옳지요?》

한 중학생의 다급한 물음에 란희 아버지는 나직이 대꾸했다.

《그렇소.…》

《이제 어디로 갈 작정입니까?》

《어데 가겠소?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야지.》

그새 소동이 일어난 곳에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방금 란희 아버지에게 물음을 던졌던 중학생이 온 렬차안이 듣게 소리를 높였다.

《여기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려는 혁명가선생 세분이 계십니다. 이 죄수복으로는 빠져나갈수 없습니다. 차안에 계시는 여러분, 이 투사선생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일성장군님께로 찾아가게 옷도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먹을거며 로자도 도와드립시다!》

온 렬차는 웅성웅성 끓었다.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는분들이구만.》

《가만있자, 내 통저고리를 입혀드려야지.》

《돈이 적어서 어쩔가? 그래도 보탬이 되겠지.》

《나한테 찰떡이 있소!》

순식간에 란희 아버지네는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음식을 싼 보자기며 로자를 고맙게 받아들고 차가 멎었을 때 뛰여내렸다.

한 중학생은 그들에게 호송병놈들의 싸창을 들려주며 역담장을 멀리 돌아 무사히 빠져나가게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오래동안 손저어주었다.…

란희 아버지는 깊은 감회에 잠겨 애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때 김일성장군님을 얼마나 온 민족이 하늘처럼 믿는가를 눈물속에 깨달았다.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간다는 말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우리 식구들을 만날수 없었지.》

김기송동지는 속으로 이렇게 웨쳤다.

(김일성장군님! 그이는 우리모두의 해님이시야!)

다른 애들도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아버지곁에 딱 붙어앉은 란희가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아버지, 그때가 언제나요?》

《2년전이지.》

《아유, 그럼 왜 여태까지 우리를 찾지 않았나요?》

박복덕이 역시 같은 생각인듯 머리를 란희 아버지쪽으로 돌렸다.

란희 아버지는 딸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이 철없는것아, 훈춘이란데가 여기서 몇천리나 되는지 아니? 쏘만국경이야. 이 길, 저 길을 톺아서 식구들이 어딘가로 떠났다는걸 알았지. 나는 유격구로 들어갔겠구나 하는 짐작은 했다. 그런데 어느 유격구에 들어갔는지 알수 있어야지. 이 현에만 해도 왕우구, 석인구, 해란구, 삼도만, 여기 장재촌유격근거지가 있지 않니?

얼마전에 사령부에서 군정간부회의가 있었지. 거기에 갔던 우리 중대장동지가 모인 지휘관들에게 돌아가며 물었지. 박복덕이라는 아주머니와 현란희라는 처녀애를 모르는가구. 정말 숲에서 바늘찾기였어. 유격중대가 얼마나 된다구. 그런데 마침 여기 장재촌유격대의 중대장동지를 만났지. 자기네 아동단병실에 둘이 함께 있다구.》

《야!》

아이들은 눈빛을 빛내며 환성을 질렀다. 중대장동지가 세식구의 상봉을 마련해준것이 아닌가.

란희는 눈지방에 물기를 채우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김학철중대장에게 몇번이고 절을 올리고싶었다. 중대장동지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언제 만날지 몰랐을것이 아닌가.

박복덕아주머니도 불깃이 달아오른 눈두덩을 아래로 떨구었다.

김학철중대장이 말에 끼였다.

《나는 훈춘에서 온 중대장과 한참 싱갱이를 벌렸다. 그 사람은 박복덕이와 현란희가 모녀간이라 하고 나는 절대 아니라 했고…

여기 와서 알아보니 혁명정부회장은 이미 알고있었더군. 그러면서 모녀간의 비밀을 지켜주느라고 나한테까지 말을 안했지. 결국 둘의 싱갱이가 김일성장군님께까지 알려지게 되였다.》

(?!)

애들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며 우러러받드는 김일성장군님!

요즘 아이들속에는 김일성장군님의 모습이 더 가까이 자리잡게 되였다.

몇달전에 혁명의 사령부가 자기들이 사는 연길현과 접경인 왕청현 소왕청에 옮겨왔기때문이였다.

아이들은 흥분을 가라앉힐줄 몰랐다.

아,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유격근거지에도 오실수 있겠구나!

언제면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뵐수 있을가?

그런데 박복덕아주머니와 란희의 문제를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시게 되다니?

김기송동지를 비롯한 아이들의 몸은 온통 귀로 변했다. 중대장의 다음말을 기다리는것이다.

김학철중대장은 경건한 자세로 말을 이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둘의 이름이 유표해서 남과 헛갈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란희 어머니에 대해 물으셨다. 나는 아는대로 대답올렸지. 그랬더니 둘의 모상이 어떠냐고 물으시더군. 나는 속으로 이마를 때렸다. 나란히 세워놓고보니 눈매며 입모습이 비슷했거든.

장군님께서는 란희 어머니가 식모로 일한다는것을 아시고 그렇다면 모녀간의 관계를 숨길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그 근거를 말씀하셨는데 여기 와서 알아보니 혁명정부회장과 란희 어머니가 나눈 이야기와 신통히 같지 않겠냐.

나는 놀라움에 싸여 진정 김일성장군님은 하늘이 낸분이시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가슴이 뻐근히 달아올랐다.

기송동지는 목메여 입속으로 몇번이고 《장군님, 장군님!…》 하고 뇌이였다.

중대장의 다음말에 애들은 벌떡벌떡 일어났다. 강한 격동이 그렇게 떠밀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훈춘에 있는 소대장이 장재촌에 가서 제 식구라는걸 확인하면 돌아가던 길에 꼭 나한테 들리게 해주십시오. 정말 쉽지 않은 모녀를 나는 뜨겁게 포옹해주고싶습니다.〉》

애들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뿐아니라 그 품에 한껏 안기게 될 란희의 손이라도 한번 만져보고싶었다.

아이들이 서로 설레치다보니 누구도 란희의 손을 제대로 만져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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