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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회


제5장 지휘기는 어떻게 옮겨졌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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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오기마련이다.

먼저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낸 일제가 다음은 내정권을 빼앗아냈다. 검은 흉심을 야금야금 드러내며 조선군대를 해산시키고 황제까지 강제로 퇴위시켜버린 섬오랑캐가 바야흐로 더욱 오만방자해졌다.

섬나라의 무리들은 일진회의 민족반역무리들과 공론끝에 강도적인 《한일합병》을 실질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날뛰기 시작하였다. 한 민족의 마지막숨통을 짓누를 전대미문의 협잡이 성숙되고있는 가운데 별안간 일본에서 륙군대신 데라우찌 마사다께가 현직을 겸한 3대통감으로 임명되여 조선으로 기여들었다.

일본의 조슈군벌출신으로서 그 수완이 구렁이같고 성격이 독사같다고 하여 《뱀》이라는 악명으로 불리우고있는 데라우찌가 일본지배층으로부터 조선강점을 최종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가장 적중한 인물로 선정되였던것이다.

데라우찌는 조선강점이후의 식민지통치에 관한 자세한 지시를 받고 조선에 가서 《합병》을 순식간에 해치우기 위한 음흉한 계책을 꾸미였다.

이놈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인 6월에 통감부로 하여금 경찰권을 완전히 강탈하게 하고 경찰관계경비를 리완용을 괴수로 하는 친일정부에 부담시켰다.

아까시놈을 헌병대장 겸 통감부 경무총감으로 임명한 이놈은 헌병과 경찰을 통일적으로 틀어잡게 하고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새로 많은 헌병들을 일본으로부터 증강하여 그 수를 대폭 늘구고 전조선에 헌병대분견소를 거미줄처럼 늘어놓았다.

이것으로도 안심치 않아 데라우찌는 조선인중 가장 악질적이며 교활한 불량배, 건달배들을 긁어모아 헌병보조원으로 만들어 일본헌병 한놈에 3~4명씩 붙여 사기, 모리, 강도 등의 악행을 제멋대로 할 권리를 주고는 그 대가로 조선인민들의 반일기운을 말살하기 위한 온갖 비렬하고 간악한 악행을 다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헌병, 경찰, 밀정들로 삼엄한 경계망을 전 지역에 늘어놓은 데라우찌는 임명된지 두달만에야 한성에 기여들어 조선강점책동을 직접 현지에서 지휘하였다.

이놈은 일본군에게 《수비대들은 전력을 다하여 사전예방 및 경계를 엄중히 하라.》, 《조선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정치적변화들이 있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중히 하라.》는 비밀명령을 내리고 몇몇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무력을 은밀히 한성에 있는 룡산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헌병, 헌병보조원, 경찰들에게도 전투준비를 갖추게 하였으며 인천에 군함까지 끌어들여 무력시위를 감행케 하였다.

헌병두목 아까시놈이 거느린 고등경찰과 밀정들은 사복을 하고 각지에 숨어서 무수한 애국지사들과 의병들을 고발체포하고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삼엄한 총검의 경계망을 펴고 강도적인 《한일합병》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데 달라붙었다.

데라우찌놈은 리완용과 《합병》문제를 정식으로 밀모하기 전에 《합병》에 대한 그의 태도를 타진해보고 리완용에게 《합병》에 대한 보상조건으로 친일매국역적들의 생계와 벼슬자리를 충분히 보장해줄것을 약속하였다.

리완용을 통감부의 조용한 곳으로 불러들인 데라우찌는 다시 일생 행복한 생활을 하는데 충분한 《은사금》을 준다는 조건으로 《합병조약》에 조인할것을 약속받고 그 조인날자를 8월 22일로 정해버렸다.

리완용과 데라우찌는 이때 약 30분간 비밀리에 매국과 침략의 흥정을 벌리였다. 이 밀담이 있은 이틀후 데라우찌는 리완용에게 친일내각회의를 열고 다른 매국역적들과 함께 《한일합병》초안을 그대로 받아물도록 강요하였다.

한편 데라우찌는 헌병대장 아까시로 하여금 궁성내에서 예상치 않은 배일사건이 일어날수 있을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하여 궁성내의 모든 곳을 빠짐없이 검열하고 단속하게 하였다.

아까시놈은 수많은 일본헌병, 고등경찰들을 궁성에 끌고 들어가 궁성내의 조선관리들의 동태를 살폈으며 지어 궁내 모든 창고안까지 일일이 수색하였다.

이와 동시에 궁성과 정부 그리고 항간에 박아넣은 렴탐군들로 하여금 더욱 맹활동을 진행하게 하였다.

8월 22일, 이날 조선의 궁성과 정부의 각 중요부서들은 무장을 갖춘 일제헌병, 경찰들에 의하여 포위되고 모든 전화선들이 끊기웠을뿐아니라 황제의 도장마저 일제의 감시밑에 들어갔다.

일제는 한성거리에 30메터마다 헌병, 경찰을 1명씩 배치하고 오가는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였으며 세사람만 모여다녀도 엄격히 단속하였다. 헌병, 경찰의 뒤에는 전투태세를 갖춘 군대를 대기시키였다.

데라우찌는 이처럼 삼엄한 폭압망과 경계망을 늘인 다음 리완용친일괴뢰정권으로 하여금 망국적인 《한일합병조약》에 도장을 찍게 하였다.

조선인민을 완전한 식민지노예의 운명에 빠뜨리고 우리 인민들에게 말할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준 《한일합병조약》은 일제침략자들의 강도적인 총칼의 위협과 리완용을 비롯한 친일매국역적들의 매국배족행위에 의하여 이렇게 날조되였다.

일제는 이 조약에서 한국황제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 통제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왜왕에게 《양여》하며 왜왕은 이를 수락하고 《한국을 일본에 병합》한다고 파렴치하게 규정함으로써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의 수립을 선포하여버렸다. 그리고 놈들은 조선강점책동을 도와준 친일매국노들과 식민지통치에 써먹기 위하여 황족들은 격을 떨구어 왕족으로 칭하는 한편 해당한 벼슬과 보수를 줄것도 규정하였다.

조선을 강점한 대가로 리완용에게는 15만원을, 송병준에게는 5만원의 《은사금》을 던져주었으며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본의 귀족칭호를 주었다. 10여년간 침략의 길잡이로 부려오던 친일주구단체인 일진회도 더는 필요없게 되였으므로 매국의 대가로 15만원을 주고 해산해버렸다.

매국노들은 이처럼 한몸의 부귀영화와 몇푼의 돈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일제에게 팔아넘기였던것이다.

일제침략자들과 친일매국노들은 인민들의 반항이 두려워 한주일동안이나 매국조약을 비밀에 붙이고있다가 모든 국내신문들을 정간하고 수천수만의 애국자들을 검거투옥하면서 전국각지에 경비망을 더욱 삼엄하게 늘인 다음 8월 29일에 이르러 비로소 발표하였다.

8월 29일, 이날은 잊을수 없는 치욕의 날, 조선의 국치일이였다.

그로부터 한달후인 10월 1일에는 조선통감부가 완전한 식민지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로 간판을 갈아달고 제1대 총독으로 데라우찌가 들어앉아 포악무도한 식민지총독정치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이 땅이 일제의 피묻은 총칼로 뒤덮이게 되였고 이로써 순종이 즉위한지 3년만에 명목상으로나 존재하던 조선봉건왕조도 막을 내리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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