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1 회


제4장 한성에서


4


아침부터 참으로 이상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려인숙방에서 자고났을 때 김정환은 세면을 할 생각으로 남먼저 문을 열게 되였다.

그런데 문앞에 바투 붙어있던 웬 작자가 화들짝 놀라는것이 아닌가.

김정환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취했다.

그놈은 눈을 부라리며 입에 손가락을 급히 가져다댔다.

조용하라는 소리였다.

그의 얼굴이 무척 낯익었다.

잠시 눈을 쪼프리고 바라보던 김정환은 이자가 바로 돌망골에 나타났던 일진회 회원인 《박달몽치》라는것을 알아보았다. 금시 온몸에 긴장이 흘렀다.

이놈이 왜 여기에 나타났을가.

그런데 그놈은 김정환에게 주의도 돌리지 않았다.

김정환의 차림새로부터 시작하여 몸가짐이 온통 상처와 피자욱투성이던 그때와는 판판 대비도 되지 않게 달라진데도 있지만 보다는 이자의 정신이 줄곧 딴 곳에 팔려있었던것이다.

그놈이 눈길을 박은 곳으로 얼굴을 돌리니 웬 사람이 금시 밖으로 나가고있었다.

김정환은 또다시 놀랐다.

바로 어제 자기에게 주막집을 묻던 그 목부위에 기미가 있는 길손이였다.

머리속에 여러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평산일진회의 졸개가 분명한 이놈은 왜 저 사람의 뒤를 따르고있는것인가?

김정환은 《박달몽치》를 바라보았다.

그자는 김정환에게 다시한번 눈을 찔 빨고는 급히 그의 뒤를 따라 사라지였다.

김정환이 발길을 돌려 방으로 다시 들어와 창문으로 내다보니 여전히 그자가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데 앞서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있었다.

김정환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저 사나이는 대체 누굴가? 평산일진회원이 그의 뒤는 왜 따를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으나 끝내 영문을 풀 길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정환은 그 생각에 옴해있었다. 봉대가 거리를 돌아본다면서 밖으로 나간 다음에도 그는 여전히 빈방에 앉아 《박달몽치》가 따르는 사람이 누구이겠는가를 가늠해보았지만 도무지 짚이는데가 없었다.

그럭저럭 정오가 되여오자 김정환은 고익재가 말한 은방앞으로 가려는 생각으로 문밖을 나섰다.

아침에 눈이 짜개지자마자부터 설레발을 쳐대며 가게방들을 찾아다니겠다고 밖으로 나간 봉대는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한성구경에 얼이 빠진 모양이였다.

혹시 다른 일이 있지나 않을가 걱정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정환은 머리를 저었다. 평산의병대에서 제노라고 하는 봉대인데야 강가에 내놓은 세살 난 아이 걱정하듯 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하여 김정환은 은방에 혼자 다녀올 생각으로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서도 김정환은 왜서인지 예감이 불안스러웠다.

아침에 일이 있은 후로 생기는 이상스런 예감때문일가?

혹시 어이 알랴. 자기의 뒤에도 그러루한 놈팽이가 붙어다닐지…

김정환은 무심중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던 그는 흠칫 놀랐다.

자기의 등뒤에 눈길을 박고 따르던 웬 놈팽이가 우뚝 멈춰서더니 황겁히 머리를 돌리고 모르쇠를 하는것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김정환의 뇌리에 불안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왜 나를 따를가? 이 려인숙에 들면 모든 사람들을 다 따라다니는것일가? 그렇다면 왜 그럴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모를 일이였다.

문득 어제 만났던 경찰관 강수길이가 떠올랐다.

혹시 그가 나에게 꼬리를 달아놓은것이 아닐가.

김정환은 다시 돌아서며 뒤를 한번 휘둘러보았다.

인츰 제자리로 몸을 돌린 상태였으나 김정환은 확신했다.

