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8 회


제8장 친형제


2


남양촌, 영창동, 동신평 등 8도구 동쪽켠의 여러 마을에서 8도구장에 가려면 반드시 헐떡고개를 넘어야 했다. 산길이 너무 가파로와 산꼭대기에 오르게 되면 모두숨을 헐떡거리게 되기때문이였다.

이 헐떡고개마루의 량켠에 바람벽같은 바위가 날카롭게 마주서있었다. 그 바위벼랑우에 뿌리를 박은 나무들이 한복판으로 가지를 뻗어 쉬고 가기에도 좋았다.

8도구로 오가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여서 이 헐떡고개의 량켠 바위벽에는 여러 혁명조직에서 붙이는 격문과 구호가 그칠줄 몰랐다.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게 되였다.

이걸 알고 8도구경찰분서에서는 자전거를 타고와 격문이며 구호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고함질과 발길질로 내쫓고 그 종이장을 뜯어던지느라 바삐 돌아쳤다.

요즘은 혁명조직들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구호와 격문을 내붙였다.

바위벼랑을 타고올라 길 한복판으로 뻗은 나무가지에 아래우로 나무가름대를 댄 구호며 격문을 내리드리웠던것이다.

행인들은 그 구호며 격문을 더 똑똑히 볼수 있었다.

경찰놈들은 그걸 떼던지려 해도 돌멩이는 미치지 않아 총을 쏘아 떨구어버리군 했다.

오늘 아침에는 크고 희한한 만화가 그자리에 내리드리웠다.

옹근 백로지를 두겹으로 붙이고 앞뒤에 가로그림으로 이런 만화를 그려붙인것이였다.

한마리의 고래가 죽을듯이 요동친다. 아가리에서 뻘건 피가 콸콸 뿜어진다. 코구멍에서 분수같은 피가 하늘높이 솟구쳐오른다.

조선글과 중국글로 쓴 제목은 이러했다.

《조중인민의 단합된 힘에 오랑캐놈들은 숨이 끊긴다.》

고래의 배부위에는 역시 우리 글과 중국글로 《왜국》이라고 썼다.

오랑캐란 야만의 족속이라는 뜻이며 왜놈, 왜국에서 《왜》자는 난쟁이를 가리킨다.

그 몸부림치는 고래등때기를 흰옷을 입은 조선사람과 검은 옷을 입은 중국사람들이 작살로 자루깊이 푹푹 찌른다. 눈에서 불이 펄펄 인다.

그뒤에 흰옷과 검은 옷의 수많은 군중이 작살을 높이 들고 달려든다.

장보러 가던 사람들은 그 만화밑에서 걸음을 뗄줄 몰랐다. 사람들이 길을 꽉 메웠다.

얼마전 왜놈비행기가 《빨갱이 조선거지들의 말로》라는 삐라를 수많이 뿌렸다. 중국사람들의 마을에서는 중국글로 《빨갱이 중국거지들의 말로》라는 삐라를 뿌린걸 모두 보았다.

그런데 그걸 되받아치는 만화가 마음후련하게 나붙은것이다.

조선사람, 중국사람모두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그때의 삐라가 무척 기분잡쳤던것이다.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거참, 그림이 신통하구만.》

《아무렴, 조중인민이 힘을 합치면 그따위 쪽발이새끼들이야…》

《누가 그렸는지 힘이 부쩍 나누만.》

《보던중 제일 마음후련한 그림이야.》

이 만화는 곽찬수선생이 그린것이였다.

그 만화에서 멀지 않은 산꼭대기의 풀덤불뒤에 강진혁과 박귀남이 숨어 사람들의 동정을 살피고있었다.

그들은 한밤중에 장재촌을 떠나 어뜩새벽에 이 만화를 둘이 손을 모아 고개마루 한복판으로 뻗은 나무가지에 걸었던것이다.

만화의 맨 웃켠 가름대나무에는 흰천에 싼 작탄이 매달려있었다.

