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8 회


제6장 두자루의 장총


1


산은 온통 누런빛과 빨간빛으로 단장되였다. 마른 이파리들이 한잎두잎 떨어져내렸다.

겨울이 가을과 교대하며 얼음갑옷을 떨쳐입고 날아오고있었다.

박귀남은 현란희와 함께 꽈리를 따려고 산기슭을 더듬고있었다.

하루는 군의선생이 아동단병실에 와서 림태호의 눈과 귀를 들여다보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다 나은것 같구나.》

그러나 태호의 눈과 귀가 말끔히 낫게 치료를 계속하고싶은 김기송동지였다.

렴죽심은 앵돌아진 표정으로 기송동지에게 말했다.

《분단장동무, 이젠 꽈리를 안따와도 되지 않습니까?》

그는 기분이 토라졌을 때에만 기송동지를 분단장이라고 불렀다.

죽심은 태호와 마주치면 얼굴을 홱 돌렸다. 태호도 죽심이가 저보고 이상스레 군다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더이상 죽심에게 싫다는 일을 시킬수 없었다. 그래서 김기송동지는 죽심이 대신 귀남이를 란희와 조를 무어주었던것이다.

둘은 쌍둥이오누이처럼 모상도 비슷했고 서로 가까이 지냈다. 박귀남은 꽈리 따오는 일이 싫지 않았다.

이젠 아동단병실가까이의 꽈리는 다 따놔서 멀리로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꽈리는 덩굴나무에 다문다문 고운 열매를 매단다. 꽈리껍질도 빨갛다못해 가생이가 황이 들며 말라갔다.

두 애는 대여섯송이의 꽈리를 저마끔 땄다. 하루에 그만한 량이면 림태호의 귀에 생신한 약을 짜넣을수 있었다.

산을 내리며 란희는 또 명랑한 목소리로 우습강스러운 노래를 불렀다.


뒤동산에 할미꽃 가시돋은 할미꽃

싹날 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하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노래를 계집애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듣던 박귀남이 무슨 비밀이기나 한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란희, 내가 노래부르면 들을래?》

《정말?》

란희의 머루눈이 반짝 빛을 뿌렸다.

구공청 아동단책임자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동단사업과 다른 공작임무를 맡고 적후에서 오래동안 돌다가 장재촌에 오시면 어김없이 아동단병실을 찾군 하시였다.

아동단에서 연예대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하기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장재촌아동단원들에게 노래와 춤을 배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왕우구 북동에 있는 현공청에 가시여 자주 강습도 받고 경험교환, 시범상학에도 참가하시였다. 이것이 김정숙동지에게는 또 하나의 큰 학교였다.

다른 아동단에서는 가무 《13도자랑》, 《단심줄》 등도 배워주느라 했다. 현공청에서 《혁명가요집》을 내주다나니 노래도 널리 보급했다.

그런데 기초훈련을 충분히 주지 않다보니 노래도 타령식으로 부르고 춤도 마을에서 제멋대로 배운대로 추는것도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노래를 배워주면서도 음정과 박자개념을 충분히 가지도록 이끄시였다.

노래를 배워주실 때 앞에 서서 지휘하듯 손으로 박자를 그어주시였다.

음정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 도레미화쏠라씨 음계훈련도 시키시였다.

애들은 키드득 웃었다.

그런 훈련을 받아본 애들이 많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무용도 기초동작에 힘을 넣으시였다.

손률동에서 손벽치기, 손목돌리기, 손목꺾기, 팔을 메고 펴기, 휘감기…

발률동에서도 짧게 뛰기, 곱디뎌뛰기, 머물러걷기, 스쳐뛰기…

이렇게 기초훈련을 주면서 무용을 배워주다보니 률동이 훨씬 맵시 있어지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무 《13도자랑》을 배워주시였고 혁명가요도 배워주시였다.

어제는 《아동단가》를 배워주시였다.

박귀남은 사방을 휘둘러보더니 란희에게 다짐을 두었다.

《내가 노래불렀다는걸 절대 말하면 안돼.》

《그건 왜?》

《글쎄…》

박귀남은 여태껏 아동단생활을 하면서도 아직 겁주머니를 완전히 털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귀남은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어 노래불렀다.


어깨동무 세 동무 아동단동무

우리들은 나어린 프로레타리아

올망졸망 동무야 다 나오너라

골목골목 모여서 한뭉치 되자


란희는 그토록 주의를 주었는데도 온 골안이 울리게 《야!》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를 쳐댔다.

박귀남은 흠칫 어깨를 떨며 란희에게 을렀다.

《조용하지 못하겠니?》

란희는 당당히 맞섰다.

《왜 조용하란 말이야? 도적질을 하고있나?》

란희는 그리도 귀남의 목청이 고운줄 몰랐다.

그런데도 김정숙동지께서 나와 노래부르라면 어깨를 움츠리며 나서려하지 않던 귀남이였다.

아동단병실에 돌아온 현란희는 기쁨에 넘쳐 이 사실을 분단장 김기송동지에게 알렸다.

《그래?》

기송동지는 무척 흡족해했다.

