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7 회


제3장 평산유격장


7


길떠날 차비를 갖춘 김정환은 솔매네 집토방에 앉아 봉대를 기다리고있었다.

이제 봉대가 당도하면 김정환은 그와 함께 한성으로 떠나야 했다.

그가 기봉대 한사람만을 데리고 한성으로 가게 된건 리진룡의병장의 령을 받고 행하는것이였다.

어제 의병장 리진룡이 그를 찾아 바리산에 왔었다.

리진룡이 바리산에 다시 나타나기는 이번이 두번째였다. 자기의 지휘처를 떠나 몇십리나 떨어진 이곳에 불쑥 나타난 의병장이고보면 무슨 긴급한 일이 생긴듯 하여 의아해하는 김정환에게 그는 어째선지 찾아온 용건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몸상태가 어떤가?》

《난 일없네. 그런데 그 총상은 좀 어떤가?》

단 둘이 있을 때면 김정환도 옛시절처럼 리진룡과 너나들이로 대하였다. 그것이 리진룡에게나 김정환에게 있어서 서로 대하기가 편하였던것이다.

리진룡은 붕대를 금방 푼 팔을 펴보이며 심드렁히 말했다.

《이젠 다 아물었네. … 신표, 그놈이 꿈자리에서도 나타나누만.》

김정환은 리진룡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꿈에 나타나는 신표에 대한 말이나 하려고 먼길을 달려오지는 않았을것이다.

그의 속마음을 읽은듯 리진룡이 말을 뗐다.

《이번에 자네가 한성걸음을 좀 해줘야겠네. 최순지나 한정만이는 한성바닥에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놔서 그들을 보낼수가 없구만.》

김정환이 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거기 가서 대한협회의 고익재선생을 만나야겠네.》

김정환의 눈앞에 고익재의 무던한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며칠전에 평산의병대는 고익재의 서신 한통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통감 이또 히로부미가 할빈역에서 안중근의 총에 맞은 사실을 알려왔었다. 그의 소식을 받고 온 의병대가 큰 잔치까지 차리였다.

그때 김정환은 자기들에게 그처럼 기쁜 소식을 먼저 알려준 고익재의 마음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의병투쟁에 뛰여들지는 못하나 물심량면으로 의병대를 도와나서려는 그 마음이 참으로 인상적이였던것이다.

그때 서신에서 아마 이또의 격살소식과 함께 의병대에 필요한 물자를 보장해주겠다는 자기의 마음까지 박아넣은듯싶었다.

《그를 만나면 도움을 줄거네. 문제는 무기보다도 탄알이 필요하네. 우리 의병대에 왜놈의 총을 빼앗아서 그럭저럭 신식총이 더러 생기지만 탄알만은 보충받을데가 없구만.》

리진룡의 말에 김정환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지금 실정에서 제일 긴요한것은 탄약이였다.

왜놈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로 해서 무장이 더러 개편되였다고는 하지만 총알이 없다나니 화승대보다도 못한 형편이였던것이다. 그렇다고 화승대처럼 신식총에다 연덩어리를 두들겨만든 덤덤탄을 재워 쏠수는 없는노릇이였다.

《무기와 탄알들을 넘겨받으면 곧장 궁하면 도성제에 있는 산두재로 오게.》

리진룡의 말을 듣고 김정환은 의아해났다.

어째서 탄약과 무장을 도성제에 가져다놓으라고 하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도성제는 류린석이 평산의병대를 조직할 때를 내놓고는 의병들이 드나든적이 없는 곳이다. 한것은 만약 여러 지역으로 나뉘여 활동하는 평산의병대에 어떤 막다른 위기가 닥쳐오는 경우 지형이 방어에 유리한 바로 이곳에 모여 대오를 수습하기 위한 비밀은페거점으로 점찍은 곳이기때문인것이다.

