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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제5장 대오는 전진한다


3


날이 어슬어슬해지자 김기송동지와 손석일은 오봉광산으로 향했다. 광산에서 화약이 들어오기에 길안내를 떠난것이다.

김학철중대장은 처음 손석일과 그쪽 길을 잘 아는 대원 한명을 붙여 떠나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전령병이라 늘 중대장의 가까이에서 도는 손석일이 자기 의견을 서슴없이 터놓았다.

《중대장동지, 김기송이와 함께 가면 안되겠습니까?》

《기송이? 그애야 광산까지 가는 산길은 알수 있지만 병기창까지 가는 길은 모르잖나?》

《왜 모르겠습니까? 그애가 병기창에 가서 오그라졌던 나팔을 고쳐오지 않았습니까?》

《음, 그렇지. 어때? 나팔을 잘 배워줘?》

《야, 말할게 있습니까. 그 열성에 내가 따라서지 못합니다.》

《좋구만.》

손석일은 김기송동지를 앞에 그리기만 해도 흐뭇한 마음을 이길수 없었다.

한고향인데다 나팔을 배우는 과정에 김기송동지에게 홀딱 반해버린터여서 중요한 이번 일도 함께 가고싶었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산길을 앞장서 걸어가면서 병기창에 갔다가 본 《파편감》들을 눈앞에 떠올렸다.

이젠 그 숱한 깨진 가마들이 《파편감》들로 산더미를 이루었을거야. 그러니 화약을 들여오게 하는거겠지.

김기송동지는 신바람났다. 이제 그 작탄들이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길것이다.

김기송동지는 그때까지 왜놈들이 그 작탄에 어찌나 혼뜨검났던지 그 작탄에 《연길폭탄》이라는 새 이름이 붙은줄 아직 알수 없었다.

청나라 말기부터 일본놈들은 오봉광산을 타고앉아 《연화금광주식회사》를 꾸렸다. 그 업주는 도꾸다였다.

광부는 800명나마 되였다. 그 옆구리에 붙어 금을 캐먹는 개인경영주들이 30명이나 되였다.

덕대들이 화약을 광부들에게 10일분씩 공급하는데 그중에서 떼내여 유격근거지로 들여보내는것이였다.

목적지에 이르자 이 광산 혁명조직에서 일하는 윤경화가 숲속에서 불쑥 나서며 반겨맞았다. 그는 씨름군처럼 몸이 좋으나 몸가짐이 무척 날랬다.

기송동지는 여기에 몇번 련락임무를 맡고왔기에 그를 잘 알고있었다.

짐을 운반해갈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근방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있는 모양이였다.

반달이 사위를 우렷이 비쳐주었다.

한 청년이 윤경화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기 웬 애가 누워있습니다. 무슨 앤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요?》

윤경화는 어조에 긴장을 실으며 청년이 손짓하는쪽으로 시선을 날렸다.

광산에는 《보위단》이라는게 있는데 그놈들이 애를 밀정으로 들여밀었을수도 있었다.

잽싸게 걸음을 옮기는 윤경화의 뒤를 물고 걷는 기송동지도 마음이 조여졌다.

(어떤 애놈이야?)

청년이 가리키는 길섶에 한 소년이 기신없이 누워있었다. 거기에서 멀지 않은 산허리에 갱구멍이 어웅하니 뚫려보였다.

윤경화는 소년의 엉치를 툭툭 걷어찼다.

《얘, 일어나. 넌 웬 녀석이야?》

벌써 밀정으로 내짚고 거칠게 던지는 말이다.

그런데도 소년은 눈을 감은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윤경화가 몇번 엉치를 걷어차고 소리를 질러서야 소년은 힘겹게 일어나앉았다.

기송동지는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아니, 이게?!)

그 소년은 살이 빠지고 기운이 진했지만 틀림없는 림태호였다. 우렷이 숲을 적시는 달빛에 그를 뚜렷이 가려볼수 있었다.

기송동지는 흥분해서 말했다.

《이애는 우리 마을 애였어요. 부모도 없어요.》

《그래?!》

윤경화도 다소 긴장이 덜리는 모양이다.

기송동지는 의문이 솟구쳤다.

(봉림동 고모네 집에 간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태호를 들여다보느라니 모진 고생속에 시달리고있는게 헨둥히 알렸다.

