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0 회


제9장 8도구의 총성


1


길장쇠는 홱 돌아서 들구뛰였으나 무릎이 푹 꺾이며 그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총질을 해대는 왜놈군대를 요리조리 피하며 온힘을 다해 도망치다보니 몸의 힘이 다 빠져 제몸을 가눌수 없게 된것이다.

그는 김정숙동지 생각을 했다.

(야, 그 누나 아니였더라면 나는 죽었을거야.)

그러나 그이께 인사조차 못하고 떠났다.

그는 한참 숨을 가누고나서 기운없이 일어섰다. 아무러나 여기를 떠야 하는것이다.

맥없이 걸음을 옮기는 그의 얼굴에는 서글픈 빛이 비꼈다. 그새 정든 동무들과 헤여지는것이 여간 아수하지 않았다.

(이젠 어데로 갈가?)

산속이라야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그여서 아동단병실을 멀리 내려다보며 산을 계속 톺아올랐다. 병실에 들려 아동단복을 갈아입었으면 좋으련만 도망치는 몸이라 그럴수도 없었다.

이때 두 아이가 쌍안경으로 길장쇠를 번갈아보고있었다.

그들은 리동근이와 홍춘삼이였다.

그것들은 림태호를 만난 다음 유격대가 덮쳐들가봐 무척 겁을 먹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다.

리동근은 허파가 흔들거려졌다.

(태호 그자식이 죽이겠다니까 겁먹었던게야.)

리동근은 자기도 그랬을것만 같았다.

그런데 가둑나무물을 들인 헌 아동단복을 입은 한 녀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가 처져 힘들게 걸어올라오고있었다.

리동근은 저녀석이 아동단에서 쫓겨나 어딘가로 향방없이 가는것만 같았다.

(저놈을 써먹으면 어떨가?)

그러나 림태호생각이 떠오르며 망설이게 되였다.

(저놈도 뒤걸음쳐대면 어쩐다?)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촌티가 강하게 풍기나 우직하고 배짱스러운 구석이 있을것만 같았다.

드디여 리동근은 홍춘삼에게 말했다.

《저놈을 불러오자.》

《그러자요.》

요즘 도요다는 계속 이런 비둘기통신을 날려보냈다.

《네놈들을 총살할테다!》

쓸모가 없는 정보만 날려보낸다는 위협공갈인것이다.

산으로 기여올라오는 저자식은 얼마나 아동단에 있었을가?

이러나저러나간에 먼발치에서 보는 자기들보다 유격근거지의 내막을 잘 알것이다.

그러나 림태호를 다룰 때처럼 서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음식으로 구미가 바싹 동하게 하고 우리쪽에 넘어서려는 마음을 충분히 가지게 해야 한다. 그다음 자료를 살금살금 뽑아야지. 그리고 아동단병실에 수류탄도 던져넣게 하고.

홍춘삼은 리동근이 아동단병실에 수류탄을 던졌으며 절반을 죽였다는 거짓말통신을 보낸 일을 까밝히려 했으나 열흘마다 오는 아버지한테 된 면박을 당했다.

《이 반편같은 녀석아, 그러면 도요다가 너를 고와할줄 아니? 저도 수류탄을 던져넣지 못한 주제에 고발질만 한다고 한칼에 너희 둘을 베여던질거야.》

그리하여 이 일에 대해서는 입에 자물쇠를 건 홍춘삼이였다.

리동근은 홍춘삼에게 말했다.

《마주가서 만나자.》

《그게 좋겠어요.》

리동근이와 홍춘삼은 땅에 눈을 떨구고 걸어올라오는 길장쇠앞에 마주다가갔다. 두놈은 촌아이들의 옷을 입었다.

장쇠는 약간 놀랐다.

《너희들은 어디서 왔어?》

리동근이보다 약빠른 홍춘삼이 대꾸했다.

《우린 동촌아동단이야.》

《너네는 옷을 내주지 않던?》

《내줄게 뭐야? 우리 동촌아동단은 거지야. 그래서 집에서 입던 옷을 그냥 입고있지.》

불쑥 홍춘삼이 물었다.

《너희네 분단장은 김기송이지?》

리동근은 흠칫 놀라며 춘삼의 옆구리를 장쇠가 못보게 쿡 찔렀다.

그런 말까지 하다가 들장나면 어쩌자구 그래?… 이런 힐난인것이다.