강진혁의 아버지가 조양촌 혁명호제회 회장이였다는걸 안 다음 김기송동지는 그애를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였다.

(야, 진혁동무의 아버지는 훌륭한분이였구나!)

기송동지는 진혁을 유격구에 있을 애가 못된다, 그애를 내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얼마나 뉘우쳐졌는지 몰랐다.

하루는 최춘도회장을 행길에서 만났다.

《분단장, 거기에 강진혁이라는 애가 있지? 그애가 나를 찾아왔더구나. 나는 그애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애 아버지는 혁명을 얼마나 착실히 도왔는지 몰라. 그애를 잘 도와주라구.》

그때부터 강진혁에 대해 더욱 관심을 두게 된 김기송동지였다.

강진혁의 생활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었다. 그사이의 아동단생활이 그에게 적지 않은 혁명의식을 심어주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조양촌혁명호제회 회장이였다는것을 안 다음 그의 피는 세차게 끓어번졌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이 일이 기뻐 강진혁을 동무들앞에 적극 내세워주군 했다.

곽찬수선생이 수업을 끝낸 다음 기송동지에게 물었다.

《이제 현에 련락을 띄워야겠는데 누굴 보냈으면 좋겠니?》

기송동지는 얼른 대답했다.

《강진혁동무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강진혁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그렇단 말이지. 그거 좋구나. 그럼 진혁을 최춘도회장에게 보내거라.》

이날부터 유격구의 련락임무, 삐라공작 등을 도맡다싶이 하게 된 강진혁이였다.

지금 박귀남과 함께 풀덤불뒤에 숨어 행길의 동정을 살피는 강진혁은 포복전진을 하다가 왜놈들의 삐라를 보았던 일이 생각났다.

다음날 곽찬수선생은 아동단학교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왜놈들은 고래몸뚱이에 〈대일본제국〉이라고 써갈겼습니다. 짐승중에서 제일 크고 센 고래만큼 자기들의 위력이 세다는걸 시위하려는것이겠지요.》

곽선생의 말에 의하면 대체로 고래의 길이는 30메터, 몸무게는 소의 150~170배, 심장의 무게 600~700키로그람, 간의 무게 1톤, 위의 무게 500키로그람, 혀의 무게 700키로그람 …

애들은 찢어지게 입을 쫙 벌렸다.

(야, 고래란게 그렇게 크나?)

이런 생각이 하나같이 들었기때문이였다.

곽선생은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머리로 만든 고래포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고래배에 장치된 고래포를 쏘면 작살이 날아가 고래의 몸뚱이에 박힙니다. 작살은 뾰족한 쇠장대에 여러개의 날카로운 쇠갈구리가 달렸는데 고래몸뚱이에 박히면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 작살에 작살줄이라는 쇠바줄이 달렸는데 고래가 암만 요동을 쳐야 그 작살줄을 끊지 못합니다. 결국 죽기내기로 몸부림치다가 흰배를 드러내며 바다우에 떠오르고야맙니다.》

곽찬수선생은 정중한 자세를 가졌다. 아이들도 따라 몸가짐을 단정히 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귀중하며 사람이 제일 힘있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선생은 인류력사를 더듬어나갔다.

노예사회에서는 노예주가 노예들을 마음대로 팔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봉건사회에서는 지주놈들이 농민들을 마소처럼 부려먹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근로자들을 한갖 상품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인민대중이 가장 지혜롭다. 고래포도 인민대중이 만든것이다.

착취받고 압박받던 인민대중, 그들을 력사의 주인으로 당당히 내세워주신분은 김일성장군님이시다. 성난 벌떼 쉰마리면 사람도 제낀다고 한다. 인민대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그들의 지혜 또한 하늘을 놀래운다.

보라, 국내의 한 혁명조직이 우리 근거지에 얼마나 많은 원호물자를 보내주었는가. 이런 힘이 하나로 뭉치면 《대일본제국》이라는 《고래》를 잡아치우지 못하겠는가.

