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2 회


제4장 아동단 앞으로!


2


아동단병실은 번듯하게 일떠섰다. 자그마한 처녀애들 방, 널직한 사내애들 방, 부엌, 그다음 식모방으로 이루어졌다.

방바닥에는 하얀 구름노전을 깔았다. 노전은 갈, 조짚, 수수대로도 겯지만 구름노전이 그중 탐탁하고 질기다.

장난 드센 애들이 살 집이니 질긴 구름노전을 깔아야 한다며 피난온 로인들이 살결 부드러운 구름나무들을 베다가 구름칼로 얇고 일매지게 곧은 오리들을 도려내여 삿자리를 꾸렸던것이다.

요즘 피난온 로인들이 여기저기에 《노전공장》을 꾸렸다. 새로 일어서는 집들의 노전은 저들이 맡겠다는것이다.

아동단병실앞에는 널직한 운동장이 꾸려졌다. 언덕졌던 풀밭을 김기송동지가 동무들을 휘몰아 고르롭게 편것이다. 그우에 강에서 모래도 져다가 깔았다. 진흙밭이여서 비올 때 신발에 진흙이 묻을수 있기때문이였다.

그저께 애들은 아동단병실에 들었다.

오늘은 아동단입단식을 하는 날이다.

애들은 모두 광목에 퍼런 가둑나무물을 들인 새옷을 입었다. 군대식으로 닫긴깃이다.

유격구에서 해입힌 새옷이 애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강진혁을 내놓고는 이런 옷을 입어본 애가 없는것이다.

애들은 새로 닦은 운동장에서 서성대고있었다.

구공청에서 와야 아동단입단식을 하게 된다.

애들은 제가 입은 옷을 둘러살피느라 분주했다.

옷소매와 바지가랭이가 긴것은 어제 다 고쳐왔다. 피난온 녀인들이 스스로 《재봉대》를 무었던것이다.

애들속에 끼여섰던 김기송동지는 저만치 외따로 서있는 박귀남에게 눈이 갔다. 식모방옆에 박우물을 새로 팠다. 그 박우물둘레에서 박귀남이 빙빙 돌고있는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박귀남은 박우물에 비친 제 얼굴이며 몸맵시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없었다. 아직 해가 높이 뜨지 않은 때라 박우물안은 어둑했다. 그러니 어디 서야 제 모습을 더 뚜렷이 볼가 해서 박귀남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던것이다.

《키드득…》

기송동지는 밝은 웃음을 터쳤다.

그 소리에 귀남의 어깨는 한길이나 솟고 겁을 담은 눈은 보시기만큼 커졌다.

기송동지는 명치끝이 찌르르 찢겨왔다. 웃었던 일도 뉘우쳐졌다.

지주집에 요란한 거울도 많았겠지만 귀남이에게는 물이 곧 거울이였다.

워낙 곱게 생긴데다 새옷을 차려입으니 부자집 도련님들을 찜쪄먹을것 같았다. 유격대식당에 있을 때 대원들이 기상해서 강에 나가 몸을 닦는걸 보고 기송동지는 동무들도 강에 나가 세면도 하고 목욕도 하게 했다.

옷입기 전날 다시 온몸을 깨끗이 닦게 했더니 진득진득하던 촌때는 말끔히 가셔졌다.

김기송동지는 귀남의 마음을 누긋이 풀어주려고 말을 건넸다.

《내가 죽심이나 란희한테서 손거울을 빌려주지.… 한번 멋진 옷맵시를 들여다봐라.》

그러면서 입에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박귀남은 몸의 긴장을 풀지 못하고 머리를 푹 틀어박았다.

기송동지는 안타까왔다.

(언제 가야 애가 기를 쭉 펼가?)

운동장으로 민성기구공청비서와 곽찬수선생이 들어섰다.

김기송동지는 눈이 커졌다.

그뒤로 김정숙동지께서 따라오시였던것이다.

