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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제6장 고국의 령혼으로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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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의 외딴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동자질을 하는 소리며 마당가에서 나무를 패는 목가적인 정서가 고즈넉한 골안에 깃들었다.

퉁텅, 퉁텅-

어쩐지 마당가에서 울리는 나무패는 소리가 여물지 못했다.

부엌쪽으로 난 문이 살며시 열리며 금시까지 동자질에 여념이 없던 려은이가 마당으로 나섰다.

마당가에서 지남이가 통나무 하나를 붙들고 씨름질을 하고있었는데 온통 땀주머니가 된 그옆에 쌓아놓은것이란 마치도 애들이 장난삼아 두들겨놓은것 같은 나무가치들이 두어줌가량이나 될가?… 그나마도 손바닥만 한 도끼밥 같은것들뿐이였다.

마당가로 나서던 려은은 그것이 우스워 입을 싸쥐였다.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지남이 콩알같은 땀방울을 팔굽으로 뻑 훔치며 게면쩍게 웃었다.

려은이가 그에게 다가가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면서 말했다.

《당신은 꼭 호부자집 도련님같애요. 어쩜 이렇게 아무것도 할줄 모른담.》

지남은 사랑스런 려은이의 볼을 손으로 톡 튕겨주며 말했다.

《모르는 소리. 재간이 너무 많으면 살 재미가 적은 법이요. 이렇게 모르는걸 하나하나 배우면서 살아가는게 더 재미가 있다오. 허허.》

지남은 려은이에게 집옆을 가리켜보였다.

《내 이제 저 등성이를 모두 뚜져서 밭을 만들어 낟알을 심을테요. 거기서 거둔 낟알을 의병대에 보내주겠소. 그래서 비명에 횡사하신 당신 부친의 원한을 기어이 갚을테요.》

려은은 조용히 눈굽을 찍었다.

언제나 자기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고 왼심을 쓰는 지남이의 진정에 눈물이 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산에 나무짐을 지러 갔다가도 얼굴을 할퀴고 살가죽이 터지면서 다람쥐를 잡아가지고 달려내려와 혼자 있을 때 적적하지 않도록 마음써주었고 락엽에 묻힌 밤을 한알 찾아도 주머니에 넣었다가 자기의 손에 쥐여주군 한다.

아무리 힘들어 쓰러질 지경이 되여서도 려은이만 나타나면 그 모든 피로가 순간에 사라지듯 언제나 밝게 웃어만 주는 그였다.

그가 려은이에게 단 한번 성을 낸 일이 있었다.

그날 이른아침부터 늦은점심까지 화전을 일구고 돌아온 지남에게 밥상을 차려주고난 려은은 울고싶은 심정이 되여버렸다.

얼마전 지남이가 지게에 매달아 가지고 온 고등어가 한마리 남았는데 그것이 며칠째나 상우에 그냥 있었던것이다.

려은은 녀인의 륙감으로 지남이가 구운 고등어를 제일 좋아한다는것을 이미전에 느꼈다. 처음엔 고등어를 얼마나 맛나게 드는지 몰랐었다.

그러나 고등어가 점점 줄어들면서부터 그쪽으로 저가락이 잘 가지를 않더니만 마지막에 가서는 고등어에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고등어가 듬쑥하게 더 생겨나지 않는 한 그 마지막고등어는 몇달이 가도 없어질 잡도리가 아니였다.

려은은 그것이 자기를 위하는 지남의 마음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럴수록 힘들게 일하는 지남이의 밥상에 변변한 찬 한가지 올려놓을수 없는것이 가슴이 미여지도록 안타까왔다.

지남이는 려은이가 해준것이면 아무것이나 다 맛이 있다며 쓴 나물을 우려 만들어놓은 밥찬일지라도 말끔히 없애주군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려은이라고 어찌 모르랴. 여직껏 어머니없이 자란 자기가 애처롭다고 부엌문가에도 나서지 못하게 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어 려은은 어느 한번도 제손으로 찬거리를 만들어보지를 못했었다.

