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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제6장 고국의 령혼으로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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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은 일본법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력사에 전무후무한 이러한 강도의 궤변을 줴치며 데라우찌놈이 총독자리에 올라앉자마자 총칼을 앞장에 내세운 무단통치가 실시되였다.

일제는 싯누런 철알을 재운 신식무기와 군도를 윙윙 휘두르며 조선의 무고한 사람들을 목없는 주검으로 만들어 민족멸살을 촉진시켰다.

가는 곳마다 헌병분견소와 경찰관주재소들이 늘어났고 일본군대가 득실거렸다.

왜놈들은 전국도처에서 활약하는 의병들에 대한 진압에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그중에서도 채응언이 이끄는 곡산의병대와 새로운 의병장 김정환이 이끄는 평산의병대의 활동이 놈들의 제일 큰 골치거리로 되였다.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낸지 며칠 안되여 평산지구 수비대가 의병들의 매복에 걸려들었는데 그 싸움에서 숱한 일본군이 녹아나게 되였다.

이에 기겁한 일제는 평산의병대를 진압소멸하기 위하여 또다시 미쳐날뛰기 시작하였다.

한성에 틀고앉은 총독부에서는 평산의병대를 진압하기 위한 강력한 《토벌》계획안이 꾸며지고있었으며 지구수비대와 헌병, 경찰들이 항시적인 전투태세를 갖추고있었다.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되여 공포된지 이틀만에 평산땅의 돌고개라고 부르는 곳에서 평산지구 수비대에 대한 매복전을 조직지휘한 의병장 김정환은 급속히 악화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며칠간이나 면밀한 작전을 세워나가고있었다.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사색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이날도 그는 의병지휘성원들의 모임을 끝내고 홀로 밖을 거닐며 왜놈들의 악랄해지는 《토벌》계획에 대처할 방책을 모색해나갔다.

이제는 평산의병대의 운명이 그의 결심여하에 달려있었다.

왜놈들의 《토벌》이 집중되는 어려운 조건에서 싸움을 계속하자면 단 한번의 싸움이라도 면밀한 타산을 하고 벌려나가야 했다.

한번의 실수, 한순간이라도 탕개가 풀리면 의병대의 생사에 막중한 후과를 미칠수 있었다.

제일 큰 걱정거리가 바로 의병대모두가 바리산일대에 모여있는것이였다.

의병들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있다가 왜놈들에게 알려지는 날에는 막중한 력량손실은 물론이고 평산의병대의 중요한 거점을 잃게 된다.

한정만이와 최순지, 신모정들이 각각 의병대오를 하나씩 거느리고 황해도일대에 널려져서 싸울 때에는 왜놈들이 어느것이 의병들의 진짜거점인지 알아낼래야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리진룡이 모아들인 의병들이 의연히 바리산에 남아있는 상태를 지속시키다가는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게 될것이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 했다.

김정환은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한자리에 서서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왜놈들의 《토벌》이 강화되는 지금의 정세는 그들이 이곳에 은거해있을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디로든 속히 나가서 왜놈들과의 싸움을 벌려야 했다.

그렇다면 다음번 거점을 어디로 정할것인가.

해주쪽과 금천쪽이 적중할듯싶었다.

그곳이 평산의병대에게 여러번이나 된매를 맞아 수비대력량도 아직은 미처 수습을 못한 상태이고 또한 의병들에게 혼이 난 놈들이라 둥지에서 나오길 저어하는것으로 하여 비교적 안전하다고 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도 가장 합당한 방책이라고 할수는 없었다.

해주와 금천쪽에는 의병대의 거점으로 될수 있는 험한 지세를 가진 곳이 여러 군데 있기는 하지만 그곳들은 모두가 왜놈들의 시야에 이미 들어있는 곳들이라 어느 순간에 포위에 들지 알수가 없는것이다.

그것도 타산하지 않고 현재 왜놈들의 병력수만 보고 이동했다가 왜놈들이 눈치를 차리고 여러 지방의 수비대들을 모아들이면 평산의병대가 큰 손실을 입을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적중한 장소는 어디겠는가.