윤경화가 누그러진 소리로 말했다.

《찬찬히 보니 낯익은 애다. 여기는 최덕대네 갱굴이야. 이애가 점화공노릇을 하고있지.》

《점화공이란건 뭐나요?》

윤경화가 설명해주었다.

《갱안에 발파구멍들을 뚫고 도화선을 늘인 다음 불을 달아야 한다. 그걸 이런 애들을 시키지. 작고 날래니까. 그런데 이런 애들은 발파소리와 화약연기에 반소경, 반귀머거리가 되기 쉽지. 한 구멍이 채튀지 않으면 도루 들어가서 불을 달다가 죽는 애들도 많아.》

기송동지는 태호가 불쌍해서 몸을 가벼이 떨었다.

《그러니 이 태호도 반소경, 반귀머거리가 된게 아니예요? 뗑해서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지 않나요?》

《좌우간 여기서 일하다가 갱귀신이 된 애들이 수두룩해.》

기송동지는 솟구치는 동정감을 누르지 못하며 태호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태호야, 태호야, 날 모르겠니? 나 기송이야, 기송!》

그제야 잠에서도 깬듯 태호는 기송동지에게 흐릿한 눈을 견주었다. 그러더니 기운빠진 소리로 말했다.

《기송이구나.…》

기송동지의 물음은 다급했다.

《너 고모네 집에 간다더니 어떻게 된거니?》

《없어.…》

《없다니… 딴데로 이사갔던?》

태호는 힘겹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이사간델 찾아가면 될게 아니야?》

역시 김빠진 대답이 울렸다.

《누구도 몰라.…》

아, 그래서 죽음의 갱에 들어섰던게로구나.

기송동지는 부모를 한시에 잃은 태호가 집에 와있을 때 눈물이 그렁해서 어머니에게 말씀올렸다.

《엄마, 태호를 우리 집에 있게 하자요.》

《나도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있다. 너의 누이도 같은 말을 하더구나.》

어머니는 치마자락을 들어 눈굽을 찍으시였다. 그런데 태호는 고모네집에 간다며 떠났던것이다.

기송동지는 태호를 잊을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 손에 끌려 서산리에서 부암동으로 이사온 후 집이 설 때까지 기송동지일가는 태호네 집에 얹혀살았다.

동갑인 기송동지와 태호는 한이불속에서 딩굴었다.

기송동지가 당돌하고 약빠르다면 태호는 히물거리길 잘하지만 속대는 약했다.

서로 다른 성미가 그리도 잘 어울려 둘도 없는 동갑짝패로 지냈다.

김기송동지는 무조건 태호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빼내여 근거지로 데려가고싶었다. 아버지는 혁명을 믿지 않았지만 아들인 태호는 혁명의 길에 떳떳이 내세우고싶었다.

얼마후 화약짐을 진 여라문명의 광부들이 병기창을 향해 떠났다. 김기송동지가 길잡이를 해야 했다.

그래서 태호를 손석일이 곁에서 팔을 끼고 뒤따라 걸었다. 태호가 소경걸음을 치다보니 둘은 앞선 일행과 점점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눈썰미있는 손석일이 한번 걸었던 길을 찬찬히 되새기며 장재촌까지 무사히 들어섰다.

김기송동지는 병기창까지 가야 했다.

림태호가 아동단병실에 들어섰을 때 자고있던 애들은 모두 일어났다.

함께 하촌에서 자라던 동무들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해했다.

《이게 꿈이 아니야? 태호, 네가 왔구나!》

《그새 어디에 있었니?》

《어떻게 여기 나타났니?》

태호를 데리고 온 손석일이 애들에게 분단장 김기송동지가 데려왔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이라 애들은 태호의 눈빛이 흐릿하고 귀도 반귀머거리이며 별스레 몸가짐이 후줄근하다는것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또 림태호가 한마디 대꾸도 안했기때문이였다.

애들은 정성스레 태호의 잠자리를 펴주었다.

태호는 자리에 누웠으나 가슴이 후두둑 뛰고 불안이 온몸을 감싸 잠들수 없었다.

그도 하촌이 왜놈들의 《토벌》에 든걸 알고지냈다.

기송동지가 가자고 손을 끌 때 이사간 다른 마을로 가는줄 알았다.