그저 어멈이 하는것을 눈으로 본것이 있어 외워두기는 했었지만 그나마도 비교적 괜찮은 찬감들이 있는 경우에나 해볼 용기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 골안에 들어와 한성에서 보지도 못하던것이 태반인 이름도 모를 산나물만을 가지고 찬을 만들자니 우선 방법도 알수 없었거니와 또 안다고 해도 모든것이 바른 이 산골에서 감칠맛이 나게 만들어낼수가 없었다.

음식을 만드는 자기도 맛보기가 역스러운 찬을 지남이는 쓰단 말 한마디 없이 달게 들었다.

그러한 지남이가 고마울수록 려은이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의 구미에 맞는 찬거리를 만들어 상에 올려놔주고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집에 닭이라도 한마리 있다면 밥상에 닭알부침이라도 올려놓을수 있으련만…

그래서 궁리하던 려은은 피뜩 지남이가 여기로 처음 왔을 때 잠간사이에 식량과 찬거리들을 한지게나 지고 온 생각이 들었다.

지남이 걸음으로 걸린 시간을 타산해보니 아마 산고개를 두어개쯤 넘어서면 장거리 비슷한것이 나질듯싶었다. 그쯤한 거리는 자기의 아장아장한 걸음으로도 한나절품이면 얼마든지 한짐지고 돌아설것 같았다.

하여 려은이는 귀중품가운데서 돈이 나갈만 한것을 몇가지 골라가지고 집을 나서게 되였다.

그렇게 떠난 걸음이 가고가고 또 가도 끝이 나지 않았다.

집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려은이는 겁이 덜컥 났다.

그러나 지남에게 단 한가지의 찬이라도 해주려는 마음으로 가슴을 콩콩 두드리는 겁기를 애써 누르며 산속의 풀덤불과 잡관목을 헤쳐나갔다.

산등성이를 몇개나 넘고 골짜기도 몇개나 넘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처럼 듣고싶은 싸구려소리는 끝내 들을수가 없었다.

자기가 집으로 들어설수 있으리라고 속타산했던 저녁까지 산골의 오솔길에서 헤매이기만 하던 려은이는 어슬녘이 되여서야 황겁히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지금까지 오불꼬불 밟아온 길 아닌 길을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다.

이 산이 저 산 같고 이 길이 저 길 같았다. 게다가 산속에 어둠까지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정신없이 산속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태여나 지금껏 한성의 반반한 길바닥만을 밟아왔고 그나마도 아버지의 엄한 훈계로 밖에도 잘 나서지 않아 골목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란 려은은 오솔길도 나지 않은 잡관목사이를 마치도 미궁속에 빠져든듯 향방없이 헤매였다.

거기다가 어둠이 깃들자부터 여기저기서 울리는 맹수들의 울부짖음소리는 연약한 녀인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려은이는 자기의 집쪽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혼신의 힘을 모아 풀덤불이건 잡관목이건 마구 헤치며 달렸으나 낯익은 곳은 나지지 않았다. 이제는 맥이 진해 모든것을 포기하고 쓰러질무렵 먼곳에서 울리는 메아리가 들려왔다.

《려은이-》

려은은 울음으로 꽉 메인 소리를 힘껏 내질렀다.

《이보세요- 여기예요-》

그리고는 흑흑 흐느껴울었다.

지남이의 목소리를 멀리서나마 듣게 되니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지남이의 목소리는 계속 울렸다.

얼마나 부르고 찾았는지 꽉 갈린 목소리였다. 지남이가 나타났을 때 려은이는 너무 기뻐 그에게 막 달려갔다.

그러나 지남이의 성난 표정을 보고는 그앞에 미처 이르지도 못하고 서버리고말았다.