장재촌에 들어온 다음 몇번밖에 만나보지 못한 김정숙동지였다. 늘쌍 적후의 지하조직을 찾아다니시였기때문이다.

김기송동지의 구령에 따라 애들은 아동단병실앞에 두줄로 가로 늘어섰다. 두 처녀애는 맨끝에 붙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 아이들앞에 나서시였다.

애들은 잠시 술렁거렸다. 하촌애들이 반가움에 넘쳐 김정숙동지를 모르는 애들에게 기송동지의 누님이라는걸 속살거렸기때문이다.

(야, 쎄구나. 대장의 누나는 무슨 일을 하나?)

처음보는 애들은 이런 생각도 굴렸다.

김정숙동지께서 침착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아동단선서모임을 하겠습니다. 구공청비서동지가 한 조목씩 읽으면 따라 외우십시오.》

얼굴에 웃음기가 넘치는 민성기구공청비서가 종이장을 들고 애들앞에 나섰다.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선서!》

애들은 뒤따라 힘차게 받았다.

《선서!…》

선서모임이 끝났을 때 구공청비서는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동무들은 이제부터 장재촌아동단 아동단원들입니다.》

아동단원들은 가슴이 뻐근해왔다.

구공청비서는 말을 이었다.

《다음은 아동단 분단장을 선거하겠습니다. 어느 동무를 선출하면 좋겠습니까?》

민성기구공청비서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한 애가 번쩍 손을 쳐들었다. 다른데서 먼저 들어왔던 애다. 그의 목소리는 챙챙했다.

《김기송동무를 추천합니다.》

아이들은 거의 모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그러나 강진혁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김기송동지가 아래로 내려가면 어떤가고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꺾쇠처럼 박혀있었다.

병풍추렴을 하다가 기송동지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애들도 눈을 어데 건사할지 몰라했다.

《분단장으로 다른 동무를 또 추천해도 됩니다. 더 가당한 동무가 없습니까?》

민성기구공청비서가 물었으나 애들은 옆아이에게 눈을 보낼뿐 손을 더 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대체로 기송동지한테 아이들의 마음이 쏠리고있음을 깨달은 구공청비서는 다음순서로 넘어갔다.

《그럼 김기송동무를 분단장으로 선거하는데 찬성하는 동무들은 손을 드십시오.》

아이들은 흔연한 표정으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강진혁이와 병풍추렴패들은 마지못해 손을 쳐들었다.

민성기구공청비서는 결론하듯 말했다.

《장재촌아동단 분단장으로는 김기송동무가 선출되였습니다. 앞으로 아동단생활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구공청비서는 뒤에 곽찬수선생과 나란히 서있는 김정숙동지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오라는 눈시늉을 해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음을 띠시며 구공청비서의 옆에 나와서시였다.

민성기구공청비서는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띄웠다.

《김정숙동무가 우리 구공청의 아동단책임자로 사업하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혁명정부와의 합의하에 곽찬수선생님이 아동단학교 교원으로 임명되였습니다.》

뒤에 홀로 서있던 곽찬수선생이 아이들을 향해 머리를 겸손히 숙여보였다.

하촌아이들은 너무 기뻐 박수를 쳐댔다. 기송동지도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고 요란스레 손벽을 쳤다.

기송동지는 누나가 구공청의 아동단책임자로 된게 더없이 자랑스러웠고 하촌애들은 그토록 정을 끌던 김정숙동지의 지도를 받게 된것이 한량없이 기뻤다. 게다가 존경심만 자아내던 곽찬수선생이 자기들을 배워준다니 경사에 경사가 겹친셈이다.

기쁨의 새는 기송동지와 애들의 가슴팍으로 훨훨 날아들었다.


아동단입단식을 마치고 구공청으로 향하시는 김정숙동지의 걸음은 무거웠다.

