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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회


제5장 대오는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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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우에 둥실 솟은 아침해가 양지받이인 아동단병실에 밝은 빛을 함뿍 뿌려주었다.

큰 뙤창을 두개나 해단 병실안은 바깥처럼 환했다.

처녀애들이 든 방쪽에 자그마한 칠판이 달렸고 남자아이들이 사는 넓은 방에 세개의 키낮은 긴상이 칠판을 향해 가로놓였다. 그 상들에 애들이 갈라앉아 칠판쪽에 눈을 주고있다.

오늘부터 아동단학교의 수업이 시작된다.

칠판앞에는 보통키에 몸이 가늘고 얼굴빛이 맑고 갸름하게 생긴 곽찬수선생이 서서 신입생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냈다.

아이들은 수준에 따라 1조, 2조, 3조로 갈랐다.

곽선생은 매 아이에게 학습장 3권과 연필 4자루씩 나누어주었다. 우리글을 처음 배우게 되는 애들에게 자모표를 등사기로 찍어 갈라주었다.

아이들은 벙글벙글 솟아오르는 웃음을 건사하지 못했다.

아동단학교는 아동단병실이 지어짐과 함께 열어야 했을것이다.

그런데 칠판과 아이들이 마주앉을 긴상이 걸렸다.

통나무로 틀을 세우고 그우에 켤 나무를 눕힌 다음 사람이 아래우에 서서 긴 틀톱을 마주잡고 밀거니당기거니 하며 널을 한장한장 켜야 했다.

온 골안에 집짓기바람이 터졌으니 아동단에 줄 칠판과 긴상은 여직껏 밀렸던것이다.

아동단학교 1조에 속한 강진혁은 맨 뒤상에 앉았다. 그는 입이 쓰겁다는듯 눈길을 넌지시 옆바람벽에 돌렸다.

내가 여기서 뭘 배운단 말이야 하는 식으로 까막눈이라 여겨지는 애들속에 끼인게 창피스럽기만 했다.

글을 전혀 모르다나니 3조에 끼인 길장쇠는 칠판가까이의 앞상에 끼여앉았다. 입이 부르터올라있었다.

(공부? 그건 해서 뭘해?)

그는 당장 방에서 뛰쳐나가고싶었다. 그러나 처음보는 선생이 엄엄해서 엉치가 쐈으나 참고 견뎠다.

길장쇠의 옆에 앉은 박귀남은 마음이 그냥 들떴다.

(야, 공부!)

마을에 야학이 있었지만 넘겨다볼수조차 없는 아슬한 담장너머였다.

곽찬수선생은 목소리가 가는편이지만 말하는데 따라 흥분이 실리고 나중에는 불을 뿜는듯싶었다.

선생은 웃으며 첫 말을 뗐다.

《저는 수업을 물음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학생동무들, 우리는 지금 장재촌유격근거지에서 생활하고있습니다. 우리 연길현에 유격근거지가 몇군데 있는지 압니까? 아는대로 대답해보십시오.》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옆의 아이도 돌아본다.

한 아이가 《옛!》 하고 손을 들었다.

선생은 그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일어나서 대답해보십시오.》

그애는 무척 덤비는 성미같았다.

《저… 저…》

한참 갑자르다가 대답을 했다.

《삼도만… 거기에도 있는것 같습니다.》

한 애는 너무 조급해서 앉은채로 소리쳤다.

《왕우구에도 있습니다.》

옆의 아이가 가로챘다.

《아니야, 고성촌이야.》

먼저 말한 애가 지려 하지 않았다.

《고성촌일게 뭐야, 왕우구야. 내가 알지 네가 아니?》

이렇게 되여 방안의 정숙이 깨여지고말았다.

그러나 곽선생은 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애들이 다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모두 옳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현에만 해도 다섯군데에 유격구가 일떠서고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유격구가 생길것입니다.》

선생은 말을 이었다.

《그럼 또 물읍시다. 우리 연길현처럼 유격구가 생긴 현이 몇인지 압니까?》

아이들은 눈을 꺼벅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강진혁은 귀가 조금 당겼다. 그는 장재촌에만 유격근거지가 선줄 알았다. 그런데 연길현의 다른 곳에도 유격구가 일떠서고 또 다른 현에도 생겼다고 하지 않는가.

곽선생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구체적으로 어느곳이란건 밝히지 않겠습니다. 좌우간 우리 나라 가까이의 모든 현에 여기처럼 수많은 유격구가 일떠서고있습니다.》

《야!》

아이들은 저도모르게 감동의 합창을 했다.