그런데 부축해주던 손석일이 《이젠 다 왔어.》 하고 일러준 뒤에 《누구야? 섯!》 하며 고함치는 초소를 세군데나 걸쳐야 했다.

손석일과 말을 주고받는 경비병들의 옷차림이 류달랐다.

늘 보아온 수비대, 경찰, 위만군, 《자위단》의 옷차림과 판판 달랐다. 그리고 귀에 선 동무라는 말도 들렸다.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손석일은 한 귀틀집앞에 이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게 아동단병실이야. 난 네가 훌륭한 아동단원이 되길 바래.》

림태호는 눈이 휘딱 뒤집혔다.

(뭐? 아동단?)

그는 오봉광산에서 지긋지긋한 점화공노릇을 하고있었지만 이런저런 말을 귀동냥해 들었다.

장재촌에 혁명근거지가 선다. 거기엔 아동단도 있다.

그러니 아버지가 그리도 꺼려하던 새 혁명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셈이다.

피줄은 어쩔수 없는지 림태호도 왜놈들의 《위세》에 겁을 잔뜩 먹었다.

조선에서, 장춘에서 몰려온 왜놈군대까지 오봉광산 앞길을 메우며 끝없이 지나갔다. 자동차며 말이 끄는 대포가 헤아릴수 없었다. 일본비행기편대가 하루에도 몇차례 하늘을 썰며 날아지나갔다.

(야, 무섭구나!)

이게 림태호의 생각이였다.

그런데 기송동지를 만난 바람에 저도 왜놈들과의 싸움판에 말려들게 된것이다.

기송동지는 어데 갔는지 알수 없었다. 한 동무한테 자기를 맡긴 다음 바람같이 사라졌는데 지금껏 돌아오지 않았다.

(기송이가 오기 전에 빠질가?)

그러나 반소경인 그는 캄캄한 밤길을 한발자국도 내짚을수 없었다.

태호는 눈앞이 캄캄해서 입을 다시다가 어른처럼 긴 한숨을 지었다.

김기송동지는 새벽에야 아동단병실에 돌아왔다.

화약짐을 날랐던 광부들은 점심녘에야 집에 들어설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대휴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오봉광산 지하조직은 규모가 크고 째였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 뙤창에 비낀 새벽빛을 보고 밖에 나가 기상나팔을 불었다. 드바쁜 속이였지만 모든 일과는 제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잘 잤니?》하고 림태호에게 정찬 웃음을 보낸 기송동지는 부엌사이문을 열고 동자질에 바쁜 박복덕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또 한 동무가 왔어요.》

《나두 알아. 잠결에 듣자니 새 동무가 오더구나.》

《그 동무는 몸이 말이 아니예요. 특별히 관심을 돌려주세요.》

《그건 걱정말아라.》

박복덕의 대답은 흔연했다.

그는 최춘도회장앞에서 다짐한대로 모든 아동단원들을 친자식처럼 여기며 식당일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조금이라도 색다른 찬을 마련하려고 산나물이며 버섯 등을 어찌나 뜯어내리는지 산에 그 종자가 바닥날 지경이였다.

수업시간이 되자 곽찬수선생이 방에 들어섰다.

애들은 일제히 일어나며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하촌애들은 말할것 없고 딴데서 온 애들도 선생을 무척 따랐다.

선생은 애들에게 한글(국어), 산술(수학), 조선력사, 조선지리, 리과(자연) 등을 배워주었다.

선생은 애들에게 여러번 강조했다.

《싸움은 힘으로만 하는게 아니야. 지식과 지혜로 하는거지.》

그는 아동단학교를 유격대양성을 위한 《속성학교》로 보았다.

하기에 애국심과 반일, 반봉건의식을 깊이 심어주는데 력점을 두었고 자기가 아는대로 폭넓은 지식을 주려고 애썼다.

곽선생은 림태호를 무척 반겨맞아주었다.

태호가 야학에 나오진 않았지만 개량사숙을 다녔고 그의 집을 잘 알기때문이였다.

선생은 태호를 살피더니 걱정스럽게 기송동지에게 말했다.

《분단장, 수업에 참가 못하더라도 태호를 군의소에 데려가야겠어. 빨리 치료해야 될것 같아.》

김기송동지는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수업에 한번도 빠진 일이 없었다.

