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7 회


제8장 친형제


1


오후, 김기송동지는 분단원모두를 운동장에 정렬시켰다.

적의 군용전화선절단작업을 하려는것이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실탄사격이 있은 다음날, 휴식일이여서 렴죽심은 새벽일찍 집을 향해 떠났다. 실탄사격을 끝내고 난생처음 배불리 먹다나니 아침먹을 생각은 바이 없었다. 게다가 한시바삐 제 가슴에 단 우등사수꽃송이를 아버지와 병기창아저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꽃송이를 매만지고난 아버지는 눈자위에 물기를 번지며 젖은 소리로 일렀다.

《그걸 네 엄마한테 보여주렴.》

바람벽에는 꽤 크게 찍은 가족사진이 액틀속에 끼워 걸려있었다.

죽심은 가슴속에 눈물이 그득해짐을 느끼며 액틀속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엄마, 이 딸 죽심이가 실탄사격에서 우등사수가 됐어요. 엄마, 이 꽃송이가 보이나?)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이 흘리며 그 우등사수꽃송이를 엄마가 늘 보게하려고 액틀을 박은 못에 정히 걸었다.

병기창아저씨들도 이 일을 알고 달려와 기쁨을 터쳤다.

《우리 죽심이가 어련할라구.》

《아버지가 어떤 마음을 품고 떠나보낸 길이야.》

《오늘은 우등사수, 래일은 유격대의 녀걸이 돼야지.》

김기송동지는 렴죽심이 집으로 간다는것을 알고 그 전날 식모 박복덕에게 당부했다.

《남은 음식을 아끼지 말고 죽심이한테 들려보내자요. 병기창에 성원이 다섯명이니 점심을 푸짐히 에우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리하여 박복덕은 메돼지고기며 기장떡 지어 되병에 감주를 채우고 죽심이 떠날 때 배낭을 메워주었던것이다.

국내에서 원호물자가 들어오자 모든 유격대원들에게 배낭을 나누어주고 나머지 열개를 아동단에 주었던것이다.

죽심이네 집에서 병기창사람들은 흐뭇한 마음에 싸여 점심상을 마주했다.

이야기는 모자라 애를 먹는 양철과 철사로 좁혀졌다. 흥그러운 자리에서도 자꾸 사업이야기만 하게 되는 그들이였다.

작탄을 만들자면 화약과 쇠붙이, 양철과 철사가 있어야 한다.

화약은 오봉광산에서 계속 들여보내고 쇠붙이는 《토벌》맞은 마을들에서 깨진 가마를 뽑아다 콩알처럼 바스라뜨리면 걱정될것이 없다.

그런데 양철과 철사가 문제다. 양철은 작탄의 형태를 만드는데 쓰고 철사는 그 외피를 그물처럼 촘촘히 조여매는데 쓴다.

옆에서 잠잠히 듣고있던 렴죽심이 냉큼 끼여들었다.

《아버지, 양철은 몰라라 철사는 많이 구할수 있을것 같애요.》

모여앉은 사람들의 시선은 이렇게 묻는것 같았다.

《어떻게?》

《아버지, 철사로 왜놈들의 전화선을 쓰면 안되나요?》

렴국찬은 내내 딸에게서 대견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대답했다.

《그 철사야말로 그저그만이지. 강쇠지만 불덕에 구우면 당장 눅진눅진해져. 그런데 그런 전화선이 어디 있니?》

렴죽심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분단장이 알아도 같은 생각일거라는 믿음에 더욱 어조에 힘을 주게 되는것이였다.

《우리 있는데서 10리도 안되는 곳에 왜놈들의 전화선이 지나갔어요. 그걸 잘라오면 되지요 뭐.》

병두는 천진하고 단순한 죽심이 사랑스러워 그의 통통한 볼을 톡 건드리며 웃음속에 말했다.

《너처럼 모든 일이 쉬우면 얼마나 좋겠니? 왜놈들이 전화선밑으로 계속 순찰을 돈단 말이야. 세퍼드를 앞세우고. 그놈들한테 걸리면 큰일 나.》

이악쟁이인 렴죽심은 지려 하지 않았다.

