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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제3장 평산유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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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는 눈물을 찔끔찔끔 짜며 토설했다.

《어제 저녁에 신표어른이 소인을 찾아와 두남이라는 친구가 의병이 되였다는데 그가 있는 곳을 아는가고 묻지 않겠나요. 처음엔 모른다구 딱 잘랐댔는데 의병대를 크게 도울 일이 있는데 그걸 알려주지 못하면 그들에게 손해가 아니냐고 하면서 그 어방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하도 성화를 먹이길래 그 말을 곧이 믿었소이다. 흑흑.》

두남이가 눈물을 덤벙덤벙 쏟고있는 명재를 달구어댔다.

《그런데 네놈은 어째 그 자리에 없었느냐?》

《내가 자네와 헤여진 곳까지 그를 데려다주고 얼른 돌아서려는데 함께 의병대를 찾자면서 못 가게 하지 않겠나. 그래서 할수없이 그들과 함께 그 일대를 훑어나가다가 보초를 서는 의병들에게 걸려들었네. 그래서 의병장님 처소에까지 가게 됐는데 거기서 글쎄 함께 온 사람들의 낌새를 보니 딴마음을 먹은게 분명하기에 너무도 속이 떨려 뺑소니를 치고말았네.》

김정환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일진회원이요?》

《예, 그러하옵니다. 소인두 일진회에 들었소이다.》

그의 대답소리가 주눅이라곤 하나도 없이 어찌 보면 당당하게까지 들리였다.

두남이가 버럭 소리를 쳤다.

《이 자식, 언제 일진회에 들었어? 사실대로 말해라.》

두남이가 명재의 목에 총을 들이대자 그는 기절초풍하였다.

《웃동네에 사는 조부자의 아들이 하도 성화를 먹이길래… 자네가 의병으로 간 다음에 인츰…》

《뭐야? 이 자식, 그래 일진회에 든것이 그리두 장해? 왜놈들의 손발노릇 하는게 그리두 성수가 나는가 말이다.》

명재는 사색이 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난 왜놈들의 손발노릇 할려고 그 일진회에 든게 아니네. 거기 들면 부역이랑 면제시켜준다면서 자꾸 성화를 먹이기에…》

곁에서 그 말을 듣던 억만이가 이마살을 찡그리며 김정환에게 말했다.

《이따위 숙맥들이 한둘이 아니우다. 내 전번날 집에 내려갔더랬는데 글쎄 한마을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바우녀석이 일진회에 들었다질 않겠소. 그래 내 그놈의 덜미를 잡고 뒤산에 끌고 올라가 한주먹 줴박으며 〈일진회에 들어 왜놈들의 앞잡이노릇을 계속할테냐?〉 하고 욱박았더니 그놈은 도리여 〈날 어떻게 보고 그래? 내가 부역면제때문에 거기에 들었지 그딴짓이나 할려구 하는것 같애.〉 하면서 사람을 숙본다고 제편에서 펄쩍 뛰질 않겠소. 허 참, 일진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든것들이 태반이우다.》

김정환은 한숨을 내쉬였다.

이렇게 일진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든 사람들을 어떻게 깨우쳐야 한단 말인가.

언젠가 한정만이한테 곡산에서 의병대를 조직하고 의병장이 된 채응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것이 생각났다.

채응언이가 조선군대해산으로 벌어진 싸움에 참가하고 쫓겨다닐 때 고성에 있는 처남의 집에 몸을 숨기고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리무던한 그 처남이란 작자가 일진회의 꼬임에 넘어가 그 회원노릇을 하고있을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처남은 별일이 없겠지 하는 자기 생각으로 일진회본부에 찾아가 매부가 군대에서 일본사람들과 싸우고 왔는데 제발 무사할수 있게 좀 도와달라는 청을 하였다.

그통에 채응언이 일진회원들과 일본경찰놈들에게 잡혀 죽을번 하였던것이다.

하도 채응언이 사격과 격술이 능하여 자기를 잡으려 쓸어드는 놈들과 치렬한 싸움을 벌리며 거기에서 탈출할수 있었다고 한다.

처남은 채응언이가 빠져나간 다음 자기때문에 그가 왜놈들에게 죽을번 했다는 자책감으로 목을 매달고 죽었다고 했다.

그 일을 생각하고난 김정환은 명재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두남이가 그의 멱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당장 이 자식을 죽여치우겠소. 역적놈은 반드시 죽어야 하우.》

두남이가 명재의 멱을 틀어쥐고 따졌다.

《이놈아, 죽기 전에 황제의 연적이나 내놔라.》

명재는 이미 모든것을 포기한듯 두눈을 공허하게 뜨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마을뒤 바위밑에 감추었소.》

《그건 왜?》

《내가 이웃마을 조부자의 아들 조병수에게 자네가 가져온 황제의 연적소리를 했더니 그놈이 자꾸 캐여묻길래…》

《이 반편같은 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이걸 그저… 에익-》

두남이가 당장 짓조겨대려는듯 주먹을 쳐들었다. 김정환은 그러는 두남이의 팔을 잡았다.

《그만두거라.》

두남이를 제지시킨 정환은 명재에게 말했다.

《일진회는 역적의 무리요. 다시는 그런 놈들과 상종을 하지 마오. 그런 놈들과 다시 상종하면 당신은 역적이 되고마오.》

명재는 눈물이 그렁하여 머리를 끄덕이였다.

김정환의 거동에서 명재를 용서해줄 기미가 보이자 두남의 눈이 둥그래졌다.

《저 자식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있는데 어떻게 하시려우? 의병장님의 령은 또 어쩌구요.》

김정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단호히 말했다.