다시금 저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는 김정환의 생각은 평산의병대의 거점으로 될만 한 곳을 찾아 끝없이 이어져갔다.

김정환의 눈앞에 불현듯 장수산의 천험의 지세가 방불히 떠올랐다.

김정환은 해주 대덕면 취야장에 있는 왜놈수비대를 료정내고 돌아오는 길에 백명산이네 부자를 만나보기 위하여 장수산에 들렸던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장수산의 묘한 지세를 보고 여간만 감탄하지 않았었다.

기묘한 병풍바위들과 가파롭고 급한 비탈로 이루어진 장수산은 방어에서는 그야말로 천험의 요새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 천험요새를 그려보며 김정환은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허공을 쳤다.

바로 그곳이다. 장수산으로 이동하여 일정하게 소리를 내고는 의병대를 다시 몇개의 지역으로 분할하여 활동해야 한다.

그는 결심을 내렸다. 장수산으로 거점을 옮기기로 작정하고나니 그곳에서 살고있는 백명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아들 곱돌이의 다리는 좀 어떤지…

얼마전에 백명산이가 그를 찾아왔었다.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조약》날조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뿌리며 찾아온 그는 자기도 의병대에 들어와 왜놈들과 싸우겠노라며 울분을 토했다.

온 나라를 피눈물에 잠그어놓은 《한일합병조약》날조에 대한 소식은 평산의병들에게도 참을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켜놓았었다. 그래서 김정환은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낸 왜놈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누를길 없어 땅을 치며 통곡하는 의병대원들을 거느리고 평산지구 수비대가 가까운 돌고개에까지 나가 왜놈들을 매복전으로 습격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던것이다.

바로 그 싸움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한달음으로 달려온 백명산이였다.

하지만 김정환은 그의 요구를 들어줄수가 없었다.

그가 의병대에 들어오면 곱돌이는 누가 돌본단 말인가? 오직 그 하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 곱돌이에게 백명산은 아버지이기 전에 어머니이며 명줄인것이다.

김정환은 백명산을 설복하여 다시 돌려보냈다.

그때 김정환은 서운해하는 백명산의 모습이 속에 걸려 솔매에게 곱돌이의 옷가지와 신발을 밤새 만들게 하고나서 기봉대한테 지워 따라보냈다.

떠날 때 백명산은 김정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의병장님, 날 평산의병대사람으로 알아주시오. 우리 곱돌이의 병세가 완화되면 주변마을에 맡겨두고 찾아오겠수다. …》

김정환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다짐을 주어 그를 떠밀어보냈다.

이제 평산의병대가 장수산으로 가면 백명산에게도 힘이 되고 왜놈들때문에 가슴속에 한을 안고 사는 그들부자를 더 위해주고 도와줄수도 있을것이다.

김정환이 결심을 굳히고났을 때 문득 앞쪽에서 부시럭소리가 났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얼마쯤 앞에서 필석이가 웬 처녀와 마주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처녀는 약우물골의원집 딸인 달미였다.

그런데 저들이 왜 여기에 있는가. …

김정환은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니 자기가 그만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바리산에서부터 약우물골쪽으로 고개를 두개나 넘어왔던것이다.

김정환은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목을 움츠렸다.

요사이 약우물골의원집 딸인 달미가 필석이를 마음에 두고있는것 같더라는 말을 덕쇠에게서 들은 생각이 났다.

왜놈들과 맞다들렸던 이후로 달미가 여러번이나 필석이를 찾아와 무슨 약재랑 주고 갔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저 그렇겠거니 했는데 막상 남들이 보지 않는 이런 외진 곳에서 만나는 그들을 보니 그 말이 영 그른 소리는 아닌듯싶었다.

이제 되돌아서자니 인기척을 내여 저들을 놀래울것 같았고 그대로 서있자니 꼭 남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는것 같아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게 되였다.

김정환은 부자연스러워진 몸을 어떻게 처신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며 그들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필석이의 기색이 어딘가 이상스러웠다.

머리를 푹 수그린 달미가 내미는 그 무슨 꾸레미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외면하는품이랑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달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리는것을 보면 그들의 사이가 몹시 어성버성해보였던것이다.

