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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제6장 두자루의 장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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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단병실에서 애들이 아침밥을 먹고있는데 손석일이 들어와 기송동지에게 누나의 쪽지라며 성냥가치같이 돌돌 만것을 주고갔다.

쪽지에는 깨알같은 연필글로 이런 내용이 씌여있었다.

《기송에게. 태호와 함께 동신평 삼박골의 첫 우물 뒤집을 찾아갈것.》

기송동지는 의문에 싸였다.

(하필 태호와 함께 가라고 할건 뭐람? 그 집은 뉘네 집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때 지하공작의 길에 계시였다.

공부하는 긴 상을 밥상으로 쓰던터라 기송동지는 저만치 앉은 태호에게 그 쪽지를 넘겨주었다.

태호의 낯빛은 해쓱해졌다. 그는 바스락소리에도 몸을 떨 형편이였다.

어제낮에 리동근이와 홍춘삼을 만났던 일을 아직까지 분단장 김기송동지에게 보고하지 못했다.

태호는 어제밤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고 말할가말가 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경우로 봐서는 분단장에게 꼭 보고해야 했다. 두놈은 아동단병실을 치려고 여기에 온것이다.

그러나 자기 목숨이 그 사실을 보고하지 못하게 밀막았다.

태호의 눈앞에서 동근이가 목에 멨던 쌍안경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쌍안경을 한번도 눈에 대보지 못한 태호는 그 물건이 대단한걸로 여겨졌다. 10리 밖의 개미도 보이리라 여긴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러가지 작업으로 산에 올라야 하는데 그놈들은 내가 고해바쳤다는걸 알면 가까이 다가와 권총으로 쏴갈길것이다. 그러면 춘삼이 말한대로 나는 아버지, 엄마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어떻거면 좋을가?…)

모대김속에서 태호는 새벽녘에야 솔곳이 잠에 들었던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동단책임자이신 김정숙동지께서 저와 분단장을 함께 부르고있었다.

태호는 복잡한 생각속에 먹던 밥을 더는 먹고싶지 않아 수저를 놓고말았다.

기송동지와 태호는 이어 동신평으로 향했다.

보기 드문 동갑짝패였댔지만 동안을 두고 남남처럼 걸었다.

김기송동지는 아직 터치지 못한 분기때문이였고 태호는 불안이 겹쳐져 이 걸음의 뜻을 알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점심때가 가까와올무렵 동신평 삼박골에 이르렀다.

삼박골 첫 우물 뒤집 마당에 들어서자 김기송동지는 주인을 찾았다.

《계십니까?》

부엌문이 열리며 나서는 사람은 뜻밖에 태호의 고모였다.

기송동지도 태호도 깜짝 놀랐다.

김정숙동지께서 지하공작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태호의 고모를 만나고 기별을 띄우신게 분명했다.

태호의 고모가 부암동에 몇번 왔댔기에 김정숙동지와 기송동지도 그를 알고있었다.

태호는 목이 꽉 메여 소리쳤다.

《고모!》

《태호야!》

두 혈육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오래도록 떨어질줄 몰랐다.

기송동지는 제일처럼 기뻤다. 태호의 고모는 봉림동을 떠나면서도 가는 곳을 어디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나니 태호는 고모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금광에 들어가 숱한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태호의 고모네는 가는 곳을 대주지 않고 봉림동을 떴을가?

태호의 고모는 조카를 만난 일이 너무 기뻐 어깨바람이 나서 돌아갔다.

이어 밥상이 들어왔다. 닭고기와 산천어구이까지 상에 올랐다.

태호의 고모는 둥실한 흰 얼굴에 군턱이 진데다 몸이 좋고 키도 컸다.

그의 말에 의하면 혁명조직의 지시로 자기는 여기에 와 부녀회책임을 졌고 태호의 고모부는 국내에 지하공작을 나갔다는것이다.

태호는 놀랐다.

자기 아버지가 독립군생활을 하느라 돌 때 농사에만 전념하던 고모네였다.