《순찰병들이 10리, 20리씩 맡고 돈단 말이예요. 그 짬을 리용하면 얼마든지 잘라올수 있어요.》

렴죽심은 군사교관인 손석일한테서 이런 말도 들었기에 자기 생각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병기창사람들은 그러다가 아이 하나라도 상하면 야단이라는 생각에 《그건 안돼. 위험하단 말이야.》하면서 내내 도리질을 쳤다.

렴죽심은 약이 올랐다. 병기창아저씨들에게 떼질하다싶이 해서 집게 세개를 얻어들고는 그길로 집을 나섰다.

하루밤 자며 아버지에게 끼니도 정성스레 대접하고싶었지만 빨리 이 일을 분단장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조급히 떠밀었던것이다.

이 일을 안 김기송동지는 불달린 도화선과 같았다.

《아니, 그걸 왜 우리가 못해? 얼마든지 할수 있어!》

근거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맡아나서고싶은 김기송동지는 그길로 김학철중대장을 찾아갔다.

생각이 깊은 중대장은 오래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투쟁속에서 아동단원들을 단련시키고싶은 김학철이였다.

순찰병은 기껏해야 2명일것이다. 애들이 덤비지만 않으면 넉근히 제낄수 있었다.

중대장은 손석일을 불러 탄알 두알쌈과 왜놈들의 공격용수류탄 2개를 가져오게 했다.

실탄사격때 보충해쓰던 마상대는 아동단에 아주 주었다. 그러니 아동단에는 마상대가 2정 있었다.

김학철은 무게있게 말했다.

《한번 해보라구. 그러되 주의할 점은 많아. 앞으로의 후과까지 내다봐야 하거든.》

그러면서 주의할 점을 세세히 대주었다.

이리하여 월요일 오후인 오늘 전화선절단작업에 나서게 된것이다.

대오는 힘차게 전진했다.


김학철중대장은 장재촌의 서쪽으로 흐르는 구수하를 옆에 끼고 내려가다가 전화선을 절단한 다음 구수하를 건너 그 강녘의 얕은 물을 헤치며 한참 올라오다가 돌아오라고 했다.

순찰병들이 수색견인 세퍼드를 앞세우고 다니기에 개의 냄새에 혼란을 주려는것이였다.

다섯발의 총알을 장탄한 마상대와 공격용수류탄은 김기송동지와 길장쇠가 각각 메고 찼다.

길장쇠는 실탄사격에서 8점을 맞았지만 그래도 그전에 총다루던 경험을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장쇠는 총과 수류탄을 손에 쥐자 제것으로 만들 욕심이 세찬 우등불처럼 솟구쳤다.

(야, 이것만 있으면…)

그는 지금도 여섯식구의 원쑤를 갚지 못한 일을 두고 속을 앓고있는것이였다.

다른 애들은 모두 곤봉을 어깨에 메였다. 곤봉은 아동단의 무기였다.

아동단원들은 목적지에 이르렀다.

군용전화선은 장재촌의 동쪽방향인 신창리쪽에서 뻗어나와 룡수평을 거쳐 8도구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들이 이른 곳은 구수하기슭의 룡수평땅이였다.

구수하란 아홉개의 개울이 합쳐 이루어진 강이라는 뜻이다.

전주는 두층으로 6줄의 전화선을 물고있었다. 줄밑으로는 2~3메터의 너비로 나무를 깨끗이 베였다. 순찰길을 만들어놓은것이다.

일을 시작하려는데 방정맞게도 전화선 웃켠에서 한사람이 나무를 하고있었다.

키가 무척 작았다. 아이인줄 알았는데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서는것을 보니 해볕에 얼굴이 쩌들고 주름살이 많은 마흔댓쯤 된 장정이다.

모두가 긴장해졌다.

이 나무군때문에 도무지 전화선절단작업에 달라붙을수 없었다.