자기만을 주시하는 양복쟁이… 분명 그 양복쟁이였다.

그날 밤 경찰관 수길이와 함께 있던 그 양복쟁이가 분명했다.

그때 무슨 《왕자님》이라고 했던가?…

그를 달고는 고익재를 만나러 은방으로 갈수가 없었다.

하여 정환은 은방으로 가던 걸음을 바꾸어 인왕산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의연히 양복쟁이는 자기를 따르고있었다.

김정환은 그를 뒤에 달고 이리저리 헤매이다가 어느 한 으슥진 골목을 발견하고 그리로 쑥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골목이였다.

양복쟁이가 그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나타나는 순간 정환은 날쌔게 그의 덜미를 잡고 골목안으로 끌어들였다.

김정환이 그자의 목에 다짜고짜 비수를 들이댔다.

양복쟁이가 아부재기를 쳤다.

《가만, 그러다 정말 살인치겠소.》

《왜 뒤를 밟는거야?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놈의 숨통을 끊어버리겠다.》

《챠 이런, 그러면 내 양복이 피에 어지럽혀지질 않겠소. 겨우 얻어입은 옷인데…》

《흥, 한성골목패가 옷을 얻어입구 다니다니… 그리구두 뭐 〈왕자님〉이야?》

《그건 그때 내가 한번 해보느라 한 소리요. 그걸 여태 잊지 않구있었구려. 허 참… 헌데 난 골목패가 아니니 이 칼을 좀 치워주구려. 날 죽여버리문 당신에게 리로울건 없소. 그러지 말고 좋게 해결합세다. 내가 말해줄게 있소. 당신들 지금 리용구를 죽이러 왔겠지요?》

《?》

김정환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양복쟁이가 히쭉 웃었다.

《모르쇠를 마오. 지금 종로경찰관주재소와 일진회소굴이 벌컥 뒤집혔소. 리용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 당신 부하임이 분명한데 그가 위험에 빠졌소.》

부하라니? 누가 리용구의 뒤를 따른단 말인가. 그리고 위험에 빠졌다는건?

이놈이 지금 궁여지책으로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김정환이 그를 욱박질렀다.

《허튼 나발을 계속 지껄이겠어?》

칼날이 금시 목덜미를 파고들듯 하자 양복쟁이가 덴겁했다.

《허튼 나발이 아니요. 좀전에 종로경찰관주재소가 그런 련락을 받았다고 하오. 아마 평산에서부터 그 자객의 뒤를 따른 놈이 있는가 봅데다. 어제 행처를 놓쳤다가 아침에 저 려인숙에서 찾아냈댔다는데 금시 뒤를 따르다가 또 놓쳤다고 했소. 그자의 말이 틀림없이 종로에 있는 약방앞에 나타날거라고 했소. 리용구가 지나다니는 골목에 평산땅에서 올라온 자객이 나타난다는 그자의 말이 일진회에 알려져 리용구가 지금 반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였소. 그래 그의 가병들이 계책을 꾸몄는데 이제 정오에 종로약방앞을 지나가는 마차에는 리용구가 아니라 허재비를 앉힌다는거요. 그랬다가 총소리가 나든 칼물고 뜀뛰기를 하는자가 나타나든 하면 그때 잡자는것이지. … 마차곁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속에 미복잠행한 그의 졸개들이 득실거린단 말이요. 전번에 서흥주막에서 리용구의 목숨을 노리고 화살을 날렸던 목에 큰 기미가 있는 무삼이라는 자객이 여기에 나타났다는 평산일진회의 통고를 받고 행하는것이니 빨리 조처를 하시오.》

이 순간 김정환은 양복쟁이의 말에서 무엇인가 머리속에 그려지는것이 있었다.