그때 연길현은 말할것 없고 화룡현, 안도현, 왕청현, 훈춘현… 두만강연안의 넓디넓은 지대에 근거지의 숲이 펼쳐지고있었던것이다.

애들의 별눈은 계속 빛났다.

몸에 조선사람의 피가 흐르고있는 강진혁도 차츰 귀를 기울이게 되였다. 이제까지의 근거지생활이 조국에 대한 애정의 눈을 띄워주기도 했던것이다.

길장쇠도 귀담아들었다. 아버지가 외따른 깊은 골에서 한발자국도 내짚으려 하지 않던 까닭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박귀남은 생글생글 웃음을 날렸다. 그는 근거지에 들어오자마자 제가 올 곳이라는걸 깨달았던것이다.

곽찬수선생은 종이를 한장 펴들었다. 그는 정중한 자세를 지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아동단학교 개교식에도 몸소 참석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아동단원들에게 하신 말씀의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선생의 본을 따라 몸을 방정히 가졌다.

선생이 전하는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이 따스한 온기마냥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너희들은 우리 조국의 꽃봉오리이며 앞날의 기둥이다. 너희들이 명랑할 때 우리도 명랑하고 너희들이 잘 자라면 우리도 기운이 솟는다. 어떠한 고난속에서도 실망과 비관이 없이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어서어서 커서 조국의 훌륭한 역군이 되여야 한다.…

이제껏 곽선생의 말을 온 정신을 기울여 듣고있던 김기송동지가 벌떡 일어나며 손이 터지게 박수를 쳤다.

기송동지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얼마나 위대한분이신가를 가슴뜨겁게 느꼈다.

다른 애들도 일어나 손벽을 요란히 치며 김일성장군님의 사랑과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아동단학교의 수업이 시작된지 며칠이 지났다.

공부가 끝나자 아이들을 헤쳐 내보낸 곽찬수선생이 김기송동지를 불러 각근히 일렀다.

《장쇠 그애가 공부하기 무척 힘들어하는구나. 네가 시간을 내서 그애한테 가갸부터 배워주렴.》

《예, 알겠습니다.》

기송동지의 대답은 흔연했다. 선생의 일이라면 성의껏 도와주고싶었다.

곽선생의 아버지는 크지 않은 거리에서 습자소를 세우고 애들에게 천자문과 붓글 쓰는 법을 배워주었다.

점잖은 아버지는 학부형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걸 보며 자란 곽선생은 중학교를 졸업하자 사립학교인 개량사숙의 교원으로 들어갔다.

명월구에 그의 동창생이 있었는데 그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지도하신 명월구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이다. 그 동창생의 영향을 받으며 곽선생은 개량사숙이 해산된 후에도 야학이랑 열며 혁명투쟁의 길에 나섰던것이다.

그는 몸이 좀 약했다. 겨울이면 잔기침을 깇군 했는데 오고가는 감기가 그를 놓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지가 강했다.

장재촌에 들어온 다음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축갔다.

근거지에서 제기되는 선전사업, 삐라와 격문을 뿌리는 조직사업까지 맡은데다가 안해를 잃다보니 합숙신세를 지게 되였기때문이다.

이제는 오전 한겻 아동단학교에 나와 수업을 해야 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김기송동지는 길장쇠를 데리고 방 한구석을 차지했다.

공부하려고 한다는것을 안 장쇠의 눈에 벌써 겁기가 어렸다.

기송동지는 우리말 자모의 표상을 쉽게 가지게 하려고 이런 말을 시작했다.

《장쇠야, 〈ㄱ〉자는 쳐든 낫이라고 생각하면 돼. 〈ㄴ〉자는 낫을 드리운것과 같구. 〈ㄷ〉자는 뭐라 할가. 개가 입을 벌린것과 같지.》

장쇠는 머리를 짓숙였다. 들을수록 머리속이 헝클어지기만 하는것 같았다.

자음중에서 다섯개를 따라외우게 한 기송동지는 그의 마음을 누그러주려고 애쓰며 학습장에 《ㄱ》자를 써보라고 했다.

장쇠는 마지못해 학습장을 앞에 펴놓고 연필을 쥐였다.

기송동지는 곽선생이 나누어주었던 자모표에서 《ㄱ》자를 손끝으로 짚어보였다.

장쇠는 암담한듯 한숨을 그었다. 그러더니 뜻밖에 연필을 학습장에 꼿꼿이 박고 학습장을 빙빙 돌리며 《ㄱ》자의 모양을 그리는것이였다.

