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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제6장 고국의 령혼으로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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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산은 예로부터 꿩이 많아 《치악산》이라고도 불리웠다.

여러가지 폭포가 경치를 이루고 열두굽이 골짜기마다 기묘한 층암절벽들이 일만경치를 이룬 장수산은 볼수록 황홀경을 이루는 곳이다.

예로부터 금강산이 동부 산경치의 《왕자》라면 장수산은 서부 벌지대 계곡미의 《녀왕》이라 일컬어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수산에서도 기암절벽으로 널리 알려진 열두굽이의 다섯번째 골짜기에 백명산이네 부자가 사는 움집이 있고 그뒤로 숯구이터가 있었다. 아름다운 산경치에 어울리지 않게 구슬퍼보이는 이 숯구이터에 백명산과 그의 아들 곱돌이의 명줄이 걸려있었다.

아직은 이른아침이지만 숯구이막에서는 벌써 숯을 굽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백명산은 움집앞에 참나무를 쌓아놓고 도끼질을 하고있었다.

그의 걸싼 도끼질에 일매진 장작들이 점점 더미를 이루었다.

나무 한대를 장작으로 만들어버린 그는 다른 나무 한대를 끌어다 모태우에 올려놓았다.

온통 옹이투성이의 나무였는데 척 보기에도 그것을 패기가 헐치 않을것 같았다. 몇번 도끼날을 대보니 만만치 않았다. 한번 도끼질에 메뚜기만 한 도끼밥이 튀여나올뿐 도무지 빠개질념을 안했다. 아마 땀동이 깨나 흘려야 끝을 볼것 같았다.

한동안 그 나무를 붙들고 땀을 흘려가며 도끼질에 여념이 없는데 움집의 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물그릇을 든 곱돌이가 나왔다.

다리를 절며 힘겹게 백명산의 곁으로 다가온 곱돌이가 물그릇을 내밀었다.

《아버님, 물을 드시오이다.》

명산은 도끼를 내려놓고 얼른 곱돌이가 받쳐주는 물그릇을 들었다.

《목이 마르면 내절로 떠먹지 않을라구. 곱돌아, 걷기도 힘들텐데 물심부름할 생각일랑 말고 안에 들어가있거라. 초약은 먹었느냐?…》

곱돌이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용타. 번지지 말고 제때에 먹어야 한다. 알겠냐?》

곱돌이가 또다시 곱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명산은 곱돌이에게 정찬 눈길을 보내고나서 물을 맛스럽게 들이마셨다.

아들이 떠준 물맛이여서 별스레 달았다. 마지막까지 바가지를 기울이고나서 곱돌이를 바라보던 명산은 금시 의아해졌다.

곱돌이가 명산이 등진쪽에 눈길을 박고 해쓱해서 굳어져있었던것이다.

명산은 곱돌이의 눈길을 따라 산비탈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다음순간 백명산은 흠칫 놀랐다.

잡관목을 헤치며 여라문놈이나 되는 왜놈들의 무리가 이들쪽으로 내려서고있었던것이다.

왜놈들의 앞에는 명주조끼를 걸치고 앞이발이 뭉텅 빠져나가 입안이 흉하게 들여다보이는 조선사람 하나가 서있었는데 그가 백명산과 곱돌이를 보고 맨 먼저 뛰여오고있었다.

그자는 백명산의 턱을 들이받을듯 바투 다가서며 물었다.

《이보, 말 좀 묻겠소.》

명산은 응대도 하지 않고 뒤에서 줄레줄레 다가오는 왜놈들을 훑어보았다. 어디를 싸다니였는지 이른아침이지만 온통 땀투성이들이였다.

갑자기 나타난 왜놈들을 보는 명산은 가슴속에 잠자던 원한이 다시금 치솟아오르는것을 가까스로 누르며 도끼를 잡았다.

곱돌이가 저맘 쯤 앉아서 이쪽을 불안스럽게 쳐다보았다.

백명산은 다시 도끼질을 힘껏 해댔다. 금시까지만 해도 꿈쩍않던 나무가 단번에 쩍 빠개졌다.