강진혁은 곽선생의 말을 돌이키며 며칠전에 만났던 류창식을 그렸다.

겉보기에는 볼품없는 나무군, 그러나 그의 머리에는 얼마나 많은 지혜가 차고넘쳤던가.

행길바닥에서 째릉― 째릉― 자전거종소리가 들렸다. 강진혁이와 박귀남은 목을 길게 뽑았다.

기다리던 경찰 두놈이 왔다. 둘은 이제껏 이놈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강진혁은 곽찬수선생에게서 임무를 받으며 구호나 격문을 나무가지에 달면 경찰놈들이 총으로 쏴떨군다는 말을 들은 일이 생각났다. 그도 머리가 어지간히 돈다.

그래서 곽찬수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만화에 수류탄이나 작탄을 달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경찰놈들을 즉사시킬것 같습니다.》

《오 참, 그럴듯한 생각이군. 내가 유격대중대장한테 가서 말해보지.》

이리하여 만화의 웃가름대에 경찰놈들이 알지 못하게 작탄을 천에 싸서 매달았던것이다.

만화밑에서 행인들이 와글와글 끓었다. 만화내용이 너무 통쾌해서였다.

경찰놈들은 만화를 보자 울화가 치밀어 견딜수 없었다. 그놈들도 비행기에서 떨군 삐라를 보았는데 너무도 신통히 반격을 가해왔기때문이였다.

두 경찰놈은 대바람 장총을 벗어들고 행인들을 마구 걷어차며 악청을 뽑았다.

《헤쳐지지 못하겠어? 총으로 쏴갈길테다.》

행인들은 뿔뿔이 멀리 흩어졌다.

두 경찰놈은 만화내용이 괘씸해 련거퍼 만화를 향해 장총으로 쏘았다. 총알로 만화를 갈가리 찢어던질 작정이였다.

작탄의 폭음이 대기를 쪼갰다. 뒤이어 두 경찰놈의 비명이 터졌다.

강진혁과 박귀남은 벌떡 일어나 《만세!》하고 부르짖으며 서로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강진혁과 박귀남은 짝패가 되여 여러차례 비밀련락임무를 수행했다.

한번의 실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최춘도회장이며 곽찬수선생, 민성기구공청비서가 무척 흡족해했다.

오늘은 장재촌근거지 혁명정부에서 지하혁명조직에 보내는 비밀쪽지를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최춘도회장은 매우 중요한 문건이니 절대로 적들 손에 들어가서는 안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진혁은 집에서 뛰쳐나올 때 입었던 노타이샤쯔에 검은목세루바지를 깨끗이 빨아 다려입었다.

아버지가 불덩이가 된 몸을 마구 뒤틀다가 돌아간 모습이 진혁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그는 눈굽에 물기가 맺혀 목메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내가 지금 아버지의 뒤를 잇고있어요. 아버지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테예요.》

박귀남은 유격구에 들어올 때 입었던 기운 자리가 가득한 허드레옷을 입었다.

강진혁은 잘사는 집 자식같고 박귀남은 그 집 몸종같았다.

진혁은 호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들었다. 그는 그럴듯한 생각을 해냈다.

하모니카의 구석켠 구멍에 비밀쪽지를 박아넣으면 누구도 모를것 같았다. 정말 성냥개비같은 비밀쪽지를 맨 구석켠의 웃구멍에 찔러넣으니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붕어입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혁은 하모니카를 꺼내들고보니 멋들어지게 불고싶은 생각이 일었다. 그러나 비밀련락의 길에 그런짓은 억눌러야 할것이다.

곽찬수선생이 강진혁에게 하모니카를 준 다음 그것이 모든 애들의 손에서 손으로 분주히 옮겨졌다.

진혁은 직심스레 배워주느라 했다.

김기송동지는 역시 재간둥이였다. 진혁에게서 몇번 지도를 받더니 솜씨있게 하모니카를 불었다.