그러나 곽선생이 그렇게 권하고 기송동지도 빨리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터라 벌떡 일어나 태호를 데리고 군의소로 향했다.

아동단병실에서 군의소는 멀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서니 한 녀인이 돌가마를 걸어놓고 무엇인가 끓이고있었다. 가마뚜껑이 들썩들썩 들리고 김이 세차게 뿜어졌다.

풋낯이나 아는 참하게 생긴 젊은 녀인에게 김기송동지는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뭘 그렇게 끓이나요?》

《약을 끓이지.》

《무슨 약이예요?》

《총알맞은 자리의 독을 뽑는데 쓰는 약이야.》

김기송동지는 호기심이 동했다. 약을 무엇으로 만드는지 알고싶었다.

젊은 아주머니는 기송동지가 묻는대로 차근차근 대답해주었다.

송진과 밀랍, 돼지고기, 아편을 비률에 맞춰 끓인 다음 가제천같은데 밭으면 총알독을 기막히게 뽑는다는것이다.

유격구에서 군원이라고도 부르는 군의선생은 마흔살가까이 된 조금 마른 몸집에 무척 진중한 인상을 주는 선생이였다.

군의는 이마에 둥근 거울같은 이경을 붙이고 림태호의 귀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고막은 터지지 않았구나. 그런데 귀안에 돌가루가 꽉 들어찼구나.》

군의선생은 림태호를 해빛이 잘 비치는 창문옆에 앉히고 귀쑤시개로 조심히 귀안의 돌가루를 호벼내주었다.

김기송동지는 어떻게 귀안에 저렇게도 많은 돌가루가 차있었을가 하고 놀랄 지경이였다.

림태호는 아픔을 참으며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군의선생은 이번에는 눈까풀을 뒤집고 역시 이경으로 초점을 맞추고 들여다보았다.

김기송동지가 보기에도 눈까풀밑에 떡가루보다 더 보드라운 숱한 돌가루가 박힌것이 알렸다.

군의선생은 더운 물에 가제천을 적셔 몇번이고 눈에 갖다대며 림태호보고 눈을 껌벅거리라고 했다. 젖은 가제천에는 적지 않은 돌가루들이 묻어나왔다.

군의선생은 푸근한 어조로 김기송동지에게 말했다.

《여기에는 환자들이 많아 입원시키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아동단병실에서도 능히 치료할수 있다. 귀안에는 꽈리즙을 짜서 계속 넣어주어라. 그러면 귀안에 차있는 돌가루가 다 빠져나오고 염증이 말끔히 나을수있다.》

그리고 물푸레나무껍질을 달여 눈을 계속 닦아주라고 했다. 그러면 눈까풀의 돌가루가 말끔히 빠져나오고 염증이 사라진다는것이였다.

김기송동지는 군의선생에게 얼마나 믿음이 가는지 몰랐다. 그래서 몇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림태호와 함께 군의소를 나섰다.


수업이 끝나 곽찬수선생이 나가자 김기송동지는 동무들에게 알렸다.

《모두 앉아있으십시오. 토론할게 있습니다.》

기송동지는 다른데서 온 동무들도 림태호의 집래력에 대해 대충 알리라고 짐작하고 태호가 어떻게 되여 반소경, 반귀머거리가 됐는가 하는것만 말했다.

다른데서 온 애들도 얼굴에 동정의 빛을 담았지만 하촌애들은 눈시울이 불깃해졌다.

어제밤에는 캄캄해서 몰랐으나 아침에 보니 림태호의 얼굴은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다.

눈가에 늘쌍 웃음기가 물결치던 아이, 히물떡거리며 동무들과 갈갬질 잘하던 아이… 이런 흔적은 온데간데 없었다.

기송동지는 의사선생이 한 말을 옮겼다.

《눈에는 물푸레나무 달인 물이 좋고 귀에는 꽈리즙이 좋대. 우리 손으로 그런건 다 구할수 있지 않아?》

아이들은 선뜻 응수해나섰다.

《그런거야 쉽지 뭐.》

《여기 흔한게 꽈리하고 물푸레나무 아니야?》

아이들은 당장 뛰쳐나갈 차비였다.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있던 림태호는 눈굽이 뜨거워왔다.