태여나기 무섭게 욕설과 맵짠 칼눈에 짓눌리던 동심이 기지개를 켜며 고운 꽃망울을 활짝 터치기 시작한것이다.

다음날 수업이 끝났을 때 김기송동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곽찬수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모두 귀남동무의 노래를 듣는게 어떻습니까?》

선생도 아이들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곽선생은 몇번 귀남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고개만 구겨박을뿐 일어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애들을 둘러보느라면 귀남의 눈길이 자기한테서 떨어질줄 몰랐다. 온 정신을 모아 듣고있는것이다.

곽선생은 그의 학습장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개발을 그리더니 요즘은 글씨가 얼마나 방정해졌는지 몰랐다.

그가 어떤 환경속에서 자랐는가를 아는 곽찬수선생이였다.

그는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귀남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라구. 난 꼭 듣고싶어.》

귀남은 어쩔줄 몰라 쩔쩔맸다. 그러면서 란희를 원망했다.

(고게 비밀을 지키라고 했더니 오히려 광고하며 돌아갔구나.)

아이들이 웃음속에 목소리를 합쳤다.

《어서어서 나오십시오! 못나오면 졸장부!》

김기송동지가 훈수들었다.

《귀남이, 동무의 노래가 우리한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알아? 달팽이속에서 빨리 나와.》

박귀남이 힘들게 일어섰다. 그것도 그사이의 아동단생활이 준 용기였다.

앞에 나선 귀남은 한참 바재이더니 들릴듯말듯한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기송동지가 힘을 주었다.

《더 크게! 여긴 지주집이 아니란 말이야.》

차츰 귀남의 노래소리가 뚜렷해졌다.

곽선생이 끼여들었다.

《아직 약해. 가슴을 쭉 펴라구. 김일성장군님께서 뭐라 말씀하셨어? 아동단원들은 조국의 꽃봉오리이며 앞날의 기둥이라 하시지 않았어?》

박귀남의 목소리는 한단 더 높아졌다.


어린 병정 새 병정 아동단병정

우리들은 나어린 프로레타리아

나어린 동무야 모두 나오라

붉은 기발 아래서 싸워나가자


아이들이 손바닥이 터지게 박수를 쳤다. 박귀남이 이전의 그가 아니라는 흐뭇함에서였다.

박귀남이 제자리에 들어가자 곽선생은 말했다.

《우리는 박귀남을 통해 지주놈들이 얼마나 악착한가를 보았거든. 그런데 노래부르는 박귀남을 보라구. 여기는 내 세상이라고 소리치지 않나.》

아이들도 흥그러운 마음에 휩싸였다.

곽선생은 어조를 바꾸었다.

《내가 동무들에게 인사드려야겠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더니 내가 동무들에게 뭘 배워준게 있습니까? 그런데도 꿀을 한소랭이나 보내주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김기송동지는 동무들과 토론하고 따온 네소랭이의 꿀중에서 밀랍이 든 두소랭이와 하루새에 뜯어온 송진 한포대를 군의소에 갖다주었다.

군의선생과 식모아주머니는 너무 고마와 눈물을 머금었다.

군의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장재촌아동단이 보통이 아니구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해냈을가?》

그리고는 가져간 꿀소랭이와 송진포대를 입원한 부상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일어날수 있는 부상자들은 기송동지와 장쇠의 손목을 와락 움켜잡으며 눈물을 지었었다.

꿀 한소랭이는 곽찬수선생에게 가져다드리자고 하자 모든 분단원들이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우리를 성심성의로 배워주는 선생님, 근거지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선생님,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선생님에게 무조건 갖다줘야 한다는것이 분단원들의 하나같은 심정이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소랭이는 림태호와 길장쇠에게 갈라주도록 했다.

길장쇠는 말했다.

《나 혼자 애썼나 뭐. 모든 분단원들이 힘을 합쳤지. 난 내 몫을 물에 풀어서 모든 동무들이 나누어 마셨으면 좋겠어.》

그리하여 그의 몫을 물에 풀어서 모든 동무들이 달게 마시였다.

사람은 어울려 살기마련이다. 친척이 있고 이웃이 있고 한동리가 있고 다른 동리가 있는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길장쇠는 길청령의 깊은 골에서 식구외에 다른 사람을 모르며 살았다. 막냉이다보니 사랑만 받았지 남에게 마음쓸줄은 몰랐다.

그런데 아동단 분단이라는 집단은 그에게 인정의 문을 빠끔히 열게 해주었던것이다.

곽찬수선생은 손에 하모니카를 꺼내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뜨거운 물기에 젖었다.

《나는 동무들에게 인사차림하려니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하모니카를 가져왔어.》

선생은 고개를 들었다.

《이중에 누가 하모니카를 불줄 아나?》

《예, 제가 붑니다.》

붕어입인 강진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모니카를 받아든 진혁은 자신만만한 자세로 자기도 어제 배운 《아동단가》를 류창하고 거침없이 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넘쳤다.

김기송동지가 소리를 높였다.

《동무들, 저 반주에 맞추어 박귀남동무가 다시 노래부르는게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아이들의 하나같은 목소리가 병실안을 가득 채웠다.