려은은 산속을 헤치느라 온통 할퀴고 찢겨진 지남이의 옷과 얼굴을 미안스럽게 바라보면서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찬거리가 너무 변변치 못해서… 전에 고등어랑 쌀이랑… 인츰 사오시드라니 장거리가 가까이 있으려니 해서 길을 나섰…》

지남이가 왈칵 성을 냈다.

《누가 당신더러 내 찬거리걱정을 해달랬소? 이 산속에서 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쩔번 했소. 응?》

어찌나 성이 났는지 지남이의 목소리는 몹시도 갈려있었다.

려은이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이 가랑가랑한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나야 당신의 안해가 아니나요. 안해가 그런 걱정도 못하면 살 재미가 어디 있겠어요.》

지남은 흐느낌소리를 내며 다가와 무릎을 꿇고 풀잎에 쓸려 피가 내배인 려은의 다리를 쓸어만졌다.

그리고는 갈린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고생이나 시키자고 이 산골에 데리고 온줄 아오? 당신이 이러면 난 당신앞에 죄를 진것으로 되고마오.》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하여 려은의 두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쳐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밝게 웃는 얼굴로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이 날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난 벌써 죽은 몸이든가 아니면 그 한성의 난봉군에게 치욕을 당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평생 내 은인이예요.》

지남은 려은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귀전에 대고 속삭였다.

《내 당신의 한을 기어이 풀어주겠소. 그 난봉군녀석도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거요.》

려은이는 지남이의 품속으로 더욱 깊이 안겨들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지남이는 항상 려은의 한을 자기의 한으로 생각했다. 그는 려은이가 일진회놈들에게 잘못된 아버지일을 상기할 때마다 무섭게 분노했고 가정의 불행을 당하고 자결하려던 날 밤에 난봉군에게 덮치워 새까만 창고에 갇히웠던 말을 할 때면 의연히 주먹을 한성쪽을 향해 휘두르면서 《내 그놈의 자식을 만나기만 하면 이 손으로 숨통을 끊어버리든가 당신을 덮쳐갔던 값을 단단히 받아낼테요.》 하며 펄펄 날았다.

제가 그 난봉군의 얼굴도 몰라가지고 어떻게 그럴수 있으며 또 아무러한 해도 입지 않았는데 값은 또 무슨 값을 받아낸단 말인가.

하지만 려은은 자기의 한을 같이 나누려는 남편이 언제나 고마왔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날에 지남은 먼길을 걸어가 찬거리를 장만해가지고 돌아왔다. 두번째 걸음에는 어째서인지 옹근 하루품이 꼬박 바쳐지였다.

의아해하는 려은이에게 지남은 장거리가 그새 먼곳으로 옮겨졌더라고 우스개소리처럼 말했다.

이렇듯 지남은 려은이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다.

방금 지남이가 밭을 뚜져 낟알을 심어 왜놈들과 싸우는 의병을 돕겠다고 한것도 아버지의 원쑤인 왜놈들과 역적놈들에게 맺힌 자기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마음이라는것을 느끼며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던것이다.

조용히 돌아서서 눈굽을 닦던 려은의 눈이 어느 한곳에서 멎어섰다.

산등성이에서 사람들 여럿이 나타났던것이다.

사람들이 나타나자 려은이는 불안한 눈길로 지남이를 바라보았다.

이런 깊은 산중에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상서롭지 못한 일이였다.

깊은 골안이라 이따금 사냥군들이 한두명씩 지나가는 일이 드문했으나 지금까지 저렇듯 여러 사람이 이 골짜기로 들어선적은 없었던것이다.

지남이가 긴장된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며 려은이에게 일렀다.

《당반에 총이 있소. 얼른 좀 내다주오.》

려은이가 당혹한 얼굴로 지남이를 바라보다가 급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려은이가 가져다준 총을 허리춤에 찔러 감추고 점점 가까와지는 사람들을 주시하던 지남이가 안도의 숨을 풀 내쉬며 말했다.

