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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제7장 목표! 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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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단병실에서는 《반년량식》이라고 하는 김장준비에 바빴다.

오전시간은 다칠수 없었다. 곽찬수선생이 근거지의 선전사업을 도맡은 그 바쁜 속에서도 오전시간에는 아동단학교에 나타나 아이들의 머리속에 애국심, 계급의식과 함께 수많은 지식을 넣어주기때문이다.

애들은 요즘 임진조국전쟁에 앞서 《삼포왜란》이라는 일본놈과의 싸움이 있었다는것도 알게 되였고 일제가 지금 온 중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어떻게 날치고있는가 하는것도 알게 되였다.

아동단병실에서는 장재촌의 원주민이라 할수 있는 동네집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동단병실이 늦게 서다보니 파와 마늘도 미처 심지 못했다.

매 집들에서 터밭에 심었던 파와 마늘을 갈라주었고 김치를 독들에 빼곡이 채우며 여벌독을 마련하여 실어다주기도 했다.

고추는 방아간할아버지네 집에서 봏아왔다. 그 집 사랑칸에 발방아가 있는데 할머니가 도와나서 굵은채, 가는채를 쓰며 가루를 보드랍게 봏아주었다.

이 방아간은 마을의 《정미소》였으며 지금은 온 근거지의 《정미소》라 할수 있었다.

아동단병실에서 김치를 담근다는것을 알고 어제부터 근거지내의 부녀회원 셋이 돕겠다고 찾아왔다.

식모방옆에 밭을 일구고 심은 배추와 무우는 놀랄만큼 잘되였다.

배추는 통이 얼마나 큰지 한포기가 10키로그람쯤 될것 같았다.

둥글무우는 애기머리만 하고 긴 무우는 요란스레 미끈하게 빠졌다.

부녀회원중에 함경도아주머니가 끼였는데 그는 이렇게 감탄했다.

《에그, 끔찍도 하다. 중국 채마지기들이 얼굴 붉히겠소.》

중국 채마지기들은 남새를 잘 키우는것으로 세계에 소문났다. 하기에 제 나라에서뿐아니라 우리 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에 나가 남새를 키우는 채마지기들이 많았다.

기송동지를 비롯한 남자애들은 병실뒤의 음달진 언덕받이를 파고 김치움을 짓느라 며칠 품을 들이고있었다.

그들은 김치움을 넓게 지었다. 김치독옆에 무우구뎅이를 파고 남은 배추를 건사하며 캐다놓은 더덕이며 둥굴레, 도라지뿌리를 간수하기 위해서였다.

김치움의 네 벽은 돌로 쌓고 기둥과 웃설미는 절반밖에 썩지 않은 진대통들을 톱으로 베여다 썼다.

문짝에는 밭에 그냥 서있는 조짚을 가져다 두툼하게 나래를 엮어 가리울 작정이였다.

김치움에 언덕받이높이로 흙을 다지면 5월까지 넉근히 김치신세를 지게 될것이다.

세명의 부녀회원은 부엌에서 속까지 탱탱 여문 배추를 두쪽으로 갈라 소금절임하느라 독에 차곡차곡 다져넣고있었다.

박복덕아주머니와 렴죽심, 현란희는 식모방에서 양념감을 마련하고있었다.

박복덕은 앞에 쇠절구를 놓고 마늘을 찧었고 현란희는 채칼로 무우를 밀었으며 렴죽심은 파를 숭덩숭덩 썰고있었다.

셋은 그냥 깔깔 웃는다.

란희는 어머니인 박복덕에게 아무 스스럼없이 《아지미》, 《아지미》하며 착착 다가붙었다.

그러니 렴죽심은 그들이 모녀간이란것을 꿈에도 알수 없었다.

박복덕은 흐뭇한 마음속에 혁명정부에서 아동단병실 식모로 임명받은 다음날 일이 돌이켜졌다.

아침밥을 먹자 박복덕은 서둘러 딸을 데리고 아동단병실을 짓는 곳으로 향했다.

란희는 시무룩해서 자꾸 뒤떨어져 걸었다.

《란희야, 어제밤 약속을 잊었니?》

그런데도 란희는 이제부터 엄마를 아지미라 부를 일이 끔찍해 점점 느린 걸음을 옮겼다.

박복덕의 얼굴에는 시름이 끼였다.

(저애가 저러다가 우리사이를 탄로시키고말겠어.)

박복덕은 딸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마음을 누그리며 다시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독하게 마음먹어라. 이건 아버지도 그래라 할 일이야. 정 그러면 내가 딴데로 옮기고말겠다.》

그러나 란희의 낯빛은 펴이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박복덕이 딸과 함께 아동단병실 짓는데로 가보니 아직 집들이를 하려면 멀었다.