김기송동지의 말이 나오자 길장쇠는 입을 한옆으로 이지러뜨렸다. 가겠다는데 가지 말란 말 한마디 않던 분단장이 서운했던것이다.

두놈은 쾌재를 올렸다.

이녀석은 분명 분단장과 단단히 덧난 놈이다. 그래서 지금 거기에서 빠져 딴데로 가는게 분명하다.

이런 녀석이라면 주물러대기가 한결 쉬울것이다.

몸집이 도토리알같은 홍춘삼이 입빠르게 한마디 했다.

《너 굶지 않았니? 맥을 못추는구나!》

길장쇠는 눈을 흘끔거리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침도 못먹었어. 비상소집 이는 바람에…》

그는 비위좋게 두 애에게 물었다.

《너희들 먹을게 없니? 나는 배고파죽겠어.》

《아, 그래? 그럼 우리한테 가자.》

두놈은 길장쇠를 데리고 자기들이 숨어사는 곳으로 향했다.

산막집은 집채같은 두 바위짬에 지어놓았다. 앞뒤에 잎나무들이 무성하고 조짚이영을 인 지붕에는 나무가지들을 두툼하게 깔아놓아 누구도 그 집을 알아볼수 없게 해놓았다. 홍달수가 지어준 집이다.

집안에 들어선 길장쇠는 눈이 째질듯 커졌다.

방안을 무척 정갈하게 꾸려놓았다. 돌아가며 벽지를 발랐고 부들로 엮은 노전을 두툼히 깔았다. 바람벽말코지에는 깨끗한 옷이 두벌 걸려있었다.

방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길장쇠의 눈이 방 한구석 노전에 엇비스듬히 가리워져있는 수류탄에 가 멎었다. 먼저 방으로 들어섰던 홍춘삼이 제꺽 노전을 발로 밀어 수류탄을 슬쩍 가리워놓았다.

방으로 들어온 동근은 시위하듯 품에 감추고온 쌍안경을 옷옆에 걸었다.

길장쇠는 석연치 않은감을 느끼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여기가 바로 우리 집…》

동근이 으시대며 뽐내듯 말하려고 하자 홍춘삼이 제꺽 그의 말을 막았다.

《오― 여긴 감시초소야. 너희 아동단엔 이런게 없니?》

그러자 리동근은 뒤더수기를 벅벅 긁으며 어줍은 미소를 띄웠다. 길장쇠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렸으나 어쩐지 께름직한감을 느꼈다.

(이것들이 왜놈밀정이 아니야?)

장쇠는 자기 식구 여섯의 원쑤를 갚을 생각만 앞세웠지만 아동단생활을 하면서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짓밟고 만주까지 타고앉았다는걸 알게 되였으며 근거지근방에 밀정들이 자주 기여든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이쯤 되자 이제는 홍춘삼이 리동근을 뒤로 밀고 주인행세를 하는판이다.

그는 새까만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길장쇠에게 말했다.

《우린 방금 점심을 다 먹었단 말이야. 그러니 다른걸 꺼내주지.》

말코지에 배낭이 하나 걸려있었다.

홍춘삼은 그안에서 과자와 기름사탕 한갑씩 꺼내여 관청에 끌려온 촌닭처럼 몸둘바를 몰라하는 길장쇠앞에 내밀었다.

길장쇠는 눈이 번쩍 뜨이였다.

장마당에 가서 먼발치로 보긴 했으나 입에는 한번도 대보지 못한 희귀한것들이였다.

길장쇠는 그것들을 보자 배가 쓰려오고 입안에 침이 한보시기나 되게 고였다.

장쇠는 먼저 기름사탕갑을 터쳤다. 안에는 네모반듯한것들이 줄맞춰 들어있었다.

한번도 그런걸 먹어보지 못한 장쇠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통채로 입에 물었다.

두 녀석은 몸을 젖히며 깔깔 웃어댔다.

《그건 종이껍질을 벗기고 먹어야 하는거야.》

길장쇠는 얼굴이 빨개졌다. 찬찬히 여겨보니 기름종이로 착착 접어쌌다.

그걸 벗기고 입에 넣으니 네모난게 입안을 찌르면서 땅땅해서 잘 씹히지 않았다. 장쇠는 이발에 힘을 주며 와작와작 깨물어먹었다.

두놈은 멸시에 찬 눈을 은근히 던졌다.

(저런 촌뜨기라구야.)