큰 기미? 그때 서흥주막에서 리용구를 저격했던 그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이자 금방 그의 이름을 무삼이라고 했더라… 그런데 필석이는 그를 도적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김정환의 눈앞에 어제 길을 묻던 사람의 얼굴과 오늘 아침 려인숙에서 그의 뒤를 따르던 평산일진회원인 《박달몽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니 《박달몽치》가 따르는 그가 필경 무삼이라는 그 평산사람일것이다. 그가 지금 위험에 처했구나. 좀전에만 알았어도 그를 도와나설수 있었겠는걸…

그를 도와야 했다. 그런데 고익재를 만나는 걸음이 늦어져서 혹시 일을 그르치지나 않겠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긴 조금 늦는다고 딴 일이야 있으랴.

설사 총 몇자루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의기남아를 구원해야겠다는 자각이 생겼다. 헌데 이놈을 어쩐다…

양복쟁이는 정말 약은 작자였다. 김정환의 속생각을 어떻게나 알아맞추었는지 곁에 열려있는 남의 집 헛간을 가리켰다.

《내가 안심찮으면 괜히 생사람 목잘라버릴 고약한 생각일랑 품지 말구 저 헛간에 날 묶어놓으면 되질 않갔소.》

《다시한번 내앞에 나타날 땐 꼭 죽여버리겠다.》

《그러지 마우다. 혹시 내가 또 도울 일이 생길지 알겠…》

김정환은 그가 더 말을 못하도록 옆에 있는 담장우에서 어떤 떠돌이군이 아깝지 않게 줴버렸을 토목수건을 집어내려 뭉그려가지고는 입을 콱 틀어막아버렸다.

잔뜩 때가 오른데다가 사나운 개이발에 물어뜯기운듯 너덜너덜하고 께끈한 헝겊이 입아귀로 사정없이 들어오자 《왕자님》은 기절초풍하였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항변할 사이도 없었다. 헝겊은 벌써 입안으로 쓸어들어와 짭짤한 맛을 돋구며 잠시도 쉴새 없던 그의 입을 꼼꼼스레 밀막아놓았던것이다. 세상에 태여나 처음으로 맛보는 짭짤하고 역스러운 맛에 《왕자님》의 목구멍으로 왈칵 구역질이 쓸어올라왔다. 하지만 시퍼런 칼날이 목덜미를 파고들기보다는 그 역스러움이 훨씬 나을것이다.

더는 어쩔수가 없는 처지에 놓인 《왕자님》은 오만상을 잔뜩 찡그리고 김정환의 요구에 순응했다.

헝겊으로 입을 꽉 틀어막은 김정환이 그를 헛간으로 끌고 들어가 끈오래기를 찾아 칭칭 묶어버렸다.

그 다음은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종로약방앞의 골목이라고 했지. 어제부터 계속 한자리에서 지킨 모양이로구나. 뒤를 찰거마리처럼 따르는 놈이 있다는걸 모르구 말이야. 상판에 남들에게 없는 흉물스런것을 달고났으면 조심해야지. 제가 서흥땅에서 벌써 그 흉허물때문에 용모가 알려졌다는걸 몰랐단 말인가.

김정환은 속으로 눈먼 욕질을 련속 해대며 달리고달렸다.

누군가 그의 앞을 떡 막아섰다.

봉대가 큰 꾸레미 하나를 손에 들고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형님, 무슨 일이 생겼소?》

긴말할새가 없었다.

《빨리 따라서거라.》

김정환은 그냥 앞으로 달렸다. 봉대가 영문도 모르고 꾸레미를 안고 허둥지둥 따랐다.

약방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는 첫 순간에 김정환은 주변의 어느 한 골목을 지나가는 어제 길을 묻던 나그네의 낯익은 모습을 제꺽 찾아낼수 있었다.

김정환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얼마 떨어진 곳에서 뒤따르는 《박달몽치》가 보였다.

김정환은 《박달몽치》를 손가락으로 찍어 가리키며 봉대에게 급히 말했다.

