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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회


제3장 평산유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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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퍼지자 김정환은 약우물골을 향해 떠났다. 김정환의 뒤로 공서방의 아들 덕쇠가 따라섰다.

약우물골은 돌망골에서 오불꼬불 뻗어간 산속 오솔길을 따라 도평과 삼각으로 이삼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바로 그 마을에 삼대를 의술로 살아오는 용한 의원집이 있었던것이다. 대대로 의술과 인술로 이름높았던 가문의 명성은 그 세번째 후손인 한민의 대에 이르러 더욱 자자했다. 한민은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방에다가 《동의보감》을 비롯한 당대의 의학서적들인 《의방류취》와 《향약집성방》을 통달하였으며 리제마의 4상의학까지 받아들여 의술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뿐아니라 거기다 덕망까지 있어 명의중의 명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기지를 않았다.

김정환은 바로 그 약우물골의원을 찾아가고있었다.

엊그제 리용구가 나타났다는 한정만의 말을 듣고 수십리길을 내처 달려갔던 정환은 몸에 입었던 상처가 도진것으로 하여 이틀이나 자리에 누워 앓고난 뒤였다.

아침에야 자리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그는 봉대에게 서흥에서 데리고 온 늙은이와 그의 조카인 전필석이라는 총각을 비롯한 새로 온 의병들에게 의병대의 준칙도 알려주고 필요한 훈련도 주도록 이르고나서 덕쇠를 데리고 벼르고벼르던 이 약우물골의원을 찾아 떠났던것이다.

아직 상처가 띠끔거렸다. 한성싸움때 피를 많이 흘린 어혈탓인지 길이 얼마 축나지 않았는데 벌써 진땀이 빠질빠질 돋았다.

김정환은 몇걸음앞에서 씨엉씨엉 걷고있는 덕쇠를 불렀다.

《좀 쉬고 가자꾸나. …》

덕쇠가 되돌아와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주머니에서 호박씨를 한줌 꺼내여 우물우물 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의원님은 왜 찾아가나요?》

《네 아버지가 쓴 억지를 벗겨주자는거다.》

《이자 뭐랬어요? 우리 아버지가 뭐 어쨌게요?》

덕쇠가 눈이 올롱해서 바라보았다. 의원을 찾아갈적에야 심한 부상을 입은 김정환유격장자신의 상처때문이려니 생각했었는데 자기 아버지때문이라는 말에 의아해졌던것이다.

김정환은 그러는 덕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퉁을 놓았다.

《녀석, 따지고들긴… 넌 몰라도 돼.》

덕쇠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마도 자기를 아이취급하는것이 불만스러운 모양이였다. 하긴 이제는 제법 사내꼴이 잡혀 나무짐을 져도 웬간한 장정만큼은 우습게 등에 지고 일어서는 덕쇠이니 그럴만도 한 일인것이다.

김정환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슬그머니 물었다.

《네 아버지가 요즘 이상스럽지 않더냐?》

《아니요. 우리 아버진 고뿔 한번 앓지 않는걸요. 요샌 뭐 노루를 잡는다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산판을 쌩쌩 돌아다니는데도 힘들단 말 한마디 없는걸요.》

《그래 노루는 왜 잡겠다는거니?》

《사냥이야 나도 하는데요 뭐.》

《어째서 꼭 노루란 놈을 노리는가 말이다.》

《…》

덕쇠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고보니 꼭 노루를 잡아야겠다며 산판을 헤매이는 아버지가 이상스러웠다.

덕쇠는 김정환을 바라보았다. 김정환은 덕쇠를 보며 또다시 빙그레 웃음을 짓는데 덕쇠는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이상야릇한 일이 있는것은 분명했으나 김정환이 뚝 입을 다물고있으니 도무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호기심이 바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덕쇠의 코등을 툭 튕겨놓고난 김정환이 문득 생각히우는것이 있어 이렇게 물었다.

《참, 내 하나 좀 묻자꾸나. 장서방의 아들은 어딜 갔느냐?》

덕쇠는 두눈을 둥실 떴다.