백명산은 련속 도끼질을 해댔다.

성이라도 난듯 한 그의 걸싼 도끼질에 얻어맞을가보아 화닥닥 놀라 몇걸음 뒤로 물러선 명주조끼를 입은 이발빠진 작자가 소리쳤다.

《아니, 귀에 말뚝을 꽂았소? 말을 묻는데 어째 응대가 없소?》

《말하구려. 귀머거리가 아니면 듣지 않을라구.》

일손을 놓지 않고 버럭 맞대꾸질을 하는 명산의 퉁명스런 어조에 불쾌한 상을 짓고 눈깔을 희번득이던 그자가 자기쪽을 멀뚱거리며 바라보는 왜놈들을 흘낏 살피고나서 입을 다시더니 다시 물었다.

《저 앞봉우리 골짜기에 평산에서 몰려온 의병들이 우글거리던데 그 수가 대체 얼마인지 모르갔소?》

백명산은 속이 철렁했다. 가슴이 후두둑 떨렸다.

그러니 이놈들이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내탐한 놈들이란 말인가.

평산의병대가 왜놈들의 《토벌》책동에 대처하기 위해 장수산으로 이동하여 석동십이곡이라 불리우는 열두굽이에서도 벽계수로 유명한 벽바위골에 자리잡은지 극상 이틀도 되나마나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왜놈들이 벌써 냄새를 맡고 여기에 나타났는가.

아무래도 모를 일이였다.

하여튼 왜놈들이 평산의병대의 뒤를 밟고 그 위치까지 내탐한것이 적실했다. 이건 정말 큰일이였다.

백명산은 대답을 기다리는 그놈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명주조끼》는 다시 도끼눈을 지었다.

이때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이들쪽을 바라보던 왜놈중위가 소리쳤다.

《오이, 영달상.》

왜놈중위가 부르자 영달은 매우 민첩하게 그놈의 앞으로 달려갔다.

《시나지로중위님, 무슨 분부입니까?》

시나지로는 백명산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영달에게 나직이 물었다.

《오이, 저 령감태기나 평산의병대와 한짝이 아닌가?》

맹영달이가 백명산을 멍하니 바라보고나서 머리를 저었다.

《그럴수 없소이다. 평산의병장 김정환이 이쪽에서 활동하지 않은데다가 지금껏 의병들이 이 장수산일대에는 오질 않았댔으니 금방 나타난 의병들과 무슨 내통을 했겠소이까.》

영달의 말을 들으며 시나지로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영달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시나지로를 바라보았다.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찾아낸것은 참으로 우연이였다.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찾아 여러날동안 개고생을 하였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자 영달은 미칠 지경이 되여버렸다.

시에미 역증에 개 배때기 찬다고 그 행패질을 계부길이와 옥칠이에게 해댔다. 그리고 산판을 싸돌아다니느라 지친 피로를 풀어야겠다고 하는 그것들에게 기갈을 주고싶어 결김에 장수산을 훑어보고 오라고 내몰았던것이다. 그런데 막 던진 그물에 잉어가 걸릴줄이야…

이제는 회장이 아니라 같은 헌병보조원인 주제에 호령질을 한다며 입이 한발이나 삐져나왔지만 어쩔수없이 장수산으로 향했던 계부길과 옥칠이가 바로 그 장수산으로 입산하는 의병들을 직접 보고 그달음으로 달려왔던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은 영달은 선뜻 믿어지지 않아 날도 밝지 않은 새벽에 시나지로중위를 뒤에 달고 이렇게 산으로 올라 먼발치에서나마 의병들을 확인하고 내려서는 참이였다.

《저, 이젠 어떻게 해야겠는지…》

영달의 어정쩡한 말에 시나지로가 눈을 흘겼다.

《어떻게 할게 있는가? 빨리 이곳 헌병대와 수비대에 먼저 알려라. 그들로 여기로 드나드는 길목을 막고있다가 지구수비대가 전부 도착하면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 알겠는가?》

《알았습니다.》

영달이가 허리를 갑삭이며 밑으로 달려내려갔다.