기송동지는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차근차근 대주었다.

《장쇠야, 학습장을 돌려 글을 쓰는 법은 없어. 연필로 학습장에 글을 써야지.》

장쇠는 불끈해서 맞섰다.

《연필이 움직이지 않는걸 어떻게 해? 자꾸 쇠꼬치처럼 꼿꼿해지기만 한단 말이야.》

기송동지는 막막했다.

(이애한테 어떻게 글을 배워줄가?)

그러나 참을성있게 글을 배워주느라 했다. 장쇠는 눈을 희번뜩이더니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뛰쳐나가고말았다.

제식훈련시간이 되자 모두 운동장에 줄지어 섰다.

제식훈련은 군사훈련의 《제1절》이라 할수 있다. 애들에게 탄력과 절도, 일치성과 규률성을 키워주는 아주 중요한 훈련이다.

김기송동지는 아동단병실이 일떠서자 이어 애들에게 이 훈련을 시켰다. 닷새동안 유격대에서 한 대원이 나와 배워주기도 했다.

기송동지는 근거지의 아동단은 유격대《양성소》라고도 생각했다. 하기에 제식훈련을 하루도 번지지 않았다.

이제는 애들이 발도 힘있게 쳐들고 줄도 곧잘 맞추었다.

기송동지는 옆에 서서 신호나팔로 행진곡을 불어주었다. 그러면 애들은 발을 더 높이 쳐들고 팔도 더 힘껏 휘저었다.

그런데 길장쇠는 첫날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발은 꽤 높이 쳐드는데 왼발과 함께 왼팔을, 오른발과 함께 오른팔을 쳐드는것이였다.

기송동지는 나팔을 입에서 떼고 소리쳤다.

《장쇠동무!》

고집스러운 버릇을 고치라는 신호이다.

그러나 길장쇠는 못들은듯 한본새로 행진하는것이였다.

애들속에서 키드득 웃음소리가 터졌다.

강진혁은 입을 비죽거렸다.

(야만!)

길장쇠는 대렬에서 훌쩍 빠져나와 산으로 올리뛰였다.

기송동지가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기를 쓰고 올리뛰기만 했다.

그런데 저녁시간이 가까와오는데도 길장쇠는 나타나지 않았다.

짬시간만 있으면 눈치를 보다가 사라지기 잘하는 강진혁은 병실로 돌아왔다.

단고기로 매일 살다싶이 한 그는 늘 허기를 느꼈다.

그래서 남몰래 산에 붙어 머루며 다래, 돌배를 따먹군 했다.

가는 곳마다에서 길장쇠와 맞다들군 했다.

나무를 먼저 차지한 길장쇠는 강진혁이 옆에 얼씬 못하게 눈을 부라렸다. 누구한테도 속을 주지 않고 제 울타리속에서만 사는 그였다.

강진혁은 《야만같은게.》 하며 입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다른 나무를 찾아 헤매여야 했다.

조금전에도 가래나무를 터는 길장쇠를 띄여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휘둘러대던 막대기를 겨누어 던질지도 몰라 따로 돌아다니다 돌아온것이다.

길장쇠에 대해 늘 좋지 못한 감정인 강진혁은 그가 아직 병실에 돌아오지 않은것을 알고 분단장에게 알리고싶어 입빠른 애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이어 김기송동지는 전체 분단원들을 동원해서 가래나무가 우거진 산으로 밟아올라갔다. 병기창에서 만들어준 낫과 삽을 모두 들게 했다.

수십그루나 되는 가래나무는 김기송동지가 이미전부터 점찍어두었던것이다.

가래열매는 제창 먹을수 없다. 속열매를 둘러싼 시퍼런 껍질이 두텁고 또 그걸 까느라면 손이 시꺼매진다.

땅에 묻어 봄을 맞으면 껍질은 벗겨지고 투둘하고 돌같이 딴딴한 속열매는 움이 트면서 뾰족한쪽이 버그러진다. 그걸 손으로 쪼개면 두텁고 노란 속살이 빠져나온다. 그 속살은 온통 기름투성이이다.

이 근방에 있는 가래를 몽땅 털면 굉장한 기름을 얻을수 있었다. 그거면 아동단병실에서 충분히 쓰고 유격대식당에도 갖다줄수 있었다. 그래서 수십그루의 가래나무에 눈독을 들이고있었는데 길장쇠가 선손을 쓴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산에 오르며 길장쇠에 대해 두루 생각을 굴렸다.