분단장을 선거할 때 마지못해 손을 들던 애들의 모습이 앞에 막아섰다.

구공청비서가 다른 일이 있어 인츰 갈라져 김정숙동지께서는 혼자 산기슭의 초막에 들어서시였다. 구공청도 미처 집을 짓지 못하고 살았다.

마침 모두 나가 초막안은 호젓했다.

갈을 베다 깐 자리에 앉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동생이 어떻게 일했을가? 왜 반대하는 애들이 대여섯이나 될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에 서계셨으니 매 아이의 표정을 살필수 있었다. 엉거주춤이 손을 드는건 반대의 뜻과 다름없었다.

소탈하고 인정깊은 최춘도회장은 두번이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동생을 칭찬했다.

말이 적고 무게가 풍기는 김학철중대장도 《동생이 괜찮아.》 하면서 어깨를 가벼이 건드렸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이 동무들속에서 인기가 대단한줄 아셨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렇지 않았다.

(뭐가 동무들과 엇나게 할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친동생이니 기송동지를 잘 아셨다.

남자답게 배짱스러운데도 있었으나 집안의 막내로 사랑을 독차지하다보니 투정을 잘 부리고 밸도 쓴다.

거침없는 성미가 탈을 낸게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냥 앉아계실수 없었다. 빨리 가서 알아봐야 한다. 흠이 자라기 전에 꼭지를 잘라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동단병실로 향하시였다. 구공청 아동단책임자이니 아동단에 찾아가는것은 잘못될것이 없다.

사내애들은 귀틀집의 도리와 갈지붕사이의 틈새기에 바람이 들지 않게 흙을 다져넣느라, 남은 통나무를 올려쌓고 그우에 올라 일하느라 김정숙동지께서 다가오시는것도 몰랐다. 그속에 기송동지도 끼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 그리로 바투 다가가시였다.

기송동지는 김정숙동지를 알아보았다. 깍듯이 인사를 차려야겠으나 어쩐지 어색해 빙그레 웃음만 그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좀 실무적인 어조로 말을 건네시였다.

《동무들을 좀 만나볼수 있어요?》

《예, 그렇게 하십시오.》

이제는 누나가 구공청 아동단책임자이기에 존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것이다.

《누구를 만나시겠습니까?》

《아무나 좋아요.》

김기송동지는 눈을 꺼먹거리더니 하촌에서 온 한 애를 짚었다. 그애는 박우물에 가서 손을 씻고 아동단병실에 들어갔다. 김정숙동지께서 먼저 방에 들어가 앉아계시였다.

하촌에서 함께 지냈던 그애는 히죽히죽 웃으며 기송동지의 좋은 점만 늘어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좀 깔끔한 표정을 지어보이시였다.

《그런건 다 알아. 나쁜 점이 뭔지 말하란 말이다.》

《야, 꾸며서 말하겠어요? 그런건 하나도 없는데.》

이애한테서는 아무것도 들을게 없다고 생각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아까 선거할 때 머리를 떨구고 마지못해 손을 들던 애가 누구냐?》

《누굴가?》

그도 줄지어 섰댔으니 누가 그랬는지 알수 없었다. 그러다 피뜩 생각난듯 입을 열었다.

《아, 강진혁! 그애가 그랬을거예요.》

《그건 왜?》

《분단장이 아래로 내려가도 좋다고 했거든요.》

《그럼 근거지를 떠나라는거냐?》

《그럼요. 그애는 여기 있을 애가 못되요. 잘살던 집 애거든요. 일도 까딱 안하려 해요.》

그러니 분단장한테는 자그마한 잘못도 없다는 소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진혁의 집 래력과 그날에 벌어졌던 일을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그럼 그애를 좀 들여보내주렴.》

좀 있더니 강진혁이 방에 들어섰다.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기송동지의 친누이라는걸 알았다. 그러니 분단장과 꼭같은 말을 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우정 뻣뻣한 자세를 가졌다. 가라면 간다는 배짱이였다.