더우기 필석이의 그 무슨 가락지에 깃든 사연이라는것도 대충 알고있는 김정환이여서 그들의 관계에 의혹이 깃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하다면 내가 왜 이렇게 나무뒤에 숨어있는단 말인가.

김정환은 바리산쪽으로 몸을 돌려 우정 소리가 나도록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그 인기척에 두사람이 서둘러 헤여지는것이 륙감으로 알렸다.

참, 모를 일이야. 단순히 생명의 은인으로 오고가는 사이라면야 왜 사람들을 저다지도 꺼린단 말인가.

김정환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런 생각으로 바리산에 들어서는데 자기를 찾아오던 걸음인듯 박주룡이가 그를 보고 달려왔다.

박주룡이는 그의 앞에 이르자마자 이야기했다.

버들이에게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평산땅의 고무래고개밑에 왜놈헌병초소가 하나 생겼는데 그놈들이 의병들을 색출한다면서 오가는 길손들에 대한 행패가 막심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버들이가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한 헌병초소의 위치와 수비대놈들이 달려올수 있는 지점들을 표시한 략도를 내놓았다.

그것을 들여다보고난 김정환은 즉시 의병대에 출동준비를 갖추도록 령을 내렸다.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를 답새기고 해주방향으로 소리를 내며 이동하다가 장수산으로 들어가면 여기 바리산방향으로 향하는 왜놈들의 눈길까지도 전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될것이라고 확신했다.

김정환의 평산의병대에 있어서 고무래고개에 신설한 왜놈들의 헌병초소 하나쯤 없애버리는것은 땅짚고 헤염치기만큼이나 수월한것이였다.

고무래고개에서 의병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오가는 백성들의 보짐까지 말끔히 털어먹던 헌병초소는 그날중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말았다.


× ×


총독부에서 평산의병대를 속히 진압하라는 불같은 독촉이 매일같이 평산지구 수비대장 오까노모의 방으로 날아들었다.

그와 함께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가 의병들의 기습으로 재가루만 남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까노모는 불맞은 호랑이가 되여 앙앙불락했다.

평산의병대를 《토벌》하기 위해 수하병력을 전부 동원하여 일대를 수색했으나 매번 헛물만 켰다. 의병장 리진룡을 암살하면 의병대가 저절로 해산해버릴지도 모른다는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서흥군청서기 신표에게 많은 상금과 함께 군수의 자리를 약속하는것으로 유혹하여 권총을 주어 산으로 보냈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말았다.

오까노모가 각방으로 애를 써보았으나 깊은 산중에 거점을 정하고 활동하는 평산의병대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고 여기저기서 수비대병력들이 얻어맞기만 하고있는것이다.

악이 독같이 오른 오까노모는 수비대에 비상령을 걸고 자기의 방으로 서흥제비여울병참수비대장 시나지로중위와 일진회가 해산된 후 헌병보조원이 된 영달이를 불러들였다.

《네놈이 지금 우리 일본군을 우롱하는가?》

오까노모는 방에 들어서는 맹영달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문턱에 발도 채 들여놓기 전부터 까닭모를 욕설이 날아들자 영달은 눈알이 까뒤집힐듯 했다.

《각하,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옵니까? 제가 어찌 감히…》

《닥쳐라. 어째서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똑똑히 내탐해내지 못하는가 말이다. 네놈들이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탐지하지 못해 이번에 또다시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가 녹아났단 말이다. 이것이 일본군을 우롱하는 고의적인 행위라는것을 그래 네놈은 모르는가? 네놈들은 우리 일본군의 돈으로 배때기들을 불리우면서 뭘 하고 자빠져있는가 말이다.》

맹영달은 턱을 덜덜 떨며 죽을상을 지었다.

《우리 일진회에 있던자들이 이젠 거덜이 났습니다. 잡혀죽구 맞아죽고 더러는 무서워 아예 행적을 감추고 이젠 몇이 남지두 않은데다가 평산의병대는 자꾸 이동을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벼락같이 나타났다가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는지라 명확한 위치를 알아낼수가 없소이다. …》

《무슨 변명인가? 내 네놈에게 마지막기회를 주겠다. 만약 수일안으로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탐지하지 못할 땐 네놈의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알겠는가?》

영달이가 머리를 조아렸다.