《장서방이라뇨? 우리 마을 도끼장수말이예요? 그 아저씬 아들이 없어요.》

《헌데 솔매네와 사돈지간이란건 뭐냐?》

그제야 김정환의 물음의 뜻을 깨달은 덕쇠가 픽 웃었다.

《그건 말하자면 개사둔이예요, 개사둔…》

《개사둔이라니?》

얼굴에 의혹을 비껴담는 김정환에게 덕쇠가 이야기했다.

사실 돌망골에 십년을 전후하여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지만 웬 일인지 서로가 마주서길 꺼려했다.

모르긴 해도 개개가 다 가슴속에 피눈물 고인 사연을 안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온지라 목구멍까지 꼴딱 차오른 울분이며 억울함 같은것을 혼자서 묵새기는것이 마음편했던것이다.

바로 이때 마을에 개 두마리가 있었는데 한마리는 솔매네 집 수개이고 다른 한마리는 장서방네가 기르는 암개였다.

사람들이 래왕을 하지 않으니 개들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노상 노끈에 매여져있었던지라 서로 《알고》지낼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장서방이 솔매네 집에 불쑥 찾아왔다.

《저 사돈을 좀 맺자구 찾아왔수다. …》

영문을 모르는 솔매 아버지가 의아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솔매가 출가할 나이도 안된 어린 계집애이기도 했지만 장서방네도 아들이란 그림자도 보지 못했으니 그럴만한 일이였던것이다.

《저… 그런게 아니라… 우리 개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였지요. …》

장서방이 정색해서 하는 그 말에 웬간해서는 별로 웃지 않는 솔매 아버지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맺은 《사돈》덕분에 마을사람들은 귀엽게 생긴 강아지 한마리씩 얻게 되였고 마을에는 개들이 번성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은 서로 왕래도 하고 흉금을 터놓기도 하면서 점점 사이들이 가까와지기 시작했다는것이다. …

김정환의 턱이 하늘로 올랐다.

《하하하.》

김정환은 한동안이나 눈물이 찔끔 솟도록 요란스레 웃었다.

《거참 괴이한 사돈이로구나, 하하하.》

그들이 한참 웃고났는데 불쑥 뒤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저, 말씀 좀 물읍세다.》

돌아보니 수염이 더부룩한 웬 사람이 자기들쪽을 바라보고있었다.

《한민의원님이 산다는 약우물골마을이 어느쪽이요?》

김정환은 그들을 여겨보았다. 때물이 잔뜩 오른 사내의 옷주제는 그의 궁색함을 말해주었고 둬발쯤 떨어진 너럭바위우에 앉혀놓은 어린 총각애의 창백한 얼굴은 병자가 바로 그라는것을 첫눈에 알리게 했다.

《우리도 지금 그 의원님을 찾아가는데 함께 갑시다.》

《제발 좀 그래주시우.》

사나이는 서둘러 총각애를 등에 업었다.

《아들인가요?》

《예.》

《다리를 못 쓰는가부지요?》

사나이는 말이 없었다. 울대뼈가 오르내리는것을 봐서 아마도 그어떤 설음이 있는듯 했다.

김정환은 얼마쯤 가다가 사나이를 세웠다.

《자, 이젠 내가 좀 업읍시다.》

《아니, 괜찮소이다.》

《아직 거기까지 가려면 고개 두개를 더 넘어야 할텐데 내게 업히시우.》

그제서야 그는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며 김정환에게 등을 돌려댔다.

김정환은 애를 업고 가면서 사나이의 과거사를 들었다.