사실 그는 모욕의 말을 들은 그날로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갈데가 없었다.

그가 조양촌에 다시 나타나면 흑사병균을 몸에 품은 애가 나타났다며 온 거리가 들썩 끓을것이다.

그는 8도구에 몇번 가보았다. 거기에 가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남의 집 하인노릇이나 해야 할테지?

처음 박귀남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내 신세가 그렇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굴뚝연기같은 한숨이 뿜어졌다.

이어 다음생각에 그는 화들짝 몸을 떨었다. 8도구는 구정부가 자리잡은 곳이니 조양촌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

내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를 하인으로 두었던 집주인들은 사정없이 매를 안기며 천리밖으로 사라져라 할것이다.

부득불 다른 곳에 가서 하인자리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어릴 때의 눈은 제고장이 온 세상인것으로 본다. 다른 고장은 먼 세상으로 여긴다.

어디에 무슨 거리가 붙었는지 모르는 내가 딴데 가서 하인자리도 제대로 얻을가?

옆에서 박귀남이 울먹해서 그냥 보챘다.

《형, 가지 마. 가야 전의 내 신세가 돼. 여기가 난 마음에 들어. 기송인 팩하는건 있지만 뒤는 없는것 같애. 그다음 그런 말을 한적있어? 형도 일을 배웠으면 좋겠어.》

일을 하려면 옷만 털게 되는 진혁이였다. 한탄만 터졌다.

(내 신세가 가련하구나.)

그런데 그후로는 분단장이 내려가라고 다궂지 않아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며 그냥 눌러있는 진혁이다.

그런데 분단장의 누나인 구공청 아동단책임자가 자기를 부른다.

가라는 말을 하기 전에 할 소리는 다해야 한다.

목소리는 가야금줄처럼 떨렸다.

《저는 열성스레 칡줄기를 걷느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쉬였다고 당장 내려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억울합니다.》

그리고는 눈시울을 달구며 말을 급급히 이었다.

《아이들이야 콩이나 감자에 조금 손을 댈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큰일이나 난것처럼 소리를 높입니다. 처음 나타나자마자 뭡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참을성있게 마지막말까지 다 들어주시였다.

그리고는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선거때 마지못해 손을 든 동무들이 또 있지 않나요?》

《예, 있습니다.》

진혁은 그애들의 이름을 거침없이 외웠다. 그는 흘끔 곁눈질로 어느애들이 어떻게 손을 드는지 여겨봤던것이다.

《그 동무들을 다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한명씩 들어오게 해주세요.》

김기송동지는 그제야 알아챘다.

(체, 누나가 내 뒤를 캐누나.)

기송동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편 애들이 한명씩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왔다. 첫 애가 말했다.

《병풍밭을 만나기가 쉽습니까? 그래서 조금 쉬면서 먹었는데 어찌나 고함치는지 병풍줄기가 목에 걸릴번 했습니다.》

련이어 들어온 네 아이의 어조는 누긋이 갈앉았다.

《기송동무는 일욕심이 무섭습니다. 우에서 시키지 않는 일도 다 찾아하지요. 그러니 우리는 베찹니다. 장난에만 쏠렸던 우리가 그 일을 시원히 할수 있습니까? 그러니 안타까와 소리칩니다.》

《좀 곧은목인것 같습니다. 제 욕심대로 안되면 그냥 소리치거든요.》

《책임자동지가 친누나라는데 잘 타일러주십시오. 분단장을 할 애는 기송이밖에 없습니다.》

그애들은 기송동지한테 모난 반감을 품고 지내지 않았다. 병풍추렴을 하다가 혼뜨검 난 일도 잊은지 오랬다.

그런데 입단선서식을 하려고 구공청에서 나오기를 기다릴 때 강진혁이 그애들도 병풍사건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손을 들지 말라고 추겼던것이다.