《저놈을 따돌려야겠다. 큰 소동은 피우지 말고, 알겠니? 잠시 지체시키고는 곧장 인왕산 북쪽입구에 가있거라. 려인숙에는 들리지 말고…》

《알겠소.》

봉대는 영문을 알수 없었지만 긴급한 정황이 생겼다는것을 눈치채고는 두말없이 그리로 맞받아갔다.

봉대는 무작정 앞쪽에만 정신이 팔려 잰걸음을 치는 《박달몽치》를 힘껏 들이받았다. 둘이가 다 벌렁 자빠졌다. 그통에 봉대가 안고있던 꾸레미가 땅에 떨어져 터지며 담배가치들이 와락 쏟아져 길바닥에 쫙 흩어졌다.

봉대는 벌떡 일어나자바람으로 대뜸 《박달몽치》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자식, 눈깔은 가죽이 모자라서 찢어놨어?》

《박달몽치》는 제편에서 매를 드는 봉대를 처음엔 얼빤하게 바라보다가 인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뭐야? 네놈은 어떤 놈인데 생사람을 걸고드는거냐? 죽어보겠어?》

《이 자식, 주먹이 크다구 내가 죽고 네가 살것 같아 흰소리냐? 돈주고 산 가락담배값을 당장 내놓지 않으면 네놈의 모가지를 뒤로 돌려앉힌다.》

당장 주먹이 오갈 판이였다.

사람들이 오구구 모여들어 이들을 말렸다.

그 짬에 김정환은 목부위에 큰 기미가 있는 무삼이라는 평산자객을 어느 한 골목으로 끌어들일수가 있었다.

화뜰 놀라는 그의 팔을 다짜고짜 잡아끌고 골목안쪽으로 깊숙이 끌어들인 김정환은 그에게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켜보였다.

《쉿! 조용해.》

그리고는 다급하게 속삭였다.

《정오에 종로약방앞을 지나가는 마차에는 리용구가 없네. 거기다 눈길만 박아도 일도 못 치면서 온몸이 채구멍이 되구말아.》

무삼이가 눈을 퀭히 뜨고 주변을 한번 휘둘러보고나서 말했다.

《거긴 대체 뉘기요?》

《나도 평산사람일세. 김정환이라고 하네.》

《김정환?! 아니, 그럼 평산의병대 유격장님이란 말이요?》

무삼이의 눈이 빛났다. 그냥 두면 이 골목길에서 그를 부둥켜안기라도 할것 같았다.

《나를 아나?》

《왜 모르갔어요. 김정환이란 이름자를 모르문야 평산사람이 아니지요. 난 하루빨리 평산의병대에 들어가 유격장님과 함께 싸우고싶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원쑤인 저 리용구놈을 기어이 죽여버린 다음에 가려고 이날껏 미루어왔는데 오늘도 또 기회를 놓쳤으니…》

《자넨 빨리 이 장안을 빠져나가야 하네. 이 주변에 온통 일진회놈들이 쭉 깔렸어. 부친의 복수는 후날로 미루자구.》

김정환은 무삼이의 손을 잡고 반대켠쪽으로 냅다 달렸다.

골목을 몇개나 돌고 어떤 곳에서는 수상스러운자들이 어슬렁거리는지라 남의 집 뜰안에 뛰여들어가 몸을 감추기도 하면서 인왕산에 이르니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있었다.

무삼이를 데리고 북쪽입구로 가니 봉대가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봉대는 무삼에게 눈을 빨며 툴툴거렸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군데 그런 품을 들이오. 괜히 아까운 담배만 떼웠지 않소. 비싼건데…》

《그건 뭣하러 샀니? 네가 담배무는걸 못 봤는데…》

《쳇, 내가 그따위건 무엇하러 빨고있겠소. 그 령감, 아니 솔매 아버지가 담배를 무척 즐기더라니 가게방을 돌아다니며 댕기 열개 값을 뚝 떼주고 산것인데…》

여느때라면 봉대의 기특한 행동에 롱이라도 붙였으련만 김정환에게는 지금 그럴 경황이 없었다.