《저 사람들의 얼굴이 낯익구만. 분명 평산의병대사람들이요.》

려은은 금시 낯색이 밝아졌다.

그도 앞장에서 씨엉씨엉 걸어오는 김정환을 알아보았던것이다.

김정환일행이 마당가로 들어섰다.

마당가에 들어선 김정환은 한동안 려은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눈앞에서 자기들을 그처럼 진심으로 후원하던 고익재의 얼굴만이 얼른거리였다.

잠시후에야 김정환은 려은이에게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의병들을 위하다가 비명에 횡사하신 고선생님의 따님을 오늘에야 찾아온 나를 용서하시오. 고선생님의 불행을 두고 위안 한마디 못 드렸는데 우리 일을 크게 도와주어 정말 무슨 말씀을 드려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지 알수가 없구려.》

려은의 눈굽이 붉어졌다. 잠시 마당가에서는 려은의 흐느낌소리만이 잔잔하게 흘렀다.

지남이가 서글서글 웃으며 말했다.

《허허, 이거 내 색시를 울리자고 왔구려. 내 가까스로 눈물을 멈춰놓았는데… 이 사람은 다 좋은데 눈물이 좀 길지요. 허허.》

김정환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 그대가 고선생님의 사위였구려. 참, 사람도… 그럼 그때 그렇다구 한마디 말이라도 할노릇이지.》

지남이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그땐 아직 내게 그런 행운이 차례지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김정환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그에게 진정이 담긴 부탁을 절절하게 하였다.

《고선생님의 따님을 많이 아껴주시오.》

《꼭 그리하지요.》

려은이가 눈물을 훔치며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어요? 무척 험한 곳인데…》

지남이가 공연한것을 묻는다는듯 씩 웃음을 지으며 려은의 말을 받아주었다.

《아, 그래서 의병이 아니요? 산에 단련된 사람들이 이쯤한 곳을 못 찾아내겠소.》

지남의 말에 김정환은 빙그레 마주 웃으며 맨뒤에서 머리를 수굿하고 서있는 사람을 가리켜보였다.

《이름도 없는 골짜기라 찾기가 수월치 않을번 했소. 그런걸 마침 저 사람이 이 지대에 밝은지라 산판을 헤매이지 않고 곧장 왔소.》

지남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아마 이곳에 태를 묻은분인가보군요.》

그 의병은 여전히 머리를 수굿하고 대답이 없었다.

김정환이 대신 이야기해주었다.

《한성에서 남의 집살이를 하다가 얼마전에 우리에게 찾아온 사람이요. 언제인가 여기 주변에 다녀간적이 있다길래 지형을 말했더니 제꺽 알아내더군.》

머리를 끄덕이던 지남이가 말머리를 돌리며 김정환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먼길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김정환은 다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먼길이야 무슨 먼길일텐가. 우리가 여기서 멀지 않은 지봉산에 자리를 옮겼네. 예서 40리가량 되지. 자넨 100리도 훨씬 넘는 길을 왔다가 그달음으로 돌아갔는데 우리가 그쯤이야 못 올텐가? 찾아와서 인사도 할겸 어떻게 사는지 봐야 마음이 편할것 같아 이렇게 왔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려은은 놀랐다.

김정환의 말속에서 그는 지남이가 달려갔다온 길이 왕복 80리가 아니라 그 두배도 훨씬 넘는 멀고 험한 길이였다는것을 비로소 알게 되였던것이다.

려은이는 가슴이 또다시 뜨거워났다.

지남이가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는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는 려은이에게 나직이 말했다.

《려은이, 귀한분들이 오셨는데 뭘 좀 준비하오.》

《아이참, 이 정신 봐요. 내 얼른…》

려은이가 두눈굽을 훔치며 부엌으로 달려들어가려는것을 김정환이 만류하였다.