그것도 그렇거니와 현재 해주쪽에서 맹활약하는 신군선이네는 물론이고 평산지방을 활동거점으로 한 한정만이나 린산과 련산지구에서 싸우고있는 최순지네 활동지역과도 멀리 동떨어져있는 도성제에 탄약을 장만하려는 리진룡의 의도를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김정환에게 이러한 의문이 생기리라는것을 이미 알고있은듯 리진룡은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렇게 말했다.

《류린석도총재님에게서 서신이 또 왔네. 내용은 자네가 한성에 갔다온 다음에 알려주겠네. 당장은 내 말대로 하게.》

김정환은 더 묻지 않고 머리만 끄덕였다.

리진룡은 그길로 돌아갔다. 왜서인지 그의 얼굴에 생기가 없다는것을 느낀 김정환은 생각이 많아졌다.

신모정을 잃은 때부터 리진룡은 종종 여느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군 하였다. 이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 어떤 심리적변화가 일어나고있다는것을 암시해주는것이다.

그때 신모정의 시신앞에서 유생의 관습이 몸에 배여있는 리진룡이 만사람이 보는 앞에서 땅을 치며 울었다.

싸움에서 용감하고 어떤 일에서나 사리정연한 신모정은 리진룡에게 있어서 마음의 큰 의지였던것이다.

그러한 신모정이를 잃었으니 리진룡은 한쪽팔을 잃은것만큼이나 큰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그 절망감은 그의 앞에 신표가 나타난 때부터 생긴것인지도 모를 일이였다.

두남이의 덕분에 신표의 총구에서 벗어났으나 그자를 취조하는 과정에 리진룡은 자신의 용모파기가 도처의 일진회원들과 왜놈들에게 나돌고있다는것과 자기를 암살하는자에게 많은 액수의 상금이 정해졌으며 더우기는 자기의 일가족을 잡아들이라는 령이 통감부와 조선주둔군 일본군사령부로부터 지구수비대들에 내려졌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서흥군청 서기인 신표 역시 리진룡을 암살하던가 검단면일대에 형성해놓은 포위환에 평산의병대를 끌어들이기 전에는 살아서 나타나지 말라는 지구수비대장 오까노모의 령을 받고 여러달이나 산판들을 싸돌아다니며 의병대의 행방을 찾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중 일진회원인 명재에게서 의병에 들어간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얼려넘겨 지휘처에 접근했던것이다.

그날 두남이 덕으로 목숨을 건지기는 하였으나 리진룡은 그때부터 말이 없어졌다.

김정환이는 물론이고 한정만이와 최순지, 신군선이의 활동지역에서 많은 전과들이 이룩되였지만 리진룡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지 못한듯 했다. 의병장인 리진룡의 마음속에 그렇듯 심한 불안이 자리잡고있는 이상 의병대의 활동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대로 더 나가다가는 무슨 후과가 미쳐올지 가늠할수가 없는노릇이였다.

김정환은 이번에 한성걸음을 하고나서는 리진룡과 마주앉아 그의 속을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의병장의 령이 내려졌으니 빨리 한성으로 가야 했다.

이제 봉대만 나타나면 떠날 판이였다.

(그런데 이녀석은 왜 아직 나타나지 않을가?)

김정환은 또다시 봉대가 나타날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봉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서인지 봉대는 요즘 이곳에 잘 나타나려 하지 않았다.

김정환에게서 장서방네와의 기막힌 《개사돈》이야기를 듣고난 후로는 하루에 열두번도 작을만큼이나 바리산에서 돌망골로 드나들지 못해 몸살을 앓을 지경이였다.

속이 뻔했다. 김정환의 몸이 걱정되여 약재를 달이려고 한다지만 실은 솔매에게 빠져버린것이다. 약초야 바리산에서도 얼마든지 달일수 있는것을 하필 이 돌망골의 솔매네 집에서 부디 달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던 봉대가 요즘은 발바닥에 종처가 난 녀석처럼 이곳으로 찾아들념을 안했다.

김정환이 한성에 갈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바리산에서 돌망골로 먼저 떠나오면서도 봉대에게 인츰 따라서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걸 봐서는 그사이에 이 솔매네 집과 무슨 사연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부엌문이 열리며 솔매가 나와 그의 앞에 섰다.