김정환은 간단히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자기들이 나라의 역적 리용구를 노리고 불속에 뛰여들번 했던 사람을 구원했으며 그가 다름아닌 평산사람이라는 말에 입귀가 찢어지게 돌아가던 봉대가 금시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형님, 그 고익재어른과 약속을 어겼으니 어쩌면 좋소.》

《집에 가봐야지. 무슨 대책이 설게다.》

무삼이가 미안스러운 표정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저 유격장님, 나때문에 중한 일을 망친듯 한데 내가 대신 내려가보리다. 어딘지만 알려주오.》

김정환이 그의 어깨를 툭 치였다.

《거긴 꼭 내가 가야 하네. 자네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이곳을 떠나서 동대문밖 30리지점에 있는 큰 느티나무주변에서 나를 기다리라구. 나도 이제 곧 그의 집에 내려가서 탄약의 행방을 알아가지고는 인츰 뒤따라가겠네.》

《알겠수다. 그런데 일진회놈들이 한성바닥에 쭉 깔렸겠는데 일없겠수?》

《그런 걱정은 말고 동대문을 빠져나가면서 주의해라.》

김정환은 서둘러 그들과 헤여져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 ×


이 시각 리용구는 그야말로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였다.

정오가 지나서 참으로 웃지 못할 희비극을 겪은 리용구였다.

한성에 자기의 명줄을 노린 자객이 나타났다는 통고를 가지고 평산지구 일진회 회장 맹영달이가 보낸 계부길이란자가 나타난 순간부터 리용구는 사지가 졸아드는것 같았다.

서흥땅의 주막집에서 자기의 멱을 향해 날아들었던 화살이 눈앞에 얼른거리며 당장이라도 또다시 그 화살이 수십개의 무리를 지어 한꺼번에 날아드는 환각이 일어나 소름이 와짝 끼쳤다.

당장 그 자객을 잡아들이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데 그 망할 놈의 평산일진회원이 려인숙앞에서 지금껏 뒤를 밟은 그 자객의 꼬리를 놓쳐버리는 허망한 일을 저질렀다.

눈앞이 아뜩했다.

그 자객을 잡아들이지 않는 한 어떻게 순간인들 마음을 놓을수 있단 말인가?

리용구는 자기를 위해 수백리길을 달려온 평산일진회원인 계부길이가 마치 자객이기라도 한듯 그의 목을 틀어잡고 잡아먹을듯이 날뛰였다.

계부길은 한동안이나 리용구에게서 무참한 욕을 당하던 끝에 그 자객이 약방앞에서 어물거리며 골목들을 유심히 살피는것을 보았는데 혹시 거기에 나타날수 있다는 소리를 지껄여댔다.

리용구는 즉시 종로경찰관주재소와 일본군대에 련락을 띄워 약방일대에 대한 감시를 의뢰하고 자객의 얼굴을 아는 계부길에게 무조건 그자를 찾으라는 불호령을 내려 쫓아버렸다.

그리고나서도 호위원들에게 당장 그놈을 잡아들일 만전을 기하라는 령을 내렸다.

자객을 잡는자에게는 상금 천원을 준다는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평생 남에게 단돈 한잎 거저 준적 없는 리용구로서는 황소 수십마리 값을 선뜻 내놓겠다는것이 생전처음 해보는 대용단이 아닐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에게서 2만원의 돈을 받았으니 천원쯤 목숨 건사하는데 쓴들 무슨 큰 랑패랴. 목숨이 붙어있구서야 돈이지…

이렇게 묵돈까지 내놓으며 큰 선심을 썼지만 알량한 호위원들이 극상 계책을 꾸몄다는것이 리용구의 마차에 허수아비를 앉혀 약방주변을 지나다가 자객이 나타나면 붙잡는다는것이였다.