《명심하겠소이다.》

《당장 물러가라.》

영달이가 도망치듯 사라진 다음에도 오까노모는 문쪽을 사납게 노려보기만 하다가 자기를 바라보는 시나지로의 눈빛을 느끼고 그쪽으로 돌아섰다.

한참이나 시나지로를 찌를듯 바라보던 오까노모가 한탄조로 말했다.

《중위, 난 이 땅에서 사람을 골라서 쓰고싶다. 그런데 땅덩어린 타고앉았지만 사람은 저따위것들만이 차례지니 정말 허무한 일이 아닌가. 버리면 거덜이 나겠고 끼구있자니 화가 난다.》

시나지로는 차렷자세를 하고 지구수비대장의 말에 수긍했다.

오까노모는 자기의 불만이 시나지로의탓이기라도 한듯 찌를듯 한 눈길을 떼지 않고 야멸차게 씨벌였다.

《중위, 저런 놈들은 어루만지는게 아니다. 자기 민족을 배반한 놈들이니 더는 갈데가 없는 가련한것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밑구멍을 핥으라고 해도 핥아야 하는 처지에 이른 놈들이다. 저런 놈들을 사정두지 말고 때려몰아서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빨리 찾아야 한다. 총독부에서 독촉이 불같은 때에 제국의 군인들인 우리가 분발해야겠다.》

《하잇!》

시나지로가 발뒤꿈치를 소리나게 가져다붙이며 대답하자 오까노모는 책상에 펼쳐진 지도의 여기저기를 가리켜보이면서 명령조로 말했다.

《이번에 평산의병대가 여기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를 답새긴건 그들이 다시 해주와 금천지방으로 활동지역을 옮긴다는것을 의미한다. 필시 이들은 지금까지 중위의 수비대가 있는 서흥일대에 있었을수 있다. 그러니 중위가 그들의 행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였으며 어디로 옮겨지는지 알아내야겠다. 중위의 관할지역을 수색하는 한편 저 맹영달이와 같은자들을 해주로 드나드는 길목들에 밤낮으로 세워두고서라도 그 행방을 속히 찾으라.》

《하잇!》

시나지로가 대답하자 오까노모는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시나지로는 절도있게 몸을 돌려 방금 맹영달이가 사라진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밖으로 나선 시나지로는 맹영달이부터 찾아보았으나 그는 어디로 달아나버렸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시나지로의 눈길이 수비대 맞은켠에 있는 객주집으로 쏠렸다.

시나지로의 노기어린 눈길이 닿은 그곳에 바로 맹영달이가 있었다.

맹영달은 오까노모의 방을 나서는 길로 수비대정문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계부길이와 옥칠이를 끌고 어둑시근한 객주집 골방에 들어가박혀 화술을 물먹듯 퍼마셔대고있었다.

그와 마주앉은 계부길이와 옥칠이가 웬 일인가 하여 퀭하니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방금전에 오까노모를 만나고 나올 때 맹영달의 인상은 꼭 부친상사를 당한 상제의 처량한 모색이였던것이다.

큰 대접에 가득 부은 술을 바닥이 날 때까지 꿀꺽꿀꺽 들이키고난 영달은 멀뚱멀뚱 자기를 쳐다보는 두 졸개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술이 왜 쓴지 알아? 너무 달아서 쓰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너무 행복하면 서글퍼진다. 난 지금 일본어르신들의 극진한 보살피심을 받으며 무상한 행복을 느낀다. 이 술맛처럼… 헌병보조원? 퉤- 평산지구 일진회장이 이젠 헌병보조원이라… 헛.》

계부길이와 옥칠은 뗑해졌다.

행복하다구? 술마시구 땅꺼질 한숨을 내쉬는 행복타령도 있는가? 분명 지구수비대장인지 하는 불악귀에게 귀쌈이라도 얻어맞은 꼴이야…

계부길이와 옥칠이의 이상야릇한 눈길을 느낀 맹영달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일본군에 의탁하여 부귀를 얻는다고 호언장담하며 지금껏 이 등신 같은것들의 우두머리노릇을 해왔으니 자기가 당한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해줄수도 없는노릇이였다.