태호의 고모는 김정숙동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너의 누나는 나이 어리지만 보통이 아니더구나. 여기 와서 며칠 있는새에 흐트러졌던 아동단을 쇠소리나게 묶어세웠어. 그리고는 옆마을로 옮겨갔는데 지금 거기 가서도 아동단을 우쩍 일으켜세우고있을거야.》

그러다가 피끗 생각난듯 방구석에 놓여있던 마대 둘을 기송동지와 태호앞에 옮겨놓았다.

《정숙이 말을 들으니 아동단병실 식모가 그렇게도 일을 잘한다며? 배추하구 무우를 기막히게 자래운다더구나. 그런데 늦게 오다보니 고추를 심지 못했다더구나. 그래서 내가 부녀회원들에게 호소해서 고추와 소금을 조금 마련했다. 태호를 보고싶어 짐도 가져갈겸 너희들을 오라고 했다.》

기송동지는 고마운 마음을 이길수 없었다.

《태호 고모신세를 단단히 지누만요. 우리 아동단이 올겨울김치걱정을 안하게 됐어요.》

《별말을… 그런걸 돕는게 부녀회의 의무야.》

이때 림태호는 혼자생각에 깊이 잠겨들고있었다.

(야, 이번 길에 고모네 집에 떨어졌으면… 그런데 기송이 앞에서 어떻게 말할가? 그러지 않아도 나를 보는 눈빛이 전같지 않은데…)

이런 태호의 속마음을 기송동지는 그 눈치를 보고 다 읽고있었다. 고모의 꾸지람을 듣게 하고싶어 당돌한 성미그대로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태호 고모, 이번 길에 태호를 여기에 떨궈두고 가면 안되겠나요?》

《뭐?》

태호의 고모는 눈이 커졌다.

《태호는 몸이 씨원찮아요. 금광에서 점화공노릇을 하며 반소경, 반귀머거리가 됐거든요. 그런걸 우리가 고쳐주느라 했지만 아직 몸이 변변찮아요.》

태호 고모의 얼굴에 시름의 그늘이 덮였다.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넌지시 하는 말씀에서 태호가 아동단생활에 마음붙이지 못하고있다는것을 낌새챘었다. 그리고 겁먹고있다는것도.

그런데 기송동지까지 이런 말을 하고있는것이다.

태호네 집에 불상사가 생긴걸 늦게야 알고 부암동으로 찾아갔던 태호고모였다. 자기 오빠, 태호의 아버지가 새로운 혁명을 독립군때처럼 여기며 반대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누가 오빠를 죽였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태호의 고모는 여러날 번뇌의 바다에서 헤매였다. 오빠의 죽음이 리해가 가지 않았다.

태호의 고모는 밝던 얼굴이 흐려져 태호에게 물었다.

《너는 아버지를 누가 죽였는지 모르니?》

태호는 갑자기 낯빛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수굿했다. 그도 아직 그걸 모르고 지내는터였다.

고모의 말은 이어졌다.

《사람이 갑자기 죽는 법은 없다. 그전에 무슨 일인가 있지. 그런건 생각나는게 없니?》

한참만에 태호는 고개를 힘들게 들며 어물어물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열흘전인가 홍달수가 우리 집에 쌀을 가져왔댔어요.》

《홍달수라니? 그 리춘팔의 마름말이냐?》

《예, 아버지가 그 집에 찾아가 야단쳤어요. 당장 도루 가져가라구.》

김기송동지는 처음 듣는 말이라 정신을 도사려 다음말을 기다렸다.

태호 고모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모를 일이다. 그놈이 왜 갑자기 쌀을 가져왔을가?》

태호의 말이 이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날이였어요. 굉장히 취해 집에 왔더군요. 자리에 누우면서 〈개새끼, 개새끼!〉 하고 분에 차서 외웠어요.》

김기송동지의 추측의 화살은 리춘팔에게로 날아갔다. 홍달수가 가져왔다는 쌀은 분명 리춘팔놈이 보냈을것이다. 태호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날밤 리춘팔놈이 술을 먹인게 아닐가? 그 목적은?… 혹시 태호 아버지를 자기 편에 끌자고 한게 아닐가? 태호 아버지가 새로운 혁명을 못미더워했으니까.

