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0 회


제6장 두자루의 장총


3


8도구수비대장 방이다.

실팍한 몸집에 구레나룻이 쫙 덮인 둥글한 얼굴을 면도칼로 밀어 푸릿하게 보이는 도요다중위를 사람들은 메돼지라고 불렀다.

도요다는 앞에 세사람이 들어와 서있는지도 오랬으나 그걸 전혀 모르는듯 종이에 글만 써나갔다.

앞에 선자들은 리춘팔의 아들 리동근이와 마름 홍달수, 그의 아들 홍춘삼이다.

셋은 점점 긴장감으로 몸이 굳어졌다.

한참 더 지나서야 도요다는 글을 계속 쓰면서 나직한 소리로 리동근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리동근입니다.》

도요다는 조선말을 몰라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데 그걸 알아듣고 대답할수 있는것은 셋중에서 리동근 하나뿐이였다.

《아버지는 누구야?》

《리춘팔입니다.》

《지금 뭘해?》

리동근은 억이 딱 막혔다. 아버지와 자주 만났고 아버지가 죽은걸 알면서도 난데없이 이렇게 묻는것이다.

리동근은 입술을 감빨다가 대꾸했다.

《돌아갔습니다.》

《돌아가? 왜 죽었어?》

리동근은 또 말문이 막혀버렸다. 자기를 질문으로 막다른 골목에 자꾸 몰아넣는듯싶었다. 그러나 대답해야 했다.

《부암동에 갔다가…》

《거긴 왜 갔어?》

《추수하러…》

《추수하면서 왜 죽는가?》

리동근은 눈물이 찔끔 솟았다. 뻔히 알면서도 지꿎게 물어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가.

언짢은 마음을 이길수 없어 입을 다물고있는데 도요다는 살찐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때렸다. 어찌나 그 소리가 요란했던지 리동근이뿐만 아니라 홍달수도 홍춘삼이도 몸을 흠칫 떨었다.

도요다의 돼지 멱따는 소리가 방안을 찢어발기는것 같았다.

《이 밥통같은것들, 빨갱이애들한테 죽어? 아버지를 찾아다 관에 넣었어? 관에 들어갈 자격있어? 비석을 세웠는가? 당장 뽑아던져! 미시리같은 놈, 너의 아버지는 상바보야!》

리동근의 온몸이 학질을 만났을 때보다 더 세게 떨렸다. 도요다보다 더 무서운 놈이 세상에 있을것 같지 않았다.

《너희들은 누구야?》

도요다는 리동근의 옆에 선 홍달수와 홍춘삼에게로 불찌같은 눈빛을 날렸다.

리동근이 대신 대답해야만 했다.

또 알고도 남을 물음만 던졌다.

그러더니 천정이 날아나게 또 소래기를 질렀다.

《너도 마름이야? 대일본제국에 충실하다구? 네놈은 가짜정보를 우리한테 날렸지? 토벌맞은 하촌에 애놈들이 열명 남아있다구? 그런데 어디있어? 네놈이 미리 빼돌렸지?》

체통이 턱없이 작은 홍달수는 몸을 떨며 연방 머리를 갑신갑신 숙여보였다. 제가 그랬다는것인지 억울하다는 뜻인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도요다의 목소리는 한단 더 높아져 세 녀석의 귀청이 터질듯싶었다.

《네가 빼돌린 그 애새끼들이 이번에 리춘팔을 죽였단 말이야. 네 죄가 가벼워? 징역가라면 가겠어?》

그래도 홍달수는 몸을 더욱 후들후들 떨며 머리를 깊이 갑신거리기만했다.

그제야 도요다는 분을 다 토해버렸는지 책상빼람에서 방어용수류탄 한개와 쌍안경 한개, 손바닥에 들만한 소형권총 두자루 그리고 비둘기통신에 쓰는 늄판토리와 종이테프를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출입문옆에는 비둘기가 든 장이 이미 놓여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군도처럼 선뜩선뜩했다.