맹영달은 벙어리 랭가슴 앓듯 혼자 속을 앓을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대접에 술을 부어 들이마셨다. 그렇지만 속은 도무지 편안해지질 않았다.

술이 들어가자 땅꺼지는 한숨만 더욱 커질따름이였다.

영달은 심복들이 지켜보는 속에 저도 모르게 또다시 한숨을 내불었다.

그야말로 망짝에 끼운 보리알신세였다. 의병이 채를 잡든 왜인이 채를 잡든 그 망짝이 돌아가기만 하면 보리가루가 될 판이였다.

지금껏 맹영달은 평산지방 일진회본부를 시나지로의 관내에 두고 비교적 편안스럽게 지내왔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던것이 전번에 자기가 잡은 기봉대라는 의병을 놔주고 장돌뱅이였노라고 우기는 시나지로에게 눈을 한번 빨았다고 해서 기회가 있으면 잡아먹을듯 날뛰는 바람에 맹영달은 그야말로 방망이 깎아주고 그 방망이에 얻어맞는 격이 되고말았던것이다.

더우기 일진회가 해산당하고 자기가 헌병보조원이 된 지금은 그 멸시와 천대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그래도 영달은 자기가 편안스럽자면 서흥제비여울병참수비대장인 시나지로에게 붙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일본사무라이의 전형인 오까노모나 다른 일본군장교들에게 가붙는다면 극악무도한 야만적인 기질이 체질화되여있는 그놈들의 입김만 몇번 쏘여도 말라서 죽든 얼쳐서 죽든 결딴이 날것이다.

사실 시나지로로 말하면 일본에서 고리대를 하면서 살던자였는데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깡패건 도적이건 모조리 긁어모아 총을 쥐여줄 때 일확천금을 노리고 들어온자여서 사무라이정신을 부르짖는 호전적인 군인들속에서는 축에도 들지 못하는자이다. 사무라이적기질이 희박한 그따위것은 어디서든 싸움판에 끼우기만 하면 단번에 황천객이 될 판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예로부터 죽을 나무밑에 살 나무가 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시나지로는 돈만 쥐여주면 그 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얼마동안은 아주 각근스럽게 대해주는 재미라도 느낄수 있는것이다.

때문에 시나지로는 맹영달에게 참으로 적중한 그늘로 될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자면 평산의병대 기봉대를 놔준 시나지로의 속내를 다는 알수 없었지만 그 일을 없었던듯이 모르쇠를 하고 살아야 했다.

이제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내탐하면 시나지로에게 알려주어 그의 공이 되게 하여 자기에게 때없이 날아드는 서늘한 랭기를 덥혀놓은 다음 아가리에 묵직한 돈꿰미를 물려놓으면 이틀동안 숯불에 삶아낸 물고기가시처럼 흐물흐물해질것이다.

어쨌든 오까노모의 호령도 있었으니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내탐해내는것이 기본이였다.

하지만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내탐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소름이 오싹 끼쳤다. 김정환의 칼날같은 눈길이 떠올랐던것이다.

맹영달은 머리를 저었다.

김정환과는 마주서지 않는게 상책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허술히 내대지 말고 계부길이와 옥칠이를 내세워 오까노모의 분부를 실행해야 한다. …

맹영달이는 계부길이와 옥칠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자기들에게로 향해지자 지금껏 눈치를 살피던 옥칠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본사람들이 어째 찾았소? 일본사람들이 싫은소릴 합데까?》

영달이가 코웃음을 쳤다.

《흥, 일본사람?… 왜놈도 어디 사람이야?》

계부길이는 누가 듣지 않나 하여 기겁해서 꼼꼼스레 닫아놓은 입구쪽을 불안스럽게 살피다가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회장님은 어째 그들을 위해 고분고분 일을 하시오?》

맹영달은 또다시 한숨을 푸 내쉬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수풀의 꿩은 개가 내몰고 오장의 말은 술이 내몬다고 빈속에 맹물처럼 들이킨 화술기운에 지금껏 속에 품고도 입밖에 내지 않던것이 이발없는 휑한 구멍으로 줄달음쳐나왔다.