썩 마음에 드는 계책은 아니였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리용구는 그들의 의사대로 해야 했다.

하지만 그 계책이 실행되지 못했다.

그바람에 허수아비가 마차에 편안스레 앉아 호강하면서 세번이나 장안의 큰길을 돌다가 무사히 되돌아오고말았던것이다.

허수아비가 무사한 리유는 머저리같은 평산일진회원 계부길이 약방앞에서 어떤 담배꾸레미를 든 녀석때문에 그 자객의 행방을 잃었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리용구는 너무도 기가 막혀 어쩔바를 몰라했다.

자객을 놓쳤으니 어느때든 자기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든다는것이 아닌가? 이거야말로 한쪽다리를 이미 지옥의 문안에 들여놓은거나 다름이 없었다.

바로 이렇게 극심한 마음고생을 겪고있는 그에게 그야말로 달갑지 않은 전갈이 왔다.

이또대신에 통감으로 들어앉은 소네가 통감부로 부른다는 전갈이였다.

자객을 잡기 전에는 밖으로 나서지도 않겠노라고 앙탈을 부리던 리용구였지만 소네통감의 부름을 받고는 감히 엇드레질을 할수가 없었다.

리용구는 할수없이 밖으로 행차를 해야 했다.

여느때는 팔자걸음에 앞배를 내밀고 위엄을 부리던 그가 이때에는 한발이나 솟아오른 어깨에 자라목이 되여 대가리를 파묻다싶이 하고 일진회문밖에 나서서 수십보나 되는 마차까지의 거리를 냅다 달려가 닁큼 뛰여오르는 우습강스런 행동도 서슴없이 하였다.

행길에 나서서도 주변에 숱한 일진회원들이 장사진을 치고있지만 어디서 어떤 불덩어리가 날아들지 알수가 없어 온몸을 옹송그리고 밖을 살필래기 눈두덩이에 굳은살이 배길 지경이였다.

바로 이럴 때 지나가던 행인들속에서 어떤 젊은 사람이 마차앞으로 뛰여들었다.

호위원들이 그 사람을 와락 덮쳤다.

그런데 자기옆을 따르던 호위원들과 뒤를 지키던 호위원들까지 그 젊은 《자객》에게로 몽땅 달려드는것을 본 리용구는 눈앞이 아뜩했다.

야 이놈들아, 내곁에 있어야지 또 다른 놈이 나타나면 어쩌라는거냐?…

하지만 리용구는 소리칠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길가던 행인들이 웬 일인가 해서 모여들어 웅성거리는데다가 호위원들의 정신이 온통 그 젊은 놈에게 쏠려있었던것이다.

자객의 목에 천원의 상금을 걸어놓았으니 왜 그렇지 않으랴. …

돈 천원이 목숨을 건져주기는 고사하고 도리여 목숨을 앗아갈 판국이였다.

리용구에게는 마차주위에 모여선 사람들이 모두가 《자객》으로 보였다.

겁이 날대로 난 리용구의 눈에 행길옆에 있는 일본인상점이 보였다.

리용구는 마차에서 내려 무작정 그 상점안으로 뛰여들었다.

상점안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상점의 매대안에까지 뛰여들어가 구겨박혀서는 김치국을 채먹은 거지모양으로 덜덜 떠는 리용구에게 일본인상점주인이 도적인가 하여 야구채를 들고 달려들었다.

야구채에 둬방망이 얻어맞은 후에야 호위원들이 달려왔다.

호위원들의 말은 더욱 까무라칠 소리였다.

방금 잡은 놈은 자객이 아니라 막걸리에 잔뜩 취해 걸음향방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한성토배기 주정군이라는것이다.

그 주정군이 요란한 행차를 보고 눈이 어질어질해져서 발을 헛짚은것이 마차앞으로 뛰여든 발단으로 되였다는 말에 리용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더위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거린다고 그 빌어먹을 주정군에게 놀라 소동을 벌렸으니 이거야말로 발목에 잠기는 개울을 알몸을 홀랑 드러내고 건너간 격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

종시 리용구는 소네의 부름이고 뭐고 집어버리고 서둘러 자기의 소굴로 되돌아오고말았다.