《첫째, 이 수류탄으로 장재촌유격구 애새끼들을 전멸시킬것. 둘째, 장재촌에 숨어 적정을 탐지하여 1주일에 두번씩 비둘기통신으로 나에게 보고할것! 알겠는가?》

뒤의 목소리가 얼마나 높았던지 홍달수와 홍춘삼은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리동근과 함께 몸을 막대기처럼 빳빳이 펴며 《하이!》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다음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홍달수가 따라올라가서 정탐에 적당한 비밀기지를 꾸려줄것, 량식은 홍달수가 맡아 10일에 1회씩 운반해줄것!

《모를게 없는가?》

도요다의 위엄찬 물음에 셋은 몸을 꼿꼿이 펴며 《하이!》 하고 대답을 주었다.

홍달수와 홍춘삼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제 밖에 나가 리동근에게서 들으면 될것이다.

수비대장방에서 나오는 세 녀석은 무거운 짐을 지고 아슬한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처럼 얼굴은 말할것 없고 온몸이 땀에 질퍽히 젖었다.


아동단병실 애들은 오후에 도라지뿌리와 더덕뿌리를 캐려고 모두 산에 붙었다. 두 뿌리는 지금 먹으려면 쓰고 아리지만 겨울동안 움속에 재우고나면 봄에 가선 부근부근한게 별맛이다.

림태호는 종다래끼가 많지 못해 흰 보자기를 들고 산에 올랐다.

그의 어깨는 눈에 띄게 푹 꺼져내렸다. 요즘 그의 생활에서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리도 극성스레 눈과 귀에 넣어주던 꽈리와 물푸레나무 달인 물이 자취를 감추었다. 박복덕아주머니가 더운 물에 풀어 정담아 주던 꿀물도 끊겼다.

현란희는 새침해서 자기와 마주치면 눈을 싹 내려깐다. 렴죽심은 내놓고 겨누어본다.

늘쌍 정답게 대해주던 분단장은 웃음을 거두고 뻣뻣하게 대한다. 추수전투때 굳이 자기를 리춘팔을 직접 족치는 하촌애들속에 끼우게 했고 판이 벌어지자 뒤에서 어물거린다고 큰소리와 함께 불붙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림태호는 기송동지가 씨원히 마주앉아 야단이라도 쳤으면싶었다.

기송동지는 구공청에 찾아가 김정숙동지께 태호가 한 말을 옮겼다. 무척 상심해하시던 그이께서 《기송아, 조금 두고보자.》 라고 하신것을 림태호는 알리 없었다.

이때 두 녀석이 산꼭대기에 숨어 쌍안경으로 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호미로 땅을 깊이 파고 무슨 뿌리인가 캐내는걸 지켜보고있었다. 리동근이와 홍춘삼이였다.

두 녀석은 장재촌아동단원들이 자고있을 때 병실가까이로 다가들어 수류탄을 던져넣어야 했다.

도요다는 애들을 전멸시키라고 칼날같이 날카로운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좀처럼 그런 기회를 가질수 없었다.

아동단병실에도 밤이면 경비병이 서있었다. 그건 갑자기 덮쳐들어 제낄수있겠지만 낮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둔 유격대와 사슬에 매여있는 세퍼드가 무서웠다.

수류탄폭음이 울리면 그걸 들은 유격대원들은 몽땅 떨쳐나설것이다. 세퍼드도 앞장서 달릴것이다.

세퍼드는 사람냄새를 맡는데는 귀신과 같다.

수류탄을 던져넣고 도망치면 둘은 영낙없이 세퍼드에게 종다리를 물리고 엉치에서 피가 터지게 될것이다. 그러면 뒤따르던 유격대원들에게 잡히게 된다.

리동근의 별명은 《쉬움떡》이다.

찹쌀을 물망질해서 술과 소다를 넣어 시루에 찐 다음 참깨에 빨간색과 파란색을 들여 고명을 뿌린다.