이렇게 좋은 동무들을 버리고 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왜놈의 대포며 비행기가 눈에 언뜻거리자 칠판지우개로 쓱 문대버린듯 여기에 그냥 있으려던 생각은 가뭇없이 지워졌다.

김기송동지는 군의소 아주머니가 총알박힌 자리에 쓰는 약을 끓이던 일을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게 들어가야 한다는것도 덧붙였다.

김기송동지의 말은 침착히 울렸다.

《우리는 근거지아동단원들이야. 그러니 근거지 일을 적극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송진을 따다 군의소에 갖다주면 어때?》

아이들은 또 제꺽 호응했다.

《흔한게 송진이야.》

《한달구지라도 갖다줄수 있지 뭐.》

아이들은 신바람났다.

사실 수백년이 지났을지도 모를 소나무와 잣나무가 많으니 송진 구하기는 입에 떡넣기였다.

진대로 넘어져 뿌리목만 남은 소나무와 잣나무에는 돌처럼 굳어진 송진이 어른 손바닥두께만큼 덮였다. 그밑을 파면 아마 잘사는 놈들이 거들먹거리며 입에 무는 호박물주리며 마고자에 치장으로 다는 호박단추를 다듬는 호박수지가 그득히 묻혔을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송진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돼지고기와 아편은 우리 힘으로 얻을수 없는거다. 그러나 밀랍은?…)

여기에 기송동지의 온 생각이 못박히는것이였다.

유격구에서는 애들에게 아무런 일도 시키려 하지 않았다. 다만 공부 잘하고 튼튼히 자라기만을 바랄뿐이였다.

그러나 김기송동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우리들이 할수 있는 일을 찾아 유격구를 힘껏 도와야 한다는것이였다.

기송동지는 한쪽구석에 앉아있는 길장쇠에게 자주 눈이 갔다. 그의 어색한 거동이 웃음을 자아냈다.

길장쇠는 씨름―힘내기에서 진 다음 어깨가 푹 꺼져내렸다. 그리고는 모든 일과생활에 전보다 서둘러치며 참가하는것이였다.

기송동지를 보면 몸둘바를 몰라하며 허둥거렸다.

짐승같은 생활습성이 몸에 배였던 장쇠는 씨름에서 제가 졌으니 이젠 분단장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기송동지는 그의 마음을 풀어주고싶었다.

기송동지는 전에없이 다정한 미소를 띠우며 장쇠에게 말을 걸었다.

《장쇠동무, 한가지 묻자.》

장쇠는 얼굴에 어줍은 기색을 짓고 기송동지를 마주보았다.

《어때? 벌둥지를 털게 없어?》

기송동지는 장쇠가 근방의 산판은 휑하니 꿰다싶이 했으니 혹시 벌둥지를 보아둔게 없나 해서 묻는것이였다.

장쇠는 슬며시 고개를 수그렸다.

벌둥지를 본게 있다는것인지, 없다는것인지 도무지 가늠할수 없었다.

사실 장쇠는 큰 벌둥지를 하나 발견해놓고있었다. 그런데 혼자힘으로는 어쩔수 없어 지금껏 손을 대지 못하고있었다.

그 벌통만 들추면 한해겨울 배를 곯지 않을수 있었다. 그래서 벌둥지를 따다 아동단병실가까이에 숨겨놓고 가만히 혼자 먹을 작정이였다.

그런데 분단장은 그 일을 알고있기나 한듯 넌지시 묻는것이다.

장쇠는 머리속으로 수판을 튕겨보았다. 어쩔가? 있다고 할가 말가?

암만 셈을 해보아야 혼자 힘으로는 들어낼수 없는 벌둥지이다.

그는 드디여 결심했다.

(에라 모르겠다, 있다고 하자. 그러면 분단장이 내 몫도 생각해주겠지.)

장쇠는 머리를 들며 뚝한 소리로 말했다.

《벌둥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다 가야 합니다.》

기송동지도 분단원들도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야 한단 말이야?》

기송동지의 물음에는 대답없이 장쇠는 또 엄청난 소리를 했다.

《곡괭이와 삽을 모두 가지고 소랭이도 서너개 가지고 가야 해요.》

《엉?!》

분단원들은 눈이 사발만큼씩 커졌다.

그러니 굉장히 큰 벌둥지라는 말이 아닌가.