(그애의 자유주의를 그냥두면 안되겠어. 성격검토회에 내세워야지.)

김기송동지는 요즘 소리치는 버릇이 많이 가셔졌다. 김정숙동지께서 몇번 더 타일러주셨기때문이다.

그러나 장쇠의 경우는 성격이 달랐다. 군대로 키우는 아동단인것만큼 엄격한 규률이 필요했다. 그 엄격성에 뜨거운 사랑과 강한 깨우침이 깔린다면 문제될것이 없었다.

한편 동무들이 우르르 올라오는것을 본 장쇠는 높은 나무에서 툴렁 떨어져내렸다. 눈을 어디다 건사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는 두그루의 나무에서 가래를 털다가 들킨것이다.

김기송동지는 불끈 솟아오르는 분을 누르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기송동지는 장쇠를 본체도 않으며 동무들에게 명령했다.

《이 근방의 가래를 몽땅 따야겠어. 기름을 짜서 먹어야겠단 말이야. 모두 한나무씩 맡아라. 낫으로 베여 긴 몽둥이를 만들고… 분단 앞으로!》

아이들은 긴 몽둥이를 만들어들고 모든 가래나무에 기여올라갔다. 가래를 조겨서 떨구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길장쇠는 기가 죽어 먼발치로 물러섰다.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 몰라 눈만 데룩데룩 굴렸다.

잡도리를 보니 가래를 모조리 따 한구뎅이에 묻으려는것 같았다. 제가 딴 가래도 그속에 묻힌다고 생각하니 속이 알찌근했다.

분단장이 말은 안하지만 자기를 단단히 벼르는것 같았다.

가래를 깊고 넓은 구뎅이에 묻은 애들은 기송동지를 따라 산을 내렸다. 장쇠도 조금 처져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날밤 아동단병실에서는 길장쇠의 그새 생활을 놓고 성격검토회가 열렸다. 장쇠는 세찬 비판의 소나기에 싸였다.

길장쇠는 오래도록 잠들수 없었다.

호된 마치에 연방 얻어맞은듯 머리속이 욱신욱신 쑤시고 귀에서는 하늬바람이 불어쳤다.

그는 겁이 더럭 났다. 난생처음 동무들의 맵짠 비판속에 휘말려들었던것이다.

그는 모임의 마감에 김기송동지가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숙이였던 머리를 더 낮추 떨구었다.

그는 생각할수록 분이 치밀어올랐다.

(뭐? 내가 욕심쟁이곰이야?)

한 애가 그렇게 비판했던것이다.

애들이 하던 말이 한데 엉켜 머리속에서 맴돌이쳤다.

그중에서도 분단장 김기송동지가 한 말이 제일 두드러지며 명치를 아프게 찔렀다.

안타까움에 넘친 말이였으나 그의 비위는 왈칵 뒤집혔다.

《길장쇠동무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여섯명의 식구를 왜놈들이 죽였다고 그 원쑤만 갚으면 된단 말입니까? 왜놈들은 우리 온 민족의 원쑤입니다. 그렇게 넓게 생각해야지요.》

길장쇠는 속으로 두덜댔다.

(그런걸 내가 알아선 뭘해? 나는 왜놈 여섯만 죽이면 된단 말이야.)

김기송동지의 말이 이어졌었다.

《장쇠동무는 공부도 필요없대, 훈련도 필요없대… 왜놈들은 머저리인것 같습니까? 군사훈련을 실컷 받은 놈들이란 말입니다. 그런 놈들을 총 한자루만 있으면 넉근히 잡을수 있을것 같습니까?》

길장쇠는 베개를 고쳐 베며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너와 나는 다르단 말이야. 나는 총을 본때나게 쏴. 너는 줴보지도 못했지만. 목을 지키고있느라면 왜놈들의 무리가 다가오거든. 그때 한방만 갈기면 네댓은 꿰창을 낼수 있어. 한방만 더 갈기면 원쑤를 다 갚거든. 너는 제 수준과 내 수준을 같게 본단 말이야.)

길장쇠는 김기송동지의 다음말을 생각하자 흥분해 벌떡 일어나고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길장쇠동무는 분단의 분위기를 몽땅 흐려놓고있습니다. 눈치를 보다간 어딘가로 사라지고. 동무를 찾아다닌 일이 몇번이나 됩니까? 그렇게도 규률이 싫습니까?》

길장쇠는 이불을 당겨덮으며 속으로 맞받아 소리쳤다.