애들이 수군거렸다.

《밀정이 아니야?》

길장쇠는 앉은사격자세를 취하고 그 나무군을 겨누었다. 한방 갈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기송동지가 바쁜소리를 쳤다.

《누구를 쏘려 그래? 잘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쏘면 돼?》

장쇠는 퉁명스레 대답을 던졌다.

《저놈은 밀정이야. 틀림없어.》

그러면서 시꺼먼 눈을 흘끔거렸다.

다른 애들도 기송동지한테 조여들며 졸랐다.

《저놈을 묶자요. 그리곤 달구어대자요. 밀정이 틀림없어요.》

김기송동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 나무군쪽으로 나무숲을 가르며 올라갔다.

나무군은 겁에 질렸는지 상당히 긴장되여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유격구의 아동단원들임을 대뜸 알아보았다. 가둑나무물을 들인 광목옷을 하나같이 입었고 어깨에는 곤봉을 메였기때문이였다.

나무군은 김기송동지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무를 찍던 도끼를 툴렁 떨구었다.

김기송동지는 곽찬수선생이 일러주던 말을 생각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을 굳게 믿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무군과 솔직히 얘기를 해보면 밀정인가 근실한 농민인가를 가를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김기송동지는 깍듯이 머리숙여 나무군에게 인사했다.

《우리는 장재촌아동단원들입니다.》

김기송동지가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놓자 나무군의 긴장했던 낯빛이 약간 풀렸다.

《나도 아동단원인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여기에?》

나무군은 자기 자식벌 되는 나이인 기송동지였지만 존대를 붙였다.

김기송동지는 계속 솔직히 터놓으려 했다.

《우리는 전화줄을 끊으러 왔습니다. 좀 도와줄수 없겠습니까?》

그러면서 온 신경을 바늘끝같이 다스려 상대의 표정을 날카롭게 살폈다.

《그 전화줄로는 뭘하려고 하오?》

마음이 어지간히 가라앉은 나무군은 동네애들에게 말하듯 어조를 바꾸었다.

《그걸 내놓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많을수록 좋습니다.》

나무군은 웃음기를 약간 띄웠다.

《난 겁이 덜컥 났댔어. 아까 피끗 보니 한 애가 나를 쏘려 하더군. 나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어. 전화줄 끊는거야 내가 도와주지.》

그리고는 떨구었던 도끼를 다시 잡고 앞장서 걸어갔다.

김기송동지는 그에게 믿음이 갔다. 암만 살펴야 딴생각을 굴리는것 같지는 않았다. 서슴없이 나서는 그의 자세, 이것은 좋은 농민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기송동지가 나무군을 앞세우고 내려오자 동무들은 우르르 둘러쌌다.

애들은 나무군이 못보게 기송동지한테 별스러운 눈짓을 던졌다.

《밀정이 아니나요?》하는 물음인것이다.

기송동지는 나무군에게 웃어보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동무들은 아저씨가 밀정이 아닌가 해서 의심합니다. 그래서 아저씨까지 듣게 대답하겠습니다. 밀정은 아니다!》

그러자 주름살투성이인 키작은 나무군은 낯빛을 완전히 풀었다.

《지금 밀정이 득실거릴 때니 그렇게 생각할수 있지. 나는 볼것 없는 사람이지만 나라찾을 생각은 불같아. 그래 어떻게 전화줄을 끊으려 하나?》

마지막말은 기송동지에게 던지는 물음이였다.

기송동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두 전주에 올라 전화선을 몽땅 끊지요. 그러면 아래로 떨어지는 전화선을 거두면 되지 않을가요?》

나무군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는 젊었을 때 공사판에만 돈 사람이야. 전기줄은 무르지만 전화선은 강철처럼 탕탕 튕겨. 이제 전화선을 끊으면 팽팽하니 하늘로 튕겨오르기도 하고 땅으로 박혀들며 서로 감겨돌아갈거야. 그걸 푼다는게 간단치 않아. 그 전화줄을 다 푸느라면 왜놈들이 덤벼들거야. 왜놈들은 전화기를 들고 전주에 올라 어디 끊어지지 않았나 알아보거든. 엉킨걸 다 풀지 못한채 왜놈들한테 잡힐수 있어.》

아동단원들은 얼떠름해졌다.