분단원들은 신바람나서 설레쳤다.

기송동지는 남은 두 처녀애로 꽈리를 따오고 물푸레나무를 베여오는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칠판밑에 나란히 앉은 렴죽심이와 현란희에게 과업을 주었더니 란희는 눈빛을 빛내며 머리를 까딱거려보이나 죽심은 무엇이 맞갖잖은지 머리만 가슴에 구겨박았다.

(저앤 왜 저래?)

작업조직이 바빠 김기송동지가 병실밖에 나섰는데 등뒤에서 이런 소리가 날아왔다.

《분단장동무, 나 좀 만나자요.》

곱지 않은 목소리다. 돌아보니 렴죽심이였다. 그의 얼굴에 왜서인지 맞갖지 않아하는 기색이 비껴있었다.

기송동지는 죽심을 따라 병실모퉁이로 갔다.

《분단장동무, 의견이 있습니다.》

동무들이 많은데서도 오빠라고만 부르던 죽심은 숨돌릴새없이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왜 림태호를 여기 데려왔습니까? 그가 어떤 애라는걸 모릅니까?》

기송동지는 어리벙벙했다. 죽심의 《기관총사격》은 멈출줄 몰랐다.

《태호 아버지가 혁명을 반대한줄 모릅니까? 우리가 련락을 갔다가 그를 8도구에서 만났을 때 뭐라 했습니까? 그런 애를 하필 여기로 데려온단 말입니까?》

그제야 김기송동지는 렴죽심의 속마음을 알수 있었다.

병기창에 가서 죽심의 아버지에 대해 새삼스레 깨닫게 된 기송동지였다. 그러니 자기 아버지가 혁명의 길에 나섰다고 직접 만나 핀잔까지 주었다는 태호의 아버지를 온곱지 않게 여길건 뻔한 일이였다.

기송동지는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어조를 누그렸다.

《죽심아, 나도 그런건 다 알아.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잖아? 아버지는 그렇다해도 우리는 그의 아들을 옳바른 길로 들여세워야 한단말이야. 그렇잖아?》

렴죽심은 말문이 막혀오는지 입술만 세차게 감빨았다.

기송동지는 빙긋이 웃음지었다.

《녀자란 할수 없어. 속이 좀 좁거든. 그러지 말고 빨리 시킨 일이나 해라.》

기송동지는 죽심의 앵돌아진 마음을 풀어주려고 그의 코등을 살짝 튕겨주었다.

죽심은 내키지 않은 기분을 안은채 현란희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란희는 노래를 무척 즐겨했다. 머리속에 노래실꾸리가 들어있는지 새라새로운 노래를 그냥 불러댔다.

그는 죽심의 흐린 기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처럼 밝고 귀엽고 깜찍스러운 노래를 길바닥에 뿌렸다.


우리 동리 차돌이 의원이라오

동리에서 이름난 의원이라오

앞담밑에 흙파서 가루약 지어

풀이파리 따다가 싸서 주면요

동리애들 병나면 솔잎침 놓고

약 한봉지 써주면 당장 나아요

… … …


남자분단원들은 곡괭이와 삽을 메고 소랭이까지 들고 마당에 나섰다. 한 애는 성냥을 간수했다.

김기송동지는 눈을 끔쩍하며 동무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대장은 길장쇠동무야. 나도 동무들도 길장쇠동무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해.》

《알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동무들은 힘있는 목소리에 웃음을 섞었다.

길장쇠는 저도모르게 어깨가 들렸다. 그는 앞장서 걸었다. 어찌나 빨리 걷는지 다른 애들은 도무지 따를수 없었다. 산속을 들개처럼 싸다닌 장쇠는 번번 나는듯싶었다.

한 5리쯤 가니 골짜기가 조금 넓어지고 양지쪽 산기슭에 뿌리를 박은 바위들이 여러개 내밀려있었다. 앞에는 가는 실개울이다.

거기에 이르니 머리우로 벌떼들이 윙윙 날아돌았다.

《야, 벌이 있구나!》

아이들은 환성을 질러댔다. 그러면서도 벌이 자기를 쏠것 같아 팔을 휘젓기도 했다.

한 애가 밑을 보다가 소리쳤다.

《야, 가재가 있구나!》

《어디? 어디?》

애들의 눈에 바위쪽으로 뒤걸음쳐 기여가는 두마리의 가재가 잡혔다.