나머지 왜놈들이 중위놈의 뒤를 따라 열두굽이 길목쪽으로 몰려갔다.

왜놈들이 아래로 허둥지둥 내려가는것을 망연히 지켜보던 백명산은 정신이 펄쩍 들어 급히 곱돌이를 둘쳐업고 집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백명산은 서둘러 시렁우에서 활과 전통을 꺼내였다.

그리고는 화살을 하나하나 손질하여 전통을 빼곡이 채웠다.

전통을 허리에 맨 백명산은 자기를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곱돌이의 눈길을 보고 잠시 주춤했다.

왜놈들이 의병대의 행방을 내탐한 소식을 빨리 김정환의병장에게 알려주고 그 걸음에 의병들과 함께 왜놈들에게 쌓이고쌓인 복수를 하리라 결심한 이 시각에 마음속에 걸리는것이 있었던것이다.

백명산은 아들애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를 느끼고 울먹이는 아들애를 보니 불시에 가슴속이 무직해났다.

이 애비 하나를 하늘처럼 믿고 사는 저애에게 나까지 없으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하지만 왜놈들을 복수하지 않고서는 죽어서도 그 한을 씻을것 같지 못했다.

백명산은 조용한 목소리로 아들애를 불렀다.

《얘, 곱돌아. 이리 좀 올라오렴.》

자기의 목소리가 마치 마지막부름처럼 물기에 푹 젖어있다는것도 그는 감촉하지 못했다.

한동안 아들을 바라보기만 할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안해를 잃고 애어린 곱돌이를 홀로 키워온 나날이 돌이켜지며 두눈이 붉어졌다.

《얘야, 어미없이 자란 너에게 미안한게 많구나.》

그의 물기어린 목소리에 뒤이어 곱돌이의 가냘픈 목소리가 울렸다.

《나에겐 아버님이 계시지 않소이까.》

백명산은 축축해진 눈시울을 손으로 문지르고나서 아들의 앙상한 어깨를 쓰다듬었다.

《호미도 날이지만 낫같이 들지는 못하니라. 내가 수년세월 어미없는 네가 애처로워서 이모저모로 마음을 써왔다만 어찌 어미정을 대신했겠냐? 그간 이 애비한테 속에 맺히는게 있으면 후날에라도 네가 용서해다오.》

곱돌이의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괴였다. 토스레옷의 너덜거리는 팔소매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뻑 문질렀다.

곱돌이는 지금 아버지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머니를 죽인 왜놈들을 꿈속에서도 저주하던 아버지의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맺혀있는 증오가 포근한 엄마품을 잃어버린 자기의 설음에는 대비도 되지 않는다는것을 아직은 인생세파 가지가지의 무게를 다 가늠할수 없는 곱돌이였지만 그것만은 너무나도 똑똑히 알았던것이다.

눈굽이 젖어든 명산은 아들을 꼭 품에 안았다.

《래세엔 너의 엄마와 함께 우리 셋이서 오붓하게 살자꾸나.》

명산의 목소리는 무척 갈려있었다.

《얘야, 간혹 이 애비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꿋꿋하게 살아가거라.》

《으흑-》

여린 곱돌이의 어깨가 세차게 오르내렸다.

《그리구 초약을 제때에 먹거라. 다리를 다 고치거들랑 왜놈들을 끝까지 복수해라. 생이 끝날 때까지 말이다. 이 애비 말을 알아들었느냐?》

《꼭 명심하겠소이다, 아버님…》

명산은 떨어지기 힘들어하는 아들애를 남겨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곱돌이의 흐느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집문앞을 나선 백명산은 잠시 방안동정에 귀를 기울이다가 얼굴로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씻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덤불이든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헤치며 의병대를 향하여 달렸다.


× ×


백명산으로부터 왜놈들이 벌써 의병대의 꼬리를 밟았다는것을 알게 된 김정환은 아연했다.

