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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제6장 고국의 령혼으로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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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산을 빠져나와 지남산에서 멀지 않은 지봉산에 이른 김정환은 대오를 정비하였다.

김정환은 대오를 일곱명으로부터 스무명정도씩 조를 뭇고 평산으로부터 해주일대에까지 넓은 범위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도록 하였다.

일정한 기간 분산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여러 지역들에서 소리를 내고 왜놈들이 정신을 수습할 무렵에는 다시 바리산에 모여 한동안 은페해있어야 했다. 그 다음 해주와 금천에 이르는 각곳으로 향방없이 헤매이다가 기진해진 왜놈들의 시야가 서흥쪽으로 쏠릴 때쯤이면 또다시 넓은 지역으로 분산하여 싸움을 벌리는 식으로 부단한 활동을 벌려나가려는것이 김정환의 의도였다.

그 작은 규모의 의병대오들마다 활동지역들을 선정해주고 떠나보내려는 때에 버들이를 만나러 갔던 박주룡이가 중요한 소식을 가져왔다.

일본군 제2사단의 후방물자가 해주수비대로 향한다는것이였다.

김정환은 의병들의 분산활동을 잠시 미루고 평산의병대전원이 출동하여 그 후방물자를 빼낼 계획을 급히 세웠다.

그는 왜놈들의 수송대를 지봉산에서 퍼그나 떨어진 미륵당고개에서 치기로 했다.

선두를 파견하여 그 마차행렬을 따르도록 하고나서 한정만을 따로 불렀다.

한정만이 나타나자 김정환은 그에게 령을 주었다.

《무삼이와 필석을 불러 바리산으로 떠나보내게. 이제 인츰 우리가 바리산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것 같으니 먼저 가서 얼마동안 은거할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해야겠네.》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의병대원들을 다시 한곳으로 집중시킬수 있는 은페거점을 미리 준비해놓으려는 김정환의 속깊은 의도를 제꺽 간파한 한정만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김정환은 한정만의 태도에서 자기의 결심에 대한 지지를 느끼고는 더이상 설명을 하지 않고 곧장 미륵당고개 매복에 대한 령을 주었다.

《자네가 의병대를 이끌고 오늘 밤중으로 미륵당고개에 진을 치게.》

《알겠소. 그런데 의병장은 어딜 가시려우?》

김정환은 한정만의 의아한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긴듯 말이 없더니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악설령고개주변에 고익재선생의 딸이 산다고 했었는데 이번 걸음에 그를 만나야겠네. 그를 만나보고는 곧 그리로 가겠네.》

김정환은 자기들의 일을 돕다가 잘못된 고익재의 딸을 만나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하지 않고서는 항상 속에 무엇인가 걸려있는듯 한 괴로움을 덜수가 없었다.

전번에 어떤 사나이가 고려은의 부탁이라며 찾아왔을 때 그가 무사히 살아있다는것이 너무도 반가와, 그처럼 고대하던 탄약이 문득 나타난것이 그리도 기뻐서 그 소식을 가지고온 그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묻지를 못했었다.

얼굴이 시원스럽게 생긴 그 사나이는 김정환의 그러루한 질문에 씩 웃으며 자기는 려은이를 위해서라면 불속도 뛰여들 사람이라고만 했던것이다.

괴한들에게 랍치되였던 사연을 물었더니 그때에도 그저 씩- 하고 웃어버리고말았었다.

그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선자리에서 돌아서는 바람에 김정환은 속에 쌓여지는 많고많은 의문을 어느 하나도 풀지 못하였다.

다행히 그때 고익재의 딸이 거처를 정했다는 골짜기의 특징들을 들어둔것이 있어 김정환은 이번 걸음에 그를 만나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할 생각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그가 알고있는것은 지금껏 가보지 못한 귀에 선 지명뿐이여서 미타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김정환은 한정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악설령고개와 장승고개라고 부르는 고개사이 어방에 창구멍만큼 큰 구멍이 난 바위가 있는 골짜기가 있다던데 누가 아는 사람이 없을가?》

한정만이 일어났다.

《내 사람들에게 알아보리다. 의병들속에 사냥군이 많은데 그런 골짜기를 못 찾겠소.》

한정만이 달려나갔다.

잠시후 한정만이 사람 하나를 뒤에 달고 다시 나타났는데 뜻밖에도 득진이라고 부르는 새로 온 의병이였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내가 잘 알지오다. 거기가 바루 창구멍만큼 큰 구멍이 난 바위가 있다고 해서 창골이라 부르는 곳이지요.》

김정환은 자못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득진이 처음 의병대에 나타났을 때 과거사를 묻자 어려서부터 줄곧 한성의 어느 량반집 시종으로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 득진이가 이 일대를 손금보듯 알고있다는것이 놀라왔던것이다.

허나 누구든 상관이 무엇이랴, 그 일대를 알고있는 사람이 쉽게 나졌으면 그만이였다.

김정환은 한정만의 뒤에 공손히 읍을 하고 서있는 득진에게 일렀다.

《그럼 빨리 차비를 하오. 곧 떠나기요.》

그가 밖으로 나가자 김정환은 한정만에게 물었다.

《그런데 필석이와 무삼이는 불렀소?》

《무삼이에게는 일러두었는데 필석이는 보이지 않소. 아마 또 절을 찾아갔겠지요. 자혜사라는 절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나 봅디다. 그 사람이 부처님을 공경스레 받들어모시는덴 정말 지독스럽습디다. 할아버지때부터 부처님을 모신다는데 덕을 입는건 하나도 없으면서도 어째서 그렇게 지성을 다하는지 원…》

《모진 세월속에 믿을데 없이 살자니 자연 굳어진 습관인데 너무 탓하지 마오.》

인차 무삼이가 나타났다.