나무군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말했다.

《이렇게 하자구. 전화줄을 끊어갈바에는 많이 끊어가야지. 먼저 다섯대의 전주를 밑둥만 자르자구. 그러면 전주대는 끊어졌지만 전화줄은 그냥 늘어져있어 왜놈들이 눈치챌수 없어. 전주사이의 간격은 50메터인데 다섯대의 전주가 밑둥이 짤리면 땅에 거의 닿게 돼. 이때 모두 달라붙어 전화줄을 거두잔 말이야.》

아이들은 《야! 야!》 환성을 질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인민은 선생이고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이였다.

아이들의 기분에 덩달아 나무군은 흥이 나서 말했다.

《전주밑둥은 내가 찍어주지. 모두 도끼들이 없지?》

《예.》

《집게만 세개.》

전주찍는 작업이 시작되였다.

김기송동지는 전주대가 늘어선 량켠 산꼭대기에 렴죽심이와 현란희를 망원초로 띄웠다. 어느 순간에 놈들이 접어들지 모르니 망을 세우려는것이였다. 이곳에서 받을초의 역할은 박귀남이 맡게 했다.

나무군의 이름은 류창식이였다.

창식은 도끼를 잡아쥐며 기송동지에게 말했다.

《분단장, 내가 전주를 찍을테니 키작은 애는 아래에서, 키큰 아이는 우에서 빙 둘러 전주를 힘껏 밀라구. 전주를 찍으면 진동이 전화줄에 퍼지거든. 그걸 극력 막아야 왜놈들이 알수 없어.》

그는 기송동지가 분단장임을 알았던것이다.

애들은 류창식이 도끼질할 자리만 남기고 빙 둘러서서 전주를 힘껏 밀었다. 창식의 도끼질솜씨는 놀랄 지경이였다.

체대는 작지만 근육은 여간 발달하지 않았다. 베적삼을 입은 몸밖으로 드러난 근육이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불끈불끈 돋아올랐다.

도끼가 얼마나 잘 드는지 몇번 도끼질을 하면 전주밑둥이 뭉청뭉청 끊기였다.

그는 별반 품들이지 않고 다섯대의 전주를 모두 잘랐다.

밑둥이 끊긴 전주들은 땅에 닿을가말가 하게 기울여졌다. 그와 함께 전화줄이 거의 땅에 스쳤다.

정말 류창식이 말한대로 전화줄을 쉽게 끊게 되였다.

집게는 기송동지와 장쇠, 진혁이 들었다.

세 소년은 넘어진 전주의 애자에 묶인 부분을 끊고 전화줄을 감아나갔다.

장쇠는 끊은 전화줄을 미처 잡지 못했다. 그 전화줄은 핑 소리를 내며 휙휙 날아 건너편 전주에 태를 치듯 감기였다.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류창식은 바쁜소리를 쳤다.

《전화줄을 놓지 말라니, 놓쳤다간 눈이 찔리고 몸에 감길수도 있어.》

장쇠는 얼굴이 벌개졌다. 자기의 실책에 무안해진것이다.

그때부터 집게를 쥔 소년들은 전화줄 끄트머리를 놓칠세라 정신차려 퉁구리를 지어나갔다.

두 전주사이의 한 전화줄로 퉁구리를 묶었다. 묶은 전화줄은 늘 차고다니는 삼실 포승줄로 비끄러맸다.

류창식을 만났기에 별반 시간을 들이지 않고 많은 전화줄을 로획했다. 어림짐작으로 2 000메터는 실히 될것 같았다.

퉁구리를 다 지었을 때 류창식이 말했다.