속에서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왜놈들이 자기들의 꼬리를 밟았다면 지금쯤이면 왜놈수비대의 무력이 장수산을 가까이했을것이다. 왜놈들의 공격이 두려운건 아니였다.

지세가 묘한 여기 장수산의 석동십이곡에서는 아무리 많은 병력이 밀려와도 몇차례의 싸움은 능히 승전할수 있었다.

그를 불안스럽게 하는건 단 며칠만에 천연지세를 리용하여 비밀거점을 꾸리자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때문이다. 이곳에 의병들이 들었다는것을 아는 이상에는 더는 장기간의 거점으로 될수가 없었던것이다.

참으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통탄이나 하고있을새가 없었다. 왜놈들이 바로 이곳에 의병대가 들었다는것을 내탐한 이상 싸움은 불가피한것이였다.

김정환은 즉시 의병들에게 벽바위골을 막고 진을 치도록 하였다.

통나무와 돌을 쌓아놓도록 하였다.

김정환의 령대로 의병들이 진을 치고 싸움준비를 마치자마자 왜놈들이 나타났다.

벌써 왜놈들이 의병들이 진을 친 벽바위골턱밑까지 기여들었다는 신호가 왔다.

김정환은 지휘처로 선정된 바위벼랑우에 올라가 왜놈들을 살펴보았다. 대충 눈짐작으로 쳐도 아근의 가깝고 먼곳에 있는 수비대와 헌병, 경찰력량이 총동원되였다는것을 알수가 있었다.

김정환은 이번 싸움이 간단히 끝나지 않으리라는것을 예감했다.

의병들에 비하여 왜놈들의 수가 너무도 많았던것이다. 더구나 왜놈들의 장비는 의병들의 무장에 대비도 되지 않을만큼 위력했다.

하지만 김정환은 배심이 든든하였다.

지금 의병들이 진을 친 골짜기는 좁고 급한 경사로 되여있는지라 왜놈들이 절대로 산개하지 못하는 곳이였다.

그러니 왜놈들이 이곳으로 올라오려면 자연히 길다랗게 늘어서서 곬을 따라 올라와야 하는데 그렇게만 되면 아무리 많은 놈들이 밀려와도 의병들의 사상자를 줄이면서도 얼마든지 이길수가 있었던것이다.

골짜기입구에 첫 사람이 나타났다.

의병들이 부시돌을 때려 심지에 불을 달았다. 모든 총구들이 그곳으로 향했다. 이제 김정환의병장의 구령만 내려지면 골안은 순식간에 짙은 화약내속에 잠기게 될것이다.

의병들의 시선이 의병장 김정환에게 집중되였다.

김정환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골짜기아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김정환은 한순간 굳어진듯싶었다. 맨앞에 선 사람은 왜놈이 아니였던것이다.

화승총을 골짜기에로 겨누고있던 의병들도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그곳으로 눈길들을 모았다.

앞에 선 사람은 술에 취한듯이 몸을 몹시 휘청거리며 걷고있었는데 그뒤로 왜놈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따르고있었다.

김정환은 앞에 선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주시하였다.

그러던 김정환은 두눈을 흡떴다.

왜놈들에게 떠박질리워 가까스레 올라오는 사람이 술에 취한 사람이 아니라 다리를 저는 어린아이라는것을 비로소 알아보았던것이다.

곁에서 백명산의 목소리가 신음소리처럼 들려왔다.

《곱돌이가… 우리 곱돌이가 어떻게?…》

김정환은 영문을 짐작할수가 있었다.

벌써 이 일대를 밟아본 왜놈들이여서 의병들이 있는 곳에 대한 공격이 어렵다는것을 어찌 모를수가 있으랴. 숯구이터에 백명산이가 없어진것을 알고는 의병과 내통한것으로 보고 그의 아들을 끌어다 앞에 세워놓았던것이다.

세상에 저렇게 교활스럽고 악착한 놈들이 또 어디 있으랴.

곱돌이가 왜놈들에게 떠밀리워 저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며 올라왔다.

왜놈들이 곱돌이의 뒤를 따라 올라오며 총을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총소리는 몰방으로 자지러지며 우박치듯 의병들쪽으로 날아들었다.