기송동지는 요즘 신호나팔로 가락이 세개 달린 트럼베트처럼 《아리랑》이며 《도라지》를 기막히게 불었다.

5음밖에 내지 못하는 신호나팔로 묘한 혀차기와 미세한 숨조절로 우리 민요를 막힘없이 부는것이였다.

박귀남도 눈치가 여물어 다른 애들보다 앞서 하모니카를 제법 불었다. 다만 강진혁이처럼 멋들어진 흥을 돋구는 뻬스를 넣지 못할뿐이였다.

둘은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이제부터는 할수없이 큰 행길을 가로질러야 했다.

행길에 《자위단》놈들이 지켜서고있는지 알수 없어 산에서 내려다보았다. 《자위단》원 두놈이 보총을 메고 길목을 지키고있었다.

시간이 급하니 그놈들의 옆을 스쳐지날수밖에 없었다.

진혁은 귀남에게 주의를 주었다.

《내가 나설테니 너는 조금 떨어져와. 상촌에 있는 지주 심두만의 머슴이라 하란 말이야.》

강진혁은 지주집의 아들로 행세하려 했다. 그러면 몸조사를 당하지 않고도 무사히 스쳐지날수 있었다.

강진혁은 멀리서부터 행길에 나섰다. 산길을 타고온 기미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진혁은 놈들이 서있는 저만큼 앞에서부터 하모니카를 꺼내여 거들먹지게 《학도가》를 불렀다. 잘사는 집 아이라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놈들은 진혁이 앞을 지나쳤어도 아무런 트집을 잡지 않았다.

(이젠 됐다.)

진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자위단》원중의 한놈, 땅딸보가 꽥 소리질렀다.

《얘, 거기 섰거라.》

진혁은 돌아서며 버젓한 자세를 취했다.

《왜 그래요?》

《히히… 너 하모니카를 잘 부누나. 나 좀 배워주지 않겠니?》

강진혁은 으시대는 투로 맞섰다.

《길거리에서 어떻게 배워준단 말예요. 난 바빠요.》

그리고는 걷던 길을 이어갔다.

땅딸보는 고함소리를 높였다.

《이새끼, 서라면 서는거고 배워달라면 배워주는거지.》

땅딸보는 밭은 다리를 바삐 옮겨 진혁의 옆에 다가오더니 손에 든 하모니카를 홱 나꿔챘다.

하모니카구멍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땅에 대고 탁탁 때렸다. 그러자 맨구석켠에 박혀있던 련락쪽지가 홀까닥 뛰쳐나왔다.

단속에 이골이 난 땅딸보는 벌써부터 하모니카에 의혹을 품고있었던것이다.

강진혁은 날쌔게 그 련락쪽지를 후려잡고 입안에 던져넣었다. 삼키려고 목구멍에 힘을 주었다.

《요놈의 새끼, 나를 속일려구?》

땅딸보는 진혁의 입안에 들어간 쪽지를 뽑아내려고 우악스럽게 아래우 이발을 벌리느라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진혁은 그 손가락이 끊어지게 힘껏 깨물었다.

《앗!》

땅딸보는 피가 진 손가락을 뽑으며 뒤걸음쳤다.

약이 꼭뒤까지 치민 땅딸보는 망치같은 주먹으로 진혁의 얼굴을 힘껏 내질렀다.

진혁은 비명과 함께 피를 왈칵 내쏟았다.

땅딸보는 진혁의 목을 조여잡고 입을 다시 벌렸으나 비밀쪽지는 이미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미칠듯한 분기에 싸인 땅딸보는 총박죽으로 진혁의 머리며 어깨 등 어디라없이 사정을 두지 않았다.

강진혁은 앞으로 꼬꾸라졌다. 피가 랑자하게 흘렀다.

다른 한놈이 진혁의 등에 대고 총을 갈겼다. 땅딸보도 분을 이길수 없는지 연방 총알을 먹였다.