머리를 숙이고 입을 오물거리는걸 보니 무슨 할 말이 생긴것 같았다.

《왜 그러고 섰느냐? 어서 말해라.》

솔매가 동정깃을 잡아비틀며 바재이다가 나직이 말했다.

《한성에 가면 댕기를 하나 사다줘요.》

《댕기? 허허… 난 또 무슨 큰일이라구. 꼭 사다주마.》

김정환은 솔매의 청을 선뜻 받아주고나서 방금 생각하던것이 있는지라 슬쩍 말을 비쳤다.

《그런데 봉대가 치근덕거린다구 네 부친이 내게 얘길하더구나. 내가 그녀석을 한번 단단히 혼쌀내주련?》

솔매가 발을 동동 구르며 펄쩍 뛰였다.

《그러지 마세요. 그 사람이 유격장님을 친형님처럼 따르던데 괜히 나때메 의가 상하겠어요.》

김정환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스르르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꾸나. 근데 그녀석말이다, 사람은 참 좋더구나.》

김정환의 말뜻을 느낀 솔매가 얼굴을 활딱 붉히며 아닌보살을 했다.

《난 아예 질색이예요. 싱검둥이인데다가 사내가 가볍기란… 그래서 아버님도 그 말만 나면 골이 나서 괜히 나한테 큰소리를 치지요 뭐.》

《그래… 그것 참, 봉대 그녀석은 괜스레 우둘거리다가 코만 떼웠구나. 허허…》

동구길쪽에서 봉대가 나타났다.

그를 띄여보자 솔매는 또다시 얼굴을 활딱 붉히며 도망치듯 부엌문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먼발치에서부터 자기를 피해 부엌으로 달아나는 솔매를 띄여본 봉대가 빈 입을 쩝쩝 다시며 사립문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봉대가 솔매네 집에 들어서길 주저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요전날 수비대에 잡혔다가 돌아온 다음 봉대는 솔매의 아버지인 달범령감에게 눈먼 욕을 얻어먹었던것이다.

《부실한 녀석, 왜놈들에게 맹탕 붙잡혀서 빈둥거리다 광진싸움에도 끼우지 못했다지? 그딴 녀석 백날 가두 제구실을 하는가 두고봐라. 얘 솔매야, 그녀석이 너를 넘보는 모양인데 아예 손톱눈만큼도 미련을 두지 않도록 네가 행실을 바루해라. 알겠냐?》

이러며 애매한 딸애를 다그어대는통에 그 마음어진 솔매가 눈물까지 흘렸다던지…

하여간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봉대가 풀이 죽어 솔매에게 지분거리는 일도 삼가하게 되였던것이다.

지금도 봉대는 솔매가 들어간 문을 힐끗힐끗 곁눈질하며 보짐을 등에 지자마자 밖으로 씽 나와버리고말았다.

김정환은 그러는 봉대의 뒤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넌 먼길 떠나며 솔매에게 갔다온다 말하구 가면 안된다더냐?…》

봉대가 먼산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헹, 내 문안이 반갑다고나 할거문 내가 이러겠수. 어서 떠나기나 하자구요.》

봉대는 동구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김정환이 그의 뒤를 따라나서며 봉대의 옆구리를 툭 쥐여박았다.

《사내녀석이란게 잔뜩 쭐나기란…》

그리고는 봉대의 귀박죽을 잡아당겼다.

《아이쿠, 이걸 놓소. 귀쪽 째져요.》

《가만있어라. 솔매가 너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이 있다. 그애가 댕기 열개를 좀 사다달래더구나.》

《날보고 댕기를요? 그게 참소리요?》

김정환은 큰소리를 내는 봉대의 입을 틀어막으며 뒤쪽으로 흘끔 돌아보았다.

《녀석, 조용해라. 처녀마음도 모르는 녀석이 꽁무니를 따라다니니까 자꾸 왼새끼를 꼬지.》

봉대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김정환은 그러는 봉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한성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