의병들이 시시각각으로 위험해지고있었다.

그들은 총을 쏘지 못하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의병대는 커다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왜놈들이 골짜기중턱만 넘어서면 무져놓은 돌과 통나무가 무용지물이 되고말것이며 거기서부터는 왜놈들이 산개할수 있는 공간이 나지는것이다. 왜놈들이 산개대형을 짓는 순간이면 의병대는 돌이킬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된다. 어쩌면 그 돌이킬수 없는 손실이 전멸을 의미할수도 있었다.

위급한 시각이 한발한발 다가들고있었다.

왜놈들의 간악한 교활성에 치를 떨며 몇명의 의병들이 곱돌이를 구원하고 매복한 의병대원들이 사격할 길을 열겠다며 달려내려가다가 왜놈들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다.

곱돌이는 자기때문에 아버지와 의병들이 총을 못 쏘고 돌도 굴리지 못하고있는것을 보고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더구나 옷가지랑 신발이랑 만들어주었고 이틀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산속에서 머루를 한옹큼 따도 자기를 위해 달려내려와 손에 쥐여주던 낯익은 의병아저씨들이 자기때문에 피를 토하며 죽는것을 본 곱돌이는 어린 마음에도 끝없는 죄책감이 사무쳐올랐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른아침에 숯구이막에 나타났던 왜놈들이 해가 퍼지기 시작할무렵에 다시 나타나 아버지가 의병대에 알리러 간것을 알아차리고 애어린 곱돌이를 한참이나 두들겨패더니 덜미를 잡아일으켜 여기로 끌고 올라왔던것이다.

진을 치고 내려다보는 의병들은 곱돌이를 방패로 내세운 왜놈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에 몸부림쳤다.

왜놈들을 노려보던 기봉대가 벌떡 일어나며 웨치듯 말했다.

《내가 곱돌이를 구원하겠소.》

골짜기아래서 곱돌이의 눈물젖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저씨, 내려오지 말라요.》

뒤에서 한 왜놈이 총탁으로 곱돌이의 어깨를 우악스레 내리쳤다.

왜놈의 총탁에 얻어맞아 비칠거리는 곱돌이를 보고 악이 오른 봉대가 밑으로 욱 달려가려는 그때 백명산이가 그를 덮쳤다.

《이걸 놓으라요. 곱돌이가 왜놈들에게 매를 맞아요.》

백명산은 무섭게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뿐 말을 못했다.

너무도 꽉 앙다물린 입이 벌어지질 않았던것이다.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아들애를 바라보던 백명산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온몸은 무섭게 덜덜 떨리고있었다. 두눈에선 금시 시퍼런 불줄기라도 쏟아져나올듯 했다.

곱돌이가 몸을 일으켜세운 아버지를 알아보고 흐느낌소리를 냈다.

《아버님…》

《얘, 곱돌아…》

백명산은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들애를 바라보면서 잠시 말을 못했다. 그는 동안이 흘러가서야 곱돌이를 향해 또다시 한마디 했다.

《초약은 먹었느냐?》

《예, 다 먹었소이다.》

《용타.》

혈친의 정이 사무친 눈길로 아들애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고난 백명산은 자기의 두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뻑 닦고나서 엄하게 웨쳤다.

《눈물을 거두어라. … 사내녀석이 그렇게 나약해가지고는 안되느니라. 더우기 네뒤에 너의 엄마를 죽인 왜놈들이 있지 않느냐?… 얘, 곱돌아. 원쑤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갚아야 하느니라. 내 말을 알아들었느냐?》

곱돌이가 왜놈들의 아귀센 손탁에 앞으로 더 떠밀리워나오지 않으려고 옆에 있는 나무를 그러안으며 간신히 말했다.

《아버님, 알겠소이다.》

백명산의 눈에 진득진득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곱돌아, 나와 함께 네 어머니를 찾아가자꾸나.》

곱돌이의 애어린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

《아버님은 죽지 마시오이다.》

곱돌이의 말에 백명산은 헉헉 소리내여 울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절통스런 웨침이 흘러나오는듯싶었다.