《난 왜놈을 위해 일하지 않아. 미친놈과 왜놈은 상종 안하는게 땅수야. 난 그저 나를 위해서 일하고 산다. …나를 위해 그런 굴욕을 참는단 말이다. 사실 쪽발이들에게 별의별 모욕을 다 당하면서도 〈하잇〉, 〈하잇〉 하며 마치 기쁜듯이 웃어야 하는건 정말 참을수 없으리만큼 가슴터지는노릇이다. 비굴하게 굴면 굴수록 더욱 거만해지는게 바로 저 왜놈의 새끼들이야. …아마 내가 의병이라면 두발과 두손을 묶어놓지 못한 이상에는 그것들이 그렇게 거만스럽지 못할게다.》

두 졸개가 눈깔이 머룩머룩해서 지금껏 안 듣던 소리를 마치 오래전부터 들어오던 말처럼 숨을 죽이고 들어주었다.

영달이는 그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잡아먹을듯 금시 두눈을 부릅뜨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희들도 똑바로 알아둬. 의병대가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를 재가루로 만들었단 말이다. 3일안으로 의병들의 행방을 내탐해내지 못하면 그땐 끝장이야. 오까노모가 우릴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를 료정낸 의병이라구 하면서 모가질 잘라 전보대에 매달고 총독부의 표창을 받겠다구 할지 누가 알아?…》

계부길과 옥칠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치가 곰발통같은 계부길이가 참지 못하고 영달이의 아픈 곳을 찔렀다.

《이러다 논두렁에 나선 뱀처럼 사방에서 돌탕맞아 죽는게 아니요? 이제라도 관둡세다… 어쩐지 이러다가 량쪽에서 총알을 받을가봐 무섭수다요. …》

맹영달이 두눈을 희번득거리며 계부길을 힐책했다.

《제길, 그럼 우리가 가는 길에 산삼과 불로초만 펼쳐질줄 알았어? 이젠 어쩔수 없어. 그만두고 어쩔테야? 오까노모와 시나지로가 곱게 놔둘것 같애? 그리고 의병들은 또 어쩌구? 하루밤 자도 헌 각시라는걸 몰라? 왜놈들과 동침을 했으니 의병들이 제일 미워하는게 아마 우리들일거다. 왜놈보다두 우릴 더 미워할거란 말이야. …》

맹영달은 사색이 된 계부길과 옥칠의 얼굴을 일별하고 손을 내저었다.

《됐다. 어쨌든 시작한 일이니 결판을 봐야 한다. 그런데 너희들 어떻게 된건가? 의병들의 행방을 못 찾았는가?》

계부길이가 우물쭈물하며 대꾸했다.

《의병을 봤으면 이렇게 살아있겠소? 의병들은 귀신들이요. …》

옥칠이가 계부길의 옆구리를 꾹꾹 찔렀다.

맹영달이 그를 쏘아보고있었던것이다.

그제야 자기의 실수를 느낀 계부길이가 울상을 지었다. 전번에 한성에서 리용구를 노린 무삼이의 뒤를 밟다가 놓쳐버리고 돌아왔을 때 맹영달이한테 되게 혼이 난 다음부터 계부길은 그가 염라귀신만큼이나 두려워났다.

그때 영달이는 자기의 출세의 길을 망쳐놓았다고 칼로 난탕을 쳐놓겠다며 펄펄 날뛰였다. 하도 일진회에 자기까지 없어지면 옥칠이 하나만 남게 되였으니망정이지 여벌로 한명의 졸개만 더 있었더라도 틀림없이 그 칼에 동강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러한 계부길이가 다시 맹영달의 노여움을 산다는것은 절망적인 화를 불러오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계부길은 처량한 눈으로 영달을 바라보았다.