이걸 박귀남이 아직도 산속에 숨어 다 내려다보고있었다.

하늘이 와르르 쏟아져내리고 땅이 빙글빙글 맴돌아치는듯싶었다.

두놈은 재수없다는듯 침을 퉤퉤 뱉으며 저쪽으로 멀어져갔다.

귀남이는 그놈들이 아주 멀리에 갔다고 생각될 때에 《형님!》하는 부르짖음을 목터지게 뿜으며 강진혁이한테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쓰러져있는 강진혁은 이미 숨이 없었다.

박귀남은 피투성이가 된 강진혁을 마구 흔들어대며 피터지게 《형님!》, 《형님!》 하고 웨쳤다. 그 애절한 울음섞인 소리가 하늘가로 퍼졌다.

박귀남은 펀뜻 이 사실을 빨리 유격구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면 강진혁을 그냥 이 행길에 두어서는 안되였다.

몸집이 작은 박귀남은 젖먹을 때의 힘까지 뽑으며 강진혁을 업고 산기슭의 옴폭한 곳에 옮겼다. 땅에 딩굴던 하모니카도 호주머니에 넣었다.

헤덤벼치며 옆의 잎나무들을 꺾어 시신에 덮어주었다.

유격구를 향해 줄달음을 놓는 박귀남의 목에서 뿜어지는 겨불내에 불이 달릴것 같았다.

아동단병실까지 달려온 박귀남은 문을 열려다가 그만 그앞에 숨진듯이 쓰러졌다. 아동단병실에서 법석 소동이 일었다.

귀남의 옷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동무들이 흔들어댔으나 처음에는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김기송동지가 앞에 나타나자 이내 알아보았는지 겨우 《진혁형님이…》하고는 다시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는 힘들게 호주머니에 넣었던 하모니카를 내밀었다.

기송동지는 늘 강진혁이 가지고 다니던 하모니카가 귀남의 손에 옮겨진것을 보고 모든 일을 짐작할수 있었다.

(아, 진혁동무가?)

기송동지는 머리가 핑했다.

동무들은 귀남이를 정신차리게 하느라 덤벼쳤다.

박우물옆으로 옮겨가 찬물을 천천히 온몸에 들씌워주었다.

박복덕아주머니가 진하게 푼 꿀물사발을 들고 달려와 제 무릎에 눕히고 한술한술 떠넣어주었다.

귀남은 차츰 정신을 차렸다.

그는 분단장에게 있었던 일을 다 얘기했다. 옆의 애들도 모두 들었다.

처녀애들은 대뜸 얼굴을 싸쥐고 울음을 터쳤다. 사내애들도 연신 손으로 눈굽을 훔쳤다.

김기송동지는 이 비상사건을 한 동무를 띄워 혁명정부와 유격대에 알렸다.

그러나 꾸물거릴새가 없었다.

빨리 진혁을 죽였다는 《자위단》원놈들을 따라가 족쳐야 했다.

김기송동지는 분단원들을 데리고 산길을 탔다.

길장쇠와 림태호는 마상대를 어깨에 멨다. 약통실에는 탄알 한알씩밖에 없었다. 전화선절단작업이 끝난 다음 탄알쌈과 수류탄은 도로 김학철중대장에게 바쳤던것이다.

다른 애들은 곡괭이며 삽, 낫 등 쟁기들을 모두 들었다.

강진혁을 묻으려면 그 쟁기들이 있어야 했지만 진혁을 죽인 놈들과 판가리복수전을 벌리려는것이였다.

그래서 행길이 내려다보이는 산길을 탔다.

두 《자위단》놈은 분명 이동순찰이다. 그러니 가는 길에 그놈들을 띄여볼수 있다고 여긴것이다.

강진혁의 시신이 있는 곳에 이를 때까지 원쑤놈들을 띄여볼수 없었다.