《일진회원이라고 다 처단할수는 없다. 우리는 몽매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일진회의 꼬임에 들어간 사람들은 일깨워주어 다시는 그런 무리와 휩쓸리지 못하게 하고 악질일진회원들만 골라가며 처단해야 한다. 조선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치고 왜놈의 앞잡이노릇을 즐기는자들은 몇놈 되지도 않는다. 그런자들은 마땅히 민족의 이름으로 가차없이 징벌해야 하지만 저런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다.》

김정환은 억만이에게 일렀다.

《이 집사람들을 돌망골로 데리고 가거라. 그리구 집은 불태워버려라. … 일진회가 어떤 더러운 구뎅이인줄도 모르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야겠다.》

《알겠습니다.》

김정환은 억만이와 다른 두명의 의병들에게 뒤일을 맡기고나서 두남이를 데리고 의병들이 기다리고있는 곳으로 향했다.

의병들이 있는 곳에 이른 정환에게 실로 아연한 일이 기다리고있었다.

귀진사에 갔던 필석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왔던것이다.

김정환은 불길한 일이 생겼다는것을 예감하며 다급하게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봉대는? 화약은?》

필석이가 울음이 꽉 배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봉대가 왜놈들에게 붙들려갔습니다.》

《뭐라구?》

김정환은 아연실색하였다.

한동안 망연하여 서있던 정환은 이내 정신을 펄쩍 차리고 필석에게 따졌다.

《자세히 말해라. 봉대가 어떻게 왜놈들에게 잡혔단 말이냐?》

필석이가 울먹거리며 사연을 이야기했다.

내용인즉 이러하였다. 그들이 김정환의 령을 받고 갔다오던 걸음에 하후고개를 넘게 되였는데 거기에서 봉대가 걸음을 멈추게 되였다.

《여 필석이, 이 고개를 넘어 조금 가면 모퉁골이야. 거기 골짜기 초입구에 바루 우리 집이 있어. 잠간 들렸다 가자구.》

봉대의 말에 전필석은 눈을 둥실 떴다.

《유격장님의 령을 잊었어? 우린 빨리 가야 하네. 이 주변에 서흥제비여울병참이 있다면서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하던걸 생각해보게.》

기봉대가 눈을 찔 빨았다.

《젠장, 자기 어머니가 아니니까 남의 일이라는거지.》

《엉, 그건 너무하네. 우리야 생사를 함께 하는 사이인데 자네 어머니자 내 어머니거던. 근데 거 령이 하도 중하더라니…》

《됐어, 잠시 들려서 안부만 묻고 제꺽 돌아서면 돼. 전번에 저고리를 드리려고 잠간 들린 후로는 한번도 어머니를 보지 못했거던. 그런데 집을 곁에 두고도 그냥 지난다면 그게 어디 자식된 도리라고 하겠나.》

그 말이 하도 곡진한지라 필석이는 봉대의 뒤를 따라서지 않을수 없었다.

잠간 들렸다 선자리에서 돌아서자 했던노릇이 그냥 돌아설수 없게 되였다.

병약한 홀어머니가 자리에 누워 앓고있었던것이다.

봉대는 어머니앞에 엎드려 눈물을 덤벙덤벙 쏟다가 반두를 들고나섰다.

《내 제꺽 저 개울에 나가 물고기를 몇마리 건져오겠어. 어머니에게 붕어탕이라도 끓여드려야 발길이 떨어질것 같애.》

전필석은 그를 말릴수가 없었다.

홀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을 필석이라고 어찌 모르랴.

그리하여 필석은 봉대와 함께 내가로 나갔다.

반두질로 쏘가리 몇마리를 건져냈을 때 봉대가 필석에게 말했다.

《이렇게 잡아서야 어디… 자네 얼른 집에 좀 뛰여갔다 오게. 뒤울에 가면 장독이 있는데 거기서 장을 한바가지 퍼오라구. 그걸 풀면 물고기가 많이 모여들거야.》

필석은 봉대네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사달은 그 다음에 났다.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맹영달이놈이 왜놈들을 달고 나타났던것이다.

놈들은 다짜고짜로 개울가에서 봉대를 끌어내여 치고 받고 하더니 노끈으로 꽁꽁 묶어가지고 수비대병영쪽으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필석은 끌려가는 그를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뻔히 보면서도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빨리 알리려고 허위단심 내처 달려왔던것이다.

두남이가 필석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의 목덜미를 틀어잡았다.

《그래서 자기 형제를 내쳐두고 그냥 왔단 말이야? 이걸 그저…》

김정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남이를 제지시켰다.

《그만해라. 그게 어디 혼자서 당할 일이냐? 자, 모두 봉대를 구출할 방도를 모색해야겠다.》

두남이가 눈을 뚝 부릅뜨고 소리치듯 말했다.

《방도가 딴거요? 냅다 들이쳐야지요.》

김정환이 머리를 저었다.

《그러면 광진일대의 습격은 어떻게 하겠니? 우리가 늦어지면 한정만이와 의병들이 위험해진다.》

《아니, 그럼 봉대는 어쩌자는거요?》

김정환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두남이에게 급히 일렀다.

《당장 집필묵을 가져오너라.》

두남이가 즉석에서 뛰여갔다 돌아와 김정환의 앞에 집필묵을 갖추어놓았다.

김정환은 붓을 들고 앞에 펴놓은 종이우에 칼을 휘두르듯 글을 써갈겼다. 종이장우에 《통고장》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지고 줄줄이 어마어마한 문구들이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통고장이 다 씌여지자 김정환은 그것을 접어 필석이에게 주었다.

《넌 이제 이길로 돌아서서 제비여울수비대로 가거라. 어떻게 하나 그곳 수비대중위놈에게 이것이 조용히 들어가게 해야 한다. 알겠냐?》

《알았소이다.》

필석이가 달려나간 다음 김정환은 의병들을 데리고 광진일대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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