《우리가 준비해온것이 있으니 상이나 차려주시오.》

지남이는 려은이의 수고를 덜어주게 되였다고 익살을 부리며 그들을 방안으로 이끌었다.

모두가 김정환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껏 맨 뒤쪽에서 머리를 수굿하고있던 길잡이의병만이 방으로 들어갈 생각을 않고 마당가에 있는 도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걸싸게 도끼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려은이는 그러는 의병에게 다가섰다.

《그만두세요. 먼길을 오셨는데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의병은 머리도 들지 않고 도끼질을 해대면서 성이라도 난듯 말했다.

《난 여기서 나무나 패겠소이다. 겨우내 땔나무를 다 패주고 가겠으니 난 상관말구 얼른 들어가시우.》

고마운 마음에 비해 말투가 너무도 투박스러웠다.

려은은 한동안 어쩌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더 말을 붙일 여지가 보이지 않아 할수없이 그냥 부엌으로 들어가고말았다.

마당가에서 울리는 여무진 도끼질소리가 가락맞게 들렸다.

도끼질소리는 려은이가 상을 다 차릴 때까지도 잠시도 멎지 않았다. 듣다못해 지남이가 달려나가서 한동안 싱갱이질을 해서야 도끼질소리가 멎었다.

잠간사이였지만 마당가에는 그가 패놓은 나무가 큰 더미를 이루고있었다.

부엌문틈으로 그것을 내다보는 려은이는 물론이고 방안에 둘러앉은 의병들도 모두가 그의 나무패는 솜씨에 혀들을 내둘렀다.

이어 모두가 둥그런 두리밥상에 둘러앉았다. 밥상우에는 이 산골에서 처음으로 차려보게 되는 푸짐한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김정환이 첫 술잔을 려은이에게 내밀었다.

《우리를 도와준 고선생님을 대신하여 받아주시오.》

려은이가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지남이의 눈길을 받고는 잔을 받았다.

방금 마당가에서 나무를 패주던 의병이 술잔을 들고 지남의 앞에 다가왔다.

《우리 의병대를 도와준분에게 제가 한잔 붓겠소이다. 모진 세월에 산속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소이까?》

지남은 술잔을 정중히 받았다.

김정환이 껄껄 웃었다.

《거 술 한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는구만. 허허허.》

려은이는 이때에야 그 의병의 얼굴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려은이는 일순 화뜰 놀랐다.

처음에는 자기가 착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하여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아도 분명 그 사람이였다.

분명 한성에서 자기가 송림의 집 창고에 갇히웠을 때 초불너머에서 파수를 서던 사람이라는것을 알아본 려은은 아연실색하였다.

그의 가슴에서는 후닥닥 방망이질이 시작되였다.

려은이는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부엌으로 나왔다.

그가 어떻게 의병이 되였을가? 내가 잘못 보지 않았을가?

려은이는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틀림없었다. 하긴 아까도 김정환의병장이 그가 한성의 어느 량반집에 딸려있다가 얼마전에야 의병이 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려은이는 진정할수가 없었다.

지남이가 몇번 나오고 방안에서도 의병들이 여러번 그를 불렀지만 안으로 들어설념을 못하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부엌에 내려선 지남이가 의아해서 려은의 앞에 마주앉았다.

《무슨 일이 생겼소? 왜 그러오?…》

려은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사연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모처럼 반가운 사람들이 찾아온 이 자리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울텐가. …

《몸이 좀 불편해요. …》

려은이의 말에 지남이가 씩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게 멀미라는거요. 아마 오래간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보게 되니 그럴수밖에… 여기 좀 앉아있소. 좀 있으면 나을거요.》

지남이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고 한참후에 의병들이 돌아가겠다며 마당가에 나설 때까지도 려은이의 마음은 진정되질 않았다.

려은이는 지남이가 의병들이 떠나겠단다고 알려주어서야 밖으로 나섰다.

려은의 가슴을 떨리게 한 그 의병이 이미 기미를 알았는지 먼저 마당가밖으로 나서고있었다.