먼저 생각나는것이 겨울김장이다.

벌써 여느 집에선 가을남새를 심은지 며칠 잘되였을것이다.

집이 다 되기 전에 가을남새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복덕이 집짓는 사람들에게 말하니 군말없이 곡괭이 하나와 삽 두자루를 내주었다.

집둘레를 돌고보니 식모방으로 정했다는 그 바깥쪽에 남새를 심을만한 넓은 땅이 있었다. 둔덕지고 돌이 있을것 같지만 잘 가꾸면 남새가 꽤 됨직했다.

박복덕은 곡괭이로 땅을 찍으며 딸에게 일렀다.

《너도 만문한데를 골라 삽질을 해라. 시간을 다투는 일이야.》

란희는 돌아서서 눈에 눈물을 그득 채웠다.

어제는 그러마 했지만 엄마곁을 떠나서는 못살것 같았다.

이때 김기송동지가 다가와 반가와했다.

《우리한테 식모로 오셨다지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뭘하십니까?》

남새밭을 만든다는 박복덕의 말을 듣고 김기송동지는 감동이 컸다.

《야, 보통이 아니군요. 집도 되기 전에 남새밭을 일구다니요. 좋습니다. 우리가 와 돕겠습니다.》

잠시후에 스무명나마 되는 사내애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동네집들에 들려 쟁기들도 얻어오고 밭에 뿌릴 배추씨와 무우씨도 구해왔다. 《감자사건》이 그들의 관계를 무척 가깝게 만든것이다.

사내애들은 웃동을 벗어붙이고 곡괭이질과 삽질로 밭을 일궈나갔다.

그런데 란희는 먼발치 돌아서서 흐린 낯빛을 가시지 못했다.

기송동지가 다가가 다정히 물었다.

《너두 우리한테 왔니?》

그런데도 대답을 주지 않았다.

박복덕은 단단히 윽별렀다.

(애를 그냥 두어서는 큰일치겠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해야지.)

오전 한겻동안에 밭을 다 일구었고 씨도 뿌렸다. 애들은 밭에 물까지 듬뿍 주었다.

기송동지를 비롯한 사내애들은 점심먹으러 갔다.

박복덕은 딸의 손목을 끌고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

얼굴이 달고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넌 여기 어째 왔니?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으로 왔니 엄마의 젖을 빨자고 왔니? 두말할것 없다. 이제부터 열번 〈아지미〉라고 외워봐라.》

고개를 푹 수그린 란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똘랑똘랑 떨어졌다.

박복덕은 딸을 무섭게 다그어댔다.

《말 못하겠니? 〈아지미〉라 부르지 못하겠어?》

목소리는 한단 더 높아졌다.

란희는 어머니를 원망스레 바라보다가 입속으로 중얼거리듯 외웠다.

《아지미…》

《아니야, 더 크게 열번. 알겠니?》

박복덕은 딸이 말을 잘 안들으면 주먹을 휘두를것 같았다.

란희의 울음섞인 목소리는 좀 높아졌다.

《아지미.》

《더 크게 외우란데두. 못외우겠어?》

《아지미!》

《이제 겨우 한번이야. 아홉번 외우되 더 소리를 높여라.》

란희의 목소리는 차츰 높아졌다. 박복덕은 셈을 세나갔다.

《안되겠다, 열번 더 외워라.》

란희는 어쩔수없이 어머니가 요구하는대로 《아지미》라는 부름을 열번 더 외웠다.

박복덕은 다짐을 두었다.

《이제부터 남들앞에서 얼굴을 돌리지 말어라. 전처럼 나를 대하란 말이야. 다만 엄마가 아지미로 달라졌을뿐이야. 알겠니?》

《예, 알겠어요.》

란희의 가슴속에는 어제밤의 결심이 더욱 굳게 자리잡았다.

어머니의 손에서 풀려나온 란희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실컷 울음을 터쳤다. 아버지의 모습이 어려와 간절한 목소리로 외웠다.

《아버지, 나 란희예요. 방금 엄마한테 실컷 욕먹었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할수 없지요 뭐. 아버지, 난 이제부터 절대 엄마라 안할래요. 아지미라 부를래요. 아버지도 그래야 좋아한다지요? 나도 아버지처럼 혁명가가 될테니 두고보라요. 그러자면 먼저 엄마를 아지미라 부를테야요.》

앞에 열린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란희는 손나팔을 하고 힘껏 소리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이 목메인 부름으로 다시는 입에 엄마란 말을 옮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진것이였다.

차츰 란희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제곬에 들어서게 되였다.

중국 채마지기들도 얼굴을 붉힐수 있는 배추와 무우, 이것은 박복덕의 아낌없는 피땀이 준 열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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