영달이도 계부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것들이 의병내탐을 가라니까 주변마을들만 빙빙 돌다가 돌아오군 했다는것을 계부길의 말속에서 대번에 알았던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것들의 혼맹이를 쑥 빼주고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소도 채찍으로 때려몰 때가 있고 슬슬 얼리며 부릴 때가 있는것이다.

더우기 의병대의 행방을 내탐하기 위하여 산판을 싸다니는것은 실로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닌가. 바로 그렇기때문에 영달이 자기라고 해도 그들처럼 했을것이였다. 의병들에게 대체로 얼굴이 알려진 일진회원들이여서 그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 순간이 바로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인것이다.

영달이가 말이 없이 노려보기만 하자 어색스런 눈길을 허둥거리던 계부길이 불쑥 생각난듯 묻지도 않은 말을 지껄였다.

《참, 회장님. 서흥군청의 기생 버들이가 좀 수상스럽소. …》

맹영달이 발칵 성을 냈다.

《한가하게 기생이나 찾아다닐새가 있는가? 네놈들이 의병내탐은 가지 않구 기생을 찾아다닌게 분명쿠나.》

계부길은 두손을 활활 저었다.

《그런게 아니우다. 그 기생이 요전날 고무래고개의 헌병초소주변에 나타났댔소.》

고무래고개라는 말에 금시 술상을 뒤집어엎을듯 움씰거리던 맹영달이가 뚝 굳어진듯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계부길을 찌를듯 바라보며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소. 그년이 나타났던 다음 그곳이 의병대의 기습을 받았단 말이요. … 그 헌병초소는 골짜기에 틀어박혀 남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이 아니였소. 우리도 길바닥에 서있는 헌병들만 보았지 골짜기에 있는 헌병숙소야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았소? 그런데 일본놈들의 수청은 죽어도 안 든다던 그년이 거기에 나타났던 다음날 야밤에 의병대가 들이닥쳤단 말이요.》

맹영달의 두눈에 살기가 번뜩했다.

리용구가 왔을 때 그를 노엽혔던 버들이의 얼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일본사람들에게는 죽더라도 절개를 지킨다는 그 기생이 일본군을 치는 싸움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수 있으랴. … 일본사람들에게 죽어도 절개를 지킨다는 그가 제발로 헌병초소에 나타났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스런 일인것이다.

영달은 계부길이와 옥칠이에게 서늘한 눈길을 던졌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그년의 뒤를 잘 감시해라. 어쩐지 그년이 께름하구나. …》

계부길이와 옥칠이는 마주 바라보았다.

기생따위를 감시하는 일이야 쉽지. 위험하지도 않고 재미도 있고…

그들의 대답이 수월하게 흘러나왔다.

《알겠수다.》

영달은 쓰거운듯 졸개들을 일별하고나서 씨벌였다.

《그보다는 먼저 의병대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계부길이는 서흥쪽으로, 옥칠이는 평산일대를 훑어라. 난 해주쪽을 살피겠다. 수일안으로 평산의병대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하면 우린 몽땅 사지가 찢긴다. 왜놈들에게.》

계부길이와 옥칠이가 몸들을 부르르 떨었다.

금시 눈앞에 사지를 찢기우는 자기들의 처참한 모습이 얼른거렸던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갑자기 문짝이 벌컥 열렸다. 열려진 문짝에서 시나지로의 시퍼르죽죽한 얼굴이 나타나자 골방안은 순간에 살얼음이 쫘악 끼는듯 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시나지로의 출현에 놀란 맹영달은 지금까지의 호기는 어디론가 쑥 달아나버리고 낯색이 질려 딸꾹질소리까지 냈다.

계부길이와 옥칠이는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혹시 지금껏 자기들이 지껄인 뒤소리를 시나지로가 들었으면 이 시각이 세상과 영리별하는 마지막마당인것이다.

새파랗게 질려 어쩔줄 몰라하는 그들을 노려보며 시나지로가 소리쳤다.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가? 빨리 의병들의 행방을 내탐해야 한다는걸 못 들었는가? 당장 나왓!》

술상에 마주앉았던 세 추물들이 허둥거리며 밖으로 튀여나가면서 자기들이 지껄인 소리를 시나지로가 듣지 못했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는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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