박귀남은 서슴없이 벌떡 일어났다. 친형처럼 따르는 강진혁이 하모니카를 부는걸 보고 차오르는 자랑을 누를길 없었던 그는 그 반주에 맞추어 노래부를 욕망도 북받쳐올랐던것이다.

하모니카반주에 싸인 박귀남의 노래소리는 더 힘있고 거침없었다.

이리하여 공포의 움막에 갇혀 살던 박귀남은 사랑의 근거지에서 활기의 나래를 활짝 펼친것이였다.


림태호는 아동단병실가까이의 나지막한 산턱에 걸터앉아 그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유격대병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은 총을 메고 정보행진훈련을 하고있었다.

인원은 100명이 채 되지 못할것 같았고 어깨에 멘 총은 얼룩덜룩했다. 최신식보총은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

림태호의 낯빛은 흐려졌다. 가는 한숨까지 지었다.

(저걸로 어떻게?…)

그는 오봉광산에서 일하며 본 일본놈무력과 견주어보는것이였다.

림태호는 아동단병실에 와 뜨거운 인정의 세계에 홈빡 젖었다.

현란희는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생신한 꽈리즙을 귀안에 정성다해 짜넣어주었고 식모 박복덕은 진하게 달인 노란 물푸레나무물을 꼬챙이에 감은 솜에 묻혀 시간맞춰 눈안에 넣어주고 닦아주었다.

군의선생이 이젠 다 나았다고 했지만 김기송동지는 치료를 멈추지 않고 꽈리와 물푸레나무를 계속 해오게 했다.

태호는 아동단병실 한구석을 차지하고있으니 아동단학교에도 다닌셈이였다.

곽선생의 애국에 끓는 수업내용을 모두 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겁주머니를 안고 살았다.

그는 첫날 군의소에 가서 본 부상자들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가?)

아버지는 새 혁명의 뜻을 깨닫지 못해 반대했지만 태호는 겁에 질려 뒤걸음치는것이였다.

태호는 오봉광산에서 점화공을 할 때 발파구멍에 박은 도화선에 모조리 불을 달지 않은 일로 최덕대한테 죽도록 매를 맞군 했다. 첫번에 불을 단 도화선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면 당장 그게 터질것 같아 맨 마감의 도화선에까지 미처 불을 달지 못하고 갱굴에서 뛰쳐나오군 했던것이다.

죽일것 같은 최덕대의 강박에 못이겨 《오소리굴》로 다시 기여들어가다보니 미처 빠지지 못한 화약내와 갈앉지 않은 돌가루에 그의 귀와 눈은 더욱 상했던것이다.

림태호는 아동단병실에 있는 다른 동무들은 여기 있는게 무섭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촌에서 여기로 곧추 들어오다보니 센 왜놈군대의 무력에 대해 잘 모를거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는 자기를 두고 한탄했다.

(나는 왜 이래? 갱에서 죽을번 했는데 여기 오니 또 죽음이 눈앞에서 얼씬거리지 않아.)

이때 란희가 뒤에서 《태호오빠! 태호오빠!》 하고 찾으며 다가왔다.

렴죽심이와 현란희가 함께 꽈리를 따들일 때도 태호의 귀에 꽈리즙을 짜넣어주는 일은 란희가 도맡았다. 죽심은 마지못해 꽈리를 따긴 했지만 태호앞에 얼씬하기 싫어 그 일을 란희에게 떠밀었던것이다.

란희가 새로 꽈리를 따들고와서 병실에 들리니 태호가 자리에 없었다. 그래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산턱에 걸터앉은 태호를 발견했던것이다.

란희를 무척 어린애로 여기는 태호는 눈에 웃음기를 가늘게 실으며 저도 몰래 이런 물음을 던졌다.

《란희야, 여기 있는게 무섭지 않아?》

《예?!》

란희의 눈은 올롱해졌다.…

잠시후 렴죽심이 또 김기송동지를 밖으로 불러냈다.

녀자병실에 돌아온 현란희가 방금 들은 말을 렴죽심에게 했던것이다.

김기송동지와 렴죽심은 다시 병실모퉁이에 마주섰다.

렴죽심은 온몸이 입이 되여 불을 내뿜는듯싶었다.

《보라요! 내가 뭐라 했어요? 뭐? 여기 있는게 무섭지 않는가구? 이건 우리가 왜놈들과 맞서야 어방없다는 말이 아니구 뭐예요? 그런데도 오빠는 태호한테 꿀까지 줘요? 에― 분해죽겠네. 그새 꽈리를 따느라 산판을 헤맨게…》

렴죽심의 마음속의 불이 그대로 기송동지에게 옮겨졌다. 당장 태호한테 달려가서 목을 움켜잡고 따지고싶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번지고 이발이 칼처럼 입술을 벨것 같았다.

(비겁쟁이, 네가 그런 자식이였구나!)

기송동지는 던져진 돌멩이처럼 림태호가 앉아있는 산등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우뚝 멎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 이르시던 말씀이 머리에 마쳐와서였다.

《기송아, 중요한 문제는 나한테 알리고 처리해라.》

기송동지는 구공청이 있는 방향으로 홱 돌아섰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