기막히게 하얗고 윤기가 도는 쉬움떡은 참말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부풀어오르기만 해서 손가락으로 찌르면 맨밑까지 꿰창이 난다.

리동근이 겉보기에는 희멀쑥하고 잘났으나 맺힌데 없이 속이 물렁물렁하다고 해서 마을애들은 그를 보고 《쉬움떡》이라고 불렀던것이다.

리동근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하촌애들을 수류탄으로가 아니라 제손으로 발기발기 찢어죽이고싶었다.

그러나 그애들을 죽인 값으로 제 목숨을 내놓는다는것이 너무도 끔찍스러웠다.

리동근이 어떻게 하면 아동단병실을 들장낼가 하고 골을 앓고있는데 쌍안경의 렌즈에 림태호의 모습이 잡혔다.

그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했다.

《춘삼이, 저기 태호가 있어!》

《예?!》

홍춘삼이 쌍안경을 들고 초점을 맞추니 림태호가 호미로 땅을 파고있었다.

《정말 림태호가 맞습니다.》

홍춘삼의 어조는 공손했으나 전과 같이 신주님 모시듯 하던 자세는 많이 사라졌다.

리춘팔이 죽은 다음 춘삼이네는 그의 집을 아주 타고앉았다. 춘삼의 아버지는 리춘팔의 땅을 모조리 제 소유로 만들려고 사방에 뭉치돈을 들고 기웃거렸다.

홍춘삼은 리춘팔이라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사라지자 그의 아들 리동근을 차츰 별찮은 애로 여기게 되였다.

리동근은 히죽거리며 홍춘삼에게 으시댔다.

《틀림없어. 분명 끌려왔어.》

홍춘삼은 말뜻을 알수 없어 눈을 꺼벅거렸다.

리춘팔은 금전판 덕대노릇을 하다보니 다른 덕대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죽기 얼마전에는 최덕대를 불러 집에서 술을 마셨다.

리춘팔은 제가 죽인 림원학의 아들 림태호가 최덕대네 갱에서 일하다보니 그에 대해 묻는 때가 간혹 있었다.

그날도 술판에서 물음을 던졌다.

《참, 태혼가 하는 그 애놈이 아직도 심지에 불을 다는걸 빠뜨리군 하나?》

술에 낯이 벌겋게 단 최덕대는 그에는 대답없이 왕청같은 소리를 했다.

《귀신이 곡할노릇이야. 글쎄 그놈이 없어졌네.》

《어디로?》

《그걸 알턱 있나? 그 애놈은 도망치려 해도 한발작도 내짚을수 없는 반편이야. 반소경에 반귀머거리 됐으니 재간있나.》

《그런데도 없어졌단 말인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리춘팔도 놀라와했다.

그 말을 리동근은 옆에서 다 들었다.

최덕대가 말을 이었다.

《암만해도 빨갱이들이 끌어간것 같애. 그애 애비가 빨갱이혁명을 반대했다지? 그러니 끌어갈수밖에. 에― 나는 골이 터져와 죽겠어. 화약이 자꾸 축나니 어떻거나?》…

지금 쌍안경으로 림태호를 발견한 리동근은 너무 기뻐 허벅다리를 탁 쳤다. 우리가 애태우니 하느님이 불쌍히 여겨 하늘에서 구원의 바줄이라도 내려보낸게 아닌가. 림태호한테 시키면 문제없이 수류탄벼락으로 아동단원전원을 몰살시킬수 있다.

그리고 잘하면 그놈을 우리 밀정으로 써먹을수 있다. 며칠에 한번씩 약속한 곳에 쪽지를 집어넣게 하자. 일은 제곬으로 풀려나가는것 같았다.

리동근의 말을 들은 홍춘삼은 너무 기뻐 어깨춤을 춰댔다.