(그러게 내가 여기 있겠다는거야? 중대장한테 끌려 괜히 여기 들어왔어. 그렇잖음 벌써 원쑤를 다 갚았을건데.)

그때 김학철중대장이 《도망치지 말아!》 하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건 귀밖에 던진지도 오랬다.

그런데 이젠 가을이다. 밖에서 자는것이 힘들게 되였다.

할수없이 여기 눌러있어야겠는데 동무들이 모두 자기를 우습게 보는것 같아 속이 바글바글 끓어번졌다.

언뜻 떠오르는 그럴듯한 생각에 그는 속으로 무릎을 쳤다. 그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그는 그새 몸을 다듬다보니 얼굴의 본색이 맑게 드러났다. 그는 낯색이 맑고 투실투실하게 생긴게 사내다왔다.

그는 사람들의 세계보다 짐승들의 세계에 더 밝았다.

짐승들은 맞갖잖으면 마주붙어 싸움질을 하는데 진 짐승은 그다음부터 이긴 짐승앞에서 꼼짝을 못한다. 뒤걸음치며 설설 긴다.

저도 힘내기로 아이들을 눌러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둘러봐야 자기를 당할 애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분단장을 힘으로 눌러 꼼짝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애들도 제가 무서워 허술히 대하지 못할것이다.

분단장은 자신있다. 돌려맺히고 다부지게 생겼지만 체격은 자기보다 작다.

그제야 길장쇠는 입가에 느슨히 웃음을 피우고 마음편히 잠들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체조가 끝났을 때 길장쇠는 김기송동지의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을 던졌다.

《분단장, 나하구 힘내기를 하자.》

《그건 왜?》

기송동지는 영문을 알수 없어 눈을 깜빡거렸다.

장쇠는 다그어대듯 말을 이었다.

《글쎄 해보자구. 네가 나한테 지면 마음대로 다룰수 없다는걸 알아야 한단 말이야.》

기송동지는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니 힘으로 기를 꺾으려드는것이다.

담이 큰 기송동지는 선뜻 응했다.

《하자!》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장쇠는 와락 덮쳐들며 기송동지의 이마를 지끈 받았다. 기송동지의 눈에서 불찌가 펑끗 일었다.

숨돌릴틈없이 장쇠는 두어깨로 기송동지의 어깨를 들이쳤다. 마음의 차비가 되여있지 않던 기송동지는 뒤로 넘어졌다.

《어때?》

장쇠는 허리에 두팔을 얹고 으시대듯 배를 내밀었다.

흩어지던 분단원들이 몰켜왔다. 그들은 기송동지가 넘어진것을 보고 아수함을 견디지 못했다.

한 애가 장쇠를 향해 이죽거렸다.

《장쇠야, 너는 소싸움을 하자는게니?》

《그렇다.》

장쇠가 서슴없이 맞받았다.

그제야 모든걸 깨달은 기송동지가 애써 웃음지으며 말했다.

《장쇠야, 우리는 사람이니 씨름을 하자. 소싸움이 아니라 씨름을 말이야.》

《씨름이란게 뭐야?》

《넌 그것두 모르니?》

《좋아, 아무거나 하자. 나는 자신있어.》

장쇠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샅바가 없으니 민둥씨름을 할수밖에 없었다.

서로 상대방의 허리띠를 조여잡았다.

기송동지는 마을에서 애기씨름의 도장수라 할수 있었다.

손수, 다리수, 몸통수… 그에 따르는 무릎걸이, 안걸이, 빗장걸이, 돌림배지기 등 여러가지 씨름수를 다 알고있었다.

장쇠는 허리띠를 조여쥐고서도 머리받기와 어깨밀이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이마를 호되게 맞았던 기송동지는 날쌔게 머리를 피하군 했다.

그러다나니 장쇠는 헛머리질만 자꾸 했다. 기송동지는 함께 어깨겨눔을 하는듯한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날쌔게 낮추 꿇어앉으며 두팔로 장쇠의 무르팍을 앞으로 홱 당겼다. 다리에는 전혀 힘을 주지 않고있던 장쇠는 무릎이 푹 꺾이면서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둘러싸고 구경하던 분단원들은 너무 통쾌해 깡충깡충 뜀질을 했다.

《다시 하자!》

장쇠는 네번이나 덤벼들었으나 밑에 깔리고 후려던져지고 하면서 지기만 했다.

얼굴에 불화로를 들쓴 장쇠는 병실모퉁이로 몸을 사렸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에, 이젠 꼼짝달싹 못하고 따라다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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