박귀남이 덮었던 나무잎을 제끼니 피투성이몸은 벌써 굳어졌다. 그 작은 입을 어떻게나 짓쪼았는지 퉁퉁 부어올랐다.

애들은 강진혁을 부둥켜안고 울음바다를 펼쳤다. 그옆에 선 렴죽심이와 현란희는 발을 동동 굴렀다.

김기송동지는 마상대를 멘 길장쇠와 림태호를 행길가까이의 풀숲에 숨어 망을 보게 했다. 태평스레 지나가는 놈들을 두알의 총알이면 넉근히 꺼꾸러뜨릴수 있었다. 총소리를 듣고 쟁기를 든 아이들이 와락 덮쳐들것이다.

림태호는 자기한테 마상대를 메준 분단장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사실 기송동지는 그의 담을 키워주고싶었고 변함없는 동무라는것을 알리기 위해 그에게 총을 메워주었던것이다.

동무들이 시신에서 물러났을 때 기송동지는 맨 나중에 강진혁의 앞으로 다가갔다. 기송동지는 젖은 천으로 그의 피묻은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을 뗐다.

《진혁동무.》

기송동지는 언제나 진혁이가 나이가 우이기때문에 《동무》라는 호칭을 붙이군 했다.

기송동지는 울음을 왈칵 터쳤다. 그 울음에 심장을 통털어 드러내보이는듯한 절절한 말을 섞었다.

《진혁동무,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동무를 잘사는 집 아이라고 내쫓으려 했습니다. 일할줄 모른다고 깔봤습니다.

분단장선거때 동무는 나를 반대하라고 몇동무를 추겼지요? 그걸 알고 나는 무척 괘씸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반대를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 쩍하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진혁동무, 동무는 오늘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뚜렷이 보여주었습니다.

동무는 우리들의 거울입니다. 우리모두 진혁동무처럼 싸우며 살겠습니다.》

김기송동지는 보자기를 하나 들고왔다. 그속에는 국내인민들이 보내온 원호물자로 지은 강진혁의 아동단복이 들어있었다. 기송동지는 혁명의 길에서 숨진 진혁에게 혁명의 제복이라 할수 있는 아동단복을 입혀 보내고싶었던것이다.

아이들은 그 옷을 진혁이에게 깨끗이 입혔다.

김기송동지는 동무들에게 말했다.

《동무들, 강진혁동무를 조국땅이 바라보이는 산마루에 정히 묻읍시다. 어떻습니까?》

《옳습니다!》

《좋습니다!》

아이들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하나같이 화답했다. 김기송동지를 비롯한 분단원들은 산마루에 올라 안풍한 동쪽켠에 강진혁을 묻었다.

무덤옆에 애들은 머리를 깊이 숙이고 빙 둘러섰다.

김기송동지는 강진혁이 늘 가지고 다니던 하모니카를 호주머니에서 꺼내들고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강진혁동무와 헤여지면서 노래를 부릅시다.》

울음이 푹 배인 숨결로 부니 하모니카도 구슬피 울리는듯싶었다.

분단원들은 흑흑 흐느끼며 영결의 노래를 불렀다.

… …


이때 행길에 숨어서 지나가는 순찰병놈들을 지키고있던 림태호의 뒤를 따라 김학철중대장과 손석일이 숨가삐 산으로 올라왔다.

유격대에서는 적들이 새여들수 있는 먼곳의 여러곳에 잠복초를 꾸리고있었다. 그러다나니 뒤늦게 놀라운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참이였다.

최춘도회장은 자리를 비우고있었고 곽찬수선생은 방금 현으로 떠난 참이였다.

중대장과 손석일이 눈물에 젖어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너무도 일찌기 생을 마친 강진혁에게 오래도록 묵상했다.

김기송동지는 산을 내리며 강진혁의 온기가 푹 배인 하모니카를 박귀남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걸 형이라 생각하고 잘 간수해.》

기송동지는 둘의 친형제같은 정을 아껴주고싶었던것이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