그애들은 어정쩡한 기분에 싸여 손을 들 때 강진혁을 여겨보았다. 무척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진혁이 손을 들자 그애들도 어쩔가 망설이며 손을 들었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빈방에 혼자 앉으시여 생각에 잠기시였다.


강진혁은 잠을 제대로 잘수 없었다.

무척 단아한 용모에 정을 풍기던 구공청 아동단책임자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제가 할 소릴 다한게 저로서도 흐뭇했다.

그러나 피줄이란 무섭다. 래일쯤이면 혁명정부의 명령이 떨어질게다.

강진혁, 너는 여길 떠나라.

구공청 아동단책임자가 동생의 편을 들어 혁명정부에 제기할것이다.

(가라면 못갈줄 알아?)

진혁은 이런 배심을 세웠다.

그는 기송동지를 늘 낮추보려 했다.

그애는 개량사숙에 이어 야학이나 다녔다지?

나는 적어도 소학교 6학년생이야. 연길에 있는 중학교에 가려고 수업후면 과외반에 들어 중학교입학시험문제를 푸느라 밤늦도록 머리를 싸맸던 사람이다.

여기 모인 애들속에 야학을 다닌 애도 몇명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는 사각모를 쓰고 점잔을 빼는 대학생쯤으로 여기게 된 진혁이였다.

그는 기송동지가 자기를 아무런 주저도 없이 막돌 다루듯 하려는게 저으기 기분잡쳤다. 일을 어찌나 다몰아대는지 미처 따라서기 힘들었다. 진혁은 자기는 머리로 살려는 사람이지 궂은일로 살려는 사람은 아니라고 자처했다.

그런데 자기가 일할줄 모른다고 여간 언짢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분단장을 선출할 때 제발 딴애가 선거되기를 바랐다. 제 손바닥에 놓고 다룰수 있는 그런 애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뜻대로 될것 같지 않아 제일 허물없는 다섯아이에게 손을 들지 말라고 추겼다. 자기도 버젓이 손을 들려 안했지만 엄한 분위기에 눌려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진혁은 부모와 온 식솔을 잃고 원쑤갚을 생각만 하는 애들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조양촌거리에서 괜찮게 살고 어떻게 하면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가 하고 뛰는 가정의 분위기는 그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한편 김기송동지는 한 애의 귀띔에 기분이 흐려졌다.

《진혁이 그 애가 다른 애들보고 선거할 때 손을 들지 말라고 했어.》

《엉?!》

《내가 지나다가 들었어. 정말이야.》

(진혁이가 왜 그랬을가?)

얼핏 칡줄기를 거둘 때 《내려가는게 어때?》 하고 말했던 일이 머리에 번개쳤다.

하지만 그 일은 인츰 잊었다.

그런데 진혁은 죽으라는 말보다 가라는 말이 더 섧다고 지금껏 가슴깊이 그 말을 새기고있은것이다.

기송동지는 그런 말을 한 일이 뉘우쳐졌다. 한데 진혁이 그 말을 지금껏 보자기에 꽁꽁 싸들고있었다고 생각하니 쓴입만 다시였다.

김기송동지는 김정숙동지께서 여기 와서 여러 동무들을 만나신 일도 불안스러웠다. 그러나 담화한 애들한테 물어볼수도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 다음날 오후 아동단병실에 다시 나오시였다.

《분단장동무, 나 좀 만나자요.》

다른 동무들이 있는 앞이여서 공식적인 어투를 쓰시였다.

기송동지는 김정숙동지의 뒤를 따랐다.

이어 병실뒤의 야산 소나무그늘밑에 나란히 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러다가 나직이 물으시였다.

《기송아, 강진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기송동지는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묻는 뜻을 알수 없어 인츰 대답하지 않았다.

《그애를 내려보내야 하겠니?》

기송동지는 김정숙동지께로 얼굴을 돌리며 어성을 높였다.