아- 정을 아낌없이 주고주어도 더 주고만싶던 아들아, 엄마없는 너의 설음이 살점을 뜯기우는 아픔이여서 온몸이 가루가 되여서라도 단 한번의 네 웃음과 바꾸고싶었던 내 아들아, 피덩이같이 어린 너를 안고 이날이때껏 고이고 기울인 정이 너무도 적은것만 같아 항상 죄스럽던 이 아버지였다. 목숨보다 귀하던 나의 아들아, 나는 너에게 죄를 지은 아비가 될지언정 원쑤 왜놈에겐 결코 굽어들수가 없구나… 이 아버지를 원망해다오.

백명산은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러면서 박주룡을 돌아보며 흐느끼듯 말했다.

《이 사람 박서방, 이제 싸움이 끝나면 날 저애의 발치에 묻어주게. 죽어서도… 죽어서도… 내 아들 곱돌이에게 용서를 빌겠네.》

《백명산이, 이 사람, 안되네. …》

박주룡이가 그의 팔에 매달렸고 봉대도 그에게 매달렸다.

다른 의병들이 몸부림치며 그에게 소리를 쳤다.

하지만 박주룡과 봉대를 뿌리쳐버린 명산은 두눈에 온갖 원한과 분노를 안고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핑-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날아가 곱돌이뒤에 붙어선 왜놈의 멱을 단번에 꿰였다. 왜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그뒤로 따라서던 왜놈 역시 백명산이 날린 화살에 숨통이 끊어졌다.

악이 오른 왜놈들이 나무를 꽉 그러쥐고있는 곱돌이의 등에 총창을 박았다. 어린 곱돌이의 등에 들어가박힌 총창이 가슴을 뚫고 나무에 박혔다. 여전히 나무를 꽉 그러안은 곱돌이는 입술을 사려물고 눈물이 질벅한 눈길을 백명산에게로 향한채 굳어져버렸다.

《쏘라-》

백명산은 괴성을 지르며 참대창을 집어들고 왜놈들속으로 달려내려갔다. 참대창으로 왜놈들을 닥치는대로 찍어버리며 백명산은 끝내 곱돌이에게 이르렀다.

백명산은 이미 죽어있었다. 왜놈들의 무수한 총알에 맞은 그의 몸에서는 피가 랑자하게 뿜어져나오고있었다.

곱돌이곁에 이른 백명산은 무릎을 꿇고 앉아 너무도 짧은 인생살이를 갖은 불행과 고생만을 겪다가 세상을 하직한 어린 아들애의 설음짙은 얼굴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천천히 쓰러졌다.

의병들이 무섭게 격노했다.

골안에 화약연기가 자욱하니 서리고 그속에서 요란한 총소리들이 울렸다. 김정환이 격노한 의병들을 이끌고 앞장에서 달려내려가 대검을 휘둘러 왜놈 수십명을 료정냈다. 김정환의병장의 뒤를 따라 무삼이가 백명산이의 화살을 집어들고 수십놈의 멱을 꿰뚫었다.

의병들이 쏘아대는 화승총탄에 왜놈들은 무데기로 쓰러졌다.

이날 왜놈들은 의병들의 증오의 섬멸전에 온넋을 잃었다.

굴러내리는 돌사태와 통나무에 무리죽음을 당하고 의병들의 복수의 총탄에 삼대베듯 쓰러졌다.

좁은 골짜기에 모여들었던 놈들이라 서둘러 물러설 자리도 없어 고스란히 죽음을 당하고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났는지 이날 《황성신문》이 발표한데 의하면 장수산에서 평산의병대에 녹아난 왜놈들의 시체를 나르는데만도 여러날이 걸렸다고 한다.

싸움이 끝난 다음 의병들은 백명산과 그의 아들 곱돌이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였다.

백명산부자의 의로운 죽음을 두고 평산의병들은 이 땅에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왜놈들과의 복수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뼈속깊이 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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