애들은 가재에 무척 흥미를 느끼고있었다.

휴식일이면 연길하에 나가 가재잡이를 해서 배불리 먹군 했던것이다.

막대기끝에 삼실을 매고 그 실끝에 탕친 새끼고기를 매단다. 그리고 강녘물속의 돌짬에 드리우면 가재들이 탕친 새끼고기를 먹겠다고 덥석 문다. 어떤 때는 두마리, 세마리가 일시에 미끼를 집게다리로 꽉 집는다.

막대기를 모래판쪽으로 후리면 뿌려진 가재들은 모래판에 벌렁 나딩굴며 버둥거린다.

가재를 몇소랭이 잡아 삭정이나무에 구우면 잠간새에 새빨갛게 익는데 웃딱지를 떼고 먹으면 별맛이다.

약빠른 한 애가 그 두마리의 가재를 집으려 했다.

그때 뒤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터졌다.

《다치지 말아! 죽어!》

애들은 어깨를 흠칫 떨며 눈을 흡떴다.

소래기를 친 길장쇠는 삽으로 그 둘레에 깔린 락엽을 헤쳤다. 그러자 그 락엽밑에서 수백마리의 가재가 와글거렸다.

애들은 더욱 놀랐다.

락엽밑에는 물기가 질벅했다.

장쇠는 그 물기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더니 애들에게 말했다.

《자, 모두 맛봐.》

애들은 겁이 들어 뒤걸음쳤다.

장쇠는 가재들을 삽에 담으려 했다. 그런데 바닥이 돌판인지 잘 담겨지지 않았다.

그러자 장쇠는 얼굴이 시뻘개서 마구 짓밟아댔다. 가재는 툭툭 터져나갔다. 마지막 한마리까지 짓밟아대는 장쇠는 갑자기 정신이 돈듯싶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집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가 아홉살때인가 낚시구럭을 들고 개울로 나갔다. 개울안의 돌로 다른 돌등을 힘껏 조기면 그밑에 숨었던 고기들이 얼쳐 흰배를 드러내며 물우로 올리뜬다. 그런 잔고기잡이를 하려고 개울에 나온것이다.

그런데 물밖에서 기는 가재를 띄여보았다. 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가재도 물밖에서 사나?)

그옆에 쪼그리고 들여다보니 락엽밑에 숱한 가재들이 오글거리고있었다.

땅에 별스레 진한 물기가 느껴져 혀끝에 대보았더니 그건 꿀물이였다. 길장쇠는 환성을 질렀다.

(야, 꿀먹은 가재!)

가재가 꿀을 먹었으니 그걸 찌거나 구우면 온통 꿀맛일것이다.

어깨바람이 난 장쇠는 잔고기잡이는 뒤로 팽개치고 덤벼치며 가재를 집어 낚시구럭에 주어담았다. 가재가 구럭에 절반나마 찼다.

그는 집으로 달음쳤다. 빨리 가서 가마에 쪄먹을 작정이였다.

집마당에 들어서니 발바리가 반갑게 꼬리치며 매달렸다. 그는 발바리를 고와했고 그와 놀기를 즐겨했다.

《자, 너도 먹어. 꿀가재야.》

선심쓰듯 일여덟마리의 가재를 던져주었더니 발바리는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잠시후 발바리가 깨갱! 깨갱! 울부짖으며 디굴디굴 굴더니 죽고말았다.

아버지가 발바리의 비명을 듣고 달려나왔다.

장쇠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버지는 가재의 집게다리에 발린 꿀을 맛보고나더니 아들의 뺨을 불이 번쩍 일게 후려갈겼다.

《이 미시리같은 놈아, 꿀과 게를 함께 먹으면 죽는줄 모르니? 가재는 게의 4촌이란 말이야!》

길장쇠는 장재촌의 산골짜기를 훑다가 개울밖에 기여다니는 가재를 보게 되였고 그로 하여 그옆의 큰 벌둥지를 발견하게 되였던것이다.

애들은 가슴들이 덜컥했다.

(에, 꿀먹은 가재를 먹었다면 천당갈번 했구나.)

드디여 작업이 시작되였다.

길장쇠는 정말 대장인듯 동무들에게 말했다.