《그앤 여기 있을 애가 아니야. 먹을데가 없으니 여기 들어왔어. 잘살던 집 애야. 혁명은 꼬물만큼도 생각 안하는 애야.》

기송동지는 말할수록 열이 올랐다. 일찌기 내려보내지 못한게 후회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볼샘을 더 깊이 파시였다.

《그래, 그애는 지주의 자식, 자본가의 자식이니?》

기송동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애를 내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더해갔다.

김정숙동지의 어조는 동생의 마음을 따뜻이 감싸주었다.

《너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모르는구나. 장군님께서는 애국적인 지주, 자본가, 종교인들까지 혁명의 길에 묶어세우고계셔.》

기송동지는 처음듣는 말에 눈이 덩둘해졌다.

《진혁이네는 자그마한 국밥집을 했어. 나도 대마록구에 가다가 그 집에서 점심을 먹었던 생각이 나. 그런 집도 혁명의 편에 끌지 못하면 어쩔테야. 그리고 그애는 부모없는 고아야.》

기송동지는 진혁이가 분단장선거때 꿍꿍이를 꾸민것을 김정숙동지께서 모르시는것 같아 그 말을 옮겼다.

김정숙동지께서 고개를 가벼이 끄덕이시였다.

《그렇게 된게구나. 그런걸 모르고 난 선거가 마음에 걸려 도루 왔던거야.》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나신 그이께서는 타이르듯 차근차근 말씀하시였다.

《너는 동무들을 업신여겨. 대장이라고 제 마음대로 주물려했거든.… 너는 제가 제일이라 생각해. 그래서 걸핏하면 소리를 치거든. 제 생각대로만 동무들을 몰아대려 했어.》

기송동지는 숨이 꺽꺽 막혀왔다.

누나가 원망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누난 달라졌어. 아동단책임자라고 아무렇게나 말해.)

김정숙동지의 꾸짖음은 계속되였다.

《김학철중대장을 보려마. 너희들이 그 식당에서 살았지만 욕을 한번 하는걸 들었어? 그래도 일이 잘된단 말이야.》

기송동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반발심이 솟구쳤다.

《누나, 어른과 아이들이 같아? 어른들은 말 한마디면 알아듣는단 말이야. 그러나 아이들은 장난에만 옴해. 그런 애들을 욕질하지 않고 일이 하나나 될것 같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런 동생에게 언짢은 눈길을 보내시였다. 하지만 어조를 누그리시였다.

《물론 어른과 아이들은 다르지. 그러나 사랑으로 동무들을 대해야 해. 어떤 동무들이야? 다같이 부모를 잃은 불쌍한 동무들이 아니야? 아직 나인 어리지만 왜놈 미워하는 마음은 산같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옆에 더 바투 다가앉으시였다.

《기송아, 나는 네가 일 잘한다는걸 안다. 그런 말을 남한테서 들을 때면 눈물까지 나. 너는 욕심스런 생각을 많이 해낸다더구나. 그 생각에 동무들을 무조건 다궂지 말고 먼저 떠오른 생각을 동무들의 의논에 붙여라. 그러면 더 좋은 생각이 보태질게구 그 일의 좋은 점을 깨달은 동무들은 열성스레 나설것이 아니냐? 깨닫고 하는 일과 까닭모르고 하는 일은 하늘과 땅차이야. 제 혼자 생각만 하고 동무들을 몰아대니 큰소리밖에 나올게 없지.》

김정숙동지의 일깨움은 차츰 기송동지의 들뛰던 가슴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앞서나가는 동무들이 있으면 적극 내세워줘라. 잘못하는 동무들이 있으면 조용히 알아듣게 일깨워도 주구. 욕으로 겁먹게 하는것보다 깊이 뉘우치게 하는게 더 좋은 약이야.》

김기송동지는 머리를 깊숙이 떨구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