과자까지 난생처음 맛있게 먹고난 장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더 없어? 이거 어디 성에 차?》

《아, 더 주지.》

엉치가 종이장같이 가벼운 춘삼은 발딱 일어나서 또 과자와 기름사탕을 한갑씩 꺼내주었다.

그래도 길장쇠는 냠냠해하는것 같았다.

두놈은 장쇠를 속으로 벌레처럼 깔보았다.

(저런 식충이라구야.)

그러나 저런 놈을 부려먹기가 더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장쇠를 흰밥과 고기국으로 흐물흐물하게 삶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림태호를 만났을 때 지내 서둘렀다는 후회를 다시 하게 되는것이였다.

리동근은 조그만 놈인데도 제법 손목에 시계를 찼다. 그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둘은 서둘러댔다.

리동근이 방구석에 놓인 미농지보다 더 얄팍한 좁은 종이를 감은 테프를 한뽐이나 되게 찢어 거기에 만년필로 뭐라 썼다.

길장쇠는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탓에 그 글내용은 알수 없었다. 종이테프옆에 그 테프너비의 번호를 찍은 얇은 늄판들이 놓여있었다.

두놈은 뭐라고 쓴 종이와 늄판 하나를 들고 골짜기쪽의 문으로 나갔다.

길장쇠는 강한 호기심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뙤창문짬으로 그놈들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밖에는 비둘기장이 놓여있었다. 비둘기가 둬마리 되는것 같았다.

리동근은 동그랗게 뚫린 구멍에 손을 넣더니 비둘기 한마리를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그 비둘기의 오른쪽다리에 글을 쓴 테프를 감고 얄팍한 늄판을 또 두르는것이였다.

비둘기는 놓아주자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길장쇠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밀정놈이 틀림없구나!)

그는 손석일에게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왜놈들이 비둘기를 날려 서로 련락한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길장쇠는 마음을 단단히 도사려먹었다. 곽찬수선생에게서 들은 얘기가 약효를 나타내기 시작한것이다.

그는 제자리에 시침을 뻑 따고 앉아있었다.

두놈은 길장쇠에게 조금도 의심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촌뜨기가 문틈으로 내다보았을수 없는거고 저녀석이 비둘기의 내속을 알리 없다고 지나치게 장쇠를 깔보았던것이다.

홍춘삼은 저녁을 지었다.

길장쇠의 밥사발에는 흰밥을 곡상으로 넘치게 담고 소고기국에도 살점을 듬뿍 넣어주었다.

길장쇠의 마음을 바싹 끌어당기려는 속심에서였다.

길장쇠는 밥과 국을 바닥이 말짱 비게 먹어버렸다.

홍춘삼은 속없는 소리를 했다.

《더 먹겠니?》

《아니.》

길장쇠는 제법 의젓한 자세를 취했다.

날이 저물어 셋은 잠자리에 들었는데 장쇠는 옆자리를 차지했다.

길장쇠는 처음으로 포근한 호랑이담요를 덮고 누웠으나 정신은 또릿또릿 맑아졌다.

(어떻게 해야 이놈들을 들장낼가?)

그는 캄캄한 속에서 이제껏 별반 써보지 못한 머리를 짜고짰다.

리동근과 홍춘삼이 깊은 꿈나라에서 헤매는것이 헨둥히 알렸다.

그는 소리 안나게 슬며시 일어났다. 몸을 일으켜 머리우에 드리운 쌍안경을 벗겼다. 왜놈 여섯을 잡으려면 쌍안경이 요긴할것 같았다. 멀리서도 놈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바싹 다가들수 있는것이다.

그는 방구석으로 손을 내밀어 노전에 깔려있는 수류탄을 집어들었다. 리동근은 수류탄이 크고 묵직해서 몸에 품고 다니기 불편해 방구석에 놓아두군 했던것이다.

길장쇠는 발볌발볌 부엌쪽으로 기여나갔다.

문소리를 내면 두놈이 깨여날것 같아 부엌바닥에 숨어 수류탄고리를 뽑았다. 그리고는 자기가 누웠던 자리에 굴려넣었다.

그는 문을 차고 뛰여나옴과 동시에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손석일교관이 그렇게 배워주었던것이다.

《꽝!》

귀청이 찢어지는듯한 수류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집이 허양 날아나는것 같았다. 수류탄소리에 산등성이가 부르르 진동했다.

길장쇠는 파편이 다 날았다고 생각될 때에 벌떡 일어나 쌍안경을 들고 줄행랑을 놓았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