이름은 백명산이라고 했다. 몇해전에 한성의 진위대에서 오장을 했는데 고문인 일본군소위놈이 자기 안해에게 눈독을 들였다는것이다. 그때 아들애가 다섯살이였는데 훈련나간 기회에 집에 달려든 일본군소위놈을 뿌리치는 제 어머니앞을 막아섰다가 왜놈의 손아귀에 잡혀 내동댕이쳐졌다고 한다. 그때 아들애는 다리에 심한 타박을 입고 졸도를 했다. 안해는 짐승처럼 달려드는 왜놈에게 절개를 지키려고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야 집에 도착한 백명산오장은 그 처참한 광경에 억이 막혀 그만 기절하고말았다. 동네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얼마후에 정신을 차린 그는 부엌에 놓여있는 식칼을 움켜쥐고 일본군소위놈이 거처하는 집으로 달려갔지만 약아빠진 족속인 그놈이 있을리가 없었다. 너무도 격분한 그는 불을 놓아 그 집을 통채로 재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바로 그밤에 진위대병사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백오장, 얼른 여길 떠나게. 그 일본놈이 경찰에 살인미수자라고 일러바치는통에 자네가 〈일본인보호법〉에 걸려들었네. 거기에 걸려들면 영낙없이 죽고마네. 그러니 이밤으로 여길 떠나라구. 어서!》

이리하여 백명산은 왜놈이 내동댕이칠 때 다리의 혈맥이 끊어져 그때까지도 정신을 잃고있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장수산에 들어가 숨어살게 되였다.

백명산의 이야기를 듣는 김정환의 두눈이 의분으로 펄펄 끓어번졌다. 덕쇠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백명산과 그의 어린 아들을 바라보았다.

김정환은 백명산의 손을 꽉 잡으며 격한 목소리로 부르짖듯 말했다.

《왜놈들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우리 민족의 극악한 원쑤요. 그런 놈들은 씨종자도 남지 않게 모조리 없애버려야 하오.》

백명산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김정환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속에서 그가 왜놈들과 싸우는 사람이라는것을 비로소 직감했던것이다.

그들은 의원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의원집에 도착한 김정환은 백명산에게 먼저 들어가 병을 보이라고 일렀다.

백명산은 침울한 표정으로 머리를 저었다.

《먼저 보시우다. 난 맨손바닥으로 병을 봐달라고 찾아온 사람이니 낯짝을 들고 선뜻 들어서지 못하겠구려. 조용해진 다음 사정해볼터이니 먼저들 병을 보시우.》

그의 걱정은 공연한것이였다. 한민의원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는 값을 받지 않는다는것은 아근에 널리 알려진 사실인것이다.

하지만 병자를 데려온 당자의 심정이야 어디 그렇겠는가. …

김정환은 더 말을 하지 않고 그의 아들애를 토방돌우에 앉혀놓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한민은 딸인듯 한 처녀와 함께 방안에서 약초를 손질하고있었다.

김정환이 들어서자 그 처녀가 일어나 맞아주었다.

김정환은 한민에게 인사를 차리고 마주앉아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난 한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병자를 보지도 못하고 맥을 짚으라니 이거야 생억지가 아닌가.》

김정환은 의원의 앞으로 한무릎 나앉으며 절절하게 말했다.

《의원님, 저도 팔방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것이 적지 않아 의술을 어지간히 알고있습니다. 내가 녀인을 좀 보았는데 분명 헛바람이 배에 들어간것 같아 그럽니다.》

김정환은 돌망골에서 벌어진 사연을 속속들이 이야기했다.

설씨의 배가 영문모르게 불어나게 된것이며 홀아비로 지내는 공서방이 억울한 뒤말을 듣게 된 일들을 빠짐없이 이야기하자 한민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야 아니되지. 그것도 한생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할 이웃들끼리 말일세.》

한민은 김정환의 마음에 감복되여서인지 한동안 바라보다가 느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병자의 증세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게.》

김정환은 설씨에게 나타난 증세와 자기가 본 견해까지 첨부하여 세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김정환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난 의원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확신성있게 말했다.

《증세를 들으니 그건 필시 창만이라는 병일세.》

김정환은 눈이 둥실해졌다.