태호 고모도 같은 생각인듯 억양에 흥분을 실었다.

《그러니 이제야 뻔해지는구나. 리춘팔놈이 너의 아버지를 끌려 했지. 너의 아버지 성격이 간단하니? 욕사발을 퍼부었을거야. 그리고는 집에 와서 너무 분해 〈개새끼, 개새끼!〉 하고 외웠겠지.》

김기송동지는 수수께끼가 대번에 활 풀리는것 같았다. 부모가 불시에 돌아갔을 때 태호가 기송동지의 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지 않았다면 그때 벌써 밝혀졌을것이다.

태호 고모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이녀석아, 제 아버지를 리춘팔네가 죽였는데도 뭐 유격구생활이 겁난다구? 당장 떠나거라. 너한테 먹일 쌀은 한톨도 없어. 얼뜬 일어나지 못하겠니?》

태호 고모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이는것 같았다.

이어 부피 큰 고추마대는 기송동지가 지고 소금자루는 태호가 지고 드바삐 그 집에서 나왔다.

태호 고모는 사납게 내쫓으면서도 가던 길에 먹을 밥을 싸주는것은 잊지 않았다. 베보자기에 싼 밥은 기송동지가 들었다.

태호는 기송동지한테서 점점 떨어져 걸었다. 어깨가 처져내리고 걸음이 무거웠다.


김기송동지와 림태호는 옆에 강을 낀 산등성을 톺아오르고있었다. 늦가을이라 하지만 한낮에는 더위가 한여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온몸이 땀에 흠뻑 떴다.

가파로운 령마루에 이르니 소나무숲속에서 집사대원 두놈이 술에 흠뻑 취해 곤드라져 자고있었다. 머리맡에는 큰 되병이 딩굴고 닭뼈가 너저분히 널렸다. 아직 먹지 않은 흰밥과 닭고기도 수두룩했다.

어느 농가에서 찔러준걸 오다가 다리쉼을 하면서 처먹은게 분명했다.

집사대원이란 소금을 통제하는 놈을 말한다.

그때 중국관청에서는 1년에 한사람당 17근 즉 10키로 200그람의 소금을 사먹도록 표를 떼주었다. 식구가 다섯이면 표를 85근이나 떼여주었는데 그 값이 10원나마 되였다.

그때 송아지값이 제일 어린것이 10원이고 큰것은 18원이였다.

그러니 한집에서 소금을 사먹는데 내는 돈이 여간 아름차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에서 넘어오는 소금은 그 값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소금은 산에서 캐낸 시꺼먼 돌소금이고 조선에서 넘어오는 소금은 사탕가루같은 보드라운 흰 소금이다. 중국소금은 짜고 조선소금은 달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니 조선에서 중국쪽으로 숱한 소금이 넘어왔다. 중국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조선소금을 먹으려 했다.

이것을 통제하는 놈들이 집사대원이다.

집사대원들은 장사군의 소금을 몽땅 압수하는것은 말할것 없고 매 집을 돌아가며 들쳐 조선소금이 나타나면 리유없이 빼앗고 벌금까지 물렸다.

그러니 어떤 집에서는 손이야발이야 빌며 집사대원들의 입치레를 푸짐히 해주는것이였다.

놈들은 령길을 넘다가 다리쉼을 하면서 괴여바친 술과 닭을 실컷 처먹고 정신없이 자고있는데 두놈의 옆구리에서는 장총이 딩굴고있었다.

김기송동지의 눈에서 광채가 번쩍 일었다.

(야, 총!)

김기송동지는 장재촌유격대원들이 왜놈군대와 경찰, 《자위단》, 지주집의 무기를 빼앗아오는것을 자주 보았다. 그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랐다.

(나도 총을 하나 빼앗았으면…)

기송동지는 손석일보고 총쏘는 법을 배워달라고 했지만 제 총이 있으면 배우기가 훨씬 쉬울것이다. 총이 가까이 있으면 늘쌍 다루게 될것이며 훨씬 빨리 총에 익게 될것이다.