둘은 림태호를 바라보며 아래로 내려갔다. 쌍안경으로 다시 살펴보니 아동단애들은 더덕과 도라지뿌리를 캐느라 더 멀리 흩어졌다. 림태호가 일하는 그곳에는 다른 아무 애도 없었다.

림태호앞으로 바투 다가간 리동근은 얼굴에 반가움을 가득 담고 애써 소리를 높였다.

《태호!》

최덕대가 말하기를 반소경에 반귀머거리가 됐다고 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태호가 그 부름을 인차 알아들었을뿐아니라 호미질을 멈추고 몸을 펴는 그의 눈은 또릿또릿했다. 몸은 갱에서 시달린 애같지 않았다.

동근은 갈피를 잡을수 없어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나 아직 나이어려 생각이 단순한 동근은 제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옳지, 끔찍한 갱에서 화약내랑 돌가루에 싸이지 않으니 눈도 귀도 나은게로구나.)

목에 쌍안경을 건 리동근은 반가운 빛을 지우지 않았다.

《태호, 이렇게 만나니 정말 꿈같구나.》

태호는 놀라움에 뒤걸음치며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쌍안경은 어디서 생겼을가? 이놈들은 어떻게 여기 나타났을가?

곽찬수선생이 근거지에 밀정들이 기여들려고 지랄친다더니 이놈들도 그런게 아니야?

홍춘삼이도 가까이 다가와 새까만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너 여기 끌려왔다지? 얼마나 고생하겠니?》

태호는 말뜻을 알수 없어 눈만 슴벅거렸다.

두 녀석이 약속이나 한듯이 품속에서 자그마한 권총을 꺼내들었다.

태호는 눈이 꼭뒤에 날아올라 그냥 뒤걸음쳤다.

리동근이 달래듯 말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란걸 너한테 알리려는게야. 그래 우리를 만난게 반갑지 않니?》

태호는 놀란 심장이 어찌나 요동치는지 내장이 다 밖으로 뛰쳐나올것 같았다.

리동근은 딱했다. 태호가 반가와하기는커녕 떨기만 하는것이다.

암만해도 귀맛좋은 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우리가 시키는 일을 하고나면 우리 집에 갈수 있어. 우리 어머니가 지금 싸전을 펴려고 하고있거든. 그러자면 심부름군애가 있어야 할게 아니야? 너는 여기서 흰밥을 먹어봤니? 아마 죽이나 겨우 먹을거야. 하지만 쌀을 파는 집에 쌀이 없겠어? 우리 집에 가면 호강당반에 올라앉게 돼.》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방어용수류탄을 꺼내들었다.

《이건 도요다수비대장의 지시야. 이걸 밤에 함께 자는 병실에 던지라구. 넌 던지자바람으로 우리 집에 오면 돼.》

태호는 그제야 두놈이 온 목적을 뚜렷이 깨달았다.

리동근은 림태호의 손에 수류탄을 쥐여주려 했다.

림태호는 딱 막혀버렸던 입을 간신히 열며 쉰소리를 내뿜었다.

《나는 그따윈 못해. 소리치겠어. 동무들이 들으라구.》

두 녀석은 화들짝 놀랐다. 자기들이 잘못 알고 덤벼쳤다는걸 비로소 알아챘다.

가까운데서 아이들의 기척이 들려왔다.

두 녀석은 빨리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러나 림태호의 가슴팍에 총부리를 들이대는것만은 잊지 않았다.

《좋다, 싫으면 그만둬. 하지만 입을 나불거렸다간 알지?》

리동근의 이 말에 독종인 홍춘삼이 권총손잡이밑의 탄창을 꺼내여 림태호앞에 들이밀며 을러멨다.

《총알은 얼마든지 있어. 우리 둘이서 네새끼 하나 못제낄것 같애? 입건사를 잘못하면 아버지, 엄마뒤를 따라갈줄 알아!》

둘은 날쌔게 숲속깊이 사라졌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