《예? 창만이라니요?》

《창만의 창은 배가 불어나면서 팽팽해진다는 뜻이고 만은 속이 그득하다는 비만의 뜻이지. 이 창만에 여러가지 갈래가 있네. 고창, 단복창, 지주고로 가르는데 지금 말한 병자의 증세는 틀림없이 단복창일세.》

의원은 병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병의 원인은 7정내상에 의해 생긴다는것과 7정내상이란 우울한 정서, 노여움 등으로 간기가 맺히고 그것이 비에 영향을 주어 창만이 생긴다는것이다. 《의방류취》에서는 이 병이 수독으로 생길수도 있다고 했는데 병자가 홀로 사는 녀인인지라 병의 원인은 7정내상이 원인이라는것이다. 그리고는 침혈과 부항의 위치를 알려주고나서 치료과정의 상세한 순서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초기에는 선공후보법(먼저 병을 공격하고 몸을 보신하는것), 중기에는 공보겸치법(병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몸을 보신하는것), 말기에는 선보후공법(몸보신에 집중하면서 그 다음 병을 치료하는것)을 지켜야 한다고 곱씹어 당부하였다.

그러고나서 의원은 약 두첩을 꺼내주었다.

《이건 내가 우리 가문의 비방으로 만들어 〈신정자〉라고 이름지은 약일세. 류두날 첫 이슬에 돼지오줌집에 배긴 돌을 넣고 보름동안 졸여 만들었지. 그리고 이건 룡담초와 족두리풀, 메대추씨와 여러가지 약재를 넣고 졸여낸 청간탕인데 이것들을 병자에게 써보게. 아마 효력이 있을걸세. 그리구 내가 알려준 침혈을 잊지 말고 약을 쓰고나서 정확히 혈을 찾아 침을 꽂아주게. 할수 있겠나?》

《그건 념려마십시오. 저도 침놓는 법을 익혀두어 알고있습니다.》

한민은 머리를 끄덕이며 다시한번 침혈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김정환은 한민의 손을 잡고 진정어린 인사말을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의원님!》

의원은 잠시 김정환을 바라보다가 속삭이듯 나직이 말했다.

《이보오 젊은이, 내가 대준 약처방과 침혈을 가지고 얼마간 효력을 볼수는 있으나 병의 근원을 없애지는 못하네. 녀인의 고독이 발병의 원인인것만큼 그 고독을 없애는것이 제일명약으로 될걸세.》

의원의 말뜻을 알아들은 김정환은 머리를 천천히 끄덕이였다.

한민은 이어 딸을 불러 침통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의 딸이 침통을 가져오자 한민은 그것을 김정환에게 내밀었다.

의원이 내주는 침통을 받아들고 김정환은 진심으로 사례하였다.

《고맙습니다. 침통은 인츰 찾아와 돌려드리겠습니다.》

김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일어서는 의원을 눌러앉히고 김정환은 밖으로 나섰다.

문밖으로 나서던 정환은 토방돌에 앉아있는 백명산과 그의 아들을 띄여보고 주춤 멈추어섰다. 서로 꼭 껴안고 처량하게 앉아있는 그들의 정상이 속에 맺혔다.

김정환은 급히 품속을 뒤졌다.

손에 종이돈 몇장과 동전 몇잎이 나졌다.

그 종이돈은 언제인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생명의 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찾아 기어이 은혜갚음을 하라고 주머니에 넣어준 돈이였다.

잠시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김정환은 곧 마음을 다잡았다. 돈은 이다음에 다시 마련하면 되는것이다. 설사 돈을 마련하지 못한다고 해도 부모들을 구해준 은인들을 찾으면 자기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답을 하리라 결심을 하였던것이다.

김정환은 백명산의 손에 돈을 통채로 놓아주었다.

백명산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걸루 아들애에게 옷이라도 지어주시오. 그리구 락심하지 말구 꿋꿋이 살아갑시다. 그래야 왜놈들에게 비명횡사한 안사람의 복수도 할게 아니겠소.》

백명산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꽉 잡고 눈물을 떨구었다.

《고맙수다. 이 은공을 잊지 않겠수다.》

백명산부자의 곁에서 눈물이 그렁해서 바라보던 덕쇠가 자기 주머니를 박박 털었다.

거기에서 동전 몇잎이 나졌다.

그걸 들고 잠시 망설이던 덕쇠가 백명산에게 다가와 손에 든것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 몇잎 안돼요. 이럴줄 알았으면 요전날 장에 갈 때 짐승가죽을 더 내다 바꾸었을걸. …이걸 저애의 약을 쓰는데 보태세요.》

백명산은 눈물이 글썽해서 덕쇠의 어깨를 쓸어만졌다.