《먼저 벌떼를 다 쫓아버려야겠어.》

그러나 어떻게 해야 벌떼를 쫓아버리는지 알수 없는 동무들이였다.

장쇠는 또 명령을 떨구었다.

《삭정이와 풋나무를 계속 안아오시오!》

아이들은 사방으로 왁 흩어졌다.

아이들이 삭정이와 풋나무를 날라오자 장쇠는 한 바위의 코숭이에 그걸 쌓고 불을 질렀다.

삭정이와 함께 풋나무가 타며 시꺼먼 연기가 퍼져올랐다.

잠시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바위코숭이로부터 수많은 벌이 쓸어나오는것이였다. 그 벌떼들은 검은 연기에 떠밀려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장쇠는 눈을 부릅뜨며 동무들에게 소리쳤다.

《계속 나무를 가져오란 말이야!》

동무들은 숨돌릴새없이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삭정이를 주어오고 풋나무를 꺾어왔다.

그 바위코숭이에서 얼마나 많은 벌이 날아나왔는지 검은 연기우에 벌떼들이 꽉 덮여 하늘을 가리는것 같았다.

동무들은 감탄했다.

《야, 장쇠는 산엔 귀신이로구나!》

장쇠는 한 애 보고 계속 불을 피우라 하고나서 김기송동지앞에 다가왔다. 그새 배운 식으로 차렷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이 바위의 한가운데밑을 파야겠습니다.》

《아, 그래야지.》

김기송동지는 장쇠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였다.

한쪽에서는 바위코숭이에 불을 계속 피우고 많은 동무들은 곡괭이로 바위의 중둥허리밑을 팠다.

일은 헐치 않았다. 겉에 드러난 바위밑에 또 바위가 깔려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밀랍을 얻으려면 그 바위밑을 파야 했다.

아이들은 비지땀을 흘렸다. 마침 바위의 중둥허리밑은 바위가 깔리긴 했으나 토막쳐진것이여서 한덩이, 한덩이 뜯어낼수 있었다.

드디여 바위의 중둥허리밑이 휑하니 드러났다.

장쇠는 또 분단장에게 말했다.

《굵고 센 나무로 이 바위밑을 와짝 달구어야겠습니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 나무들의 마른 가지를 꺾기도 하고 땅에 구는 마른 나무를 끌어오기도 하였다.

《아가!》

《아가!》

나무를 줏던 아이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러댔다. 벌떼들이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들장내는 아이들에게 사정없이 벌침을 찔러댄것이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이들이 벌떼의 큰 무리속에 휘감길판이였다.

장쇠가 바쁜소리를 질러댔다.

《연기밖으로 나가지 말라! 연기밑에서 나무를 주어라!》

아이들이 모두 연기밑으로 도망치자 벌떼들은 휘주근해서 멀리로 날아갔다.

장쇠는 풋나무를 더 꺾어오게 해서 검은 연기가 더 넓게 퍼지게 했다.

아이들은 검은 연기밑에서 눈을 팽팽 돌리며 나무를 주었다.

바위의 중둥허리는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에서 열기가 확확 내풍겼다.

그제야 장쇠는 바위아구리에 소랭이를 들이댔다. 조금 있느라니 강한 열기에 물처럼 묽어진 꿀이 소랭이에 줄지어 쏟아져내리는것이였다.

벌에 쏘인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건 가뭇 잊고 두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러댔다. 어떤 애들은 흥분을 이길수 없어 깡충깡충 뜀질을 하기도 했다. 꿀은 두소랭이를 채웠다.

좀 동안을 두었다가 벌집이라 할수 있는 밀랍으로 된 벌개가 묵직하게 툴렁 세번째 소랭이안에 떨어졌다. 벌개가 어찌나 큰지 소랭이가녁으로 줄줄 흘러내리려 했다.

장쇠는 막대기를 들고 옆으로 쏟아지려는 밀랍을 날쌔게 네번째 소랭이에 옮겼다. 장쇠는 막대기로 바위아구리를 긁었다. 그러자 막혀 내려오지 못하던 밀랍들이 네번째 소랭이에 무겁게 떨어져내렸다.

아이들의 기쁨은 하늘끝에 닿았다.

그들은 꿀소랭이를 번갈아들며 아동단병실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꿀이 옆으로 흘러내릴가봐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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