그를 대하고나니 요전날 덕쇠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약우물골가까이에 있는 어느 골짜기에서 왜놈 셋을 료정낸 날 무삼이가 필석이의 가락지에 대한 말을 듣고 한식경이나 돌부처처럼 굳어져있더라고 했다.

서흥주막에서 그 가락지를 놓고 벌어졌던 그들의 불미스러운 일을 김정환이만은 알고있었다.

야장간에서 그들의 적개심에 대해 의혹을 느낀 김정환이 어느 기회에 필석이를 불러다놓고 사연을 따졌던것이다.

필석이가 쭈밋거리다가 주막에서 있은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몇마디안팎에 주막집에서 필석이가 당했던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알게 된 김정환은 무섭게 성이 났다.

주먹상대도 안되는 사람의 짐을 털어내? 그리구두 도리여 필석이를 도적으로 몰아댔다니 상판에 짐승가죽을 뒤집어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뻔뻔스런짓을 할수가 있단 말이냐.

더이상 필석이의 말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은 그는 당장에 무삼이를 불러 그런 너절한 행동을 하게 된 리유를 따지려고 했었다.

그런 그에게 필석이가 애원했다.

자기때문에 왜놈잡이를 잘하는 의병 하나를 주눅들게 하고싶지 않다는것이였다. 그리고 그런 버릇이야 세월이 하도 어수선하니 잠시 생겨났을뿐이고 의병이 된 지금에 와선 아예 마음을 바로 고쳐먹었을수도 있는데 부디 허물을 들추어 사람을 괴롭히는것이 잘하는 일이 아닌것 같다는것이였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라 김정환은 울컥하는 밸을 묵새기고 한동안은 모르는척 해두리라 마음을 고쳐먹었었다.

혹시 필석이의 말대로 의병이 된 지금에 와서 못된 버릇을 떼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구태여 그 허물을 가지고 머리를 못 들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바로 그래서 김정환은 이번 길에 무삼이가 필석이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빌고 개심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을 함께 바리산으로 보내리라 마음먹었던것이다.

《이제 곧 필석이를 찾아 그를 데리고 바리산으로 가야겠다. 필석이와 함께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그곳에서 야장일을 시작하여 화승대들도 수리하고 탄약도 만들어놓도록 하거라.》

김정환의 말에 무삼이는 펄쩍 뛰였다.

《아니, 근데 난 왜 거기엘?… 그런거야 필석이와 거기 남아있는 의병들이 하면 될텐데…》

김정환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무삼이의 말허리를 끊어버렸다.

《의병들이 이동하여 거처할 막사를 손질하자면 너의 뚝심이 필요해. 거기에 남은 사람들은 부상자들이란 말이다. 두말말고 령을 집행해라.》

무삼이는 입을 비죽 내밀고 내키지 않는 대답을 했다.

《알겠소이다.》

밖으로 나온 무삼이는 필석이를 찾아 맥빠진 걸음을 옮겼다.


× ×


필석이는 자혜사의 부처님앞에 공손히 꿇어앉아있었다.

근엄한 모양으로 굽어보는 부처님을 향하여 처량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 비나이다. 수년세월 약혼녀를 찾아다녔는데 더이상 찾을 길이 없나이다. 달미란 처녀는 나타났지만 그는 가락지가 없소이다. 죄많은 이놈이 달미를 취하면 부친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는 큰죄를 짓게 되니 부디 가엾은 저에게서 달미를 멀리할수 있게 해주시고 가락지를 품은 처녀를 하루빨리 만나도록 보살펴주사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무삼이가 웃음을 참느라고 빨개진 코를 벌름거리며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밉다면 깨꼬한다더니 이 뻔뻔스러운 작자가 왜 자꾸 자기앞에 나타나는지 알수가 없는노릇이였다.

《그게 뭐야? 말도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저 부처님에게 절을 하다니… 그런 수고말고 내게 절을 하게.》

필석은 마뜩지 않은 눈길을 피뜩 던지였다.

《건 왜?》

《왜라니? 내가 자네가 찾는 처녀를 찾아주겠다는데두…》

무삼이가 방정맞게 또 흰소리를 지껄여댈 잡도리여서 필석은 후닥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꾸 말시키지 말어.》

《가만, 내 말을 듣게. 임자와 내가 급히 바리산으로 돌아가서 야장을 하라는 분부가 내렸네.》

필석이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러자 무삼이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제법 진심어린 목소리를 냈다.

《차라리 잘됐어. 그까짓 녀잔지 남잔지도 모를걸 힘들게 찾아다니지 말고 이번에 아예 달미와 락착을 보라구. 이건 내가 진심으로…》

전필석이 무삼에게 눈을 흘겨대고는 바람을 휭 일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삼이는 입을 항 벌리고 필석이의 뒤모습을 퀭하니 바라보다가 버럭 소릴 질렀다.

《무슨 밸통머리야. 형님한테 버릇없이… 가락지때문에 그래? 그래 장거리에 수염난건 몽땅 네 외할애비냐?》

필석이는 들은둥먹은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반발심이 지글지글 끓어번졌다.

뭐? 형님이라구? 엿이나 먹어라. 도제 나보다 한달이나 먼저 태여난 주제에 형님은 뭐가 말라빠진 형님이야. 먼저 태여나면 몽땅 형님이라더냐? 사람처신을 했으면 말 안해도 형님대접을 안했을라구. …

필석이는 끝없이 툴툴거리며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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