김정환은 덕쇠가 무척 대견해났다.

(녀석, 제법인걸. 이젠 다 컸어.)


× ×


의원의 비방이 효력이 있었다.

약첩이 비방인지 침이 비방인지 어쨌든 약 한첩을 달여먹이고 혈을 찾아 침 몇대를 찔렀더니 하루만에 설씨의 배가 훌쭉해지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정말 그 의원의 처방이 신령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설씨의 병은 며칠만에 씻은듯이 사라졌다.

설씨가 병을 털어버린 날 저녁에 김정환은 홍로인과 마주앉았다.

《참, 고마운 일일세. 자네 덕에 공서방의 죄가 해명되였네. 사람들이 괜히들 입방아를 찧어 애매한 이들을 욕보였구만.》

《이번에 덕쇠 아버지가 그 아주머니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여러날 고생하며 산판을 헤매여 노루를 잡아온걸 보니 생각되는게 있습니다.》

김정환의 의미심장한 말에 홍로인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런가보이. 멋모르고 말이 났는데 그게 진짜로 번질가봐 걱정일세.》

김정환은 홍로인의 걱정이 가당치 않다는듯 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럴것없이 아예 그들의 살림을 합쳐주는것이 어떻습니까? 이번일을 통해서 그들이 서로 정이 통한것 같은데…》

이것은 김정환이 약우물골의원을 찾아나설 때부터 속에 품었던 말이며 한민의원이 마지막처방을 내릴 때 굳힌 생각이였다.

하지만 홍로인은 대바람에 펄쩍 뛰였다.

《어허, 과부가 수절을 해야지 다시 재가라는게 말이 되오. 그런 말 싹 걷어넣으시우.》

홍로인의 그러한 태도는 이미 예견했던것이였다.

김정환은 홍로인의 완고한 관념을 뿌리뽑고야말 심산으로 곡진하게 말했다.

《로인님, 사람이 자기의 짝을 만나 한생을 해로하는것이 인생의 리치인데 한번 짝을 잃었다고 해서 산 사람이 홀로 외로운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세상살이가 너무도 고달프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래서 전봉준의 동학란에서 주장한 요구조건들중에 바로 과부들의 재혼을 정부가 허락할데 대한 조항도 박아넣은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정환은 절절하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했다.

지금 세월이 어떤 세월인가. 왜놈들의 마수가 방방곡곡에 뻗쳐 숨을 쉬고 살기가 힘든 때인것이다. 이런 때는 서로 믿고 의지할 기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이라고 홀로 이 험한 세월을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홀몸이 되고싶어 되였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그들을 도와 집안에 온기를 불어주고 정이 흐르도록 해주어야 할게 아니겠는가. …

김정환의 진지한 설복에 홍로인은 끝내 수락하고야말았다.

하지만 례의범절이 있는지라 식은 《과부동이기》로 치르자고 하였다.

머리를 기웃거리던 홍로인은 일단 마음을 고쳐먹자마자 제잡담 만사를 제치고 뛰여다니며 일에 쓰일 사람을 선정했고 신방을 마련하는데 엉치를 붙이고 앉아 목침은 이걸로 해라, 문창호지는 저걸로 발라라 하며 안 삐치는데가 없이 성수를 올리였다.

방이 마련된 날 밤에 《과부동이기》가 벌어지였다.

좌상로인이 직접 바리산에 나타나 의병대원들을 외줄로 주런이 세워놓고 하나하나 튕겨가며 고른 젊은이들을 두패로 나누어놓고 《너희들은 과부네 패이고 너희네는 〈략탈자〉들이다.》라고 규정을 해주었다.

그러고나서 거사는 오늘 밤 자시에 거행될것이라고 엄숙히 선포하였다.

과부패가 된 축들은 볼이 부었다.

이제 과부를 《략탈》할 때 벌어지는 《란투》에서 언제나 과부패의 《패배》로 끝나야 했기때문에 싫든좋든 얻어맞아야 했던것이다.