그러면 유격대에 들자마자 대바람 제구실을 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총을 빼앗을 기회를 가질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두정의 장총이 있다.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칠수 없는 김기송동지였다.

태호가 곁에 이르자 기송동지는 두정의 총에 눈길을 옮겼다.

이걸 빼앗지 않을래? 하는 말없는 의논인것이다.

태호의 얼굴에 대바람 겁기가 서렸다. 그걸 다쳤다가 어쩔려고 그래? 하는 마음속의 말이 그대로 기송동지에게 마쳐왔다.

기송동지는 불끈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눌렀다. 아무튼 혼자서라도 총을 빼앗아야 했다.

기송동지의 심장은 쿵쿵 방아를 찧었다. 그걸 간신히 다잡으며 《으흠, 으흠》 하고 조금 큰소리로 기침소리를 냈다.

그러나 키다리와 땅딸보의 코고는 소리만 높았다.

(됐다!)

기송동지는 온몸에 최대의 긴장을 모으며 두놈의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키다리는 총을 한어깨에 걸고 자고있었고 땅딸보는 어깨죽지밑에 총을 깔고 자고있었다.

(슬며시 뽑아낼가?…)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요즘 유격대가 놈들의 총을 자주 빼앗기에 왜놈들의 분기는 하늘끝에 닿았다. 그래서 지주놈집의 가병들이 가지고있던 무기도 몽땅 회수했다. 유격대에 총을 빼앗긴 놈은 그자리에서 총살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 이 집사대원들도 술에 곤죽이 됐지만 총에 대한 각성만은 놓지 않고있을것이다.

(어떻게 해야 귀신몰래 총을 뽑을가?)

암만 궁리를 짜야 그럴듯한 묘책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김기송동지는 그냥 서있다가는 눈을 뜬 놈들에게 잡혀 호된 매를 맞고 경찰서에까지 끌려갈수 있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며 얼굴에 겁기가 그득한 태호에게 흘끔 눈짓을 했다. 내려가자는 신호였다.

태호는 온몸에 칭칭 감겼던 포승줄이 활 풀리는듯한 기분이였다. 굳어졌던 얼굴에 벙글웃음이 비꼈다.

그런데 가던 길에 들어설줄 알았던 기송동지는 옆의 언덕받이에 올랐다.

태호는 얼떠름해졌다. 그러나 기송동지가 하자는대로 따를수밖에 없었다.

기송동지가 오른 언덕받이에서는 집사대원들이 자고있는 곳이 곧추 건너다보였다.

기송동지는 나무밑에 몸을 숨기고앉아 머리를 싸쥐였다. 무슨 궁리를 하는 모양인지 아무말도 없다.

태호는 내키지 않았지만 동안을 두고 엉치를 붙였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됐어!》

기송동지는 무릎을 치며 몸을 솟구쳤다. 얼굴에 환한 웃음이 물결쳤다.

태호는 영문을 몰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기송동지는 덤벼치며 벗어놓은 고추마대옆에 놓인 밥보자기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땅이 많이 드러나고 풀이 듬성듬성한 바닥을 휘휘 살폈다. 언덕받이는 양지쪽이여서 해가 밝게 비쳤다.

무엇이 눈에 띄였는지 기송동지는 가까이의 황철나무옆으로 다가갔다.

서둘러치며 밥보자기를 풀었다. 무드기 담은 기장밥과 함께 점심때 먹다남긴 닭고기며 구운 산천어가 반찬감으로 드러났다.

김기송동지는 황철나무밑에서 조금 사이를 두고 보자기를 정히 폈다. 가생이가 들리우지 않게 돌멩이로 촘촘히 지질러놓기도 했다.

태호는 무슨 일인가싶어 빤히 굽어보았다. 그러나 까닭을 도무지 알수 없었다.

김기송동지는 닭고기와 구운 산천어를 꺼내여 발기발기 찢기도 하고 부스러뜨리기도 해서 보자기우에 쭉 널어놓았다.