《오늘 나무하기는 글렀어. 내가 끝까지 도와줘야지.》

그리고는 전화줄퉁구리를 세개나 한어깨에 메는것이였다.

애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에게 선망에 찬 시선을 보냈다.

(정말 좋은 아저씨로구나. 그런걸 우린 밀정으로만 여겼으니.)

길장쇠는 눈둘바를 몰라했다. 미욱하게 그를 쏘려 했던 일이 저로서도 창피스러웠던것이다.

여기 룡수평에 사는 사람이니 류창식은 이곳 지형을 휑하니 꿰들고있었다.

그가 앞장에 섰기에 남들 눈에 띄지 않고 구수하를 건늘수 있었다.

김학철중대장이 일러준대로 구수하건너켠의 얕은 물을 헤치며 500메터가량 올라가 다시 강을 건너 산줄기에 붙었다.

숲이 우거진 산속이라 그들의 움직임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골짝길은 점점 장재촌쪽으로 가까와졌다.

길의 안내자격이 된 류창식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모두에게 물었다.

《이젠 좀 쉬고 가지 않겠나?》

《예, 좋습니다.》

애들은 지치고 무척 더웠던것이다.

《내가 아주 좋은데 데려다주지.》

그가 이끄는 작은 산을 하나 넘으니 길게 뻗은 산바위에서 물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바위로 둘러싸인 밑은 물이 깊게 고여있었다. 덕수터를 만난것이다.

애들은 너도나도 물속에 몸을 잠그었다.

류창식이 아니였더라면 이런 기막힌 곳이 있는줄도 모르고 땀에 흠뻑 떠서 옆을 지나쳤을것이다.

아이들은 느티나무그늘밑에 앉아 휴식을 했다.

김기송동지는 더없이 고마운 창식아저씨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고싶었다.

《아저씨는 룡수평에서 사시나요?》

서너동무의 너머에 끼여앉은 류창식이 씨원히 대꾸했다.

《그래.》

기송동지는 더 말을 나누고싶었다.

《아저씨, 그 동네에도 혁명조직이 많나요?》

《많다뿐이겠나? 내가 이래뵈도 혁명호제회 회원이야.》

류창식은 가슴을 약간 내밀어보였다.

아이들은 환희와 존경에 넘친 시선을 류창식에게로 모았다.

옆의 애가 장쇠의 무르팍을 갈겼다.

《장쇠, 아저씨한테 용서를 빌어. 네가 총으로 쏘려 하지 않았니?》

귀바퀴까지 고추빛이 된 길장쇠는 머리를 깊이 구겨박는것으로 사죄의 뜻을 표시했다. 그게 우습다고 동무들이 유쾌하게 웃었다.

아이들의 순진한 세계에 끌려든 류창식은 마음이 한껏 개였다.

그래서 묻지도 않는 말을 터놓았다.

《나는 이름을 두개 가지고 지내던 사람이야. 하나는 조선이름, 하나는 중국이름.》

아이들은 말뜻을 알수 없어 눈을 슴벅거렸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계수동에서 살던 그는 독립군의 성화에 신물이 날 지경이였다. 때없이 달려들어서는 쌀을 내라, 돈을 내라 하면서 총부리까지 들이대기때문이였다.

늙으신 어머니가 림종을 앞두었을 때였다.

소식을 들은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독립군들이 덮쳐들었다. 곡식을 내라는것이였다.

그 집의 장손인 나무군아저씨가 사정을 했다.

《우리 어머니가 오늘래일합니다. 이번만은 다른 집으로 가주십시오.》

《뭐, 어쩌구 어째? 독립군들이 굶어죽는건 상관치 않아? 너도 조선사람이야? 일본놈 턱주가리에 붙어도는 놈이 아니야?》

그러면서 총을 들이대고 초상이 나게 되면 장례에 쓰려고 일가친척들이 이고지고온 낟알을 몽땅 털어갔다.

그러니 낟알 한톨없이 장례를 치르어야만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슬픔보다 독립군에 대한 원망이 몇십배로 더 컸다.