하지만 좌상님의 엄명인지라 과부패가 된 축들은 감히 말대꾸질을 못하고 설씨네 집으로 몰려갔다.

그날 밤 설씨네 집에서는 과부패가 된 젊은것들이 한구들이나 틀고앉아 얼굴이 활딱 붉어져 방구석에서 나서질 못하는 《신부》를 히물히물 놀려가며 막걸리동이를 제가끔 끌어안고 이제 들이닥칠 습격자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막걸리에 거나해지고 밤도 이슥하여 자시가 되였을 때 밖에서 투닥거리며 발소리들이 요란스럽게 울리더니 문짝이 벌컥 열리며 큰 마대를 든 홀아비패당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들어서자바람에 기세가 등등하여 호통을 쳤다.

《아니, 이것들이? 눈치코치없이 밤중에 여긴 왜 와서 기신거리고있는거냐? 사등뼈가 바스러지지 않겠거든 냉큼 도망질을 못할가.》

초저녁부터 공서방의 있는 정성, 없는 정성에 한껏 거나해진 그들이여서 하나같이 기가 펄펄했다.

과부패가 홀아비패의 험상스런 기갈질에 가만있지 못했다.

《아니, 이 오라질 벽두놈이 소리갠 왜 이리 커? 우리 주먹은 뭐 코나 문디기는걸루 아느냐. 어림도 없다.》

소갈머리없는 젊은것들이 좌상령감의 신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한 자존심을 봉창하려들었다. 더구나 막걸리를 한동이씩 걸친 기운에 담이 불어난 젊은 축들이여서 순순히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그래 얌전히 앉아있지 않겠단 말이지?》

《못 가만있겠다. 어디 해볼테면 해보자.》

《공손하게 사정하면 못 본척 할가 했는데 너희들 그 말투가 고약하니 버릇은 좀 배워줘야 할가부다.》

《뭐가 어찌고어째?》

그냥 두면 과부홀아비혼사때문에 의병들끼리 진짜 격투가 벌어질 지경이였다.

바빠난건 설씨였다.

약간한 《란투》뒤에 업혀가야 할 과부가 판이 별나게 번져지는데 질겁하여 솔선 나서서 말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번 꿈틀 살아난 젊은것들의 기가 쉽사리 꺼질리 만무하였다.

좀더 놔두면 진짜 주먹이 왔다갔다할 판이였다.

부끄러워도 어찌하랴.

설씨는 그만에야 스스로 마대속에 뛰여들고말았다.

그통에 맹랑해진건 과부패들이였다.

그들이 볼이 한발이나 부어올라 설씨가 든 마대에 대고 한마디씩 했다.

《아니, 아주머닌 자존심도 없으시우?》

《순순히 가면 공서방이 숙봐요.》

《이제라도 말만 떼시우. 싫단 말 한마디만 하면 우리가 돕겠어요.》

벌써 《략탈자》들이 어깨에 둘러멘 마대안에서 설씨의 가냘픈 대답이 흘러나왔다.

《부엌에… 막걸리가 더 있으니 찾아드세요. 항아리에 담근 동치미가 익었을거예요.》

과부패들은 너무도 기가 막혀 입들을 쩍 벌리고 굳어진듯 서로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누군가가 먼저 입을 싸쥐였다.

그를 따라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한참 배를 두드리며 웃고난 과부패는 살뜰한 주인아주머니가 공서방의 품에 안길 생각에 잠도 잊고 밤새껏 고아놓은 막걸리동이를 찾아다 구들우에 앉혀놓았다.

《그 아주머니 오늘 밤 깨가 쏟아지겠지?》

《헹, 공자님이 골이 쏘게 됐어. 이불깃을 꼬집으며 독수공방하라는 과부가 스스로 마대에 뛰여들었으니 말이야.》

으하하하.

또다시 터지는 웃음소리에 구들장이 드렁드렁 울렸다.

그 다음은 싯누런 놋대접들이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젊은이들은 밤새껏 막걸리에 취하고 즐거운 육담에 흠뻑하니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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