태호는 더욱 영문을 알수 없어 눈만 슴벅거렸다.

김기송동지는 황철나무밑으로 다가가더니 두둑하게 쌓인 검불을 활 헤쳤다.

그랬더니 그속에 들어있던 불개미들이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기여갔다.

그러나 놀라움은 순간, 코를 찌르는 닭고기와 구운 산천어냄새가 불개미들을 불렀다.

적지 않은 불개미들이 펴놓은 보자기우로 기여올랐다. 어느새에 넓은 보자기는 빨간 불개미들로 덮였다.

이때를 노리던 김기송동지는 널어놓았던 닭고기와 구운 산천어토막들을 던지고 보자기를 꽁꽁 싸쥐였다.

이젠 술에 곤죽이 된 집사대원들에게로 다가가야 할것이다.

김기송동지는 버젓이 서서 그리로 향했다. 그럴듯한 생각을 해냈던것이다.

만약 놈들이 깨여나면 가까이 접근한 기송동지를 보고 소리지를것이다.

그러면 버젓이 대답할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여기서 살려고 조선서 건너오는 길이예요. 로자가 떨어져 이틀째 굶고있어요. 잡수시다 남은 음식이 있으면 좀 줄수 없겠나요?》

그러면 놈들은 남은 음식을 던져주거나 욕사발을 퍼부으며 당장 가라고 할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을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이런 배짱을 세웠지만 놈들가까이로 다가감에 따라 속이 떨리고 걸음이 잘 나가지 않았다.

놈들은 김기송동지가 발치에 섰으나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잤다.

여전히 총 한자루는 한어깨에 걸려있고 다른 총은 어깨죽지밑에 깔려있었다. 정복을 벗어놓은 놈들은 맨 내의바람이였다.

김기송동지는 깊은숨을 들이쉬였다가 내뿜으며 놈들이 누운 틈사리에 슬며시 들어섰다.

놈들의 기척을 다시한번 살피고 싸쥐고있던 보자기를 헤쳤다. 그리고 날쌔게 놈들의 총이 있는쪽 팔뚝에 두몫으로 나누어 골고루 털어주었다.

두팔뚝에 떨어진 불개미들은 먹을걸 찾느라 분주탕을 피웠다.

김기송동지는 먼발치 물러섰으나 뛰려고는 하지 않았다. 할 소리가 든든히 준비되여있기때문이다.

고주망태가 된 두놈은 불개미들이 지꿎게 깨물건만 까딱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한참만에 팔뚝이 가려운지 다른 한팔로 썩썩 문댄다. 그러더니 더는 참을수 없는듯 두놈 다 옆으로 돌아눕는다.

드디여 두 총은 놈들의 몸에서 떨어지게 되였다.

김기송동지는 《야!》 하고 환성이라도 지르고싶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극력 조심해야 했다.

김기송동지는 몸을 한껏 구부리고 발을 저겨디디며 놈들의 발치에 다가섰다.

그리고는 장총 한자루씩 놈들의 몸에 닿지 않게 온몸의 신경을 도사리며 손에 쥐였다.

두자루의 장총을 손에 든 기송동지는 바람같이 그자리를 떠 태호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김기송동지 일행은 태호네 고모가 준 짐과 함께 총 한자루씩 메고 바삐 산속길에 접어들었다. 총을 잃고 정신이 빠져 날칠 집사대원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앞서걷는 기송동지는 태호에 대해 생각했다.

나라찾는 길에 나섰다가 죽을가봐 겁내는 아이, 방금전만 해도 총을 빼앗자니 흠칫 놀라며 뒤걸음치던 아이…

기송동지는 지금이야말로 태호에게 할 소리를 해야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누나가 《좀 두고보자.》라고 했는데 이런 기회를 고르라는 뜻일것이다.

기송동지는 한참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다가 그늘이 짙은 큰 나무밑에 걸터앉았다. 락엽은 안락의자이상으로 푹신푹신했다. 태호도 옆에 앉았다.