그는 드디여 결심했다. 독립군성화를 받지 않으려면 중국사람행세를 해야겠구나.

그래서 계수동에서 룡수평으로 이사온 다음 중국사람이름을 가졌던것이다. 여러해 중국땅에서 살았으니 넉근히 중국사람흉내를 낼수 있었다.

이때 박귀남은 화들짝 놀랐다.

(계수동에서 살았다구? 그럼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알겠구나!)

그러나 머슴살이의 뿌리가 깡그리 뽑혀지지 못한 박귀남은 선뜻 말을 건넬수 없었다.

김기송동지는 창식아저씨의 얘기가 동무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우리 혁명과 독립군때의 다른점을 곽찬수선생으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러나 창식아저씨는 제 체험으로써 그 다른점을 생생히 펼쳐주었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싱그레 웃으며 창식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어떻게 돼서 도루 조선사람이름을 찾고 혁명호제회원까지 됐나요?》

류창식은 서슴없이 대꾸했다.

《그야 뻔하지. 독립군때와 지금은 판판 다르거든. 독립군들은 백성들을 무지렁이로 깔보며 쌀이나 돈을 빨아갈 주머니로밖에 여기지 않았지. 그런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 백성들을 혁명의 주인으로 높이 내세워주시거든. 그리고 우리 백성들을 선생님이라고 존대하시지.》

그 선생이라는 말이 기송동지의 머리에 펀뜩 섬광을 일으켰다. 선생! 슬기로 차고넘치는 우리 인민! 오늘 창식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이 수많은 전화줄을 걷을수 있었을것인가.

박귀남이 처녀애처럼 얼굴을 곱게 달구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한가지 물어도 되나요?》

류창식은 박귀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계수동에 살던 박덕삼을 아시나요?》

《뭐? 박덕삼? 그럼 민지주의 머슴 박덕삼이 말이냐?》

옆의 애가 활기에 넘쳐 끼여들었다.

《그래요. 얘가 그 집 아들이야요.》

류창식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럼 네가 귀남이란 말이냐?》

류창식은 귀남이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눈물이 귀남의 머리를 적셨다.

《네 혼자 살아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천국에 올랐구나. 유격구의 아동단원이 되다니? 너의 부모가 땅속에서도 얼마나 대견해하겠니?》

박귀남은 류창식의 품에 안긴채 그의 베적삼을 적셨다. 저세상에 간 아버지, 어머니생각이 왈칵 치받쳐올랐던것이다.

강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류창식이 계수동에서 살았다니 자기 집을 알리라는 생각에 잠겨있었던것이다.

얼굴이 희고 뾰족한 턱에 입이 작은 강진혁은 류창식에게 정중한 자세로 물음을 보냈다.

《저의 집은 조양촌에 있던 철원국밥집이였습니다. 혹시 우리 아버지를 알지 않으신지?》

벌떡 일어나는 류창식의 눈은 흥분으로 끓었다.

《아니, 그럼 네가 강진수의 아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강진혁의 대답은 울음속에 버무려졌고 고개가 푹 숙어졌다.

류창식이 강진혁의 손을 와락 움켜잡았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잘 안다. 국밥집을 하기 전에 나랑 같이 철도공사장에서 일했다. 너는 신통히 아버지를 닮았구나.》

둘은 나란히 앉았다.

류창식의 다음말은 강진혁은 두말할것 없고 동무들도 깜짝 놀라게 했다.

《너는 몰랐을거야. 너의 아버지는 조양촌 혁명호제회 회장이였다. 근거지에 숱한 돈을 들여보냈지. 내가 한번 가서 돈을 받아 근거지에 들여보낸 일도 있다.》

《예?!》

강진혁은 눈앞에 광채가 펀뜩 이는듯싶었다. 긍지로 가슴이 세차게 뛰였다.

동무들도 경탄에 찬 눈을 강진혁에게로 날렸다.

강진혁은 어린탓에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

(야, 우리 아버지도 혁명을 했댔구나!)

강진혁은 진정할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