리용구는 날이 어두워지는 저녁에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서성거렸다. 자기 집이 리완용이네 집처럼 불길에 휩싸이는 환각에 빠져드는가 하면 궁내부 회계심사국장이였던 박용화처럼 어느 순간에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자객의 손에 목숨이 끊어지는 처참한 환영이 얼른거렸다.

대체 어디로 갈것인가? 그가 갈 곳이라곤 한군데밖에 없었다.

하여 리용구는 곧장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밤고양이처럼 달려갔다.

이날 밤 리용구의 넉두리를 들은 일본군사령관의 령으로 한성바닥에 대한 일대 수색전이 벌어졌다.

수색전이 벌어진지 얼마 안되여 수비대에서 《평산의병대장》을 려인숙에서 잡았다는 련락이 왔다.

일본군사령관이 직접 수많은 참모장교들을 거느리고 려인숙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잡아놓은 사람인즉 평산의병장 리진룡과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였다. 려인숙을 수색하던 경찰들이 숙박자명부에 오른 류사한 이름을 보고 착각을 일으켰던것이다.

한밤중에 애매한 사람을 잡아놓고 평산의병장을 잡았노라고 복닥소동을 벌려 숱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자 일본군사령관은 화가 독같이 올라 수색소동을 당장 중지하고말았다. 그 화풀이는 그대로 리용구에게 날아들었다.

일진회가 제구실을 못해 의병대 하나 잡아들이지 못하는 밥먹는 벌레들의 무리라는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마구 늘어놓았던것이다.

참으로 리용구에게 지루한 인생살이였다.

자기 민족의 버림을 받은데다가 처음에는 제 살점도 뜯어줄듯 그리도 살뜰하던 일본놈들에게서 수모란 수모는 다 받으면서도 대답질 한번 할수 없는 그에게 있어서 살아있는것자체가 숨막히게 헐치 않은 일이였다. 하기야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지 않는가. 이제는 제 할 일을 다한 리용구가 일본인들에게 점점 거치장스러워지는것은 어쩔수 없는 숙명이였다.

한낮동안 평산에서 나타난 자객으로 하여 십년감수를 한데다가 일본군사령관에게 별의별 모욕을 다 받은 그날 밤 리용구는 잡지 못한 자객이 무서워 잠자리를 세번이나 옮겼다. 그나마 새벽에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도 자객이 달려들었다. 무서운 표정을 짓고 칼을 든 자객의 모색이 왜서인지 전날 밤에 자기가 죽여버린 대한협회 고익재의 모습으로 보였다.

이렇게 리용구에게 있어서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고달프기 그지없었다. 민족에게 용서받을수 없는 죄를 저지른 리용구에게 세상은 참으로 무서운 세상으로 변하고말았던것이다.

그후 리용구는 자기가 이 땅에서 살기가 죽기보다 더 어려워졌다는것을 절감하며 일본으로 건너가고야말았다.

일본땅으로 건너가서도 리용구는 결코 발편잠을 잘수가 없었다.

역적은 어디에 가서도 환영을 받을수 없다는것이 리용구가 일본에서 한해정도 역스러운 생을 부지하면서 절감한 또 하나의 인생체험이였다.

자기가 저지른 죄악으로 하여 악몽에 시달리던 리용구는 머나먼 왜나라땅에서 무주고혼이 되고말았다.

하지만 한성에서 무삼이를 피해 잠자리를 세곳이나 옮기던 이날 이제 멀지 않아 차례지게 될 자기의 비참한 종말에 대하여 알수도 없었던 리용구는 단지 더러운 목숨을 하루라도 더 부지하기 위하여 갖은 마음고생을 다 겪고있었던것이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