그는 지금 기송동지에 대한 무서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리춘팔을 죽일 작정을 기송동지가 해냈고 또 앞장서 족쳤다.

오늘은 두 집사대원의 총을 묘한 수를 써서 끝내 빼앗아냈다. 태호는 기송동지가 하는 일을 빤히 건너다보았던것이다.

하촌에서 허물없이 어울려돌 때에는 이런 동무인줄 몰랐다.

그런데 장재촌에 들어와보니 분단장으로서 얼마나 배짱스레 동무들을 휘여잡고 잘 이끌어가고있는지 곁에 서기조차 어려웠다.

기송동지와 자기와의 거리가 하늘과 땅차이로 멀어진듯싶었다.

김기송동지가 먼저 말을 뗐다.

《태호, 오늘은 터놓고 좀 얘기해보자.》

태호는 벌써 가슴이 조여들었다. 다음말이 두려웠던것이다.

《나는 란희한테 네가 했다는 말을 들었어. 솔직한 말을 해보렴. 근거지에 있는게 그렇게도 무섭니?》

태호는 동갑짝패였지만 무척 어려운 선생앞에서처럼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자기가 솔직한 말을 하면 거침없이 폭탄이 터질것 같았다.

그는 침묵으로만 맞설 생각을 했다.

그러나 태호의 속마음을 휑하니 꿰들고있는 기송동지였다.

김기송동지는 물음을 던졌지만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속생각을 터놓았다.

《나는 너의 아버지가 잘못되였을 때 곽찬수선생이 하던 말이 생각나. 지금은 새 혁명을 깨닫지 못하지만 인차 깨닫게 될분이 잘못되였다고. 그런데 그 아들인 너는 어떻니? 늘 겁주머니만 부둥켜안고 살거든. 어릴 때 네가 마음어질다는건 알았어. 그런데 지금 와서 그건 겁으로 변했거든.

너의 아버지도 나하구 죽심이보고 왜놈들이 저렇게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이긴다고 하느냐고 했어. 그러나 우리는 혁명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어.》

기송동지는 너무 길게 말해 숨이 가빴다. 태호는 머리를 가슴팍에 구겨박고있었다.

기송동지의 목소리는 더욱 열기를 띠였다.

《너는 왜놈들의 무력에 겁을 먹는것 같은데 우리 온 조선사람들이 떨쳐나서고있단 말이야. 여기에 펼쳐진 유격구만 보렴. 얼마나 넓고넓은가. 게다가 너의 고모와 같은 반유격구인민들이 한뭉치가 되여 떨쳐나섰거든. 두만강건너의 우리 나라 거리와 마을… 혁명세력은 지금 청진, 함흥, 서울에까지 퍼져가고있단 말이야. 자기 힘을 믿지 못하면 겁쟁이가 되고 나중에는 적들의 개노릇까지 하게 돼.》

태호는 기송동지의 마지막말이 아팠지만 잠잠히 들을수밖에 없었다.

기송동지는 죽심의 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태호는 죽심의 아버지 렴국찬을 잘 알았다. 같이 독립군생활을 했던 아버지가 죽심의 아버지를 놓고 좋지 않게 하던 말도 들었다.

《너도 한번 우리 병기창에 가봤으면 좋겠어. 이젠 어떤 무기든지 수리할수 있게 됐거든.》

그러면서 기송동지는 돈화현 재피골에서 최고급수리도구를 가져오던 얘기를 했다.

태호는 고개를 숙여박은 속에서도 깜짝 놀랐다.

(아니, 뭐? 세사람이 함께 묻었는데 두사람의 해골이 거기에 있더라구?!)

《죽심의 아버지는 그렇게 곧은분이야. 딸을 아동단병실에 떠밀어 보내며 뭐라 했는지 아니? 〈나라찾은 다음에 제집 일이야.〉 그런데 너는 어떤가? 아프지만 말해야겠어. 〈나라찾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 이게 네 생각이란 말이야.》

태호는 방망이에 머리를 호되게 주어맞은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 맞설 말을 찾을수 없는 림태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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