마당가에서 기다리던 김정환이 발길을 떼지 못하고 주변을 계속 둘러보다가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여긴 너무 외진 곳이구만. 이런 곳에서 의지할 이웃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겠소.》

무슨 생각엔가 잠겼던 김정환이 다가와 려은의 손을 잡았다.

《지남산가까이에 집 한채를 마련할테니 인츰 그리로 옮깁시다. 저 사람이 집 한채를 이틀이면 지어놓는 재간을 가지고있다오.》

김정환이가 손으로 가리킨 사람은 바로 그 한성난봉군의 시종군이였던 의병이였다. 려은은 김정환이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지남이가 그것이 따분스러웠던지 대신 인사를 보냈다.

《그것 참, 재간이 좋구만요. 혼자서 집 하나를 이틀에 지을수 있다니 그게 보통재간으로 될 일입니까? 그럼 우리가 들 집을 한채 멋있게 지어주시오.》

지남의 말에 의병이 머리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집은 걱정마시우다.》

이어 그들은 떠나갔다.

려은이와 지남은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당가에 서서 바래주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요. 의리도 깊고 인정 또한…》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이런 말을 하며 돌아서던 지남은 시름어린 려은의 얼굴을 보고 의아해졌다.

《아직 몸이 말째오? 대체 무슨 탈을 만났을가? 어디 가서 의원이라도 청해와야 하지 않을가?》

너무도 근심이 어린 지남의 얼굴을 대하기가 난처해진 려은은 한숨을 호 하니 내불고나서 한참이나 바재이다 말했다.

《이자 그 의병말이예요, 나무를 패던…》

《엉, 오- 집짓는 재간을 가진 그 사람말이요? 그런데?》

《한성의 그 송림이란 난봉군의 시종이였어요.》

지남이가 두눈을 놀랍게 떴다.

《잘못 보질 않았소?》

《분명 그 사람이예요. 난 그를 잊을수가 없어요. 얼마나 무서운 밤이였게…》

려은이는 그때의 무서움이 되살아나 활랑거리는 가슴을 꼭 부여안았다.

지남이가 방금 의병들이 사라진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을가? 내 당장 뒤쫓아가서 그와 시비를 좀 따져봐야겠소.》

지남이 당장 뛰여갈 자세를 보이자 려은이는 질겁하여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지 마세요. 이제야 저 사람도 의병인데 우리가 개인적인 일로 이러면 안되오이다.》

잠시 려은이를 보며 생각을 더듬던 지남이가 인차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긴 그렇지? 또 저 사람이 그노릇을 하고싶어 했겠소. 거 주인인 도령이란 놈이 시키니까 할수없이 그랬겠지.》

려은이가 아련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수긍했다.

《그리고 그 난봉군이 아니라면 난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예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만날수 있었겠나요. …》

지남이가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벌씬 웃었다.

《듣고보니 그렇구만. 그럼 난 그 난봉군에게 절이라도 해야겠소.》

지남이가 두귀를 잡으며 당장 절이라도 할듯 한성쪽을 향해 돌아서자 려은이는 즐겁게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절은 무슨 절이세요. 아무리 그렇다한들 그 난봉군에게 절까지 하겠나요?》

《하긴 그렇지? 그럼 절은 그만둡시다. 대신 내가 그놈을 료정내겠다고 당신에게 다짐했던걸 취소하기요. 어때? 찬성하겠소?》

려은이는 남편의 어린애같은 모습에 정이 들어 곱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지남이는 먼 하늘쪽을 향하여 큰소리로 웨쳤다.

《야- 이 한성바닥의 난봉군놈아, 네놈이 오늘 마음고운 내 안해 덕에 명을 늘인줄이나 알고있거라. 어, 그 난봉군놈…》

그리고는 껄껄 웃었다. 려은이도 지남의 그 천진스러운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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